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곡(桑谷) 성석인『成石因/초명: 成石珚,1357년(공민왕 6) ~ 1414년(태종 14)』은 기우자(騎牛子) 이행『李行, 1352년(공민왕 1) ~ 1432년(세종 14) 德水人』선생과 사이좋게 지냈다. 기우자 선생은 성남에 살았고, 상곡은 경상도 울진의 백암산 서쪽에 살았으니, 서로 5리 정도의 거리가 떨러져 있었다. 그래서 혹은 걸어 오가면서 사귀었고, 혹은 시를 지어 응답하며 지냈다.
상곡은 동산에 조그만 정자를 짓고 ‘衛生堂’(위생당)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그리고 매일 집안의 시동들을 모아놓고 약을 조제하는 것을 일과로 삼자고 했다. 기우자 선생이 (여기서) 예전에 지은 시들이 있다.(그 시는 앞에 있었음)
기우자 선생이 위생당에 도착하면, 상곡은 아들 恭度公(공도공)에게 자주 창밖에서 차를 끓이라고 했다. 공도공은 찻물이 끓어 넘치면 다시 다른 물을 보태곤 했다. 그러면 기우자 선생은 “이 차는 반드시 두 물을 합했다”고 말했으니, 선생은 물맛을 분별해낼 수 있었던 것이다.
①물맛은 충주의 달천물(달천강)이 첫 번째요,
한강의 우중수(牛重水)가 두 번째요,
속리산의 삼타수(三陀水)가 세 번째다.
②달천은 금강산으로부터 흘러내려 온다.(용재 이종준의 총화의 기록)
평해(경상도 울진군의 옛 이름)의 월송정은 경관이 아름다운 곳이다.
기우자 이행 선생이 항상 달밤이면, 소를 타고 송월정을 구경하며 노닐고 했는데, 귀양 와서 백암산(경상도 울진에 있는 산) 아래 집을 짓고
‘백암’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시와 술로 스스로 즐겼다. 태종이 왕자였을 때부터 선생을 좋아하여 자주 불렀지만, 나가지
않았다. 세상을 마치자 문절이라는 시호가 내렸다.(조야기사의 기록)
이행 선생은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이 대제학에 이르렀다. 문장으로 세상에 저명하게 알려졌으며, 시호는 문절이다. 우리 고을에 유배를 와
서 백암산 아래 살았는데, 호를 백암이라고 했다. 문장과 절의로 세상에 이름이 높았다.(평해지의 기록)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