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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 10일 살아나서 살리는 교회 대림절 두 번째 주일 설교
제목 : 구유에 누워있는 아기 예수를 보며
본문 : 누가복음 2장 12절
너희는 한 갓난아기가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것을 볼 터인데, 이것이 너희에게 주는 표징이다. <새번역>
‘왜 예수님은 마구간에서 태어나셔야만 했을까요?’ 혹시 저와 같은 질문을 가진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굳이 마구간이어야 했을까? 조금은 그래도 방 같은 곳에서 태어나실 수 있도록 하나님이 배려를 해 주셔야 하는 것 아닐까요? 7성급 호텔까지는 아니더라도, 산후조리원이 딸린 병원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아기에게 어울릴만한 공간에서 출산을 하고, 잠들 수 있고, 특히 산모를 위해서도 하나님은 충분히 손을 쓸 수 있는 분 아니시겠습니까? 그런데 굳이 마구간입니다. 그리고 굳이 포대기에 싸서 구유에 눕혀 두었다는 기록을 우리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소식을 목자들에게 전하면서 하는 천사의 말이 더 황당하게 느껴집니다.
천사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나는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여 준다. 오늘 다윗의 동네에서 너희에게 구주가 나셨으니, 그는 곧 그리스도 주님이시다. 너희는 한 갓난아기가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것을 볼 터인데, 이것이 너희에게 주는 표징이다." <누가복음 2장 10~12절, 새번역>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을 전하여 주었습니다. 다윗의 동네 베들레헴에서 그토록 기다리던 메시아가 나셨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그리스도 주님이라고 분명히 밝혀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메시아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다고 말합니까? 갓난아기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메시아가 어디에 있다고 말합니까? 구유에 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목자들에게 보여주는, 오늘 우리에게 보여주는 표징이고 표적이고, sign이고, 증거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당시의 목자라면 이 천사의 말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다윗과 같은 왕의 모습으로 오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다윗성에서 태어나는 왕의 후손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유대인들에게 이 예수님의 탄생은 충격 그 자체가 아니었을까요? 어떻게 이게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이라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목자들은 다른 생각과 시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천사들이 다른 누구에게 찾아간 것이 아니라 이 목자들을 찾아간 것이었습니다. 저 대제사장이나 율법학자, 서기관, 바리새파 등 간절히 메시아를 기다리는 척 하던 이들에게 간 것이 아니라 그래서 목자에게 간 것이 정말 멋진 결정이었다는 것을 이 행동으로 알 수가 있습니다.
천사들이 목자들에게서 떠나 하늘로 올라간 뒤에, 목자들이 서로 말하였다. "베들레헴으로 가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신 바, 일어난 그 일을 봅시다." 그리고 그들은 급히 달려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를 찾아냈다. 그들은 이것을 보고 나서, 이 아기에 관하여 자기들이 들은 말을 사람들에게 알려 주었다. <누가복음 2장 15~17절, 새번역>
그 목자들은 세례요한보다 더 먼저, 12제자들보다도 훨씬 더 먼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복음을 전하던 첫 전도자들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천사들에게 들은 그대로를 믿었고, 찾아가서 예수님을 만났고, 그 기쁨을 전해주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저의 의문을 품은 마음과 같았습니다.
이것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목자들이 그들에게 전해준 말을 이상히 여겼다. <누가복음 2장 18절, 새번역>
하지만 많은 사람들의 반응과는 달리 여기 또 한 사람, 직접 이 마구간에서 아기를 낳고 구유에 눕힐 수밖에 없었던 마리아 역시 완전히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마리아는 이 모든 말을 고이 간직하고, 마음 속에 곰곰이 되새겼다. <누가복음 2장 19절, 새번역>
구유에 누워있는 아기 예수를 보며, 목자들도, 마리아도 똑같은 생각을 했기에 저와는, 당시 사람들과는 다른 견해를 가지게 된 것이 아니었겠습니까? 도대체 목자들은, 마리아는 구유에 누워있는 아기 예수를 보며 무엇을 느꼈던 것일까요? 바로 이 포인트가 대림절 두 번째 주일을 보내는 우리가 가장 눈 여겨 보아야 할 ‘은혜의 지점’입니다. 마구간에서 태어나셔서 구유에 누우신 예수를 통해 바로 우리를 만나기 위해 찾아오신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확실하게 성탄절이 바로 ‘나를 위한’ 성탄절이라는 것을 발견할 수 있게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이유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는, 바로 ‘나’라는 것을 명확하게 구유에 누워있는 아기 예수를 보며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구간은 아무리 깨끗하게 청소해 놓는다고 해도 깨끗한 공간이 아닙니다. 그곳은 집이 아닙니다. 가축이 사는 공간입니다. 아기를 출산하기에 적합한 공간이 아닙니다. 아버지 요셉과 어머니 마리아, 이 젊은 부부에게는 이 상황이 정말 막막하고 답답함 그 자체였을 것이고, 너무도 슬픈 상황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출산이 임박했기에 가릴 처지가 아니었습니다. 아기 예수는 그렇게 거기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그리고 잘 씻기지도 못하고, 깨끗하게 해 주지도 못한 채 포대기에 쌓였습니다. 그리고 뉘일 곳을 이리저리 찾아봐도 초라한 구유밖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바닥은 차가웠고, 위생상의 문제도 있었기에 어쩔 수 없이 그 초라하고 부족한 구유에 예수를 누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메시아이신 예수는 마구간에서 태어나 구유에 눕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 마구간이, 그 구유가 순간 우리 인간들의 삶과 인생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친히 초라하고 막막하고, 슬프고, 답답한 우리의 인생 가운데로 찾아오신 것입니다.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7성급 호텔이나 왕궁에서 태어나 우리의 인생을 이해하지 못하실 분이 아니라 우리네 치열하고 복잡하고 때로는 구질구질하리만큼 처참한 인생에 동참하시고자 우리를 찾아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이름이 바로 ‘임마누엘’이었던 것을 새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보아라,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니,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할 것이다" 하신 말씀을 이루려고 하신 것이다. (임마누엘은 번역하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 <마태복음 1장 23절, 새번역>
하나님이 우리네 인생과 함께 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네 인생을 지켜보는 것이 아니라, 가르치시려는 것이 아니라, 멀리서 바라보며 훈계하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 우리네 삶에 친히 동행하시고자 ‘Come To Us’, 친히 기꺼이 우리 속으로 찾아오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네 인생이 마구간 같은 줄 아셔도, 구유 같은 줄 아셔도 아랑곳 하지 않으시고 ‘Together’, 함께 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아니 마구간이고 구유인지 알고 계시기에 더욱 더 찾아오신 것입니다.
우리가 눈물 흘릴 때 눈물을 닦아 주는 것뿐만 아니라 그 눈물을 왜 흘리고 있는지를 이해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와 같은 삶을 사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무엇 때문에 힘들어하고, 무엇 때문에 괴로워하고,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예수님 역시 동일하게 알고 계셨습니다. 그 역시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아침이면 겨우겨우 눈을 뜨고 억지로 세수를 하며 잠을 깨우며 출근 준비를 하는 것도, 하루 종일 노동의 현장에서 땀 흘려야 하는 것도, 때로는 피곤에 쩔어 집에 오자마자 쓰러져 잠이 드는 것도, 육아에 지치고, 업무에 지치고, 가족들의 문제로 힘들고, 생각하고 싶지 않은 스트레스에 둘러 쌓인 우리의 이 모든 인생 가운데 ‘함께’ 하시는 분이 바로 우리 예수님이라는 것을 구유에 누워있는 아기 예수를 보며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이 너무도 중요합니다. 예수님이 우리가 있던 자리로, 우리 인생 가운데, ‘먼저’ 찾아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친히 ‘나를 찾아오는 사랑’이 되셔서 우리 각 자의 인생이란 의자에 함께 앉으셨습니다. 그리고 함께 겪어가기 시작하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이름에 등장하는 ‘함께’라는 말이 부끄럽지 않도록 정말 우리와 함께 하는 길을 선택하셨습니다. 왕이신 하나님께서! 창조주 하나님께서! 보잘 것 없는 우리를 위하여! 피조물인 우리를 위하여! 마구간에서 태어나셨고, 구유에 눕게 되신 것입니다. 그러니 이 예수님의 탄생은 오롯이 우리 모두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었고, 바로 ‘나를 위한 성탄절’임을 보여 주는 가장 좋은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감히 우리가 하나님을 마음껏 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만져볼 수 있고, 안아볼 수 있고, 대화할 수 있고, 같이 놀 수 있고, 같이 걸을 수 있고, 모든 것을 다 같이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범접할 수 없는 포스라고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따스한 미소와 늘 나를 향해 내밀고 있는 손은 그저 든든하기만 합니다. 나를 위해 죽어 줄 수도 있다고 말하는 친구를 만났다는 것만으로 얼마나 행복한지 우리는 느낄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나약하고 쓰러지고 넘어질 때도 손가락질하며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그 나약함을 이해하시고, 쓰러짐에 공감하시고, 넘어지면 손 내밀어 주시는 분이 되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는 모든 점에서 우리와 마찬가지로 시험을 받으셨지만, 죄는 없으십니다. <히브리서 4장 15절, 새번역>
하나님이시고, 메시아이시고, 구원자이시지만 모든 명예를 구유에 누우시면서 다 내려놓으셨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모습을 지니셨으나, 하나님과 동등함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서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과 같이 되셨습니다. 그는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셔서,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빌립보서 2장 6~8절, 새번역>
왜요? 이유는 한 가지입니다. 바로, ‘나’와 ‘당신’, ‘우리’를 위한 선택이셨습니다.
그래서 마구간은, 구유는, 우리의 인생을 보여주는 장소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결코 왕궁이나 호텔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정리되지 않았고, 복잡하고, 불안합니다. 지지리 궁상일 때도 많고, 때로는 누구도 들여다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더러움일 때도 있습니다. 바로, 그런 곳으로 주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함께하자고 하십니다. 내가 너를 위해 이 땅에 왔다고, 친히 이 땅에 온 이유를 보여주십니다. 그렇게 손을 내미십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이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함께 하시겠습니까? 뿌리치시겠습니까? 우리 마구간 같은 인생에, 구유 같은 인생에 찾아오신 아기 예수를 기꺼이 기쁨으로 영접하시겠습니까? 이제 평생 주님과 함께 동행하시겠습니까?
사랑하고 존경하고 축복하는 예배자 여러분, 2023년 대림절 두 번째 주일! 우리는 모두 구유에 누워있는 아기 예수를 보며,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놀라운 사랑으로 인하여, 감격과 은혜에 빠져야 할 것입니다. 실로 하나님은 먼저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신 것입니다.
사랑은 이 사실에 있으니, 곧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기 아들을 보내어 우리의 죄를 위하여 화목제물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요한일서 4장 10절, 새번역>
요즘 스스로의 삶이 너무도 초라해 보이는 분이 있으십니까?
자신의 부족함만 보여서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분이 있으십니까?
슬픈 상황에 포기하고 계신 분이 있으십니까?
막막하고 답답한 상황 때문에 괴로워하고 계십니까?
인생 속에서 원망하고 좌절하고 계신 분이 있으십니까?
그럼 오히려 기뻐하고 감사해야 할 때입니다. 바로 그런 인생에 우리 주님께서 찾아오셨기 때문입니다. 혼자가 아닙니다. 함께 하십니다. 여러분의 인생에 찾아오셔서 누워있는 아기예수를 바라보시길 바랍니다. 그분이 희망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구원자가 되실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빛이 되어 주실 것이고, 우리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어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마구간에서 태어나시고, 구유에 누워있다는 것이 실로 온 백성에게 전할 큰 기쁜 소식이라는 천사의 말이 맞는 것입니다. 먼저 여러분에게 오늘 그 기쁜 소식을 전해 드리겠습니다.
“오늘 다윗의 동네에서 너희에게 구주가 나셨으니, 그는 곧 그리스도 주님이시다!” <누가복음 2장 11절, 새번역>
그리고 이 소식을 들은 여러분들은, 구유에 누워있는 아기 예수를 본 목자들처럼, 이렇게 기뻐하는 대림절 두 번째 주일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목자들은 자기들이 듣고 본 모든 일이 자기들에게 일러주신 그대로임을 알고, 돌아가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그를 찬미하였다. <누가복음 2장 20절, 새번역>
결단찬양 - 시간을 뚫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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