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영루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35호
조선시대에 청풍부(淸風府)를 드나들던 관문이다. 팔영루라 부르는 것은 고종 때 부사 민치상(閔致庠)이 청풍팔경(淸風八景)을 읊은 팔영시(八詠詩)가 있기 때문이다.
숙종(肅宗) 28년(1702)에 부사(府使) 이기홍(李箕洪)이 창건하고 현덕문(賢德門)이라고 한 것을 고종(高宗) 7년(1870)에 부사 이직현(李稷鉉)이 중수하였다. 본래의 문루는 높이 10m 가로 10m 세로 6m의 크기였다. 그 후 1969년 해체 복원 공사를 하고 1970년과 이듬해 두 번에 걸쳐 보수하였다. 1983년 충주댐 건설로 인한 수몰을 피해 청풍면 읍리(邑里)에서 현위치로 이전하였다. 현재는 청풍문화재단지의 정문으로 이용되고 있다.
건물 구조는 높이 2.2m 석축기단을 쌓고 그 위에 세운 정면 3칸 측면 2칸의 누각이다. 북측의 돌계단을 딛고 올라서면 작은 문 안에 성의 누문답게 홍예를 쌓은 높은 대를 딛고 우뚝 서 있다. 내부는 우물마루를 깔고 난간을 둘렀다. 민치상이 쓴 팔영루라는 현판이 정면 중앙에 걸려 있고 층계 입구에는 사적비가 남아 있다. 처마는 겹처마 지붕은 팔작지붕이며 기둥은 두리기둥이다.
누각을 받친 석축의 중앙에 4각의 출입문을 냈으며 출입문 천장에는 호랑이 그림이 그려져 있다. 퇴색하여 겨우 원형을 알아볼 수 있는 정도였으나 복원하였다.
청풍 지곡리 고가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89호
이 집은 곧은자 모양의 안채와 일자모양의 곡간채 및 문간채로 구성돼 있으며 안채 뒤 석축위에 있었던 사랑채는 없어졌다. 사랑채는 따로 건축되지 않고 건너방이 사랑방의 기능 대신한다. 부엌 앞에는 우물 마루를 깐 고방을 두어 식료품을 저장한다.
부엌과 고방에는 판자벽을 둘르는데 이런 기법은 전축연대가 오래된 집에서만 볼 수 있다. 안채와 곡간채 사이에 담장을 둘러서 안마당과 구분함으로써 건너방의 독립성과 아늑한 분위기를 조성한 점이 특이하다.
청풍 지곡리 고가 내부
가마솥과 아궁이
헛간
대청 마루와 부엌
여물통
지게
디딜방아
멍석
메주틀과 걸망
삼테기와 망테기
써래
청풍 후산리 고가
지방유형문화재 85호
이 집은 본래 청풍면 후산리 105번지에 있었던 민가였다. 충주댐의 건설로 1985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 복원 한 것이다. 조선말기에 지어진 ㄱ자형의 팔작 기와집이다. 대청마루를 기준으로 하여 동남을 향하고 있다. 대청의 우측에 2칸 크기의 건너방과, 툇마루를 높이 하고 그밑에 함실 아궁이를 두고 있다. 대청은 좌측으로 웃방이 있고 웃방에서 동쪽으로 꺾어 대청의 좌측으로 후퇴를 후보하여 제사방으로 꾸미고있다. 전체적인 내부의 배치가 특이하다. 중부지방의 보편적인 민가유형이라고 할 수 있다.
후산리 고가 내부
연자방아
청풍 도화리 고가
지방 유형문화재 제83호
이 집은 본래 청풍면 도화리에 있었던 민가 였다. 충주댐의 건설로 1985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 복원한 것이다. 조선 말기에 지어진 ㄷ자형의 우진각 기와집이다. 중앙에는 3칸 크기의 대청을 이루고, 좌측 간살은 방, 부엌, 광으로,우 측 간살은 방2칸과 2칸 크기의 부엌으로 되어 있다. 둥근 통나무 굴뚝과 부엌 살자창옆의 관솔을 피워 어둠을 밝히 는 시설은 태백산맥 일대의 산간지대 민가에서 볼 수 있는 특징적인 것이다. 본래 이전하기전의 흔적으로 보아 앞쪽 에는 바깥채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튼 ㅁ자형의 배치를 한 것으로 보인다.
청풍 황석리 고가
지방 유형문화재 제84호
이 집은 본래 청풍면 황석리 164번지에 있었던 민가이다. 충주댐의 건설로 1985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 복원한 것이다. 집의 구조는 안채와 문간채로 이루어져 있다. 안채는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 겹머리 기와집이며, 조산말기의 건축물로 좌측(서쪽)으로부터 부엌, 안방,웃방을 나란히 하고 끝에 사랑방을 두었다. 아방과 웃방 앞에는 길게 툇마루를 두고, 사랑방 퇴는 부엌으로 구성하였다. 툇마루와 사랑부엌 사이의 퇴주(각주) 이름이 특이하다. 문간채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초가집이다.
금병헌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 34호
이곳은 청풍부의 청사로 쓰였던 동헌건물이다. 청풍은 삼국시대에 사열이현이었으나, 신라 경덕왕때 청풍현이라 하였다. 고려 충숙왕 때 지군사가 되고, 조선 세조 때 군이 되었다. 현종 초에 도호부로 되었으며, 고종32년에 군이 되었다가 1914년 행정국역의 통폐합에 따라 청풍면이 되었다. 이 건물은 숙종7년(1681)에 부사 오도일이 처음 지었다. 그후 숙종 31년(1705)에 부사 이희조가 중건하고, 영조2년(1726)에 부사 박필문이 중수하고,권돈인이 편액을 써서 걸었다. 고종 37년(1900)에 부사 현인복이 전면 보수하였다. 본래 청풍면 읍리 203-1 번지에 있었으나, 충주댐의 건설로 인하여 1983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 복원하였다.정면 6칸, 측면3칸의 팔작집이다. 일명 명월정이라고도 하며, 내부에는 '청풍관'이란 현판이 걸려있다.
응청각
지방 유형문화재 제90호
이 건물의 용도는 알 수 없으나, 본래 한벽루의 좌측에 나란히 세워져 있었다. 처음 세운 시기는 알 수 없으나, 명종 초 이황 (1501~1570)이 단양군수로 있을때 '응청각'이라 이름하였다고 한다. 인조15년(1637)에 충청감사 정세규의 일기에 응청각에서 유숙한 기록이 있다. 고종37년(1900)에 부사 현인복이 중수하였다. 본래 청풍면 읍리 203-1번지에 있었으나 충주댐의 건설로 1983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 복원하였다. 2층 누각으로 아래층은 토석축의 담으로 벽을 막고, 그 위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집이다.건물 좌측에 목조 계단을 만들어 2층으로 오르내리게 하였다.
한벽루
보물 제 528호
이 건물은 고려 충숙왕4년 (1317)에 청풍현이군으로 승격되자 이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관아의 부속건물이었다.1972년 대홍수로 무너진 것을 1975년 원래의 양식대로 복원하였다. 이 루는 석축토단의 자연석 주초석 위에 기둥이 배가 부른 엔타시스 수법을 쓴 층 아래기둥을 세우고 마루를 설치하였으며, 정면 4칸 측면 3칸으로 팔작지붕에 주심포계 양식이다. 누의 우측에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으로 된 계단식 익랑 (대문간에 붙여 지은 방)을 달았다.
금병헌 전경
금남루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0호
이곳은 청풍부의 아문으로 '도호부절제아문'이란 현판이 걸려있다. 순조25년(1825)에 청풍부사 조길원이 처음 세우고 현판도 걸었다. 고종7년(1870)에 부사 이직현이, 동 37년(1900)에 부사 현인복이 각각 중수하고 1956년에도 보수하였다. 본래 청풍면 읍리 203-1번지에 있었으나, 충주댐의조성으로 인하여 1983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 복원하였다. 정면3칸, 측면 2칸의 팔각집으로 팔각의 높은 돌기둥 위에 세운 2층의 다락집이다.
청풍명월 석
석조여래입상 (보물 546호)
이 불상은 높이가 341cm이고, 전체적인 조각 양식으로 볼 때 통일신라 말기(10세기 경)의 작품으로 보인다. 불상의 얼굴 모양은 풍만하고 자비로운 상으로 두툼한 양볼에 인중(코와 입술 사이의 우묵한 곳)이 뚜렷하고 두 귀는 양어깨까지 드리워졌다. 목에는 삼도가 새겨져 있으며, 왼손은 땅을 가르키고 있다. 옷은 통견의 (양어깨를 덮은 법의)를 걸치고 안에 속내의를 받쳐입고 있으며, 배에서 매듭을 지어 V자형으로 겹겹이 대좌에까지 내려왔다.충주댐건설로 수몰지인 청풍면읍리에서 1983년 이곳으로 옮겨 복원하였다.
석조여래입상
문인석
고인돌
청풍 단지 석물군
공덕비및 송덕비
원랑선사 탑비
제천 유물 전시관
가마터
수몰 역사관
청풍향교
시도유형문화재 제64호
훌륭한 유학자들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지내며 지방백성의 교육과 교화를 담당하던 지방국립교육기관이다. 고려 충숙왕(재위 1313∼1330, 1332∼1339) 때 처음 지었다고 하는데, 원래 물태리에 있던 것을 조선 정조 3년(1779)에 교리로 옮겼다가 충주댐 건설로 인하여 현재의 위치로 다시 옮겨졌다.
지금은 대성전과 명륜당, 동재와 서재, 내삼문 등이 남아있다.
건물의 배치는 교육공간이 앞에, 제사공간이 뒤에 배치된 전학후묘의 형식을 하고 있다. 학생들이 모여 공부하는 강당인 명륜당을 중심으로 좌우에 학생들의 생활공간인 동재와 서재가 교육공간을 이루고 있다. 뒤쪽으로 성현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대성전과 동무·서무가 있어 제사공간을 이루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서적·노비 등을 지급 받아 학생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1894) 이후 교육기능은 없어지고 제사 기능만이 남아있다.
육각전
망월산성 오르는 길
대청호 전경
망월산성
지방기념물 제93호
망월산(336m)이 정상에서 북서쪽으로 뻗어 내리며 남한강과 만나면서 하나의 봉우리를 만들었는데 이 봉우리 꼭대기를 깎고 둘레에 산성을 높이 쌓아 축성한 전형적인 테뫼식 산성이다. 사열산성이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도 불리는 망월산성은 석성으로 둘레가 495m인 비교적 작은 성이다. 북쪽에 너비가 3m 정도인 문자리가 1개소 있으며 성벽은 최근에 다시 복원하였는데, 북쪽으로 너비 16m·높이 3m, 남쪽으로 너비 15m·높이 4.6m가 거의 원형으로 남아있다.
신축중인 청풍대교 전경
청풍단지에서 바라다본 월악산 전경
청풍 단지 전경
SBS 촬영 셋트장
SBS 셋트장
청풍 문화재단지 찾아가는 길
중부내륙고속도로 - 감곡IC - 제천 - 청풍(82번지방도) - 청풍문화재단지
* 영동고속도로 - 중앙고속도로 이용 - 남제천 IC - 청풍
* 제천 - 82번 지방도 - 청풍문화재단지(24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