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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우리들의 영화 친구 원문보기 글쓴이: 아키야마
A. 현재 화제 몰이 중인 영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는 시리즈 4편에 해당합니다만 주연배우도 바뀐 데다 시간대 역시 전작들과 뚜렷한 연속성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시리즈의 팬들이라면 눈이 번쩍 뜨일 장면이나 설정, 소품들이 곳곳에 등장하죠. [매드맥스 2]에서 주인공 맥스와 부메랑 야생소년과의 정서적 매개체였던 오르골이라든가, [매드맥스 3]의 중요한 공간 중 하나인 '썬더돔' 디자인이 악역 임모탄 조의 근거지에서 언뜻 보이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렇듯 영화에 숨겨진 창작자의 농담이나 은밀한 메시지를 일컬어 '이스터 에그'라 부릅니다.
이스터 에그는 말 그대로 부활절 달걀이라는 의미입니다. 어째서 부활절 달걀이 숨은 농담이나 메시지를 가리키는 말이 되었는가에 대해서는 여러 학설이 존재하는데요. 삶은 다음 껍질에 알록달록하게 채색한 달걀을 다른 사람 머리에 부딪혀 깨 먹는 장난스러운 습관에서 비롯되었다는 설도 있고, 의도적으로 날달걀을 삶은 달걀 속에 숨겨 놓았던 것이 유래라는 설명도 있죠. 하지만 가장 유력한 학설은, 부활절 아침마다 야외 곳곳에 달걀을 숨겨두고 아이들로 하여금 찾아내게 했던 놀이에서 비롯되었다는 겁니다. 부활절 토끼가 숨겨놓은 달걀을 찾아야 한다는 설정의 이 미션에서는 가장 많이 찾은 아이가 별도의 상을 받기도 했죠.
유래가 무엇이든 간에 컴퓨터 프로그램이나 웹사이트, DVD, 영화 등에서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는 용어 이스터 에그의 핵심은 '숨어있다'는 겁니다. 요즘은 떡밥이나 암시, 복선과도 같은 장면, 대사, 소품에 마구잡이로 쓰이는 경향이 있습니다만 누구나 쉽게 찾을 수 있으면 이스터 에그가 아닌 셈이죠. 예컨대 [매드맥스] 시리즈의 오리지널 맥스 멜 깁슨과 조디 포스터가 주연을 맡은 서부극 [매버릭]에는 재미있는 장면이 등장하는데요. [리썰 웨폰] 시리즈에서 멜 깁슨과 파트너를 이뤘던 대니 글로버가 등장해 "이런 일을 하기엔 너무 늙었다고!"라는 로저 머터프 형사의 유명한 대사까지 들려줍니다. 허나 이처럼 노골적인 떡밥은 이스터 에그보다 패러디 또는 오마주라 부르는 것이 옳겠죠.
어느 정도로 꼭꼭 숨겨져 있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당연히 명확한 기준이 없습니다만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알아채기 힘들 거나, 잠깐 한눈판 사이에 놓쳐버릴 정도는 되어야 할 겁니다. 이를테면 [킬 빌] 연작에서 '브라이드'라 불리는 여주인공(우마 서먼)의 본명이 밝혀지는 것은 2편에 이르러서입니다. 하지만 사실 1편에서도 눈 깜짝할 순간 동안 그녀의 이름이 화면에 나타난 적이 있죠. 브라이드가 일본도 장인 하토리 한조를 만나기 위해 오키나와로 떠나는 대목은 스피디한 컷들로 휙휙 지나가는데요. 이 짧은 컷들 중 그녀의 항공권을 보여주는 장면에서 '베아트릭스 키도'라는 본명을 뚜렷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앨런 무어의 그래픽 노블을 각색한 슈퍼히어로 영화 [왓치맨]의 도입부는 대단히 인상적입니다. [왓치맨] 속 히어로들이 미국의 역사를 어떻게 바꿔왔는가를 다채롭게 보여주는데요. 그 중 눈여겨 볼만한 컷은 원조 나이트 아울(스티븐 맥허티)의 활약상입니다. 얼핏 극장 뒷골목에서 강도를 때려잡는 평범한 정의구현 장면으로 보입니다만, 유심히 살펴보면 당시 골목 벽에는 [박쥐]라는 포스터와 '고담'이라는 글귀가 보이고 극장 뒷문으로는 잘 차려입은 부부가 막 나오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이 장면은 '배트맨/브루스 웨인'의 부모인 토머스 웨인과 마사 웨인이 살해당한 날 밤이었던 겁니다. 하지만 나이트 아울의 활약으로 강도는 사전에 퇴치되었고, 이를 통해 [왓치맨]의 세계에 배트맨은 존재하지 않게 돼 버린 셈이죠.
어느 정도의 지식을 요구하는 이스터 에그들도 많습니다. 피터 잭슨 감독의 [킹콩] 중 해골섬에 선박이 도착하는 장면에서는 무언가를 타전하는 모스 부호 음이 들려옵니다. 이야기의 맥락으로 보자면, 영화에 대한 열정이 지나쳐 사람들이 눈앞에서 죽어 나가는 와중에도 카메라를 들이미는 속물 감독 칼 던햄(잭 블랙)의 체포에 관한 것으로 파악됩니다만 모스 부호에 정통한 관객이라면 그 메시지 내용이 "원숭이를 보여줘!(Show me the monkey!)"라는 사실을 알고 웃을 수 있겠죠. 또한, 스티븐 킹의 원작을 각색한 [미스트]의 도입부에는 서부극의 주인공 같은 한 사내의 그림이 강풍에 쓰러지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자체로도 충분히 상징적인 의미를 가집니다만, 스티븐 킹의 열혈 팬이라면 그림 속 인물이 그의 또 다른 소설 '다크 타워'의 주인공 롤랜드 데스체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무릎을 칠 겁니다. '다크 타워'의 결말을 아는 독자에게는 암울하기 짝이 없는 영화 [미스트]의 결말 또한 새로운 의미로 다가올 수밖에 없으니까요.
디즈니는 이러한 이스터 에그를 작품 속에 가장 즐겨 삽입해온 제작사입니다. 디즈니의 상징인 미키 마우스가 작품 여기저기에 숨어있는 건 말할 것도 없고, 새로운 애니메이션이 나올 때마다 전작과 관련된 이스터 에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등장하는데, 여간 눈이 밝지 않고서는 첫 관람 중에 알아채기가 쉽지 않죠. 예컨대 [라푼젤]에는 디즈니의 전작 [볼트]의 캐릭터인 비둘기들이 카메오로 나온 바 있고, [겨울왕국]에는 라푼젤과 플린 라이더가 뒷모습으로 깜짝 출연하며, [빅 히어로]에는 [겨울왕국] 캐릭터인 한스와 올라프가 석상의 형태로 등장한다는 식. 이러한 디즈니의 전통은 애니메이션뿐만 아니라 실사영화에서도 마찬가지로 구현되어 왔으니, 1982년작 [트론]에서도 가상세계를 지배하는 마스터 컨트롤의 부하인 '사크'의 배틀크루저 디스플레이 영상을 눈여겨본 관객이라면 게임 캐릭터 팩맨이 얼쩡거리더라는 것도 눈치챘을 겁니다.
디즈니의 자회사인 픽사 역시 모회사의 전통을 충실히 계승 중인데요. 픽사 애니메이션을 대표하는 두 개의 이스터 에그는 '피자 플래닛' 트럭과 코드 'A-113'입니다. 둘 다 [토이 스토리] 이후 거의 모든 작품에 등장해 왔으며, 대체로 유심히 보지 않으면 놓치기 십상인 이스터 에그지요. 피자 플래닛은 [토이 스토리]의 무대로 등장한 거대 규모의 레스토랑인데, 이후의 작품에서 가게가 등장한 일은 거의 없고 피자 플래닛의 노란색 배달 트럭만 한 번씩 지나갑니다. 심지어 [월-E]의 황폐해진 미래 지구에서도 폐차 상태의 피자 플래닛 트럭을 확인할 수 있죠.
A-113 역시 [토이 스토리]에서 소년 앤디의 어머니 차 넘버로 최초 등장한 이래, [벅스 라이프]에서는 개미들이 서식하는 박스의 겉면 인쇄, [니모를 찾아서]에서는 스쿠버 다이버가 사용하는 카메라의 일련번호 등 다채로운 형태로 사용돼 왔는데요. 이 코드의 정체는 존 라세터, 브래드 버드, 피트 닥터, 앤드류 스탠튼 등 애니메이션 업계 거장들이 졸업한 캘리포니아 예술대학교, 즉 칼 아츠의 애니메이션 학과 1학년 강의실 호수입니다. 픽사 애니메이션을 통해 유명해지긴 했습니다만 오늘날에는 칼 아츠 졸업생들이 스태프로 참여한 다른 작품들에서도 종종 발견되곤 하죠. 예를 들어, [터미네이터: 미래전쟁의 시작] 중 스카이넷 공습 장면의 화면이라든가, [헝거게임: 캣칭 파이어]의 절정부 캣니스(제니퍼 로렌스)가 경기장의 천정을 향해 활을 겨눌 때 그녀를 잡은 모니터에도 'A-113'이 뚜렷하게 보입니다.
이러한 디즈니의 이스터 에그 사랑은 그들이 인수한 마블 스튜디오 슈퍼 히어로 영화의 또 다른 트레이드마크가 되기도 했죠. [아이언맨], [아이언맨 2]의 화면에 스쳐 지나갔던 캡틴 아메리카의 방패라든가,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에서 언급된 '스티븐 스트레인지'(마블의 차기작 [닥터 스트레인지]의 주인공 본명)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디즈니가 새롭게 제작을 맡게 된 또 하나의 유명 프랜차이즈 시리즈 [스타워즈] 또한 이스터 에그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영화입니다.
[스타워즈] 시리즈에도 상당수의 이스터 에그들이 숨어있습니다만 (이를테면 [스타워즈: 에피소드 1 - 보이지 않는 위험]의 은하계 의회 장면에서 왠지 괄괄한 모습으로 등장한 E.T 종족 등) 별 상관없는 영화들에 등장한 [스타워즈] 관련 코드들이 팬들에겐 화젯거리였죠. 예를 들어, [레이더스]에서 인디아나 존스 박사(해리슨 포드)가 발견한 동굴 속 유물 중 R2D2와 C3PO의 상형문자 도판이라든가, [스타트렉 다크니스]의 우주공간 전투 장면 중 뜬금없이 튀어나온 R2D2처럼 말입니다. 물론 [레이더스]의 제작에 [스타워즈] 시리즈의 조지 루카스가 참여했고, [스타트렉 다크니스]의 J.J.에이브럼스 감독이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의 연출을 맡았으니 별 상관없다고만 할 수는 없겠지요.
마지막으로 시작부터 끝까지 이스터 에그로 점철된 영화에는 데이빗 핀처의 [파이트 클럽]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가장 유명한 것은 영화를 그림 한 장씩 프레임 바이 프레임으로 끊어서 봐야 확인할 수 있는 테일러 더든(브래드 피트)의 숨은 모습들. 이는 영화의 반전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 설정이죠. 그리고 영화의 모든 장면에 어떤 형태로든 스타벅스 컵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는 것 또한 [파이트 클럽]의 대표적인 이스터 에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딱 한 프레임 삽입된 19금 이미지에 대해서는…, 더 이상 자세한 설명을 생략하겠습니다.
A. 영화 본편이 아니라 DVD 타이틀에 특정한 조작을 가할 경우 보너스 영상을 볼 수 있는 사례들입니다. 이 또한 정식 메뉴에는 보이지 않도록 숨어 있는 항목들인데요. 예컨대 [스타워즈 에피소드 2 - 클론의 습격] DVD의 이스터 에그는 '언어 선택' 메뉴에 숨어 있습니다. 해당 메뉴로 들어가 숫자 1번 버튼을 두 번 누르면 'LUCASFILM THX'가 선택되는데 여기서 다시 3번과 8번 버튼을 차례로 눌러주면 영화의 NG 장면을 볼 수 있게 되죠.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 DVD는 이스터 에그가 메인 메뉴만큼이나 방대하게 숨어있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이 시리즈 DVD에서 숨은 메뉴를 찾아내는 일반적인 공식은 특정메뉴를 선택한 다음 상하좌우 방향키 중 하나를 두 번씩 눌러보는 것. 그러면 배경화면인 줄만 알았던 그래픽 아이콘 하나가 선택되면서 메이킹, 인터뷰 등의 부가 영상을 볼 수 있습니다.
[터미네이터] 시리즈에도 이색적인 이스터 에그들이 숨어 있는데요. 슈퍼비트 버전으로 출시된 [터미네이터 2] DVD 메인 메뉴에서 차례로 숫자 8, 2, 9, 9, 7을 입력하면 'THE FUTURE IS NOT SET'이라는 문장과 함께 확장메뉴 버튼이 새롭게 생성되지요. 이를 선택하면 영화의 또 다른 엔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터미네이터 3 - 라이즈 오브 더 머신]의 경우, 여성형 터미네이터 T-X(크리스타나 로켄)가 미래에서 알몸으로 도착하는 장면은 와이드 포맷으로 촬영된 본편에서 제대로 노출되지 않았죠. 그런데 DVD의 'NG 모음' 영상을 끝까지 시청한 후 이전 메뉴로 돌아가는 식의 조작을 가하지 않은 채 가만히 두면 바로 그 문제의 장면을 4:3 화면 포맷으로 온전하게 보여줍니다.
한국영화 중에서도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 허진호 감독의 [봄날은 간다], 김지운 감독의 [장화, 홍련] 등 소장가치 높은 DVD들에 감독의 과거 단편영화와 희귀 영상을 비롯하여 많은 이스터 에그들이 숨어 있습니다. 찾는 재미를 위해 구체적인 조작법은 소개하지 않겠으니 일단 직접 시도해 본 후 검색을 이용해보길 권합니다.
+ 참고 사이트 : 이스터 에그 아카이브 (영문, http://www.eegg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