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지 않는 주머니
2024.02.11.(주현후마지막주일)
선한목자교회 김 명 현 목사
29/ “그러므로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고 찾지 말고, 염려하지 말아라. 30/ 이런 것은 다 이방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이다.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런 것이 너희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아신다. 31/ 그러므로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여라. 그리하면 이런 것들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실 것이다. 32/ 두려워하지 말아라. 적은 무리여, 너희 아버지께서 그의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신다. 33/ 너희 소유를 팔아서, 자선을 베풀어라.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낡아지지 않는 주머니를 만들고, 하늘에다가 없어지지 않는 재물을 쌓아 두어라. 거기에는 도둑이나 좀의 피해가 없다. 34/ 너희의 재물이 있는 곳에 너희의 마음도 있을 것이다.”
들어가는 말
세포분열로 영원한 생명을 이어가는 무성생식과는 달리 유성생식은 암수의 구별로 서로의 유전자를 반반씩 나누면서 다양한 생물들로 진화했습니다. 초기 암수 생물들은 무작위적으로 짝을 이루었습니다. 예를 들어, 바닷속 산호는 동물인데 어느 보름달이 뜨는 밤 암컷과 수컷은 알과 정자를 뿜어냅니다. 그러면 조수에 따라, 이리저리 흩날리다 우연히 만나 수정합니다. 이렇게 수정된 알들 가운데 우연히 자라기에 적합한 곳에 정착한 알은 그곳에서 산호로 자라기 시작합니다. 조금 더 진화한 생물들을 볼까요? 스스로 움직이는 양서류, 파충류, 조류, 나아가 포유류 등은 스스로 짝을 찾아 나섭니다.
대부분 수컷은 암컷을 차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며, 암컷은 그중에 최고라고 생각되는 수컷을 선택합니다. 이렇게 생명을 이어가는 데는 서로 다른 성의 유전자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고등생물일수록 더 나은 상대를 선택하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현재 우리는 인간을 포함한 살아 있는 모든 생물들이 쌍을 이루는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이렇게 이루어진 생명은 그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 먹고 몸을 보호해야 합니다. 여기까지 보면 우리는 의지와는 상관없이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를 가진 생명체로서 단지 죽지 않으려면 열심히 먹고 스스로를 보호해야 하는 존재입니다.
생명을 이루는 사랑
하지만 고등생물일수록 생명을 이루는 것은 단순히 무작위적이지 않습니다. 그것은 치열한 선택의 과정입니다. 선택하기 위해서 목숨도 겁니다. 우리는 이것을 사랑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므로 인간이란 존재는 단순한 유전적 결합의 결과물이 아닙니다. 생명을 만들어내는 과정에 사랑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생명은 사랑 없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구성하는 유전자의 반쪽만을 남길 수밖에 없으면서도 다음세대를 포기하지 않는 것은 그 반쪽을 사랑이 채우기 때문입니다. 결국 나란 존재는 아버지의 반쪽과 어머니의 반쪽 그리고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게다가 나의 유전자는 나의 것이 아니라 아버지와 어머니의 것입니다. 배우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내 자녀의 유전자는 친할아버지나 친할머니 유전자 중 하나와, 외할아버지나 외할머니 유전자 중 하나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만 더 올라가 보면 내 자녀의 유전자는 친증조 쪽 4명 중 한명과 외증조 쪽 4명 중 한명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내 자녀의 모습이 지금의 모습인 것은 이 유전자 전달과정 가운데 수도 없이 이루어진 사랑의 한 조각만 빠져 있어도 불가능한 것입니다.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는 그저 무작위적 선택으로 태어나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유전자의 결합이든 생명의 탄생에는 사랑이 개입해 있습니다. 그러므로 생명을 유전자의 분열과 결합의 과정으로 이해하는 것은 지극히 편협한 것입니다. 생명은 사랑에 따른 유전자의 결합과정으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원시 생명의 자기복제는 30억년 넘게 반복되어 왔으며, 지금도 여전히 그렇습니다. 최근 우리를 괴롭히는 바이러스는 엄청난 속도로 자기복제를 하고 있는데, 변종이 놀랍게도 많습니다. 그렇지만 그 수많은 변종에도 불구하고 바이러스는 바이러스일 뿐입니다. 하지만 암수로 구분된 생물들은 5억년도 채 되지 않는 진화과정 속에서 놀라운 생명체들을 거듭해 등장 시켜왔습니다.
인간의 특별한 사랑
인간이 출현한 것은 100만년도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50만 년 전 돌을 들기 시작해서, 1만 년 전에야 수렵과 농경을 시작하고, 단지 5천 년 전에야 문명을 만들기 시작한 인류는 오늘날 우주를 개척하는 놀라운 기술문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단언컨대 우리는 이 모든 과정이 단지 유전자의 전달과정의 결과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쟁취 대신 사랑을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문명이 등장했으며, 문명은 끊임없이 더 근원적인 사랑을 추구했습니다. 문명을 이룬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먹는 문제를 사랑의 문제와 분리시킬 수 있었다는 데 있습니다. 인간은 도구와 경작으로 먹을 것을 저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어떤 환경에서도 몸을 보호할 수 있었기에, 사랑을 동물과는 완전히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인류의 존재와 발전은 결국 이 사랑의 결실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인간만이 이렇게 사랑을 이해할 수 있었을까요? 우리는 그 해답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랑이신 하나님이 인간을 선택하셔서 인간으로 하여금 그 사랑을 이해하도록 하셨던 것입니다. 신의 존재를 인정하기 싫은 사람들은 여기에 외계인을 가져다 놓습니다. 외계인이 더 그럴듯한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과학자들은 신도 외계인도 존재가 증명되지 않았으므로 그것이 진화의 결과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인간의 사랑에 관한한 진화론을 어떻게 이해하든 간에 하나님의 존재는 필연적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인간이 사랑을 알아갈 시점에 이르러서야 존재할 수는 없으므로 하나님은 태초로부터 계신 분입니다. 이 모든 문명을 이루어낸 것이 동물과는 다른 사랑에 대한 이해 때문이라면, 이것은 하나님의 계시에 따른 인간의 사랑이 있기 때문이며, 결과적으로 사랑은 유전적 결과물인 생명보다 앞선 것이 분명합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고 찾지 말고, 염려하지 말아라.”(29)
사랑을 위하여
먹고 마시는 것이 생명 유지의 필수이기에 무엇보다 우선적인 것이라면, 인간은 동물과 다름없이 살고 있을 것입니다. 사랑으로 더 위대한 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먹을 것을 찾고 염려하는 데서 해방되어야 합니다. 이 말은 찾고 염려하는 것을 다른 사람이 해 준다는 의미입니다. 갓난아기들을 봅시다. 먹고 마시는 모든 문제를 부모에게 의지하고 있습니다. 아무 걱정 없이 이 문제가 해결된 아이들은 세상에 적응하는 사회인으로 성장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 시기에 무언가가 부족했던 아이의 성장과정은 치유할 수 없는 영원한 결핍에 놓이게 됩니다. 하나님 나라를 앞에 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찾지 않고 염려하지 않을 때, 더 나은 미래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것은 다 이방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이다.”(30) 여기서 이방 사람들이란 필요할 때, 도움이 없어 결핍된 사람들을 말할 것입니다. 필요를 채워주는 부모가 없는 어린아이 같은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너희 아버지라고 말씀하십니다.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런 것이 너희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아신다.”(30)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부모가 알듯이, 하나님께서는 자녀 된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아십니다. 우리는 정말 갓난아기처럼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께 의존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까마귀든 들풀이든 존재의 목적에 부합하도록 필요를 채우시는 분이십니다. 부모는 갓난아기가 커서 더 나은 사회의 일원이 되기를 원합니다. 부모가 하나하나 간섭하지 않아도, 아이는 자라서 미래를 만들어갈 것입니다. 참된 부모는 이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여라. 그리하면 이런 것들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실 것이다.”(31) 우리가 해야 할 그의 나라는 구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사랑을 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적은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게 사랑할 것이라고 기대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나가는 말
“두려워하지 말아라. 적은 무리여, 너희 아버지께서 그의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신다.”(32) 제자들은 세상에 갓 태어난 아기들처럼, 거대한 세상에서 무기력해 보이는 적은 무리입니다. 완전히 무기력한 아이들이 어떤 두려움도 가지지 않듯이, 적은 무리인 제자들도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전적인 믿음 가운데서 성장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자명합니다. “너희 소유를 팔아서, 자선을 베풀어라.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낡아지지 않는 주머니를 만들고, 하늘에다가 없어지지 않는 재물을 쌓아 두어라.”(33) 우리의 일은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소유는 사랑이며, 사랑은 자신을 위하여 낡아지지 않는 주머니를 만드는 것입니다. 사랑은 아무리 주어도 줄어들 수 없는 주머니입니다. 제자들은 사랑함으로써 미래의 하늘나라를 완성해 갑니다. 말씀의 결론을 이렇습니다. “너희의 재물이 있는 곳에 너희의 마음도 있을 것이다.”(34) 우리가 정직하다면, 하늘에 재물을 쌓는 것이란 타인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갓난아기처럼 우리의 필요를 아낌없이 채우시는 것은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사랑의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 세상에 사랑을 증거하는 것이며,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사랑이 부족한 곳에 있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