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에피소드를 준비하고 업로드하면서 든 기억과 생각을 적어봤습니다. 판도라의 상자 게시판으로 이동합니다.
이제 잊혀지고 있는 과거의 일입니다.
제가 사는 동네에 한 카페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지만 당시에 저보다 더 젊은 사람이 사장이었죠. 장인이 건물주셨습니다. 층 하나를 카페로 만들었고 여기서 여러 모임을 주최했습니다. 저랑 친분이 있어서 같이 모임을 하나 만들었고 이 토론 모임이 매우 인기가 있었습니다. 한 주제에 대한 동일한 영상을 각자 미리 보고 퇴근 길에 카페에 들려 의견을 나누는 모임입니다.
이 모임에서 동네 병원에서 레지던트를 하던 의사를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매우 겸손하고 착해서 저와 무척 친했습니다. 퇴근하다가 카페에서 만나 새벽까지 수다를 떨기도 했습니다. 제가 하던 팟캐스트에 출연할 계획까지 세웠었죠. 기도나 명상과 같은 행위로 인해 몸에 발생하는 변화에 관해 다루기로 약속까지 했습니다. 특히 송과체를 주제로 많은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눴습니다.
어머니가 아들을 의사로 만들려는 철저한 의지에 의해 의사가 되었지만, 나름 학구열이 대단해서 의사가 된 이후에도 단순히 직업을 위해서가 아니라 연구 자체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직접 목격한 한 환자의 특이 사례를 저에게 이야기했고 저는 논문으로 써보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렇게 저와 며칠 동안 퇴근 후에 만나 사무실에서, 병원 지하실에서 논문을 썼습니다. 제가 영어에 도움을 주었는데, 한글로 써서 던져주면 제가 의학적 지식이 없어 제대로 옮길 수가 없었습니다. 둘이 같이 앉아 무슨 의미나 상황인지 제가 물어가면서 논문을 썼고, 올바른 영어 표현을 찾기 위해 유사 영문 논문을 뒤져가며 힘들게 완성하고 저널에 발표했습니다.
몇 달 후 미국에서 이메일이 도착했습니다. 미국의 한 학회인데 발표한 논문에 관심을 보이면서 시카고에 와서 논문을 발표하면 왕복 비행기 표와 체류 비용을 부담하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솔직히 제가 쓴 논문은 아니지만, 큰 기여를 했기 때문에 뿌듯했습니다. 제가 받은 건 곰탕 한 그릇이었습니다. 친한 사이에 대가를 받고 싶지 않아 제가 맛집에서 곰탕이나 사달라고 했습니다. 나중에 가죽 잠바를 선물로 주더군요.
그런데 이 친구는 의사 협회 소속이었습니다. 현 시스템에 큰 불만이 있었고 특히 보험수가에 대한 분노가 컸습니다. 의사들의 시위가 열리면 먼길을 가서 시위에 참여할 정도로 열정적이었습니다. 그러다가 그알에서 방영한 수면제 부작용을 이야기하다가 의견 충돌이 벌어졌고 사이가 어색해졌습니다.
코로나 유행 때 몇 년 만에 처음으로 연락을 했습니다. 지방의 큰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고 결혼도 했습니다. 제가 우리 모임에서 마음에 들었던 여교사를 적극 추전했지만 동료 의사를 선택했더군요. 어머니가 의사 며느리를 선호한다는 말을 했던 과거가 얼핏 떠올랐습니다. 저는 국내 한 언론사에 나온 코로나 환자 CT 보도를 보여줬습니다. 저는 이 보도가 가짜뉴스라는 미국의 의료 전문가의 주장을 확인해 보고 싶었습니다. 이 환자의 가슴은 온통 하얀색이었습니다.
그러자 코로나 환자의 실제 CT 사진을 저에게 보내줬습니다. 그러면서 의사들 사이에 정부가 주장하는 코로나의 위험성이 과장되었다는 인식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백신을 무조건 접종하라는 정부의 지시가 병원에 내려왔다고 하면서 어쩔 수 없이 1차를 맞았다는 말도 했습니다. 더는 안 맞고 버틸 거라고 했습니다. 일부 의사들은 팬데믹에 회의적이지만 나서기 싫어 침묵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제가 이 친구와 거의 모든 일에 있어서 의견이 맞았지만, 단 하나에 있어서는 크게 달랐습니다. 자신이 의사이다 보니 의사라는 직업은 힘든 경쟁을 뚫고 오랜 수련 끝에 의사가 된 만큼 큰 수입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사실 이런 주제의 이야기는 하는 게 아니었습니다. 의사 협회에서 일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제가 조심했어야 했습니다. 저는 부작용이 알려진 수면제를 처방하면서 부작용을 알리지 않은 의사에게 책임이 없다는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코로나가 유행하던 당시에 병원, 제약사, 의사는 많은 돈을 벌었습니다. 그들이 돈을 벌기 위해 나쁜 짓을 했다고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아마도 정부의 강력한 의지를 수동적으로 따랐던 것뿐입니다. 그러나 일부 직업군은 정부의 압력이 있더라도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다면 나서줘야 합니다. 일반 대중은 정부와 언론의 주장을 거의 무조건적으로 따르기 때문에 때로는 전문가들의 이견이 판단을 내리는 데 있어 정말 중요합니다.
미국에는 팬데믹 당시에 정부가 주장하는 코로나의 위험에 대해 다른 의견을 피력하는 전문가들이 있었고, 이로 인해 의사 면허가 취소된 분도 있었습니다. 지금도 소송전을 벌이고 있는 분도 있습니다. 그러한 인물들이 한국에서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국내 최고 전문가인 서울대 오명돈 교수는 집단면역이 불가능하다고 정부의 백신 캠페인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을 소극적으로 밝혔을 뿐 정면으로 싸우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오 교수를 탓하려는 의도는 없습니다. 그나마 현역에서 거의 유일하게 정부와 다른 의견을 낸 분이십니다.
그러나 한국이라는 거대 집단에서 단순히 정부의 지시를 따른다면, 자신이 해당 분야의 전문가이고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지만 이익이 달린 문제이기 때문에 순응하고 침묵한다면 모든 피해는 고스란히 집단의 소속원에게 돌아갑니다. 저는 지난 팬데믹에 대해 미국, 영국처럼 의회 조사를 하지 않은 한국에 대해 불안감이 큽니다.
지난 팬데믹을 복기하지 않은 한국은 세계보건기구가 팬데믹을 발표하고 서방 언론이 공포 주입으로 지원하면 팬데믹이 다시 한국에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봅니다. 반성하지 않는 자들에게 비극은 반복됩니다. 국내 언론사들은 코로나19가 우한 연구소에서 유출되었다는 백악관 발표를 전하면서 백악관이 '주장을 했다'는 표현을 감히 썼습니다. 국내에서 백악관의 이 미천한 '주장'조차 아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팬데믹 당시에는 노벨상 수상자도 정부 입장과 충돌하면 음모론자가 되는 광기의 시기임을 기억합니다.
제가 몇 년 전에 한 한국계 미국인 의사의 영상을 공유한 일이 있습니다. 그는 병원이 돈을 버는 데에만 관심이 있어 근본적인 치료를 안 하고 증상만 치료한다고 말하면서 극복하기 힘든 죄책감 때문에 아내와 상의 후 병원을 떠났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멀리 산을 찾았고 어떠한 인공 구조물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고백 영상을 찍었습니다. 저는 그가 영상을 찍기 위해 산을 찾은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그리고 그가 고뇌한 많은 시간들이 상상되면서 그의 용기와 결단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https://minimalistinthecity.com/some-reflections-about-moral-dilemma-after-watching-a-viral-video-about-a-mit-educated-neurosurgeon-who-became-unemployed-and-is-now-alone-in-the-mountains/
https://www.youtube.com/watch?v=qj6AKdVYK-g
https://www.youtube.com/watch?v=TRHW9Bdraco
https://www.joongang.co.kr/article/237316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