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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설헌 / 저자 최문희 / 출판사 다산책방
소설로 다시 태어난 허난설헌의 일대기!
제1회 혼불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된 최문희의 소설 『난설헌』. 16세기 조선 중기의 천재 여류시인 허난설헌의 삶을 그린 작품이다. 77세의 여성 소설가는 난설헌의 삶과 내면을 꼼꼼하게 풀어내며, 각 장면을 한 편의 세밀화처럼 표현했다. 어린 초희는 자유로운 가풍 속에서 성장하며 당대의 시인으로 꼽혔던 이달에게 시를 배운다. 여성이 존중받을 수 없었던 시대였지만 아버지 허엽과 오빠 허봉은 그녀를 귀한 존재로 여겼고, 초희는 천재적인 재능을 발휘하며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그러나 초희 역시 15세의 나이에 혼인을 하게 되고, 엄정한 시대와 현실의 벽 앞에 가로놓이게 된다. 예고된 불행처럼 그녀의 삶은 삐걱대기 시작하는데….
◈ 북소믈리에 한마디!
천재 여류시인 허난설헌의 일대기를 소설화한 이 작품은 당대 조선 여인들의 생생한 생활상을 함께 담아내고 있다. 작가는 난설헌을 단지 뛰어난 재능을 가진 시인으로만 보지 않고, 그녀의 시편들 뒤에 담긴 삶의 질곡까지 들여다본다. 시를 쓰는 순간에만 막막하고 암담한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그녀. 규범의 족쇄와 규방 속 고통으로부터 날아올라 크고 넓은 세상을 꿈꾸었던 그녀의 시편들을 만날 수 있다.
스물일곱 짧은 생,
슬픔의 멍울을 시의 꽃망울로 터뜨렸던 여인……
시리도록 아름다운 한 여인의 눈물이 지금 다시 흐른다
“나에게는 세 가지 한(恨)이 있다. 여자로 태어난 것, 조선에서 태어난 것, 그리고 남편의 아내가 된 것…….” 스물일곱, 짧고 불행했던 삶을 살다간 여인. 고통과 슬픔을 시로 달래며 섬세한 필치로 노래한 시인. 호는 난설헌(蘭雪軒). 자는 경번(景樊). 이름은 초희(楚姬).
『난설헌』은 16세기 천재 여류시인 허난설헌의 삶을 따라가는 작품이다. 제1회 혼불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되면서 “바윗돌에 손가락으로 글씨를 새기는 마음으로 글을 쓴 최명희의 작가정신을 그야말로 오롯이 담아낸 소설”로 평가받았다. 여성이 존중받을 수 없었던 시대, 창작을 통해 자신을 일으키고 인내했던 여인의 삶은, 올해 77세 여성 소설가인 최문희 작가의 삶 속으로도 깊이 투영됐다. 작품을 쓰는 내내 난설헌의 영혼으로 살았고, 난설헌의 마음으로 사물과 사람을 되새겼다. 그렇게 난설헌의 내면과 삶을 꼼꼼하게 바느질하듯이 이야기의 육체를 만들어냈다. 그 섬세한 바느질 끝에서 어린 초희의 총명함이, 한 사내를 향한 여인의 숨죽인 마음이, 현실과 불화하는 난설헌의 눈물이 생생히 되살아났다.
뿐만 아니라, 16세기 조선의 풍속사 또한 수를 놓듯 풍성하게 소설 속에 담았다. 혼수 함 들어오는 풍경, 양가 대소가(大小家) 사람들이 모두 모인 가운데 치러지는 혼례식 장면들은 그야말로 눈앞에 펼쳐지듯 생생하게 그려진다. 난설헌의 삶을 둘러싼 주변인물에 대한 묘사 또한 어느 하나 소홀함 없이 촘촘하게 엮어내고 있다. 이 소설이 한층 더 입체감 있고 탄탄하게 직조될 수 있었던 건 바로 그 때문이다. 작가가 살아온 세월의 힘이 작품 곳곳에 고스란히 스며들어 한 장면 한 장면이 한 편의 세밀화처럼 그려졌고, 순간순간의 감정들이 층층이 실어 나르고 있다.
77세 여성 소설가, 최문희 작가가 혼신과 집념으로 써내려간 역작
- 꼼꼼하게 바느질하듯 되살려낸 난설헌의 질곡 같은 삶
이 소설 속에서 허난설헌은 단지 빼어난 재능을 가진 시인으로 박제된 채 머물지 않는다. 그녀의 뛰어난 시편들 뒤로 드리워졌던 삶의 질곡이 이 작품 안에는 오롯이 박혀 있다. 그녀의 빛나는 시들은 그 한없이 고단한 삶의 고통을 디뎌가는 과정 속에서 멍울져 나온 것임을 감동적으로 보여준다.
결혼 이전의 초희와 결혼 이후의 난설헌. 그 선명한 대비는 이 작품에서 단연 이채로운 대목이다. 결혼 이전 딸도 아들처럼, 아니 아들보다 더 귀한 존재로 존중해주었던 극히 예외적인 집안에서 성장해 마음껏 자신의 천재성을 발휘하던 초희의 삶은, 결혼이라는 제도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엄정한 시대와 현실 질서에 갇혀 급전직하한다. 뛰어난 문리(文理)와 천재적인 시재(詩才)는 불온시되고 금기시되고 만다. 아니, 오히려 시대를 넘어서는 재능은 난설헌의 삶을 더욱 고통스럽게 만드는 장막이 되어버린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녀의 삶이 고단할수록, 고통러워질수록 그녀의 시는 더욱 깊어지고 처연해진다. 급기야는 모든 사람의 마음을 저릿하게 만드는 작품이 되어 한 편 한 편 피어난다. 『난설헌』은 바로 그 지점에서 의미를 짊어지고 있는 소설이다. 허난설헌의 일대기를 중핵으로 남근중심적 사회를 통렬하게 비판하는 한편 위대한 문학의 발생과정을 심도 있게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 소설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난설헌의 삶을 둘러싼 또 다른 여인들의 삶이고 모습들이다. 난설헌의 어머니, 시어머니, 시숙모, 유모, 몸종, 기생 그리고 난설헌의 남편과 난설헌을 연모하는 사내까지, 전혀 다른 무늬를 가진 삶들을 세심하게 어우르는 시선과 심리 묘사는, 이 작품이 단지 역사적인 인물의 삶을 복원한 역사소설로만 머물지 않도록 만든다. “과거 속에서도 현재적 의미가 충만한” 작품, 바로 그 지점에서도 이 소설 『난설헌』은 혼불문학상 첫 번째 수상작으로서의 면모를 여실히 입증해보이고 있다.
“너무 영민함도, 너무 다정함도, 지나친 나약함도
이 세상에 배겨나지 못하는 것을,
어쩌자고 머릿속에 촛불을 켜고 산다더냐…….”
어린 초희는 자유로운 가풍 속에서 성장하며 당대의 시인으로 손꼽혔던 손곡 이달에게 시를 배운다. 여자에게는 글을 가르치지 않는 시대였지만, 아버지 초당 허엽과 오빠인 하곡 허봉은 그녀를 귀한 존재로 존중해주었다. 그녀가 여덟 살 때 지은 한시, 「백옥루 상량문」은 어린 나이에 지었다는 게 믿기 힘들 만큼 뛰어난 상상력과 표현력으로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그러나 천재적인 재능을 발휘했던 초희는 결혼이라는 삶의 제도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엄정한 시대와 현실의 벽 앞에 가로놓인다. 15세 나이, 안동 김씨 가문의 김성립과의 혼인. 그것은 그녀에게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고 굴레였다. 스승 이달과 함께 사랑방을 찾아오곤 했던 서자 신분의 최순치를 향한 애틋했던 마음도 고이 접어 친친 동여매야 했다.
이제 그렇게 사랑방에 불려 나가 시를 겨루는 일 같은 건 없을 것이다. 시집이라는 절대의 공간으로 옮겨 앉으면, 생이 마감되는 그날까지 숨죽여 살아야 한다는 지엄한 법도가 있다. 벌건 번개칼이 창호지를 긋고 지나간다. 다시 빗방울이 들이치기 시작한다. (본문 p.23)
초희는 더운 숨길을 입안으로 밀어넣고 입술을 꼭 다물었다. 지금 자신의 가슴에 간단없이 물이랑을 퍼올리고 있는 사람, 그 이름만 떠올려도 빠개지듯 저려들었다. 화관을 머리에 쓰고 거울을 본다. 저 선연한 모습은 누구인가. 김성립과 정혼한 여인이 분명하거늘, 어쩌자고 마음에 물이랑을 잠재우지 못하는가. 아니라고 뿌리칠수록, 안된다고 억제할수록 입술에 깨물리는 그리움을 어쩌란 말인가. (본문 p.46)
백일홍은 맨살이다. 그래서 꽃 색깔이 저다지 진분홍인가. 있는 그대로 발가벗고 서 있는 나무라는데 생각이 모아진다. 그러자 새삼스럽게 그미의 눈가에 눈물이 핑그르르 어린다. 백일홍보다 나을 것 없는 인간들. 겹겹이 감추고, 숨기고, 억압하고 그것만으로도 부족해서 인간의 순수한 본성까지도 작은 틀 속에 가두려는 제도와 인습이 문득 진저리쳐진다. (본문 p.245)
예고된 불행처럼, 삶은 삐걱대기 시작했다. 시어머니와의 갈등, 남편과의 불화, 정신적으로 믿고 의지했던 아버지와 오라버니의 잇따른 객사, 어린 딸과 아들을 저 세상에 먼저 떠나보내는 헤아릴 수 없는 상실감까지, 그녀는 그 모든 고통들을 가슴속으로 끌어안는다. 자신의 한 서린 삶에서 벗어날 수 있는 순간은 오로지 서안을 끌어당겨 시를 쓰는 일, 그것밖에 없다. 현실은 막막하고 암담했지만, 시 안에서 그녀가 꿈꾸던 세상은 크고 넓었다. 규범의 족쇄와 규방 속 고통으로부터 훨훨 날아올라 그녀의 시는 신선의 세계로 가 닿아 한 문장 한 문장 아름다운 시어로 살아나왔다.
푸른 바닷물이 구슬 바다에 스며들고 (碧海浸瑤海)
푸른 난새는 채색 난새에게 기대었구나 (靑彎倚彩彎)
부용꽃 스물일곱 송이 붉게 떨어지니 (芙蓉三九楹)
달빛 서리 위에서 차갑기만 해라 (紅隋月霜寒)
여성이 존중받을 수 없었던 시대, 창작을 통해 자신을 일으키고 인내했던 여인. 난설헌은 자신의 죽음을 예감한 듯 이 아름다운 시를 마지막으로 남기고 스물일곱 짧은 생을 마감했다. 이 소설 안에는 그렇게 스러져간 여인의 가슴 시린 삶과 눈물이 그대로 배어있다. 재색을 겸비한 며느리에 대한 미움을 떨쳐낼 수 없는 시어머니의 날선 감정도, 아내를 볼 때마다 자신의 부족함을 절실히 느낄 수밖에 없었던, 그래서 아내를 아끼면서도 밀쳐내어버리는 양가감정에 시달리는 남편 김성립의 괴로움도, 시를 나누고 마음을 나눈 여인이지만 신분의 차이라는 벽을 넘어설 수 없기에 먼발치서 아파하는 사내 최순치의 안타까운 마음도 스며들어 있다. 그 저마다의 모습들이 시대를 훌쩍 뛰어넘어 지금 여기 우리에게로 다가온다.
추천의 글
『난설헌』은 클래식한 소설작법을 세밀하고 성실히 쫓아간 작품이다. 애련하고 훈훈하다. 정통소설미학이 해체되다시피 돼가고 있는 요즘, 시대의 굴곡을 따라 산 한 여자의 인생을 이만큼 꼼꼼한 바느질 솜씨로써 이야기의 육체를 완성하긴 쉽지 않다. 고(故) 최명희 작가가 그랬듯이, 작가의 말을 믿어도 좋은 소설이다. _ 박범신(소설가)
지붕 밑에 갇힌 삶을 살며 생명을 기름 삼아 시를 짓고 다른 세계로 망명하듯 요절한 허난설헌의 생애를 조선 여인의 생생한 생활상 안에 담아 섬세하게 직조해냈다. 한 문장, 한 문장, 도도한 열정이 번뜩이는 애틋한 페이지를 넘기며 내 유전자 속에 난설헌의 슬픔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_전경린(소설가)
허난설헌은 두 번 태어났다. 사백여 년 전에 한 번, 작가 최문희에 의해 또 한 번. 죽었으되 죽지 않는다는 말의 뜻을 이제야 실감하겠다. 허난설헌에 관한 책을 수없이 접했지만 이제야 그녀의 얼굴이 또렷하게 그려진다. _ 하성란(소설가)
76세 작가의 집념으로 되살아난 ‘허난설헌의 영혼’ [경향신문] 2011.10.04
ㆍ소설 ‘난설헌’으로 제1회 혼불문학상 당선된 최문희
76세에 문학의 꽃을 활짝 피웠다. 허난설헌을 통해서였다. 1935년 생으로 70대 후반에 접어든 작가 최문희씨(사진)는 글쓰기에 천부적 재능을 타고 났으면서도 가부장제 체제에 짓눌려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던 난설헌 허초희(1563~1589)의 삶을 소설로 옮겼다. 등단 24년째이지만 늦깎이로 소설을 발표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던 그는 한땀한땀 수놓듯이 써내려간 소설 <난설헌>으로, <혼불>의 작가 최명희를 기리는 제1회 혼불문학상에 당선됐다. 국내 문학상 공모 사상 최고령 당선이다.
“예술가들은 가슴에 광기나 신기를 품고 있지요. 최승희, 피카소, 고흐, 박경리… 다 마찬가지예요. 각자 가슴 속의 활화산을 터트리는 방법은 다른데, 난설헌은 시로 승화시켰습니다. 극한 고통 속에서도 화관을 쓰고 촛불을 켜놓고, 육신은 죽어도 영혼은 무릉도원의 세계로 비약할 수 있다고 여겼지요.”
아름다운 여성에 대한 소설을 쓰고 싶었던 그는 허난설헌을 떠올렸다. 2009년부터 강릉 생가를 찾아보고, 학계의 허난설헌 연구, 중종실록, 허균의 저서 등의 자료를 찾아본 뒤 1년2개월에 걸쳐 원고지 2500장의 소설을 완성했다.
‘나에게는 세 가지 한이 있다. 여자로 태어난 것, 조선에서 태어난 것, 그리고 남편의 아내가 된 것.’ 난설헌은 도교를 공부한 아버지 허엽의 슬하에서 오빠 허봉, 동생 허균 등과 더불어 학문을 배우며 자유롭게 성장한다. 스승 이달의 사랑방에 함께 드나들었던 서자 신분의 최순치와 안타까운 사랑도 나눈다. 그러나 김성립과 결혼하면서 견고한 가부장제의 벽에 부딪쳤다. 시어머니, 남편과 불화했으며 어린 남매도 먼저 떠나보냈다. 그런 한을 아름다운 시로 달랬다.
이 작품은 ‘디테일하고 성실하게 이야기의 육체를 만들었다’(박범신), ‘허난설헌에 관한 책을 수없이 접했지만 이제야 그녀의 얼굴이 또렷하게 그려졌다’(하성란) 등의 심사위원 평가를 받으면서 공모에 참여한 227편 중 1등으로 뽑혔다.
작가 최씨가 문학상에 당선한 건 이번이 네번째다. 53세이던 1988년 단편 ‘돌무지’로 ‘월간문학’ 신인상을 받으면서 늦깎이로 등단한 그는 1991년 KBS의 중편소설 공모에 <숨쉬는 빛>과 <떠있는 망루>가 동시 당선돼 <숨쉬는 빛>이 드라마로 만들어졌다. 환갑이던 1995년에는 <율리시즈의 초상>이란 장편으로 제4회 작가세계 문학상을, <서로가 침묵할 때>란 장편으로 제2회 국민일보 문학상을 잇달아 수상해 한 해에 상금으로만 1억2000만원을 받았다.
“등단한 뒤에도 청탁이 없으니까 계속 문학상에 응모한 거죠. 나처럼 나이가 들어 작가가 되면 문단에 자리잡기가 쉽지 않아요.”
그는 2편의 장편 외에 <크리스털 속의 도요새> <백년보다 긴 하루> <나비눈물> 등 세 편의 소설집을 내기도 했다. 하지만 제도권 밖 무명작가의 설움을 쉽게 떨쳐내지 못했다. “문단에 나가 교류하기보다는 가정주부로서 살림하고 남편과 아이들 뒷바라지하는 틈틈이 소설을 썼다”는 그는 “노력에 비해 성과는 부족하지만, 후회는 없다”고 말했다.
경남 산청에서 태어난 최씨는 10살 때 서울에 올라와 숙명여중·고를 거쳐 서울대 지리교육과를 졸업했다. 대학 동기였던 오홍석 전 동국대 지리교육과 교수(76)와 결혼하면서 전업주부로 2남1녀를 키웠다. 그러다가 38살에 교편을 잡기 시작해 11년간 교사생활을 했다. 겨울마다 교실 난방 연료로 쓰였던 조개탄의 유독가스 때문에 기관지염이 악화돼 학교를 떠난 그는 50살을 넘기면서 본격적으로 소설 공부를 시작했다.
“6·25 전쟁 무렵에 책방에 갔다가 황순원의 단편소설 ‘목넘이 마을의 개’를 읽고, 아름다운 모국어에 완전히 매료됐죠. 김남조의 <목숨>이란 시집도 그랬구요. 그 때부터 어떤 일을 하든지 문학에 대한 지향을 잊은 적이 없습니다.”
그는 고등학교 1학년 때인 1952년 국어교사이던 소설가 전광용씨의 추천으로, 막 창간된 월간지 ‘여성계’에 콩트를 실은 것을 계기로 문예지·교지의 단골손님이 됐다.
대학 다닐 때도 김남조 시인의 현대시 특강을 청강하면서 줄곧 시를 쓰고 신춘문예에 투고했다. 교사생활을 접고 본격적으로 문학에 뛰어들면서 소설로 장르를 바꾼 최씨는 작가 오정희씨의 단편소설을 노트에 베껴 쓰면서 문장 연습을 했고, 작가 이문구·김원우씨에게 소설을 배웠다. 김원우는 “최문희는 꼭 글을 쓸 것”이라고 용기를 주었다.
그가 처음 쓴 장편 <율리시즈의 초상>은 남편의 조상들이 살았던 제주도에 갔다가 박물관에서 참나무로 만든 뗏목인 ‘테우’를 보고 구상했다. 뗏목을 타고 거친 파도를 헤치면서 육지로 가고자 했던 그들의 소외감과 정직하고 근면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그렸다. 장편 <서로가 침묵할 때>는 이혼 위기에 놓인 부부가 갈등을 극복하고 편견을 버린 채 상대방을 인정하기까지의 과정이 주된 줄거리다.
이번의 <난설헌>에서는 “도교라는 형이상학적인 종교에 매료돼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게 부유하는 느낌을 갖고 있던 난설헌의 아름다운 영혼을 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백일홍은 맨살이다. 그래서 꽃 색깔이 저다지 진분홍인가. 있는 그대로 발가벗고 서 있는 나무라는데 생각이 모아진다. 그러자 새삼스럽게 그미의 눈가에 눈물이 핑그르르 어린다. 백일홍보다 나을 것 없는 인간들. 겹겹이 감추고, 숨기고, 억압하고 그것만으로도 부족해서 인간의 순수한 본성까지도 작은 틀 속에 가두려는 제도와 인습이 문득 진저리쳐진다.’(본문 중)
7일 출간 예정인 <난설헌>(다산책방)은 당초 원고지 2500장 분량이었으나 책으로 묶이면서 1400장으로 줄었다. 그는 “한 가지를 쓰더라도 곱씹어서 쓰는 게 내 스타일인데 개성이 흐려진 것 같아서 아쉽다”고 말했다. 초고에서는 난설헌의 시를 모두 인용했으나 학자들이 밝혀놓은 시인으로서의 난설헌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난설헌을 부각시킨다는 면에서 대부분 뺐다.
지금까지 세 편의 장편을 모두 공모 형식으로 발표한 그는 다음 소설도 준비 중이다.
“지리학을 공부한 만큼 현대문명의 대안적 공간인 ‘슬로 시티’를 배경으로 한 작품을 쓰고 싶어서 300장쯤 써 놓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마음이 변해서 전광용·이문구·김원우·신달자 등 내가 만났던 작가 20여명의 에피소드를 쓰고 있지요.”
그는 76세란 나이가 무색할 만큼 젊어 보인다. 지금도 하루 종일 컴퓨터를 켜놓은 채 원고 쓰고, 검색하고, 컴퓨터 바둑도 즐기는 그는 “늘 해온 일이기 때문에 특별히 힘들다는 느낌은 없다”고 말한다. 그의 노익장이 한국문학을 풍성하게 만들고 있다.
난설헌( 최문희 지음, 다산책방, 1만3000원) [한국일보] 2011.10.13
소설 ‘혼불’의 작가 최명희의 문학정신을 기리기 위해 제정한 ‘혼불 문학상’의 제1회 수상작이다.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소설가 박범신, 전경린, 이병천, 김탁환, 문학평론가 류보선은 “가장 혼불 문학상다운, 혼불의 정신에 부합하는 작품”이라며 “디테일하고 성실하게 이야기의 육체를 만들어냈을 뿐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아간 한 여자의 삶을 매우 꼼꼼하게 바느질한 점이 단연 돋보인다”고 평했다.
올해 77세인 저자는 집념과 혼신의 힘을 쏟아 조선 중기의 천재적인 여류 시인 허난설헌의 일대기를 장편소설로 엮었다.
난설헌(최문희 지음/다산북스) [헤럴드경제] 2011.10.14
‘혼불’의 작가 최명희의 문학정신을 기리고 현대적으로 계승하기 위해 제정한 제1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일제말기 오랜 양반가를 홀로 일으킨 한 여인의 곡절 많은 삶과 그 주변인물들이 겪는 고단한 생활사, 인간 주변의 사물과 관습, 사물의 질서에서 헤어나오지 못해 괴로워하는 인간심리를 한땀 한땀 바느질하듯 되살려냈다. 소설은 허난설헌을 단지 빼어난 재능을 지닌 시인으로 가둬 두지 않는다. 뛰어난 시편들 뒤로 드리워진 삶의 질곡을 깊이있게 들여다본다. 허난설헌의 일대기를 중심으로 남근중심적 사회를 통렬하게 비판하면서 위대한 문학의 발생과정도 심도깊게 그려냈다.
난설헌, 조선이 담지 못한 '부용꽃' [아이뉴스24] 2011.10.14
"내 어찌 이 땅에 아녀자로 태어나 이 작은 틀 속에 갇힌 신세가 되었던고. 죽어 다시 태어나면 저 너른 중원천지를 말 타고 달리는 남정네로 태어나리라."
천재도 과하면 독이 되는 것인지, 조선 중기 천재 여류 시인 허난설헌은 그 독(毒)으로 얻은 빛난 대가로 오랏줄로 꽁꽁 묶여 냉랭한 별채에 갇히고 소외당했다. 소설 '난설헌(다산책방)'은 이런 불우한 천재 허난설헌의 일생을 담아낸 작품이다.
시인으로서의 생과 여자로서의 생. 이 두가지 행로 어디에도 난설헌은 오롯이 자신의 이름으로 살지 못했다. 남편이 햇빛 찬란한 양지밭과 같지 않았기에 여자로서의 생에 늘 잿빛 어둠이 길게 드리웠고, 시인으로서도 그 천재성을 마음껏 발휘하지 못해 시는 늘 한줌의 그리움으로 애달팠다.
소설 속에는 27년 짧은 생 동안 명주실을 뽑아내듯 써내려간 난설헌의 시들이 알알이 박혀있다. 종이와 붓만 있으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써 내려간 시는 오직 여인에게만 한없이 가혹했던 조선을 향한 부르짖음처럼 여겨졌다.
양반가의 여성에게조차 글을 익히도록 하지 않았던 당시 분위기 속에서 시를 쓰는 며느리가 달갑지 않았던 시어머니. 8세 때 이미 신동으로 소문난 아내 곁에서 별다른 재기 없는 자신을 자학하며 바깥으로 돌기만 하는 통 좁은 남편. 어깃장으로 서로 할퀴는 부부사이. 애뜻함이든 미움이든 눈길은 어긋나고, 난설헌의 진심은 반사되고 부서지기만 했다.
◆명주실을 뽑아내듯 영혼의 부르짖음으로 써내려갔던 시
난설헌은 꽃다운 젊은 시절 15세 조혼을 한 뒤 엄격한 법도에 눌려 일생 문안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에 더해 시집살이의 고됨은 차라리 사회활동이 자유롭고 마음껏 자연과 창(唱)과 문(文)을 벗 삼아 사는 기녀의 삶이 낫겠다 싶다. 사간헌의 영수인 대사간인 아버지 허엽과 따르던 오빠 허봉의 잇따른 객사로도 부족해 허난설헌은 딸과 아들을 차례로 잃었다.
살림은 뒷전이고 서책이나 팔랑거리며 기녀들이나 하는 시나 나불대는 어미에게 물들 수 있다는 시어미의 엄혹한 규제 속에 제 자식 한 번 품에 제대로 안아보지도 못했던 난설헌이었다. 이때의 슬픔을 그녀는 '곡자(哭子)'’라는 시로 남겨놓았다.
지난해 사랑하는 딸 여의고 / 올해는 사랑하는 아들 잃었네 / 슬프디 슬픈 광릉 땅이여 / 두 무덤이 마주보고 있구나 / 백양나무에 소슬한 바람 불고 / 도깨비불은 무덤가 나무 밝히네 / 종이돈 살라 너희 혼을 부르고 / 정화수를 올려 제사를 지낸다 / 너희 넋은 응당 오누이임을 알지니 / 밤마다 서로 어울려 놀겠지 / 비록 뱃속에 아기가 있다 한들 / 어찌 잘 크기를 바랄 수 있으리오 / 부질없이 황대사를 읊조리고 / 피눈물 흘리며 소리 죽여 슬퍼한다 / - 허난설헌의 시 '곡자(哭子)' -
두 손을 휘저어 붙잡으려 하면 조금 전까지 온기로 느껴지던 아이들의 모습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진다. 손에 잡힐 듯 다가오지만 손가락 사이로 물처럼 새나가버리는 아이들이 그미의 가슴에 사무친다. 후드득, 뺨을 적시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않고 그는 눈을 뜨고 일어나 서안을 끌어당긴다. 어느새 먹물이 말라버린 붓은 빗금 한 획도 그리지 못하고 마른다. 물처럼 새고, 먹물같이 사위는 것들…뜨겁고도 세찬 한숨이 토해진다. -소설 '난설헌' 중
소설 '난설헌'을 통해 다시 태어난 허난설헌. 저자 최문희 씨는 가슴에 돌덩이처럼 얹히며 마음에 박혀버린 허난설헌을 불러냈다. 저자는 작품을 쓰는 내내 난설헌과 소통했던 날들이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안 간다고 고백했다. 귓전에 속삭이던 말들이 오롯이 한 권의 소설로 남았다고 전했다. 저자는 ‘난설헌’으로 혼불문학상을 탔다.
◆난설헌의 세 가지 한(恨)…여자, 조선, 그리고 남편의 아내
난설헌의 너무 영민함도, 너무 다정함도, 지나친 나약함도 닫힌 세상이었던 조선은 배겨나지 못한 듯하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요염하고 방만한 백일홍의 이미지와 단아하고 청초한 난설헌의 모습이 자주 오버랩된다. 껍질이 없어 미끄러운 나무 백일홍은 있는 그대로 발가벗고 서 있다. 장옷으로 얼굴을 가린 것은 이름이 없는 여성이란 뜻인지. 칠거지악으로 겹겹이 억압하고 수 겹의 속곳으로 정절을 강요당하는 조선의 여인과 백일홍이 대비된다. 아련히 백일홍을 바라보는 난설헌의 눈빛이 선연하다. 규제와 억제된 삶의 한 모서리를 허물고 싶은 눈빛이다.
허난설헌은 어렸을 때 이름이 초희였다. 그녀는 ‘감우(感遇)’라는 시를 짓고 ‘허난설헌’이라는 당호를 지었다.
"난설헌이라…참으로 대단한 자기애를 지녔구나. 자고로 남자나 여자나 자아가 강하면 외로운 법…아직은 어린 나이인데 아름다운 난초의 초췌해지는 추이를 그린 것은 너무 조숙함이 아닌가."
이름 없는 여인으로 살아야 마땅한 시대에 과도한 자아의식과 자기애를 가지고 성장했으니, 난설헌의 일생은 불행의 늪에 빠지기 십상이다. 독자들은 최문희의 '난설헌'을 읽다보면 후드득 자목련이 붉은 빗방울처럼 떨어지는 것을 느낄 것이다. 민요의 슬픈 가락이 떠오르고, 고조 없는 시 한 수를 읊고 싶어질 수도. 가이 없는 보랏빛 절망을 만날 것이다.
한편 제 1회 혼불문학상 대상의 영예를 얻은 최문희 씨는 77살 늦깎이 작가임에도 힘찬 필력과 뛰어난 묘사 기법으로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허난설헌의 삶과 문학을 다룬 소설 ‘붉은 빗방울’로 정통적인 묘사 기법을 통해 허난설헌을 되살렸다는 평가를 받으며 제1회 혼불 문학상 대상을 차지했다.
당시 심사위원장을 맡은 소설가 박범신씨는 "디테일하고 성실하게 이야기의 육체를 만들어냈다. 그 시대를 살아간 한 여자의 삶을 매우 꼼꼼하게 바느질한 느낌이다."라고 평가했다.
76세 작가가 심취했던 허초희의 삶… 1회 혼불문학상 영예 ‘난설헌’ [국민일보] 2011.10.14
조선 중기 여류시인 난설헌 허초희(1563∼1589)의 삶을 소설로 옮긴 장편 ‘난설헌’(다산책방)은 제1회 혼불문학상 당선작이다. 당선자는 76세 최문희씨. 국내 문학상 공모 사상 최고령 당선이다.
2009년 여름, 강원도 강릉의 허난설헌 생가를 답사한 데 이어 관련 자료들을 수집한 그는 서울 진관동 자택에 틀어박힌 지 1년2개월 만에 소설을 완성했다. “고택의 문턱을 넘는 순간, 내 눈을 사로잡은 건 백일홍나무였어요. 8월 땡볕에 만개한 백일홍은 너무 방만했고 너무 요염했지요. 백일홍과 난설헌. 나는 한동안 그 생각에서 놓여나지 못했지요. 백일홍의 이미지와 난설헌의 분위기가 엇박자를 튕기며 내 머릿속에서 하나의 줄기로 매김질되기까지 긴 시간이 걸렸습니다.”
경남 산청 태생의 작가는 10세 때 상경해 숙명여중·고를 거쳐 서울대 지리교육과를 졸업했다. 대학 동기였던 오홍석(76) 전 동국대 지리교육과 교수와 결혼해 2남1녀를 키우다 38세에 교편을 잡았다. 하지만 11년 만에 기관지염 때문에 학교를 떠난 그는 50세를 넘기면서 본격적으로 소설 공부를 시작했다. 그의 문재(文才)는 여고 1학년 때 나타났다. 국어교사이던 소설가 전광용의 추천으로, 월간지 ‘여성계’에 콩트를 실었던 것. 대학 시절엔 시인 지망생이었다.
오십이 넘어 문학에 재도전하면서 장르를 소설로 바꾼 그는 53세이던 88년 단편 ‘돌무지’로 ‘월간문학’ 신인상을 받으면서 늦깎이로 등단했다. 상복은 이어졌다. 91년 KBS의 중편소설 공모에 당선됐고 환갑이던 95년엔 제4회 작가세계 문학상과 제2회 국민일보 문학상을 잇달아 수상했다. 그 해에만 상금이 1억2000만원이었다.
하지만 그의 이름은 쉽게 잊혀졌다. 그러다 붙든 게 ‘난설헌’이었다. 최근 혼불문학상 응모작 227편 가운데 그의 작품은 단연 돋보였다. “내 한문 실력이 모자라는 부분은 남편이 보완해주었고 고물 컴퓨터가 기우뚱거릴 때마다 아이들의 손을 거쳐야 했지요. 이 소설은 나 혼자만의 작업으로 만들어진 작품이 아닙니다. 자료 수집에서부터 가족들의 협조로 조립된 작품이었기에 고마움을 전합니다.”
허난설헌 삶·주변인물 모습 담아 [서울경제] 2011.10.14
■난설헌(최문희 지음, 다산책방 펴냄)
일제 말기를 배경으로 양반가를 홀로 일으킨 허난설헌의 곡절 많은 삶과 그 주변인물들의 모습을 그린 소설. '혼불'의 작가 최명희의 문학정신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제 1회 혼불문학상'의 첫번째 수상작이다. 올해 77세인 소설가 최문희가 난설헌의 삶과 16세기 조선의 풍속사를 세밀하게 살려낸다. 1만 3,000원.
난설헌 [한국일보] 2011.10.14
최문희 지음. 전주문화방송이 제정한 제1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77세 여성 작가가 16세기 여류시인 허난설헌의 일대기를 꼼꼼하게 되살렸다. 다산책방ㆍ384쪽ㆍ1만3,000원.
난설헌(최문희 지음, 다산책방, 384쪽, 1만3000원) [중앙일보] 2011.10.15
대하소설 『혼불』의 작가 최명희를 기리는 1회 혼불문학상을 수상한 장편이다. 저자 최문희씨는 무려 76세. 16세기 여류 시인 허난설헌의 일대기와 당대의 풍속사를 바느질하듯 꼼꼼하게 되살려냈다.
난설헌(최문희 지음·다산책방) [동아일보] 2011.10.15
제1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16세기 시인 허난설헌의 일대기를 올해 일흔일곱인 여성 저자가 촘촘하게 되짚어갔다. 1만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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