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부처님 계실적의 인도 사정상 너무 더워,
혹은 너무 추워 더 이상의 포교나, 설교가 어렵고, 보살행의 성취도가 힘들때
. 안정되고 안락한 곳에 모여서 부처님의 직접적인 설법을 듣거나,
혹은 도반들 끼리 부처님의 가르침을 되새기고,
스스로의 윤회의 원인과 그 결과를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스스로의 윤회를 벗어나지 못하는 원인인 집착과
어리석은 잘못된 판단력으로 빚어지는 잘못된 선택을 하게되어 있는 그 자신의 수준을 향상시키고,
진리적 가르침에 따라 탐욕과 번뇌망상이 일어나는 온갖 현상들이
이어지는 마음이라는 구속의 속박을 버맂 못한 그 자신을 바르게 가다듬고,
스스로 버리고, 비우고, 깨긋하게 맑히는
참선의 근본적인 지향지인 진공묘유의 적멸로 돌아가기 위한 실천적인 더욱 용맹정진
하는 그러한 기간인 100일간의 용맹정진의
참선 정진의 기간이 바로 하안거 입제인것입니다.
오늘날 끓임없는 물질적 발전과
그 풍요속에서도 결코 만족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부족의 현상으로
갈증을 일으키는 괴로움이 끓이지 않는
이 21세기의 현싯점에서 본다면 진정으로 그 자신의 영혼의 순수를 위한
자가형성의 중요한 수단인
이 하안거 입제일에 수많은 스님들께서 제방선방에 입방하는 것이
그 본래의 순수한 실천적 수련을 위한것이 아니라,
자신의 승려계급이 더욱 증진되는 하나의 수단으로 자리잡는
실로 우습지도 않는 현실을 씁스레 하게 받아들이는 오늘날의 현실이지만은
그러나 그 본래의 뜻을 생가하여 본다면 여러분들께서도 진정으로 자신에게 잃어버린
그 순수함을 되찾는 시기가 되어야 할것입니다.
우리들의 영혼은 이 지구가 탄생한 이래 같이하여 오면서,
자신에게 굴레처럼 씌어진 그 몸뚱아리의 현상들마다의 습성과 습관으로
각자가 그때그때 주어진 시간동안 지은 복의 차이 때문에
지금의 차별이 분명한 안타까운 모자람의 부족을 괴로움이라 여기면서도,
그 괴로움을 해소하는 것이
물질적 성공과 야망의 이룸과 욕망으로 이어지는
온갖 유혹과 갈등으로 빚어지는 지극한 이기심으로 말미암은 결과라는 것을 스스로 잘 이해한다면,
그 몸둥아리의 덧없음과 그 몸둥아리때문에 일어나는 탐욕으
쾌락을 추구하는 허망을 잘 알아서,
스스로의 속박과 구속에서 벗어날수 있는 바른 가르침과
그 가르침의 이해를 한 다음 실천하는 것이
바로 우리들에게 주어진 각자의 조건인라는 것을 알아야 할것입니다.
오늘도 그대는 자신의 욕망의 유혹앞에서 한없이 약하여 져 버렸을것입니다.
오늘도 그대는 스스로의 신분상승을 하고 싶은 마음의 욕심때문에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는 안타까움때문에 참으로 괴로운 하루를 보냈을것입니다.
사랑으로 일어나는 집착과 번뇌망상으로 잠시도 편안하지; 않았을것입니다.
집착과 욕망과 욕심으로 잠시도 편안하지 않고,
괴로움의 연속으로 이어지는 고단한 삶의 그 원인은 참아야 할때 참지 못하고,
참지 말아야 할때 참아버리는 모순의 이중성에 억눌린
스스로의 한심한 수준과 그렇게 선택할수밖에 없는 어리석은 비겁함에
스스로 벗어나지 못하는 모순이 있기 ㅡ때문일것입니다.
그런 어눌한 현상은 바른 진리의 가르침을 이해 하지 못하거나,
배우지 못한 관계도 있을것이고,
스스로의 수준이 너무 낮아 그 실천력의 용기가 없는 탓이기도 합니다.
100일동안 잠시라도, 진정하게 스스로에게 행복한것이 무엇인지를 한번 찾아 보십시요..
무엇이 나를 그렇게 괴롭히는지 정도는 스스로 알아 차려야 할것이 아니겠습니까?
수많은 인류의 역사가 증명하듯이
모든 실패한 인간들의 그 군상들을 따라 하지 말아야 할것입니다.
가장 성공한 진실한 실천자이신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 하지는 못할망정,
흉내 정도는 내어야 할것이 아니겠습니까?
왜냐하면 그 흉내라도 따라 하면 언제인가는 여러분들도 반드시 스스로의 참주인공이 될것이니까 말입니다.
제발 생각좀 하시고들 살아 보십시요...
이 하안거 동안만이라도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