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장면
정진권
짜장면은 좀 침침한 작은 중국집에서 먹어야 맛이 난다.
그 방은 퍽 좁아야 하고, 될 수 있는 대로 깨끗지 못해야 하고, 칸막이에는 콩알만한 구멍들이 몇 개 뚫려 있어야 한다.
식탁은 널판으로 아무렇게나 만든 앉은뱅이어야 하고, 그 위엔 담배 불에 탄 자국들이 검게 또렸하게 무수히 산재해 있어야 정이 간다.
고춧가루 그릇은 약간의 먼지가 끼어 있는 게 좋고, 금이 갔거나 다소 깨져 있으면 더욱 운치가 있다. 그리고 그 안에 담긴 고춧가루는 누렇고 굵고? 억센 것이어야 한다. 식초병에도 때가 끼어 있어야 가벼운 마음으로 손을 댈 수 있다.
방석도 때에 절어 윤이 날듯하고, 손으로 잡으면 단번에 쩍하고 달라붙을 것 같은 것이어야 앉기에 편하다.
짜장면 그릇의 원형이 어떤 것인지에 관해선 알아본 바 없으나, 가장 흔한 것은 희고 납작한 것에 테가 두어 줄 그어져 있는 것인 듯한데, 할 수 있으면 거무스레하고, 거기다 한두 군데 이가 빠져있으면 좋다.
그리고 그 집 주인은 뚱뚱해야 한다. 머리엔 한 번도 기름을 바른 일이 없고, 인심 좋은 얼굴에는 개기름이 번들거리며, 깨끗지 못한 손은 소두방(솥뚜떵)만 하고, 신발은 여름이라도 털신이어야 좋다. 나는 그가 검은색의 중국 옷을 입고, 그 옷은 때에 찌든 것이기를 바라지만 지금은 그런 옷을 찾기 어려우니 낡은 스웨터로 참아두자. 어린 나를 무척 귀여워해 주던 내 고향의 짱궤는 스웨터가 아니었는데…. 하여간 이런 주인에게 돈을 치르고 나오면 언제나 마음이 평안해서 좋다.
내가 어려서 최초로 대면한 중국음식이 짜장면이었고, 내가 제일 처음 본 내 고향의 중국집이 그런 집이었고, 이따금 흑설탕을 한 봉지씩 싸주며 “이거 먹어 해, 헤헤헤” 하던? 그 집 주인이 이런 사람이어서, 나는 짜장면이 중국 음식의 전부로 알았고, 중국집이나 중국 사람은 다 그런 줄로만 알고 컷다.
스무 살 때던가, 서울에 처음 왔을 때도 나는 짜장면을 잘 사 먹었는데 그 그릇이나 맛, 그 방안의 풍경이나 분위기는 말할 것도 없고, 비록 흑설탕은 싸주지 않았으나 그 주인의 모습까지도 내 고향의 짜장면, 그 중국집, 그 짱궤와 다르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변두리만 찾아서였을까?
해서, 내가 처음으로 으리으리한 중국집을 보았을 때, 그리고 엄청난 중국요리 앞에 앉았을 때, 나는 그것들이 온통 가짜처럼 보였고, 겁이 났고, 괜히 왔구나 했다.
서울, 시골 할 것 없이 음식점은 많이도 불어났다. 한식, 중국식, 일본식, 서양식, 또 무슨 식이 더 있는지 모른다. 값이 비싸다는 데도 있고, 보통이라는 데도 있고, 싼듯한 곳도 있다. 비싸다는 곳의 사정은 잘 모르지만 보통이라는 데는 더러 가 보았다. 그러나 얻어먹을 때는 불안하고 내가 낼 때는 갈빗대가 휘어서 그곳의 분위기와 그 음식 맛을 제대로 감상할 수 없음이 큰 흠이다.
그러므로 내가 마음 놓고 갈 수 있는 곳은 그 싼듯한 곳일 수 밖에 없고 그 싼듯한 곳 중에선 위에 말한 그런 주인의 그런 중국집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싸구려 한식은 집에서 늘 먹으니 갈 필요가 없고, 싸구려 왜, 양식은 먹어봤자 국적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국적 있는 왜, 양식을 먹으려면 비싸다는데 내지 최소한 보통이라는 덴 가야할 것이다.)
그러나 내 친애하는 짜장면 장수 여러분들도 자꾸만 집을 수리하고 늘리고 새 시설을 갖추는 모양이어서 마음 편히 갈만한 곳이 줄어들까 걱정이다. 돈을 벌고, 빌딩을 세우고, 나보다 훌륭한 고객을 맞고 싶은 것이야 물론 그분들의 큰 소원이겠지만, 적어도 내가 사는 동네와 내가 다니는 직장 근처에서만은, 좁은 데다 깨끗지 못한 중국집과 내 어린 날의 그 짱궤 같은 뚱뚱한 주인이 오래오래 몇만 남아있어 줬으면 한다.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그러면 나는 어느 일요일 저녁때, 호기 있게 내 아이들을 인솔하고, 우리 동네 그 중국집으로 갈 것이다. 아이들은 입술에다 볼에다 짜장을 바르고 깔깔대며 맛있게 먹을 것이고, 나는 모처럼 유능한 아버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퇴근길에 친구를 만나면, 나는 그의 어깨를 한 팔로 얼싸안고 그 중국집으로 선뜻 들어갈 것이다. 양파 조각에 짜장을 묻혀 들고 “이 사람, 어서 들어”하며, 고랑주 한 병을 맛있게 비운 다음, 좀 굳었지만 함께 짜장면을 나눌 것이다. 내 친구도 세상을 좁게 겁 많게 사는 사람이니, 나를 보고 인정 있는 친구라고 할 것이 아닌가.
정진권 : (1935~2019) ▲충청북도 영동 출생, 영동고등학교,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명지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석사과정) 졸업, 논산농업고등학교, 인천제물포고등학교,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 교사, 문교부(현 교육부) 편수관, 한국체육대학교 교수 역임
첫댓글 처음 짜장면을 사준 사람은 작은언니였는데, 언니네 여학교로 가는 길에 있던 집이었습니다. 작은 하천 옆에 있었지요. 낯익은 수필인데 모처럼 읽으니 더욱 반갑습니다.
동료들과 중국음식점에 가서 주문할 때
상사를 포함하여 모두 "짜장면"하는데 유독 한 사람은 "나는 간짜장"해서 눈총을 받곤 했지요.
한 동료는 꼭 나무젓가락을 두 손에 쥐고 면과 짜장을 비비던 모습도 떠오릅니다.
아주없이 배갈 한 잔 입에 털어 넣고 행복한 표정으로 '카~아~'하던 선배도 보입니다.
어릴 때부터 노년일 때까지 짜장면에 얽힌 추억과 사연이 한동이는 될 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