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 라합의 믿음
여호수아 6 : 22 -27(2:1-21; 마1:5; 히11:31)
마태복음 1장에는 예수님의 족보가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의 족보에 다섯 명의 여자의 이름이 올려져있습니다. ‘다말’(3)과 ‘라합’(5)과 ‘룻’(5)과 ‘우리아의 아내(밧세바)’(6), 그리고 ‘마리아’(16)입니다. 이 가운데 라합은 여리고 사람이고 룻은 모압 사람으로 이방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택함 받은 선민사상이 투철하여 이방인과는 상종도 하지 않을 뿐 아니라 결혼도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조상들 가운데 이방 여인의 이름이 올려졌다는 것은 특이한 사항이 아닐 수 없습니다.
특별히 라합은 히브리서 11장에 믿음의 사람들 중에 한 사람으로 소개되어 있습니다.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하지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하지 아니하였도다”(히:11:31)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라합은 ‘기생’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여호수아서 2장이나 6장에도 라합을 ‘기생’이라고 여러 번 말씀하고 있습니다. ‘기생’이란 사회적으로 별로 자랑스러운 것이라 할 수 없습니다. 많은 학자들이 라합을 미화하기 위해서 ‘여관 주인’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성경에는 ‘기생’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기생’은 부도덕한 여인으로 접대부 또는 창기(창녀)라 할 수 있습니다.
옛날 우리나라에서도 ‘기생’이라 하면 지방 유지들을 접대하는 접대부로 이해를 합니다. 높은 손님이 오면 기생집에 모시고 술 대접을 해 주며 즐겁게 해주었습니다. 그래서 ‘기생’이라 하면 별로 좋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좀 비약해서 말하면 성매매 업을 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족보에 범죄자 같은 이름은 족보에서 빼버립니다. 혹 자랑스럽지 못한 사람도 돈을 들여서 자신의 부도덕한 것은 지우고 이름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상민이 돈을 들여서라도 양반 계열에 올리기도 했습니다.
역시 라합은 기생으로 여리고 왕을 비롯하여 접대부로서 수종들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부도덕한 여인이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이름이 올려졌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에서 무엇을 깨닫게 됩니까? 이와 같은 기생이나 창녀도 믿음으로 구원을 받을 수가 있고 또한 위대한 가문에 조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의 조상들을 소개하면서 ‘기생 라합’의 믿음을 소개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기생 라합의 믿음이 어떠했는가를 알아보아야 합니다.
여호수아가 요단강을 건너기 전에 싯딤에 진을 치고 두 사람에게 여리고 땅을 엿보고 오라고 보냈습니다. 두 정탐꾼은 요단강을 건너 여리고에 들어갔습니다. 당시 여리고 사람들은 성을 철저히 지키고 있었습니다. 해가 뜨면 성문을 열고 들어가고 나가는 사람을 철저히 살피고 해가 지면 성문을 닫아 아무도 왕래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두 정탐꾼은 여리고 성에 들어가 기생 라합의 집에 유숙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리고 사람들에게 이미 발각되어 왕에게 고발을 했습니다. 즉시 왕은 기생 라합에게 사람을 보내어 ‘네 집에 들어간 그 사람을 끌어내라’고 했습니다. 그때 라합은 “과연 그 사람들이 내게 왔었으나 그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나는 알지 못하였고 그 사람들이 어두워 성문을 닫을 때 쯤 되어 나갔으니 어디로 갔는지 내가알지 못하나 급히 따라가라 그리하면 그들을 따라잡으리라”(4,5)고 말했습니다.
라합은 두 정탐꾼이 왔을 때 이미 이스라엘 사람들인 줄 알고 지붕에다 숨겨주었습니다. 그리고 왕이 보낸 사람들에게는 그 사람들이 왔으나 나갔으니 급히 따라가면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리고 성읍 전체가 비상이 걸렸습니다. 그런데 정탐꾼들의 정체가 탄로나고 말았습니다. 정탐꾼들이 라합의 집에 들어간 것을 분명히 사람들이 보았습니다. 그래서 왕이 그 사람을 끌어내라고 했습니다.
이때 라합이 정탐꾼들을 숨겼다고 말만 하면, 아니 눈만 껌벅해도 정탐꾼들은 꼼짝 없이 잡힙니다. 그러면 라합은 왕으로부터 상당한 보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라합은 왕이 보낸 사람들에게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이것은 인간적인 면에서 보면 라합은 대적을 도와주었고 성을 멸망하게 하는 역적이 됩니다.
라합은 ‘그 사람들이 내게 왔으나 ... 나는 알지 못하였고 그 사람들이 어두워 성문을 닫을 때쯤 되어 나갔으니 ... 급히 따라가면 따라 잡을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분명히 거짓말입니다. 거짓말이 탄로 나면 라합 자신은 물로 그의 부모형제까지 다 죽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라합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라합이 왕의 명을 거역하기까지 하며 거짓말을 하게 된 것은 하나님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대대로 우상 숭배하고 다신론의 사회에 살고 있던 라합의 입술을 통하여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이 언급되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자기 하나님으로 받아들이고자 하는 강한 욕구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라합은 정탐꾼에게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9)라고 말했습니다. 여호와께서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셨다는 것을 알았더라도 반드시 그 일이 성취될 것이라는 믿음습니다. 반드시 여리고는 이스라엘 에게 망할 것이라는 믿음이 없었더라면 라합은 감히 왕을 배반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이것이 라합의 믿음이였습니다.
그러면서 라합은 정탐꾼들에게 큰 용기를 주는 말을 해 주었습니다. “우리가 너희를 심히 두려워하고 이 땅 주민들이 다 너희 앞에서 간담이 녹나니”(9), “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로 말미암아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11)라고 말했습니다. 이미 여리고 사람들은 두려움과 엄청난 공포에 휩싸여 대적하거나 싸울 마음마져도 상실되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아무리 여리고 왕이 정탐꾼을 수색하고 성문을 지킨다 해도 이미 여리고는 멸망하고 말 것이라는 것을 라합은 알았습니다.
라합은 이스라엘의 하나님 앞에는 당할 자가 없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이것이 라합의 믿음이였습니다. 라합에게 이러한 믿음이 어떻게 생겼습니까? 그것은 10절 말씀에 “이는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너희가 요단 저쪽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과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을 곧 그들을 전멸시킨 일을 우리가 들었음이니라”는 말씀에서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을 듣고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것을 라합만 들은 것이 아닙니다. 여리고에 사는 왕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다 들었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녹고 정신을 잃을 정도가되었습니다. 그러나 라합은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듣고 알았을 때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라합이 어려서부터 하나님을 믿었던 것도 아닙니다. 지금까지 여리고에 사는 사람들이 믿는 이방신과 우상을 섬겨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들었을 때 지금까지 섬기던 신들을 다 버리고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이것은 라합에게 성령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기생 라합의 믿음이 어떤 믿음이였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라합은 여리고 왕도 하나님이 도와주시는 이스라엘을 이길 수 없을 뿐 아니라 튼튼하게 쌓은 여리고성도 이스라엘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백성은 결코 망하지 않고 승리하게 된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믿음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어떤 장애물도, 어떤 어려움도 이길 수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반드시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는 땅에서도 하나님이시니라”는 고백을 했습니다. 이것은 라합의 신앙고백입니다. 하늘과 땅에 동시에 계시는 하나님의 무소부재하신 속성을 고백했습니다. 이방 여인에 불과한 라합이 이처럼 비교적 정확하게 하나님의 능력을 알았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당시 여리고 성 사람들을 비롯해서 가나안에 살고 있는 모든 족속들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 모두는 단순히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의 신으로만 알 뿐이였습니다. 나라마다 대표적인 신이 있었고, 족속들마다 섬기는 신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여호와는 이스라엘 민족의 신이라는 것으로 알 뿐이였습니다. 그러나 라합은 이스라엘 민족의 신이신 하나님이 최고의 신이신 일 뿐 아니라 이방인이요 기생인 자신과 자신의 가족들까지도 구원해 주실 수 있는 분이심을 알았다는 고백을 한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하늘에도 계시고 땅에도 계시는 무소부재하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신중에 참신이시요 최고의 신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무소부재 하시며 전지전능하신 분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라합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알았을 때 생명을 걸고 정탐꾼들을 숨겨주었습니다. 그리고 정탐꾼들에게 자신의 구원을 요청하였습니다. “이제 청하노니 내가 너희를 선대하였은즉 너희도 내 아버지의 집을 선대하도록 여호와로 내게 명세하고 내게 증표를 내라”(12)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라합이 정탐꾼들을 숨기고 왕에게 거짓말을 하게 된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선대하였다’는 말은 정탐꾼들을 안전하게 돌아가도록 최선을 다했다는 말입니다. 무엇 때문에 정탐꾼들을 이렇게 위험을 무릎쓰고 선대하였습니까? 라합은 자신과 부모형제들과 온 가족들을 구원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나의 부모와 나의 남녀 형제와 그들에게 속한 모든 사람을 살려 주어 우리 목숨을 죽음에서 건져내라”(13)고 말했습니다.
라합의 궁극적인 관심은 자신뿐 아니라 온가족과 아버지 집 전체가 구원받는 데 있었습니다. 라합은 구원의 하나님을 알았을 때 자신은 물론, 자신의 가족들까지 모두 구원받도록 하기 위해 생명을 걸고 정탐꾼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었다고 말했습니다. 비록 기생으로 천하게 살았지만 자신과 가족들의 구원을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부모형제의 구원을 위해 지금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돌이켜 보아야 합니다. 어쩌면 기생 라합 앞에 우리의 믿음은 부끄럽지 않습니까? 우리도 라합처럼 부모형제의 구원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기생 라합의 이러한 믿음을 보시고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믿음을 소유한 라합을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은 여호수아의 마음을 움직여 정탐꾼들을 여리고로 보내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정탐꾼을 라합의 집으로 인도하셔서 라합을 만나게 하신 것입니다. 정탐꾼들이 우연히 라합의 집에 들어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것입니다.
이제 정탐꾼들은 라합에게 ‘창문에 붉은 줄을 매고 네 부모와 형제와 네 아버지의 가족을 다 네 집에 모으라’(18)고 했습니다. 그러면 여리고 성이 멸망될 때 구원해 줄 것이라고 약속을 했습니다. 그리고 창문에 붉은 줄을 타고 정탐꾼들은 무사히 돌아갔습니다. 여기에 붉은 줄은 기생 라합의 가족들이 구원받게 되는 보증의 줄이였습니다. 라합은 정탐꾼들이 돌아간 후 약속을 믿고 붉은 줄을 창문에 매고 기다렸습니다(20).
붉은 줄은 곧 그리스도의 보혈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달려 피흘려 죽으신 예수님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보혈을 통해서 구원받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할 때 문설주에 양의 피를 발라둠으로 장자 죽음의 재앙을 면할 수 있었지만 피가 없는 애굽 사람들의 집에는 장자 죽음의 재앙을 당했습니다. 붉은 줄을 달아놓은 라합의 집에 모인 사람들은 구원받게 된다는 약속을 하였습니다. 오늘의 교회에 모인 자들은 구원받게 된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붉은 십자가가 있는 교회에 모인 자들은 구원받게 됩니다. 붉은 십자가가 아닌 다른 것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수아의 명령을 따라 여리고 성을 돌고 소리쳤을 때 그렇게도 견고한 성은 다 무너지고 불타고 사람들은 다 죽었습니다. 그러나 창문에 붉은 줄을 매어 두고 기다리던 라합과 그의 가족들은 모두 살았습니다. 그리고 기생 라합은 다윗의 조상 살몬과 결혼하여 다윗왕족의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기생 라합이 믿음으로 다윗왕가의 조상이 될 뿐 아니라 예수님의 조상의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믿음은 지난 날에 무엇을 하고 어떤 사람이였느냐를 묻지 않습니다. 우상을 섬기고 귀신을 섬겼던 죄까지도 믿음으로 사함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생명책에 이름이 올려집니다. 우리에게도 믿음으로 지난 날에 허물들을 다 덮어 주시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아 주신 것입니다. 이 은혜를 감사하며 여러분의 부모 형제들까지도 구원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