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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우리
하나님이시다 | 1-3 1 ①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이 부를지어다 2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 앞에 나아갈 지어다
3 ②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자시오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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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인자와
성실 | 4-5 4 ③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 지어다
5 ④ 대저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 성실하심이 대대에 미치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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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00편, 문을 통해 보좌 앞에 나갈 자가 누군가
요절 : 3절,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자시오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100편은 메시아왕국을 전망하는 신정(神政) 시(詩)의 결론부분에 해당이 됩니다. 그러므로 신정 시 전체에 대한 요약이라 할 수가 있습니다. 중심점은,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이 부를 지어다” 하고, “온 땅”을 예배에 초대하는데 있습니다.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 지어다”(4) 합니다. 너무나 합당한 귀결이라 하겠습니다.
문제는 “온 땅”, 즉 만방이 그 궁전에 들어가서 예배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여지느냐 하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핵심은 “영원한 인자와, 대대에 미칠 성실”(5)에 있습니다.
첫째 단원(1-3) 여호와는 우리 하나님이시다
둘째 단원(4-5) 영원한 주의 인자와 성실
첫째 단원(1-3) 여호와는 우리 하나님이시다
첫째 단원의 중심점은,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에 있습니다. 이는 평범한 말씀 같지만 중요한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①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이 부를 지어다”(1) 합니다.
㉠ 100편 안에는 하나님께 간구하는 기도나, 우리가 지켜야할 교훈 같은 것이 전연 없습니다. 전체가 하나님의 궁전(宮殿)에 들어가서 기쁨으로 찬양하고 감사하라는 예배에의 초청입니다. 그러면 누구들을 향하여 이러한 초청(招請)을 하고 있는가? 이스라엘이라는 벽을 뛰어넘어, “온 땅이여” 하고, 만국(萬國) 백성들을 향해서입니다.
㉡ 이는 96편에서 이미 “영광을 열방 중에 그 기이한 행적을 만민(萬民) 중에 선포할 지어다”(96:3) 라고 말씀한 바입니다. 그렇다면 이는,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엡 2:13-14) 한, 복음시대를 전망(展望)하는 예언적인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 앞에 나아갈 지어다”(2) 합니다. 이점도 이미 98편에서,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이 소리할 지어다 소리를 발하여 즐거이 노래하며 찬송할 지어다”(98:4)라고 말씀한 바입니다.
② 이처럼 예배에 초청을 한 후에,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3상) 합니다.
㉠ 여기에는 두 가지 물음이 제기 될 수가 있는데,
㉮ 첫째는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시라면,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인데, “온 땅”, 즉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해지는가 하는 점이고,
㉯ 둘째는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하는데, “여호와와, 하나님”이 같은 의미인가? 아니면 다른 의미를 전달해주고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 죄 값에 팔리어 사탄의 노예로 전락한 자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는 것은, 신구약 시대를 막론하고 “구속하여 내 백성을 삼고”(출 6:6, 딛 2:14) 하신 “구속”을 통해서만이 가능하여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라는 호칭은, “언약, 구원”과 결부되는 호칭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란 호칭은 창조(創造)와 결부가 되는 호칭인데, 창세기 1장은 전부가 “하나님”으로 되어 있습니다.
㉢ 그러니까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창 22:18) 하신 언약에 근거하여 가능하여진다는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이점이 신약의 성도들에게는 더욱 친밀하게,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마 6:6)고, 여호와 하나님이 “네 아버지시라”고 가르쳐주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마 6:30) 하시는 것입니다.
㉣ 본문에서도, “그는 우리를 지으신 자시오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3하) 합니다.
㉮ “우리를 지으신 자시오” 하는 표현에는 하나님은 창조주시오 우리는 그의 피조물이라는 뜻보다는 신정(神政) 시라는 문맥으로 볼 때에,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라”(엡 2:10)는 재창조에 더욱 무게가 실려 있다 하겠습니다. 102:18절을 보십시오. “이 일이 장래 세대를 위하여 기록되리니 창조함을 받을 백성이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하고 말씀합니다.
㉯ 그래서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왕과 백성, 목자와 양”의 관계로 묘사하는 것도 95:7에서, “대저 저는 우리 하나님이시오 우리는 기르시는 백성이며 그 손의 양이라” 하고 말씀한 바입니다.
㉰ “우리는 그의 것이니” 한 말씀도, 구약시대에는 선민 이스라엘이, “내 소유가 되겠고,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출 19:5-6) 하셨으나, 복음시대에는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벧전 2:9)이라고 말씀하십니다.
㉤ 이처럼 100편은 앞에서 진술한 신정(神政)시들을 요약해주면서 결론적으로,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이 부를 지어다”(1) 하고, 예배에 초청을 하고 있는 구조(構造)입니다.
둘째 단원(4-5) 영원한 주의 인자와 성실
둘째 단원의 중심점은 “인자와, 성실”에 있습니다. 이는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 되어주심이 어떻게 가능하여졌는가를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③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4상) 합니다.
㉠ 100편에는 도표 오른편에 표시된 대로 “그 앞에 나아갈 지어다(2), 그 문에 들어가며, 그 궁전에 들어가서”(4) 하고, “들어감”이 강조가 되어 있는데, 하나님의 존전에서 추방을 당한 아담의 후예들의 가장 절실한 소원이 무엇인가?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 뵈올꼬”(42:2) 하는 것입니다.
㉡ 그렇다면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는”(4) 것이 어떻게 가능하여지는가 하는 점입니다. 이 “들어감”의 주제를 역설(力說)을 해야만 안전할 것입니다.
㉮ 하나님께서 성막 식양을 말씀하시면서 중간을 막으라 하심은,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다”(사 59:2)는 점을 사실적(事實的)으로 보여주기 위해서였던 것입니다.
㉯ 그런데 “성령이 이로써 보이신 것은 첫 장막이 서 있을 동안(구약시대)에 성소에 들어가는 길이 아직 나타나지 아니한 것이라”(히 9:8) 합니다. 즉 짐승의 속죄제로는 열리지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길이 언제 열렸는가?
㉰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히 10:19-20) 합니다. 즉 주님께서 십자가상에서 “다 이루었다” 하고 선언하셨을 때에야 하나님의 앞으로 나아가는 길이 열렸다는 말씀입니다.
㉱ 그러면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다”는 구체적인 의미가 무엇인가?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롬 5:9) 한, “의롭다함을 얻었다”는 뜻입니다.
㉲ 성경은 죄를 범한 상태를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창 3:10) 하고, “벌거벗은” 것으로 말씀합니다. 벌거벗은 몸으로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의롭다함을 얻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벌거벗은 수치를 의의 옷으로 가려주셨다는 뜻인 것입니다.
㉳ 그렇다면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4상) 하는 것은, 벌거벗은 상태로가 아니라 의의 옷을 입고 들어간다는 것이 됩니다. 이 영광스러움을 아시겠습니까? 그래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 지어다”(4하) 하는 것입니다.
④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이 부를지어다”(1) 하고 시작한 100편은, “대저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 인자(仁慈)하심이 영원하고 그 성실(誠實)하심이 대대에 미치리로다”(5) 하고, 앞에서 여러 번 강조한 바 있는, “인자(仁慈)와, 성실”(誠實)로 마치고 있습니다. 여기에 100편의 중심점이 있는 것입니다.
㉠ 이는 하나님께서 나 같은 죄인에게 왜 이렇게 행해주셨는가 하는 이유를 말씀함인데,
㉮ 그것은 여호와의 “인자하심”(仁慈), 즉 우리를 사랑하시고 불쌍히 여기심과,
㉯ “성실(誠實)하심”, 즉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게 언약하신 바를 지키시기 위해서라는 말씀입니다.
㉰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변함이 없으신 영원한 것이기에 “대대에 미치리로다” 하는 것입니다.
㉡ 그러니까 하나님 우리 아버지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은 오늘에도 임하고,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23:6), 즉 영원토록 임한다는 말씀입니다.
㉢ 여호와의 “성실하심”은, 하나 남은 약속,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 14:3) 하신 재림의 약속도 반드시 지켜주실 것을 확신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형제여, 이 “들어감”이, 이 땅에서 나그네로 살아가는 동안에는, 기도를 통해서 들어갑니다. 그리고 100편에서 초청하는 예배를 통해서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원한 주의 인자와 성실”이요,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이 부를 지어다” 하는 예배에의 초청입니다.
적용 :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려 나아갈 때에 100편에서 상고한 바를 묵상하며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본문의 예배초청과 오늘 우리의 예배드림이 어떻게 다른가와, 그 원인을 깊이 성찰해야 할 것입니다.
묵상
㉠ 예배에 누구들을 초청하고 있으며, 이것이 어떻게 가능하여지는가에 대해서,
㉡ “들어감”의 주제에 대한 중요성과 영광스러움에 대해서,
㉢ “기뻐하며, 감사하며, 찬양하라”는 당위성에 대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