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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경 : 잠 18:14절
제 목 : 상한 마음을 치료하는 방법
일 시 : 2018. 8. 29.
잠18:14/사람의 심령은 그의 병을 능히 이기려니와 심령이 상하면 그것을 누가 일으키겠느냐/ 사람의 심령은 그의 병을 능히 이긴다고 했습니다. 자신의 병을 고칠 수 있는 좋은 방법은 건강한 마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마음이 병들지 않으면 어떤 병이든지 이기고 고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병들면 육신의 병을 고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질병의 포로가 됩니다.
심령이란 루아흐라고 하는데 바람, 호흡, 태풍, 생명, 영, 마음이라는 뜻입니다. 본문에는 심령이라는 단어가 두 번 나옵니다. 앞에 심령은 남성형으로 사용되어서 강하고 건강한 마음을 의미하고 뒤에 나오는 심령은 여성형으로 사용되어서 나약하고 의기 소침한 마음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마음속에는 영이 감추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루아흐라는 단어는 마음이라고도 하고 영이라고도 하고 정신력이라고 합니다. 영과 마음은 유기적으로 연합하여 하나로 존재하기 때문에 둘을 서로 분리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문제는 심령이 상하는 것입니다. 상하다란 나카라고 하는데 맞은, 즉(상징적으로)고통받은, 상한, 상처를 입은 이라는 뜻입니다. 마음이 외부의 어떤 존재에 의해서 얻어맞아서 상처를 입었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내 마음이 상처를 입게 되면 고통을 받게 되고 고통받고 상한 마음은 육체의 병을 고치기에 역부족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이 강해야 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마음이 상하게 해서는 안됩니다.
1. 마음을 상하게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성경에는 사람의 마음이 상하는 원인이 두 가지임을 말씀합니다.
1) 첫 번째는 소망이 더디 이루어질 때 마음이 상한다고 했습니다.
잠13:12/소망이 더디 이루어지면 그것이 마음을 상하게 하거니와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은 곧 생명 나무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보시면 언제 마음이 상한다고 했습니까? 소망이 더디 이루어지면 마음을 상하게 합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즉 자신의 꿈과 비전이 좌절될 때 많은 상처를 받습니다. 자신의 꿈이 계속해서 좌절되고 꺾이게 되면 어느 누군들 세상 살맛이 나겠습니까? 그래서 꿈이 이루어지지 않음으로 인해서 상처받는 사람들이 주로 선택하는 방법은 삶을 포기하거나 아니면 낙심하여 인생을 함부로 탕진해 버리는 것입니다. 인생을 함부로 사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에는 너무나 고귀하고 아까운 인생입니다.
때문에 꿈이 이루어지지 않음으로 상처받는 사람들은 꿈이 이루어지지 않는 원인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잠13:12절 후반 절에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은 곧 생명 나무니라고 했습니다. 생명나무는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우리 주 예수님이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지게 합니다.
그러니까 꿈이 이루어지지 않는 사람들은 예수님과의 관계가 잘못되었다는 뜻입니다. 꿈을 이루어 주시는 예수님과 적대관계에 있든지, 예수님을 오해하거나 예수님을 무시한다면 예수님은 우리의 소원을 이루어 주실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할 때 하나님이 우리의 소원을 이루어 주십니까? 여호와를 기뻐할 때입니다. 너무나 잘 아는 말씀입니다.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라고 했습니다. 여호와를 기뻐한다는 것은 곧 하나님과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알 때 가능합니다. 나를 지으시고 나를 구원하신 사랑의 하나님을 깊이 알게 될 때 드디어 하나님을 기뻐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얼마나 크고 놀라운 일을 행하셨는지 알고 기뻐할 때 하나님은 나의 소원을 이루어 주십니다. 아니 하나님께서 소원을 이루어 주시지 않아도 하나님을 제대로 아는 순간 저절로 소원하는 것이 이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하나님께서 자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십자가와 부활로 완성하신 구원의 축복을 알게 된다면 예수님이 십자가와 부활로 완성하신 그 놀랍고 위대한 복들을 나의 것으로 만들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저는 어렸을 때 산을 좋아해서 혼자 산에 올라가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마을 뒷산에 잠시 산책을 갔는데 너무나 탐스러운 산딸기가 주렁주렁 달려 있다면 그것을 보고 따먹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것처럼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셔서 내가 받을 저주는 다 없애 주시고 성경에 소개된 모든 복들을 받을 수 있도록 준비해 주셨다면 그 복을 받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과 그분이 하신 일 즉 예수님을 보내셔서 우리를 구원해 주시고 아브라함의 복을 받게 해 주신 일을 알고 기뻐하면 저절로 우리의 소원이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소원이 더디 이루어짐으로 우리의 심령이 상하게 된다면 다음과 같은 문제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1) 먼저 여호와를 기뻐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발견하고 그것을 제거해야 합니다. 지난 시간에 하나님을 기뻐하지 못하는 데는 원인이 있다고 했습니다. 첫 번째 원인은 하나님을 몰라서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서 행하신 일들이 무엇인지 몰라서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위해서 행하신 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나로 하여금 복을 받게 하기 위해서 행하신 일들, 예수님을 통해서 행하신 일들을 알게 되면 뛸 듯이 기뻐하게 되고 춤을 추면서 기뻐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에 하나님을 기뻐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을 모릅니까?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왜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하나님 대신에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요일2:15-16/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했습니다.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원수 마귀는 사람들에게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라는 미끼를 던져서 그것을 바라보느라고 하나님과 그분의 사랑을 바라보지 못하게 합니다.
마귀가 아담과 하와를 유혹한 것을 보세요. 에덴동산에 있는 온갖 종류의 모든 과일들을 그들에게 다 주셨습니다.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만은 따 먹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것을 먹으면 죽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뱀이 하와에게 와서 뭐라고 유혹합니까? 선악과를 따 먹으면 죽지 않는다 오히려 눈이 밝아져 하나님처럼 되어서 선과 악을 알게 된다라고 유혹했습니다. 마귀의 유혹을 받는 순간 하와의 눈에는 에덴동산을 창설하시고 거기에 온갖 아름답고 좋을 것을 만드신 전능하신 하나님은 온데 간데 없고 오직 선악과만 보입니다. 모든 것들이 다 하나님께로부터 왔고, 앞으로도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시는데 그 하나님은 보이지 않고 오직 선악과만 보입니다.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탐스럽게 보였습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 바로 선악과와 같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먹음직스럽고 보암직하고 탐스러운 과일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창조주 하나님을 버리고 선악과라는 세상을 선택하고 세상을 사랑하게 됩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됩니까? 자신이 원하는 것은 다 빼앗기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마귀의 유혹으로 세상을 사랑하고 세상을 좋아하고 거기에 마음이 빼앗겼기 때문에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또한 하나님과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예비해 놓으신 복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원수 마귀는 우리가 받은 구원을 빼앗을 수 없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구원을 빼앗지 못하는 대신에 받은 복을 빼앗아 갑니다. 세상을 사랑하도록 유혹해서 말입니다. 2) 두 번째로 소원이 이루어지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영의 정체를 발견하고 그것을 물리쳐야 합니다. 소원이 이루어지지 못하게 방해하는 것은 주로 세 가지입니다. 1) 먼저 불신앙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사가랴는 그렇게 열심히 평생을 기도해 놓고도 하나님이 자신의 기도를 응답하신다는 약속을 믿지 않았습니다. 불신앙을 물리치시기 바랍니다. 2) 두 번째는 조급함입니다. 소원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있는데 그것을 기다리지 못하고 자신의 방법으로 이루려고 조급함을 물리쳐야 합니다. 아브라함처럼 말입니다. 믿음으로 기다리지 못해서 이삭이 아니라 이스마엘을 낳았습니다. 3) 세 번째 나를 준비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복을 받으려면 그릇을 준비해야 합니다. 하다못해 옥수수 뻥튀기라도 받으려면 크고 깨끗한 그릇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처럼 내가 복을 받으려면 나의 그릇이 준비되어야 합니다. 내 안에 있는 더럽고 추하고 악한 것들을 다 버리고 대신에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으로 충만하게 채워져야 합니다.
그런데 어리석은 사람들은 하나님께 귀하고 크게 쓰임 받기를 원하면서도 자신을 준비하지 않습니다. 마음속에 있어서는 안되는 온갖 더럽고 추하고 악한 것들로 가득차 있고 있어야 할 말씀과 성령의 은사들은 없습니다. 그러니까 쓰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원수 마귀는 성도들을 유혹하되 자신을 준비하지 못하도록 허송세월을 보내도록 유혹합니다. 잘못된 예언자를 만나서 거대한 꿈과 비전을 받게 합니다. 큰 인물이고 위대하게 쓰임 받는다고 예언을 해 줍니다. 그렇게 해서 마음만 교만하게 만들고 정작 자신을 큰 그릇으로 준비하는 일에 대해서는 하나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해서 허송세월을 보내게 합니다. 그러나 참된 예언자는 분명한 비전을 제시하면서 동시에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도 예언해줍니다.
하나님께서 아무리 크고 위대하게 쓰고 싶어도 본인이 준비되지 않으면 쓰실 수가 없습니다. 뼈를 깎는 연단과 고난을 통해서 오로지 기도하고 말씀을 읽고 연구하여 말씀으로 충만하게 채워야 합니다. 말씀과 능력과 아름다운 인격으로 준비되면 하나님은 결코 버리지 않고 사용하십니다. 그렇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두 번째로 근심이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마음속에 있는 근심이 하는 역할을 세 가지입니다. 잠12:25/근심이 사람의 마음에 있으면 그것으로 번뇌하게 되나.../라고 했습니다. 근심이 사람의 마음에 있으면 번뇌하게 됩니다. 두 번째로 잠15:13/...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마음이 번뇌하니까 심령이 상하게 됩니다. 그래서 잠17:22/...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마음으로 근심하며 번뇌하게 되면 뼈가 마르게 됩니다. 뼈가 마른다는 것은 골수로 윤택하게 한다는 말씀과는 정반대가 됩니다. 윤택하게 한다는 말은 뼈가 촉촉하다 물기가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뼈가 마른다는 것은 뼈에 물기가 없어집니다. 여기에서 골다공증이 생기고 각종 뼈 질환과 관절염이 생깁니다.
그리고 모든 질병의 원인은 뼈가 마르기 때문에 오는 것입니다. 특히 연세 드신 분들이 골다공증과 관절이 아픈 이유는 뼈가 말라서 그렇습니다. 뼈 속이 텅텅 비어서 그렇습니다. 그 원인은 번뇌하고 근심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잠언에 나오는 근심이라는 언어를 찾아보면 근심하게 되는 원인이 세 가지입니다. 잠17:22/...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고 했으며, 잠15:13/...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고 했으며,잠12:25/근심이 사람의 마음에 있으면 그것으로 번뇌하게 되나.../고 했습니다. 잠17:22절에 심령의 근심이라고 했는데 근심이란 나카라고 하는데 맞은, 즉(상징적으로)고통받은, 상한, 상처를 입은 이라는 뜻입니다. 상하다라는 단어와 동일합니다. 심령의 근심이란 마음이 상처를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잠15:13절의 근심이란 아쩨베트라고 하는데 우상, 고통, 슬픔, 상처라는 뜻입니다. 잠12:25절에 근심이란 데아가라고 하는데 걱정, 두려움, 답답함, 슬픔이라는 뜻입니다. 잠언에서 근심이라는 단어가 주로 세 가지로 사용되었는데 이것을 보면 구약의 유대인들은 사람의 마음에 근심은 주로 세 가지 때문에 발생한다고 생각했습니다. 1) 첫 번째는 마음에 상처를 받을 때이고, 2) 두 번째는 우상숭배를 통하여 고통받고 슬픔을 당할 때이고, 3) 세 번째는 불신앙에 의한 두려움과 슬픔이 근심을 준다는 것입니다. 다시 정리합니다. 마음에 상처를 받을 때 근심하게 되고 우상숭배를 통하여 고통받고 슬픔을 당할 때 그리고 불신앙에 의한 두려움 때에 근심이 온다고 했습니다. 근심의 세 가지 원인은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부터 오든지 귀신을 숭배함으로 오든지 아니면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불신앙에서 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근심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 아니고 또한 하나님과 바른 관계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만을 앙망하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하나님만을 신뢰해야 합니다. 소망이나 신뢰나 기대는 모두가 하나님을 향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을 소망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마음을 창조주 하나님이 아닌 사람이나 피조물에게 돌리게 될 때 거기에서부터 근심이 생기게 됩니다.
2. 이제 정반대로 무엇이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합니까?
잠17:22/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고 했습니다.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마음을 즐겁게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잠12:25/근심이 사람의 마음에 있으면 그것으로 번뇌하게 되나 선한 말은 그것을 즐겁게 하느니라/고 했으며, 잠16:24/선한 말은 꿀송이 같아서 마음에 달고 뼈에 양약이 되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선한 말은 마음을 즐겁게 한다고 했고, 선한 말은 꿀송이 같아서 마음에 달고 뼈에 양약이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선한 말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은 다 선한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선한 말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예수님 십자가와 부활로 완성하신 구원의 축복 속에서 내가 받아 누리고 있는 복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요9:30절에서 다 이루었다(델레오)라고 했습니다. 무엇을 다 이루었다는 말씀입니까? 율법과 선지자를 다 이루었다고 했습니다. 구약성경은 율법과 선지자들이 예언한 예언서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율법을 지키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받게 될 율법의 저주를 끝내 주시고 또한 구약의 선지자들이 예언했던 메시야가 오셔서 완성하실 구원의 축복을 완성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더 이상 저주는 없습니다.
저주가 무엇입니까? ① 실패입니다. 하는 일마다 안되는 것이 저주입니다. ② 두 번째 질병입니다. 각종 질병은 저주의 결과로 오는 것입니다. ③ 세 번째는 가난입니다. 하는 일마다 실패하고 질병에 걸리면 가난하게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실패와 질병과 가난을 끝내 주셨습니다.
3. 그러므로 치료자이신 부활의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출15:26/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병을 주시는 분이 아니라 병을 치료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동안에 각종 질병을 고쳐 주시고, 죽은 자를 살려 주시고, 귀신 들린 자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어 주셨습니다. 그렇게 하심으로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에게 참된 자유를 주셨습니다.
마음의 근심은 마음이 상처를 받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왜 마음이 상처를 받습니까? 누가 상처를 줍니까? 바로 사람입니다. 사람을 기대하지 마세요. 남편과 아내를 기대하지 마세요. 부모와 자녀를 기대하지 마세요. 다만 그들을 사랑하고 섬기십시오. 우리의 모든 기대는 오직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을 기대하고 예수님을 기대하세요. 그러면 실망하지 않습니다. 사람을 기대하니까 실망하고 상처받고 싸우고 다투는 것입니다.
왜 근심이 찾아옵니까? 우상숭배를 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귀신을 섬기는 것입니다. 우상숭배를 하게 되면 고통과 슬픔을 당하고 상처를 받습니다. 불신앙이 두려움과 슬픔과 답답함을 주고 근심하게 만듭니다. 이 모두가 하나님 아닌 것을 기대하고 하나님 아닌 것을 숭배하고 믿어야 할 하나님과 그분의 약속을 믿지 않기 때문에 찾아오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과 그분의 약속의 말씀을 떠나면 반드시 근심하게 되어 있습니다. 상처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상처받고 시험받는 사람들 그래서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은 전부가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지 않고 사람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인간 목사를 지나치게 믿고 의지하다가 이용을 당하거나 실망하게 되고, 장로님과 권사님을 지나치게 믿고 의지하다가 돈을 떼이거나 이용을 당하여 마음에 상처를 받고, 어느 성도님들을 너무 지나치게 믿고 따르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좋지 못한 모습만을 바라보게 되고 기대했던 모든 것이 다 무너지게 되어서 시험을 받고 상처를 받아서 교회를 떠나거나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모두가 하나님 아닌 것을 믿고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약점이 있습니다. 부족한 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바라보면 반드시 실망하고 낙심하고 상처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는 방법은 성경말씀을 읽고 연구하고 암송해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암송하지 않고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100% 사람을 의지하거나 귀신을 의지한다고 보면 됩니다. 성경말씀과 설교를 읽으면 하나님이 보이고 예수님이 보입니다. 그리고 말씀의 약속을 붙잡고 기도하면 하나님과 예수님이 보입니다. 그렇게 부활의 예수님을 만나게 되면 그 다음부터는 사람을 의지하지 않게 되고, 사람에게서 무엇을 기대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에게서 상처를 받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과 예수님만을 믿고 의지하게 되고 사람들은 내가 사랑하고 섬겨야 할 대상으로 보이게 됩니다. 잃어버린 영혼으로 보이게 됩니다. 상처받은 마음을 치료받는 방법은 예수님께 돌아와서 예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 길은 말씀을 읽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첫댓글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