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부역 가는 길'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선정한 2011년 '이야기가 있는 10대 문화생태 탐방로' 중
사랑과 낭만과 사색의 테마길로 새로 지정됐다.
봉화 오지산행을 겸한 일박여행(1/2)-승부역과 투구봉/2011. 7. 9
승부역(承富驛)은 경상북도 봉화군 석포면 승부리에 있는 영동선의 간이역이다.
봉화지역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경북 봉화에서는 갈 수 있는 방법이 기차를 이용하는 방법 뿐이다.
태백 황지연에서 출발하는 낙동강물이 양쪽으로 절벽을 만들면서 길을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강원도 태백에서 가는 방법을 택해야 한다.
옛날에는 기차터널을 이용해서 왕래하다가 참변을 당한 주민도 많았다고 한다.
승부의 지명유래는 대대로 부를 이어온 사람들이 많아서 생겨난 지명이라고 한다.
좁고 긴 도로를 따라 승부마을에 도착하면 갑자기 하늘이 열리며 너른 옥토가 나타난다.
이곳에 1999년 환상선 눈꽃 열차가 운행되기 시작하면서 최고의 오지 간이역이라는 장소로
인기를 끌어 신호장에서 보통역으로 다시 승격된 역이다.
장마가 한창인 시기에 일박산행을 겸한 오지여행으로 첫날을 이곳 펜션에서 묵으면서 투구봉을 다녀왔다.
태백에서 석포를 지나면 차 한 대가 지나갈 수 있는 길이 나오고 터널을 빠져나오는 기찻길이 보인다.
승부마을은 예상 외로 너른 농토를 가진 마을이다.
펜션에 짐을 풀고 트래킹을 시작한다. 승부역 뒤로 솟은 투구봉 암벽이다.
낙동강 최상류지역인 강변으로 내려서자 물소리가 요란하다.
승부역으로 건너가는 다리가 보인다.
석포에서 오는 기찻길이 강 건너편에 놓여져 있다.
태백에서 석포를 지나 승부역까지 오는 길은 더 이상 경북 봉화로 이어지지 못한다.
강변 우측으로 내려가던 길은 급류를 밀어내는 협곡을 지나지 못하고 저 끝에서 끊기고 만다.
승부역과 더불어 해발 850고지의 가장 높은 인근 추전역은 준공당시 대통령이 방문할 정도로 중요했다.
철광석과 석탄 등 당시에 경제에 필요한 광석자원을 수송할 유일한 통로가 완성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척박한 이곳에서 근무를 하던 역무원들도 자긍심이 대단했던 것 같다.
승부역이 생겼을 당시 초대 역무원이던 김찬빈씨가 남긴 글이 시비에 새겨져 역 입구에 놓여 있다.
[승부역은, 하늘도 세평이요 꽃밭도 세평이나, 영동의 심장이요 수송의 동맥이다]
어느 때부터인가 인적이 끊긴 이곳에 가끔 외로운 사람들이 찾아 오면 감싸주던 간이역이다.
연인들도 때묻지 않은 순수한 사랑을 평생 이어가고자 그 약속을 자물쇠로 채워 놓았다.
선로 보수작업에 쓰였던 핸드카도 이제는 전시물로 변했다.
눈꽃여행을 온 사람들이 간단히 눈꽃산행을 할 수 있도록 탐방로도 만들어졌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직접 쓴 기념비가 탐방로 입구에 세워져 있다.
봉화방면에서 오는 기차터널은 일제 해방 이후 착공하였다가 한국전쟁으로 중단 되었고
다시 전쟁이 끝나고 공사를 진행해서 우여곡절 끝에 1955년 완공된 국내기술로 만든 터널이다.
그래서 승부역은 가난했던 지난 날에 경제발전을 이루기 위해 이를 악물고 악착같이 만든 걸작이다.
역사 옆 시설물에서는 화목을 태우는 굴뚝에 연기가 피어 오르고 있다.
장마로 불어난 물은 곧 잠수교를 넘길 듯 하다.
마침 봉화에서 석탄 수송열차가 터널을 빠져나오며 승부역으로 들어서고 있다.
탐방로를 다녀오기 위해 기념비 앞에서 투구봉으로 향한다.
마침 비가 잦아들어서 다행이다.
하늘을 찌를 듯 솟은 소나무가 비를 가려준다.
승부역은 하늘도 세평이고 땅도 세평이지만 승부마을은 그렇지 않다.
건너 산은 운무가 피어오르고 있다.
하산 후 사람의 발자취가 적었던 콘크리드 임도를 걸으니 오디와 산복숭아가 지천으로 익어간다.
오래된 콘크리트 교량이 마을과 연결되어 있다.
1988년 봄에는 아내와 신혼여행을 떠나던 철길이었고 지금은 친구들과 추억을 엮는 길이 되었다.
승부역을 지나는 철길에는 우리가 모르는 많은 애환과 추억이 실려 있다.
첫댓글 다들 고맙고
모두들 덕택에 .../
계속 이어갑시다
다음에 우중산행을 할 거 같으면 수영복 입고 산으로 갑시다.
어차피 우리는 인적이 드문 곳으로만 산행을 할 것이니...
참으로 좋은 생각~
참 고맙고
참 즐거웠고
참 아름다웠어..
더이상 표현이 불가할때 "참"이란 말을 하게 되는거 알았네..
참말로?ㅎㅎ
난 한마디로.. 참 좋았다~
나무울타리 넘어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보니 어릴적 고향집이 생각나더라~ 그때는 땔감으로 불을 지피는게 고생이었는데.. 지금은 낭만적으로 보이니.. 철들기 전에 열시미 다니자~
초등학교를 다닐 때 하교를 해서 집에 도착하면 허기가 져서 텃밭에 자라는 옥수수를 꺾어다가 솥에 넣고 고사리 손으로 불을 지펴 익혀먹던 생각이 난다.
과자도 없어서 그게 간식의 전부였으니 신물나도록 먹었다.
그래서 요즘 옥수수를 먹기가 싫다.
그때도 옆집에 살았으면 구운 옥수수 나눠먹고
재미있었겠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