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자하선생 훈몽(紫霞先生 訓蒙)
(1) 자하선생의 소개
先生 姓李 名槹 字德和 號紫霞 廣東人 黙然后
선생 성이 명고 자덕화 호자하 광동인 묵연후
生于太白山下九花洞 今年五百四十三歲(壬子王 癸巳年)
생우태백산하구화동 금년오백사십삼세(임자왕 계사년)
與洞賓 恒遊于伽倻 遯人所
여동빈 항유우가야 둔인소
스승의 성은 이(李)씨이시고, 이름은 고(橰)이며, 자는 덕화(德和)이며, 호가 자하(紫霞)이시고, 광동(廣東)사람이다. 묵연(黙然)의 후손으로 태백산 아래 구화동에서 태어나셔서 올해(단기 4226, 고종황제 30 癸巳) 543세이시다. 여동빈(呂洞賓)①과 함께 가야산에서 은거하여 노닐고 계신다.
※ ① 여동빈(呂洞賓)∶798∼? 당(唐)나라 말기의 도사(道士). 당나라 때 8선(八仙) 가운데 한 사람. 성은 여(呂), 이름은 암(嵒), 자는 동빈(洞賓), 호는 순양자(純陽子)이며, 포주(蒲州) 영락현(永樂縣) 사람으로 자칭 회도인(回道人)이라 불렀다. 측천무후 집권시 두 번이나 과거에 실패하고 46세가 되던 해 다시 과거보러 가다가 술집에서 종리권(鍾離權)을 만나 황량(黃粱)의 꿈을 꾸고 선도(仙道)에 입문하였다. 거화산(居華山)에서 40여년간 수도한 뒤에야 비로소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종남산(終南山)에서 수도를 마친 뒤 유해섬(劉海蟾)과 왕중양(王重陽)을 거두어 법(法)을 전하고 무창(武昌) 황학루(黃鶴樓)에 올라 백일승천(白日昇天)하였다고 한다.
전진도(全眞道)에서는 북오조(北五祖)의 하나로 받든다. 저술로는 ꡔ백자비(百字碑)ꡕ ꡔ심원춘(沁園春)ꡕ ꡔ고효가(敲爻歌)ꡕ ꡔ생생신수(生生神數)ꡕ ꡔ황학부(黃鶴賦)ꡕ ꡔ태을금화종지(太乙金華宗旨ꡕ를 짓고 ꡔ도덕경(道德經)ꡕ ꡔ황정내‧외경경(黃庭內外景經)ꡕ ꡔ대동경(大洞經)ꡕ 등을 주(註)를 달았다. 송(宋)나라 때에 묘통진인(妙通眞人) 원(元)나라 때에 순양연정경화부우제군(純陽演政警化孚佑帝君)에 봉해졌고 그의 탄신일인 음력 4월 14일에는 지금도 기념 재초(齋醮)를 행한다. ꡔ여조전서(呂祖全書)ꡕ ꡔ구진상서(九眞上書)ꡕ ꡔ부우상제문집(孚佑上帝文集)ꡕ ꡔ여조진경(呂祖眞經)ꡕ ꡔ동원어록부동원잡영(東園語錄附東園雜詠)ꡕ ꡔ순양비결(純陽秘訣)ꡕ 팔선(八仙)이 지은 ꡔ천선금단심법(天仙金丹心法)ꡕ과 ꡔ고상옥황심인묘경(高上玉皇心印妙經)ꡕ이 있다.
(2) 동이족(東夷族)의 동서양 통일
先生曰 神市天王 造化能力廣大 將爲震兌統一
선생왈 신시천왕 조화능력광대 장위진태통일
自在理數中
자재이수중
선생께서 말씀하기를 “신시(배달국)의 천왕(환웅)의 조화의 능력이 넓고 커서 동양과 서양을 장차 통일할 것이니, 리(理)와 수(數) 가운데 있다.
(3) 신교(神敎)의 근원과 근본으로의 회귀 필요
曰 神敎之爲衆 敎之爲祖 爲母之理 不待呶呶而 略知神道理
왈 신교지위중 교지위조 위모지리 불대노노이 약지신도리
哲之學者 可旣然 流來中葉 人情多私 妄本源而 自主自尊者
철지학자 가기연 유래중엽 인정다사 망본원이 자주자존자
滔滔然 皆是不啻 不究神市敎之本源 如何也.
도도연 개시불시 불구신시교지본원 여하야
선생이 말씀하시기를 “신교(神敎)는 모든 종교의 비조(鼻祖)가 되며 모체가 되는 진리이니 여러 말 하지 않아도 대략 알 것이다. 그러나 신교의 도리란 명확한 것을 배우려는 태도를 가지는 것이며, 마땅히 그러해야 할 것이다. 신시(神市)가 세상에 비롯된 그때부터 그것의 마지막 지점의 중간이 시점이 되면 사람이 본디 가지고 있던 감성이나 개별적 성정의 근본을 망각하고, 스스로 임금이라 칭하여 제 몸을 제가 높이는 일을 거리낌 없이 행하고 있다. 더구나 이처럼 신시가 가르치는 바의 근본을 잊고 연구도 게을리 하고 있으니 어찌할 것인가?”
亦自失其源 頭始派 豈不慨然 悲惜處乎
역자실기원 두시파 기불개연 비석처호
또한 환인(桓因)으로부터 비롯된 그 근본을 망각하고 어찌 격분하여 몹시 격하게 화내고 분하게 여기어 한탄하고 있으니 어찌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 아닌가?
以道敎言之 老子之初生而 自指李(東方木也)
이도교언지 노자지초생이 자지이(동방목야)
李字木子之意 非東方
이자목자지의 비동방
도교(道敎)로 말씀하면 노자(老子)가 처음 태어나서 스스로 성을 오얏(李)이라고 하였는데 (동쪽의 나무이다. ) ‘오얏 이(李)’ 글자가 ‘동방의 아들’이란 뜻이며 동쪽의 지방이 아니다.
而何以釋迦言之其所 耐苦六年而悟道 不過是尊吾
이하이석가언지기소 내고육년이오도 불과시존오
帝釋之無窮 無窮無無窮 神理之覺圓得如如而來
제석지무궁 무궁무무궁 신리지각원득여여이래
如如而歸之 惺惺一靈 同歸神化
여여리귀지 성성일령 동귀신화
석가로 말씀하면 그가 괴롭게 애쓰고 수고를 견디기를 6년 하여 겨우 진리를 깨달은 것은 이래서 이 세상에 ‘내가 가장 높다’하였고 거룩하신 우리 상제님(帝釋=桓因)의 무궁무궁한 신의 이치를 깨달아 모난 데가 없이 둥글둥글하고 복스러워 결점이나 결함이 없음을 여여(如如)히 돌아와 다시 성성(惺惺∶똑똑한 모양)한 하나의 영(靈)이 되어 돌아와 신(神)이 된다.
故 平生所工 只此尊天命 務慈悲而已
고 평생소공 지차존천명 무자비이이
(現世僧之口呼喃無佛不過 佛者費乃是神也而已).
(현세승지구호남무불불과 불자비내시신야이이).
그러므로 세상에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동안 공부하는 것은 다만 이 타고난 수명을 높고 귀하게 하여 중생에게 즐거움을 주어 괴로움을 없애려는 맘이 더 없이 지극함에 힘쓸 뿐이다. <이 세상에 중들은 입으로 부르짖기를 ꡐ남무불(喃無佛)ꡑ을 부르는데 지나지 않으니 부처란 이 신(神)을 없앨 뿐이다>.
後來僧侶 昧此之理 反釋迦之所慕之神市
후래승려 매차지리 반석가지소모지신시
只知釋迦是佛之先至 設偶像而浪禱不修之福 以失大乘
지지석가시불지선지 설우상이낭도불수지복 이실대승
(自小乘至 大乘之理) 旣不悲哉
자소승지 대승지리 기불비재
후세의 승려들은 어두운 이 이치로 석가(釋迦)를 돌이키는 곳에 신시(神市)를 사모할 것이다. 다만 석가가 부처의 처음인 줄로 알아 우상을 아무런 실속없이 빌어 복을 닦지 않으므로써 대승(大乘)①을 잃었으니 ,<소승(小乘)에서부터 대승(大乘)의 이치에 다다름>어찌 슬프지 않는가?
※ ① 대승(大乘)∶소승(小乘)의 자리주의(自利主義)를 비판하여 1∼2세기에 일어난 불교 교법의 하나.
以孔子敎說之 孔子一生所重 順天命敬天道
이공자교설지 공자일생소중 순천명경천도
以尊上帝之意 世之尊孔子者 尤不知神市天王之神敎
이존상제지의 세지존공자자 우부지신시천왕지신교
只主形而下之道器
지주형이하지도기
공자(孔子)①의 가르침으로 말하면 공자가 세상에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동안은 매우 귀중히 한 것은 천명을 따르고 천도를 공경하여 이러므로써 상제(上帝)②의 뜻을 존경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세상에서 공자를 높이는 사람들은 더욱 신시천왕(神市天王)의 신교(神敎)를 알지 못하고 다만 형체를 주장하니 도기(道器)③가 아랫 등급이다.
※ ① 공자(孔子)∶서기전 551∼서기전 479. 이름은 구(丘) 자는 중니(仲尼). 중국 춘추시대 노나라 창평향(지금 산동성 곡부) 사람이다. 3세에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의 교도(敎導)를 받으며 자랐는데 어려서부터 예(禮)를 학습하기를 좋아하였다. 17세에 어머니를 잃고 혼자 생계를 꾸리면서도 부지런히 학문과 예를 익혔다. 20대에 널리 묻고 배웠으며 [노자(老子)에게 예를 물었다는 설도 있다] 30대에는 이미 그의 주요 사상이 형성되었고 제자를 받아들이기 시작하였다. 50대 초반까지 노나라의 벼슬을 하다가 실망스러운 일이 생겨서 노나라를 떠나 14년간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게 된다. 68세에 계강자(季康子)의 힘을 입어 노나라에 돌아 왔으나 노나라에서 끝내 그의 정치 사상을 써주지 않았으므로 다시는 벼슬할 생각이 없어지고 오로지 고적 문헌을 정리하고 제자를 모아 가르쳐서 나라를 다스릴 현재(賢才)들을 길러냈다. 73세의 나이로 서거하였다. 그의 사상의 핵심은 인(仁)이고 그 것을 표현시킨 것이 예(禮)이다.
그는 제자들에게 ꡔ시(詩)ꡕ ꡔ서(書)ꡕ ꡔ예(禮)ꡕ ꡔ악(樂)ꡕ ꡔ역(易)ꡕ ꡔ춘추(春秋)ꡕ를 교재로 하여 예(禮) 악(樂) 사(射) 어(御) 서(書) 수(數)를 가르쳤다. 그는 시(詩)를 정리하여 간추리고 서(書)를 정리 편찬하면서 해설하고 예(禮)와 악(樂)도 정리하였으며 말년에는 역(易)을 정리하면서 이른바 「십익(十翼)」을 보태었고 ꡔ춘추(春秋)ꡕ를 지었다. 그의 학문과 사상과 가르침은 이른바 유학으로 정립되어서 오늘날까지 중국 뿐만 아니라 주변 국가의 전통문화를 이루고 있다. 그의 언행(言行)을 제자들이 적어 놓은 ꡔ논어ꡕ는 우리의 최대 고전의 하나이다.
※ ② 상제(上帝)∶하느님. 옥청원시천존(玉淸元始天尊). 환인(桓因).
※ ③ 도기(道器)∶형이상의 본체인 이(理)와 형이하의 현상인 기(氣). 곧 이기(理氣). 불도를 닦는 데 인내하는 기량(器量).
說心說性 以作眞理 竟歸不知本之境 何不蕙歎處乎
설심설성 이작진리 경귀부지본지경 하불혜탄처호
(按儒字之形論之則 需於人之義)
안유자지형론지즉 수어인지의
맘을 말하고 성품을 설명하여 이것으로써 진리라고 하며 마침내 근본을 알지 못하는 데로 돌아가니 어찌 탄식할 노릇이 아닌가? <생각컨대 ‘선비 유(儒)’ 글자의 모양을 논하면 ‘사람을 기다린다(人+需)의 뜻이다.>
以耶蘇談焉 耶蘇不過是受 上帝之命 降于猶大亡國之際
이야소담언 야소불과시수 상제지명 강우유대망국지제
(是亦 震東支派 地方內) 以說明上帝之道
(시역 진동지파 지방내) 이설명상제지도
自東俎西而鼓動平等之說 以警一世 亦不過是上帝
자동조서이고동평등지설 이경일세 역불과시상제
(桓因十人一日一環圍一大也)之一命者而已
(환인십인일일일환위일대야)지일명자이이
其後信徒反以耶蘇 妄稱上帝 亦可戒其失道理也
기후신도반이야소 망칭상제 역가계기실도리야
尤有痛歎矣 外此各各浮浪輩之忘本 而無倫喧豗之說 何足道
우유통탄의 외차각각부랑배지망본 이무윤훤회지설 하족도
예수[耶蘇]①로 말씀하면, 예수 역시 상제의 명을 받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유대왕국이 망할 즈음에 태어나서① <이것 또한 진(震)나라 동쪽에서 갈라 나온 파(派)>상제(上帝)의 도(道)를 설명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동쪽에서 시작하여 서쪽으로 가서 평등의 설을 부추겨서 용기가 생기게 하여 한 세상을 경계하였으니, 이것이 상제(上帝)② <환인(桓因)은 신인(神人)의 하나로 하루에 한 번씩 돌으니 가장 큰 하나이다> 의 한 가지 명(命)을 받은 자에 지나지 않을 따름이다. 그 뒤 믿는 무리들이 역으로써 예수를 망녕되게 하느님(上帝)이라고 일컫는데 또한 그 도리를 잃은 것을 가히 경계한다. 더욱 몹시 탄식함이 있다. 이 밖에 제각기 부랑자의 무리이니 근본을 잃고 윤리가 없이 시끄럽고 떠들썩한 설이니 어찌 도(道)에 족(足)하랴?
※ ① 예수(jesus)∶[4?B.C.~A.D.30]기독교(그리스도)의 개조(開祖). [그리스도의 어원(語源)은 성유(聖油)를 머리에 부음받은 자]로, 곧 구세주(救世主)․왕(王)이란 뜻. 유대왕 헤롯 시대에 목수 요셉의 약혼녀 마리아에 성령(聖靈)으로 잉태되어, 북팔레스티나 베들레헴에서 출생.나사렛에서 살다가 30세 때 요단강에서 세례자 요한으로부터 세례(洗禮)를 받고, 40일간 광야(廣野)에서 기도(祈禱) 후 하늘 나라의 내림(來臨)과 유대 민족의 회개(悔改), 사해(四海) 동포주의, 정의․사랑의 생활에 의한 하느님의 은총(恩寵)을 절규(絶叫)하고 많은 이적(異蹟)을 행하였음. 공생애(公生涯)의 3년만에 바리새 교인들과 충돌하여 유다의 배반으로 십자가에못박혀 죽음. 3일 만에 부활(復活)하여, 40일간 제자들과 있다가 승천(昇天)하였다 함. 자신의 죽음이 만인(萬人)을 위한 속죄(贖罪)의 희생임을 자각(自覺)했고 그의 제자들은 예수의 부활을 확신하고 이를 구주(救主)로 섬겼으며,이로부터 기독교가 생겼음. 야소(耶蘇). 기독(基督). 상주(賞主).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그리스도․메시아. 예수와 석가와 공자를 3대성인의 한사람.
※ 유대왕국이 망할 즈음에 태어나서∶이것 역시 진(震)인 동이족(東夷族)의 지파(支派)의 지방 안에 있음.
※ 상제(上帝)∶환인(桓因). 옥청원시천존(玉淸元始天尊). 하느님. 『정역(正易)』의 십십일일지공(十十一一之空), 불교(佛敎)에서 진공묘유(眞空妙有)임. 무극(無極).
(4) 신교(神敎)가 넓고 큼
曰 道之行於世 不過是 老之遁數延命 迦之抱元含神
왈 도지행어세 불과시 노지둔수연명 가지포원함신
儒之陳紀明倫而已 皆不能違於神敎 涵泓廣大
유지진기명륜이이 개불능위어신교 함홍광대
말씀하시기를
“도가 세상 행해짐은 이것은 노자①의 수를 감추어 겨우 목숨을 이으며 살아 나감(遁數延命)과 석가②의 원신(元神)③을 껴안고 머금음(抱元含神)과 유교의 벼리를 펼치고 윤리를 밝히는 것(陳紀明倫)에 지나지 않을 뿐(따름)이다. 물 깊음에 잠기는 것과 같이 넓고 큰 신교를 모두 어길 수가 없다.”
※ 遁∶달아날 둔. 涵∶젖을 함. 泓∶물깊을 홍.
※ ① 노자(老子)∶춘추시대 사상가로서 도가학파의 창시인이며, 성은 리(李), 명은 이(耳), 자는 백양(伯陽), 시호는 담(聃). 초(楚)나라 고현(苦縣) 곡인리사람. 주(周) 장실(藏室)의 사관(史官)으로 있다가 사직한 뒤 함곡관(函谷關) 관령(關令)인 윤희(尹喜)의 요청한바 있어 ꡔ도덕경(道德經)ꡕ 오천마디 말씀을 남기고 떠난 뒤 자취와 흔적을 알 길이 없다. 상(商) 무정(武丁) 원년(丁巳, 기원전 1265) 음력 3월 15일 탄생. 삼청(三淸)의 하나인 태청궁(太淸宮)의 주인이신 태청도덕천존(太淸道德天尊)이시며 태상노군(太上老君)이시다.
※ ② 석가(釋迦)∶불교의 교조(敎祖) 존칭하여 세존(世尊) 또는 석존(釋尊)이라 하며 불(佛) 여래(如來) 등의 10가지 별호가 있고 「석가」라는 말은 종족의 이름이며 「능인(能仁)」이라 번역한다. 중부 인도 히말라야 산기슭에 있는 가비라성의 성주 정반왕의 왕자로 아명(兒名)은 싯다르타이며 어머니는 마하마야 왕비이다. B.C.623년 룸비니 동산 무우수 아래서 탄생. 29세에 생사해탈(生死解脫)의 법을 구하여 출가. 35세에 정각(正覺)을 얻어 부처가 되었다. 갠지스강 가의 녹야원(鹿野苑)에서 4체(諦∶苦集滅道)‧12인연[十二因緣∶중생의 과거‧현재‧미래의 삼세(三世)에 걸친 생사‧윤회의 인과관계를 12가지로 나누어 설명한 것. 곧 무명(无明)‧행(行)‧식(識)‧명색(名色)‧육입(六入)‧촉(觸)‧수(受)‧애(愛)‧취(取)‧유(有)‧생(生)‧노사(老死)]‧8정도[正道∶불교를 수행하는 데 있어서의 여덟 가지 성도(聖道). 곧 정견(正見) 정어(正語) 정업(正業) 정명(正命) 정념(正念) 정정(正定) 정사유(正思惟) 정정진(正精進)]등의 법을 가르치고 이후 45년간 인도 각지에 법을 선포. B.C.544년 2월 15일 80세로 구시나라(拘尸那羅)의 사라 쌍수 숲속에서 열반(涅槃)하였다.
※ ③ 원신(元神)∶무상무념(無想無念)하여 허(虛)의 극(極)에 이르러 고요함이 돈독히 지킬 때 홀연히 느끼고 깨닫는 진의로서 이 뜻(意)이 하늘과 땅과 만물을 낳고 만들지 않는 것이 없고 변화시키지 않는 바가 없으며 만겁(萬劫)에도 부서지지 않는다. 이 신(神)이 맘에 있어 억지로 이름 짓는 까닭으로 「성(性)」이라 하며 그 것이 흩어지면 기(氣)를 이루고 그 것이 모이면 불[火]을 이룬다. 한 번 오르고 한 번 내려오고 오고감이 순환하여 둘러 흐름이 쉬지 않으며 때와 함께 운행하고 때와 더불어 극(極)과 같이 한다.
(5) 모든 것은 충효(忠孝)가 근본이다
先生曰 生而守忠孝 死亦爲忠孝神 今世俗 平日不修道德
선생왈 생이수충효 사역위충효신 금세속 평일불수도덕
而死以欲爲靈神 空禱山川 且至於禱 人作之石人
이사이욕위영신 공도산천 차지어도 인작지석인
土木之偶 稱佛有靈 亦可怪也
토목지우 칭불유령 역가괴야
※ 禱∶빌 도..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살아서 충성과 효도를 지키면 죽어서 또한 충효의 신(神)이 된다. 요즘 세상에 흔히 있는 풍속은 평상시에 도덕을 닦지도 않으면서 죽어서는 영신(靈神)이 되기를 바라며 헛되이 산과 내에 빌고 또 비는 데 까지 이른다. 사람이 돌사람[石人]을 만들고 흙과 나무로 만든 상(像)을 일컬어 ‘부처’라 하고 영(靈)이 있다 하니 또한 가히 괴이하다.”
(6) 속이지도 말고 속지도 말아라. (수도자의 근본태도)
曰 近日所謂修道者 往往欲取人財物
왈 근일소위수도자 왕왕욕취인재물
曰 禱佛則 換禍轉福之談 鼓動一世
왈 도불즉 환화전복지담 고동일세
愚夫愚婦 不知理說之誤 欺人者之罪 難逃天誅
우부우부 부지이설지오 기인자지죄 난도천주
被欺者 亦不無其責
피기자 역불무기책
말씀하시되 “요즈음 이른바 도(道)를 닦는 사람이 이따금 다른 사람의 재물을 취하기 위해 ‘부처에게 기도하면 화가 복으로 바뀐다’ 하는 잘못 이끌음이 한 세상을 부추겨서 용기가 생기게 하고 있다. 어리석은 남자와 어리석은 여자는 이를 알지 못하니 사람을 속인 사람도 하늘이 죄인을 죽이는 죄를 면하기 어려울 것이요. 속임수를 당하는 사람도 또한 그 책임이 없는 게 아니니라.”
(7) 마귀가 하늘의 이치를 혼란시킴, 신성(神聖)한 도(道)가 서기 2015년에 회복
先生曰 從今以後 世路尤險 千私萬魔 以亂天理矣
선생왈 종금이후 세로우험 천사만마 이난천리의
汝輩愼之 神聖之道 必復於七丁兩丙 三回之年 五歸之月
여배신지 신성지도 필복어칠정양병 삼회지년 오귀지월
선생(자하진인)이 말씀하시되 “이제부터 이 다음은 세상길이 더욱 험해 온갖 사사로움과 마귀가 하늘의 이치를 어지럽히리니 너희들은 삼가하라. 신성(神聖)의 도는 반드시 단기 4348(서기 2015년) 5월에 회복될 것이다.”
(8) 삼일신고(三一神誥)를 외우라
先生曰 靈神誥五節 神君所誦 (不可一日休)
선생왈 영신고오절 신군소송 (불가일일휴)
※ 誥∶깨우쳐 고할 고..
선생(자하진인)이 말씀하시기를 “신령스런 신고(神誥∶삼일신고)의 다섯 대목을 신군(神君)께서 외우는 바이다(하루라도 쉬면 옳지 않다.)”
(9) 우리나라의 중흥
先生曰 今世之人 只知佛是佛 而不解神市之眞市
선생왈 금세지인 지지불시불 이불해신시지진시
眞理將明於天下 長男運更壯而 小女從之理
진리장명어천하 장남운갱장이 소녀종지리
自然的後世必有垣姓 妄欲崇佛 同歸麗鑑
자연적후세필유원성 망욕숭불 동귀려감
※ 垣∶낮은 담 원, 별이름 원.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현재 살고 있는 세상의 사람들은 다만 부처만 아는 것이 불교이며 신시(神市)의 진시(眞市)를 헤아리지 않으나 진리(眞理)가 장차 온누리에 밝혀지리라. 동방 한국(震∶長男)의 운이 다시 왕성하게 되며 서방 미국(兌∶少女)이 이를 순종(順從)하게 되는 이치이며 자연적으로 다가오는 세상에는 반드시 원(垣) 성씨도 있게 되고 망녕되이 부처를 높이고 함께 고려(高麗)를 거울삼아 돌아가려 할 것이다.”
(10) 하늘에서 선택된 민족
先生曰 萬川有源 衆木始本 通萬古大理 故惟我桓祖(雄)
선생왈 만천유원 중목시본 통만고대리 고유아환조 웅
主震男之理 以木德王 是謂天受命爲皇 皇氏也
주진남지리 이목덕왕 시위천수명위황 황씨야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모든 내(川)는 근원인 샘이 있고 모든 나무는 시작한 뿌리가 있으니 영구히 큰 원리를 통함이다. 그러므로 오직 우리 환조(환웅)께서 진장남(震長男)의 주인이 되는 이치이며 목덕(木德)으로써 왕(王)이 되니 이는 ‘하늘의 명을 받아서 천황이 되었다’고 말하니 천황씨(天皇氏)이니라.”
※ 진장남(
)은 복희씨의 선천팔괘도에선 동북이 되고, 문왕후천팔괘도에선 정동이 되고, 김일부선생님의 정역팔괘도에서는 서북이 되며, 일양(一陽)이 이음(二陰)을 뚫고 나가는 상이다. 자연에 있어서는 우뢰를 나타내고, 인간에 있어서는 맏아들을 나타낸다. 신체에 있어서는 발을 나타내고, 동물에 있어서는 용을 나타내고, 성질에 있어서는 움직임을 나타내고, 오행에 있어서는 양목(陽木)을 나타낸다.
(11) 사람의 영(靈)은 모든 이치를 통함
曰 太陽之明 到中照四方 人物之靈 亘壯通萬理
왈 태양지명 도중조사방 인물지령 긍장통만리
故人生百年普通 而五十知天命
고인생백년보통 이오십지천명
말씀하시되 “태양의 밝음은 가운데 이르러 온누리를 비추고 사람의 신령함은 장년(壯年)에 이르러 모든 이치를 통한다. 그러므로 인생은 백년이 보통이며 50세에 천명(天命)을 안다.”
※ 亘∶베풀 선.
※ 천명(天命)∶하늘의 명령. 운명. 천수(天數). 타고난 수명. 천수(天壽).
(12) 도(道)를 닦음은 맘을 바르게 함에 있다.
曰 人之修道不在他 只做底一個正字心 神必靈 神必佑
왈 인지수도불재타 지주저일개정자심 신필영 신필우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도를 닦는 것은 다른 데 있지 않고 다만 한 개의 맘(心)을 바르게 짓는 것이다. 신(神)은 반드시 영(靈)이며 신(神)이 반드시 돕는다.”
※ 做∶지을 주.
(13) 헌원황제께서도 신교의 도(道)를 닦음
先生曰 昔黃帝 受西岬王母 大丹珠以後 得陰符三皇玉訣
선생왈 석황제 수서갑왕모 대단주이후 득음부삼황옥결
修而通神敎之道
수이통신교지도
※ 岬∶산허리 갑.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옛날에 황제(黃帝)①가 서갑왕모(西岬王母)②로부터 대단주(大丹珠)를 받은 이후에 ꡔ음부삼황옥결(陰符三皇玉訣)ꡕ③을 얻어 신교(神敎)의 도(道)를 닦아 통하였느니라.”
※ ① 황제(黃帝)∶기원전 2692∼2592년의 인물. 중국 선사시대의 제왕. 소전씨(少典氏)의 아들로 본성(本姓)은 공손(公孫)이며 희수(姬水)에 살았던 까닭으로 또한 희(姬)씨로 성을 고쳤고 태어나기를 헌원(軒轅)의 언덕에서 태어났으므로 인하여 이름이 헌원이며 54제(帝)의 한 사람. 헌원국(軒轅國)에 곰이 있으므로 인하여 유웅씨(有熊氏)라 한다. 15세에 왕위를 계승하여 훌륭한 치적을 쌓았고 염제(炎帝)의 뒤를 이어 천하를 통일하였으며 창힐(蒼詰)에게 명하여 처음으로 육서(六書)를 만들었고 치우(蚩尤)와의 탁록(琢鹿)에서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진법(陣法)을 제정했으며 율려(律呂)를 정하고 의복(衣服)‧주거(舟車)‧가옥(家屋)‧화폐(貨幣)‧궁시(弓矢)를 처음 만들었다고 전하고 신하이자 명의(名醫)인 기백(岐伯)과의 문답을 통해서 ꡔ황제소문(黃帝素問)ꡕ을 지었고 약초를 시용(試用)하여 의술을 창시한 일 등 인류에게 문화생활을 가져다 준 최초의 제왕으로 숭앙되었다. 뒤에 토덕(土德)이 있어서 왕을 했다고 해서 누룰 황(黃)자를 넣어서 황제(黃帝)라고 부른다.
명산을 돌아다니며 무광자(務光子) 용성공(容成公) 광성자(廣成子) 등 신선을 찾아서 신선되는 길을 묻고 왕옥산(王屋山)에서 구정신단(九鼎神丹)을 불렀다. 그것이 성공하자 왕위를 버리고 청구산(靑丘山)으로 들어가서 자부선생(紫府先生)을 뵙고 ꡔ삼황내문(三皇內文)ꡕ을 받고 또 청성산(靑城山)에서는 중황장인(中黃丈人)으로부터 ‘신선진일지법(神仙眞一之法)’을 비밀리에 전수받고 다시 운태산(雲台山)에 올라 영선생(寧先生)을 뵙고 ꡔ용교선경(龍蹻仙經)ꡕ을 받는다. 드디어 수산(首山)의 구리를 캐어 가지고 형산(荊山)에서 보정(寶鼎)을 완성하니 하늘에서 용이 내려오므로 타고 올라가 신선으로 되어 다섯 천제(天帝)의 하나로서 중앙에 자리하고 사방을 주관한다. 한대(漢代) 이후 신선술(神仙術)과 도교의 개조(開祖)로서 숭배된다. 양(梁)나라 도홍경(陶弘景)이 쓴 ꡔ진령위업도(眞靈位業圖)ꡕ에서 신선들의 자리를 매겼는데 원포진인헌원황제(元圃眞人軒轅黃帝)는 제3신 계열의 왼쪽에 자리하고 있다. ꡔ도장(道藏)ꡕ에 ꡔ음부경삼황옥결(陰符經三皇玉訣)ꡕ과 ꡔ황제구정신단경(黃帝九鼎神丹經ꡕ이 실려 있다.
※ ② 서갑왕모(西岬王母)∶서왕모로 일컬으며, 성은 회(糸灰), 구 휘(諱)는 회(回), 자는 완령(婉姈) 또는 태허(太虛). 별호는 금모(金母) 금모원군(金母元君) 요지금모(瑤池金母) 귀대금모(龜臺金母)라 한다. 신주(神州)에서 태어났다. 동왕부(東王父)가 남자 신선의 최고의 자리에 있는 것과 상대적으로 서왕모는 여자의 선도(仙道)를 얻은 우두머리인 것이다. 득도를 하거나 신선이 된 여인들은 모두 서왕모의 지배하에 들어가게 된다. 곤륜산(崑崙山)의 채마전과 랑풍(閬風)의 동산과 금으로 된 성과 옥으로 된 다락인 경화(瓊華)의 대궐 안에 푸른 빛이 나는 집에 살며 왼쪽에는 요지(瑤池)라는 못이 있고 오른쪽에는 취수(翠水)라는 개울이 흐른다. 또 산 아래에는 약수라는 강이 흐르는데 그 강물은 아홉겹으로 겹쳐 있고 물결이 만 길이나 되기 때문에 날개가 달린 수레라도 타고 간다면 모르지만 그렇지 않고는 도저히 갈 수가 없다. 그 옛날(B.C.967) 주(周)나라 목왕(穆王)은 여덟마리의 말이 끄는 수레를 타고 서쪽을 순행(巡行)하다가 친히 서왕모를 만났고 왕을 위하여 요지가에서 잔치를 베풀었다. 한(漢)나라 원봉(元封) 원년(元年 B.C.110) 7월 7일 많은 시종들을 거느리고 무제(武帝)를 방문하여 반도(蟠桃) 7개를 진상하며 2개를 스스로 먹고 무제가 씨를 남기려 기다리니 서왕모가 이르기를 “이 복숭아는 세간에서 갖는 물건이 아니며 3천년에 한 번 열리는 열매이다.”라고 하였다.
※ ③ 음부경삼황옥결(陰符經三皇玉訣)∶책 이름. 원명(原名)은 ꡔ원시천존혼원삼황옥결음부경(元始天尊混元三皇玉訣陰符經)ꡕ으로 3권이며 ≪도장(道藏)≫ 통진부(洞眞部) 옥결류(玉訣類)에 실려 있다. 천문전서(天文篆書)로 3백여자 상권은 천황(天皇) 중권은 지황(地皇) 하권은 인황(人皇)으로 3권으로 나뉘어 살펴보건대 상권은 신선포일지도(神仙抱一之道)이고 중권은 부국안민지법(富國安民之法)이며 하권은 강병전승지술(强兵戰勝之術)을 설명 서문은 헌원황제(軒轅黃帝)가 짓고 황제께서 묻고 공동산의 광성자(廣成子)와 아미산의 천진황인(天眞皇人)이 대답하여 문답식으로 실려 있다. ≪황제음부경(黃帝陰符經)≫의 원본이다. 태공망(太公望)을 비롯하여 52인 의 주(註)가 세상에 전한다.
(14) 본원(本源)인 배달국(倍達國)의 법을 망각
先生曰 近日所謂西來市法云者 始於王母之從
선생왈 근일소위서래시법운자 시어왕모지종
神祖而來尊神市 敎時衆愚不曉此 而但尙其末之佛
신조이래존신시 교시중우불효차 이단상기말지불
忘尊其本源市理
망존기본원시리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요즈음 이른바 서쪽에서 온 천시(天市)의 법(法)[인도에서 온 불교]이라 하는 것은 서갑왕모(西山甲王母)께서 신조(神祖∶환웅천왕)①를 따른데서 비롯되어서 신시(神市)를 높여 왔다. 요즘 어리석고 어두운 모든 사람들은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다만 마지막에 온 부처만 높여 그 본원(本源)인 천시(天市)의 이치를 높이는 것(귀중하게 여기는 것)을 잊었다.”
※ ① 신조(神祖)∶한인(桓仁) 또는 환인(桓因) 안파견(安巴堅). 그때에 도읍지를 북해(北海 바이칼 호수)의 동편에 정하시니 그 국토의 넓이는 남북이 5만리요 동서가 2만여리에 이르며 나라 이름을 한국(桓國)이라 하였고 7세(七世)를 전하니 나라 다스린 햇수는 3,301년간 이었다. 2세(世)는 혁서(赫胥) 3세는 고시리(古是利) 4세는 주우양(朱于襄) 5세는 석제임(釋提壬) 6세는 구을리(邱乙利) 7세는 지위리(智爲利) 또는 단인(檀仁).
(15) 신시 교리는 비는 것이 아니며 백성을 구제함
先生曰 惟我神市敎理 不救禍福於虛虛寂滅之中
선생왈 유아신시교리 불구화복어허허적멸지중
以眞理導之 極救生民 輔翊世運 體上帝好生之心
이진리도지 극구생민 보익세운 체상제호생지심
闡列祖同源之旨 扶樹道法於無窮 斯可以上玉淸朝金闕
천열조동원지지 부수도법어무궁 사가이상옥청조금궐
而無愧之眞人
이무괴지진인
선생께서 가로되 “오직 우리 신시(神市) 가르침의 이치는 끝없이 넓음으로 사라져 없어지는 가운데 재앙과 자멸[福]을 구하지 않으며 진리로써 인도하여 백성을 구제하는데 다하며 세상이 돌아가는 운수를 도와서 좋은 데로 인도하며 상제(上帝)의 어진 맘이 있어서 죽이고 상하게 함을 싫어하는 맘과 몸이 되고 역대(歷代) 임금은 같은 근원(根源)에서 나온 것을 밝혔다. 도법(道法)①이 끝없이 영원히 계속되게끔 도와서 세우고 이런 까닭에 위로 옥청(玉淸)② 금궐(金闕)③에 조회(朝會)④에 들고 부끄러움이 없는 진인(眞人)이다.”
※ 輔∶도울 보.. 翊∶도울 익. 闡∶밝힐 천.
※ ① 도법(道法)∶도가의 모든 법으로 경법(經法) 참법(懺法) 방술(方術) 재초(齋醮) 부주(符呪) 금주(禁呪) 승교(乘嶠) 변화(變化) 은둔(隱遁) 구사(驅邪) 겁온(劫瘟) 섭마(攝魔) 항요(降妖) 소겁(消劫) 양재(禳災) 등을 일컫는다.
※ ② 옥청(玉淸)∶삼청(三淸)의 하나이며 옥청성경(玉淸聖境)이다. 원시천존(元始天尊)께서 다스린다. 삼청(三淸)은 옥청(玉淸) 상청(上淸) 태청(太淸)이며 또는 삼천(三天)이라고도 한다. 성인(聖人)의 옥청(玉淸)에 오르고 진인(眞人)은 상청(上淸)에 오르며 선인(仙人)은 태청(太淸)에 오른다.
※ ③ 금궐(金闕)∶도교에서 천제(天帝)가 계신 곳.
※ ④ 조회(朝會)∶아침에 윗사람에게 문안드리고 정사를 아뢰기 위한 모임.
※ ⑤ 진인(眞人)∶참됨을 닦아 도(道)를 얻은 사람이며 무릇 하늘(태청경<太淸境>)에 올라 신선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모두 다 진인(眞人)이라 일컫는다.
(16) 근원(根源)을 잊음
先生曰 顯世之稱道者 不講道之本源 亥豕眞 贋混淆
선생왈 현세지칭도자 불강도지본원 해시진 안혼효
後之學者 或强爲附合 或互起戈矛 有志者湥可惜
후지학자 혹강위부합 혹호기과모 유지자돌가석
※ 豕∶돼지 시. 贋∶바르지 못할 안. 淆∶어지러울 효. 湥∶흐를 돌.
스승께서 말씀하시기를 “세상에 나타나서 도(道)하는 사람이라고 일컫는 이들은 도(道)의 본원을 연구하지 않았으니 해(亥)와 시(豕)를 참과 거짓을 혼돈하여 어지럽다. 뒤에 배우는 사람은 간혹 억지로 끌어다 붙이고 혹은 서로 창을 들고 일어나니 뜻이 있는 사람이 이에 흐르니 가히 안타깝다.”
(17) 천명(天命)을 공경과 신시(神市)의 공경
先生曰 後必有乾坤不蔽 日月貞明 闡示源流
선생왈 후필유건곤불폐 일월정명 천시원유
發蒙警聵之日矣 小子 敬守天命 崇此神市
발몽경외지일의 소자 경수천명 숭차신시
※ 聵∶배내귀머거리 외.
스승께서 말씀하시기를 “뒤에는 반드시 하늘과 땅이 가려짐없이 해와 달처럼 환히 밝아지리니, 사물이 일어나는 근원을 밝혀 어리석음을 찾아내 배내귀머거리를 경계하는 날이리라. 소자(小子)①가 천명(天命)②을공경하여 지키며 이 신시(神市)를 공경할 것이니라.”
※ ① 소자(小子)∶스승이 제자를 부르는 말.
※ ② 천명(天命)∶하늘의 명령. 운명. 천수(天數).
(18) 고요히 도(道)를 닦고 때[時]를 기다려라.
先生曰 從玆幾年之後 世路多端 天下主動 萬豗相爭
선생왈 종자기년지후 세로다단 천하주동 만회상쟁
人皆滔滔 自欺欺人 天之光明失矣
인개도도 자기기인 천지광명실의
汝輩主靜以俟 七丁兩丙之後
여배주정이사 칠정양병지후
※ 豗∶맞부딪칠 회. 滔∶물 창일할 도. 俟∶기다릴 사.
스승께서 말씀하시기를 “앞으로 몇년 뒤에는 여러 갈래로 나뉘어 온누리가 온갖 시끄러움을 주동하여 서로 싸우며 사람들이 모두 시대의 조류(潮流)에 따라가니 스스로를 속이고 사람(남)을 속이니 하늘이 밝은 빛을 잃었다. 너희 무리들은 고요함을 주로하여 단기 4348년 뒤를 기다리라.
(19) 신(神)의 기틀을 잡음.
先生曰 世雖有升天之才 入地之能 若一失神機
선생왈 세수유승천지재 입지지능 약일실신기
自取滅亡 如沈水入火
자취멸망 여침수입화
스승께서 말씀하시기를 “세상에 비록 하늘에 오르는 재주와 땅속에 들어가는 능력이 있어도 만약 신(神)의 기틀(機)① 하나를 잃으면 스스로 멸망을 취함이며 물에 빠지고 불에 들어가는 것과 같다.”
※ ① 신기(神機)∶신묘하여 헤아릴 수 없는 기틀을 뜻한다.
(20) 구월산은 단군의 유적지
先生曰 九月山 貝葉寺 達摩菴 阿沙峰 乃神祖西巡而
선생왈 구월산 패엽사 달마암 아사봉 내신조서순이
升天時遺跡之地 不可不敬而尊之
승천시유적지지 불가불경이존지
스승께서 말씀하시되 “구월산① 패엽사② 달마암③ 아사봉④은 곧 우리 신조(神祖)⑤께서 서쪽을 다니시고, 하늘에 오르실 때의 유적지이니 공경하여 받들 곳이다.”
※ ① 구월산(九月山)∶황해도 은률‧신천 사이에 있는 산. 높이 954m. 단군이 도읍한 아사달(阿斯達)의 위치가 구월산이라는 설은 「고려사」 「응제시주(應製詩註)」 「세종실록」을 비롯하여 그후의 사서와 지지(地志)가 모두 이에 따르고 있으나(하얼삔 백두산 장단경이 아사달임) 단정하기는 어렵다. 구월산의 이름은 본시 궁홀산(弓忽山)에서 궐산(闕山)으로 변하였고 이것이 아화(雅化)하여 현재의 이름으로 된 것이라 한다. 하여간 예로부터 환인‧환웅‧단군을 모시는 삼성사(三聖祠)가 이곳에 있으며 이밖에 단군대(檀君臺)‧어천석(御天石)‧사왕봉(思王峰) 등 단군의 신적(神蹟)이 전한다. 산 주위에 거석문화(巨石文化)의 유물이 많고 고대 중국과의 교통의 요충지로서 한반도 최고(最古)의 역사광장이었을 것은 의심할 바 없다.
고려 이래로 불교의 연총(淵叢)이 되어 사원(寺院)의 수가 대단하였다고 하나 현재 패엽사(貝葉寺)‧월정사(月精寺)만이 전해지고 예부터 산성이 있으며 6. 25 때는 반공(反共)의용군의 격전지가 되었다.
※ ② 패엽사(貝葉寺)∶황해도 신천군 용진면. 구월산에 있는 절. 일명 한산사(寒山寺). 신라 중기 창건. 법심선사(法深禪師)가 세웠다고 하는데 당(唐)나라 중인 패엽대사(貝葉大師)가 지었다고도 전한다. 선교 양종(禪敎兩宗)의 본산으로 이 절에는 한산전(寒山殿)‧삼성전(三聖殿)‧단군의 유적 등이 있다.
※ ③ 달마암(達摩菴)∶패엽사에 딸린 암자.
※ ④ 아사봉(阿沙峰)∶고조선 때 단군왕검이 평양성에서 다시 서울을 옮겼다는 전설의 지명. 아사달(阿斯達)에서 유래. 단기 3805<서기 1472> (조선 성종 3)년에 삼성사(三聖祠)를 세우고 환인‧환웅‧단군의 세 분을 모셨다. 그러나 한반도 일제강점기에 폐쇄해 버렸다.
※ ⑤ 신조(神祖)∶신시(神市)시대의 제1세(世) 환웅(桓雄) 또는 거발환(居發桓)으로 재위 94년 (기원전 3898∼3804)이었다.
(21) 환웅과 단군의 탄신일이 한국의 성탄절
曰 天王誕辰 四月十三日 成后誕辰 二月十日
왈 천왕탄신 사월십삼일 성후탄신 이월십일
神祖誕辰 十月三日 西岬誕辰 七月十八日
신조탄신 시월삼일 서갑탄신 칠월십팔일
王母授黃帝大丹珠日 三月八日
왕모수황제대단주일 삼월팔일
말씀하시기를 “환웅천왕 탄신일은 4월 13일, 천왕의 성후 탄신일은 2월 10일이며, 단군왕검 탄신일은 10월 3일, 서갑왕모 탄신일은 7월 18일, 서갑왕모께서 헌원황제님께 큰 붉은 구슬을 전한 날은 3월 8일이다.”
(22) 삼일신고의 도훈과 도원을 공부하라.
先生曰 道訓道源 箕聖升天時 命大世 而敎衆生之眞理書
선생왈 도훈도원 기성승천시 명대세 이교중생지진리서
不可不敬讀
불가불경독
※ 箕∶별이름 기.
스승께서 말씀하시기를 “삼일신고(三一神誥) 가운데 도훈(道訓)과 도원(道源)편은 기자(箕子) 성인께서 하늘에 오를 때 대세(大世)에게 명하여 중생에게 진리를 가르치던 책이니 공경하여 읽지 않을 수가 없다.”
※ ① 훈전(訓典)∶교훈이 되는 선왕(先王)‧성현의 전적(典籍).
※ ② 기자(箕子)∶중국 고대 사람. 은(殷)의 주왕(紂王)의 작은아버지. 은(殷)이 멸망된 뒤 기자조선을 세웠다.
(23) 천부경과 삼일신고를 쉬지않고 공부하라
先生曰 大皇祖 天符經 三寶誥 (精氣神) 靈神 煉神
선생왈 대황조 천부경 삼보고 (정기신) 영신 연신
修養者之大頭腦 不可一日休
수양자지대두뇌 불가일일휴
※ 誥∶깨우쳐 고할 고. 煉∶쇠불릴 련. 腦∶머릿골 뇌.
스승께서 말씀하시되 “대황조(大皇祖)이신 환웅께서 천부경과 삼보고(三寶誥∶三一神誥)는 정(精)‧기(氣)‧신(神) 영신(靈神)이라 신을 단련함이니 수양하는 사람은 큰 두뇌가 되니 하루라도 쉬면은 아니 된다.”
(24) 공경하며 게을르지 말라
先生曰 吾言止此 嗚呼小子 敬而勿怠.
선생왈 오언지차 오호소자 경이물태.
스승께서 말씀하시기를 “나의 말씀은 이에 그치니 아아! 소자(小子)야! 공경함을 게을르지 말지니라.”
(25) 큰 도(道)를 공손히 닦으라
先生曰 人生百年 有如隙駒 使泯泯以終 毫無裨於人物
선생왈 인생백년 유여극구 사민민이종 호무비어인물
謂之虛生浪死 仁人惜之 汝輩 恭修大道 永作千萬劫
위지허생랑사 인인석지 여배 공수대도 영작천만겁
不死之身
불사지신
스승께서 이르기를 “사람이 이 세상에 살아 있는 동안인 백년이란 세월은 빨리 흘러가고 인생이 덧없음이 있는 것과 같이 꺼지고 다하게끔 하여 끝마치니 인물을 돕는 것이 전혀 없어 일컫기를 ‘헛되이 태어나서 떠돌아다니다가 객지에서 쓸쓸히 죽으니 어진 사람이 보면 애석하다. ꡓ너희 무리들은 큰 도를 공손히 닦아 천만겁을 영구히 죽지 않는 몸이 되라.”
※ 구극(駒隙)∶흰 망아지가 틈을 지나감으로 비유해서 세월은 빨리 흘러가고 인생(人生)은 덧없음을 뜻함. ꡔ사기(史記)ꡕ 「유후세가(留侯世家)」에 인생일세간(人生一世間) 여백구과극(如白駒過隙)에서 유래된 말.
(26) 천지개벽 할 때의 형상이란?
或問於先生曰 天地開闢之初 其狀何似
혹문어선생왈 천지개벽지초 기상하사
어떤 사람이 스승님께 묻기를 ‘하늘과 땅이 열리는 시초의 그 형상이 어떤 것과 같습니까?’ 하니
(27) 천지 개벽의 형상
曰 未易形容 古人之指 近似也 因指菴 前盆沼 令滿貯
왈 미역형용 고인지지 근사야 인지암 전분소 영만저
帶沙水一盆 投以瓦礫數小塊 雜穀豆升許 令人攪水混濁
대사수일분 투이와력수소괴 잡곡두승허 영인교수혼탁
曰 此是混沌未分之狀 待三日後 再來看 開闢至日 而濁
왈 차시혼돈미분지상 대삼일후 재래간 개벽지일 이탁
者淸矣 輕淸上浮 曰 是天開於子 沈底渾泥 此是地闢於丑
자청의 경청상부 왈 시천개어자 침저혼니 차시지벽어축
中間瓦礫出露 此是山陵 是時穀豆芽生 月餘而水中小蟲
중간와력출로 차시산능 시시곡두아생 월여이수중소충
浮沈奔逐 此是人與萬物生於寅 徹底是水包乎 地之象也
부침분축 차시인여만물생어인 철저시수포호 지지상야
地從上下 故 山上銳 而下廣象 量穀堆也
지종상하 고 산상예 이하광상 양곡퇴야
氣化日 繁華日 廣侈日 消耗萬物 毁而生機微 天地雖不毁
기화일 번화일 광치일 소모만물 훼이생기미 천지수불훼
至亥而又混沌之世矣 此時 只在諸明哲之惺惺而已
지해이우혼돈지세의 차시 지재제명철지성성이이
故 自然謂之天 不得不然謂之天 陽亢必旱 久旱必陰
고 자연위지천 부득불연위지천 양항필한 구한필음
久陰必雨 久雨必晴 此之謂自然 君尊臣卑 父坐子立
구음필우 구우필청 차지위자연 군존신비 부좌자립
夫唱婦隨 兄友弟恭 此之謂當然 小役大 弱役强 貧役富
부창부수 형우제공 차지위당연 소역대 약역강 빈역부
賤役貴 此之謂不得不然 心就是天 欺心便是欺天
천역귀 차지위불득불연 심취시천 기심편시기천
事心便是事天 更不須向蒼蒼 上面討吾人 渾是一天故
사심편시사천 경불수향창창 상면토오인 혼시일천고
日用起居 食息念念 時時事事 便當以天自處 濁氣醇淸
일용기거 식식염염 시시사사 편당이천자처 탁기순청
精自一矣 精一則神自靈矣 乃三寶理言之當然 彌六合
정자일의 정일즉신자영의 내삼보이언지당연 미육합
皆動氣之所爲也 精氣一粒 伏在久地之下 以胎之
개동기지소위야 정기일립 복재구지지하 이태지
故動者靜之死鄕 靜者動之生門 無靜不生 無動不死
고동자정지사향 정자동지생문 무정불생 무동불사
靜者常施 動者不還 發大造之全 氣者動也
정자상시 동자불환 발대조지전 기자동야
耗大造之生氣者 亦動也 聖人主靜以涵元理 成乎神
모대조지생기자 역동야 성인주정이함원리 성호신
道家主靜以留元氣 抵於妙 釋氏主靜 歸乎寂 總是尊一
도가주정이유원기 저어묘 석씨주정 귀호적 총시존일
神市天王 昭昭明明之位也 小子銘於心
신시천왕 소소명명지위야 소자명어심
勿若崔生姜生韓生輩之不透眞路 逕落貳岐 嗟嗟小子
물약최생강생한생배지불투진로 경락이기 차차소자
吾言非耄
오언비모
말씀하시기를 “형용하기가 쉽지 않으며 옛 사람의 가리킴은 아주 비슷하다.” 암자를 가르킴으로 인하여 물동이처럼 작은 못 앞에 이르러 물을 모아 가득차게 하고 모래와 물 한 동이를 채우고 기와와 자갈을 작은 흙덩어리를 두 세개 던져넣고, 온갖 곡식과 콩을 한 되 정도 넣고 사람으로 하여금 물을 손을 놀려서 섞이어 탁하게 되니 말씀하시기를 “이것이 혼돈하여 아직 맑음과 흐림이 아직 나뉘지 않은 형상이다” 하셨고 3일 뒤 다시 와서 보니 개벽을 볼 수 있다. 하루가 지나면 흐린 것이 맑음이 되어 맑은 것은 위로 뜨니, 말씀하기를 “이것이 우주가 시작될 때에 하늘이 맨 처음으로 지지수자(地支數字)인 자(子)字의 운을 받아 열렸다.”고 하셨다.
아래로 잠기어 흐린 진흙을<가리키어 말씀하시기를>“땅은 하늘이 열린 뒤에 지지(地支)의 숫자 중 둘째 자(字)인 축(丑)字의 운을 받아 열렸다.”고 하셨다.
중간에 기와의 깨진 조각이 드러나 보이니 “이것이 산과 언덕이다.” 이 때에 온갖 곡식과 콩과 팥이 싹이 나오고 한 달 남짓 되니 물 속에 작은 벌레가 물 위에 떠오름과 물 속에 잠기며 분주하게 달아나는 모양이었다. “이것이 사람과 만물이 하늘과 땅이 열린 뒤에 지지(地支) 숫자 가운데 셋째 인(寅)字에 운을 받아 생기였다.”
속 깊이 밑바닥까지 꿰뚫어 통하니 이것은 물을 싸안은 땅의 상이다. 땅은 위와 아래를 따르는 까닭으로 산이 위는 뾰족하고 아래는 넓으며 이것은 온갖 곡식이 수두룩하게 쌓이는 것을 헤아린 상이다. 기화일(氣化日)① 번화일(繁華日)② 광치일(廣侈日)③이 온갖 사물을 사용했기 때문에 없어진다. 헐면 생기며 기틀이 희미하여 하늘과 땅이 비록 무너지지 않으나 해(亥)에 이르면 또다시 혼돈의 세상이다. 이 때에는 오직 모두 총명하고 사리에 밝고 똑똑하여 영리한 모양일 뿐이다. 그러므로 ‘자연(自然)을 하늘(天)이라’고 한다. ‘그렇게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을 하늘’이라 말한다. 양(陽)이 극진하면 반드시 가물고 오래도록 가물면 반드시 흐리고 오래도록 흐리면 반드시 비가 내리고 오랜 비면은 반드시 개인다. 이를 이르기를 자연(自然)이라 한다.
임금은 높고 신하는 낮고 아버지가 앉으면 아들은 서있고 지아비가(남편이) 부르면 지어미(아내)가 따르며 형은 사랑하고 아우는 공경한다. 이것을 일컫기를 당연(當然)이라 한다.
작은 것은 힘을 들여 크게 되고 약한 것은 힘을 들여 강하게 되고 가난한 것은 힘을 들여 부자가 되고 천한 것은 힘을 들여서 귀하게 된다. 이것을 일컬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것(不得不然)’이라고 한다. 그렇지 않다(不然)를 얻지 못함이라. 맘이 곧 이 하늘이다. 맘을 속이는 것은 곧 하늘을 속이는 것과 같다. 맘을 섬기는 것이 곧 하늘을 섬기는 것과 같다.
다시 모름지기 맑게 개인 하늘빛을 향하지 않고 위로 향한 쪽의 겉면으로 나(우리 인류)를 구하니 섞이었으니 이것도 같은 하늘인 까닭으로 날마다 쓰며 사람이 살아가는 것이 숨을 쉼을 먹고 늘 맘속으로 생각하고(맘속에 두고) 때때로 일마다 오로지 마땅함으로써 하늘에 자기가 할일을 자기가 직접 처리한다. 탁한 기(氣)가 순수하게 맑은 정(精)이 되니 스스로 하나가 된다. 정일(精一)이 되면 신(神)이 스스로 영(靈)이 된다. 이에 세 가지 보배인 정(精)‧기(氣)‧신(神)이 다스려지고 말씀이 천도(天道)에 꼭 알맞아 당연하게 된다. 두루 온 우주(宇宙)에 모두 기(氣)가 움직이게 하는 일이다. 정기(精氣)의 한 알갱이가 콩팥(腎)의 아래 숨어 있음에 따라서 태(胎)이다. 그러므로 움직임(動)은 고요함(靜)이 죽는 고향이고 고요함은 움직임이 생하는 문이다. 고요함이 없으면 생겨나지도 않고 움직임이 없으면 죽지 않는다. 고요함이란 늘 펴고 움직임이란 돌아오지 않는다. 큰 조화의 온전한 기(氣)를 발하는 것은 움직임이요 큰 조화를 생기를 소모하는 것도 또한 움직임이다. 성인은 주로 고요히 함으로써 원리를 용납하여 신(神)을 이룬다.
도가(道家)는 고요함을 주장함으로써 원기(元氣)가 머물어 묘(妙)함에 다다른다.
석가께서도 고요함을 주장하여 적<寂∶진정(眞正)한 리체(理體)>으로 돌아온다. 모두다 이것은 신시천왕(神市天王)을 공경하는 하나이며 밝고도 밝아 아주 환하게 밝은 자리이다. 소자(小子)야. 맘에 새기어 만약 최생(崔生) 강생(姜生) 한생(韓生)의 무리들은 참된 길을 통하지 못하며 두개로 갈라지는 길에 떨어지지 말지어라. 슬프고도 슬프다. 소자(小子)야. 내 말씀이 늙지 않았노라.”
※ ① 기화일(氣化日)∶액체가 기체로 상태 변화하는 날.
※ ② 번화일(繁華日)∶번성하고 화려한 날.
※ ③ 광치일(廣侈日)∶널리 사치하는 날.
※ ④ 정일(精一)∶ꡔ서경(書經)ꡕ에 처음 나오는 말로 순(舜)이 우(禹)에게 “인심은 오직 위태롭고 도심(道心)은 오직 은미하니, 오직 정(精)하고 일(一)해야 진실로 그 중(中)을 잡을 수 있다”고 했다. 중용장구 서문에 주자(朱子)는 “精則察其二者之間而不雜也요 一則守其本心之正而不離也 <정(精)은 두 가지의 사이를 잘 살펴서 혼합하지 않는 것이요 일(一)이라는 것은 그 본심의 바름을 지켜서 어기지 않는 것이다”라고 풀이했다.
2) 팔공진인 총담(八公眞人 叢談)
(1) 팔공진인의 소개
眞人姓柳啣成性 號八公 文化人 恒居星州八公山
진인성류함성성 호팔공 문화인 항거성주팔공산
故世人稱八公眞人 時年四百九十六歲 紫霞門人
고세인칭팔공진인 시년사백구십육세 자하문인
진인(眞人)의 성은 류씨(柳氏) 이름은 성성(成性)이며, 호는 팔공(八公)이며 본관은 문화(文化)이고 늘 경상도 성주(星州) 팔공산(八公山)에 사시는 까닭에 세상 사람들이 팔공진인(八公眞人)이라 일컫는다. 올해(단기 4246)년 496세이시며 자하진인(紫霞眞人)의 문인이시다.
(2) 국가의 흥망은 종교에서 기인
眞人曰 帝王之興亡 歷代之隆衰 風俗之善惡
진인왈 제왕지흥망 역대지융쇠 풍속지선악
總由於宗敎之眞僞
총유어종교지진위
진인(眞人)께서 말씀하시기를 “황제 또는 국가의 흥하고 망함과 차례차례로 전해져 내려온 그 여러 대의 성하고 쇠함과 오래 전부터 전해 오며 지켜지고 있는 생활상의 여러 가지 버릇이 되어 버린 형상의 착함과 악함은 모두다 종교의 참과 거짓에서 연유한다.”
(3) 현재는 미래와 과거의 현상
曰 天道有一無二 故無私卽云無私 有何不平
왈 천도유일무이 고무사즉운무사 유하불평
顯世人之禍福 不其善惡應非在 卽乃系三生 現前因果
현세인지화복 불기선악응비재 즉내계삼생 현전인과
將來胎盤 必古人一轍 釋氏地獄輪回之說
장래태반 필고인일철 석씨지옥윤회지설
孔聖必有餘慶 餘蘖之談 近是惟吾神敎 其眞得底
공성필유여경 여얼지담 근시유오신교 기진득저
人與天地共矣 不必論 屑瑣之理
인여천지공의 불필론 설쇄지리
※ 轍∶바퀴자국 철. 瑣∶자질구레할 쇄.
말씀하시기를 “천도(天道)는 단 하나 뿐이고 둘도 없다. 그러므로 사사로움 없이 공평하고 올바름은 곧 무사(無私)라 일컬으니 무슨 불평이 있겠는가. 세상에 사람의 화(禍)와 복(福)을 나타냄에 그 착하고 악하지 아니한데 응함에 있는 것이 아니며 곧 전생·현생·후생에 이어져 눈앞의 원인과 결과가 앞으로 닥쳐올 앞날에 태아(胎兒)이다. 반드시 옛 사람들과 같은 자국이다. (먼저 있던 다른 경우와 동일한 길을 밟음을 일컬음). 석가께서 지옥 윤회의 설과 공구(孔丘) 성인(聖人)의 ‘반드시 남은 경사가 있고 남은 앙화가 있다’는 말씀이다.
요즈음 이것이 오직 나의(우리) 신교(神敎)이니 그 참[眞]을 밑에서 얻어 사람과 하늘이 함께 하니 논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나니 수고롭고 좀스러운 이치다.”
(4) 자하진인은 신(神)이며 맘을 변치 말라.
曰 先生 神化 將有亘於萬萬年之度矣
왈 선생 신화 장유선어만만년지도의
更何贊之 知者但膺服 不變其心而已
갱하찬지 지자단응복 불변기심이이
말씀하옵기를 “스승(자하진인)께서는 신격화(神格化)되었고 장차 일 억년의 도수(度數)를 펼 것이다. 다시 무엇을 칭찬할 것인가. 아는 사람은 다만 설득시킴을 받으니 그 맘이 변하지 않을 따름이다.”
(5) 음양(陰陽)의 이치는 만고의 불변
曰 天地雖有 混沌之時 神理正 無沈泯之日 大一歸一
왈 천지수유 혼돈지시 신리정 무침민지일 대일귀일
大三合六 通萬古之不動本理
대삼합육 통만고지부동본리
말씀하시기를 “하늘과 땅이 비록 혼돈의 때가 있었고 신리(神理)가 옳아서 잠기고 빠지는 날은 없었다. 큰 하나인 하나로 돌아오니 큰 것은 하늘 사람 땅이 음양이 있음에 하늘에는 해와 달이 있고 땅에는 뭍과 큰 바다가 있고 사람에는 사내와 계집이 있어 합하니 여섯이니 아주 옛날로부터 이제까지 움직이지 않는 근본 이치를 통함이다.”
(6) 조광윤의 대륙의 통일
曰 宋時 神市天皇 使司命眞君 下天書于汀州 黔卒王捷
왈 송시 신시천황 사사명진군 하천서우정주 금졸왕첩
以警 趙氏 將有天下之半區
이경 조씨 장유천하지반구
말씀하시기를 “송(宋)①나라 때 신시천황(神市天皇)②께서 사명진군(司命眞君)③으로 하여금 천서(天書)④를 정주(汀州)⑤ 검은 군졸(軍卒)인 왕첩(王捷)에게 주어 경계하였고 조씨(趙氏)⑥가 장차 천하(天下)의 절반을 차지했었다.”
※ ① 송(宋)∶중국 주대(周代)에 성왕(成王)이 은(殷)나라 주왕(紂王)의 형 미자계(微子啓)로 하여금 은나라의 유민을 다스리게 하기 위해 봉한 나라. 지금의 하남성 상구현에 도읍을 두었다. 춘추시대 12제후의 하나가 되어 문화적으로도 번영하였으나 양공(襄公)이 B.C.638년에 초(楚)와 싸워 소위 「송양(宋襄)의 인(仁)」이라는 웃음거리를 남기고 크게 패했다.
※ ② 신시천황(神市天皇)∶신시(神市) 제1세(世) 천황인 환웅(桓雄) 또는 거발환(居發桓) B.C.3898∼3804까지 재위 94년.
※ ③ 사명진군(司命眞君)∶신명(神名). 주로 생사를 맡아보고 하늘을 돕고 조화(造化)를 행하며 악을 벌주고 착함을 보호한다.
※ ④ 천서(天書)∶도교에서는 옥청원시천존의 말씀한 글을 일컫고 하늘에서 내려온 글을 뜻한다.
※ ⑤ 정주(汀州)∶중국 복건성의 고을 이름.
※ ⑥ 조씨(趙氏)∶서기 960년 조광윤(趙匡胤)이 오대후주(五代後周)의 공제(恭帝)의 선위(禪位)를 받아 세운 나라 존속연간 960∼1279년 변경(卞京)에 도읍 하였다.
제8대 휘종(徽宗) 제9대 흠종(欽宗)이 금(金)의 침입을 받아 북쪽으로 붙들려가기 까지를 북송(北宋) 효종(孝宗)의 아우 고종(高宗)이 남으로 옮겨 임안(臨安)에 도읍을 정하고 원(元)의 세조(世祖)에게 망할 때까지를 남송(南宋)이라 한다. 18대 319년만에 망했다.
(7) 동방의 명장(名將) 조씨(趙氏)가 출현할 것이다.
曰 宋仁孝戊申 又以天書 示于承天門 使其君
왈 송인효무신 우이천서 시우승천문 사기군
以知神道無窮 且現于夢 有神令道 始于東方也
이지신도무궁 차현우몽 유신령도 시우동방야
宋雖得國不正 其受命則天也 後世大震之名將 趙姓可期
송수득국부정 기수명즉천야 후세대진지명장 조성가기
말씀하시기를 “단기 2800년에 또 천서를 승천문에 보이게 하여 그 임금으로 하여금 신도가 무궁함을 알게 하고 또한 꿈에 나타나서 신도로 하여금 동방에 처음 있게 하였다. 송(宋)은 비록 나라를 얻고 바르지 못해 그 명령(命令)을 하늘로부터 받았다. 뒤의 세상 대진(大震)의 명장(名將)은 조(趙)씨를 가히 기약한다.”
(8) 송(宋)은 유선(儒仙)을 숭상
曰 宋仁孝辛亥四年五月 其州城作孔子廟
왈 송인효신해사년오월 기주성작공자묘
敦尙儒術癸丑六年五月 玉淸昭應宮 奉安聖像
돈상유술계축육년오월 옥청소응궁 봉안성상
八月太淸宮又奉安 甲寅七年正月謁老子於毫州
팔월태청궁우봉안 갑인칠년정월알노자어호주
太淸宮加號曰 太上老君 混元上德皇帝
태청궁가호왈 태상노군 혼원상덕황제
말씀하옵기를 “송(宋)나라 명제(明帝) 4년 단기 2804,신해(辛亥)년 5월 그 고을과 성(城)에 공자묘(廟)①를 짓고 도타웁게 유술(儒術)을 숭앙했고 명제 6년 단기 2806, 계축(癸丑)년 5월에 옥청소응궁(玉淸昭應宮)②에 성상(聖像)을 봉안(奉安)했고 8월에 태청궁(太淸宮)③에 또 봉안(奉安)했다. 명제 7년 단기 2807, 갑인(甲寅)년 정월에 노자(老子)님을 호주(毫州)에서 뵙고 태청궁에 호(號)를 더하여 이르기를 ‘태상노군(太上老君)’ ‘혼원상덕황제(混元上德皇帝)’라고 높였다.”
※ ① 공자묘(孔子廟)∶공자를 모신 묘(廟). 노(魯)나라 애공(哀公) 때에 공자의 고향인 곡부(曲阜)에 세운 것이 최초이며 당(唐)나라 때 전국의 주(州)‧현(縣)에 건립되었다. 후세에 이르러서는 공자 외에 그 제자와 역대의 뛰어난 유자(儒子)도 함께 모셨다. 문선왕묘(文宣王廟)‧문묘(文廟)‧부자묘(夫子廟)‧공묘(孔廟)라고도 하며 한국에도 성균관(成均館) 안에 문묘(文廟)가 있다.
※ ② 옥청소응궁(玉淸昭應宮)∶옥청궁(玉淸宮)으로 원시천존(元始天尊)이 계신다. 삼청궁(三淸宮)의 하나.
※ ③ 태청궁(太淸宮)∶삼청궁(三淸宮)의 하나로써 도덕천존(道德天尊)이 계신다.
(9) 송(宋)때 공자 72제자를 봉하다
曰 仁孝己酉三年夏五月 詔追封玄聖文宣王廟 配享從祀
왈 인효기유삼년하오월 조추봉현성문선왕묘 배향종사
顔閔以下九人 以及七十二人 己酉二年夏五月 加號
안민이하구인 이급칠십이인 기유이년하오월 가호
聖祖爲司命天尊
성조위사명천존
※ 詔∶조서 조, 가르칠 조. 閔∶병[病] 민, 민망할 민, 성[姓] 민.
말씀하시기를 “송(宋) 인효(仁孝) 3년 기유(己酉 단기 274년 5월 여름에 조서(詔書)를 내려 공자 죽은 뒤에 봉(封)하기를 ‘현성문선왕묘(玄聖文宣王廟)’로 신주(神主)를 모셔 문묘(文廟)‧사원(祠院)‧서원(書院) 등에 안자(顔子) 민자(閔子) 등 이하(以下) 아홉 분과 72인에 미치었고 인효 2년(잘못 쓰인 것 같음) 기유(己酉)년 여름 5월에 호(號)를 더하여 성조(聖祖)께서 사명천존(司命天尊)이 되었다.”
(10) 동이(東夷)와 중화(中華)가 대동소이
曰 余曾聞於先生 先生曰 麗末後李姓爲國
왈 여증문어선생 선생왈 여말후이성위국
而在朝在野之人 多尙宋國之文華學文然 宋之世非但遼夏
이재조재야지인 다상송국지문화학문연 송지세비단요하
金元之幷立 且得不精 又未統一 安得有華夷之別
금원지병립 차득부정 우미통일 안득유화이지별
以一主而多改年號 可知其不務政本 假作外華
이일주이다개년호 가지기불무정본 가작외화
말씀하시되 내가 일찍 선생(先生) (자하진인)으로부터 듣기로는 선생님(자하진인)께서 말씀하시기를 “고려(高麗) 말(末) 뒤 이씨(李氏)의 나라가 되니 조정(朝廷)과 재야(在野)의 사람이었다. 송(宋)나라 문화(文化)와 학문(學文)을 많이 숭상하였다. 송(宋)의 세상은 다만 요(遼)나 하(夏) 금(金)과 원(元)나라들이 아울러 섰으며 또 정(精)을 얻은 것이 아니다. 또 통일(統一)하지 못했고 어찌 중화(中華)와 동이(東夷)가 다른 것이 있겠는가? 한 임금이 년호(年號)를 많이 고쳤고 그 정치(政治)의 근본(根本)에 힘쓰지 않은 것을 가히 알겠도다. 거짓으로 밖으로 화려함을 지었다.”
(11) 영토만 크면 정통인가?
曰 世人不知本源 在何開口 說尊華攘夷之道
왈 세인부지본원 재하개구 설존화양이지도
胡元滅宋爲不祥於道 云 良可悲也 大道盛衰
호원멸송위불상어도 운 양가비야 대도성쇠
都不在世局姑舍 所謂正統云者 只以大有彊域
도부재세국고사 소위정통운자 지이대유강역
定之而秦始皇 滅六國 漢高帝勝强楚殺英雄
정지이진시황 멸육국 한고제승강초살영웅
唐太宗挾夷力而得 因胡亂而失 宋人不費一箭 奪人國
당태종협이력이득 인호란이실 송인불비일전 탈인국
且況所事之乎 天下猶謂之英武 猶謂之正統
차황소사지호 천하유위지영무 유위지정통
然則 五季諸帝有何惡毛 謂之僭名乎 編支那史者
연즉 오계제제유하악모 위지참명호 편지나사자
吾不知其可也 況乎吾震檀 口頭如是乎
오부지기가야 황호오진단 구두여시호
말씀하시기를 “세상 사람들은 본원(本源)①을 알지 못하니 어찌 입을 열어 중국을 높이고 우리나라를 더는 도(道)를 말이 있겠는가? 오랑캐 원(元)이 송(宋)을 멸망시키니 상서롭지 못한 도(道)이니 이르기를 어진이는 가히 슬프다. 큰 도(道)가 성하고 쇠하며 도무지 세상 시절을 우선 폐하고 이른바 정통(正統)②을 말하는 사람은 다만 크게 나라에 붙은 땅이 큰 데 있으니 정하기는 진시황(秦始皇)③이 여섯 나라(초<楚>‧연<燕>‧제<齊>‧한<漢>‧위<魏>‧조<曹>)를 멸하였고 한고제(漢高帝)④는 강한 초(楚)를 죽여 이긴 영웅(英雄)이며 당태종(唐太宗)⑤은 동이(東夷)를 힘껏 돕다가 오랑캐(胡)의 난(亂)으로 인하여 나라를 잃었다. 송(宋)은 하나의 화살을 사용하지 않고 사람과 나라를 뺏았었다.
또한 하물며 볼 일인가? 천하(天下)가 오히려 ‘영걸(英傑)하고 매우 용맹스럽다’말하고 오히려 정통(正統)이라고 일컫는다. 그러한즉 중국의 후오대(後五代)의 모든 임금들이 어찌 악모(惡毛)⑥가 있겠으며 분에 넘치는 이름이라 일컫겠는가? 중국의 사학자(史學者)는 기록한 것을 나는 그 옳은 것인지 알지 못하겠다. 하물며 우리 진단(震檀)⑦을 이와 같이 말로 처리하겠는가?”
※ ① 본원(本源)∶강 개울 등 흘러 내려오는 것의 근원. 근본(根本).
※ ② 정통(正統)∶바른 계통. 적장(嫡長)의 계통. 임금의 계통. 사물의 중심이 되는 긴요한 부분.
※ ③ 진시황(秦始皇)∶중국 진(秦)나라의 제 36대 황제. 이름은 정(政). 통일 왕조로 진나라의 시조이다. B.C.221년 전국(戰國) 제국을 평정하여 통일을 완성하고 「황제」라 칭하였다. 봉건제를 폐지하고 군현제를 실시했으며 도량형‧문자‧화폐 등을 통일하였다. 법치주의‧분서갱유(焚書坑儒)로 사상통일을 기하고 중앙집권을 확립했으며 만리장성‧교통로‧아방궁 등의 큰 토목공사를 일으키는 등 급격한 개혁을 시도했다.
※ ④ 한고제(漢高帝)∶유방(劉邦)이 초(楚)의 항우(項羽)를 물리치고 세운 나라(B.C.206∼A.D.220)
※ ⑤ 당태종(唐太宗)∶626∼649. 진(陳)나라 말기 북량(北凉)의 무소왕(武昭王) 고 (暠)의 자손이라 하나 한족(漢族)이 아니고 선비족(鮮卑族)이라는 설(說)도 있다. 수(隋)나라 말기에 태원(太原)의 군벌(軍閥)로서 돌궐졸(突厥族)의 남침을 막고 지방의 치안을 장악하여 차차 세력을 넓히던 이연(李淵∶당고조)의 둘째 아들로 아버지와 더불어 617년 5월에 군사를 일으켜 동년 9월에 수도 장안(長安)을 점령 618년 수(隋)의 양제(煬帝)가 반란군의 우문화급(宇文化及)에게 살해되자 그 손자 공제(恭帝) 유(侑)를 세웠는데 그 이듬해 공제를 협박하여 선위(禪位) 받아 아버지를 즉위케 하고 국호를 당(唐)이라 하였다.
건국 초에는 각지에 군웅(群雄)이 할거하고 있었으나 차례로 이들을 평정하고 천하를 통일하였다. 건국과 통일대업은 총명과 지략이 출중한 세민(世民)의 힘이 컸는데 형이며 태자(太子)인 건성(建成)과 동생 원길(元吉)이 시기하자 이들 형제를 죽이고 626년 제2대 황제에 올랐다. 이를 ‘현무문(玄武門)의 난’이라 하며 이세민이 곧 태종(太宗)이다.
태종은 즉위하자 최대의 외적(外敵)이던 돌궐(突厥)을 평정하였으며 주변의 여러 종족도 조공(朝貢)하게 되어 국위(國威)를 크게 떨쳐서 한(漢)나라를 능가하는 대제국(大帝國)이 되었다. 우리 고구려에 봉역도(封域圖)를 보내왔으며 629년엔 현장(玄 )이 인도여행을 떠났으며(627년도 출발설도 있음) 630년엔 동돌궐(東突厥)을 멸하고 왜(일본)에 사신을 파견하였고 왜(일본)도 사신을 당나라 파견(제1회 遣唐使) 635년엔 부병제도(府兵制度)를 완성하여 내치(內治)에도 힘써 637년엔 정관율령(貞觀律令)을 제정하여 치세 20여 년은 ‘정관(貞觀)의 치(治)’라고 하는 태평성대를 이루었다. 638년엔 <<씨족지(氏族志)>>를 반포(頒布)하였고 640년엔 고창국(高昌國)을 멸하고 안서도호부(安西都護府)를 두었고 641년엔 문성공주(文成公主)를 토번(吐蕃)으로 출가시켰고 고구려 백제 신라 등 3국에서 유학(留學)을 청해 왔으며 고구려 원정(遠征)(제1차 645 제2차 647 제3차 648)하여 안시성(安始城) 공략에 실패 634년엔 왕현책(王玄策)을 인도에 파견 646년엔 현장(玄 )이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를 완성했고 철륵부(鐵勒部)에 속하는 설연타(薛延陀)를 토벌하였고 647년엔 연연(燕然∶뒤의 安北)에 도호부(都護府)를 설치 649년엔 태종이 죽고 아홉째 아들인 고종(高宗)이 즉위하였다.
※ ⑥ 악모(惡毛)∶붓 속에 섞인 뭉툭한 털. 좋은 것을 추려 내고 남은 찌끼. 악(惡)치.
※ ⑦ 진단(震檀)∶우리 나라를 예스럽게 일컫는 말의 하나. 진단(震壇).
(12) 원세조(元世祖)가 정통(正統)
曰 自古簡丹之嚴 帝王不能奪 將相不能奪
왈 자고간단지엄 제왕불능탈 장상불능탈
故 齊崔抒敎其兄而舍其弟 晋董獨書以趙 遁弑君
고 제최서교기형이사기제 진동독서이조 둔시군
今此編諸史則 指纂謂正 以正謂僭 比比 秦漢僞史而尤爲
금차편제사즉 지찬위정 이정위참 비비 진한위사이우위
甚焉 噫 人品之降衰 史筆之無力 實由於秦漢以來
심언 희 인품지강쇠 사필지무력 실유어진한이래
失眞食希假之故也 元世祖滅宋 而幷有四夷 其雄威武力
실진식희가지고야 원세조멸송 이병유사이 기웅위무력
彊場宏闊 猶勝秦漢 以正統大統 爲史家分別則
강장굉활 유승진한 이정통대통 위사가분별즉
此四帝外實無可居於正統 天統之名者乎
차사제외실무가거어정통 천통지명자호
※ 崔∶산우뚝할 최, 높고 가파를 최, 성[姓] 최, 고을이름 최. 抒∶당길 서, 물자아올릴 서, 쏟을 서, 덜 서, 당길 저 ,북 저. 董∶바를 동, 감독할 동, 굳을 동, 연뿌리 동, 비빔밥 통, 고물 동. 遁∶달아날 둔, 숨을 둔, 피할 둔, 끊을 둔. 晋∶나아갈 진, 억제할 진, 꽂을 진, 나라이름 진, 괘이름 진. 弑∶웃사람죽일 시. 纂∶책편찬할 찬,모을 찬, 이을 찬. 食希∶飾 꾸밀 식, 가선두를 식, 문채날 식, 분바를 식, 정제할 식. 宏∶넓을 굉, 클 굉, 넓힐 굉. 闊∶근고할 활, 어그러질 활, 간단할 활 오활(迂闊)할 활.
말씀하시기를 “예전부터 병부[符命]를 엄하게 점고[閱]하면 제왕(帝王)은 빼앗을 능력이 없으며 장수(將帥)와 재상(宰相)은 능히 빼앗을 수 없다. 그래서 제(齊)나라 최서(崔抒)가 그 형(兄)이 가르침을 그 아우를 두었고 진(晋)나라 동독서(董獨書)는 잉어 속에 칼을 숨기고 조(趙)나라의 임금을 죽였다. 이제 이 편(編)을 모든 역사(歷史)가 즉 지어 가리키기를 정(正)이라고도 하며 정(正)으로써 거짓이라고 일컫는다. 무엇이든지 진(秦)과 한(漢)이 ‘거짓 역사’라고 하며 더욱 심하다.
아아! 인품(人品)의 느리고 쇠하니 역사(歷史)를 적는 붓이 힘이 없어 실제로 연유(緣由)하여 진한(秦漢)으로부터 참[眞]을 잃었다. 거짓을 꾸미는 까닭이다.
원(元)나라 세조(世祖∶쿠빌라이 忽必烈)가 단기 3612년 남송(南宋)을 멸하고 북적(北狄)‧남만(南蠻)‧동이(東夷)‧서융(西戎)을 합함이 있었고 그 무력(武力)이 웅장하고 위엄과 큼직하고 시원스럽게 넓은 영토(領土)를 가졌으니 오히려 진(秦)이나 한(漢)보다 나았었고 이것이 정통(正統)으로 왕위(王位)를 계승하는 계통이니 사가(史家)의 분별하면 즉 이 진시황(秦始皇) 한무제(漢武帝)① 송태조(宋太祖)② 원세조(元世祖)③이 네 황제(皇帝) 밖은 실지로 정통(正統)에 가히 놓을 수 없으며 하늘에 명(命)을 받은 계통의 이름이 아닌가?”
※ 비비(比比)∶흔히. 매양. 모두. 낱낱이. 무엇이든지.
※ ① 한무제(漢武帝)∶후한(後漢)의 시조(始祖)인 유수(劉秀). 한고조(漢高祖)의 9세손(世孫). 왕망(王莽)의 대군(大軍)을 파(破)하고 즉위(卽位)하여 낙양(洛陽)에 도읍을 세우고 한(漢)을 다시 일으켰음.
※ ② 송태조(宋太祖)∶송(宋)의 태조(太祖). 개국(開國)의 임금. 본 이름은 조광윤(趙光胤) 탁군(琢郡)사람. 성격은 부모에 대한 효도와 형제에 대한 우애와 용감하고 슬기로웠고 후주(後周)의 양위(讓位)를 받아서 제위(帝位)에 오름. 탐관오리(貪官汚吏)를 물리치고 법(法)을 존중하며 농업을 장려하고 교학(敎學)을 진흥하며 형벌을 가혹히 하지 않고 수렴(收斂)을 적게 하여 통일(統一) 왕업(王業)의 기초를 튼튼히 함.
※ ③ 원세조(元世祖)∶1215∼1294. 이름은 쿠빌라이(忽必烈). 송(宋)을 멸하고 중국을 통일하여 국호(國號)를 원(元)이라 하고 연경(燕京)에 도읍(都邑)함. 뒤에 왜(倭)를 친 일이 있고 또 면전(緬甸)‧안남(安南)‧조와(爪蛙) 등을 정벌(征伐)하여 영토(領土)가 아주(亞洲) 및 구라파(歐羅巴) 동부(東部)까지 뻗쳐 강토(彊土)의 넓이는 전고(前古)에 비할 바 없이 컸음.
(13) 순(舜)임금 원(元)나라 청(淸)은 신조(神祖)의 후예
曰 惟我 神祖裔之入支那主天下 始于舜 而中于元
왈 유아 신조예지입지나주천하 시우순 이중우원
終于淸也 朱元璋之謂大震之人 似也非也 其所行所說
종우청야 주원장지위대진지인 사야비야 기소행소설
近似吾曾聞之 南海眞人 朱氏之本 始於高朱蒙云云
근사오증문지 남해진인 주씨지본 시어고주몽운운
疑去上取中苦矣
의거상취중고의
※ 裔∶옷뒷자락 예 변방 예 씨 예 방자할 예 갈 예 흐를 예. 舜∶순임금 순 무궁화 순. 璋∶반쪽홀 장.
말씀하옵기를 “오직 나는 신조(神祖)의 씨가 중국으로 들어가 천하(天下)의 주인이 된 것은 순(舜)임금으로 부터 시작하여 중간에는 원(元)나라였고 청(淸)나라로 끝마쳤다. 명(明)의 주원장(朱元璋)①은 우리 동방사람(大震之人)이다 아니다 하나 그의 행동과 말을 살펴 보면 내가 듣기로는 남쪽바다의 진인(眞人)이며 주(朱)씨의 시조(始祖)가 고주몽(高朱蒙)②이다 이러이러하다. 의심을 버리고 맞는 것을 찾으려니 괴롭도다.”
※ ① 주원장(朱元璋)∶(1328∼1398) 중국 명(明)의 태조. 자(字)는 국서(國瑞). 안휘성(安徽省) 출생. 미천한 빈농(貧農)의 집에 태어나 원말(元末)의 혼란기에 홍건적(紅巾賊)의 1병졸에서 몸을 일으켜 장강(長江) 일대를 평정하고 남경(南京)을 점령 한(漢)민족을 재통일하여 제위(帝位)에 올라 국호를 명 연호를 홍무(洪武)라 했다. 관제(官制)를 개혁하고 재위 31년간에 안으로 다스리고 밖으로 쳐서 많은 치적(治績)을 올렸다.
※ ② 고주몽(高朱蒙)∶동명왕(東明王) B.C.58∼B.C.19(유리왕 1) 고구려의 시조. 재위 B.C.37∼B.C.19. 성은 고(高) 휘(諱)는 주몽‧추모(鄒牟)‧상해(象解)‧도모(都慕)‧동명성왕(東明聖王). 아버지는 동부여왕(東夫餘王) 김와(金蛙) 어머니는 하백(河伯)의 딸 류화(柳花). 「삼국사기」에 의하면 동부여왕 해부루(解夫婁)가 죽고 김와가 즉위하여 류화를 부인으로 삼았으나 천제(天帝)의 아들이라고 하는 해모수(解慕漱)와 가까이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류화를 궁실에 유폐하였다. 류화는 햇볕을 받고 임신하여 알 하나를 낳았는데 그 알에서 사내아이가 나와 성장하니 주몽(부여의 속어로 활을 잘 쏜다는 뜻)이라 불렀다. 김와의 아들 7형제의 재주가 모두 주몽만 못하였고 왕이 반대함에도 불구하고 그의 장남 대소(帶素)는 여러 형제와 신하들과 같이 주몽을 죽이려 하므로 난(亂)을 피하여 졸본(卒本)에 도읍하고 국호를 고구려 성(姓)을 고(高)라 하였다. B.C.34(유리왕 4)에 성곽궁실(城郭宮室)을 짓고 B.C.32 행인국(荇人國)을 멸망시켰으며 B.C.27 북옥저(北沃沮)를 합쳤다. 죽은 뒤 용산(龍山)에 장사지냈다.
(14) 신성(神聖)의 도(道)로써 스승삼어라
曰 人當以神聖之道 爲師一節之士 不足學也
왈 인당이신성지도 위사일절지사 부족학야
말씀하시기를 “사람은 마땅히 신성(神聖)의 도(道)로써 스승이 되니 변함 없는 절개(節介)의 선비는 넉넉하지 못한(모자람) 배움(공부)이다.”
(15) 군자는 결백하여 의(義)를 중히 여긴다
曰 凡治國治家 處會之法 不可君子小人勢同
왈 범치국치가 처회지법 불가군자소인세동
氷炭同處必爭 一爭之後 小人必勝 君子必敗 何者小人
빙탄동처필쟁 일쟁지후 소인필승 군자필패 하자소인
貪利忍恥擊之難去 君子 潔白重義 阻之則 引去
탐리인치격지난거 군자 결백중의 조지즉 인거
※ 阻∶막힐 조, 어려울 조, 근심할 조, 그칠 조, 의심할 조..
말씀하시기를 “무릇 나라를 다스리고 집을 다스리고 정하여 모이는 법(法)이 군자(君子)와 소인(小人)의 형세가 같지 않다. 얼음과 숯[氷炭]①이 같은 곳에 있으면 반드시 싸우니 한 번 싸운 뒤에 소인(小人)이 반드시 이기고 군자(君子)는 반드시 패한다. 어떠한 사람이 소인(小人)인가? 이익을 탐하고 치욕을 참으며 쳐서 어려우면 도망간다. 어떠한 사람이 군자(君子)인가? 맘씨와 행실이 조촐하고 깨끗하여 아무런 허물이 없고 의(義)②를 소중히 여기며 막히면 서로 이끌어 간다.
※ ① 얼음과 숯[氷炭]∶서로 정반대(正反對)가 되어 조화(調和)되지 못함. 또는 그러한 사물의 비유.
※ ② 의(義)∶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떳떳하고 정당한 도리. 오상(五常)의 하나임.
(16) 후천(後天)에 신인(神人)이 천서(天書)를 찾아 사용한다
曰 天之度數之循環正理 詳載在於神祖命祭天之時
왈 천지도수지순환정리 상재재어신조명제천지시
藏于大太 白岩石間 後天必有索用之神人
장우대태 백암석간 후천필유색용지신인
宋之世所謂觀天曆法 芽於天書 然未得縱詳也
송지세소위관천역법 아어천서 연미득종상야
말씀하시기를 “하늘의 도수(度數)의 순환(循環) 바른 이치는 신조(神祖) 명(命)에 상세히 실려 있으니 하늘에 제사를 지낼 때이니 큰 태백산(太白山) 바위 또는 돌 사이에 감추었으니 후천(後天)에 신인(神人)이 반드시 찾아 사용할 것이다.
송(宋)나라 세상의 이른바 관천역법(觀天曆法)이니 천서(天書)에서 처음 생겼다. 그러나 아직 얻지 못하여 자세히 모른다.”
(17) 사람의 올바르고 큰 심법(心法)이란?
曰 人之禽氣修精 在淸直勇 淸而不耀 直而不激
왈 인지금기수정 재청직용 청이불요 직이불격
勇而能溫 是人 正大心法
용이능온 시인 정대심법
※ 耀∶빛날 요.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기(氣)를 사로잡아 정(精)을 닦음은 맑고 곧고 용맹함에 있으니 맑으니 빛나지 않으며 곧으니 심하지(거세지)않으며 날래니 능히 따뜻하다. 이것이 사람의 올바르고 큰 심법(心法)이다.”
(18) 조광윤은 가법(家法)이 아름답지 않다
曰 世人以官爵爲榮 乃知道者之所笑然 贈諡追奪之醜行
왈 세인이관작위영 내지도자지소소연 증시추탈지추행
始于趙宋氏而鄙陋莫甚 作史者往往以宋爲中原
시우조송씨이비누막심 작사자왕왕이송위중원
主大不經矣 我國之人 多稱趙宋 然趙氏之殺弟戮侄
주대불경의 아국지인 다칭조송 연조씨지살제착질
而家法稱美可乎 眞不思之甚也.
이가법칭미가호 진불사지심야.
※ 익(謚)은 잘못 시(諡)가 옳음. 행장 시, 시호 시. 鄙∶더러울(더럽힐) 비, 시골 비, 변방 비, 인색할 비. 陋∶좁을 루, 추할 루, 더러울 루. 戮∶창으로 찌를 착. 질(侄)은 잘못 질(姪)이 옳음. 추(麤)는 추(醜)의 속자 성길 추, 클 추, 거칠(추할) 추.
말씀하시기를 “세상 사람들은 관직(官職)과 작위(爵位)로서 영화(榮華)①가 된다 하나 비로소 도(道)를 아는 사람은 웃으며 ‘그렇다’ 하는 바이며 거칠고 경솔히 행동하여 죽은 사람의 시호를 주기도하고 빼앗기도 한다. 처음 시작은 조광윤(趙匡胤)씨이니 행동이 천하고 맘이 지저분함이 극히 심했다. 역사를 짓는 사람은 이따금(때때로) 송태조(宋太祖) 조광윤(趙匡胤)으로서 중원(中原)의 주인이 된다고 하나 하늘에 상도(常道)②에는 어그러진다. 우리나라 사람은 많이 조광윤 송태조를 일컫는다. 그러나 조씨는 아우를 죽이고 조카를 창으로 찔렀으니 가법(家法)③이 가히 아름답다 일컫겠는가? 참으로 생각 없음이 심하도다.”
※ ① 영화(榮華)∶귀하게 되어서 몸이 세상에 드러나고 이름이 빛남. 영예(榮譽)에 가득한 행복.
※ ② 상도(常道)∶변하지 않는 떳떳한 도리(道理). 항상 지켜야 할 도리.
※ ③ 가법(家法)∶한 집안의 법도 또는 규율. 가헌(家憲). 가령(家令).
(19) 옛 강토를 찾고 신인(神人)의 나라가 된다
曰 余於壬辰之亂 隱居九月山 淸修菴 經過其亂之有世
왈 여어임진지난 은거구월산 청수암 경과기난지유세
癸巳二月 移居伽倻山 而經三年 其間詳聞諸道
계사이월 이거가야산 이경삼년 기간상문제도
有兵亂之極 欲一次出世 救衆生則
유병난지극 욕일차출세 구중생즉
先生曰 此乃天運 非知道者所關
선생왈 차내천운 비지도자소관
余問曰 此亂將何如乎
여문왈 차난장하여호
先生曰 余思之 有神通謀略者 無幾人而 只有郭再祐
선생왈 여사지 유신통모략자 무기인이 지유곽재우
李舜臣 趙憲 權慄 金德齡諸輩 舜臣憲慄 略通天文地理
이순신 조헌 권율 김덕령제배 순신헌율 약통천문지리
兵機之學 別無神妙之術 德齡 小有神術 薄福之人
병기지학 별무신묘지술 덕령 소유신술 박복지인
必不成功 且性情偏狹 難終命 趙李輩 亦運蹇 不得其命
필불성공 차성정편협 난종명 조이배 역운건 부득기명
但再祐承其母之神術 必見太平而終其命矣
단재우승기모지신술 필견태평이종기명의
今番之亂 國終無事 五六之後 必更有事於四八之間
금번지난 국종무사 오륙지후 필경유사어사팔지간
此亂 跡 則兵不血忍權歸其手矣
차난섭적 즉병불혈인권귀기수의
大震古彊之盡 入其圖籍 後運回于神人之邦矣
대진고강지진 입기도적 후운회우신인지방의
※ 祐∶도울 우, 다행할 우. 慄∶두려울 률, 쭈그릴 률, 슬플 률, 떨 률,송구할 률. 齡∶나이 령. 偏∶치우칠 편, 불공평할 편, 반신 편, 무리 편, 오십명 편,(오십 사람을 한반으로 한 일컬음) 간사한 모양 편, 넓을 편, 한마음 편, 왼쪽획 편(만들은 글자의 왼쪽의 획). 狹∶좁을 협. 蹇∶(다리∶足) 절 건, 험할 건, 교만할 건.∶밝을 섭, 신신을 섭, 오를 섭. 彊∶지경(갈피) 강, 굳셀 강, 변방 강, 한끝 강.
가로되 “나는 임진(壬辰∶임진왜란)의 난리에 구월산(九月山) 청수암(淸修菴)에 숨어 살았다. 그 난리에 세상에 있어 사건(事件)이 지나가는 모양을 보고 들었다. 계사(癸巳∶단기 3926)년 2월에 가야산(伽倻山)으로 옮겨 3년을 지내며 그사이 모든 길로 상세히 들으니 병난(兵亂)의 극함이 있어 한 차례 세상에 나와 중생(衆生)을 구하려고 하였다.”
스승(자하진인)께서 말씀하시기를 “이것은 비로소 하늘의 운(運)이니 도(道)를 아는 사람이 관여할 바가 아니다”고 하셨다.
내가 물어 말하기를 “이 난리는 앞으로 어떻겠습니까?”
스승(자하진인)께서 말씀하옵기를 “내 생각으로는 신통모략(神通謀略)①이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 다만 곽재우(郭再祐)② 이순신(李舜臣)③ 조헌(趙憲)④ 권률(權慄)⑤ 김덕령(金德齡)⑥ 등 여러 무리가 있다. 순신 헌 률은 천문(天文) 지리(地理)를 약간 통했고 병기(兵機)의 학문은 다른 신묘(神妙)의 술(術)은 없도다. 덕령이 조금 신술(神術)이 있으나 복(福)이 엷은 사람이라 반드시 공(功)을 이루지 못한다. 또 성질과 심정이 맘이 한쪽으로 치우치고 좁아서 천명(天命)을 마치기 어렵다.
조헌(趙憲)과 이순신(李舜臣) 무리는 또한 운(運)이 험하여 그 목숨을 얻기 어렵다. 다만 곽재우는 그 어머니의 신술(神術)을 이어 받아 반드시 태평(太平)을 보고 그 천명(天命)을 마친다.
이번의 난리에 나라는 마침내 아무 탈 없으며 30년 뒤에 반드시 사변(事變)이나 큰 사건(事件)이 다시 동쪽과 서쪽 사이에 있을 것이다. 이 난리는 자취와 흔적을 밟으면 병사(兵士)는 피를 흘리지 않고 참으니 권리(權利)가 그 손으로 돌아간다. 우리나라 옛 강토가 다하여 그 지도(地圖)와 호적(戶籍)이 들어오니 뒤에 운(運)이 돌아와 신인(神人)의 나라가 된다.”
※ ① 신통모략(神通謀略)∶계략(計略)이나 계책(計策)이 신기하고도 묘하게 아는 것이 깊어 통달함.
※ ② 곽재우(郭再祐)∶1552(명종 7)∼1617(광해군 9) 조선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자(字)는 계수(季綏) 호(號)는 망우(忘憂) 시호는 충익(忠翼), 본관은 현풍(玄風). 황해도 관찰사 월(越)의 아들. 낚시질로 세월을 보내다가 임진왜란이 일어나서 여러 고을이 연이어 함락되고 임금이 의주(義州)로 피난하자 의령(宜寧)에서 의병(義兵)을 일으켰다. 홍의(紅衣)를 입고 선두에서 싸워 많은 전공(戰功)을 세워서 홍의장군이라 불리었다. 정유재란(1597) 때도 각군(各郡)이 모조리 함락되었지만 곽재우는 끝까지 의령을 지켰으며 그 뒤 찰리사(察理使)‧절도사(節度使)를 지냈고 1609(광해군 1)에 영남절도사‧수군통제사에 임명하였으나 모두 사퇴하였다. 1612(광해군 4)에 서울로 불려가서 부총관(副摠管) 좌윤(左尹)을 거쳐 함경감사(咸鏡監司)를 지냈다. 문헌∶『지장집략(誌狀輯略)』.
※ ③ 이순신(李舜臣)∶1545(인종 1)∼1598(선조 31) 조선 때의 명장(名將) 자(字)는 여해(汝諧), 시호는 충무(忠武) ,본관은 덕수(德水), 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 변(邊)의 후손. 서울 건천동(乾川洞)에서 출생. 1576년(선조 9)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권지훈련원봉사(權知訓鍊院奉事)로 처음 관직에 나섰으며 발포만호(鉢浦萬戶)를 거쳐 1586년(선조 19)에 사복시주부가 되고 이어 조산만호(造山萬戶) 겸 녹도 둔전사의(鹿島 屯田事宜)가 되어 그해 가을 적은 병력으로 호인(胡人)이 침입하여 많은 양민을 학살하니 순신은 홀로 이를 맞아 싸워 포로 60여명을 탈환하였고 그 일로 해임되었다. 그뒤 전라도 순찰사 이광(李珖)에게 발탁되어 전라도 조방장(助防將)‧선전관(宣傳官) 등이 되고 1589년(선조 22) 정읍현감으로 있을 때 류성룡(柳成龍)에게 추천되어 고사리첨사(高沙里僉使)로 승진 이어 절충장군(折衝將軍)으로 만포(滿浦)첨사‧진도군수(珍島郡守) 등을 지내고 47세가 되던 해 전라좌도 수군절도사(全羅左道 水軍節度使)가 되었다. 함대를 이끌고 적의 수군과 싸워 도처에서 격파했으니 제1차는 옥포(玉浦)‧적진포(赤珍浦)에서 제2차는 사천(泗川)‧당포(唐浦)‧율포(栗浦)에서 제3차는 한산도(閑山島)‧안골포(安骨浦)에서 제4차는 부산포(釜山浦)에서 적선을 모조리 격파하여 대승리를 거두며 완전히 제해권(制海權)을 장악 조정에서는 위의 공으로 그에게 정헌대부(正憲大夫)의 벼슬을 주고 최초로 수군통제사(水軍統制使)에 임명 그러나 순신의 공을 시기하는 사람들로 인해 1595년(선조 29) 2월 서울에 압송 고문 끝에 사형을 받게 된 것을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 정탁(鄭琢)의 반대로 사형이 면제되어 4월 1일 권률(權慄)의 휘하에서 백의종군(白衣從軍)하게 되었다. 12척의 배로써 8월 15일 적의 대부대를 명량(鳴梁)에서 대파하고 11월 18일 노량(露粱)에서 적을 섬멸하였으나 적의 유탄을 맞아 장렬한 최후를 마치니 이때 나이 54세였다. 순신은 지극한 충성 숭고한 인격 위대한 통솔력으로 보아 위대한 인물이니 명(明)나라 진인(陳璘)도 그를 평하여 <有經天緯地之才 補天浴日之功>이라 하여 그를 칭찬하였다. 선조는 특사를 보내어 이를 조문 시호를 내리고 선무일등공신(宣武一等功臣)의 호를 주어 덕풍군(德豊君)에 봉했으며 우의정 및 좌의정을 추증하였다. 고향에는 충신문(忠臣門)을 세우고 정조(正祖) 때에는 영의정을 추증 임금이 친히 지은 비문을 하사하였다.
※ ④ 조헌(趙憲)∶서기 1544(중종 39)∼1592(선조 25) 조선 선조 때의 학자‧의병장. 자(字)는 여식(汝式) 호는 중봉(重峯)‧도원(陶原)‧후율(後栗). 시호는 문열(文烈). 본관은 백천(白川). 응지(應祉)의 아들. 1567년(명종 22) 식년 문과에 급제 교서관(校書館)에 속했다가 정주교수(定州敎授)와 파주(坡州)교수 1572년(선조 5) 홍문관정자(正字)로 왕의 불공(佛供)이 옳지 않음을 극간(極諫)하다 파면 1574년 질정관(質正官)으로 명나라에 다녀와 그곳 문물‧제도의 따를만한 것을 조목조목 적어 「동환봉사(東還封事)」를 내놓았다. 뒤에 박사(博士) 호‧예 이조좌랑 전적(典籍) 감찰 등을 거쳐 통진(通津)현감으로 잘 다스리다가 법을 어긴 내노(內奴)를 취조중 장살(杖殺)하고 부평(富平)에 귀양갔다. 1581년(선조 14) 공조좌랑에 임명 전라도사(全羅都事)로 나가 소(疏)를 올려 연산군 때 공안(貢案)으로 민폐가 되는 점을 개혁할 것을 청하고 율곡(栗谷)등 어진 선비들과 깊이 사귀었다. 1582년 보은(報恩)현감으로 소를 올려 노산군(魯山君∶단종)의 후사(後嗣)를 세울 것과 사육신(死六臣)의 정문(旌門)을 세워 표충(表忠)할 것을 청하고 1586년 공주제독(公州提督)이 되어 선비들의 규율을 엄하게 하고 앞장서서 실천하니 원근(遠近)에서 찾아드는 선비가 많았다.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옥천(沃川)에서 의병을 일으켜 보은의 통로를 차단하는 등 공이 있었으나 순찰사(巡察使) 윤선각(尹先覺)의 시기를 받고 홍성(洪城) 지방에 옮겨가서 의병을 모아 승장(僧將) 영규(靈圭)와 금산(錦山)에서 전라도로 침입하려는 적과 싸우다 700 의병과 함께 전사(戰死)했다. 율곡의 문인(門人) 중 가장 뛰어난 학자의 한 사람으로 「기발이승일도설(氣發理乘一途說)」을 지지하여 율곡의 학문을 계승 발전시켰다. 의병을 일으켰다는 소식을 듣고 행조(行朝)에서는 봉상첨정(奉常僉正)에 임명 이에 또 이조참판동지경연 의금부춘추관사(吏曹參判同知經筵 義禁府春秋館事)에 추증 1604년(선조 37) 이조판서를 가증(加贈)하고 그 사당이 설립 1609년(광해군 1) 표충(表忠)이라는 액(額)이 하사 1663년(현종 4) 고경명(高敬命)‧류팽로(柳彭老)와 함께 모신 금산 순의단(殉義壇)에 액(額)을 하사 1734년(영조 10) 일찌기 그가 질정관(質正官)으로 있던 1574년(선조 7)에 수사(手寫)한 「조천록(朝天錄)」이 왕명으로 간행 1754년(영조 30) 영의정이 추증 뒤에 공자묘(孔子廟)에 함께 모셨다. 그는 고경명(高敬命)‧김천일(金千鎰)‧곽재우(郭再祐)와 함께 임진사충신(壬辰四忠臣)의 하나다.
※ ⑤ 권률(權慄)∶1537(중종 32)∼1599(선조 32) 조선 선조 때의 도원수. 자는 언신(彦愼) 호는 만취당(晩翠堂)‧모악(暮嶽). 시호는 충장(忠莊). 본관은 안동(安東). 철(轍)의 아들. 1582년(선조 15) 식년(式年) 병과(丙科)에 급제 예조좌랑‧호조정랑의 벼슬을 지냈고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광주(光州)목사로 군병을 모집하여 방어사 곽영(郭嶸)에 예속되었다. 용인(龍仁)싸움에서 패했으므로 다시 광주(光州)에 가서 천여 명의 군병을 모집하여 남원(南原)싸움에서 적을 대파하고 나주(羅州)목사가 되어 부임전에 전라도순찰사가 되었다. 전주에서 병사 만 여명을 인솔하고 수원 독산(禿山)에 진치고 적의 서진(西進)을 막았다. 왕이 이 소식을 듣고 어검을 하사하여 군율을 엄정하게 하였다.
행주산성(幸州山城)의 싸움에서는 2천 3백명의 관군과 오백명의 승병을 거느리고 왜병 2만 4천여명의 사상자를 내는 대첩(大捷)의 공으로 6월에 도원수(都元帥)가 되어 전군(全軍)을 지휘 1596년 충청도관찰사에 취임하였고 다시 도원수가 되어 어마(御馬)의 하사(下賜)를 받았다. 죽은 뒤 전공으로 영의정을 추증하고 영가부원군(永嘉府院君)의 추봉(追封)을 받았다.
※ ⑥ 김덕령(金德齡)∶1567(명종 22)∼1596(선조 29)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자(字)는 경수(景樹) 시호(諡號)는 충장(忠壯). 본관은 광산(光山). 붕섭(鵬燮)의 아들. 어려서 글을 배워 장성하면서 우계(牛溪) 성혼(成渾)의 문하(門下)에서 수학하였다. 1593년(선조 26) 담양(潭陽)에서 의병을 일으켜 정돈 선전관(宣傳官)에 임명된 후 권율(權慄)의 휘하에 들어가서 왜병의 호남 진출을 막고 의병장 곽재우(郭再祐)와 협력하여 여러 차례 걸쳐 대군을 무찔렀다. 호익장군(虎翼將軍)이라고 사호(賜號)를 받았으나 1595년(선조 28) 이몽학(李夢鶴)의 난 때에 적의 책략으로 적장과 통한다는 말이 나와 서울로 압송되어 고문에 지쳐 옥중에서 죽었다. 1681년(숙종 7) 그 억울함이 알려져 병조판서로 추증(追贈)되고 광주(光州) 의열사(義烈祠)에 배향(配享)되고 좌찬성(左贊成)에 추증되었다.
(20) 사람과 귀(鬼)가 같은 길로 펼치다
曰 戊子之歲 余侍坐先生 先生偶然歎曰 余觀天象
왈 무자지세 여시좌선생 선생우연탄왈 여관천상
東洋不過五六年 大有兵火 五十年間 人不得安靜之志
동양불과오륙년 대유병화 오십년간 인부득안정지지
然 西洋不過三十年 一大革命 人畜多傷 其時東洋
연 서양불과삼십년 일대혁명 인축다상 기시동양
別無大損 年當赤鼠 天下大一動之象 而繼此五年
별무대손 년당적서 천하대일동지상 이계차오년
선人鬼同路矣 生者幾何 汝亦知之乎 余起而問救人之道
선인귀동로의 생자기하 여역지지호 여기이문구인지도
※ 鼠∶쥐 서, 우물쭈물할 서, 산이름 서, 좀도둑 서, 근심할 서.∶베풀 선, 구할 선, 펼 선, 굳셀 환.
왈(曰) “무자(戊子)의 해에 나는 스승(자하진인)을 모시고 앉았는데, 스승께서 뜻밖에 마치 탄식하여 말씀하시옵기를 ‘내가 하늘의 상(象)을 관찰하니 동양(東洋)은 30년을 지나지 않아 큰 병화(兵火)가 있으며 50년간 사람들이 편안하고 조용한 뜻을 얻지 못한다. 그리고 서양(西洋)은 30년을 지나지 못하여 하나의 큰 혁명(革命)이니 사람과 가축이 많이 다치며 그 때 동양(東洋)은 큰 손해는 별로 없고 병자(丙子)년에 당하면 온누리에 큰 하나의 움직이는 상(象)이며 이어서 5년이 되면 사람과 귀(鬼)가 같은 길을 구하도다. 살아있는 사람은 어떠한가? 너는 또한 알겠느냐?’하셨다. 나는 일어나 사람을 구하는 길(道)을 여쭈었다.”
(21) 양백(兩白)을 알고 삼풍(三豊)을 깨달아야 산다
先生曰 使人人 知兩白 覺三豊則 可以生矣
선생왈 사인인 지양백 각삼풍즉 가이생의
余曰 兩白何辭
여왈 양백하사
스승(자하―진인)님이 말씀하시되 “사람들이 양백(兩白∶似仙‧非仙 또는 浮金‧冷金)을 알고 삼풍(三豊∶精‧氣‧神)을 깨달으면 가히 살리라.”
내가 말하되 양백(兩白)이 무슨 말입니까?
※양백(兩白) : 일적십거도(一積十鉅圖)에서 흑점 45는 소백(小白)이며 그 으뜸이 소백산(小白山)이다. 또 백점 55는 태백(太白)이며 그 으뜸이 태백산(太白山)이다.―『혼돈과 파천왕』최동환 저(著)―
양쪽으로 흰자위가 있는 것으로 눈을 상징한다.―『증산진법경(甑山眞法經)』단예(檀裔) 김준걸(金俊傑)―
※ 삼풍(三豊) : 곧 삼천(三天)으로 일적십거도의 중앙36궁이며 양백사이에 삼풍 즉 삼천이 자리하면 양지(兩地)가 생기며 흑점30으로 역경의상경 30괘이며 백점 34로 역경의 하경 34괘가 생긴다.―『천부경의 예언최동환론』 저(著)
삼라만상(森羅萬象)의 바탕을 이루는 정기신(精氣神)을 말한다.―『.甑山眞法經)』단예(檀裔) 김준걸(金俊傑)―
(22) 부지런히 농사를 지어라
先生曰 此乃洞賓之遊 靑鶴之所 以驚世人 使知道說
선생왈 차내동빈지유 청학지소 이경세인 사지도설
是似仙 非仙之道 乃神敎言之三豊. 乃有後人藏穀之岐
시사선 비선지도 내신교언지삼풍. 내유후인장곡지기
而待歲事 實是指勤農 乃生之敎.
이대세사 실시지근농 내생지교.
※ 岐∶두갈래 기, 둥둥떠다닐 기.
스승(자하진인)님이 말씀하시기를 “여동빈(呂洞賓)하고 청학(靑鶴)이란 곳에서 노닐면서 세상 사람들을 경종(警鍾)케 하며 사람으로 하여금 도(道)를 알게끔 말하니 이것이 신선같으나 신선의 도(道)가 아니며 이에 신교(神敎)의 말씀의 삼풍(三豊∶精‧氣‧神)은 뒤에 사람이 곡식을 감추는 갈림길에서 다음해를 기다리니 진실로 이것이 부지런히 농사짓는 것을 가리키며 살아가는 가르침이니라.” 하셨다.
(23) 정기신(精氣神)으로 진리(眞理)에 들다
曰 人不講三寶之終 終難入於眞理 而自墜于坑
왈 인불강삼보지종 종난입어진리 이자추우갱
※ 墜∶떨어질 추, 잃을 추. 坑∶빠질 갱, 묻을 갱, 구덩이 갱.
가로되 “사람이 정(精)‧기(氣)‧신(神)의 끝마침을 강의하지 않으면 마침내 어렵게 참 도리(眞理)에 들어오며 스스로 구덩이에 떨어지도다.”
※ 삼보(三寶)∶선천(先天) 삼보와 후천(後天) 삼보가 있으니 선천삼보(先天三寶)는 선천진일지신(先天眞一之神) 선천진일지기(先天眞一之氣)와 선천진일지정(先天眞一之精)이며 후천삼보(後天三寶)는 사려신(思慮神) 호흡기(呼吸氣)와 교감정(交感精)이다. 선천삼보는 단(丹)을 가히 만들고 후천삼보는 능히 단(丹)을 만들 수 없다.
(24) 자하도(紫霞島)란?
曰 人不知紫霞島之如何 則可爲正墻面而立
왈 인부지자하도지여하 즉가위정장면이립
※ 霞∶노을 하, 멀 하.
가로되 “사람이 자하도(紫霞島)가 어떠한가를 알지 못하니 곧 정면에 담을 보고 서있는 것과 같다 할 것이다.”
(25) 진시(眞市)는 말로 표현할 수 없다
曰 人不辯眞市 假佛之理 其餘不足論
왈 인불변진시 가불지리 기여부족론
가로되 “사람이 진시(眞市)를 말할 수 없으며 거짓 부처의 이치의 그 나머지는 논하기는 넉넉하지 못하다(모자람).”
(26) 사람이 참되고 착하고 아름답게 살라
曰 人只做浮生 底事其將來何
왈 인지주부생 저사기장래하
※ 做∶지을 자, 지을 주.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덧없는 인생을 짓고 무슨 일을 그 장래(將來)가 어떠한가?”
(27) 동심(童心)인 천진(天眞)으로 돌아가라
曰 衆生愚駭 欲溯本源者鮮
왈 중생우해 욕삭본원자선
※ 駭∶놀랄 해, 북울릴 해. 溯∶빨래한물 삭, 물이름 삭, 거슬러 올라갈 소.
말씀하시기를 “중생(衆生)이 어리석게 놀래니 주장이 되는 근원으로 거슬러 올라가려는 사람은 드물다.”
(28) 선조(先祖)의 도(道)를 알고 행하라
曰 人不知其祖先之道 而只從他 便是風麻漢
왈 인부지기조선지도 이지종타 편시풍마한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그 선조(先祖)의 도(道)를 알지 못하고 다만 다른 것을 쫓는다(따른다). 이것이 풍마(風魔)①한 놈이다.”
※ ① 풍미한(風靡漢)은 잘못. 풍마한(風魔漢)이 옳음. 미친놈 실성한 놈, 정신이 이상해진 놈.
(29) 술과 색(色)을 경계하고 먹고 마시는 것을 알맞게 하라
曰 人之長生之妙 戒酒色節飮食 最上 第一要法
왈 인지장생지묘 계주색절음식 최상 제일요법
在生食一道 後天自然從先天法者衆矣
재생식일도 후천자연종선천법자중의
말씀하시기를 “사람의 장생(長生)①의 묘는 술과 계집을 경계함(삼가함)과 먹고 마시는 것을 알맞게 하는 것이 맨 위 가장 좋은 중요한 법(法)이니 식물을 날 것으로 먹는 하나의 길에 있다. 뒤에 세상에는 자연(自然)에 쫓아 선천(先天)②의 법을 따르는 사람이 여럿일 것이다.”
※ ① 장생(長生)∶장구(長久)히 삶. 오래도록 삶. 천도교(天道敎)에서 육신(肉身)의 장수(長壽) 영(靈)의 불멸(不滅) 사업의 유전(遺傳)을 합하여 일컫는 말. 하늘과 땅의 양기(陽氣)가 계속 되살아나와 끊임없이 단(丹)을 단련하면 곧 양기(陽氣)를 잡아 가두어 여러 겹으로 포개어 쌓아 이룬다.
※ ② 선천(先天)∶생성(生成)된 이전(以前).
(30) 공부하는 사람은 태을(太乙)을 아니할 수 없다.
曰 太乙 天下人測正神 做工者 不可不善呼名
왈 태을 천하인측정신 주공자 불가불선호명
※ 做∶지을 주.
말씀하시기를 “태을(太乙)①은 온누리의 사람이 올바른 신(神)을 헤아림이다. 공부 법을 만들은 사람은 아니할 다른 도리가 없으므로 마땅히 좋은 이름을 부를 것이다.”
※ ① 태을(太乙)∶㉠ 태일(太一‧泰一) ㉡ 태을성(太乙星). 중국 철학에서 천지 만물의 출현 또는 성립의 근원. 우주의 본체. 도교(道敎)에서 천(天)을 주재하는 신(神)의 이름 또는 그 천신(天神)이 살고 있다고 여겨지는 별. 곧 태을성, 『태을신수(太乙神數)』.
(31) 평생(平生) 상제(上帝)를 공경하라
曰 人之平生做工 敬上帝如對第一要法
왈 인지평생주공 경상제여대제일요법
말씀하시기를 “사람의 세상에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동안 일을 하는 것은 상제(上帝)①를 대하는 것과 같이 공경함이 가장 좋은 중요한 법이다.”
※ ① 상제(上帝)∶옥청천(玉淸天)의 원시천존(元始天尊).
(32) 정(正)으로써 하나(一)가 된다
曰 人之工夫 以正爲一 衆愚不知要領 只從衆口 殆若一犬
왈 인지공부 이정위일 중우부지요령 지종중구 이약일견
吠月 衆犬吠聲
폐월 중견폐성
※ 吠∶짖을 폐, 땅이름 폐.
말씀하시기를 “사람의 공부는 정(正)으로써 하나(一)가 된다. 중생(衆生)들이 어리석어 일을 하는 데에 꼭 필요한 묘리(妙理)를 알지 못하고 다만 여러 입(뭇입)에 따르는 것이니 위태롭다. 만일 개 한 마리가 달을 보고 짖으면 뭇 개들이 따라서 짖다(진상도 모르는 채 남따라 말하다).”
(33) 겉은 화려하나 실속은 없다
曰 自麗中至今 上無其君 下無其臣 但知軋轢爲尙
왈 자려중지금 상무기군 하무기신 단지알력위상
今人言必稱宋毁元 然 乃不過是知事浮華 從風無覺
금인언필칭송훼원 연 내불과시지사부화 종풍무각
元是吾族中人也 可悲
원시오족중인야 가비
※ 軋∶앗을 알, 버틸 알, 수레 삐걱거릴 알. 轢∶수레바퀴에 치일 력, 서로 부닥칠 력.
말씀하시기를 “고려(高麗) 중기(中期)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위로는 그 임금이 없고 아래로는 그 신하가 없었다. 다만 서로 의견이 맞지 아니하여 사이가 좋지 않고 자주 다툼을 숭상하게 된 것을 알겠다. 지금 세상의 사람들은 말을 할 때마다 반드시 송(宋)나라를 무너뜨린 것은 원(元)나라라고 한다. 그러나 비로소 이것이 겉은 화려하나 실속이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아는데 지나지 못한다. 바람을 쫓는 것이어서 깨달음이 없다. 먼저 이것이 우리 겨레 안의 사람이다. 가히 슬프다.”
(34) 군졸이 공자묘를 지키다
曰 元本是金 而至粘沒鳴時 橫行支那諸州 破宋慶府時
왈 원본시금 이지점몰명시 횡행지나제주 파송경부시
(今充州府) 衍聖公孔端 反避亂南去 而軍卒
(금충주부) 연성공공단 반피난남거 이군졸
欲掘孔子墓者 卽斬之 告於衆 曰孔子時中 聖人不可犯也
욕굴공자묘자 즉참지 고어중 왈공자시중 성인불가범야
告示曰 若犯慶府 曲阜縣西北八里孔子墓者斬
고시왈 약범경부 곡부현서북팔리공자묘자참
此亦知道者也
차역지도자야
※ 粘∶붙을 점, 붙일 점, 끈끈할 점. 衍∶성할 연, 넓을 연, 물이넘칠 연, 벋을 연, 상자 연, 방자할 연, 놀 연, 걸찬 땅 연, 아름다울 연, 흐를 연. 掘∶팔 굴, 굴팔 굴, 우뚝할 굴, 뚫을 궐. 斬∶끊을 참 ,베일 참, 목베일 참, 죽일 참, 상복에 도련아니할 참, 거상입을 참.
말씀하시기를 “원(元)①나라 뿌리는 이것이 금(金)②나라이며 붙이여 생활을 꾸려나갈 방편이 없을 때 이르러 중국의 모든 고을을 거리낌 없이 제멋대로 행동하여 송(宋)나라의 경부(慶府) (지금의 充州府)를 파할 때 구성공단(衢聖公端)이 도리어 난리를 피하여 남쪽으로 가게 되니 공자묘(孔子墓)를 파려고 하자 군졸(軍卒)이 곧 칼로 베고 여러 사람에게 고(告)하기를 ‘공자(孔子) 생존 할 때 성인(聖人)은 가히 범하지 못한다. ’ 고시(告示)하여 이르기를 ‘만일 경부(慶府) 곡부현(曲阜縣) 서북(西北) 8리(里) 공자묘(孔子墓)를 범하는 사람은 참(斬)한다. ’ 하였으니 이 또한 도(道)를 아는 사람이다.”
※ ① 원(元)∶중국 왕조의 하나. 13세기 중엽 몽고 민족이 중국에 침입하여 세운 나라. 다른 민족으로써 중원(中原)을 통일 지배한 최초의 나라임. 존속(A. D. 1271∼1368년간).
※ ② 금(金)∶퉁구스족계의 여진족(女眞族)에 의하여 건립한 왕조. 12세기 초 북만주에서 아골타(阿骨打)의 지도 아래 금조를 건국하고 이어 송(宋)을 멸하였음. 도읍은 회령(會寧) 뒤에 연경(燕京) 변경(卞京)으로 옮겼음. 9세(世)로 원(元)나라 태종(太宗)에게 망했음. 존속(A. D. 1115∼1234)
※ ③ 공문(孔門)∶공자(孔子)의 유학(儒學)을 믿고 따르는 학문의 가르침을 받는 제자.
(35) 돈을 허비하며 우상(偶像)을 숭배한다
曰 人情多私 空費良金 虛禱偶像者 多矣
왈 인정다사 공비양금 허도우상자 다의
此不過是誤落虛影子
차불과시오락허영자
※ 禱∶빌 도.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본디 가지고 있는 감정이나 심정이 개인의 일(개인적인 성질)이 많으며 좋은 금(金)을 쓸데없는 비용을 하고 우상(偶像)①에게 헛되이 비는 사람이 많다.
이는 헛된 그림자에 잘못 떨어지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 ① 우상(偶像)∶나무‧돌 또는 쇠붙이 따위로 만든 신불(神佛)이나 사람의 상(像). 미신(迷信) 등의 대상이 되는 신(神). 하느님에 대하여 인위적(人爲的)으로 만들어 낸 신(神)의 형상이나 개념.
(36) 살아있는 동안에 덕(德)을 닦아라
曰 近世所謂死而未榮者 都被欺於僧徒之浮說
왈 근세소위사이미영자 도피기어승도지부설
生時不修德 安敢望死后榮
생시불수덕 안감망사후영
말씀하시기를 “가까운 지난날의 세상에 이른바 죽어서 아직 영화하지 못한 것은 중[僧]들의 근거가 없는 소문에 모두 속임을 당한 것이며 살아있는 동안 덕(德)을 닦지 않고 어찌 감히 죽은 뒤에 영화를 바라겠는가?”
(37) 큰 도(道)는 중용(中庸)이며 진리이다
曰 大道無偏黨 只做底眞理
왈 대도무편당 지주저진리
말씀하시기를 “큰 도(道)는 어느 한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고 공평하고(중립의 태도를 가짐) 다만 진리(眞理)를 만든다(짓는다).”
(38) 생사(生死)는 자연의 도리이다
曰 人之生死 如雨而晴 晴而雨之 不過
왈 인지생사 여우이청 청이우지 불과
말씀하시기를 “사람의 태어나고 죽음이란 비가 내리면 개이고 개이면 비가 내리고 하는 것과 같음에 지나지 않는다.”
(39) 도(道)란 음양(陰陽)이다
曰 古之人曰 君子之道 造端乎夫婦 以乾坤之理
왈 고지인왈 군자지도 조단호부부 이건곤지리
言道其實 陰陽不過
언도기실 음양불과
말씀하시기를 “옛 사람(子思)이 말씀하시기를 ‘군자(君子)의 도(道)의 처음은 부부(夫婦)에서 만들어진다. ’는 까닭은 건곤(乾坤)의 이치이며 여기서 도(道)란 그 실제로 음양(陰陽)에 지나지 않는다.”
(40) 음양(陰陽)은 상하(上下)가 없는 일체(一體)이며 도(道)이다
曰 世俗 以夫重婦輕爲說 此不過各自尊之意 論陰陽之理
왈 세속 이부중부경위설 차불과각자존지의 논음양지리
無上下而 只是一體是道.
무상하이 지시일체시도.
말씀하시기를 “세상에 흔히 있는 풍속에서 지아비는 무겁고 지어미는 가볍다는 설(說)이 있으나 이는 각자 스스로 높이는 뜻에 지나지 않으며 음양(陰陽)의 이치는 논하면 위와 아래가 없으면 다만 이것이 한 몸(一體)이며 이것이 도(道)이다.”
(41) 온누리가 공전법(公田法)을 시행한다
曰 從玆而後 未及一甲 天下大同 用公田法矣
왈 종자이후 미급일갑 천하대동 용공전법의
말씀하시기를 “이 뒤의 60년이 못미치어 온누리가 번영하여 화평하게 되면 공전법(公田法)①을 쓰게 되리라.”
※ ① 공전법(公田法)∶소유권(所有權)과 수조권(收租權)이 국가 기관에 있는 토지제도.
(42) 삼정(三精)과 구령(九靈)을 수련하다
曰 人身之最可修煉 三精九靈
왈 인신지최가수련 삼정구령
말씀하시기를 “사람 몸으로 가장 옳게 수련할 것은 삼정(三精)①과 구령(九靈)②이다.”
※ ① 삼정(三精)∶도문(道門)에서는 인간(人間)은 태청(太淸) 양화(陽和)의 기(氣)로 이루어진 태광(台光) 음기(陰氣)가 변하여 이루어진 상령(爽靈) 잡다(雜多)한 음기(陰氣)로 이루어진 유정(幽精)등 세가지 혼(魂)이 있어 수련자(修煉者)는 음잡(陰雜)의 기(氣)를 제어(制御)하여 인체(人體)에 청양(淸陽)의 기(氣)가 늘 머물도록 하여 늙지 않는데에 이르게 하는 섭양(攝養)의 법(法)이 있다. <<태상제삼시구충보생경(太上除三尸九蟲保生經)>>에 의하면 삼정(三精) 또는 삼혼(三魂)은 앞에서 언급(言及)한 바와 같이 상령(爽靈)‧태광(台光)‧유정(幽精)을 말하는데 “간장(肝臟) 밑에 사람의 모습을 하고 푸른 옷(靑衣)속에 누런 옷(黃衣)을 걸치고 있으며 매월 초 3일‧13일‧23일 저녁이 되면 밖에 나가 노니는데 응당히 위를 향하여 반듯이 눕고 베개를 없애고 발을 펴고 손을 가슴위에서 교차하고 눈(眼)을 합하고 숨을 멈추고 세번 이(齒)를 마주 치고 이렇게 세번을 하면 심중(心中)의 붉은 기(赤氣)가 커져 달걀처럼 되고 인후(咽喉)의 안[內]으로부터 쫓아 진광(眞光)이 흩어져 나와 온몸을 덮는 것처럼 하여 미열(微熱)이 느껴질때 삼정(三精)의 이름을 부르고 진언(眞言)을 외우면 혼신(魂身)이 안정(安靜)되고 재환(災患)이 일어나지 않고 사마(邪魔)가 복종하고 몸은 편안해지고 도(道)가 이루어지고 영원히 우고(憂苦)가 없어지리라.” 하였다.
옥추보경(玉樞寶經)안의 백옥섬(白玉蟾)진인께서 말씀하시기를 “태광(台光)은 남녀가 서로 성교(性交)하여 아이를 갖는데서 비롯함이며 상령(爽靈)은 혼(魂)이요 유정(幽精)은 넋(魄)이다.”하였다.
※ ② 구정(九精)∶사람의 몸안의 본신(本神)이니 천생(天生)은 현빈(玄牝)이며 무영(無英)은 젖먹이 유아(乳兒)이며 현주(玄珠)는 곡신(谷神)이며 정중(正中)은 니환부인(泥丸夫人)이며 혈단(孑丹)은 영대신(靈臺神)이며 회회(回回)는 귀권신(貴券神)이며 단원(丹元)은 심신(心神)이며 태연(太淵)은 신궁(腎宮)이며 영동(靈童)은 오장(五臟)을 다스리는 신(神)이다.”
(43) 기(氣)를 타는 것은 신(神)과 기(氣)이다
曰 人之所乘氣 龍虎而已
왈 인지소승기 용호이이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기(氣)를 타는 것은 용(龍∶神)과 호(虎∶氣)일 따름(뿐)이다.”
※ 용(龍∶神)과 호(虎∶氣)가 서로 교합하여 심장(心臟)의 정양(正陽)의 기(氣)를 캔다.
(44) 옛 역법(曆法)은 천지인(天地人)으로 나누었다
曰 古人之曆法 各分而天地人 三要而已
왈 고인지역법 각분이천지인 삼요이이
“말씀하시기를 옛사람들의 역법①은 “하늘‧땅‧사람 세 가지 중요한 것으로 나누었을 뿐이다.”
※ ① 역법(曆法)∶천체(天體)의 주기적 현상을 기준(基準)하여 절후(節候)와 날짜를 정하는 방법. 책력(冊曆)을 만드는 방법.
(45) 온누리가 앞으로 천력(天曆)을 쓸 것이다
曰 天地有而人爲主 故人曆最先 天地繼後 後又用人曆
왈 천지유이인위주 고인역최선 천지계후 후우용인력
更用天曆 通萬古循環之理 後天之先天 在此矣
갱용천역 통만고순환지리 후천지선천 재차의
天下將用天曆而已 西方之曆 本於東圓天之理
천하장용천역이이 서방지역 본어동원천지리
말씀하시기를 “하늘과 땅이 있어 사람이 주인이 되며 그러므로 사람의 역(曆)이 가장 먼저 나와 하늘과 땅의 뒤를 잇고 뒤에 또 인력(人曆)을 사용하였고 다시 천력(天曆)을 사용하니 한없이 오랜 세월을 통하여 사물(事物)이 성하고 쇠하여짐이 서로 바뀌어 도는 이치를 통하였으니 후천(後天)①과 선천(先天)②에 있다. 온누리가 앞으로 천력(天曆)③을 쓸 뿐이며 서방(西方)의 역(曆)은 본시 동방(東方)의 둥근 하늘의 이치이다.”
※ ① 後天∶㉠ 생성(生成)된 이후(以後). ㉡ 성질 체질 질환 등을 태어난 후에 여러 가지 경험이나 지식에 의하여 지니게 된 것. ㉢ 천도교(天道敎)가 창건(創建)된 이후의 세상. 곧 경신(庚申 단기 4193\<서기 1860\>)년 음력 4월 5일 이후의 세상.
※ ② 선천(先天)∶㉠ 생성(生成)되기 이전(以前). ㉡ 성격 체질 병 등을 날 때부터 몸에 지니고 있음.
※ ③ 천력(天曆)∶태양력(太陽曆). 지구(地球)가 해의 둘레를 1회전(回轉)하는 동안을 1년으로 한 달력. 신력(新曆). 줄여서 양력(陽曆).
(46) 혼춘(渾春)과 양평(壤平) 사이에 도읍이 정해진다
曰 世人口稱鷄龍 是將國都 此皆不知天理而妄誕說
왈 세인구칭계룡 시장국도 차개부지천리이망탄설
後天國都 渾椿壤平間 不知天道者迷矣
후천국도 혼춘양평간 부지천도자미의
※ 誕∶클 탄, 이에 탄, 기를 탄, 속일 탄, 넓을 탄, 허탄할 탄, 탄생할 탄, 방탕할 탄. 渾∶흐릴 혼, 오랑캐 혼, 섞을 혼, 혼후할 혼. 椿∶참죽나무 춘, 대추나무 춘, 어르신네 춘.
말씀하시기를 “세상 사람들이 입으로 충청도 계룡산(鷄龍山)을 일컬어 이것이 장차 나라의 도읍지라고 하나 이 모두다 하늘의 이치를 알지 못하고 망녕되이 속이는 말이다. 후천(後天) 세상의 나라 도읍은 혼춘(渾春)과 양평(壤平)사이에 정해질 것이다. 하늘의 도(道)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미혹할 것이다.”
(47) 제3파 협야종(挾野種)에서 천황(天皇)들이 나온다
鷄龍之名 不透理 亦難曉 天之終五說 天五地五人五
계룡지명 불투리 역난효 천지종오설 천오지오인오
天地人正數 不可違 鷄龍乃東一之時 神道尊崇之地
천지인정수 불가위 계룡내동일지시 신도존숭지지
神敎化師 以國師 居而以敎導天下之神都地
신교화사 이국사 거이이교도천하지신도지
非王子都之地 先生旣有敎
비왕자도지지 선생기유교
曰 後天開拓神祖故彊 必是天皇 第三派挾野種在焉
왈 후천개척신조고강 필시천황 제삼파협야종재언
※ 彊∶지경 강, 갈피 강, 굳셀 강, 변방 강, 한끝 강. 挾∶낄 협, 가질 협, 도울 협, 감출 협, 품을 협, 띠 협.
계룡(鷄龍)의 이름은 이치에 통하지 못하며 또한 깨닫기 어렵다. 하늘의 다섯으로 끝마치는 설(說)이니 천오(天五) 지오(地五) 인오(人五)이니 하늘‧땅‧사람에 바른 수(正數)이니 가히 어길 수 없다. 계룡(鷄龍)은 비로소 동방(東方) 한 때이니 신도(神道)를 높이 숭앙하는 땅(곳)이다. 신교(神敎)는 국사(國師)로써 스승을 삼고 신도지(神都地)에 살면서 온누리를 가르쳐 이끌어 주니 임금의 도읍의 곳이 아니다. 선생(자하진인)께서 이미 가르침이 있었으니 말씀하시기를 “후천(後天)에는 신조(神祖)의 옛 영토(領土)를 개척(開拓)하니 반드시 이것이 천황(天皇)이며 제3파의 협야종(挾野種)에 있다.” 하였다.
(48) 1만 2천 도인이 출세 대교주(大敎主) 출현
曰 後天井 有萬二千道 有萬二千人 人能日行萬里
왈 후천정 유만이천도 유만이천인 인능일행만리
飛揚天地如鳶飛 處處生不夜城 然後 眞正大敎主出矣
비양천지여연비 처처생불야성 연후 진정대교주출의
※ 鳶∶솔개 연, 연 연.
말씀하시기를 “후천(後天) 맨 처음에 1만2천 도인(道人)이 출세하며 이때에는 사람마다 하루에 만리를 가는데 천리를 날아 다니는 것이 솔개가 하늘을 날으는 모양 같더라. 곳곳에 불야성(不夜城)①을 이루며 참되고 바른 대교주(大敎主)가 출현하리라.”
※ ① 불야성(不夜城)∶밤에도 대낮같이 밝고 번화한 곳.
(49) 서리를 밟으면 겨울이 닥치니라
曰 大明之萌 根於金之用 大明曆之日 天道之機微
왈 대명지맹 근어금지용 대명력지일 천도지기미
未嘗不 履霜而堅氷至矣
미상불 이상이견빙지의
※ 履∶가죽신 리, 신을 리, 밟을 리 ,녹 리. 萌∶풀싹 맹, 비롯할 맹, 맹동할 맹, 밭갈 맹, 움직이지 않는 모양 맹.
말씀하시기를 “환하게 밝은 싹은 가을 결실(結實) 기운[金]을 쓰는 때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환하게 밝은 태양력(太陽曆)을 쓰며 하늘의 도(道)와 기틀이 희미함이 아닌게 아니라 서리를 밟으면 앞으로 물이 얼 겨울이 닥치니라.”
(50) 우리 종교가 세계의 제일의 진리가 된다
曰 惟我倧敎之 將爲天下一 其機微 萌於仁祖也
왈 유아종교지 장위천하일 기기미 맹어인조야
※ 倧∶한배 종, 신인 종.
말씀하시기를 “오직 우리의 종교가 장차 온 누리의 제일의 진리가 되니 그 기틀은 어진 조상으로부터 싹 텄다.”
(51) 묵묵히 앉아 맑은 맘으로 천리(天理)를 체득(體得)하라
曰 修養之法 不在多言 但黙坐澄心 體認天理 自然無一毫
왈 수양지법 부재다언 단묵좌징심 체인천리 자연무일호
私欲之發 斯眞是思皇 如此之久 充養完粹 無復圭角氣
사욕지발 사진시사황 여차지구 충양완수 무복규각기
※ 澄∶맑을 징, 술이름 징. 粹∶정할 수, 순수할 수. 圭∶홀규 일영표 규, 달 규, 저울눈 이름 규.
말씀하시기를 “맘과 몸을 단련하여 품성이나 지식이나 도덕을 닦는 법(法)은 수다스럽게 말이 많은데 있지 않고 다만 말 없이 조용히 앉아 맑은 맘으로 천지(天地) 자연(自然)의 이치를 인식(認識)①하여 저절로 사사로이 하려하는 것이 한 개의 가는 털(극히 작은 정도) 만큼도 없게 하고 이 참됨으로 이것이 황제를 생각함이니 이와같이 오래되면 기르는 것이 가득차서 완전히 순수하여 다시는 규각(圭角)②의 기(氣)가 없을 것이다.”
※ ① 인식(認識)∶㉠ 어떤 사항에 관하여 분명히 알고 그 뜻을 바로 이해하는 일. ㉡ 심리학에서는 대상을 감지(感知)하고 이것을 분별 판단하는 의식의 작용. ㉢ 철학에서는 이성(理性)에 의하여 사물의 성질 사물간의 관계에 관하여 바른 판단을 내리는 일.
※ ② 규각(圭角)∶㉠ 물건이 서로 들어맞지 않음. ㉡ 말이나 행동이나 뜻이 서로 맞지 않음.
(52) 정성껏 삼일신고(三一神誥)」를 외우라
曰 修工之時 擇處山中 精室終日端坐 誦誥眞是要法
왈 수공지시 택처산중 정실종일단좌 송고진시요법
如此日久 精純之氣 達于面目
여차일구 정순지기 달우면목
※ 誥∶깨우쳐고할 고, 가르칠 고.
말씀하시기를 “도(道)를 닦는 공부를 할때는 산(山) 속에 고요한 집을 택하여 아침부터 저녁까지의 사이에 단정(端正)하게 앉아 삼일신고(三一神誥)①를 외우니 참으로 이것이 중요한 방법이며 이와 같이 날이 오래 되면 정순(精純)한 기가 얼굴과 눈에 사무치리라.”
※ ① 삼일신고(三一神誥)∶단군(檀君)이 한울‧한얼‧한울집‧누리‧참이치 등 다섯 가지를 삼천단부(三千團部)에게 가르쳤다고 하는 말. 이것을 신지(神誌)가 써 둔 고문(古文)과 왕수긍(王受兢∶류정수의 제101대 할아버님)이 번역한 은문(殷文)은 모두 없어졌고 지금은 고구려 때 번역하고 발해(渤海)때 해석한 한문(漢文)으로 된 것만이 남아 있다고 한다.
(53) 여러 사람들이 지름길을 택함으로 마귀의 길로 떨어진다
曰 衆人每每多耽捷俓 墜於魔路
왈 중인매매다탐첩경 추어마로
※ 耽∶귀축처질 탐, 즐길 탐, 웅크리고볼 탐, 즐거운 탐, 길고 멀 탐, 그릇될 탐. 捷∶사냥할 첩, 이길 첩, 첩서 첩, 빠를 첩. 石巠??은 잘못 쓰임. 俓이 옳음. 곧을 경. 墜∶떨어질 추, 잃을 추. 魔∶마귀 마, 귀신 마, 마술 마.
말씀하시기를 “여러 사람들은 번번히(늘) 많이 빠른 것을 탐함으로 마귀의 길로 떨어진다.”
(54) 큰 도는 천지인신(天地人神)을 꿰뚫었다
曰 吾皇大道 卽天卽地卽人卽神 一貫而已 亘古亘今
왈 오황대도 즉천즉지즉인즉신 일관이이 긍고긍금
道說多岐 皆유乎此 範圍中
도설다기 개유호차 범위중
※囿∶엔담 유, 고루할 유, 논밭 유, 나라동산 육. 亘∶베풀 선, 구할 선, 펼 선, 굳셀 환, 뻗칠 긍, 통할 긍, 극진할 긍, 마침 긍.
말씀하시기를 “나의 옥황(玉皇) 큰 도(道)는 곧 하늘이며 곧 땅이며 곧 사람이며 곧 신(神)이니 하나의 이치로써 모든 일을 꿰뚫을 뿐(따름)이다. 예나 지금이나 통하여 도(道)의 설명은 갈림길이 많으나 모두다 이 범위(範圍) 가운데에 있다”
(55) 승천하신 단군과 기자는 신(神)으로 변함
曰 世人稱 檀君墓 箕子墓 皆是衣履之葬 實非體魄地
왈 세인칭 단군묘 기자묘 개시의리지장 실비체백지
化神升天之人 肉體不脫也 而與天地共矣 不知者
화신승천지인 육체불탈야 이여천지공의 부지자
以此說歸誕中
이차설귀탄중
※ 箕∶별이름 기, 키 기, 바람의신 기, 걸터앉을 기. 魄∶넋 백, 넋잃을 박, 넋잃을 탁.
말씀하시기를 「‘단군묘(檀君墓)’ ‘기자묘(箕子墓)’를 말하나 이것은 옷과 신발을 장사지낸 것이며 두 분은 신(神)이 되어 하늘에 올라 실지 송장을 남기지 않으신 분이기 때문에 하늘과 땅과 더불어 같으시다. 알지 못하는 사람은 이 설(說)이 속이는 것으로 돌아가는 중이다. 」
(56) 정기신(精氣神)의 참을 닦아 기르라
曰 人之命 都不有定數 殤者夭者 莫不由乎
왈 인지명 도불유정수 상자요자 막불유호
衆之不得其養 三寶之眞
중지부득기양 삼보지진
※ 殤∶어려서죽을 상. 夭∶어여뿔 요, 얼굴빛 화할 요, 무성할 요, 재앙 요, 일찍 죽을 요, 굴할 요, 배속에 든 아이 요, 끊어 죽일 오, 어릴 오.
말씀하시기를 “사람의 목숨은 모두 정해진 수(數)에 있지 않으니 어려서 죽는 사람이 있고 일찍 죽는 사람이 있으니 뭇 사람들이 그 정기신(精氣神) 세 보배의 진리를 수양(修養)하는 방법(方法)을 얻지 않은 까닭이 무엇인가?”
(57) 마음이 바르지 않으면 삿된 것이 침범한다
曰 大道有正邪 何有侵被邪者 其心先不正
왈 대도유정사 하유침피사자 기심선부정
故 世人之做出邪說者 總是心病
고 세인지주출사설자 총시심병
말씀하시기를 “대도(大道)는 정(正)과 사(邪)가 있으며 어째서 삿된 것의 침범을 받음이 있는가? 그 맘(心)이 먼저 바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상 사람들이 사설(邪說)을 만들어 내는 것은 모두 이것이 심병(心病)이다.”
(58) 선후천(先後天)의 바른 진리로 헤아리라
曰 先天後天 正理一揆.
왈 선천후천 정리일규.
※ 揆∶헤아릴 규, 법도 규, 벼슬 규.
말씀하시기를 “선천(先天)과 후천(後天)의 바른 이치를 하나로 헤아린다.”
(59) ꡔ삼일신고ꡕ의 도훈(道訓)은 입도의 관건
神祖天符一部 修道者之一命脈 斯須之道源 道訓
신조천부일부 수도자지일명맥 사수지도원 도훈
入道之一關鍵
입도지일관건
※ 鍵∶열쇠 건, 수레굴대 건.
신조(神祖)①의 천부(天符)② 한 부분은 도(道)를 닦는 사람들의 하나의 명맥(命脈)③이며 이는 모름지기 ꡔ삼일신고(三一神誥)ꡕ 안의 도원(道源)과 도훈(道訓)은 입도(入道)④의 하나의 관건(關鍵)이다.
※ ① 신조(神祖)∶신시(神市)의 제1세왕으로 환웅(桓雄) 또는 거발환(居發桓) 서역(西曆) B.C.3898∼3804로 재위 94년.
※ ② 천부(天符)∶천부경. 대종교(大倧敎) 단군교(檀君敎)의 기본 경전. 대종교의 설명에 의하면 한배하느님께서 환웅을 통해 백두천산에 내려와 천하만민에게 직접 가르친 것으로써 교화를 끝내고 어천(御天 승천)하면서 내렸다 하는 ≪삼일신고(三一神誥)≫와 더불어 교훈경전에 속한다. 한웅의 명을 받고 천부경을 녹서(鹿書)로 신지(神誌)가 표기(表記)한 태백산에 있는 단군전비(檀君篆碑)를 최치원(崔致遠)님이 이두로 번역하였고 오늘날의 것은 묘향산에서 10년간 수도한 계연수(桂延壽)가 1916년에 암벽에 새겨진 내용을 발견하여 이듬해 대종교에 전하였다고 하는데 1975년 교단의 교무회의에서 경전으로 공인하였으며 1983년의 ≪대종교요감≫에 처음 경전으로 수록되었다. 3장 81자로 구성되었는데 이것의 연역이 360자로 이루어진 ≪삼일신고≫이고 ≪삼일신고≫의 귀납은 다시 이 경전이 된다고 한다. 천지장(天之章)은 대우주 생성의 원리를 다루었고 지지장(地之章)은 만물의 생성을 다루었고 인지장(人之章)은 인간 궁극의 문제를 다루었다.
※ ③ 명맥(命脈)∶㉠ 목숨과 혈맥(血脈). ㉡ 살아가는 데 요긴한 것. 목숨을 이어가는 근본. ≪전(轉)≫ 중요한 사물을 뜻함.
※ ④ 입도(入道)∶㉠ 불도(佛道)에 들어가는 일 또는 그 사람. ㉡ 도교(道敎)를 믿어 도사(道士)가 됨.
※ ⑤ 관건(關鍵)∶㉠ 빗장과 자물쇠. 열쇠. 문단속. ㉡ 사물의 중요한 부분.
(60) 수도자는 그림자도 부끄럽지 않다
曰 今人身爲惡 而祈福于物象 何福之有 可愧者此也
왈 금인신위악 이기복우물상 하복지유 가괴자차야
修道者之行 獨行不愧影 獨寢不愧衾而已
수도자지행 독행불괴영 독침불괴금이이
※ 衾∶이불 금.
말씀하시기를 “지금 사람이 몸이 모질게 되는 것은 물상(物象)①에게 복을 빌면은 무슨 복(福)이 있겠는가? 이는 가히 부끄러운 것이다. 도(道)를 닦는 사람의 행동은 혼자서 길을 걸어가도 그림자가 부끄럽지 않고 혼자서 잠을 자도 이불이 부끄럽지 않을 따름(뿐)이다.”
※ 물상(物象)∶㉠ 물체의 모습. ㉡ 자연의 풍경(風景).
(61) 천자(天子)란 통일천하를 이룬 뒤에 말하라
曰 上古以降 中國與東方 勿論編史氏 不知天道之正 曰
왈 상고이강 중국여동방 물론편사씨 부지천도지정 왈
正統閏位 纂賊之說 區別甚矣 此皆不過自私其私也
정통윤위 찬적지설 구별심의 차개불과자사기사야
非正論 三代以後 稱天吏者無矣 國法異於私家之計
비정론 삼대이후 칭천리자무의 국법이어사가지계
宗支一片 區區爲王 非天命者 周末之西漢蜀 唐宋之後孫
종지일편 구구위왕 비천명자 주말지서한촉 당송지후손
稱帝稱王 難免列國例 盖天子之稱 統一天下然後說也
칭제칭왕 난면열국예 개천자지칭 통일천하연후설야
世人口稱 宋德隆盛云 汝曾聞於先生則
세인구칭 송덕융성운 여증문어선생즉
曰 宋不可稱有正統云 宋之區國時 金夏遼鼎足 不入貢
왈 송불가칭유정통운 송지구국시 금하요정족 불입공
亦是列國而已 所謂宋朝論臣 不過事纂朝之餘也
역시열국이이 소위송조논신 불과사찬조지여야
※ 纂∶책편찬할 찬, 모을 찬, 이을 찬. 蜀∶촉규화벌레(해바라기벌레) 촉, 큰닭 촉, 땅이름 촉. 遼∶멀 료, 강이름 료, 나라이름 료. 鼎∶솥 정, 바야흐로 정, 늘어질 정, 새로울 정, 마땅할 정, 세갈래 정. 宋∶송나라 송, 성[姓]송.
말씀하시기를 “오랜 예날 이후(以後)로 중국(中國)과 동방(東方)은 역사(歷史)를 편집(編輯)하여 엮는 분은 말할 것도 없이 천도(天道)가 바른(正) 것을 알지 못하였다.” 말씀하시기를 ‘정통(正統)과 정통(正統)이 아닌 왕위(王位)는 도적이라고 책을 편찬하여 견해나 주장하는 바로 서로 다름을 구별(區別)함이 심하다. 이는 모두 그 사사로움이 스스로(저절로) 사사롭게 되는 것에 지나지 않다. 정론(正論)①이 아니고 삼대(三代)② 이후로 천리(天吏)③라고 일컫는 것은 없다. 나라 법(法)이 사삿집의 계획과는 다르다. 종중(宗中)에서의 종파(宗派)와 지파(支派)의 계통의 한 조각을 구구(區區)④히 왕(王)이 되나 하늘의 명(命)을 받은 것이 아니다.
주(周)나라 말(末)의 서쪽에 한촉(漢蜀)과 당(唐) 송(宋)의 후손(後孫)들이 황제(皇帝)라 일컫고 임금이라 일컫는 것이 여러 나라였는데 예(例)⑤를 면하기(벗기) 어렵다. 무릇 천자(天子)라 일컬음은 온 누리를 하나의 유기적(有機的)인 통일체로 되게 한 연후(然後)에 설(說)이다. 세상 사람들은 입으로 일컫기를 ‘송(宋)나라 덕(德)이 몹시 성하고 기운차게 일어났다’고 하나 너희들은 일찍이 스승(자하진인)께서 말씀하시기를 ‘송(宋)은 가히 정통(正統)이 있다고 일컬음은 옳지 않다’고 하셨으며 송(宋)이 한 구역의 나라였을 때 금(金)나라 하(夏)나라 요(遼)나라 세 나라가 같이 서로 벌여 대립(對立)하고 있었기에 조공(朝貢)⑥이란 옳지 않고 또한 이것이 여러 나라일 뿐(따름)이다. 이른바 송(宋)나라 조정의 신하를 논(論)하면 신하가 임금의 자리를 빼앗는데 남음이 지나지 않는 일이다.”
※ ① 정론(正論)∶이치에 합당한 의견이나 주장.
※ ② 삼대(三代)∶하(夏)‧은(殷)‧주(周).
※ ③ 천리(天吏)∶㉠ 천명(天命)을 받드는 관리(官吏)라는 뜻으로 꼭 천도(天道)를 행하는 덕(德)이 있는 제왕(帝王).
※ ④ 구구(區區)∶㉠ 견해나 주장하는 바가 서로 다름. ㉡ 구차하고 떳떳하지 못함. ㉢ 조잡하고 용렬함.
※ ⑤ 예(例)∶㉠ 세상에 널리 있는 흔한 것. ㉡ 본보기나 표준이 될만한 사물이나 현상. ㉢ 예의 형으로 쓰이어 이미 말한바 있는 바로 그의 뜻을 나타냄.
※ ⑥ 조공(朝貢)∶옛날 속국(屬國)이 종주국(宗主國)에게 때 맞추어 예물(禮物)로 물건을 바치던 일.
(62) 천하를 취함에 첫번째 덕(德)이고 두번째로 힘(力)이다
曰 丘瓊山所論 許衡比楊雄 然丘氏之說 萬萬無理
왈 구경산소론 허형비양웅 연구씨지설 만만무리
如此之人 何可加筆史書 王莽則世世漢臣 而纂漢故
여차지인 하가가필사서 왕망즉세세한신 이찬한고
楊雄之仕莽 後世鄙之也 元何比於莽 而論許衡耶
양웅지사망 후세비지야 원하비어망 이논허형야
元之得天下 毫無拘碍於宋與金而不 曰 宋之非義而
원지득천하 호무구애어송여금이불 왈 송지비의이
反論元氏耶 取天下者 有二道 一曰以德 二曰以力
반론원씨야 취천하자 유이도 일왈이덕 이왈이력
堯舜禹以德 湯武秦漢唐元以力 莽與魏晉宋 皆非其道耳
요순우이덕 탕무진한당원이력 망여위진송 개비기도이
※ 瓊∶붉은옥 경. 衡∶저울 형, 수레멍에 형, 눈퉁이 형, 옥형 형, 난간 형, 북두성의 가운데별 형, 산이름 형, 벼슬이름 형, 가로 횡. 莽∶추솔할 무, 풀우거질 망, 엽귀풀 망, 추솔할 망, 묵은풀 모. 鄙∶더러울 비, 더럽힐 비, 시골 비, 변방 비, 인색할 비, 비천할 비. 碍∶막힐 애, 거리낄 애. 堯∶높을 요, 멀 요, 요임금 요. 舜∶순임금 순, 무궁화 순. 禹∶하우씨 우, 성[姓] 우, 펼 우, 느지러질 우. 秦∶진벼 진, 진나라 진. 魏∶위나라 위, 대궐 위, 클 위, 우뚝할 위. 晉∶나아갈 진, 억제할 진, 꽂을 진, 나라이름 진, 괘이름 진. 宋∶송나라 송, 성[姓] 송.
말씀하시기를 “구경산(丘瓊山)①이 허형(許衡)②을 양웅(楊雄)③에 견주어 논(論)한 바이다. 그러나 구씨(丘氏)의 설(說)은 절대로 이치에 맞지 않으며 이와 같은 사람이 어찌 사서(史書)를 다시 붓을 대어 고치거나 보태거나 하는 것이 옳은가? 왕망(王莽)④이 대대(代代)로 한(漢)나라 신하로 한(漢)나라 역사를 지은 까닭이며 양웅(楊雄)의 벼슬은 왕망(王莽)과 뒷 세상의 비천(卑賤)할 것이다. 원(元)나라를 어찌 왕망(王莽)에게 견주며 허형(許衡)을 논(論)할 것이랴! 원(元)은 천하(天下)를 얻어 송(宋)과 금(金)나라에 거리낌이 전혀 없음이 아닌가?”
말씀하기를 “송(宋)나라의 옳지 않다라고 하나 반론(反論)할 것은 원씨(元氏)이다. 천하(天下)를 취한 것은 두 가지 길이 있으니 첫번째는 덕(德)으로써이고 두번째는 힘으로써이니 요(堯)‧순(舜)‧우(禹)는 덕(德)으로써이며 탕왕(湯王)‧무왕(武王)‧진시황(秦始皇)‧한고조(漢高祖)‧당태종(唐太宗)‧원(元)의 쿠빌라이(忽必烈) 등은 힘으로써이다. 전한(前漢)을 타도하고 신(新)나라를 세운 왕망(王莽)과 한말(漢末)에 조조(曹操)가 후한조(後漢朝) 최후의 황제인 헌제(獻帝)를 옹립한 위(魏)와 삼국(三國)의 위(魏)를 이어 신신(信臣) 사마염(司馬炎)이 세운 진(晉)과 동진(東晉)의 권신(權臣) 유유(劉裕)가 자기가 옹립한 공제(恭帝)의 선양(禪讓)을 받아 세운 송(宋)은 모두다 그 도(道)가 아니다.”
※ ① 구경산(丘瓊山)∶구준(邱濬). 중국 명(明)나라의 학자‧정치가. 광동성(廣東省) 경산현(瓊山縣) 출생. 자(字)는 중심(仲深). 호(號)는 경산(瓊山). 시호는 문장(文莊). 원래 학문을 좋아하였으며 1454년(경태 5) 진사가 된 후 서길사(庶吉士)에서 차차 벼슬이 올라 효종(孝宗) 때 예부상서(禮部尙書)가 되고 문연각대학사(文淵閣大學士)를 겸하여 정무에 참여 상서로서 내각에 들어간 것은 그가 처음이다. 특히 전고(典故)에 능통하였으며 정치가로서 경세(經世)의 뜻을 가지고 시폐(時弊)를 직언(直言)하여 황제를 잘 보필하였다. ≪영종실록(英宗實錄≫ ≪헌종실록(憲宗實錄≫을 편찬하였고 주자학(朱子學)에 정통(精通)하고 진덕수(陳德秀)의 저서 ≪대학연의(大學衍義)≫를 증보한 ≪대학연의보(大學衍義補≫를 완성하였는데 그의 글들은 매우 웅혼장려(雄渾壯麗)하다.
※ ② 허형(許衡)∶1209∼1281 중국 원(元)나라 때의 주자학자(朱子學者). 자(字)는 중평(仲平). 호(號)는 노재(魯齋). 허난성(河南省) 필양(泌陽) 사람. 농민출신이었으나 학문에 정진 원나라 초기의 명신(名臣) 보묵(寶黙)에게 불로백가(不老百家)를 배우고 이어 도추(桃樞)에게 주자학을 배웠다. 이 두 사람의 추거(推擧)로 남송(南宋) 멸망 이전에 세조(世祖)를 받들었으며 후에 학계의 중진이 되었다. 오징(吳澄)과 함께 원나라의 2대 거유(巨儒)로 불렀다. 주자학의 실천에 힘쓴 사실은 저서 ≪노제전집≫ ≪노제심법(魯齊心法)≫에 잘 나타나 있다.
※ ③ 양웅(楊雄)∶B.C.53(55?)∼A. D. 18 중국 전한(前漢)말의 학자. 문인 사상가. 촉≪蜀∶사천성(泗川省) 성도(成都)≫ 사람. 자(字)는 자운(子雲). 청년시절부터 학문을 좋아했으며 생각이 깊었다. 부귀와 명성에는 관심이 없고 사마 상여(司馬相如)와 굴원(屈原) 작품을 좋아하여 스스로도 부(賦)를 지었다. 굴원의 ≪이소(離騷)≫에 몹시 감격했으나 자신의 불우함을 한탄하여 자살한 굴원의 삶에 반론을 펴서 유명한 ≪반이소(反離騷)≫를 저술했다. 41세에 처음으로 문재(文才)를 인정받아 성제(成帝) 때 궁정문인의 한 사람이 되었다. 성제의 여행에 수행하며 쓴 ≪감천부(甘泉賦)≫ ≪하동부(河東賦)≫ ≪우렵부(羽獵賦)≫ ≪장양부(長楊賦)≫등은 화려한 문장이면서도 성제의 사치를 꼬집는 풍자도 잊지 않았다. 시대에 적응하지 못한 자신의 불우한 원인을 묘사한 ≪해조(解嘲)≫ ≪해난(解難)≫도 독특한 여운을 주는 산문(散文)이다. 학자로서 각 지방의 언어를 집성한 ≪방언(方言)≫ 역경(易經)에 바탕을 둔 ≪태현경(太玄經≫과 ≪논어(論語)≫의 문체를 모방한 ≪법언(法言)≫ 등을 저술 ≪법언≫에서는 왕도(王道)를 논하여 도덕정치를 역설했다. 당시의 학자들 중에는 그의 재능을 절찬하는 사람도 많았으나 만년에 정권을 찬탈한 왕망(王莽)을 섬기고 새 정권을 찬미하는 문자을 썼고 괴뢰정권에 협조하였기 때문에 지조가 없는 사람으로 송학(宋學) 이후에는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으나 그의 식견은 한(漢)나라를 대표하였다.
※ ④ 왕망(王莽)∶B.C.45∼A. D. 23 중국 전한(前漢) 말의 정치가. 한(漢)의 제위(帝位)를 빼앗아 ‘신(新)’왕조(A. D. 8∼24)의 건국자. 자(字)는 거군(巨君). 산동(山東) 출생. 중국 역사상 선양혁명(禪讓革命)의 방식을 최초로 현실화 하여 전한(前漢)으로부터 정권을 탈취하여 신을 수립하였으며 ≪주례(周禮)≫에서 볼 수 있는 고문파(古文派)의 유교에 바탕을 두고 이상사회를 구현하려고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한 제11대 황제인 원제(元帝)의 왕후인 왕(王)씨 서모의 동생인 왕만(王曼)의 둘째 아들이다. 원후가 낳은 자식이 성제(成帝∶재위 B.C.33∼B.C.7)로 즉위하자 왕씨 일족이 외척으로 대두하여 원후의 남동생 7명이 모두 열후(列候)에 봉해져 대사마(大司馬)의 직을 순차적으로 차지하며 군사권을 장악했다. 왕망은 부친이 일찍 죽어 왕씨 일족 중에서 혼자만 불우했는데 마침내 왕씨 내부의 권력투쟁에서 승리하여 성제 말년에 자신도 스스로 대사마가 되었다. B.C.7년 애제(哀帝)가 즉위하여 아들도 없이 갑자기 죽자 원후와 왕망은 쿠데타와 다름없는 수법으로 단숨에 실권을 쥐고 원제의 손자인 9세의 평제(平帝)를 옹립하여 국정을 좌지우지(左之右之)하게 되었다.
A. D. 5년 평제를 독살하고 스스로 섭황제(攝皇帝)가 된 후 왕망의 왕조 찬탈(纂奪)의 의도가 본격화 되었다. 당시 지배적인 시대사조였던 천의(天意)는 서상(瑞祥)‧재이(災異)‧부명[(符命∶신비적인 형태를 수반하여 인간에게 제시되는 천명(天命)에 의해 인간계에 제시된다고 하는 참위설(讖緯說)]을 작위적으로 이용하여 마침내 9년에 스스로 천자의 자리에 올랐다. 왕망은 즉위 후 관제의 개혁 관명(官名)‧지명의 개칭 토지제도‧화폐제도의 개혁 상공업의 통제 등 복고적(復古的)인 여러 정책을 실시하였다.
이러한 정책들은 강대화된 각 고장 호족층(豪族層)의 대토지소유를 제한했고 일반 자영농민의 토지 상실에 따른 빈민화(貧民化)‧유민화(流民化)를 방지하는 등 전한말에 나타난 커다란 사회문제에 대응하려는 것이었으나 오히려 사회 혼란을 증대시켜 대부분 실패로 끝났다. 또한 대흉노(對匈奴)정책도 실패하여 산동(山東)에 발생한 농민반란(赤眉의 亂 등)과 이어진 남양(南陽)의 유씨(劉氏)를 대표로 하는 호족의 반란으로 23년 장안(長安)의 성내의 미앙궁(未央宮)에서 경시제군(更始帝君)에게 살해당했다. 왕망의 죽음으로 신왕조는 막을 내리고 후한(後漢)이 뒤를 이었다.
(63) 순(舜) 임금은 단족(檀族)의 중흥기(中興期) 였다
曰 吾元仁宗 可謂英傑之主也 吾檀族之王天下 自舜以後
왈 오원인종 가위영걸지주야 오단족지왕천하 자순이후
可謂中興也
가위중흥야
말씀하시기를 “원(元)나라 인종(仁宗)은 영특하고 걸출한 임금이라 할만하며 우리 단족(檀族)의 왕으로 순(舜)임금 이후로 가히 중흥기(中興期)①라 하리라.”
※ ① 중흥기(中興期)∶국운의 쇠망하여 가던 세력을 다시 일으키는 때.
(64) 중엽 이후로 국론을 논한 사람은 대동소이하다
曰 中葉以來 論國論人者 皆不過五十步笑百步
왈 중엽이래 논국논인자 개불과오십보소백보
말씀하시기를 “중엽(中葉)① 이후(以後)로 국론(國論)②을 논하는 사람들은 모두다 오십보소백보(五十步笑百步)③이니라.”
※ ① 중엽(中葉)∶초엽 중엽 말엽의 3기로 구분할 때의 그 중간의 시대. 시대나 세기(世紀)의 중간 무렵.
※ ② 국론(國論)∶국민 일반의 여론. 나라안의 공론(公論). 나라 공론(公論).
※ ③ 오십보소백보(五十步笑百步)∶중국 양(梁)나라 혜왕(惠王)이 맹자(孟子)에게 정사(政事)에 관해서 물었을 때 맹자가 전쟁에 패하여 어떤 자는 백보를 또 어떤자는 오십 보를 도망하였다고 할 때 백걸음을 물러간 사람이나 오십 걸음을 물러간 사람이나 도망갔다는 그 자체에서는 차이가 없다고 대답한 고사(故事)에서 온 말로 조금 낮고 못한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본질적(本質的)으로 같다는 뜻. ꡔ맹자ꡕ 양혜왕 상편.
(65) 원(元)나라 말기에 태을성군께 제사를 많이 지내 나라를 그르쳤다
曰 元末之時 有上至下 多祭太乙星君 誤國
왈 원말지시 유상지하 다제태을성군 오국
말씀하시기를 “원(元)나라 끝무렵의 때 위에서 시작하여 아래에 이르기까지 태을성군(太乙星君)①께 제사를 많이 지내니 나라를 그르쳤다.”
※ ① 태을성군(太乙星君)∶방선도(方仙道)와 황노도(黃老道)의 최고(最高)의 천신(天神).
(66) 원(元)나라 때에 은(殷)나라 사람에게 세가지 인(仁)을 봉했다
曰 元之時 封殷之三仁 箕子仁獻公 微子仁靖公
왈 원지시 봉은지삼인 기자인헌공 미자인정공
比干仁顯忠列公也
비간인현충열공야
※ 殷∶많을 은, 무리 은, 클 은, 가운데 은, 은나라 은, 융성할 은, 천둥소리 은, 검붉을 안. 箕∶별이름 기, 키 기, 바람의 신 기, 걸터앉을 기. 靖∶꾀할 정, 다스릴 정, 화할 정, 편안할 정, 생각할 정.
말씀하시기를 “원(元)나라 때에 은(殷)①나라의 세가지 인(仁)을 봉했으니 기자(箕子)②는 인헌공(仁獻公) 미자(微子)③는 인정공(仁靖公) 비간(比干)④은 인현충열공(仁顯忠列公)이니라.”
※ ① 은(殷)∶중국 고대의 왕조(王朝) 이름. 자체의 이름은 상(商)이라고 하며 이를 멸한 주(周)가 전대 왕조를 은(殷)이라 일컬었다. 현재의 중국에서는 「상(商)」이라 부르는 경우가 많다. 연대(年代)에 대해서는 여러 설(說)이 있으나 대략 B.C.17세기∼B.C.16세기경에서 B.C.11세기 중반까지로 생각되고 있다.
※ ② 기자(箕子)∶기자조선(箕子朝鮮)의 건국자. 이름은 서여(胥餘)‧수유(須臾). 주(周)나라 무왕(武王)이 은(殷)나라를 빼앗자 B.C.1122년 동쪽으로 도망하여 조선에 들어와 기자조선을 건국 조선민에게 예의(禮儀)‧전잠(田蠶)‧방직(紡織)‧팔조법금(八條法禁)을 가르쳤다고 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기자동래설(箕子東來說)은 중국의 사료(史料)에서도 서로 모순(矛盾)되고 연대(年代)도 각기 틀려 부정되고 있다. 고려 숙종(肅宗) 7년(1102)에 건립된 기자묘 중수기적비(箕子墓 重修記蹟碑)의 사료로 보아 당시의 사대사상(事大思想)에서 생긴 꾸며진 설화(說話)로 여겨진다. 지금은 기자조선의 마지막 왕인 준왕(準王)의 성(姓)이 한씨(韓氏)임에 미루어 보아서 기자조선은 우리나라 사람이 세운 부족 국가인 한씨조선(韓氏朝鮮)이라는 주장이 유력하다. 그러므로 기자의 동래설은 중국의 명현(名賢)을 조상으로 하고 있다는 가문(家門) 우위성(優位性)을 입증(立證)하기 위해 기자조선을 은나라의 현자가 조선으로 건너와 세웠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도원경(道元經》이 전하며 평양에 기자묘(箕子墓)가 있다.
※ ③ 미자(微子)∶주대(周代) 송(宋)나라의 시조(始祖).
※ ④ 비간(比干)∶상대(商代) 주왕(紂王)의 숙부(叔父).
(67) 원(元)나라는 백련교와 홍건적에 의해 망했다
曰 元之亡國之兆 邪術者 白蓮紅巾 始而終於好術
왈 원지망국지조 사술자 백연홍건 시이종어호술
山童之歌起
산동지가기
※ 巾∶수건 건 머리건 건 건 건 덮을 건.
말씀하시기를 “원(元)나라의 망국(亡國)의 조짐은 삿된 술(術)이니 백련교(白蓮敎)①와 홍건적(紅巾賊)②이며 처음부터 끝까지 술(術)을 좋아했고 백련교도(白蓮敎徒) 한산동(韓山童)의 노래에서 일어났다.”
※ ① 백련교(白蓮敎)∶중국 송(宋)‧원(元)‧청(淸)나라에 걸쳐 성행했던 민간종교의 하나. 그 기원은 남송(南宋)시대의 모자원(茅子元∶법명 慈照)의 백련종(白蓮宗)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모자원이 일으킨 백련종은 오계(五戒)를 철저히 지키며 아미타불(阿彌陀佛)을 념(念)하여 정토(淨土)에 태어나기를 바라는 염불결사(念佛結社)였다. 그 교단은 지도층이 승(僧)‧속(俗)이 뒤섞인 대처자(帶妻者)였다는 점에 특색이 있으며 또 채식주의(菜食主義)를 주장한 사실로 백년채(白蓮菜)로도 불리었다. 모자원은 또 불교의 교리를 「보(普)‧각(覺)‧묘(妙)‧도(道)」의 네 글자로 요약하여 신자를 지도했다. 백련종은 고종(高宗)의 호의로 그 시대(1127∼1162)의 민간에게 침투했는데 모자원이 죽은 후 점차 반체제적(反體制的) 경향을 띠어 갔다. 원나라 중엽에 장보도(蔣普度)가 나와≪여산 연종보감(廬山蓮宗寶鑑)≫ (전 10권)을 저술 백련종의 정화를 호소했는데 그 저서에는 민간 신도 중에 「미륵불하생(彌勒佛下生)」을 주장하며 사언(邪言)을 전수(傳授) 밤에만 모였다 새벽녘에 흩어져가는 자들이 있음을 지적하고 있어 백련종이 반체제적인 운동의 온상이 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원나라 말이 되면서 도처에서 백련교도의 반란이 일어났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한산동(韓山童)집단과 서수휘(徐壽輝)집단에 의한 반란이다. 이들은 다 「천하대란 미륵불하생(天下大亂 彌勒佛下生∶천하가 크게 어지러우니 미륵불 밑에서 살라)」이라는 뜻을 구호(口號)로 내세우고 소왕국을 세웠다. 명나라에 들어와 더욱더 많은 사건이 발생했는데 ≪명실록(明實錄)≫에 따르면 80여 회에 걸친 백련교 관련사건이 일어난 것을 알 수 있다. 가장 큰 사건은 말엽에 산동(山東)에서 일어난 왕삼(王森)‧서홍유(徐鴻儒)의 난(1622)이다.
또 명나라에 와서 백련교계(系)의 교단들에서는 포교를 위한 경전이 제작되었다. ≪보권(寶卷)≫으로 불리는 그 경전 속에는 「진공가향(眞空家鄕)」 「무생부모(無生父母)」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를 명나라 말부터 청나라에 걸쳐서는 백련교의 「팔자진언(八字眞言)」이라 일컫게 되었다.
이 「팔자진언」은 민중이 부모나 집‧고향과의 관계 즉 지연(地緣)‧혈연(血緣)관계를 부정하고 반체제적 행동을 위해 헌신할 때에 유효하게 작용하는 사상이라는 견해도 있다. 청나라에 들어와서는 지재(持齋)‧염불(念佛)‧계탐(戒貪)‧계음(戒淫) 등의 수행에 의해 부처가 되고 선인(仙人)이 되기를 추구한 백련교도의 활동은 활발하여 가경조(嘉慶朝) (1796∼1804)에는 혼원교(混元敎)의 유송(劉松)의 제자 유지협(劉之協)이 중심이 되어 명나라 후손이라는 우팔(牛八)을 내세워 유사아(劉四兒)를 미륵불의 태어남이라 하여 그를 돕는 동시에 혼원교를 다시 삼양교(三陽敎)로 개칭 대규모적인 반란을 일으켰다.
※ ② 홍건적(紅巾賊)의 난(亂)∶중국 원(元)나라 순제(順帝) 지정(至正) 11년(1351) 허뻬이성(河北省)에서 백련교(白蓮敎)‧미륵교(彌勒敎) 교도들이 일으킨 농민폭동. 이 무리들은 머리에 붉은 수건을 두르고 그 것을 표지로 삼았기 때문에 홍두적(紅頭賊)‧홍적(紅賊)이라고 불렀다. 허뻬이성에 한산동(韓山童)이란 자가 나타나 자기 자신은 미륵불(彌勒佛)의 환생이라는 소문을 퍼뜨렸는데 허난성(河南省)‧안후이성(安徽省) 등 각지에는 그를 믿는 신도가 많았다. 그때 황허강(黃河)의 범람으로 인하여 제방 수리를 위해 많은 농민이 동원되어 노역을 강제당하자 그는 이에 불만을 품은 민심을 선동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원나라 조정에서는 토벌군을 보내어 난군을 토벌하였으며 이때 한산동이 토벌군에게 살해당하자 유복통(劉福通) 등이 한산동의 아들 한림아(韓林兒)를 받들고 송(宋)이라는 국호를 내건 다음 전국에 격문을 돌렸다.
그러자 안후이성에서 곽자흥(郭子興)‧주원장(朱元璋) 등이 일어나고 후베이성(湖北省)에서는 서수휘(徐壽輝)가 일어나 그 세력이 한때 화북(華北)과 화중(華中)지방에까지 널리 미쳤다. 그러나 내부 분열 때문에 비적(匪賊)으로 전락하였으며 원군(元軍)에게 쫓기던 무리는 랴오둥(遼東)방면으로 들어갔다. 고려 공민왕 8년(1359) 홍건적의 장수 모거경(毛居敬) 등은 4만여 명의 무리를 이끌고 얼어붙은 압록강을 건너 고려에 침입해 들어왔다. 이들 난적들은 파죽지세로 의주(義州)‧정주(定州)‧인주(麟州)‧철주(鐵州) 등을 차례로 함락하고 이어서 서경(西京∶平壤)까지 함락하였다. 고려에서는 이방실(李芳實) 등이 관군을 이끌고 나아가서 맹공하여 서경을 탈환하였고 이어 패주하는 적을 뒤쫓아 궤멸시키자 압록강을 건너 달아난 무리는 겨우 300여명에 불과하였다.
그 후에도 난적들은 간혹 배를 이용하여 황해도‧평안도의 해안지대를 침투하다가 공민왕 10년(1361) 10월 반성(潘城)‧사유(沙劉)‧관선생(關先生) 등이 이끄는 10여 만 명의 홍건적이 압록강의 결빙을 이용하여 재침해 왔다. 제2차 침입은 대규모여서 절령(岊嶺∶慈悲嶺)의 방책이 무너졌을 뿐만 아니라 계속하여 남하(南下)한다는 보고가 개경(開京)에 들어오자 공민왕은 왕비(노국대장공주)와 함께 태후(太后)를 받들고 남쪽으로 피난하였다. 왕의 피난행렬이 경기도 이천(利川)에 이르렀을 때 개경이 홍건적에게 함락되었다.
이후 여러 달 동안 홍건적은 개경에 머물면서 갖은 약탈과 만행을 저질렀으며 일부는 원주(原州)‧안주(安州∶평남 북서단) 등지에까지 몰려가 약탈을 자행하였다. 공민왕은 그해 12월경 복주(福州∶安東)에 이르러 정세운(鄭世雲)을 총병관(摠兵官)으로 삼아 홍건적을 토벌하도록 명하였다. 공민왕 11년(1362) 정월에 정세운은 안우(安祐)‧김득배(金得培)‧이방실 등 여러 장수들과 합세하여 개경에 머물러 있던 홍건적을 대파하여 도성을 회복하고 남은 적을 소탕하여 난은 평정되었다.
이때 동북면(東北面) 상만호(上萬戶)로 있던 이성계(李成桂)는 휘하의 친병(親兵) 2, 000명을 이끌고 앞장서서 적괴(賊魁) 사유‧관선생 등의 목을 베고 수많은 적의 목을 치는 등 크게 활약하였다. 이와 같이 중국 중원(中原)에서 일어나 원나라를 쇠락(衰落)의 길로 몰아넣었던 홍건적은 고려에 침입했다가 궤멸됨으로써 사라져 버렸다.
고려도 수도가 짓밟히는 등 막대한 타격을 입어 쇠퇴하게 되었는데 다만 주원장만은 착실하게 지반을 닦아 중국 천하를 지배하여 명(明)나라를 세우는데 성공하였다.
(68) 부금냉금(浮金冷金)을 따르라
曰 朝鮮九變之中 必是靑林大冠 濁亂世路 只唱太乙
왈 조선구변지중 필시청림대관 탁난세로 지창태을
而忘三皇則 人多隨損 當其時浮金冷金 北有走肖之將
이망삼황즉 인다수손 당기시부금냉금 북유주초지장
南有水姓之賢 可以救人種之正矣
남유수성지현 가이구인종지정의
말씀하시기를 “조선(朝鮮)이 아홉 번 변하는 가운데 반드시 이것이 푸른 수풀(靑林)이 큰 관(冠)이니 정치나 사회가 흐리고 어지런 세상 길이다. 다만 태을(太乙)①을 노래하며 삼황(三皇)②을 잊으면 사람이 많이 더는데 이른다. 그 때에 당하면 뜬 쇠(浮金∶火中金)인 찬 쇠(冷金∶水中金)인 선천기(先天 )이며 북쪽에 조(趙)씨의 장군이 있고 남쪽에는 수성(水姓)③의 현인(賢人)이 있어서 사람의 종자를 옳게 구제함으로써 바르다.”
※ ① 태을(太乙)∶태일(太一). 중국철학에서 천지만물의 출현 또는 성립의 근원 곧 우주의 본체. 대일(大一)‧태일(泰一)이라고도 표기되어 있다. ≪장자(莊子)≫등에는 「도(道)」의 동의어로 씌여 있다. ≪회남자(淮南子)≫ 「천문훈(天文訓)」에는 「자궁(紫宮)은 태일이 거처하는 곳」이라고 씌어 있고 정현(鄭玄)은 「태일은 북신(北辰∶북극성)의 이름이다」라고 말한 것처럼 나중에는 천계(天界)의 자미궁(紫微宮)에서 거쳐하는 북극성의 신명(神名)이 되었고 그 후 한(漢)나라에서는 우주의 최고신이라고 여겼다. 경서(經書)에 나오는 천황대제(天皇大帝) 또는 호천상제(昊天上帝)와도 동일시 되었다. 태을의 신격화(神格化)는 B.C.2세기의 한나라 무제(武帝)때에 장안성(長安城)의 남동쪽 교외에 박기태일(薄忌太一)이라는 사단(祠壇)이 만들어진 것이 그 최초인데 그곳에는 천일(天一)‧지일(地一)‧태일(太一)의 세 신이 모셔졌다. B.C.112년(元鼎 5)에는 운양(雲陽∶陜西省 淳化縣)에 있는 감천궁(甘泉宮)의 남쪽에 태치(泰峙)라는 태일 사단이 만들어졌다. 태치는 자주색의 3층 8각형으로 되어 있고 보좌신(補佐神)인 청(靑)‧적(赤)‧ 황(黃)‧백(白)‧흑(黑)색으로 된 5제(五帝)의 단(壇)이 동그란 고리 모양으로 빙 둘러싸고 있으며 태일신의 제사는 오로지 이곳에서 지내게 되었다.
※ ② 삼황(三皇)∶중국 고대(古代)의 임금. 천황씨(天皇氏)‧지황씨(地皇氏)‧인황씨(人皇氏)로 복희씨(伏羲氏)‧신농씨(神農氏)‧황제씨(黃帝氏).
※ ③ 수성(水姓)∶오행(五行)의 수(水)에 해당한 성(姓). 성자(姓字)를 궁(宮) 상(商) 각(角) 치(徵) 우(羽)의 다섯 음(音)에 나누어서 오행에 벌여 붙인 것임. 오(吳) 허(許) 유(劉) 여(呂) 우(禹) 표(表) 소(蘇) 노(魯) 변(卞) 마(馬) 반(潘) 복(卜) 용(龍) 모(牟) 금(禁) 공(公) 경(庚) 익(益) 기(奇) 여(余) 천(千) 맹(孟) 매(梅) 상(尙) 어(魚) 고(皐) 모(毛) 먀(乜 ) 남궁(南宮) 황보(皇甫) 선우(鮮于) 동방(東方).
(69) 자하진인의 도(道)는 신(神)도 알지 못한다
曰 先生之道 本於天 鎔於人 神不知之矣
왈 선생지도 본어천 용어인 신부지지의
※ 鎔∶불릴 용, 녹일 용, 거푸집 용.
말씀하시되 “스승(자하진인)의 도(道)는 바탕이 하늘이며 사람을 녹이니 신(神)도 알지 못하는 것이다.”
(70) 근본을 잃지 않고 지각이 있어야 살아 남는다
曰 甲子一紀後 難農難商 可謂風風雨雨 萬民苦苦
왈 갑자일기후 난농난상 가위풍풍우우 만민고고
其何堪去 至此時 有知覺者生 無知覺者死 奈何
기하감거 지차시 유지각자생 무지각자사 내하
不忘本 第一生路
불망본 제일생로
※ 堪∶견딜 감, 이길 감, 맡을 감, 하늘 감, 산모양이 기괴할 감.
말씀하여 이르기를 “갑자(甲子) (60년)하고 12년 뒤에는 농업(農業)도 어렵고 상업(商業)도 어려우니 좋게 말하자면 세상의 갖가지 쓰라림(시련∶試鍊)이니 모든 사람이 한결같이 그 어떻게 견디어 갈 수 있으리오. 여기에 이르렀을 때에는 지각(知覺) 있는 사람은 살고 지각(知覺)이 없으면 죽으니 어찌 하랴! 근본을 잊지 않는 것이 가장 좋아 살아날 수 있는 길(살아나갈 방도)이니라.”
(71) 자하진인과 여순양진인을 연구하라
曰 後來家家人人皆弗人 人弗人 人人之生道失矣
왈 후래가가인인개불인 인불인 인인지생도실의
難免神誅 從我遊者 深硏究此 避之此
난면신주 종아유자 심연구차 피지차
乃先生之入紫霞島時 所敎也
내선생지입자하도시 소교야
※ 紫∶노을 하, 멀 하. 誅∶벨 주, 꾸지람 주, 벌줄 주, 갈길 주.
말씀하옵기를 “장래(將來)에는 집집마다 사람마다 모두다 사람이 아니며 사람이 사람이 아니니 사람들은 살아가는 길을 잃었다. 신(神)이 베어 죽이는 것을 면하기 어렵고 나를 따라 노니는 사람은 이를 깊이 연구(硏究)하라 이는 피함이다. 이에 스승인 자하진인께서 자하도(紫霞島)①에 들어가실 때 가르친 바이다.”
※ ① 자하도(紫霞島)∶석존(釋尊)의 극락(極樂)이며 공자(孔子)의 시중(時中)이요 노자(老子)의 현묘(玄妙)요 예수의 십자가(十字架)요 김일부(金一夫)의 십십일일지공(十十一一之空)인 시공(時空)을 초월한 곳과 때.
(72) 독립정신이 일제강점기에 있을 것이다
曰 獨立于靑邱中 五千餘年 獨我檀域而於李氏朝鮮
왈 독립우청구중 오천여년 독아단역이어이씨조선
失之終也 必更獨立精神 皆委人矣 勢也奈何
실지종야 필경독립정신 개위인의 세야내하
※ 邱∶언덕 구, 땅이름 구.
말씀하시기를 “독립(獨立)은 우리나라 안에서 5000여년을 홀로 나의 단역(檀域)을 이씨조선(李氏朝鮮)이 잃고 끝마치었다. 반드시 독립정신(獨立精神)이 다시 있을 것이니 모두 왜(倭∶일본)의 세력이니 어찌하랴!”
(73) 좋게 거하면 살아가는 길이 있다
曰 君輩欲知運回之泰 人人日行千里 屋上加屋 家家藥局
왈 군배욕지운회지태 인인일행천리 옥상가옥 가가약국
處處鍾鳴 善居生路 在鳥棲 此枝彼枝之間
처처종명 선거생로 재조서 차지피지지간
※ 棲∶쉴 서, 깃들일 서, 평상 서, 서성거릴 서, 물풀이름 서.
말씀하시기를 “그대 무리들은 운(運)이 돌아와 태평할 때를 알고자 하면 사람마다 하루에 천리를 다닐 것이며 집 위에 집이 올라서고(빌딩) 집집마다 약국(藥局)이며 곳곳마다 종소리(교회 절)가 울리고 좋게 거하며 살아가는 길은 새가 이 가지에서 저 가지 사이로 깃드는데 있도다.”
(74) 남방사람을 박삼태가 구하리라
曰 李氏國朝 中人將來受帝命 救南方人命之衆 朴三台也
왈 이씨국조 중인장래수제명 구남방인명지중 박삼태야
此人本天箕星中在職 謫下人間時 職帶察人物而其時
차인본천기성중재직 적하인간시 직대찰인물이기시
危厄甚矣 普德仙娘救之
위액심의 보덕선낭구지
※ 台∶별 태, 늙을 태, 나 이, 기쁠 이, 기를 이. 謫∶귀양갈 적, 꾸짖을 적, 일식할 적, 흉볼 적.
말씀하시기를 “이씨조선(李氏朝鮮) 때 중인(中人)의 후예에서 앞으로 임금의 명(命)을 받을 것이니 남방(南方) 사람의 목숨의 여러 사람을 구하니 박삼태(朴三台)①이다. 이 사람은 본디 하늘의 남쪽 별인 기성(箕星)에서 직책(職責)에 있다가 아래로 귀양 온 인간(人間)이니 인물(人物)을 살피는 직책을 띠었을 때 그 때가 액(厄)이 위험함이 심하리라. 보덕선낭(普德仙娘)②이 구하리라.”
※ ①박삼태(朴三台)∶이승만(李承晩) 뒤를 이어 박삼태(朴三台) →박정희(朴正熙)가 나와 하루 천리가는 고속도로 등을 닦는다. 종교단체인 〈세계종교〉교의(敎義)=대표 달선(達仙) 김정희(金貞姬).
② 고(故) 박정희(朴正熙)대통령님과 천태종(天台宗)을 중창(重創)하신 상월조사(上月祖師) 박준동(朴準東)님과 원불교(圓佛敎)를 창시(創始)한 소태산(少太山) 박중빈(朴重彬)님을 일컬은다.
※ ②보덕선낭(普德仙娘)∶한국의 선맥(仙脈)은 크게 두가지 흐름이 있으니 고유선맥과 왜래선맥이다. 고유선맥을 기술한 선사(仙史)가 조여적(趙汝籍)의 「청학집(靑鶴集)」에 인용된 변지(卞沚)의 「기수사문록(記壽四聞錄)에 1. 종통(宗統)∶광성자(廣成子) → 명유(明由) → 환인(桓仁) → 환웅(桓雄) → 단군(檀君) → 문박씨(文朴氏) → 영랑(永郞) → 보덕(普德) 8선,」 2. 보덕분파(普德分派)∶옥보고(玉寶高)‧이순보(李純甫) 2선.
(75) 불의 심판이 있으리라
自古戰爭之法 隋時而變 最初以拳相鬪 繼而木 繼而金
자고전쟁지법 수시이변 최초이권상투 계이목 계이금
繼而水火 繼而戰于空中之境 人畜俱滅之境 終則 神以神
계이수화 계이전우공중지경 인축구멸지경 종즉 신이신
道以道 然後 乾坤復明 在五四 後一期前 大火歲紀也
도이도 연후 건곤복명 재오사 후일기전 대화세기야
“예전부터 전쟁(戰爭)의 법(法)은 때에 따라 변하니 가장 처음에는 주먹으로 서로 싸우고 이어서 나무로 이어서 쇠로 이어서 물과 불로 이어서 공중에서 전쟁하는 지경에 이르러 사람과 가축이 다 함께 사라지는 지경에 이르리라. 마침내 신(神)을 신(神)으로써 도(道)를 도(道)로써한 그런 뒤에 하늘과 땅이 다시 밝아짐이 20년이 있고 후에 일주년(一周年) 전에 큰 불(火)의 해인 세기(世紀)①로다.”
※ ① 세기(世紀)∶연대. 시대. 서력(西曆)에서 100년을 일기(一期)로 세는 연대의 단위.
(76)상고(上古)의 법(法)을 쓰는 것이 살아갈 길이다
曰 太大紀 前一後一 庚呼之聲 震動天地 富亡貧碎
왈 태대기 전일후일 경호지성 진동천지 부망빈쇄
其情慽矣 抵此機 人人用上古之法 第一生路也
기정척의 저차기 인인용상고지법 제일생로야
※ 震∶벼락칠 진, 진동할 진, 위엄 진, 두려울 진, 괘이름 진, 지진 진. 碎∶부슬 쇄, 부서질 쇄, 잘 쇄. 慽∶근심할 척, 슬플 척.
말씀하시기를 “1000년을 앞으로 100년 뒤로 100년은 고치어 부르는 소리가 온 누리를 매우 울리어 움직이니(세상에 멀리 퍼짐) 부자는 망하고 가난한 사람은 부서지니 그 사정이 슬프다. 대저 이 기틀은 사람마다 아주 옛날의 법(法)을 쓰는 것이 가장 좋은 살아갈 길이다.”
(77) 미국이 막강해도 한국에 순종치 않을 수 없다
曰 太女雖强 其於震男 不可不順從 乃其德夫
왈 태녀수강 기어진남 불가불순종 내기덕부
※ 兌∶기쁠 태, 지름길 태, 모일 태, 통할 태, 곧을 태, 구멍 태, 바꿀 태, 괘이름 태, 날카로울 예.
말씀하시기를 “태소녀(兌∶少女∶서방 미국)가 비록 막강하다 하더라도 진장남(震長男∶동방 한국)에게는 순종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 있으니 이는 그의 덕부(德夫 덕이 있는 지아비)가 아닌가.”
(78) 서쪽 하늘에 달이 천부(天符)를 차고 지정(地精)을
천지인의 합일(合一)과 궁궁을을(弓弓乙乙)의 이치
曰 後天啓泰 只在三一 天地之道 一而三 三而一而已
왈 후천계태 지재삼일 천지지도 일이삼 삼이일이이
三一掛於七上 處處然後 眞是 明明 神神 化化 正正 乙乙
삼일괘어칠상 처처연후 진시 명명 신신 화화 정정 을을
弓弓 衛我神 嗚呼小子 敬守一止 詳着西天月 佩天符
궁궁 위아신 오호소자 경수일지 상착서천월 패천부
服地精哉 (天符三印圖 地精十二支誥)
복지정재 천부삼인도 지정십이지고
※ 佩∶패옥 패 (옛날 의복제도로서 큰 띠에 붙이는 장식하는 구슬). 찰 패, 맘에 먹을 패, 물이 흘러서 합할 패. 誥∶깨우쳐 고할 고, 가르칠 고.
말씀하시기를 “후천(後天)의 태평한 세상을 여는 길은 다만 천인지(天人地) 합하여 하나로 되는 하늘과 땅의 길이니 분리되면 셋(하늘‧사람‧땅)이 되고 합하면 하나(一)가 될 뿐이다. 삼일(三一) 위에 일곱(七)이 걸린다. 곳곳이 그런 뒤에 이것이 참으로 밝고 밝으며 신령하고 신령스러우며 화(化)하고 화(化)하며 바르고 바르며 을을궁궁[乙乙弓弓=弱 乙乙=새(鳥)=단전(丹田) 弓弓=활(弓)=오른쪽 눈(日) 왼쪽 눈(月)]이 나의 정신을 지키어 주리라. 아아 소자(小子)야! 공경하여 하나(一)에 그칠지니 서쪽 하늘에 달을 자세히 보아라. 천부(天符)를 차고 지정(地精)을 입었도다.” (풍백(風伯)의 거울(鏡) 우사(雨師)의 북(鼓) 운사(雲師)의 칼(劍)의 그림과 땅의 정(精)인 쥐(鼠) 소(牛) 범(虎) 토끼(兎) 용(龍) 뱀(蛇) 말(馬) 양(羊) 잔나비(猴) 닭(鷄) 개(狗) 돼지(猪)인 십이지지(十二支地)에 깨우쳐 고하는 것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