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음의 실체. 2
현대물리학은 양자역학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 양자역학의 기초적인 이론은 빛의 형태에 관한 논리이다. 빛은 입자인 동시에 파장이라는 공식이 학계의 주된 정설이다. 그러다보니 입자로 구성된 물질 역시도 동시에 파장을 지닐 수 있다는 가설이 등장할 수가 있다. 이러한 가설을 만들고 그 진위를 연구하는 이론물리학은 우리에게 상상의 미래를 선물하게 된다.
관음(觀音)에 대한 설명에도 양자역학이 한 몫을 한다. <옴마니 반메흄>의 6자 대 진언(眞言)은 ‘온 우주에 충만하여 있는 지혜와 자비가 지상의 모든 존재에게 그대로 실현될 지어다’의 뜻이다.
옴Ω은 우주의 첫소리다. 우주는 지금으로부터 약 138억년전에 빅뱅에 의해 시작되었다고 추론한다. 하지만 우리에게 들리는 소리라는 것은 물체의 진동이 공기의 진동으로 전달되는 하나의 파동이다.
그런데 이 광활한 우주에는 공기가 없다. 그러나 우리는 우주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 이유는 공기 대신 플라즈마가 이들의 전자기파를 인간의 가청 주파수로 변환하기 때문에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런 이치로 우주 온도측정인 우주배경복사의 지도가 만들어진다.
*플라즈마; 고체, 액체, 기체 다음의 제4의 물질상태, 기체원자가 이온핵과 전자로 분리되는 물질상태.
*우주배경복사; 빅뱅이론을 정설로 만든 계기가 된 이론.
1964년, 벨연구소의 천체 물리학자 펜지어스와 윌슨은 전파 망원경으로 통신 위성을 추적하던 중에 우연히 어떤 전파 잡음을 발견하였다. 그 잡음의 소리가 빅뱅의 흔적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고 그 소리가 빅뱅 우주론에서 그토록 찾아 헤매던 우주최초의 소리임을 인식하고 이론물리학자들의 도움을 받아 이를 논문으로 발표한다. 따라서 지구에 관측되는 우주배경복사는 과거 빅뱅직후 뜨거웠던 우주로 부터 온 소리이며 빛이다.
이처럼 빅뱅의 시작점에서 나오는 소리의 음파인 맥놀이파를 옛사람들은 옴Ω이라 지칭한 듯하다. 옛사람들의 지혜가 돋보이는 대목이다. 하지만 이것 자체를 암송함으로써 부처Budda에 귀의할 수 있다는 판단은 일개 주술(呪術)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들과 달리 불경(佛經)속의 소리법문은 영적(靈的)인 우주창조의 소리로써 불경의 관음(觀音)으로, 또 성경의 말씀(Word)으로 전해진다.
“In the beginning was the ‘word{sound}'. and the word was with God. and word was God. everything was made by this, and nothing was not made by this.”
그렇지만 승가(僧家)에서는 관음을 추상적이며 상징적인 법문으로만 인식되어 전해지고 있다. 그래서 한국불교의 대표주자인 조계종에서도 <능엄경>의 소리법문을 그냥 상징적으로만 이해하고 있는 듯 다른 주해(註解)로 설명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관음법문을 앞세워 포교에 열중하는 외국불교단체의 도전에도 신심(信心)을 강조하며 기득권의 놀이(?)에 젖어있는 것이 아닌가하고 염려된다.
관음(觀音)은 범음, 해조음, 승피세간음으로 구분되며 맑음이 충만할 때 비로소 들리는 소리법문이다. 물론 관음을 포교하는 그들 단체의 주장처럼, 반드시 생명존중사상의 완전채식이나 스승의 가피가 있어야만 들리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로지 영육(靈肉)간의 맑음의 기초아래 들을 수 있는 신비의 소리다. 굳이 양자역학으로 설명한다면 우리가 들을 수 있는 소리sound는 입자라면, 관음(觀音)은 육체가 감지하지 못하는 감각 밖의 파장인 것이 된다.
* *
다시 범어사의 각인스님으로 돌아가자.
백회를 개혈한 후, 묘한 촉감과 묘한 작용을 실제 체험하여 수행의 새로운 지평을 열면서 자신감을 회복하기 시작했지만 아직 소리법문은 좀체 다가오지 않는다. 벌써 본회의 수행법으로 정진한지 4개월 남짓, 궁금하다 못해 던지는 질문이다.
“관음(觀音)이 아직 들리지 않는 이유가 뭐죠?”
“소리법문은 맑아야 만이 들리는 것이죠.”
“뭐요? 17살에 출가하여 40여 년간을 기도와 염불, 그리고 채식으로 승려생활을 유지하고 있으며, 비구니스님의 옷자락조차 스친 적이 없는 소승이 맑지 않다는 말이요?”
“스님이 말씀하고 계신 맑음은 미안하지만 육신일 따름이죠, 영혼의 맑음은 기도나 염불이 아닌 무위법의 ‘구하지 말고 의지하지 말며 상(相)을 짓지 않는’ 무위법의 명상을 의미하죠.
예를 들면 “이것이 무엇이야? 의 <이, 뭐꼬!>”의 강렬한 화두의 의증(疑症)은 의식을 동원하여 의심의 증표를 끊임없이 분출하는 결과를 초래하죠. 심지어 꿈속에서 조차 <이, 뭐꼬>를 하면서 몽중일여가 되도록 요구하고 있지 않습니까?
간화선(看話禪)화두의 기본이 신심(信心)과 분한마음 그리고 의증(疑症)이죠. 특히 분한마음도 그렇지만 신심(信心)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심이란 믿음의 긍극적인 목표점이죠. 그것 역시 의식의 다짐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죠. 이처럼 의식을 활용하는 선법(禪法)은 유위법임을 옛 조사들은 누누이 강조하며 잘못을 지적하고 있지 않습니까?”
“.....”
“스님이 모진 세월 겪어온 상기병(上氣病)은 화두의 집착에서 시작되는 두뇌의 과부하현상으로 일종의 정신질환이죠. 스스로 두 번이나 자살을 시도할 정도의 영적(靈的)고통의 출발은 모두가 의식의 지나친 집중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묵묵히 경청하는 모습에서 처연함이 젖어 나온다.
“소리법문을 빠른 시간에 얻을 수 다른 방법은 없는 건가요?”
한참을 생각한 뒤 던지는 조용한 말투는 오직 치료보다는 고급법문에 갈증이 더 심한 것 같았다.
“다른 비법이 존재하지는 않지만 관음수행자는 불사조이며 만능신통자임을 잊으셨나요?” 열흘간의 단식을 권하는 자신만만한 필자의 모습에 안도의 한숨을 쉰다.
그래서 시작한 단식수행이다. 단식의 중요점은 배고픔의 승화다. 하지만 관음수행자와 반드시 동반단식이어야 효과가 있다. 이 글을 읽는 독자께서는 혼자 단식수행으로 관음을 기대할 수 없음을 먼저 밝힌다.
배고픔은 인간의 본능 중 최고점이다. 배가 고프면 모든 생각의 귀결점이 음식이 된다. 언제 음식을 섭취할 수 있을까?의 기대 외에는 다른 생각이 사라지며 또 허물어진다. 충분한 물과 단식요법(된장찜질, 스트레칭과 체조, 온냉탕 목욕법, 가벼운 산책, 그리고 수식관명상 등등)으로 버틴 지 4일째 되는 날 저녁, 수행 중 소리법문을 마침내 얻게 된다.
지금까지 상징적으로만 인식했던 관음(觀音)을 새삼 득하고 나니 이것 역시 최면술이 아닌가 하며 의문투성이다. 그렇지만 머리 언저리에서 들리는 소리법문이 백회혈로 서서히 접근해오는 과정에서 스님도 점차 구체성을 인정하게 된다.
“아니, 어쩜 관음(觀音)이 실제로 존재하다니 이럴 수가!....”
어이없다는 표정 속에 승납(僧臘) 4-50년의 기개를 숨긴다.
“스님, 관음(觀音)이 들린다고 해서 금방 법력이 나타나는 것은 아니외다. 마치 어린 새가 날개가 있다고 금방 날 수 없는 것과 동일한 이치죠. 소리의 형태가 가끔씩 변하면서 나래를 펼치죠. 소리가 숙성된다고나 할까요. 그때마다 소리의 종류가 달라지면서 <능엄경>의 범음, 해조음, 승피세간음으로 나타나죠. 하지만 그들의 소리구분은 본인만이 해석할 수 있죠. 그렇다고 왼 종일 소리에 올인하면 안되는 줄 알고 있겠죠? 과유불급이라, 너무 지나치면 관음(觀音) 역시도 상(相)으로 변할 수 있으니깐요!”라며 초창기 소리법문의 이해도를 설명한다.
출가한 수행자임을 내세워 간혹 자긍심을 내세우던 스님인지라 관음(觀音)법문의 설명도 조심스럽다.
“너무 그렇게 조심스러워 마세요. 김선생님의 법력이 놀라울 따름이요. 허, 허, 허”
또 다른 지시사항도 기꺼이 따르겠다는 말에 더욱 자신감 있게 말을 잇는다.
“관음(觀音)의 소리는 어떤 때는 시끄럽게 들리기도 하고 혹은 조용히 들리면서 있는 듯 없는 듯 하죠. 소리가 크게 들린다는 것은 카르마의 제거가 이유가 되죠. 특히 백회가 막혀있을 때는 유별나게 크게 들리기도 합니다. 결국 관음의 초기 작업은 깨달음을 얻기 위한 업장소멸이 주된 임무가 되죠. 따라서 백회를 가로막고 있는 카르마를 제거하고 백회를 가동시키는 역할이 우선되죠. 결론적으로 백회의 가동 없이는 관음(觀音)의 위력을 기대하기는 어렵죠” 그러면서 관음의 정착에는 일상의 속도가 관여할 수가 있음을 필자의 경험을 덧 부쳤다.
“처음에는 자동차 100km 속도에는 감지가 되었는데 엉뚱하게도 그 당시 최고속도인 새마을호의 150km에는 들리지는 않았죠. 속상해 하면서도 수행의 꼬투리를 당연히 재촉했죠. 정진의 시간이 쌓여 마침내 속도의 한계를 벗어나 비행기내에서도 관음(觀音)을 찾을 수 있을 때 무한의 법력이 같이 하게 되죠.”하며 소리법문의 정착과 동시에 서서히 치료의 결과가 나타남을 설명한다.
참선으로 일생을 매진한 스님이다. 하늘의 소리, 관음(觀音)을 득한 이후 수행의 재미에 흠뻑빠진 일여년의 시간이 지났다. 잠시 서울을 다녀 온 후일담이 그를 소리법문의 위대함에 푹 빠지게 했다.
“스님, 이번엔 어디서 무슨 수행을 하고 왔어요? 몸에서 황금빛의 너울이 몸을 온통 감싸고 있습니다”며 스님과 중국기공을 같이 연마했던 기(氣)감각이 특출한 30년 명상 경력을 가진 도우(道友)의 말이 이어졌다.
“방금 스님과 같이 명상수련을 하면서 입정(入定)중, 스님의 몸을 감싼 황금너울을 당겨서 본인의 단전으로 끌었더니 황금빛의 일부가 내 몸을 감싸 잠시 황홀경에 빠졌었지요. 그런데 순간 의식을 놓으니까 금빛이 도로 제자리로 금방 되돌아가 버리데요. 실망과 안타까움에 한번 더 당기려다 겁이 덜컥 나서 눈을 떴습니다.”며 건강해진 스님의 모습에 부러움과 존경심을 드러낸다.
--- To be continued ---
한 국 선 도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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