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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사라졌다...!!!
대미산을 내려온 후, 분명히 숲속으로 난 희미한 산길을 따라 열심히 달렸는데, 갈수록 길이 아닌 (사람이 다녔던) 흔적이 되더니 마침내 그 흔적마저도 사라져버렸다. 어디에서부터 길을 잘못 들었는지 모르니 다시 돌아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계속 전진하자니 눈 앞에는 한번도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듯한 잡목들이 빽빽하다.
마지막 희망(?)인 휴대폰을 꺼내서 등산 어플을 확인해보니, 종주길과는 많이 벗어나 있지만 가야할 방향이 GPS가 가리키는 방향과 대략 일치한다. 하지만 당황스러운 건, 어플 지도상 내 현재 위치가, 숲 속이 아닌 산자락에 개간된 밭들 사이로 표시되어 있다!!! 어플이 잘못된건가 싶어 이리저리 움직여 보는데 휴대폰 화면상의 화살표가 정지화면인 듯 움직이질 않는다...;;; 아... 난 누구?? 여긴 어디??
돌산 지맥 종주 대회
돌산도는 여수 앞바다에 위치한, 울릉도와 비슷한 크기를 가진, 우리나라에서 11번째 큰 섬이다. 현재는 제1, 제2 돌산대교로 여수와 이어져 있으며, 이번 돌산 지맥 종주의 시작점에 위치한 해상 케이블카와 도착점인 향일암이 전국적으로 유명해 매년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다. 산타기를 좋아하는 이들이 이 큰 섬의 처음과 끝을 잇는 종주길을 만들어 놨는데, 수도권에서 불어오는 트레일런 바람을 타고 이 길을 달리는 "제1회 돌산 지맥 종주 대회"가 생겼다. 작년에 가고 싶었던 "경남 알프스 억새길 종주 대회"를 주관했던 "명품트레일런 조직위"라는 단체가 전국의 유명한 종주길(오는 3월 24일, 무등산트레일런 21k도 개최)에서 진행하는 행사의 일환이다.
돌산 지맥 종주 대회 코스도
코스도에서 보는 것처럼 돌산을 위에서 아래로, 높이가 있는 산들을 거의 다 훑고 내려오는 코스이다. 산들은 대략 200m~400m로 그리 높지는 않지만(최고봉: 봉황산 460m), 워낙 여러번 오르락 내리락을 해야 해서 쉴 틈을 주지 않는다. 상승고도도 총 2046m, 거리가 31km로 짧은 걸 고려하면 경사도 제법 있는 편. 지리산 화대종주 코스를 딱 3/4 정도로 줄여놓은 코스이다.
근데, 거리가 짧다고 이 코스를 조금 우습게 봤다....;;;
대회 당일
대회 전날인 금요일, 저녁 늦게 근무를 마치고 부랴부랴 목포에서 광주로, 광주에서 여수로 가는 버스를 탔는데, 여수집에 도착하고 보니 자정이 훌쩍 넘었다. 목포에서 대충 트레일런 배낭을 꾸려와서 특별히 챙길건 없었지만, 대회 당일 입을 옷을 결정을 못했다. 일기 예보를 확인해보니 토요일 오전을 기점으로 급격히 추워진단다. 다행히 여수는 다른 지역에 비해 따뜻한 편이라 예상 기온 -3도~1도. 문제는 바람이 5~8 m/s라 체감기온이 영하 5도까지 떨어진다. 체질상 더운 것보단 추운 걸 잘 버티는 편인데, 그래도 혹시 몰라 긴바지에 상의도 옷을 두툼한 것으로 골랐다. 이번 대회는 기록보다 겨우내 쌓아둔 살을 빼는게 목적이니(ㅋㅋ) 움직임은 좀 둔해지더라도 땀은 잘 나겠지...ㅎㅎ 결과적으로 탁월한 선택이였다.
대회 당일 일기예보. 겨울철 여수 바닷바람은 특히 매섭다.
대회 출발은 오전 7시. 31k 부분 제한 시간은 오후 3시 30분으로 8시간 30분내에 종주해야 한다.
1회 대회라 예전 기록들이 없어,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등산 종주 기록만 나온다. 대부분 15시간 내외.
순환 코스가 아닌 종주 코스이다 보니 골인점인 향일암에서 여수 시내까지는 각자 알아서 나와야 한다. 아버지께서 향일암으로 마중나오시겠다고 도착 예정 시간을 물어 보신다.
"빠르면 오후 12시 30분, 늦어도 1시까진 들어오겠습니다."
제주도 100k 트레일런 초반 35k 지점까지, 한라산 정상을 넘어왔음에도 정확히 6시간 걸렸으니, 고도가 조금 높다고 해도 30키로 정도면 6시간내(평균 5km/h) 끝낼 자신이 충분히 있었다. 단 하나, 심한 알바를 할 수도 있는 경우의 수를 전혀 고려치 않았다. 첫번째 실수.
새벽 5시에 일어나 준비해 온 떡을 몇 개 집어먹고, 물을 챙기는데 또 고민을 한다.
이번 대회는 거리가 짧은 만큼, 그리고 소규모 대회라 대회중 모든 보급을 알아서 해야 한다. 즉 대회 중 먹고 마실 것들은 각자 짊어지고 달려야 한다. 돌산 종주 기록들을 찾아보니 12k 지점 대미산 정상에 약수터가 하나 있고, 27k 지점에 매점이 하나 있단다. 더욱이 날씨가 추우니 땀이 덜 흘릴거고 혹 모자라면 약수터나 매점에서 보급하자. 그럼 물은 500ml 두 병이면 충분해! 두번째 오판이였다.
앞주머니 물통 두 병에 물을 가득 채우고 (한쪽은 High5 2:1+제로정) 에너지바, 파워젤, 아미노 바이탈을 각각 하나씩 담고, 혹시 몰라 먹다 남은 떡을 챙겨 넣었다. 먹는 것보다 체온이 떨어질 것을 대비해, 갈아입을 두꺼운 상하의를 챙겼더니 가방이 엄청 빵빵하다. 혹시 나중에 UTMB를 나가게 된다면 더 많은 장비를 실어야 할텐데, 이 배낭으로는 부족할 듯 싶다. 오르막이 많다 하여 스틱도 접어 배낭 앞에 매달았더니, 부모님께서 보시고 무슨 그런 마라톤 복장이 있냐고 하신다. ㅋㅋ
6시 10분경, 대회 출발 장소인 돌산 대교 밑 CU 편의점에 도착했는데, 너무 일찍 왔나 보다. ^^;;
진행진으로 보이는 두 분께서 엄청난 강풍 속에서 야외에 테이블 하나를 덩그러니 놓고 현장 접수를 하고 계신다. 접수비 3만원을 내니 따뜻해 보이는 겨울용 버프와 배번, 그리고 에너지젤 하나를 주신다. 그 와중에 큰 보온병에 따뜻한 물을 준비해 오셨는지, 커피 한잔을 건넨다.
여수 밤바다~ 돌산 대교와 보름달 (전날 저녁 라면으로 카보로딩한 누구 얼굴에도 보름달이..ㅋㅋ)
조금씩 날이 밝아오니 사람들이 모여든다. 무려 서울이나 수도권에서 이 먼 돌산까지 오셨으니, 대단한 열정이다.
출발 시간이 다 되어가니 마지막 고민거리가 남는다. 모자를 쓸건지 비니를 쓸건지... 겨울 훈련용으로 몇 해 전 사놓고 막상 쓰려고 하니 너무 모냥이 빠지는(?) 관계로 처박아 놓았던 비니(벙거지?, 정확한 명칭을 모르겠다 ㅎㅎ)를 혹시 몰라 챙겨 왔는데, 영하의 날씨 속 불어오는 광풍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 가오가 좀 많이 떨어지는 문제의 비니를 꺼내 쓰고 출발전 사진 한장을 찍는데, 모습이 여지없이 서울역 앞 지하도 포스가 나온다...ㅋㅋ
딱 라면이랑 쏘주1병 사러 나온 아저씨 폼 (창피하니 다른 데 보는 척 한다..ㅋㅋ)
오전 7시 정각, 출발
막 출발하고 보니 어렴풋이 사물이 분간이 된다. 렌턴은 바로 벗어서 배낭으로.
계단을 올라 돌산 공원 케이블카 탑승장으로, 그리고 제 2 돌산 대교 끝자락의 육교를 지나 산으로 들어가니 벌써부터 몸이 후끈해진다. 여차하면 맨 위 자켓(ㅋㄹㅂㅇ사 제품으로 5만원인가 주고 샀는데 겨울철 트레일런에 완전 딱이다. 가볍고 따뜻하고 무엇보다 습기 배출이 잘 되어서 내부가 뽀송뽀송)을 벗어 배낭에 맬 요량이였다. 이상한 벙거지 모자는 그 강풍에도 머리위에 잘 붙어있고 땀흡수도 잘 되고, 무엇보다 따뜻하다. 역시 겨울철 장비는 뽀대보단 기능. ㅋㅋ
1월 한 달 무지하게 바빠 여수 마라톤 하프 포함해도 연습주를 100km도 못 채웠지만, 이번 대회는 다이어트 주(走)인 관계로 마음이 편하다. ^^ 벌써부터 속도를 내는 주자들은 순식간에 숲속으로 사라져 버렸지만, 오르막은 조금 천천히, 내리막은 조금 빠르게 페이스를 조절한다. 참가 인원이 한 50여명 밖에 안되다보니 금방 앞뒤로 사람들이 보이질 않는다. 아직까지 완전히 어둠이 걷히진 않았지만, 산속 주로가 잘 정비되어 있어 길을 잃을 염려가 없다.
작은 야산을 하나 넘어가는데 좌측으로 보이는 어촌마을의 일출이 더없이 황홀하다.
돌산 지맥의 일출 (주최측 사진)
첫번째 작은 산(145봉) 하나를 넘어 내려오는데, 첫번째 임도와 만난다.
출발전 주최측에서 이번 대회에서 여러번 만나게 될 임도를 주의하라고 했다. 산 하나를 내려오면 다음 산을 오르기 전 임도나 작은 도로들을 건너게 되는데, 이 때 다음 산길 입구를 잘 찾아야 한단다. 대부분의 경우,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얼마간 이동해서 돌산 종주로 표식을 찾아 들어가야 하는데, 이 표지 찾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이번 대회에도 손목 GPS와 휴대폰 등산 어플을 두 개 다 준비했는데, 막상 뛰다가 길이 좌우로 나뉘게 되면 무조건 앞 사람이 가는 방향으로 가게 된다. 근데 그 사람도 길을 잘못 들었거나, 놓치게 되면 바로 "알바천국" 시작.
첫 번째 임도에서도 사람들이 우왕좌왕하는데, 한 젊은 친구가 왼쪽 오르막으로 뛰길래 따라 뛰었더니 군부대 입구 도착. 총 맞을 뻔 했다. ㅋㅋ 다시 왔던 길로 한참을 내려가니 도로 가드레일 사이로 숲속으로 난 길이 보인다. 돌산 종주로라는 조그만 표식과 함께. 그 길을 따라 쭉 내려가다 다시 포장도로가 나오는데, 언제가 달려본 길이다. 2년전인가, 여수 대회때 코스가 갑자기 바꿔서 하프 반환점에서 지옥의 오르막을 경험한 적이 있었는데, 바로 그 곳이다. 이번엔 더욱이 마라톤 대회도 아니니 "조신하게" 걸어서 야산 하나를 넘었는데... 웬 펜션 건축 현장이 길을 딱 막고 있다. GPS를 보니 대충 12시 방향이라 공사장을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가는데, 열심히 일하고 계시던 분들께 괜히 죄송하다.^^;;
굴 양식으로 유명한 굴전 마을을 지나, 드디어 본격적으로 산행이 시작되는 소미산 입구로 들어간다.
아직 시작도 안했는데 두 번이나 길을 잃어 살짝 맨붕이였지만, 몸은 이제 적당히 풀렸는지 호흡이 편안하다. 200m 소미산 넘어오니 이번 대회 12k 코스 골인지점인 무슬목이 나온다. 랩을 찍어보니 9분 50초 페이스가 나온다. 시속 6키로가 넘어가니 목표보다 훨씬 잘 달리고 있다. 400m 대미산은 소미산과 이름도 비슷한 것이 주로도 비슷하다. 지그재그 길이 아닌, 정상으로 쭉 뻗은 등산로라 경사가 제법 있는데, 나무 계단으로 잘 정비해놔서 빠른 걸음으로 올랐다. 대미산 정상 약수터에서 물을 보충할까 했는데, 웬걸... 꽁꽁 얼어있어 패스. 내려오는 길은 적당한 경사도에 계단 간격이 내 보폭과 딱이라 정말 신나게 달렸다. 신나도 정말 너무 신나게... 엉뚱한 길로 내려왔다!!!
그리고 임도를 하나 건너서... 바로 앞에 보이는 밭길로 내달렸다... 그 밭길을 따라 쭈~욱 산으로 들어가... 길을 잃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가시밭길 숲속에서 길은 끊기고 어플은 먹통이고, 손목 GPS 화살표는 내 바로 앞, 길이 없는 어두컴컴한 숲속을 가리키고 있다. 정말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 아놔....
그나마 믿을 만한 손목 GPS가 가리키는 숲속 방향으로 들어가 본다.
곳곳에 가시덤불들이 팔, 다리와 배낭을 긁어대는데, 긴팔 긴바지라 다행이다. 한 50여미터 들어갔나, 갑자기 저 앞에서 파란 형광색 뭔가가 휙 지나간다. 아, 주자다! 서둘러 올라가 보니 조그만 오솔길이 나오고 저 밑으로 파란 자켓을 입은 주자가 열심히 뛰어가는데, 그 뒷모습이 어찌나 반갑던지....^^;; 다시 그 길을 따라 달려간다.
원래 코스(좌)와 내가 지나온 길(우), 대미산 정상에서부터 내려오는 길을 잘못 잡은듯 ..ㅋㅋ
세꼬시로 유명한 계동 고개를 가로질러, 본산 입구를 찾아 오른다.
거리상으로 딱 절반인 15km 지점을 지났지만, 이번 코스중 가장 높은 산들 대여섯개가 후반부에 속해 있기 때문에 지금부터가 본 게임이다. 물통의 물이 반 이상 줄어든 것이 걱정이 되긴 했지만, 전망좋은 본산과 영화같은 대나무숲이 정상에 자리잡고 있는 수죽산까지 별 어려움없이 올라 능선을 따라 봉화산 정상으로 향한다.
본산 정상에서. 섬 종주인데 신기하게 바다 배경으로 사진 찍을 수 있는 곳이 드물다.
하도 알바를 빈번하게 하다보니, 분명 내가 추월했던 사람들인데 또 내 앞에서 만난다. ^^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이번 종주길이 뛰기에 더없이 좋다. 제주도 돌길에 비하면 정말 비단길. 어딜 밟아도 푹신푹신한 흙길에 내리막 경사도 적당해서 소위 말하는 "쏘기"에 좋다. 봉화산 정상에서부터 여러 명 추월하며 신나게 쐈더니 제법 넓은 시멘트 포장길이 나온다.
포장길은 왼쪽과 오른쪽으로, 그리고 바로 정면에 보이는 산으로도 급경사의 오르막길이 나있다. 방향을 잡기 위해 GPS를 보는 순간, 정면의 급경사길 정상부분에 두 사람이 꺽어들어가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바로 따라가는데, 경사가 너무 급해 걷는 것도 힘들다. 산 중간쯤 올랐을라나, 손목 GPS가 계속 "경로 이탈"을 알려 핸드폰을 꺼내 확인하는데, 아차! 경로에서 한참 벗어나 있다. 아까 그 두 분들은 일반 등산객이였나 보다. ^^;; 다시 내려와 오른쪽 포장길을 따라 한참을 가는데, 분명 호주머니에 넣어두었던 장갑 한 짝이 없다. 아까 산 중턱에서 핸드폰 꺼낼때 떨어뜨렸나 보다... 별로 비싼 장갑은 아니지만 영하 칼바람에 맨손으로 갈 일이 막막해.... 그 경사길을 다시 올라갔다.ㅠㅜ
결국은 장갑은 찾았지만, 이미 몸과 마음은 너덜너덜... 양쪽 허벅지에 쥐가 제대로 내려 걸을 수가 없다. 그 와중에 스틱을 접어 넣는 과정에서 마디를 연결하는 고리가 끊어져 오른쪽 스틱 하나가 완전히 망가져 버렸다. 두번째 멘붕...;;;
부서진 스틱을 부여잡고, 쩔뚝거리며, 포장길을 한참을 따라가니 마침내 이번 대회 가장 높은 산인 봉황산으로 향하는 표지판이 나온다.
왼쪽이 본 코스, 오른쪽이 알바. 봉화산 정상에서 7시 방향으로 내려와야 했는데, 난 11시 방향으로...ㅠㅜ
봉화산 내려오는 길. 운좋게 주최측 사진사를 만났다.
스틱은 부러지고, 허벅지는 뻑뻑하고....
봉황산 전, 갈미봉을 스틱 하나에 의지해 오르는데, 갑자기 어지럽고 다리에 힘이 풀린다.
그러고 보니, 출발 이후 제대로 된 보급을 하지 않았다. 시간이 계속 늘어지니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급한데로 배낭에 넣어 두었던 에너지바 하나를 꺼내 무는데, 딱딱하게 얼어서 얼음 조각을 씹는 기분이다. 갈미봉 오르는 길은 경사도 급한데다 쭉쭉 미끄러지는 흙길이라 두 배로 힘들다. 앞으로 10km는 족히 남았는데 시간은 어느덧 아버지와 약속한 12시 30분이 다 되어간다. 당신의 급한 성격을 감안했을때 벌써 향일암에 도착에 기다리고 계시리라... 아니나 다를까 늦을 것 같다고 전화를 드렸더니 벌써 향일암이라신다.
"그쪽으로 데리러 갈까?"
".... 아니요, 향일암에서 뵙겠습니다."
기록이 의미가 없어지고 전화 한 통이면 데리러 올 차가 근방에 있으니, 포기할까 하는 유혹이 계속 된다. 하지만 30km 완주도 못한다면, 올 상반기 계획하고 있는 대회들의 완주는 거의 불가능하다. 가다가 쉬다가를 반복하며 마침내 봉황산 정상에 도착했다. 출발한 지 6시간 10분이 지났다.
봉황산 정상. 자작나무숲같은 멋진 산길이 있다.
봉황산을 오르면서, 물이 다 떨어져 버렸다.
만나는 사람마다 물동냥을 했는데, 고맙게도 몇 모금 안 남은 물병들을 선선히 건네주신다. 어떤 분은 조그만 바나나 하나를 동료와 반으로 나누더니, 또 그 반의 반을 뚝 떼서 건네는데 눈물 날 뻔 했다. ㅠㅜ 봉황산에서 매점이 있는 울림치까지는 계속 내리막인줄 알았더니 몇 번의 작은 오르막이 있어 얼마남지 않은 힘마다 쭉 빼놓는다. 산 속에 뜬금없는 커다란 흰 색 풍력 발전기가 눈에 들어오면 울림치가 근방이다. 그리곤 세상에서 젤 맛난 계도 막걸리와 돌산 갓김치를 맛볼수 있는 울림치 휴게소에 도착했다. 27km 지점.
도착하자 마자, 매점 냉장고에서 이온 음료 한병을 꺼내 원샷. 카~~ ^^
이왕 늦은 거 막걸리 한 잔이 간절했지만, 몇 시간째 기다리고 계실 아버지를 생각해 물만 한 병 보충하고 마지막 고지인 금오산을 오른다. 이 때부터 서울에서 온 2명의 젊은 친구들이랑 같이 동행하는데, 이 친구들 트레일런 메니아들이다. 화대 종주 뿐만 아니라, 제주도, 동두천 등 많은 대회를 다녀왔단다. 그 중 동두천에서 진행되는 KOREA 50k가 가장 힘들었다고... 오늘 돌산지맥 코스의 고도 와 거리를 딱 2배하면 비슷할거라고 한다. 한 번도 빡센데... 두 배라니...^^;; 2018 KOREA 50K 대회는 4월 21일에 열린다. 코스도 힘들지만, 무엇보다 각 지점별 제한 시간이 타이트하게 잡혀 있어 Cut-Off를 안 당할려면 페이스 조절을 잘 해야 한다. 59k를 신청해 놓은 상태라.... 준비를 많이 해야 겠다.
이런저런 얘기하다보니 금방 금오산 정상이다.
날이 추워 자켓을 끝까지 안벗었나보다...
금오산에서 향일암 전망대까지는 전망이 끝내준다.
새파란 하늘를 품고 있는 다도해와 오후 햇살에 반짝이는 남해 물결. 새벽부터 지금껏 쌓인 피로를 한꺼번에 씻어준다.
알싸한 바닷 바람 한 모금 크게 들어마시고 결승점인 향일암으로 내려간다. 7시간 44분 55초. 골인.
결과는 만족스럽지 못했지만, 과정은 충분히 즐거웠다.
또 하나의 경험과 추억을 담았다.
2018 여수 돌산지맥 종주.
금오산 정상에서 바라본 남해.
첫댓글 이런~~ 괴물 총무님 지옥의 문턱을 드나 실때는 저도 경험 좀 하게 델고 다니시면 안되실까요.?ㅎㅎ
네, 하드코어 좋아하시면 언제든지 같이 가시죠~ ^^
물론 오차가 있긴 하겠지만...
31k 대회인데, 거의 34k를 뛰었네요....^^;;
상승고도도 원래는 2000m라는데, 난 2880m...^^;;
평생할 알바를 여기서 다한 것 같습니다. ㅎㅎ
갈수록 울트라에 빠져들고 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