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보다 그 이후에 비가 잦았고, 막바지 찜통더위로 보낸 여름 끝자락이었다. 내가 속한 어느 모임에서 몇 분 회원은 새 학기 영전하여 보직이 바뀐 분도 있었다. 개학을 한 학교도 있고 며칠 뒤 개학을 할 학교도 있다만, 인사철에 신경 쓰일 업무를 마무리한 회원들은 더 고생 많았으리라. 새로이 옮겨갈 임지에서나 개학한 학교에서 활기 넘친 나날을 기약했다.
아침 이른 시각 창원시청 광장에서 다섯 명 회원이 예약된 전세버스로 출발했다. 마산역에서 열 명 회원이 더 타고 남해고속도로를 달려 서진주 나들목으로 빠져나와 다섯 명이 더 합류하니 모두 스물 명이었다. 우리 일행을 태운 버스는 경호강을 따라 국도로 접어들었다. 바깥으로 나오니 계절의 변화를 실감했다. 도심에서 덥다고 푸념하고 있었는데 가을이 저만치 가까이 오고 있었다.
국도변 논에선 나락이 여물고 있었다. 햇볕에 고추를 말리는 마당귀도 있고 콩밭에선 콩깍지가 볼록해져 가고 있었다. 산청의 생초 금서를 지나 함양의 휴천 마천으로 들어갔다. 차창 밖 계곡에선 물줄기가 시원스레 흘렀다. 칠선계곡 입구 벽송사와 서암에 잠시 들렸다. 서산대사가 선풍을 떨친 도량이고 빨치산 흔적이 희미하게 남은 벽송사더군요.
벽소령의 정기를 받고 태어난 어느 회원은 지리산 골짜기물이 말을 몰아가듯 달려간다 해서 마천(馬川)이고 잠시 쉬며 흐르는 곳이 휴천(休川)이라더군요. 계곡 어느 지점 통발 놓기 좋은 한 자리는 못 밑 논 서 마지기하고도 바꾸지 않는다는 명당도 있다더군요. 백무동 종점에 있는 느티나무산장에서 회원들은 자리를 함께 했다.
산진미(?) 전골을 앞에 두고 정년을 맞은 어느 교장님의 교단 생애를 되돌아본 자리를 가졌다. 벽면에 정년을 기념하는 자리라는 글귀가 더욱 선명하고 정연해 보였다. 풍광 좋은 야외로 나와 회원 서로 간에 오고간 반주가 가벼우면서도 뜻이 깊었다. 마침 나들이 방향이 같았던 ㅎ교육청 교육동료 몇 분들과도 잠시 인사를 나누었다.
독서발표회는 식후 계곡에서 가졌다. ‘훌륭한 교사는 이렇게 가르친다’라는 책의 독서 발표회였다. 책읽기만도 부담일 텐데 여섯 명의 회원이 원고까지 다듬어 와 감사했다. 나는 후배 회원 한 명과 산장에서 2.7킬로미터 떨어진 가래소 폭포를 탐방하고 왔다. 나머지 회원들은 시원한 계곡물에다 발을 담그고 두어 시간 정담을 나누다 버스에 올랐다.
회장님의 눈썰미가 맵다는 것을 실감했다. 마천으로 들어오면서 차창 밖으로 보아둔 기찬 자장면집이 있다고 하였다. 그냥 농담이려니 했는데 텔레비전 인생극장에도 나왔다는 ‘외팔이 자장면’집이었다. 하얼빈 중국한족 처자(그곳에서는 보건소장직을 역임했다고 함)가 내어준 단무지와 양파로 추억에 남은 자장면으로 저녁을 잘 때웠다.
회원 중 한 분이 고향동네를 지나간다고 그냥 두지 않았다. 어디서 마련했는지 말린 고사리를 봉지봉지 회원마다 안겨주었다. 이 대목에선 불참회원의 몫까지 챙겨오지 못한 글 총무를 원망해도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이후 한강 이남에서가 아닌 인터내설 사회로도 손색없는 어느 회원이 진행한 여흥으로 귀로가 짧음을 아쉬워했다.
첫댓글 가을을 보고 오셨군요. 나락, 고추, 콩깍지. 벽송사라면, 석불들로 인해 아찔한 위압감을 받게 되었겠네요. 불력으로 비극의 역사를 씻고 있는. 가래소엔 수량이 넉넉하였겠군요. 언젠가 가 본 곳을 따라가 보았습니다. 여흥 땐 오돈님, 무슨 노래 불렀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