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동포’라고 해야, ‘교포’는 이제 그만
정경시사포커스, 2023.12.17.
https://www.yjb0802.com/news/articleView.html?idxno=37553
심 의섭(명지대 명예교수)
‘말이 씨가 된다’고 한다. 그래서 고운 말, 바른말을 쓰라고 한다. 얼굴에 있는 점이 삭 녹아 없어지래서 ‘상녹이’, 장군이 되래서 ‘장군이’, 잡귀를 속이려고 천한 자식이란 ‘개똥이(開東)’, 민주화를 바래서 ‘민주’, ‘독립(東立)’이 같은 이름이 다 그런 뜻을 가지고 있다. 월파(月波) 서민호(徐珉濠)선생이 옥중에서 손자들 이름을 '치리(治李)' '치승(治承)' '치만(治晩)'이라고 지은 것은 이런 맥락에서의 압권이다.
그런데 언행이 한번 입력이 되면 고치기가 어려운 것이 우리네 일상이다.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우기거나 맹신을 한다. 심한경우는 각인(刻印)이라고 한다. 버릇은 고치려고 노력하면 고칠 수 있지만 각인은 참 어렵다. 통치자들은 바로 각인효과를 노리고, 세뇌를 하면서 우민정책을 유지한다. 공약이라고 하더라도 반드시 지켜야할 것은 안 지키고, 고치나마나한 것은 열심히 고치면서 치세홍보 효과를 노리고 있지 않은가.
말은 신념과 같은 주술적인 마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말이 씨가 된다는 것이다. 이는 개인 뿐 만이 아니라 조직이나 국가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언어생활에서, 특히 방송언어에서 반드시 고쳐야 할 것이 있다. ‘해외’라는 말과 ‘교포’라는 말이다. 더 기막힌 말투는 ‘해외교포’라는 말인데 발음은 우리말인데 뜻은 우리말이라고 할 수 없다. ‘해외’는 섬나라에서 쓰는 용어이다. 우리가 섬나라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교포’는 시대착오적인 용어로 된지가 오래인데도 ‘해외’와 ‘교포’가 각인되어 쓰이는 것 같다. 특히 공인들은 해외라느니, 교포라는 말은 사용해서는 안 된다.
한국의 급속한 글로벌화로 외국 거주 한국인들이 늘어나면서 그들에 대한 인식과 호칭이 다양해지고 있다. 교포(僑胞), 동포(同胞), 교민(僑民), 한인(韓人), 한국인, 재외국민(在外國民), 재외교포(在外僑胞), 재외동포(在外同胞), 해외동포(海外同胞) 등 다양하게 불린다. 외국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에 대한 호칭은 1990년대 중반부터 미국 한인사회에서 ‘교포라는 표현 대신 동포, 한인이라고 씁시다.’라는 캠페인이 시작되면서 재외동포에 대한 호칭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미국 한인사회에서 교(僑)자 추방 운동을 전개한 이유는 僑(교)자의 뜻이 더부살이, 타관살이, 임시로 살다. 잠시 머물다, 남의 집이나 타향(타국)에서 임시로 몸을 붙여 산다는 떠돌이 등 별로 안 좋은 의미로 일제강점기 시대에 만들어진 용어이다. 지금은 혈통을 강조하는 ‘교포’나 법적 지위를 연상하는 ‘교민’이라는 말 대신 ‘동포’라 하고 ‘한인’이라는 표현도 늘어나고 있다. 아래에서는 외국에 사는 우리 동포에 대한 호칭을 살펴보자.
'교포(僑胞)'는 ‘교(僑)’자가 ‘객지에 나가 살 교’자이다. 다른 나라에 살고 있는 자국 동포로, 본국과 거주국의 법적 지위를 동시에 갖는 자국민을 말한다. 거주지를 기준으로 하므로 동포보다 좁은 의미로 쓰인다. 동포 가운데 재외 동포가 교포인 셈이다. 교포는 본국에서 볼 때 본국이 아닌 타국에서 더부살이하면서 떠돌아다니는 동포를 지칭하는 말이어서 좋은 이미지가 아니다.
교민(僑民)은 외국에서 임시로 살고 있는 자기 나라 국민을 의미한다. 교민은 다른 나라에 살고 있는 동포로서 현지 정착 교포나 일시적으로 머무르는 유학생, 주재원 등을 모두 이른다. 교민이라는 용어는 이들이 대한민국 정부의 관할 하에 있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외국에 살면서 그 나라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한민족들을 가리키기에는 적합한 표현이 아니다. 따라서 교민은 유학생이나 주재원 등만을 가리키는 경우에만 쓰는 것이 적절하다.
동포(同胞)는 ‘한 나라 또는 한겨레에 딸린 사람’이다. 동포는 그가 어디에서 살고 국적을 따지지 않고 어느 나라 국민이든 상관없이 한국인의 핏줄을 받은 사람이면 다 포함된다. 동포란 원래 아버지가 다르지만, 같은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형제자매의 뜻으로 같은 나라, 같은 핏줄, 같은 겨레, 같은 민족 등을 가리키는 말이다. 법률 중심인 국적법에 근거에서는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재외국민과 대한민국 국적이 없는 외국 국적 동포로 분류할 수 있다. 동포는 한겨레 한민족을 상징하는 민족 내부의 우리끼리 표현이다. 예를 들면, 북한 동포, 재외 동포, 재일 동포, 재미 동포, 재중 동포 등등 국적을 따지지 않는다. 가령 일본 조총련(일본에 거주하는 친북한계 재일동포 단체)은 재일 동포이지 재일교포는 아니다. 민단(대한민국을 지지하는 재일동포로 구성된 민족단체)은 재일 동포와 재일교포를 함께 쓸 수 있다. 중국에서 부르는 조선족과 한국인을 구별하자면 재중 동포, 한국인 동포가 되는데 모두 같은 동포이고 모두 한인이다.
재외동포(在外同胞) 또는 해외동포는 해외에서 체류 또는 거주하고 있는 한국인을 뜻한다. 재외동포는 재외국민(대한민국 국적을 보유하고 있는 해외이주민과 체류자)과 외국국적동포(대한민국 국적을 보유했던 사람으로서 외국 국적을 취득한 사람)를 말한다. 법적으로 재외동포는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외국의 영주권을 취득한 자, 또는 영주할 목적으로 외국에 거주하고 있는 자와 대한민국의 국적을 보유하였던 자, 또는 그 직계비속으로서 외국 국적을 취득한 자 중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자를 말한다. 중국이나 러시아에서 태어나 그곳 국민으로 사는 우리 민족도 ‘재외동포’이고, 우리 국적을 포기하고 외국 국적을 취득한 사람들도 재외동포에 해당한다. 이에 비해, ‘재외국민’은 외국에 체류하거나 거주하는 사람들 가운데 우리 국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말한다. 따라서 ‘재외국민’보다는 ‘재외동포’가 포괄적인 뜻이 된다.
해외동포(海外同胞)라는 표현도 자주 쓰고 있는데, ‘해외’라는 표현은 쓰지 않아야 한다. 우리나라는 섬나라가 아니기 때문이다. 일본이나 영국 같은 섬나라에서 볼 때 외국은 모두 바다 건너에 있음으로 해외가 되겠지만, 우리는 섬나라가 아닌데 외국을 ‘해외’라 할 수 없다. 나라 밖이면 ‘국외’를, 다른 나라라면 ‘외국’이어야 하므로 ‘해외동포’가 외국에 사는 동포라는 뜻이라면‘재외동포’로 바로잡아야 한다. ‘재외동포법’, ‘재외국민법’, ‘재외동포정책’처럼 ‘재외동포’라고 바르게 써야 한다. 비록 북쪽에 휴전선이 있어서 남북이 서로 오가지 못한다 해도 북쪽은 바다도 아니고 섬도 아니다. 자학의 주술 같은 ‘해외동포’라는 용어를 쓰지 말아야 한다.
재외한국인(在外韓國人)이란 재외 동포 중 대한민국 국적 보유자만을 말하며, 보통 재외교민 혹은 재외국민이라고 한다. 예를 들면, 중국에서 태어나 중국 국적을 지닌 우리 동포는 ‘재중동포’라 하고, 우리 기업의 중국 지사에 나가 있는 사람은 ‘재중 한국인’, ‘재중 국민’이라고 해야 한다.
2023년 기준으로 한국의 재외동포는 193개국에 708만 1510명이다. 재외동포가 가장 많은 곳은 미국으로 261만여 명, 그 다음은 중국 210만여 명, 일본 80만여 명 등의 순이며 유럽에는 약 65만여 명, 남아시아·태평양에도 약 52만여 명이 있다. 러시아에는 12만여 명, 중앙아시아에는 40여만 명이다. 재미있는 것은 우리의 주변 4대 강국에 흩어져 사는 동포는 어림으로 미・중에 각각 200만 명이상, 러・일에 각각 100만 명 정도에 이르는 동포가 살고 있다. 반면 한반도 주변 미, 중, 일, 러 4대 강국 중 어느 나라도 우리나라와 같이 미, 중, 일, 러에 우리와 같은 규모의 디아스포라(diaspora 離散)의 분포를 가지고 있지 않다. 우리의 주변 4강국에 있는 이산동포를 국익의 전략적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은 오로지 우리의 역량에 달려 있다.
그동안 재외동포를 지원하는 기구로는 1997년 정부 출연으로 외교부 산하기관으로 설립된 재외동포재단이 있었다. 재단은 재외동포 교류사업, 재외동포단체 지원, 차세대리더 육성사업, 재외동포사회 지도자 초청사업, 한글학교 육성사업, 한상네트워크 지원, 재외동포 인권 지원 등을 담당하였지만 정부 기구가 아닌 재단법인으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재외동포 및 이민 교류 관련 정부부처 설립의 수요는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재외동포 수가 2021년에 732만 명, 2023년에 708만 명에 이르고 잠재적 재외동포가 1000만 명대에 이를 수 있는 상황에서 동포사회의 높아진 기대, 세대교체 등 정책 환경 변화에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대응할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이러한 정책수요에 대응하여 정부는 재외동포재단을 해산하고 여러 부처에 분산된 재외동포 정책을 총괄하는 외교부의 외청으로 ‘재외동포청청(在外同胞廳)’을 2023년 6월 5일에 출범시키었다.
출처 : 정경시사 FOCUS(http://www.yjb0802.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