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 준비하고 있어라. 생각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오리라.”(마태 24,42.44)
아침저녁이면 몸을 웅크리게 하는 쌀쌀한 날씨와 함께 이제 가을을 지나 겨울이 오고 있음을 알리는 요즘, 전례시기 역시 연중 시기를 마무리하고 대림의 시기를 준비하는 연중 제 32 주일인 오늘 우리가 듣게 되는 하느님의 말씀은 그 때가 언제일지 모르는 하느님 나라의 도래를 깨어 기다려야 함을 이야기합니다.
‘기다림’, 기다림이란 말은 아직 오직 않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는 점에서 간절히 기다리는 그 사람을 만났을 때의 기쁨에 대한 부푼 희망과 기대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단어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아직 오직 않은, 그래서 완성되지 못한 무엇을 가리키고 있다는 점에서 그 불완전성으로 인한 실망과 불안 역시 불러일으키는 단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같은 면에서 아직 오지 않은, 그러나 언젠가 꼭 오실 메시아 주님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을 기다리는 우리의 마음가짐이 어떠해야하는지를 오늘 복음의 말씀이 잘 일러주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 말씀은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열 처녀의 비유 말씀입니다. 슬기로운 처녀와 어리석은 처녀로 극명하게 대립되는 두 부류의 처녀들은 함께 모여 저마다 각자의 등을 들고 이제 곧 올 신랑을 맞으러 나갑니다. 그 이후의 이야기는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어리석은 처녀들은 그녀들을 수식하는 그 형용사가 잘 일러주고 있는바 그대로 등을 밝힐 기름을 충분히 준비하지 못해 정작 신랑이 오는 그 중차대한 순간, 기름을 챙기러 자리를 떠나고 그 사이 돌아온 신랑들은 매정하게 문을 걸어 잠그고 그녀들을 맞아주지 않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등을 밝힐 기름을 미리 충분히 준비한 슬기로운 처녀들과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라는 안일한 마음으로 기름을 미리 준비하지 않아 낭패를 넘어 신랑으로부터 소박을 맞게 되는 어리석은 처녀들의 이 비유 말씀은 깨어 준비하고 있어야 함을, 그리고 미리 완벽하게 준비되어 있어야 함을 이야기하는 예수님의 비유 말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는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비유 말씀에,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비유의 핵심 메시지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오늘 이 복음 말씀을 대하며 보다 자세히 살펴보아야 할 점은 따로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오기로 약속된 신랑이 오는 시기가 점점 늦어지자 기다림에 지쳐 잠들어 있던 이 처녀들에게 들린 다음의 외침의 말입니다. 그녀들이 모두 졸다가 잠이 들어 있던 한밤 중, 어디선가 이렇게 외치는 소리가 들립니다.
“신랑이 온다. 신랑을 맞으러 나가라.”(마태 25,6)
도대체 누가 이 말을 했던 것일까요? 신랑을 기다리던 처녀들도 졸음을 이기지 못해 잠든 그 한밤중에, 깨어 있는 채로 신랑이 오는 것을 지켜보고 있던 이 사람, 그래서 자고 있는 처녀들을 깨워 신랑을 맞으러 나가라고 명령하는 이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요? 이 의문은 조금 더 확장되어, 그렇다면 잠을 깨운 그 사람은 대체 왜 어리석은 처녀들의 기름이 모자라는 상황을 알고서도 미리 그녀들을 준비시키지 않았던 것일까? 깨어 있던 상태로 신랑이 오는 순간을 미리 알고 있었다면, 그래서 자고 있던 처녀들을 깨워 신랑을 맞이하도록 준비시킨 그 사람이라면, 왜 미리 어리석은 처녀들의 기름이 떨어진 상황에 알맞게 대처할 수 있도록 조치해 주지 않았을까? 저는 오늘 복음의 말씀을 대하면서 이 외침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그리고 그 주인공은 왜 처녀들을 깨우기만 할 뿐, 그녀들이 합당한 준비를 하도록 모든 준비를 도와주지 않았는지, 그 점이 무척이나 궁금하게 느껴졌습니다.
어찌 보면 엉뚱하기 이를 데 없는 이 의문과 질문에 대한 해답을 저는 오늘 제 1 독서의 지혜서의 말씀 안에서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오늘 제 1 독서의 지혜서의 말씀은 지혜의 특성을 설명하며 지혜가 어떠한지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지혜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지혜는 바래지 않고 늘 빛이 나서 그를 사랑하는 이들은 쉽게 알아보고 그를 찾는 이들은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지혜는 자기를 갈망하는 이들에게 미리 다가가 자기를 알아보게 해 준다.”(지혜 6,12-13)
지혜는 찾기 어려운 무엇이 아닌, 우리 바로 곁에 있어 그것을 찾는 이들에게는 쉽게 발견될 수 있는 것이라고 지혜서의 저자는 설명합니다. 아니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지혜는 그 지혜를 갈망하는 이들이 그것을 찾기도 전에 그들에게 미리 다가가 자기를 알아보게 해 준다는 이 말씀은 지혜가 우리 곁에 정말 가까이 있음을, 그리고 우리가 지혜를 찾고 갈망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을 때, 이미 지혜는 우리 마음 안에 그것을 알아볼 수 있는 눈을 뜨게 해 준다는 사실을 일깨워줍니다. 지혜의 이 같은 특성을 지혜서는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설명해줍니다.
“지혜는 자기에게 맞갖은 이들을 스스로 찾아 돌아다니고 그들이 다니는 길에서 상냥하게 모습을 드러내며 그들의 모든 생각 속에서 그들을 만나 준다.”(지혜 6,16)
슬기로운 처녀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그녀들을 가리키는 이 형용사 ‘슬기롭다’는 다른 표현으로 ‘지혜롭다’라고도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혜로운 처녀들은 어리석은 처녀들과 달리, ‘지혜’가 있어 미리 기름을 준비합니다. 신랑이 늦어질 것을 미리 예상하고 슬기로운 처녀들로 하여금 기름을 준비하도록 이끌어 준 것은 바로 그녀들에게 지혜가 있었다는 사실. 그 지혜는 바로 오늘 제 1 독서의 지혜서가 말하듯, 슬기로운 처녀들이 지혜를 갈망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곁에 이미 와 있는 지혜를 알아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를 통해 어리석은 처녀들은 알아보지 못한 지혜를 슬기로운 처녀들은 바로 그 마음의 눈으로 지혜를 알아보고, 지혜를 자신의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래지 않고 늘 빛이 나서 그를 사랑하는 이들은 누구나 쉽게 알아볼 수 있는 지혜, 그래서 지혜를 찾는 이들은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그 지혜를 알아볼 수 있는 눈을 그녀들은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랬기에 그녀들은 자신들을 깨우는 소리가 들렸을 때 그 누구보다 먼저 일어나 미리 준비한 기름으로 등을 밝히고 어둠을 환하게 밝히며 자신을 찾아온 신랑을 알아보고 그를 맞이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슬기로운 처녀들과 어리석은 처녀들의 차이는 바로 이 지혜에서 비롯되며 그 지혜는 그것을 찾고자 하는 열망, 그리고 그 지혜를 알아보는 눈, 그리고 내 곁에 이미 다가온 그 지혜를 마음속에 간직할 수 있는 성실함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영성체송의 시편의 말씀을 기억하고 마음에 새기십시오. 좋으신 주님은 우리에게 목자가 되어 주어주시는 분이시며, 착한 목자이신 주님은 우리에게 한 치의 아쉬움도 없도록 매 순간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넘치도록 베풀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목마른 우리를 마르지 않는 샘으로 채워주시고, 힘겨워 지쳐 있는 우리를 푸른 풀밭에 쉬게 해 주시는 분, 그 분이 바로 주님이신 하느님 아버지이십니다. 그리고 오늘 제 2 독서의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그분은 우리를 죽음도 이겨내는 부활에 대한 희망으로 우리에게 삶의 참된 의미와 함께 기쁨과 행복을 선사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 같은 좋으신 주님이신 하느님을 합당이 맞이하도록 준비하는 것, 오늘 복음의 예수님의 말씀처럼 깨어 준비하는 삶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언제 올지 모르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오시는 그 분을 우리 안에 합당히 모실 수 있도록 깨어 준비하는 삶, 등불을 들고 어둠을 밝히며 그 분이 오실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그리고 동시에 어둠을 밝힐 등불의 기름을 준비해야 한다는 사실, 등불을 밝힐 기름이란 다름 아닌 매일의 기도생활과 하느님 말씀을 가까이 하고 그 말씀을 마음에 새겨 말씀을 실천하는 삶입니다. 생각지고 않은 때에 오실 사람의 아들을 맞이할 합당한 준비로서 매일의 기도생활과 하느님 말씀을 읽고 실천하는 삶, 바로 그 삶이 우리 삶이라는 등불을 밝힐 기름이 되어줄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오늘 전해들은 이 하느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매일 기름을 준비하는 삶을 통해 등불을 밝히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그리하여 주님이 우리를 찾아오실 때 지혜로운 처녀들이 자신들이 미리 간직하고 있던 지혜를 통해 주님을 합당히 모신 것처럼 여러분 역시 여러분을 찾아오시는 하느님을 합당히 모시기를, 그래서 좋으신 하느님과 함께 언제나 기쁨이 넘치는 나날을 살아가시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
푸른 풀밭에 나를 쉬게 하시고, 잔잔한 물가로 나를 이끄시네.”(시편 23(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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