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4일 주일 예배
본문<마>20;29~34
제목; 눈 뜨기를~
육의 징병에 걸렸어도 먼저 마음부터 치유되어야 합니다
마음을 치유하는 것이 내적치유입니다
그 이유는 여러분도 잘 알 듯이
잠언4;23에서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하셨기 때문인데
이 생명의 근원이란 이 말을
4;21절의 [그것을 네 눈에서 떠나게 하지 말며 네 마음 속에 지키라]
4:22의 [그것은 얻는 자에게 생명이 되며 그의 온 육체의
건강이 됨이니라]는 말씀에서 유추해 볼 때
그것은 곧 생명의 말씀이요 진리를 믿는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말씀을 믿는 믿음을 간직하면
병 고침이 일어납니다, 치유가 일어납니다, 생명이 살아나고
건강과 함께
장수도 따라옴을 기억하여 믿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지금도 이 치유의 역사는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금도 기적은 일어나고
온갖 신유의 역사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도 그렇습니다...자녀들이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부친을 위해
오늘이 고비입니다..라며 기도 부탁을 했던 노년의 환자가
우리가 새벽마다 기도했을 때 기적처럼 일어나
지금까지 살아 있으며
자살충동에 시달리며 심각한 우울증을 앓던 청년도
지금은 치유 받고 열심히 청년의 때를 살아가고 있음은 물론
우리 사모도
지금은 건강 회복을 위해
그리고 우리 허권사님의 그 눈도 분명 치유를 받을 것입니다
문제는 이것을 믿는 마음입니다
여러분..전도도 좋고 기도도 좋지만 우리 교회의 이런 치유의 역사를
여러분이 여러분의 입술로 소문내 주셔야 합니다
축복하며
돈늘 많이 벌게 해 달라고 기도했더니 그대로 이루워진 역사를
여러분이 소문내 줄 때 하나님도 저와 여러분의 입술을 통해
하나님이 소문내 주시고
하나님의 역사로 시온성 교회에 사람을 붙여주시고
소개도 해 주시고 보내도 주신다는 사실을 믿음으로 간직하고
협조하게 되를 부탁드립니다
위기는 곧 기회이고 힘들고 어려울 때가 바로
하나님은 가까이 계시며
우리의 도전으로 보시며 그대로 이루어주실 것입니다
우리 교회도 분명 그리 될 것을 믿습니다
회복될 것입니다
부흥될 것입니다
이곳으로 성전이 이전되었을 때 우리 사모를 통해
주신 말씀
학개서 2:9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 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런데 여러분 큰 영광과 평강을 얻기 위해서는
고난도 시련도
온갖 위기와 어려움도 있을 것이나
하나님은 항상 남은 자를 주시고
새 사람도 보내 주시며
흩어진 자를 다시 모이게 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저도 오늘 설교를 준비하며 여기까지 묵상할 때
다시금 힘을 얻습니다
용기를 얻습니다..지친 마음에 위로를 보내십니다
여러분 제 워딩도..믿는 자들의 워딩도
긍정적이어야 합니다
될까?.가 아니고.. 될 것이다도 아니고
된다라는 확정적인 믿음을 견지하며 함께 하자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려면
우리 모두 예수를 따르며 영혼의 눈을 떠야 합니다
29절입니다.
[그들이 여리고에서 떠나 갈 때에 큰 무리가 예수를 따르더라]
예수님의 주변에는 늘 무리가 따르고 있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누구를 따르고 있습니까?
세상과 세속의 방식을 따르거나 크고 화려한 것을
따르지 않기를 부탁드립니다
여러분은 여전히 예수를 따르고 있음을 믿습니다.
그러나 저와 여러분은
예수를 따르는 목적이 분명해야 합니다.
예수 믿는 목적의 본질은 ‘영혼구원’에 있음을 간과하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를 다니는 목적이 병으로 고치고
문제와 사건이 해결되고 범사에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어야하지만
그것이 본질이 아니라 구원이 본질이라는 말씀입니다
안타깝게도 두 눈을 뜨고 예수를 따르는 무리들은
예수가 메시야인지 알아보지를 못합니다.
두 눈을 뜨고 예수를 따르는 자들이 의외로
많이 있습니다
무리들 중에도 있고 서기관과 종교 지도자들과
오늘의 교인들과 직분자들은 물론 목사들 중에도
상당수 있다는 것입니다
두 눈을 뜨고도 보지 못하는 자가 가장 불쌍한 자들입니다.
두 눈을 뜨고
두 귀를 가지고도
말씀을 듣지 못하는 자가 가장 불쌍한 자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방송매체를 통해서나
곳곳의 각종 집회를 쫓아다니며
내 열심만으로 듣고 보고 하지만
여전히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머리와 귀는 커지고 지식은 충만한데도
여전히 예수님을 모르니
기형적인 신앙인이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교회를 왜 다니고 예수를 왜 믿는지도 모르고
세속의 일은
참으로 열심히 하면서
교회를 계모임이나 친교 모임하듯 하며
다니는 자들 중에는
구원이 무엇을 뜻하는 말인지도 모르는 교인들이
그 시절 예수님 시대나 초대 교회와 지금의 광야 교회에도
너무나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의 조연인 한 사람 맹인은 알고 있었습니다
30절입니다.
[맹인 두 사람이 길 가에 앉았다가 예수께서 지나가신다 함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하니]
예수가 누구인지를 눈을 뜨고 있는 무리는 몰랐으나
맹인들은 알았습니다.
그들은 보는 일에 불편하여 많은 제약 속에 살고 있었는데도
두 사람의 맹인
그들은 예수 소문을 들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비록 볼 수는 없었지만 예수가 누구신지 듣고 알았다는 것입니다.
볼 수는 없었는데
귀는 밝아 들을 수 있었고 듣는 즉시 믿음이
마음 안에 작동하매
그 분이 다윗의 자손, 즉 메시야이신 예수임을 확신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눈을 뜨고 있는 우리는, 그런데 과연 너희는 어떠하냐는
예수님의 질문에 답해야 합니다.
너는 말씀을 믿음으로 듣고 있느냐 물으십니다.
너는 믿음으로 기도하고 있느냐고 물으십니다.
듣지도 않고 기도하지도 않으면서
그냥 좋은 일만 있기를 소망하고 있지는 않은가를 물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영적 귀가 밝아야하고
또한
잘 들어야 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 것은 예수님의 정체를 알고 있다는
신앙 고백입니다
맹인들이 다윗의 자손이여 한 것은
예수님이 메시아인 것을 인정하는 신앙고백입니다.
그렇습니다.
맹인들은 앞을 못 보면서도 예수님이 메시아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믿음의 대상이 예수님인지
세상인지를
재물인지 사람인지 분명하게 분별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러나 너무나 잘 들으니 핍박이 가해집니다.
31절입니다.
[무리가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더욱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지라]
무리가 꾸짖어 잠잠하라 합니다.
꾸짖는 자는 핍박자이며 방해하고 경계하는 자입니다
모처럼 교회에 가려하니
시어머니가 남편이 자녀가 핍박으로 경계하며 방해합니다.
초신자가 말씀을 너무나 잘 듣고
잘 깨들으니
칭찬과 격려가 아니라 시기가 오고 꾸짖는 핍박이 가해집니다.
그러나 그리하여도 더욱 소리를 높여 부르짖어야 합니다.
맹인들이 그랬습니다.
내 속에 있는 간절한 소망을 끈질기게 부르짖어야 합니다.
내 눈을 뜨기 위하여, 내 병을 고치기 위해
내 사업과
내 문제 해결을 위해 간절한 소망으로 부르짖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약속하신 복을 받기 원한다면
어떤 경우에도
마음 상하지 말아야 합니다.
무리들이 방해했으나 이들은 더욱 소리를 질렀다고 했습니다.
여러분도 그래야 될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알면 부르짖게 됩니다.
정제성과 존재감을 깨닫게 되면 소리 질러 구하게 됩니다.
우리는 갈급함과
다급함으로 구할 때에
불쌍히 여겨 달라고 소리 질러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같은 무리들이 시끄럽다고 방해합니다
하지만 무리들이 부르짖는 것을 방해하고
훼방을 받아도
끈질김으로 구해야 합니다.
맹인들은, 자녀에게 좋은 자리를 달라던 세배대의 부모처럼
구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죄인임을..내가 연약한 죄인임을 고백하며
불쌍히 여겨 달라고 구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생명 있는 건강한 신앙은 어떤 박해 아래에서도
강한 생명력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32~33절입니다.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그들을 불러 이르시되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이르되 주여 우리의 눈 뜨기를 원하나이다.]
무엇을 원하느냐는 예수님의 질문에 주여...눈 뜨기를 원한다고 답을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눈뜨기를 위해 구해야 합니다.
가장 먼저 영안이 열리기를 위해 기도하고
분별하여
볼 수 있는 영적인 눈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처음에는 막연한 자비를 구하며 불쌍히 여겨 달라 했으나
이제는 구체적으로 ‘눈뜨기’를 원했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바라고 원하고 있습니까?
우리들도 영적 소경의 자리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 구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 찬송하나 하고 1분만 기도하고 말씀을 계속 듣습니다]
여러분 갈 바를 알지 못했으나
무작정 순종하여 길을 떠났던 아브라함처럼
사실 우리도 지금 어찌할 바를 모르며
어정쩡한 상태로
여러 가지로 염려근심하고 있는 것은 없나요?
사실 우리에게도 기도할 바를 모른 채로
갈 바를 알지 못하고
기도의 자리에 있게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때에도 순종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눈을 뜨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귀를 열어 말씀을 듣게 해 달라고 입을 열어 기도하게 해 달라고
우리 다시금 기도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그리하면
우리의 기도를 도우시는 성령님을 만나게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지혜의 성령께서 우리에게 기도제목을
구체적으로 알려주시고
인도해 주심을 믿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의 순종이 가장 소중한 것입니다.
기도의 환경을 주신 것에 감사해야 하고
기도할 일을 주신 것에도 감사해야 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눈을 뜨고 있으면서도
메시야를 알지 못하는 교인들이 참으로 많음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의 능력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우리가 눈을 뜨고
주님을 보게 해달라고 구해야 합니다.
입 대신 무릎으로 구하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기도하면 기적은 일어납니다.
기도 외에는 다른 것으로는 이런 기적은 없다는 사실을 확신합니다
핍박과 무시를 당하여도 눈뜨기를 소망하는
맹인의 기도가
우리의 귀감이 되어야 합니다.
34절입니다.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사 그들의 눈을 만지시니 곧 보게 되어
그들이 예수를 따르니라]
여러분 주님이 불쌍히 여겨 주셔야 합니다..민망히 여겨 주셔야 합니다
여러분..주님이 만져 주셔야 합니다
우리 허명자 권사님의 눈도 만져 주셔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의 눈도 마음도 만져 주셔야 합니다
그리하면 치유되고 회복되어 보게 됩니다..그리고 우리 모두
예수를 따릅시다
무리는 소경에게 꾸짖어 잠잠하라 하지만 예수님은 꾸짖지 아니하십니다.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기 전
가장 나중에 베푸신 기적은 눈을 뜨게 하는 일이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우리의 영적인 눈이 떠지는 것이
가장 소중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눈을 뜨기 위해 영안이 열리기 위해 기도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어야 합니다.
실로암 연못은 바로 이 자리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들 교회가 실로암 연못이요
마가의 다락방이요 오르난의 타작 마당이 되어 눈을 뜬 자들의
기도처가 되어야 합니다.
이제 저와 여러분도 귀로만 듣다가 눈으로 보며
예수를 따르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큰 무리는 호기심으로 예수를 따랐지만 믿음은 없었습니다.
교회를 떠난 사람들 대부분 졸다가 떠났습니다
듣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듣지 못하니 믿음도 소진되고 분별력도 잃게 됩니다
양육받고 문제도 해결되며 치유 받았던 은혜도 까먹으니
가 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눈을 뜬 맹인은 믿음으로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예수를 따르게 된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 눈을 뜨고 예수의 제자로 살아가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이제 마무리합니다...제가 늘 하는 이야기하는 말로
영어 수학을 잘하는 것으로는
세상의 으뜸은 되겠지만 성령 충만을 받아 성령에 속한 자는
세상이 감당 못할 큰 일로 으뜸의 자리에 있게 됨을
기억하여
믿으시기 바랍니다.
세상의 으뜸의 결론은 허망함과 허무, 허탈로
마무리되지만
주 안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으뜸이 되는 자는
평강과 안식가운데 기쁨이 충만하고
산 소망 가운데서 썩지 않고 더럽혀지지 않고
쇠하지 않는
영원한 기업을 상속받게 되는 데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영안이 열려야 하며
눈을 뜨고
예수를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주인공들이 바로 저와 여러분이 될 것임을
믿고 적용하시기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 눈을 뜬 자들이 다 됩시다
저와 여러분 곧 보게 되어 오직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신
그리스도 예수만 따르며 다시금 도전할 때
우리의 가장 소중한 소망들이 다 이루어질 줄로 믿고
적용하고
결단하여 말씀의 능력을 체휼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