忠武臺海兵 實務生活 入門記(5)
성냥공장 아가씨노래
사진:우리 대대장님(1973-1975) 이셨던 유창식중령이 사진은 1972년 소령으로 해병대 통신교육대장 시절로 사료됨
* 인천의 [성냥공장 아가씨]노래가 좋아진 이유
그러니까 나는 이 사건으로 지금 불구속 입건이 되어 있는 상태이다.
주간에는 열심히 인사사무실에서의 근무와 저녁에 중대내무생활에 충실하면서
지내노라니 소속되어 있는 중대와 인사에서도 몹시 지휘관들은 관심을 갖고 졸병의
고충을 덜어 주려고 무척 애를 쓰는 모습이 역력하다.
아무리 군대라지만 군법회의를 앞에 두고 손 한번 써보지 못하고 판결을 받을 때
결과는 불 보듯 뻔한 일.
내가 이대로 있을 순 없다해서 갖은 채널을 다 동원하여 어떻게 해 볼 방도를 찾아야겠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를 고민하다가 육통출신 선배들이 밤에 내무실 선임들과 의논하여
충무대(忠武臺)로 올라오란다. 심야에 통신보안대의 감청이 뜸할 때, 집으로든, 어디로든
이 문제를 해결해 줄만 한 곳으로 연락을 취할 수 있는 시외통화를 하게 끔 해 준다는 제의가 들어 왔다.
그 당시 영내(營內)에서 시외전화는 언감생심(焉敢生心)일 정도로 특별한 공용업무 아니면
할 수도 없고 더더욱 우리 같은 졸병들은 상상도 못할 노릇이었으며
한다해도 재수없게 통신보안대의 감청에 걸리게 되면 그것 역시 통신보안법위반이란
죄명으로 영창 가는 것이 너무 자명하기 때문에 나는 그 제의에 포기하기에 이른다.
그러기를 몇 일이 지나노라니 중대장께서 3박4일간의 특박을 허락할 테니 집에 가서
이 문제를 부모님과 의논하여 대외채널을 통하여 잘 해결 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 보라 하시며 위로를 해주시는데
사실은 이런 배려는 현재 내가 불구속 입건중이므로 행동반경이 영내(사단내)로
제한 되어 있는 상태이기에 자짓 상급부서로 부터 문책을 당할 수 있는 어려움을 무릎쓰고 내린
중대장님의 결정였다.
이 말씀을 듣는 순간 사나이로써 또 한번의 눈물을 흘릴 만큼 고마움을 느꼈끼며
"그러면 그렇지. 우리 해병대가 옛날 선배들처럼 대외적으로 어떤 문제가 발생되었을 경우
대처하는 게 타군과는 다르다"라는 얘기를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의리있는 해병대!"
그러나 그 당시 부대분위기는 연말지휘검열 때문에 준비의 손길이 무척 바쁠 때였으므로
이럴 때 가장 졸병에게 망중한(亡中閑)을 허락한다는 것은 그 당시 경황으론 불가능에
가까운 부대사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4일간의 시간을 내어 주셔서
나는 잠시 자유의 몸으로 병영을 빠져 나올 수 있었다.
먼저 고향으로 달려갔지만 막상 부모님께는 걱정 끼쳐 드릴까봐 이렇다할 말씀도
제대로 못 드리고 나름대로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벙어리가 냉가슴 앓는 것처럼 시간을 보내다
귀대할 때는, 친정에 왔다가 시댁으로 돌아갈 때 이바지 음식을 해지고 가는 새 색시처럼
떡을 몇 말 해 가지고 귀대를 하였다.
귀대 후 십몇 날 지나서 여전히 맡은 업무에 충실하며 국방부시계를 돌리고 있던 중
행정문취에서 그 날 발송되는 문서를 받아들고 분류하던 중 법무참모실에서부터
우리부대로 오는 밀봉된 서류가 하나 있는데, 이게 왠지 내가 연루된 사건에 관한
내용이 들어 있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귀대하는 도중 도저히 궁금증을 견디지 못해 사단본부근처에 있는 호수 일월지 주변
숲속에 들어 가 남들이 볼세라 자세를 낮추고 그 서류봉투를 표 안 나게 개봉해 보았더니
아니나 다를까
내가 저질러 놓은 사건에 대한 개요와 법무에서의 결정이 내려지는 서류였다.
이 사건의 정황을 보면 당연히 군법회의에 붙여야
마땅하오나 신병의 군생활 미적응과 무지에서 빗은 우발적 사고로 인정하여 기소유예 하오니,
이하 모든 징계권을 당해 부대장에게 위임하오니 대대장이 알아서 거기에 대한 징계를
15일간 주라는 내용이다.
그런데 내용 가운데 죄명이 나를 더욱 자극하게 했다.
"입건내용: 특수폭행(상관폭행) "
영 이 부분이 날 껄적지근하게 만들었지만
어찌되었든 나의 기분은 날아갈 것 만 같다. "
그러면 그렇지 역시 해병대는 해병대구나. 이런 일을 문제시하는 해병대가 무슨 큰 일을 하랴....?"
그런데 이런 기분도 잠시, 날아갈 것 같은 나의 홀가분 한 기분을 또 다른'걱정'이란 놈이 또 붙들어 매는데
그것은 다름아닌 "대대장께서 자대징계를 어떻게 결정 하시려는지"가 문제였으며
동문(東門) 영창으로 보낸다면 난 죽은 거나 다름없다 생각했다.
이튿 날, 드디어 이 서류가 인사관을 통해 대대장에게 보고되고 결제를 받던 날,
느닷없는 호출을 대대장 전령으로부터 전해듣고 가 보니
이미 대대장실에는 대대장과 우리 중대장 그리고 인사관 세 분이 무거운 분위기를 연출하며
긴장해하는 모습으로 계셨다.
대대장께서는 기가 차셨는지 당돌한 행동을 한 당신의 쫄병으로부터 사건내용을
직접 듣고싶으셨던지 상세하게 진술케 하신다.
한참을 시간할애를 하시면서 나의 무용담(?)을 다 듣고 나신 후 하시는 말씀이
심하게 나무라시기는 하지만
분위기상으로 볼 때. 이미 중대장 및 인사관등 관련참모들을 불러놓고
이 문제를 신중히 논의를 하셨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나는 미리 짐작해 본다며
"중대장이나, 인사관의 입장에선 자기가 직접 데리고 있는 부하인데 설마 입창을 시킬까?"
"아냐, 그들은 그럴려고 하여도 대대장님의 의사는 어떻하실런지...."
잠시후 대대장님이 입을 열으셨다 " 자네가 이런 식으로 저지른 행동은 스스로 책임을
져야해, 알았으니 그만 가 봐!"
무슨 의미인가를 파악하지 못한 나는 대대장실문을 열고 나왔어도 한참동안 멍하니
있을 수밖에 없었다.
드디어 오후과업때 중대장의 호출이 떨어졌다.
대대장과 인사관과의 미팅을 최종적으로 마치고 나에 대한 죄의 댓가를 중대장의 입을 열어
발표할 시간일 것으로 생각하고 몹시 긴장이 된 마음으로 중본에 도착하니
왠지 중대선임하사를 비롯한 중본요원 8명 전원이 집합된 상태로
모두 기립하고있는 상태였다.
"김상은~!"
"예, 해병일병 김상은"
"어떻게 할까, 자대징계 15일을 어떻게 처리할까?"
얼굴표정과 말씀하시는 분위기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이젠 됐다"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누그러진 여유있는 분위기다.
이 문제를 원만하게 하시려고 나를 특박까지 보내셨던 분이 설마 날 영창으로 보내시겠나...
잠깐이었을지라도 길게 느껴졌던 시간이 지나며 이윽고 중대장님의 판결(?)이 떨어진다.
"일병 김상은에게는 명일부터 향후 15일간 자대징계를 명한다.
징계방법은 조석별 과업시 완전무장으로 연병장을 1시간씩 구보한다. 지휘 및 감독은
중대당직사관이 한다. 이상."
"휴~우~~!"
난 쫄아 붙어있던 풍선에 공기가 들어가는 것 처럼 속이 후련해 짐을 느끼면서 동시에
"와아~!"하는 선임들의 함성소리에 나는 또 한번 놀라며
쫄병이 당한 일이 나의 일처럼, 내 아우가 당한 것처럼 생각하며 말없이 여러모로
물밑작업을 해오며 마음으로 도와줬던 선임수병들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지난 일들을 생각해보니
헌병대에서 날 그토록 야단치는 것은 하나의 제스쳐였고
법무에서 말로써 심적 고통을 주었던 것도 역시 나의 바른 군생활을 위한 것이었고
싸늘한 눈빛과 엄하신 말투로 야단해 주셨던 대대장님도 모두 다 이 쫄병의 앞날을 위해
염려하셨던 분들이라 생각하니 그렇게 흐믓하고 기쁠 수 가 앖었다.
그 날, 석별과업을 마치고 중본요원들이 보급창고에 모여 무슨 준비를 하는 것 같았다.
255기 장진우수병의 지휘하에 268기 황수병은 피엑스에 가서 양동이 2개에 막걸리와
마른안주 좀 준비하고 267기 전수병은 도구쪽 초소 피.에스 판(p.s板) 넘어있는 외딴 집에 김치사러 가고
나머지는 대충 순검준비를 하고 난 뒤 모두 모여 이 쫄병을 위한 막걸리파티를 열어줬다.
막걸리가 몇 순배돌면서 당연히 나오는 [해병들의 소리] 곤조가로부터,
"아버님,어머님, 날곱게 길러서 해병대에 보낼려고 이 자식 길렀습니까~"로 시작하는
한탄가, 성냥공장 아가씨등 여러 가지를 불러댔는데,
그런데 얼마 전 시달리며 대가리 박고 부르던 "꿈에 본 내 고향"을 부르던 때가
왜 갑자기 생각이 나던지....
그 노래보담 지금까지도 신나게 부를 수 있는 노래로 "성냥공장아가씨"가 낙점된 것은
그 때가 너무 기분좋은 기억으로 지금까지 남아있기 때문일까.
긴 터널을 빠져 나온 것 같은 느낌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 몰아 쉬었던
그 시절의 도움을 주셨던 분들 지금은 어디에 계실까.....[銀]
사진은 운용중대 본부에 붙은 보급창고로써 여기서 파티를 했다
앉은 분이 255기 장진우수병, 그리고 우측이 268기 황대륙수병,
그리고 가운데가 270기 忠武臺해병 김상은입니다
註: 1.그 당시 대대장님이셨던 유창식 중령님의 사진이 252기 무명초(김을규)선배님
사진속에 계시기에 모셔 왔답니다.
대대장님은 그 후 대령으로 진급하셔서 해병대 통신의 꽃인 통신감을 끝으로
예편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2. 충무대(忠武臺) : 해병제1상륙사단 유선통신 호출부호이며
해1사 통신대대 운용중대 유선소대에서 운용하던 교환대 명칭으로 쓰이기도 하였슴.
주간에는 이십여명되는 군무원(아릿다운 아가씨)들이 근무하고
야간에는 유선소대요원들이 근무를 하였다.
그래서 충무대해병은 그 시절을 추억코자 필명(i.d)을 충무대로 사용한다.
첫댓글 해병270기라면 월남참전은 하셨겠군요. 고생이 많으셨으리라 생각됩니다.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입니다. 후배 해병들 건강 하시고 열심히 사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