Mr Lee Young Man - a professional industrialist,
a wise man and a friend (and a good golfer)
전문 경영인이며, 현명하신 분이고 또 제 친구이신 (그리고 골프를 좋아하시는) 이영만 선생님
A few inadequate words to honour my friend Mr Lee on his 80th birthday
spoken by Göran Sundelöf
요란 산드로프가 친구로서 이 선생님의 80회 생신을 맞이하여 부족하지만 기념사를 적어 봅니다.
Mr Lee, you are a young man at heart and inexplicable you are becoming
eighty years of age this year, when you celebrate your birthday on the
14th of October.
이 선생님, 당신은 아직 젊은 가슴을 가진 분으로서 이번 10월14일 생신이 80회 생신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습니다.
I am lucky enough to have met you, Mr Lee, during a challenging and important, sometimes difficult but never dull part of my own life and since then I thankfully have been able to think of you as a friend, nowadays far away on
the other part of the world from where I live but still close by thoughts and technical means thanks to internet and cyberspace.
내 인생에서 보람되고 중요하였으며 힘들었으나 결코 헛되지 않았던 시기에
이선생, 당신을 만났다는 것은 나로서는 대단한 행운이었습니다.
그날 이후로 다행스럽게 우리는 멋진 친구가 되었고, 지금 서로 지구 반대편에
있으면서도 인터넷 가상의 공간이라는 기술덕분에 밀접하게 이웃하고 있습니다.
I have taken this bold step of putting a few words on paper, memories from
how we met and from our friendship and how our lives happened to touch each
other for a few years because I want to thank you and honour you and
congratulate you on your great day.
나는 선생의 뜻깊은 생일날을 축하하고,선생에게 감사한 마음을 표시하기
위하여 감히 우리가 어떻게 만나서 어떻게 친구가 되었으며 우리가 어떻게
교감하였는가를 기억을 더듬어 몇자 적을까 합니다.
Mr Lee, you have so many unique qualities.
이선생, 선생은 여러면의 독특한 인품의 소유자입니다.
I can truthfully describe you as an experienced professional, an intellectual,
a wise man - dynamic when needed and patient when needed to attain your goals - and not the least a caring person for those who depend on you and for your friends.
선생은 가감없이 말씀들여서 경험많은 전문경영인이며, 지적이며, 현명한 사람입니다.
-필요할 때에는 역동적이며 목표 달성을 위하여는 인내심 또한 강한 사람입니다.
최소한도로 자신이나 지신의 친구에 의존하고 있는 사람들을 잘 챙겨줍니다.
But to tell the story about a good man, it is not sufficient just to put a long string of words after each other - how appreciating they may be - trying to speak highly of his qualities. Words are just words and they will not portray the real life and the man before they are filled with thoughts and reflections why just those words were chosen.
그러나 어떤 분을 좋은 사람이었다고 말하기 위하여, 그분의 자질이 뛰어나다거나 어떤 점에서 감사드릴 분이라는 등의 말들을 길게 늘어 놓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말로서는 오랜 생각과 회상으로 가득찬 그분과의 경험한 지난 나날을 생생하게 묘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It is how a man acts in daily life that tells who he is and that really brings out his qualities in full relief.
그래서, 저는 (찬사의 말들을 나열하기 보다는) 그 분이 누구이고 일상 생활에서 어떻게 행동하셨고 어떤 모습을 실제 보여주셨는 지를 자세히 설명드리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So therefore I will try to tell the story, how I met you, Mr Lee, and hopefully to some extent thereby convey to anyone who reads these lines my appreciation of you Mr Lee, your professional management of the Otelco company, your caring of the Otelco people and your support to my family and me and everything I learned from you during our stay in Korea.
그래서 저는 이글을 읽으시는 분들이 제가 이 선생님에 대하여 느끼는 좋은 감정을 전달하기 위하여, 제가 어떻게 이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고, 이 선생님이 어떻게 오텔코 회사를 전문적으로 운영하셨고, 오텔코 가족을 배려하셨고, 제 가족과 저를 배려 하셨으며, 또 한국에서 제가 근무하는 동안 선생님께 배운 모든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합니다.
It was August 1985, my wife and I were awaiting a flight to Seoul in Tokyo airport. The flight was delayed because of a hurricane on the route. My wife was crying softly because we had left Sweden for a long time and she already deeply missed our grandchildren she would not see for many months
때는 1985년 8월, 제가 동경 공항에서 서울로 가는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이었습니다.
태풍으로 인해 비행기 출발이 늦어졌습니다. 우리는 고국을 떠난지 어랜 세월이 흘렀고, 아네는 이미 손자 손녀들을 못본지가 오래 되었기에 남몰래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I was to assume a position in Seoul in South Korea.
저는 한국 서울에서의 직책에 대하여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The company I worked for - Ericsson – had some time earlier formed a joint venture together with OPC, a local Korean company. I was to serve as executive vice president for this joint venture named Otelco. The already appointed president for Otelco was a man called Lee Young Man.
제가 속한 회사인 에릭슨은 한국 회사인 OPC와 합자회사를 이미 만들어 두고 있었습니다.
나는 오텔코라는 이름을 가진 이 합작회사의 수석부사장으로 근무하게 되었었습니다. 그때 그곳에는 이미 이영만이라는 사람이 사장으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As a Swede I knew nothing about South Korea, neither I knew much about the man I should depend on and cooperate with for a long time, the president Lee Young Man.
스웨덴 사람으로서 저는 한국에 대하는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고, 제가 의지하고 오랜 기간 같이 일할 이영만 사장님에 대하여서도 전혀 아는 바가 없었습니다.
My wife and I were to start upon one of the most interesting and rewarding part of our lives. But we did not know that yet. We were just thrilled and of course uncertain about what the future would bring.
그때가 제 처와 저는 우리 생애에서 가장 흥미롭고 보람된 부분이 시작되는 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때에는 그 사실을 몰랐지요. 우리는 단순히 알지 못하는 미래에 대하여 그저 두렵기만 하였습니다.
How difficult and tough our stay in Korea could have become, but how well it all turned out with memories worthy to treasure for the rest of our lives.
한국에서 우리의 체재기간이 얼마나 어렵고 힘들 지도 몰랐고, 또 그러한 어려움이 우리의 남은 생애에 가치있는 추억으로 변하게 될 지를 모르고 있었지요.
The man I then did not know much about, Mr Lee had already since two years taken on the task as a president for Otelco, a management task I eventually learned to respect as one of the most difficult ones of its kind you can think of.
제가 몰랐던 이 선생님은 이미 그때 2 년간 오텔코의 사장을 맡고 있었고,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범위에서 최고로 어려운 직무를 맡고 계셨습니다.
The Otelco Company was jointly fifty-fifty owned by OPC and Ericsson, both by capital and shared management.
오텔코 회사의 자본과 경영권은 OPC와 에릭슨이 50:50의 비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The two owners were both strong headed and guarded keenly their interests in the company.
두 회사는 모두 자신의 이익이 조금도 손해 보지 않으려는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었습니다.
The joint ownership by capital was comparatively easily managed so the start up of the company had been done without major difficulties.
자본의 반반의 공동 소유는 비교적 쉽게 이루어 질 수 있기 때문에 시작은 순조로웠습니다.
The aimed long term joint management, however, was of course something different considering language difficulties, differences in cultures and many other difficulties in the areas of the daily operation of the company and the management of finance and profit and loss.
그러나 장기간의 공동 경영이라는 것은 - 언어의 차이, 문화의 차이, 하루하루의 회사의 운영이 요구되는 각 분야에서의 문제점들, 재정, 이익과 손실의 관리 등을 고려할 때 -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Otelco was a Korean Company operated in accordance with Korean laws and tradition.
오텔코는 한국의 법과 전통에 따라 운영되는 한국회사입니다.
That made of course the managerial responsibility of the Korean partner, OPC, very important, while the contribution of the foreign partner, Ericsson, its possible influence on management and how the company should be run difficult, restricted and in certain aspects impossible.
그러므로 한국측 파트너인 OPC의 경영책임은 매우 중요하였고, 반면에 회사의 경영에 대한 외국 파트너인 에릭슨의 역할은 제한적이고 어떤 면에서 간섭이 불가능하였습니다.
Given this background it could have been a temptation, if a short-sighted person had been given the responsibility for the Otelco Company, for the local Korean interests to totally take over the management and reduce the Ericsson part of management to become only formal and without any real influence. Such a development would surely have shaken the trust between the owners and probably should have been disastrous for the joint venture in the long run.
이러한 배경에서 근시안적인 안목의 한국인이 오텔코의 책임을 맡는다면 100% 경영권을 장악하고 에릭슨의 역할은 단지 형식적인 모습으로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모습으로 두고 싶은 유혹이 컸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장기적으로는 두 모회사간의 신뢰가 무너지고 결국 그 합작회사는 큰 재앙을 불러 올 것입니다.
I mention the above to explain the very difficult conditions for a successful operation of the company as I see it and the very strong ethical requirements put on the Otelco president to be able to develop and keep the confidence of both the owners and thereby create a long term win-win situation for the development and survival of the company.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은 제가 보기에 회사를 성공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음을 설명하기 위해서이며, 오텔코 사장이 강력한 윤리적인 요구사항을 만족시켜서, 두 소유주에게 회사에 대한 믿음을 심어주고 회사의 발전과 생존을 위한 장기적인 윈-윈 상황을 창출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음을 설명하기 위해서 입니다.
Luckily OPC had found and appointed the right man for this difficult job and luckily the Ericsson party supported the choice. That man was you Mr Lee.
OPC가 이러한 어려운 일을 수행하는 데 적절한 사람을 찾았다는 것은 행운이였고, 에릭슨 또한 그러한 선택을 지지하였다는 것은 행운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바로 이 선생님이었습니다.
You Mr Lee choose a road of cooperation and trust.
You kept an open mind and facilitated for the people sent out by Ericsson to take part in the daily operation and take responsibility and contribute on management level as much as the situation and their competence possibly allowed for.
이 선생님 당신은 협력과 믿음의 길을 선택하셨습니다.
당신은 열린 마음으로 에릭슨에서 파견된 사람들이 매일의 경영에 참여하고 상황과 능력에 따라 그들이 경영에 책임을 지고 참여하는 것이 용이하도록 해 주셨습니다.
Looking back I can honestly say that I could think of no better choice and no man better suited to cope with the difficult management of the company and to preserve the delicate balance between the owners than you Mr Lee.
회상하건데, 제가 솔직히 말씀드린다면,
이와같이 어려운 회사의 경영을 맡고 두 소유주의 이해관계의 균형을 잘 맞추어 주는 역할을 수행하는 데 이 선생님 보다 나은 분이 없다고 감히 말씀드리겠습니다.
Many were the incidents that could have led to major conflicts between the owner’s considering different views how the Otelco company should be run, but thanks to your clearness of goals, sense of justice, generosity, patience and moral integrity, you Mr Lee, succeeded always in keeping the company on a steady course.
오텔코 회사의 경영방법에 대한 두 소유주의 견해의 차이 때문에 소유주 간의 큰 충돌이 예상되는 사건이 여러번 있었지만, 당신의 뚜렷한 목표, 정의감, 관대함, 인내심, 도덕적 완성도 덕분에 회사는 항상 꾸준한 성장을 견지할 수 있었습니다.
As a matter of fact, if I remember correctly, Otelco was the fastest growing company in Korea percentage wise for three years in a row. And that was mainly thanks to your leadership, Mr Lee.
사실 제 기억이 옳다면 오텔코는 3년연속 한국에서 비률면에서 가장 빨리 성장하는 회사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주로 이 선생님의 리더쉽 때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I know, because I was there.
제가 거기에 있었기에 이 사실을 제가 알고 그래서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I believe that any good professional manager could run a company of the Otelco size.
훌륭한 전문 경영인이라면 오텔코 크기의 회사를 경영하는 데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But I am totally convinced that to run the Otelco Company took a very special man like you, Mr Lee, as its president, considering the pitfalls to be avoided and the built in conflicts that existed between the owners.
그러나 두 소유주간에 존재하는 견해의 차이나 반드시 피하여야 할 함정들을 고려할 때 오텔코라는 회사를 경영할 수 있었던 분은 이 선생님 당신과 같은 특별한 분 뿐이라고 확신합니다.
And not only was your task to balance and serve the interests of the two owners.
당신의 임무는 두 소유주간의 이해관계를 균형있게 유지하여 주는 일 뿐이 아니었습니다.
Your main task was of course to develop the company and the daily care of both the Korean employees and the Ericsson representatives that were sent out by Ericsson to facilitate the technical transfer of technology.
당신의 주 임무는 물론 한국인 직원과 에릭슨에서 파견된 에릭슨 대표자들을 잘 돌보아 기술전수를 원활히 하고 회사를 발전시키는 일입니다.
And where people of different cultures meet and are to cooperate, misunderstandings will occur as well as incidents of minor - and sometimes even major - kind.
다른 문화의 사람들이 만나 공동작업을 하는 곳에는 항상 작은 문제들 뿐만아니라 때로는 큰 문제들도 발생합니다.
I believe that the regular arising conflicts many times must have drawn quite a lot on your patience capital, Mr Lee, but you always kept your self-control and mediated between parties without letting any party lose there self respect but hopefully instead leaving your office with new understanding about how the conflict could have been avoided and instead been used constructively for the benefit of the company.
이렇게 수시로 일어나는 많은 문제들은 이 선생님의 많은 인내심을 요구하게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항상 중심을 잃지 않으시고 상방을 잘 중재하셔서, 쌍방이 모두 자존심이 상하지 않고, 가능하면 당신의 방을 나설 때에는 다시는 그러한 충돌이 생기지 않고 그 대신 보다 회사를 위해 보다 건설적인 모습으로 되도록 유도하곤 하셨습니다.
And I strongly remember how you cared for your people; they were in a way your children that you took your time both to educate professionally and as human beings and - among other things - how they should cope with the unusual situation to have to work closely with the people sent out by Ericsson who certainly not always were so easy and flexible to cooperate with.
그리고 저는 당신이 당신의 사람들을 얼마나 잘 돌보셨는 지를 뚜렷이 기억합니다. 당신은 그들을 당신의 자식처럼 시간을 내셔서 전문적인 지식을 가르치고, 인간으로서 또 여러가지 면에서 에릭슨 파견인들과 가깝게 일하면서 생기는 특이한 상황들을 어떻게 대처하여 잘 지낼 수 있는 지를 잘 가르쳐 주셨습니다.
You set the example.
당신은 그 모범답안을 만드셨습니다.
You led your people and you steered your ship firmly and safely at times on a rough sea.
By way of introduction above, I mentioned how I remembered our first arrival to Korea.
당신은 당신의 사람들을 잘 이끌어서 당신의 배가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바르게 안전하게 항해 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지금가지 제가 처음 한국에 도착하였을 때 제가 기억하는 당신의 모습이 어떠하였는 지를 묘사해 보았습니다.
At that time I did not know you Mr Lee, but I soon experienced your generosity.
처음에는 잘 몰랐지만 저는 곧 당신의 관대함을 경험하였습니다.
Professionally you supported me efficiently with any practical and informational need I could have to get acquainted with the Otelco environment and the prevailing business situation. You shared the important business decisions with me and did whatever that was required to keep me informed on operational problems that might be at hand and how you proposed they should be solved.
전문적인 분야에서 당신은 제가 오텔코 환경과 그때의 비즈니스 상황에 대하여 이해하는 데 필요한 실질적인 요구사항이나 정보를 제게 효율적으로 제공해 주셨습니다. 당신은 중요한 경영상의 결정을 내리는 일에 저를 참여 시켜 주셨습니다. 그리고 수시로 필요한 정보를 항시 제공해 주셨고 문제의 해결방안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For obvious reasons my possibility to take part and to contribute to the operation of the company and to play any significant role in our Korean business relations were restricted by language and cultural barriers but still you made me feel I had an important role to play for the development of the company.
제가 회사를 운영하는 일에 기여하거나 한국과의 경영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에는 언어나 문화적인 장벽 때문에 많은 제약이 있었음을 분명하지만, 당신은 항상 제가 회사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느끼게 해 주셨습니다.
Your generous attitude and your effort to keep me informed were extremely important to me in my effort to make the contributions I possibly could for the benefit of the company.
이와같이 제가 충분한 정보를 가질 수 있도록 해 주신 당신의 관대한 태도와 노력은 제가 회사의 이익을 위하여 제가 기여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데 매우 크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Even if we not always could share the same view on management or operational issues we always reached agreements in good mood even if our discussions sometimes could take hours.
우리가 때로는 회사의 경영 및 관리측면에서 같은 견해를 가지지 못한 경우에도 우리는 때론 몇 시간이 걸리는 오랜 토의를 통해서라도 항상 좋은 분위기에서 합의점을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You always treated my views and proposals with respect.
당신은 항상 저의 관점이나 제안을 존중해 주셨습니다.
You wisely taught me – spoken or unspoken - to appreciate your reasons and motives in our discussions when solutions had to be decided upon and actions you deemed necessary had to be taken.
우리의 토의에서 해결점을 찾거나 하여야 할 일을 결정할 때 당신은 제가 당신의 생각이나 동기를 제가 알아챌 수 있도록 말로써 또는 말을 통하기 않고도 가르쳐 주셨습니다.
I can think of no better man to learn from and to discuss and exchange views with to agree on common goals and lines of action.
공동의 목표나 행동방향을 결정하기 위하여 의견을 교환하거나 토의하면서 배움을 줄 수 있는 데 선생님 보다 나은 분을 생각해 낼 수 없습니다.
But life is not all work.
그러나 인생에서 일이 전부는 아니지요.
To my wife and me our stay in Korea these years was a great adventure. The culture and traditions, the nature and the food and the daily life in Korea are very different from our home environment.
저와 제 처가 한국에서 보낸 기간은 큰 모험의 기간이었습니다. 한국의 문화와 관습, 자연과 음식, 일상생활은 제 고향의 것과는 매우 차이가 났습니다.
And human beings are very tied to their country of origin. We are born into a culture, a family and our values are mostly rigidly set before we are twenty years of age.
인간은 자신이 태어난 곳과 여러 면에서 묶여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문화와 가족안에 태어나 대략 20세가 되기 전에 우리의 가치관이 대부분 결정되고 잘 변하지 않습니다.
To honestly say that we as temporary visitors to Korea could be able deeply to understand its people and culture, when we even could not speak the language, I do not think is quite possible.
솔직하게 말한다면 우리는 한국에 잠시 머무르는 방문자로서 한국 사람과 문화에 대하여 깊게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와 같이 그 언어를 전혀 말할 수 없을 때에는 그러한 이해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But we could try to listen and learn.
그러나 우리는 듣고 배우려고 노력하였습니다.
Because beyond culture, traditions and language that may seem strange to you, there are always human beings, with similar feelings, dreams and needs like yourself.
어떤 분에게는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인간에게는 문화, 관습과 언어를 떠나서 공유할 수 있는 느낌, 꿈 및 욕구가 있습니다.
And if you meet the right person he may succeed in opening that imaginary door slightly to you that enables you to see through cultural differences and help you to meet the country and its people.
그리고 만일 적임자를 만난다면 그가 당시의 상상의 문을 열어서 문화적인 차이를 넘어 다른 나라와 사람들을 볼 수 있도록 해 줄 수 있습니다.
Mr Lee, you opened that door to us to let us in into your Korea.
And we learned to love your country.
이 선생님, 당신이 그 문을 열어 저희가 한국을 알 수 있고 또 한국을 사랑할 수 있도록 해 주셨습니다.
I will always be grateful to you Mr Lee for your generous effort that we should feel welcome; you made it your task that we should feel safe, find a nice place to live and get acquainted with your Korea.
저는 항상 당신이 우리가 환영받고 있다고 느끼도록 노력해 주심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거의 안전을 느끼게하고, 살기 좋은 곳을 찾아 주고 그리고 당신의 나라 한국을 보다 많이 알게 하여주기 위하는 일에 많은 신경을 썼습니다.
The years in Korea brought new values to our lives and so many memories of Korea; its beautiful nature in all seasons and the people we met will for ever stay and be treasured in our minds.
한국에서의 생활은 우리의 생활에 새로운 가치관과 많은 한국에 대한 좋은 기억을 가지게 해 주었습니다. 한국의 4계절 아름다운 자연과 만난 사람들은 우리의 기억속에 영원히 보물과 같이 남아 있을 것입니다.
Our experience and appreciation of Korea and its people will always be coloured by your personality, your generosity and advice.
한국와 한국인에 대한 경험과 느낌은 항상 당신의 인격과 관대함 및 충고로 채색되어 질 것입니다.
And Mr Lee – I almost forgot – your personal qualities have definitely made you my mentor in golf.
그리고 이 선생님 - 제가 거의 잊을 뻔 했지요 - 당신의 성품은 골프에서도 제 개인선생으로 모시기에 충분합니다.
I started on the long road of my very, very modest golf career under your supervision. What you taught me not unnecessarily to complicate the swing still guides me (in spite of all advices I later have read about how to improve my swing), but what is much more important, you taught me how to behave on the course, not by words but by your example, so your fellow players would enjoy the play.
저는 당신의 지도하에 골프를 시작하였고 잘 지치는 못하지만 이미 꽤 오랜 시간이 흘렀습니다. 당신이 가르쳐 주신 스윙 방법은 어려워 아직 잘 이해가 되지는 않지만 여전히 가르침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보다 중요한 것은 당신이 제가 골프를 칠 때 어떻게 행동하여야 같이 골프를 치는 동료들이 골프를 즐길 수 있는 지를 행동으로서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Those unspoken lessons you taught me have been a great help to me many times to keep my temper well under control after a bad stroke (unfortunately a very common occurrence) and not to burden my fellow players with a disappointed ego but instead contribute to keep up a good spirit during the round.
이와같은 무언의 가르침은 제가 잘못된 스윙을 하였을 때 (불행히도 아직 자주 그 모양이지만) 성질을 내지 않고 제 기분을 억제할 수 있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동료 골퍼들에게 내 실망감으로 짐을 지워주지 않고 좋은 기분으로 골프게임을 마칠 수 있습니다.
I can think of no man I would appreciate more to play a round of golf with once more than you, Mr Lee (if you could stand my lousy play for a whole round that is, a challenge in itself).
다시 한 번 골프 한 라운드를 같이 치면서 당신에게서 보다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분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저와 같이 잘 못치는 사람과 한 라운드를 같이 참고 마친다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지요.)
Finally my wife and I wish you a happy and wonderful birthday – so well deserved - on the 14th of October; you will be in our thoughts (like many other days) and above all we wish you and your family a good health and a continued good life.
마지막으로 저와 제 처는 당신의 행복하고 뜻 깊은 10월14일의 생신을 축원합니다. 많은 다른 날처럼 저희들은 항상 당신을 생각할 것이며, 그리고 당신과 당신의 가족의 건강과 지속적인 좋은 생활을 꾸려 나가시기를 축원합니다.
With the above lines I want to honour you on this great day Mr Lee and convey to you the thankfulness I feel for you for all you have done for me and my family.
이러한 말씀들로 저는 이 선생님 당신의 위대한 날을 기리며 당신이 저와 제 가족을 위하여 해 주신 모든 것에 대해 감사를 드립니다.
이 많은 분량의 원문 번역 타이핑하시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을 할애하셨습니까? 선배님 고생많으셨지요? 하지만 우리의 동문들이 선배님에 관한 한 또 다른 가치관 속으로 인도해 주셨음입니다. 고향인의 자랑이요 제일초등동문 전체의 자랑으로 우뚝 서 계시기에 충분하신 우리 선배님 화이팅입니다. 감사드립니다.~~~^
첫댓글 선배님 죄송스럽지만 원문 그대로 번역 좀 해서 올려주이소. 아이구 영어 열심히 좀 할낀데, 때늦은 후회 한들 뭐 하겠습니꺼? 꼭 부탁 말씀 드리며 기다리고 있을껍니더 ㅎㅎㅎ
형님. 저도 황선배님같이 번역이 없었을 때에는무슨 뜻인지 몰랐는데 번역문을보니 옛날 산드로프도 눈에 선하고 또한 그때 여러가지 어려운 일들을 슬기롭게, 따뜻하게, 원만하게 처리해 주신 기억이 새롭습니다. 이글을 그때의 오텔코 맨들이 많이 봤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이 많은 분량의 원문 번역 타이핑하시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을 할애하셨습니까? 선배님 고생많으셨지요? 하지만 우리의 동문들이 선배님에 관한 한 또 다른 가치관 속으로 인도해 주셨음입니다. 고향인의 자랑이요 제일초등동문 전체의 자랑으로 우뚝 서 계시기에 충분하신 우리 선배님 화이팅입니다.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