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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 미제라블] Chapter 3 마리우스
또다시(2)
종드레트는 말을 하느라고 자기를 관찰하고 있는 하얀 신사의 시선을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얀 신사의 시선은 종드레트에게, 종드레트의 시선은 문에 집중되어 있었다. 마리우스의 긴장된 시선은 그들 둘을 번갈아 들여다보고 있었다. 하얀 신사는 ‘이 사나이는 바보일까?’ 하고 자문하는 것 같았다. 종드레트는 애처롭게 여러 가지로 음성을 바꾸어 가며 몇 번이나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강물에 빠져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어제도 자살하려고 오스테를리츠 다리(Pont d’Austerlitz)의 계단을 셋이나 내려갔었습니다.”
일순 종드레트의 흐릿한 눈동자가 무섭게 빛났다. 이 작은 사내가 벌떡 일어서면서 하얀 신사 쪽으로 한 걸음 다가서더니 천둥 같은 목소리로 우악스럽게 부르짖었다.
“그 따위는 문제가 아니야! 너는 나를 기억하겠지?”
별안간 방문이 갑자기 열리며 푸른 작업복에 검은 종이 마스크를 한 사내 셋이 나타났다. 몸이 마른 첫 번째 사내는 쇠가 달린 긴 막대를 가지고 있었고 두 번째는 덩치가 큰 사내로서 도살장에서 쓰는 도끼를 들고 있었다. 세 번째는 어깨가 축 처진 사내로 첫 번째 사내보다는 덜 말랐지만 두 번째 사내처럼 건강해 보이지는 않았다. 그는 교도소 정면에서나 훔쳐 왔음직한 큰 자물쇠를 가지고 있었다.
종트레트는 이 사내들의 도착을 기다리고 있었던 듯했다. 하얀 신사는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그는 자신이 어떤 궁지에 빠졌는가를 아는 듯 방 안을 둘러보았다. 그는 탁자를 임시 방패로 삼았다. 지금까지 사람 좋은 노인으로 보였던 그가 어느덧 날랜 투사로 변해 놀랍고도 무서운 자세로 큰 주먹을 의자에 올려놓았다.
종드레트가 난로 일을 하는 사람들이라 소개한 사내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팔을 드러내 놓고 있던 그들 셋은 각각 커다란 가위와 망치, 장도리를 들고 아무 말 없이 문을 막아섰다. 나이 든 사내는 여전히 침대에 걸터앉아 있었으나 감았던 눈을 뜸으로써 행동하겠다는 의사를 나타냈다. 그 곁에 종드레트 부인이 앉아 있었다.
마리우스는 자기가 나설 순간이 왔다고 생각했다. 그는 오른쪽 손을 복도 천장을 향해 내밀고 총을 쏠 태세를 갖추었다. 종드레트는 막대를 가진 사내와 이야기가 끝나자 하얀 신사를 향해 돌아섰다.
종드레트는 감정을 억누르는 듯한 기분 나쁜 웃음을 띠며 질문을 했다.
“나를 모르겠나?”
“전혀 모르겠는걸.”
종드레트는 탁자 가까이로 다가왔다. 그자는 촛불 위로 몸을 구부리고 팔짱을 끼었다. 그자가 흉악하게 생긴 턱을 하얀 신사의 온화한 얼굴에 바짝 들이댔으나, 하얀 신사는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종드레트는 금세라도 달려들 듯한 야수의 모습 그대로 소리쳤다.
“내 이름은 파방투가 아니야! 종드레트도 아니야! 나는 테나르디에다! 몽페르메유의 여인숙 주인! 이제 알겠나?”
약간의 동요가 하얀 신사의 얼굴을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아무도 이를 깨닫지 못했다. 그는 언성을 높이지도 떨지도 않고 평소의 침착한 음성 그대로 대답했다.
“전혀 모르겠는데.”
마리우스에게는 그 말이 들리지 않았다. 이때 어둠 속에서 마리우스를 본 사람이 있다면, 그 망연하고 처절한 형상을 살필 수 있었을 것이다. 종드레트가 “나는 테나르디에다”라고 했을 때 마리우스는 온 몸을 떨며 마치 칼날이 심장에 닿은 듯이 몸을 벽에 바짝 갖다 댔다. 그리고 신호로 총을 쏘려던 오른팔을 천천히 내렸다. 종드레트가 “이제 알겠나? 테나르디에란 말이다”라는 말을 거듭했을 때 마리우스의 맥 빠진 손에서 하마터면 권총도 떨어질 뻔했다.
종드레트가 정체를 밝힌 뒤에도 하얀 신사는 동요하지 않았다. 대신 그자의 말은 마리우스의 정신을 뒤흔들어 놓았다. 그 이름이야말로 아버지의 유언 속에 기록돼 있던 것으로, 늘 마리우스가 마음속에 품고 있던 바로 그 이름이었던 것이다.
‘하사관이 나를 구해 주었다. 그 사나이의 이름은 테나르디에라 한다. 만일 내 자식이 테나르디에를 만날 기회가 있다면 친절히 대해 주기 바란다.’
라는 신성한 명령에 따라 가슴속 깊이 그 이름을 늘 간직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리우스는 그것을 아버지의 이름과 함께 숭배하고 있었다. 그런데 목하 저 인간이 테나르디에라니! 그토록 헛되이 세월을 허비하며 찾아다녔던 몽페르메유의 여관 주인이라니? 아버지의 은인이 악한이었다니? 마리우스가 한 몸을 바치겠다고 열망한 사나이가 저토록 끔찍한 인간이었다니!
그는 몸을 떨고 있었다. 모든 것이 그 손에 달려 있었다. 어떻게 할 것인가? 어느 길을 택할 것인가? 아버지의 유언을 배반할 것인가 아니면 죄악이 범해지는 일을 외면할 것인가? 한편에서는 아버지를 위해 애원하는 그의 ‘위르쉴라’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고, 다른 한편에서는 테나르디에를 부탁하는 대령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마리우스는 금세 정신이 나갈 것만 같았다. 무릎에서도 자꾸 힘이 빠졌다.
한편 테나르디에는 마치 격분한 듯이 또는 승리에 취한 듯이 탁자 앞에서 서성거렸다. 그러다가 무서운 얼굴로 하얀 신사를 돌아보며 외쳤다.
“구워 먹을까, 삶아 먹을까! 튀겨 먹을까, 통째로 먹을까!”
그자는 흥분을 가누지 못하고 다시 서성대기 시작했다. 그자가 소리쳤다.
“아아! 이제야 만났군! 겨우 찾아냈어, 자선가 선생! 누더기를 걸친 백만장자 양반! 인형을 주신 선생님. 흥, 내가 모를 줄 알고? 8년 전 1823년의 크리스마스 저녁에 우리 집에 나타난 것이 네 놈이 아니었단 말이냐? 나한테서 팡틴이 딸, 저 종달새를 빼앗아 간 녀석이 네놈이 아니란 말이냐? 오늘 아침 여기에 온 모양대로 헌 옷 보따리를 들고! 여보 마누라! 남의 집에 털양말을 꾸려 가지고 다니는 게 이 녀석의 버릇인 모양인가! 자비심 깊은 영감이, 백만장자인 영감이 잡화상인 모양이지? 가난뱅이에게 제 가게의 부스러기나 갖다 주다니 대단한 녀석이야! 나를 모르다니, 그 따위 연극을 누가 믿어? 하지만 나는 네놈을 잘 알고 있어! 네놈이 여기에 코빼기를 내밀 때 나는 금방 알아보았어. 여인숙이라 깔보고 거지처럼 누더기를 입고 들어와서는 선심을 쓰며 우리 보물단지를 빼앗아 갔지.
어디 그뿐인가. 숲 속에서는 날 협박까지 했지. 그래 놓고 사람이 곤궁에 빠지니까, 헐렁한 외투에 병원에서나 굴러다니는 담요를 던져 주고 이것으로 됐다고 생각하다니! 일이란 그렇게 엿장수 맘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이제 알게 될 것이다. 이 빌어먹을 늙은이, 이 유괴범!”
테나르디에는 말을 끊었다. 숨이 찼던 것이다. 그자의 좁다란 가슴은 대장간의 풀무처럼 요동쳤다. 하얀 신사는 상대방의 말을 가로막지는 않았으나 이야기가 끊어지자 이렇게 말했다.
“나는 당신이 무슨 말을 하는 지 알 수 없오. 아마 오해하고 있는 모양이오. 나는 아주 가난한 사람이오. 백만장자라니 당치도 않은 말이오. 나는 당신을 알지 못하오. 아마 사람을 잘못 본 모양이오.”
테나르디에가 뇌까렸다.
“흥. 웃기는군! 농담도 작작하란 말이다! 영감, 그래 나를 모른다고? 내가 누군지 모른다고?”
하얀 신사는 힘차고도 정중한 어조로 말했다.
“실례지만, 당신은 불한당인 모양이군.”
추한 자는 약점을 가지고 있고 악한은 격하기가 쉬운 법이다. 불한당이란 말을 듣자 테나르디에 부인은 침대에서 뛰어내리고 남자는 망가져라 하고 의자를 꼭 쥐었다. 그자가 아내에게 말했다.
“당신은 가만히 있어!”
그자는 하얀 신사를 향해 소리쳤다.
“불한당이라고? 너 같은 부자 놈들은 우리를 그렇게 부르지. 나도 알고 있어. 과연 나는 파산해서 올 데 갈 데 없게 되었으니까. 먹을 것도 없고 돈도 한 푼 없어. 그래, 불한당이다! 우리는 사흘 동안이나 굶었어. 그래서 불한당이 됐다! 그런데 네놈들은 발을 따뜻하게 감싸고 있어. 구둣방의 고급 신을 신고 대주교나 되는 것처럼 따뜻하게 외투를 입고 있어. 문지기가 달린 이층집에 살면서 송로 버섯을 먹고 정월에는 한 묶음에 40프랑이나 하는 아스파라거스를 먹고 있어. 그리고는 우리 동굴로, 그럼 동굴이고 말고. 우리 동굴로 찾아와서는 우리를 불한당이라 부르는 거야! 하지만 우리는 네놈들을 먹어 줄 테다! 안됐지만 핥아 줄 테다! 백만장자 영감, 잘 기억해둬. 우리도 어엿한 인간이야. 영업면허도 있었고 선거권도 있었어. 그런데 너는 아마도 그렇지 못할걸!”
여기서 테나르디에는 문 곁에 있던 사내에게 한 걸음 다가가 몸을 부르르 떨며 내뱉었다.
“마치 신기료 장수에게 하듯이 지껄이는군!”
그자는 더욱 기고만장하여 하얀 신사에게 말했다.
“이것도 기억해 줘, 자선가 양반. 나는 수상한 사람이 아니야. 나라는 사람은 이름도 밝히지 않고 남의 집에 아이를 유괴하러 오는 그런 인간이 아니란 말이야! 나는 프랑스 군인이었어. 훈장을 받아도 될 만한 사람이야! 이래뵈도 나는 워털루에서 싸웠어! 그리고 싸움터에서는 백작인가 뭔가 하는 장군의 목숨도 구하고 말이야! 그 사람이 제 이름을 말했지만 너무 목소리가 약해 알아듣지는 못했지. 그저 ‘고맙소’하는 말만 들었을 뿐이야. 그런 인사보다는 이름을 더 듣고 싶었는데. 그래야 나중에 찾아내기 쉬울 테니까.
저기 있는 그림은 브뤼셀에서 다비드가 그린 것인데 말이야, 무엇이 그려져 있는지 아나? 바로 나야. 다비드는 내 무훈을 영구히 기념하고 싶었던 거야. 내가 그 장군을 엎고 비 오듯 하는 총탄 속을 뚫고 나가는 장면이야. 나는 그런 사람이다 이 말씀이야. 그렇다고 나는 아무 대가도 받지 않았어. 그 장군에게 전혀 남이나 다름없는 사람이었지. 그런데도 나는 위험을 무릅쓰고 살려 준 거야. 그 증명서는 호주머니에 가득 차 있어! 나는 워털루의 용사란 말이다, 이 빌어먹을 양반아! 이제 얘기를 다 했으니 결론을 맺지. 나는 돈이 필요해, 큰 돈이. 막대한 돈이 필요하단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너를 없애 버리겠어, 제기랄!”
마리우스는 마음의 갈등을 어느 정도 억제하며 가만히 듣고 있었다. 이제 의혹의 마지막 구름까지 걷혀 있었다. 그자는 분명 유언장에 있는 테나르디에 그 사람이었다. 마리우스는 자기 아버지한테 돌려지는 비난을 어쩔 수 없이 시인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니 소름이 끼쳤다. 그는 그럴수록 어찌해야 좋을지 몰랐다.
테나르디에는 숨을 돌리고 나서 핏발 선 시선을 하얀 신사에게 보내며 나직하게 말했다.
“이제부터 본때를 보여 주려는데, 그전에 할 말은 없나?”
하얀 신사는 잠자코 있었다. 이 침묵을 뚫고 복도에서 거칠고도 기분 나쁜 음성이 들려왔다.
“여보게, 장작 팰 일이 있으면 내가 하겠네!”
그것은 도끼를 들고 있던 사내가 농담 삼아 하는 말이었다. 이와 동시에 머리가 덥수룩하고 흙빛 얼굴을 한 사나이가 기분 나쁜 웃음을 띠며 문에 나타났다. 그자는 커다란 얼굴에 짐승의 어금니 같은 송곳니를 드러내고 있었다. 도끼를 든 사내였다.
테나르디에가 소리쳤다.
“왜 마스크를 벗은 거야?”
사내가 대답했다.
“웃으려고.”
하얀 신사는 얼마 전부터 테나르디에의 일거수일투족을 눈여겨보고 있는 듯 했다. 테나르디에는 자신의 분노에 흥분하여 방 안을 서성거리고 있었다. 문을 지키는 자도 있고 이쪽은 무장을 했지만, 상대는 맨손이었다. 아내를 포함하면 9대 1이었다. 그러므로 테나르디에는 안심하고 있었다. 도끼를 든 사내를 꾸짖으며 하얀 신사에게 등을 돌리고 있었다.
하얀 신사는 그 기회를 포착했다. 발로 의자를 걷어차고 손으로 탁자를 밀어뜨렸다. 그리고 테나르디에가 뒤돌아볼 겨를도 없이 창가로 달려간 다음 창문을 열고 창턱으로 기어올랐다.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이었다. 그의 몸이 반쯤 밖으로 나갔을 대 여섯 개의 억센 손이 그를 끌어 내렸다. 그에게 달려든 것은 세 명의 난로 일을 하는 사람이었다. 테나르디에 부인도 그의 머리를 붙들었다.
이 같은 소동이 일자 다른 사내들도 복도에서 달려왔다. 침대 위에 있던 술 취한 듯한 노인도 도로 공사 인부가 쓰는 망치를 들고 다가왔다. 더러워진 얼굴을 촛불에 비추고 있는 그중의 한 사람은, 비록 얼굴에 검댕이를 묻히고 있었으나 프랭타니에 또는 비그르나유란 별명을 가진 팡쇼임을 마리우스는 알고 있었다. 이 사내는 철봉 양쪽 끝에 납덩어리를 단 곤봉 같은 것을 하얀 신사의 머리 위로 쳐들고 있었다.
마리우스는 이 광경을 더 이상 그대로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그는 마음속으로 말했다.
‘아버지 용서하세요.’
그는 손가락으로 권총의 방아쇠를 찾았다. 그리하여 막 발포하려는 순간 테나르디에가 소리쳤다.
“해치면 안 돼!”
희생자의 필사적인 시도는 테나르디에를 격분시키기는커녕 오히려 침착하게 만들었다. 그자는 한 번 더 되풀이해 말했다.
“해치면 안돼.”
이 말은 자기도 모르는 성공을 거두었다. 권총 발사를 저지하고 마리우스를 움츠러들게 했던 것이다. 마리우스로서는 긴박한 사태가 지나갔으니 이 새로운 국면 앞에 기다려 보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위르쉴라의 아버지가 죽는 것을 묵과하느냐, 아니면 아버지를 살려준 자를 파멸케 하느냐의 양 갈래 길에서 그를 탈출시켜 줄 기회가 생길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처절한 격투가 벌어졌다. 하얀 신사는 술 취한 듯한 노인에게 일격을 가해 방 한가운데로 넘어뜨렸다. 이어 역습을 가해 두 공격자를 쓰러뜨리고 무릎에 하나씩 깔고 앉았다. 사내들은 화강암 맷돌에 깔린 듯이 신음하였다.
그러나 다른 네 명이 이 무서운 힘을 가진 하얀 신사의 팔과 목을 눌러 깔려 있는 두 사람 위에 쓰러뜨렸다. 하얀 신사는 한편으로는 누르고 또 한편으로는 짓눌리어 질식당했다. 그는 덤벼드는 모든 힘을 뿌리치지 못하고 으르렁거리는 사냥개와 집개에 깔리어 보이지 않게 되고 말았다.
사내들은 겨우 하얀 신사를 창가에 있는 침대에 밀어붙일 수가 있었다. 테나르디에 부인은 그의 머리를 잡아 쥔 채 놓지 않았다. 테나르디에가 말했다.
“당신은 손대지 마.”
“숄이 찢어지겠어.”
그녀는 암컷 이리가 수컷 이리에게 복종하듯이 불평을 하며 손을 놓았다. 테나르디에가 말했다. 나머지 친구들은 이자의 몸을 뒤져 봐.”
하얀 신사는 저항을 단념한 모양이었다. 그들은 하얀 신사의 몸을 뒤졌다. 그가 지니고 있는 것은 6프랑이 든 가죽 지갑과 손수건이 전부였다. 테나르디에는 그 손수건을 자기 호주머니에 넣으며 물었다.
“뭐라고! 돈이 없다고?”
한 사내가 말했다.
“시계도 없는걸!”
마스크를 하고 큰 자물쇠를 들고 있던 사내가 말했다.
“아무려면 어때. 어쨌든 대단한 영감이야.”
테나르디에는 문가로 가서 밧줄을 집어 그들 쪽으로 던졌다. 그가 말했다.
“저놈을 침대 다리에 묶어.”
하얀 신사의 일격으로 바닥에 쓰러져 움직이지 않는 노인을 보고도 말하였다.
“불라트뤼엘은 죽었나?”
비그르나유가 대답했다.
“아니야. 취했을 뿐이지.”
“한구석으로 치워 버려!”
테나르디에의 말에 두 사내가 주정뱅이를 발로 떠밀어 방구석으로 옮겼다.
하얀 신사는 그들이 하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사내들은 그를 선 채로 질질 끌고 가서 창가에서는 멀고 난로에서는 가까운 침대에 다리에 결박해 놓았다. 그 일이 끝나자 테나르디에는 의자를 갖고 하얀 신사의 정면에 와서 앉으며 말했다.
“선생.”
그러면서 하얀 신사를 붙들고 있던 사내에게 몸짓으로 저리 가라는 시늉을 하고는 말햇다.
“다들 좀 비켜 주게. 나는 이 선생과 할 말이 있네.”
모두들 문 쪽으로 비켜섰다. 그자가 계속해서 말했다.
“선생, 창문으로 뛰어내리려 하시다니 그건 잘못이오. 다리가 부러질지도 모르니까. 자아, 이제 조용히 얘기나 합시다. 우선 내가 느낀 것 하나를 말해 주지. 당신이 아직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는 거야. 그건 잘한 짓이야. 아주 잘한 짓이고말고. 그러면 내 결론을 말해 볼까? 당신이 소리를 지르면 어떻게 되는지 아나? 경찰이 오지. 경찰 다음엔? 그야 재판이지. 그런데 당신은 소리를 치지 않았어. 이건 당신이 우리와 마찬가지로 경찰과 재판을 무서워하기 때문이야. 이것은 또 왜 그런고 하니, 나는 전서부터 눈치챘지만 당신이 무언가 숨기고 있기 때문이지. 우리도 마찬가지지만. 그러니 이야기가 통한다 이 말이거든.”
테나르디에는 천천히 일어서서 벽난로가 있는 쪽으로 갔다. 그자가 침대에 기대어 놓았던 병풍을 치우자 벌겋게 되어 있는 숯불이 보였다. 그 속에는 새빨갛게 달아 불꽃을 튀고 있는 끌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