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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 14장의 장편소설이며
1~11장까지는 아래에 연재되어 있습니다.
1/사랑, 장마로 오다
2/치명적인, 그러나 아름다운
3/첫 키스의 향기
4/철길이 닿는 바다
5/검은 그림자
6/굴레의 사슬
7/연못둥지과수원
8/안개 속의 덫
9/뒤틀리는 운명들
10/색깔이 다른 피
11/성(城)을 떠난 사막
12/장남들의 곡예비행
13/보이지 않는 길
14/연리지(連理枝)를 꿈꾸다
<12장 열두번째 이야기>
장남들의 곡예비행
엄청난 노동은 곧바로 이어졌다. 오전에 화장실에 가야지 생각했다가도 잊은 채 오후가 돼버리기 일쑤였고, 사적이든 공적이든 웬만한 일은 아예 무시되었으며, 여관과 공장만을 오고 가는 긴박한 상황이 연일 지속되었다. 마치 치열한 전쟁과도 같은 혹독한 하루하루가 밀물처럼 밀려왔다가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그리고 어느 순간 뒤돌아보니 발 디딜 틈조차 없던 공장 내부가 거짓말처럼 비워져 휑해졌다. 공장장의 농담처럼 국방부 시계가 멈추듯 비로소 다이어리 시계가 멈춘 것이다. 인간의 힘으로 어떻게 그 많은 물량을 해냈을까 스스로들 감탄하며, 업무를 마감하던 회식자리에 누구랄 것도 없이 취해 널브러졌다. 몸무게가 4킬로그램이나 족히 빠진 나 또한 짜릿한 희열과 함께 원 없이 무너져 내렸다.
이튿날, 정규직으로 바뀌기 전에 며칠간의 위로휴가를 받았다. 충주행 고속버스에 몸을 맡기자 눈꺼풀이 스르르 내려앉으며 금세 가뭇한 졸음이 밀려왔다. 내내 흔들거리며 졸음에 시달리다가 허겁지겁 터미널에 내려서는 약간의 선물을 샀다. 특근수당을 포함한 약간의 보너스를 받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신년 초에도 내려오지 못한 불효를 염두에 둔 나름의 면죄부였다.
그러나 마음을 온전히 거두어들인 탓일까, 푸릇한 신록의 생동감이 겨울잠에 묻힌 까닭일까, 여름에는 잘 보이지 않던 신진수의 무덤이 도드라지게 드러난 때문일까, 과수원 어귀에 들어서는 마음이 더할 나위 없이 한산하고 썰렁하게 다가왔다. 과수원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데 단순히 내 마음 때문이려니 위로하며 원두막에 먼저 선물꾸러미를 내려놓았다. 몇 달 사이 제법 덩치가 커진 똥개가 뛰어와 꼬리를 흔들며 나를 반겼다. 녀석의 꼬리를 발끝으로 툭툭 쳐 반가움을 대신하면서 사방을 둘러보니 알 수 없는 감회가 허공으로 흩어졌다.
“어머, 도련님 오셨시유?”
때마침 부엌에서 나오던 진영이 나를 발견하고는 반갑게 인사말을 건넸다. 처녀 때보다는 말라서 불쑥 나이 들어 보이는 진영, 헐렁한 일 바지를 대충 여민 시골 아낙의 차림새, 화장기 없는 푸석한 얼굴, 불현듯 그녀의 반가운 기색이 낯설어 겸연쩍은 미소를 지었다.
“예……. 잘 있었어유?”
“우여곡절이 많았네유. 어머님이 정초에는 내려오나 기다리던 눈치였는데 줌 늦었네유!”
“일이 바빴는데 이제 끝났어유! 4킬로그램은 빠진 것 같어유.”
“그래두 보기 좋으네유. 형보다 열심인 걸 보니.”
진영의 푸념이 한숨으로 길게 나왔다. 그녀의 한숨 또한 찬 공기와 마찰을 일으키며 허공으로 증발했다. 나는 우여곡절이란 것이 무엇인지 궁금하여 되물었다.
“내가 없는 동안 무슨 우여곡절이 그렇게 많았나유. 한숨을 다 쉬게.”
“형 때문에 속상해 못 살겠어유! 싸움에 휩쓸려, 큰 사고 쳤네유!”
“사고라뉴? 무슨 사고유?”
“술집에서 시비가 붙었는데 상대편 이빨이 두 개나 나갔대유. 아직 합의가 안 되어 걱정이래유. 오늘 조사받아야 한다며, 아버님 어머님이 같이 경찰서에 가셨어유!”
진영이 진저리를 치며 말했다. 내용만 간단히 들었는데도 참으로 환장할 노릇이었다. 사건의 과정은 굳이 알아야 할 필요조차 없었다. 혜진이었다. 혜진의 요염한 보조개에 빨려 들어간 석우의 병이 깊어 있음을 직감했다. 혜진은 이미 집안 언저리에 깊이 들어와 꿈틀대고 있었던 것이다. 단지 그 사실을 내가 잊고 있었을 따름이었다.
석우의 탈선에 동생인 내가 더 민망했다. 상세한 내용은 석우에게 물어봐야 할 숙제로 남겨둔 채 조카를 주려고 준비한 과자 종합선물세트를 쑥스럽게 내밀었다.
“도련님밖에 없네유. 녀석이 엄청 좋아하겠는데유!”
진영의 반색에 어쩌면 진수의 몫까지 삼촌 노릇을 하고 있다는 서글픈 연민까지 떠올랐다. 나는 진수와 혜진의 잔상을 쫓아버리려 딴청을 굳이 피워야 했다.
“가축들은 잘 커유?”
“도련님 모르구 있었시유? 소하구 토끼 하나두 없어유!”
“그건 또 무슨 소리여유?”
“열흘 전에 다 팔았어유. 가축 먹이려구 저장한 풀두 동나서 어쩔 수 없었대유. 하여튼 이번 사고에 그 돈 다 들어가겠다구 어머님이 화가 많이 나셨어유!”
까무러칠 노릇이었다. 석우의 신중하지 못한 가벼움에 몸을 떨었다. 장남에게 강력하지 못한 아버지의 연약함에 더욱 원망이 솟았다. 어느 집안이든 장남이 문제였다. 신진수가 그랬고, 조정호가 그렇고, 석우가 그렇다. 나는 첫정에 대한 부모의 일방적인 비호에서 비롯된 병폐로밖에 치부할 수 없었다.
서둘러 외양간으로 향했다. 외양간은 남루하고 휑뎅그렁했다. 말 그대로 적막이었다. 토끼 사육장에는 아직 치우지 않은 까만 토끼 똥이 지천으로 흩어져 어지러웠다. 지붕 모서리와 처마에는 길게 열린 고드름만이 겨울 햇볕을 받아 쓸쓸하도록 영롱했다. 지난봄과 여름 그리고 가을, 아버지와 함께 풀을 거두어 가축을 먹이던 숱한 고역들이 주마등처럼 제각기 스쳐 지나갔다. 잠시 잊고 있었던, 땀방울로 일군 과수원의 풍경이 불현듯 가슴에 저렸다.
마침 언덕 끝자락에 아버지, 어머니가 힘없이 오르는 모습이 목격되었다. 석우는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는 두 손을 등 뒤에 꼬고 걸었다. 어머니는 십여 미터 뒤를 따랐다. 부모의 등 뒤로 맑은 겨울 햇볕이 가득 달라붙었다. 나는 원두막까지 마중 나가 인사보다 먼저 사건의 해결에 물음표를 던졌다. 아버지가 등 뒤의 깍지를 풀며 짤막하게 결과를 알려주었다.
“합의했다.”
“형은 어디 갔어유?”
“지 놈두 양심이 있는지 같이 오기 싫었던 모양이다. 친구 만난다는 핑계 대구 사라졌다!”
아버지는 가뜩이나 무거워 보이는 몸을 툇마루에 걸쳤다. 처마로부터 응달이 내려와 허리춤에서 사선의 그림자가 그려졌다. 흑백의 극명한 명암으로 상체만 그늘에 가려진 아버지의 얼굴이 부쩍 노쇠해 보였다. 고개를 땅에 박고 터덜터덜 뒤따라 올라오던 어머니가 그제야 나를 발견하고는 눈동자를 크게 열었다.
“니는 기별두 없이, 언제 온 겨?”
“얼마 안 되었어유!”
“그런데 왜 그리 마른 겨? 어디 아픈 겨?”
“별일 아녀유. 일이 줌 고된 것뿐이예유!”
어머니도 툇마루에 걸터앉았다. 역시 극명한 사선의 그림자가 얼굴에 드리워졌다.
“추운데 안으루 들어가세유. 감기 걸려유.”
내 말을 듣고서야 어머니는 구부정한 허리를 추스르며 방으로 들어갔다. 진영이 뒤따라 들어가자 아버지가 담배를 꺼내 물며 대화를 시도했다. 나는 아버지 옆에 나란히 걸터앉았다.
“형이 밉지?”
대답하지 않았다. ‘형이 밉지?’라고 묻는 뜻이 ‘아버지가 밉지?’라고 들렸기 때문이었다.
“가축 모두 팔아 치웠다. 석우가 큰일이다. 마음을 잡지 못해서…….”
“토끼집하구 외양간, 빈 거 봤어유. 형은 본래, 농사에 취미가 별루 없잖어유!”
“요즘은 시내에 나가 두유 대리점이라두 하겠다구 성화다. 콩으루 만든 새루 나온 우유라구 하는데, 앞으루 전망이 밝다는구나!”
“두유 대리점이유? 또 벌여놓기만 하면 어쩌시려구유?”
“정신 차리겠지. 사고까지 저지른 눔이 또 그 모양이겠니. 둘째 애도 생겼다는데…….”
부엌에서 나오던 진영의 푸석한 차림새가 떠올랐다. 그녀의 지친 행색이 배 속에 아이를 가진 여인의 몸짓이었던 모양이었다.
“형수 임신했어유?”
“그렇다는구나. 니는 두유 대리점이 어떠냐?”
“아버지 뜻대루 하세유. 하지만 전 반대유.”
아버지가 어쩔 수 없이 장남에게 또 끌려가고 있다는 것을 이미 느낌으로 알고 있었다. 나는 뜻대로 하라고 힘주어 말하면서도 분명한 반대 의사를 밝혔다. 아버지의 담배 연기가 직선으로 길게 뿜어져 나왔다. 곧이어 푸념처럼 흘러나온 자괴심 섞인 넋두리가 이어졌다.
“석우가 어릴 때, 크게 다칠 뻔한 일이 있었다. 그때 놀라서 갈피를 못 잡나 싶구나.”
금시초문이었다. 석우가 다칠 뻔한 이야기는 가족 어느 누구에게도 들은 기억이 없었다.
“전 모르는 일인데, 어떻게 다칠 뻔했는데유?”
“아마두 첫돌이 지나지 않았나 싶다. 니 어무니가 할무니만 믿구 아이를 사랑방에 두구 빨래를 나갔다. 내가 논에 물꼬를 내고 들어오는데 석우가 자지러지게 울더구나. 놀라서 사랑방을 열어보니 볏가마 밑에 석우가 깔려 있었다. 가을이어서 막 거둔 볏가마를 사랑방에 쌓아놓았는데 그게 넘어지면서 밑에 깔렸던 게지. 놀라서 볏가마를 치워보니 층층이 쌓였던 가마가 비스듬히 넘어져서 그 안에 석우가 갇혀 있더구나. 천운처럼 살았지만 그때 석우가 죽을 뻔했다. 캄캄한 굴속에서 울던 녀석의 눈빛이 아직두 생생혀. 그 후로 경기하듯 자주 놀라곤 했었다. 석우가 당최 마음을 못 잡는 게 그때 놀라서 그런 건 아닌가두 생각되는구나. 그때부터 니 어무니는 할무니를 믿지 못했지. 시어무니한테 많이 서운했던 겨!”
“다치지 않았으면 그만이지, 마음에 두구 있으면 뭘 혀유. 아주 오래된 일인데유!”
“할무니와는 그 후로두 몇 번씩 그와 비슷한, 니 어무니가 서운해 할 사건들이 있었다. 크고 작은……. 그래서 할무니가 청주 작은집에 자주 갔던 겨.”
“다 부질없는 짓이에유.”
“그러게 말이다. 그리구 또 석우가 첫째가 아니다!”
아버지의 넋두리를 먼 옛날 이야기처럼 듣던 내가 기겁했다. 석우가 장남이 아니라니!
“형이 첫째가 아니라니유? 그럼 형 위에 누가 또 있었어유?”
“여자아이가 하나 있었는데 백일두 되기 전에 죽었다. 장마철 어느 날부터 아무런 이유두 없이 시름시름 앓더니만 닷새만에 죽더구나. 손쓸 틈두 없이 멍하니 당한 일이여. 그때 동네 어린애들 여럿이 그렇게 죽어나갔다.”
과거의 상처를 지금까지 숨겨놓은 아버지의 아픔이 나의 등줄기를 훑었다. 그래서 또 연이어 자식을 잃을까 봐 극진히 보호했을 아들, 이래서 다칠까 저래서 아플까 노심초사하며 애지중지 보호받은 석우, 부모에게 석우의 존재는 석우 그 이상이었던 것이다.
“저만 모르구 있었나 보네유. 형두 그 사실 알어유?”
“그려. 아마 중핵교 때부터 알았을 게다. 숨기구 싶었던 일이어서 니한테는 말 안 했을 뿐이다.”
“그래두 이건 아니여유. 형 스스루 바뀌지 않으면 안 될 문제여유!”
“내 책임이 너무 크다. 그나저나 니는 언제 올라갈 겨?”
“며칠 있다가 올라갈 거여유!”
아버지와 나는 더 이상 묻거나 답하지 않았다. 스산한 바람이 한바탕 볼따구니를 때렸다. 멀리 남산의 능선으로 시선을 던졌다. 아버지의 시선 또한 나와 같은 위치에 던져졌다. 한 무리의 대열을 이룬 새떼가 일렬로 날았다. 하늘과 땅이 명료하게 구분되는 능선을 따라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점으로 날고 있는 철새 가족이었다. 그중에 제일 뒤를 따라가는 철새는 다른 철새보다 한참을 뒤처져 힘겹게 날갯짓을 하고 있었다. 아마도 가족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편대를 구성하여 이동하는 철새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편대를 이탈하면 길을 잃는.
늦은 밤까지도 석우가 들어오는 인기척은 없었다. 문밖 멀리에서 우는 부엉이 울음소리만이 창틈을 비집고 굴러 떨어졌다. 진수의 무덤 어디쯤에서 울고 있는 부엉이 소리, 잊을 만하면 한번 울고 또 잊을 만하면 우는 녀석의 울음은 깊고 음산하며 괴기하기까지 했다.
어디로부터 밀려오는 폭풍 전야인지 엎드려 책을 보아도 허전했다. 누워서 천정을 보아도 불안했다. 석우만 생각하면, 정호만 생각하면, 진수만 생각하면, 운명 같은 답답함이 먼저 쌓여왔다. 나는 그들의 생각과 행동에 늘 근처에도 미치지 못했다. 특히 정호는 정라를 사랑하는 데 강력한 훼방꾼이었다. 정호를 떠올리는데도 정라가 더 그리워지는 밤, 이 밤에 혹시 석우는 혜진과 있는 것이 아닐까, 굽이치는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때였다. 잠시 고요하던 부엉이 소리가 귀밑에서 울었고, 아악! 하는 아이의 외마디 비명이 창호지를 뚫고 튀어 들어왔다. 더구나 비명을 지른 아이의 둔탁하게 넘어지는 소리에 내가 더 소스라치게 기겁했다. 반사적으로 몸을 튕겨 툇마루로 뛰쳐나갔다. 마룻바닥에는 어린 조카 녀석이 나동그라져 있었다. 녀석의 사타구니는 벗겨져 바짓가랑이가 무릎에 걸린 채였고, 언저리는 튕겨 나간 오줌줄기가 포물선을 그리며 방울져 있었다. 이어서 아버지 어머니가 쫓아 나왔고, 진영이 뒤를 이어 뛰쳐나오며 소리쳤다.
“아가야, 괜찮니?”
녀석은 놀라움에 울지도 못하다가 진영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비로소 울음부터 터뜨렸다. 그녀가 아들을 일으켜 세우며 가득 품어 안았다. 녀석의 울음은 엄마가 두드리는 손바닥의 진동으로 높낮이가 조절되지 않았다. 나는 조카의 경기를 경험했던 적이 있었던 터라 여차하면 병원으로 데려갈 마음의 준비를 하였다.
“내 오늘은 저 눔의 부엉이를 죽여버리구 말아야 혀!”
아버지가 소리치고는 갑자기 툇마루를 내려섰다. 신발을 신으려 어둠 속을 더듬거리는 동작은 분노가 서린 몸짓, 그것이었다.
“여보, 그냥 두세유. 영물을 해치면 벌 받어유!”
어머니의 만류에도 신발을 대충 꺾어 신은 아버지는 이미 도리깨를 들고 뒤뜰로 사라졌다. 무슨 영문인지 모르는 나는 그저 아버지를 쫓아 뒤뜰의 어둠 속으로 향했다. 인기척을 듣고 헛간에 있던 똥개가 달려 나와 컹컹대며 내 뒤를 따르더니 금방 앞서 뛰어나갔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이었다. 부엉이는 이미 뒤뜰에 없었다. 놈은 진수의 무덤 언저리 사과나무까지 물러나 커다란 까치집처럼 검게 앉아 있었다.
아버지는 어둠 속에 무작위로 도리깨질을 하고 있었다. 허공에다 휘젓는 도리깨질은 마치 도깨비가 춤추는 형국과 같아서 소름이 돋았다. 똥개는 아버지 주변을 마구 날뛰며 천방지축이었다.
“저 눔이 진수 갸 영혼인가 벼. 허구한 날 밤이면 와서 지랄이구먼. 어떨 때는 오늘처럼 뒤뜰까지 와서 우는 바람에 사람까정 놀라게 하는구나!”
아버지는 내가 옆에 와 있는 것을 알고는 도리깨질 행동에 대하여 해명을 늘어놓았다. 결혼식 날, 말없이 쏘아보던 진수의 퀭한 눈동자와 부엉이의 검은 눈동자가 섬뜩하게 교차되었다. 개는 짖는 것을 멈추고 먼 부엉이와 우리를 번갈아 보면서 킁킁거렸다. 아버지는 푸념처럼 또 중얼거렸다.
“저 무덤을 거기에 쓰는 게 아니었는데 말이여. 내가 성급했던 겨!”
“그게 무슨 말씀이세유?”
“도대체 되는 일이 없어 하는 소리다. 장가두 안 간 총각귀신이 집 언저리에 서성대구 있는 꼴이 아녀!”
“조카가 저렇게 놀라는 일은 자주 있었나유?”
“저런 일은 오늘이 처음이다. 요강에 오줌을 누다가 그랬으니까 괜찮겠지. 저 개만 해두 그렇다. 벌써 4대째 새끼 난 날 어미가 내리 죽었지 않았니?”
아버지가 끙끙거리는 똥개를 손가락질하며 총각귀신에 연결 지었다. 그랬다. 새끼를 난 당일 어미개가 죽어 미음을 먹여 키운 것이 꼭 4대째인 개였다. 어미개는 그날 바로 진수의 무덤 언저리 과수원 둔덕에 묻어주었다. 진수의 조준점 없던 시선, 어떤 움직임에도 무반응인 무정형의 눈동자, 일그러지고 떨어져 나가 너덜대던 턱관절, 잊어버린 줄 알았던 진수의 얼굴이 어둠 속에 더욱 명료하게 되살아났다. 어미개의 죽음과 진수의 죽음이 연관 있다는 소름끼치는 논리, 오금이 저렸다. 서둘러 등을 돌렸다.
“이상한 건 그뿐만이 아녀!”
그러나 아버지의 계속되는 말은 나의 발목을 동아줄처럼 붙들어 매었다. 나는 허벅지가 땅속에 깊이 박힌 것처럼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윗입술 아랫입술은 심하게 떨려 따로 파닥거렸다.
“달포 전 일이다. 깊이 잠들 때였는데 밖에서 자꾸만 전 서방, 전 서방…… 하구 부르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겠니. 한참을 망설이다가 불두 안 켜구 방문을 벌컥 열어 젖혔는데, 석우가 그 소리를 따라 몽유병 환자처럼 밖으루 걸어나가구 있었다. 냉큼 소리쳐 석우를 불러들여 물어보았더니 석우두 똑같은 소리를 들었다 하더구나. 석우가 술에 취해 지가 그랬을지두 모른다구는 했지만 그날 일이 자꾸만 마음에 걸린다.”
“그, 그런 일이 사실이라면, 이사라두 해야 하는 거, 아니에유?”
“그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지 않니. 이제 겨우 사과를 수확할 때가 되었는데 어떻게 또 이사를 가. 버텨봐야지…….”
아버지가 길게 한숨을 토해내었다. 나는 빨려 들어갈 것 같은 공포로부터 속히 도망쳐야 했다. 그러나 여전히 발걸음을 움직일 수 없었다.
“아부지, 거기서, 뭐, 하세유? 꺼억!”
어둠 속에서 느닷없는 석우의 목소리가 들렸다. 술에 진창 꼬부라진 헐거운 혓소리였다. 아버지의 볼멘소리가 곧바로 터져 나왔다.
“우라질 눔, 그렇게 사고를 치구두 술이 입에 처들어가냐?”
내 생전에, 짧은 인생에, 그토록 강렬한 아버지의 분노를 겪어본 적이 없었다.
“꺼억, 죄송합니다, 아부지……. 죄송합니다, 아부지!”
석우는 토씨 하나 틀리지 않는 같은 말을 두 번씩이나 반복하며 머리를 조아렸다. 아버지의 분노는 멈추지 않았다.
“그 따위루 하려면 살림 내서 시내루 이사 가라. 못난 눔!”
“꺼억, 죄송합니다, 아부지……. 죄송합니다, 아부지!”
다람쥐 쳇바퀴 돌듯 석우의 조아림 또한 멈추지 않았다. 오늘따라 평소의 그답지 않게 깍듯이 조아리는 행동이 오히려 낯설었다. 자신을 힐책하는 말을 조금이라도 꺼내면 되레 뿔따구를 부리고 뛰쳐나가던 평소의 그가 아니었다. 똥개는 석우의 주위에서 마구 꼬리를 흔들며 반가움을 표현했다. 똥개가 바짓가랑이를 물고 애교를 떨자 그가 성을 발끈 내며 걷어찼다. 애꿎은 똥개는 깨갱거리며 헛간으로 도망쳤다.
서로의 얼굴을 확인할 수 없는 어둠에서도 요행히 그가 나를 알아보았다.
“어, 양우 아니여? 꺼억, 니는 언제 온 겨?”
석우의 모양새가 꼴사나워 대꾸하지 않았다. 그가 여전히 헐거운 혀를 놀렸다.
“양우야. 소개할 사람 있다. 저기, 저, 여자! 혜진이…….”
석우가 가운뎃손가락으로 등 뒤를 가리켰다. 어둠 속에 흰옷을 입은 여인이 유령처럼 서서 옥신각신하는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암흑에서도 금세 식별할 수 있는 성혜진, 그 여자가 외딴 여기까지 웬일일까, 더구나 칠흑 같은 야심한 밤에. 유령 같은 혜진이 아버지와 나에게 진짜 유령처럼 목례를 보냈다. 나는 엉겁결에 목을 빼며 주뼛거렸지만 아버지는 의도적인 헛기침을 하며 혜진을 노엽게 나무랐다.
“이봐, 색시! 지난번 왔을 때 내가 뭐라 그랬나. 다시는 얼씬두 하지 말라구 안 했든가!”
“언니가, 전 서방이 너무 취해서 혼자는 못 갈 거라구 해서…….”
“누가 전 서방인가? 어째서 색시 서방이 되는가? 못된 것들!”
아버지의 노여움에 혜진은 말꼬리를 닫았다. 혜진이 말한 언니란 술집의 대장이고, 전 서방이라는 말은 석우와 혜진이 그렇고 그런 사이라서 부르는 호칭인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야심한 밤에 몽유병처럼 전 서방을 부르는 소리를 따라나선 것은 술에 취한 석우의 기억할 수 없는 자작극인 셈이었다. 혜진이 대놓고 과수원까지 찾아온 것이 처음이 아니라면 무슨 의미인가, 공공연하게 얼굴을 들이미는 행동을 묵인하는 석우의 심보는 무엇인가, 참으로 어이없는 촌극이었다.
혜진의 변명을 무시한 아버지가 나를 앞질러 나왔다. 분을 삭이지 못한 아버지는 혜진과 석우를 번갈아 쏘아보며 마침내 고함을 냅다 질렀다.
“에잇, 염병할 눔! 내일 당장 집에서 나가라. 버러지만두 못한 눔!”
아버지는 화풀이로 도리깨를 아무렇게나 집어던지고 방으로 들어갔다. 공교롭게도 도리깨채가 툇마루에 부딪혀 튕겨 나오며 혜진의 종아리를 쳤다. 때마침 스산한 겨울바람이 한바탕 치맛단으로 몰아쳤다. 흰옷이 더욱 희게 흔들리며 백여우의 꼬리처럼 펄럭거렸다. 소름이 돋았다.
아버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안방 문을 거칠게 열고 닫으며 사라졌다. 밖의 인기척을 들은 진영이 조카를 진정시켜 뉘였는지 건넌방에서 나왔다. 여자들의 동물적인 오감은 선천성을 타고난 모양이었다. 사물을 식별하기 어려운 어둠의 공간에서도 진영과 혜진의 눈빛은 충돌했고 서로의 손톱이 솟아나는 살기가 동했다. 곧바로 교전의 포문이 열렸다. 조강지처의 우위에 있는 진영이 먼저 막말을 쏟아 부었다.
“야아, 낯짝 한번 두껍다. 지난번에 그렇게 챙피당하구 또 와!”
혜진은 대꾸하지 않았다. 아마도 모처럼 마주친 나를 의식하여 모멸감을 참고 있는 함구인 듯했다. 석우가 주책스럽게 끼어들었다.
“어라? 야, 신진영! 얘가 언니뻘인데 니 까분다!”
석우는 혜진을 옹호하며 진영을 깔아뭉갰다. 석우의 어이없는 작태에 말문이 막혔다. 결국 내가 폭발하고 말았다.
“지금, 뭐하는 짓거리들입니까? 이게 사람의 탈을 쓰구 할 짓들입니까?”
굳이 혜진만을 두고 한 말이 아니었다. 혜진을 겨냥하면서도 석우나 진영까지도 싸잡아 씹어낸 말이었다. 특히 혜진은 내게 바람 맞은앙금을 간직하고 있을 듯싶어 작심하고 대못을 박아버렸다. 석우 또한 과수원을 떠난 나에게 불만이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 뱉어낸 말이었다.
“이 자식 봐라. 혜진이두 내 새끼 가졌단 말이여! 진영이 재는 무섭다구, 꼭 귀신 들린 여자 같어! 허구한 날 지 오라버니 무덤에 가서 꼭지가 돈다구. 잘 알지두 못하면서 지랄이여!”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말문이 막혀버렸다. 혜진이 석우의 아이를 갖고, 진영은 오빠 무덤에서 신들린 여자처럼 행동하고, 아버지는 그런 사실들을 알고 괴로워하고, 뒤뜰이나 무덤가에서 부엉이는 울어대고……. 뒤틀려도 된통 뒤틀린 과수원이었다.
진영이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녀의 힘만으로는 대항할 수 없다는 체념의 행동이었다. 이어서 흐느꼈다. 흐느낌은 곧 통곡으로 바뀌었다. 통곡하면서, 진영은 앙칼진 항의를 쏟아냈다.
“그런 소리 하지 마. 저 년 때문에 외롭구 한심해서 오빠 무덤에 가는 겨. 거기라두 가서 하소연해야 마음이 가라앉으니까. 거기라두 가야지 겨우 버텨낼 수 있으니까……. 흐윽, 흑!”
“저 년은 나이두 어린 게 언니뻘한테 꼭 이 년 저 년 지랄이여!”
“저 년이 왜 내 언니여? 화냥년이지! 흐윽, 흑.”
진영은 극점으로 치달았다. 그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할퀴고 상처내고 피를 흘리고 있었다. 혜진이 돌아섰다. 엄청난 모멸에도 한 마디 대꾸나 항변도 없이 돌아서는 인내심이 섬뜩하도록 무서웠다. 혜진은 피를 빨아먹는 흡반과도 같이 냉혈한 여자라는 것이 실감되었다.
“에잇 씨팔 좆도! 꺼억!”
석우가 욕지거리를 쏟아 붓고는 혜진을 뒤따라 어둠 속으로 멀어졌다. 진영은 석우를 잡지도 못한 채 길바닥에 버려진 어린아이처럼 서러운 울음소리를 토해냈다. 목구멍 안쪽으로 말려들어가는 불규칙적인 호흡, 모든 것을 빼앗겨버린 허탈한 통곡, 짧은 호흡은 폐로 들어갔고 긴 통곡은 심장에서 뒤엉켰다. 석우의 나침판 잃은 곡예비행은 추락 지점을 가늠할 수가 없었다.
석우는 혜진을 뒤따라 간 뒤 귀가하지 않았다. 하물며 이른 아침 진영과 조카까지 보이지 않아 집안은 다시 발칵 뒤집혔다. 가출할 때 남기는 흔한 편지도 없었고, 소지품을 챙긴 흔적도 없었다. 석우와 진영의 변하는 모습은 마치 귀신에 홀린 것처럼 브레이크가 없다며 아버지는 참담하게 말했다. 아버지의 명을 받은 나는 성혜진이 있는 연못둥지 술집으로 향했다. 술집에 있을 가능성이 큰 석우를 만나 진영의 가출 소식을 알리고 귀가할 것을 강요하기 위함이었다. 아버지는 동생인 나에게 형의 멱살이라도 잡고 오라는 불가능한 명령까지 당부했다.
석우는 술집에 없었다. 물론 혜진도 보이지 않았다. 그들 또한 지난밤에 들어오지 않았다는 한심한 이야기만을 전해 들었다. 그들의 행방은 아마도 시내 어디인가에 처박혀 있을 것이라고 하여 나까지 우롱당하는 느낌을 받았다. 석우를 지칭하여 전 서방이라고 일컫는 언니의 비웃음을 본 순간 불을 지르고 싶은 심보는 어디서 발동한 복수심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나의 냉정함은 괴멸되고 말았다.
“형을 놓아주시오. 계속 거머리처럼 달라붙어 있으면 가만히 있지 않을 테니까. 불을 확 질러버릴 겨!”
폭언을 던지고는 곧바로 술집을 나와버렸다. 폭언의 대꾸나 어이없어하는 표정 따위는 염탐할 바가 아니었다. 적어도 내 말이 엄포가 아니라는 것을 감지한다면 그것으로 족했다.
술집을 나와 고모네로 향했다. 동갑내기 고종사촌 여동생을 만나서 책임을 묻기 위해서였다. 사촌에게 혜진에 대한 근황을 상세히 얘기했다. 사촌은 적잖이 놀랐다. 동창들 간에 혜진의 소식은 입소문으로만 떠돌았는데 석우와 그런 일이 생긴 것은 금시초문이라는 항변이었다. 사촌에게 어떻게 해서든 그들을 분리시켜 놓으라는 주문을 했다. 혜진에게 따끔하게 충고하여 스스로 물러나게 하고, 석우를 설득하여 황당한 관계를 중단하도록 힘을 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촌은 혜진을 미친년, 못된 년 욕하면서도 남의 말을 전혀 듣지 않는 얘라며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 같은 뉘앙스를 깔았다. 사촌은 석우를 걱정하면서도 비록 요염하기는 해도 순박했던 혜진이 변한 것은 같은 문예부사내에게 버림받은 결과라고 푸념했다. 독을 품은 여자의 이면에는 사내들의 원인 제공이 있다는 반론이었다.
나는 그길로 진영의 친정을 찾아갔다. 그러나 그녀의 행방은 묘연했다. 자초지종을 들은 진영이 부모는 대노하면서도 딸을 더 힐책하는 나약함을 보였다. 그 나약한 모습에서 내가 발견한 것은 늘 아버지를 뒤따르던 하위서열이 몸에 밴 행동이었다. 진수의 무덤을 과수원에 쓰고 나면서부터 그런 행동은 더욱 깊어져 보였다.
진영을 찾는 데 허탕을 치고 집으로 돌아온 후, 다행히 그녀는 저녁 늦게 과수원으로 귀가했다. 그녀는 시내 친구에게 가서 하룻밤을 신세타령하고 돌아왔다고 시부모님 앞에 조아리고 해명했다. 진영의 눈물은 자신이 저지른 결혼에 대한 후회로서 석우의 유린을 온전히 감내하는 눈물이었다. 나는 진영이 감내하는 마음의 상처나 깊이에 대하여 석우의 곡예비행만큼이나 헤아릴 수가 없었다.
정라는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만나는데도 훌쩍 여름이 되었다. 그녀의 푸념에 의하면 정호는 마치 사는 것을 포기한 사람처럼 어느 누구의 충고도 귀담아 듣지 않는다고 했다. 하물며 거리에서 죽을 뻔했던 사건까지 저질렀다며 억지로 울화를 삭혔다. 술에 만신창이가 되어 차도 한가운데 널브러져 있는 것을 경찰 덕분에 겨우 살았다는 푸념, 길바닥에서 자주 넘어져 얼굴에 피딱지가 가시지 않는다는 푸념, 그의 막나가는 행동은 빈도가 잦아지고 위험수위는 점점 높아간다고 했다.
진영의 태아는 달이 차기 전에 유산되었다고 전해졌다. 성혜진은 태아를 모태 밖으로 배출시키는 임신중절수술을 택해 인위적으로 생명을 끊어버렸다고 했다. 석우의 두 분신은 햇빛도 보기 전에 그렇게 죽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연못둥지과수원에서 들리는 소식은 거의 시한폭탄 수준이었다. 석우는 기어이 두유 대리점을 냈다. 그러나 소비자에게 생소한 음료라서 고전을 면치 못했으며, 술버릇은 날로 험악해지고 있다는 소식이 이모를 통해 속속 내게 당도했다.
낙엽이 하나둘 추락하기 시작하는 늦가을 늦은 밤, 과수원으로부터 다급한 연락이 왔다. 긴밀히 의논할 일이 있다는 아버지의 음성은 고단하고 지쳐보였다. 무슨 일이냐고 되물었으나 굳이 얼굴을 보고 할 얘기라는 말에 의문은 더욱 증폭되었다. 회오리치는 불안으로 밤잠을 설쳤다. 출근과 동시에 사장에게 허락을 얻어 충주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차창으로 달려와 부딪히는 밖의 풍경을 무심하게 흘려보내며 내내 결론 없는 생각을 굴렸다. 그러다가 덜컹거리는 리듬에 깜박 잠이 든 얼마 후 버스는 목적지에 나를 뱉어놓았다.
과수원에서의 마음이 점점 멀어진 탓일까, 익숙했던 길마저 문득 어색하게 파고들었다. 까닭 모를 불안에 보폭의 속도가 빨라질 무렵,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광경을 목격하고 말았다. 연못으로부터 흘러 충주평야에 물을 공급하는 농수로 진흙탕 늪에서 웬 여자가 퍼덕이는 광경이었다. 여자는 누군가를 일으켜 세우려다가 몸무게를 이겨내지 못하고 함께 꼬꾸라지기를 반복했다. 신세를 한탄하는 듯 울음을 연신 토해낼 때마다 헝클어진 머리카락에 엉겨 붙은 검불가닥이 흔들거렸고, 몸뚱이는 이미 진흙탕으로 범벅이 된 채였다. 한데 엉켜 허우적거리던 여자가 마침내 주저앉으며 설음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여자는 진영이었다. 그녀가 수로에서 꺼내려는 사내가 석우라는 것은 너무도 자명할 터였다.
상황인즉, 술 취한 석우는 수로에 빠져 인사불성이고, 진영은 석우를 꺼내어 둔덕에 세워놓은 리어카에 실으려 애쓰는 형국이었다. 진흙탕 수로에 털썩 주저앉아 서럽게 흐느끼던 진영의 눈동자와 나의 시선이 일순간 부딪혔다. 그러나 진영의 눈동자는 초점을 찾지 못하고 허공에 떠 있었다. 정상적인 사람의 눈동자가 아닌 무정형의 눈동자, 영락없는 진수의 눈동자였다.
“형수님, 괜찮으세유?”
나는 소리쳤다. 진영의 눈동자가 하염없는 먼 강을 지나오듯 건너왔다. 상의의 단추가 풀려 융기된 메마른 가슴골이 절반은 노출되었음에도 여밀 의지조차 없어 보였다. 바짓단은 터져 엉덩이 맨살이 도드라졌다. 눈물인지 흙물인지 범벅이 된 얼굴 표정은 무엇을 원하는지 읽을 수가 없었으며, 마치 실어증에 걸린 사람처럼 아무런 대거리도 없었다.
나는 생각을 정리할 틈도 없이 내처 수로로 뛰어들었다. 바짓가랑이 틈으로 파고든 찬물이 종아리를 타고 사타구니까지 튀어 올랐다. 고약한 냄새가 코털을 헤집고 허파까지 깊숙이 들어왔다. 썩어서 발효된 진흙이 현기증 나도록 역했다. 먼저 석우의 양팔에 손을 끼워 넣었다. 죽은 짐승처럼 늘어진 몸과 함께 진흙이 한 움큼 손아귀에 잡혔다. 급한 대로 그를 건져 올려서 둔덕에 빨래처럼 널었다. 그러고는 흙탕물을 뿌려 머리와 몸에 엉긴 진흙덩어리를 제거했다. 물세례를 받은 석우는 옆으로 꼬꾸라지며 신음인지 주정인지를 풀풀거렸다. 영락없는 폐인의 꼬락서니였다.
“형수님, 이제 됐어유. 빨리 가야지유!”
이번에는 진영을 다독거려야 했다. 그러나 진영의 대답은 침묵이었다. 수로에 털썩 주저앉은 채 움직이려는 시도는 물론 쳐다보지도 않았고, 입가로 흘러내리는 시실거림은 영락없이 실성한 사람의 조소였다. 다시 수로로 뛰어내렸다. 석우처럼 그녀의 양쪽 팔짱을 껴 일으켜 세웠다. 질척거리는 진흙은 여전히 뭉치로 떨어지며 흘러내렸다. 진영의 몸에서 느껴지는 질감은 석우와는 사뭇 다르게 건조한 질감이었다. 이제 스물일곱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애초에 탱글탱글한 몸이 없었던 것처럼 뼈대가 잡혔다. 무대뽀삼형제와 하천 둑에서 뒤풀이를 하던 때의 재잘거리던 여고생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진영을 둔덕에 앉히고 풀숲에 널브러진 석우를 먼저 리어카로 옮겼다. 핸들을 잡아주는 이가 없어 바퀴가 몇 번 굴러가는 바람에 가까스로 그를 실었다. 진영 또한 뒤에서 밀고 뒤따라 올 만큼의 경황이 아닌 듯 판단되어 리어카로 떠밀었다. 그녀는 마치 어린아이처럼 냉큼 리어카로 올라타면서 흰 이빨을 드러내고 히죽거렸다.
요동치는 핸들을 겨우 잡았다. 이 어이없는 노릇을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했지만 혼돈만이 작열했다. 결코 어떤 방법도 떠올릴 수가 없었다. 힘겹게 핸들을 끌며 등 뒤의 진영에게 물음표를 던졌을 뿐이었다.
“형수님, 집에 아무두 없어유!”
그러나 그녀의 대답은 건너오지 않았다. 고개를 뒤돌아 동태를 살폈다. 사물을 응시하는 시선의 초점은 허공의 어디쯤이었다. 더구나 눈동자의 방향은 동서남북을 가늠하지 못했다. 나는 마른침을 넘겨 목구멍을 적셨다. 몇 번씩 뒤를 돌아보며 오르막 언덕 앞에 도착했다. 하지만 혼자의 힘만으로는 과수원의 언덕을 오를 수도 없는 무게였다. 우선 리어카와 석우를 팽개치고 궁여지책으로 진영을 먼저 집으로 데려가야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거기서 내려오세유. 저랑 같이 먼저 집에 들어가세유!”
그녀에게 손을 내밀며 동정의 눈빛을 보냈다. 그러나 되돌아온 것은 날름거리는 혓바닥과 절대적으로 석우를 보호하려는 냉혹한 몸짓이었다. 혓바닥은 나를 경멸하는 행동이었고, 석우를 얼싸안는 몸짓은 아이를 보호하려는 본능적인 모정의 행동이기도 했다. 황당해진 나는 핸들을 엉덩이로 깔고 주저앉아 멍하니 하늘을 보았다. 아침에는 구름이 높았던 가을 하늘이었는데 어느새 검은 구름이 떼 지어 응집되어 있었다. 금방 소나기라도 쏟아 부으려는 기세에 홀로 처량하게 뇌까렸다.
‘그래 피눈물이라도 한바탕 퍼부어라, 젠장!’
석우는 이제 가족이 아니라 적이나 다름없었다. 괴멸로 치닫는 종착역은 추락의 깊이를 장담할 수 없는 벼랑 끝이었다.
한참을 주저앉은 채 한숨만 뿜어대는데 다행히도 먼 거리에서 아버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버지의 등은 세상의 모든 짐을 홀로 짊어진 듯 새우등처럼 구부정했다. 머리의 무게를 지탱하기가 부담스러운지 땅바닥으로 떨어질 듯 고개를 출렁이며 발걸음을 옮기는 모습에 눈물이 울컥 고여 나왔다.
“저기, 아부지 온다. 아부지 온다!”
진영이 아버지를 발견하고는 평소 그녀의 목소리가 아닌 어린아이같이 지나치게 변성된 목소리로 반색했다. 목소리의 떨림이나 성량은 차치하더라도 ‘아버님’이라고 부르던 호칭이 ‘아버지’로 바뀐 것에 나의 머리는 다시 하얗게 지워졌다. 아버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헤벌쭉 웃는 진영의 영혼은 분명 다른 세계에 존재해 있는 영혼이었다. 십 미터쯤 가까워져서야 비로소 아버지가 우리를 보았다. 한심한 광경을 목격한 아버지의 표정은 대뜸 야성적으로 돌변했다.
“시방, 이게 무슨 꼴들이여?”
아버지의 호통에 진영이 리어카에서 냉큼 뛰어내렸다. 꼭 그녀만을 지칭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인지하지 못한 그녀가 침까지 흘리며 배시시 몸을 꼬았다. 내가 자초지종을 보고했다.
“형이 취해서 수로에 처박혔던 모양이에유. 형수 혼자 끙끙대길래 싣구 오는 길이구유!”
“염병할 눔. 아예 뒈지게 그냥 두지 왜 끌구 와.”
“저두 그러구 싶었어유. 그런데 형수 꼴 줌 봐유. 어디 버려두구 오게 생겼나!”
“그런데 쟤는 왜 저래?”
“모르겠어유. 아무래두 혼이 빠진 거 같어유!”
“어찌 제정신이겠나. 미쳐두 벌써 수백 번은 미쳤을 게다!”
이미 경험이라도 한 일인 양 아버지는 무너져 내리지도 않았다. 이글거리는 분노와 역정만이 매 발톱처럼 도사리고 있었다. 평소 같으면 자리를 슬쩍 피했을 상황이건만 진영은 여전히 몸을 좌우로 꼬며 히죽이었다. 히죽일 때마다 지향점을 잃은 눈동자가 반대방향으로 쏠렸다. 나는 마침내 울먹이며 소리쳤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에유?”
“지금 올해 딴 사과라두 싸게 팔구 오는 길이여. 곧 과수원 버리구 도망가야 할 판이다!”
“그게 무슨 소리에유. 과수원을 버리구 도망이라뉴?”
“저 눔이 어떤 사기꾼들한테 몽땅 털렸나 부다. 대리점인가 뭔가에 과수원을 담보루 넣더니만 전부 해먹은 모양이여. 땅은 크지만 임야루 되어 있어서 가격이 별반 안 된다는구나. 알구 보니 대리점을 소개한 년이 그 술집 년인가 부다. 저 눔이 못난 눔이지 누굴 탓하겠니. 다 내 잘못이지!”
아버지는 리어카에 널브러져 풀풀대는 석우를 지목하며 분노와 역정을 뱉어놓았다.
“대리점이 얼마나 된다구 과수원만 하겠어유. 도대체 얼마나 심각한 건데유?”
“그뿐만이 아닌가 부다. 술집에 처박혀 놀음까지 했던 모양이여. 봉계에서 돈놀이하는 년 급전까지 끌어다 썼나 보던데 빚이 얼마인지두 말을 안 하는구나. 엊그제는 저 혼자 뒈지겠다구 술 처먹구 연못에 뛰어들어 허우적대는 걸 술집 년이 소리쳐 꺼내놨더구나. 요즘 저 눔 하는 짓거리가 금수의 짓만두 못혀. 귀신이 씌어두 단단히 씌었어!”
아버지는 귀신까지 들먹이며 푸념을 던져버렸다. 나는 분노에 앞서 생각이 멈추어졌다. 세상을 살아가는 질서를 무시하고 변별력을 흡반에 빨려버린 석우의 병신 같은 짓이 역겹도록 한심스러웠다. 이 어처구니없는 현실을 어디까지 수습하고, 이 황당한 일들을 어디에 하소연한다는 말인가.
“어머니는 어디 가셨어유?”
“봉계 돈놀이하는 년한테 갔다. 빌린 돈이 얼마구 어떻게 갚아야 되는 돈인지 알아보겠다구. 그년이 보통 지독한 년이 아니거든. 우리가 봉계 살 때두 소문이 안 좋은 년이었다.”
아버지는 돈놀이한다는 여자를 그년저년 하며 노골적으로 욕설을 퍼부었다.
“귀신은 뭔 소리에유. 부엉이는 아직도 도망 안 갔어유?”
“그놈두 아직 그 모양이여. 니 어무니가 하두 답답해서 어디 가서 점을 봤던 모양이다. 과수원에 삼재가 껴서 세 명이 죽는다구 했다더라. 어무니는 이참에 빨리 이사나 가야지 싶은가 보더구나. 이사라두 가면 저 눔 병이 나아질지두 모른다며 집이 무서워 더는 못 살겠단다!”
어머니가 선택한 퇴로의 명분은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절박함으로 들렸다.
“어디루 이사하실려구유?”
“우선 서울루 가보자. 오늘 사과 판 돈을 우선 네가 가지구 올라가라구 불렀다. 그거라두 있어야 방 한 칸이라두 마련할까 싶어서. 그래서 내려오라구 한 거구…….”
“알았어유! 내일 아침에 바로 올라갈게유!”
“아니다. 오늘 당장 올라가려무나. 혹시 누구 눈에라두 띄면 좋을 것 없다!”
“알았어유. 그런데 서둘러 집에 들어가야겠네유. 금방이라두 소나기가 쏟아지겠어유!”
소나기를 머금은 먹구름이 충주평야로부터 빠르게 전진해오고 있었다. 먹구름은 볼따구니에 바람을 잔뜩 집어넣어 금방이라도 터질 풍선처럼 심통 맞아 보였다. 꿈틀대던 구름에서 습한 바람이 쏴하니 몰아쳤다. 곧이어 빗방울이 후드득 떨어졌다. 진영이 두 팔을 벌리고 폴짝폴짝 뛰며 빗방울을 받아내기 시작했다.
먹구름은 채 언덕을 오르기도 전에 소나기를 뱉어놓았다. 이어서 섬광이 번뜩였다. 뒤따라 하늘이 찢어지고 천둥소리가 울부짖었다. 연못둥지과수원이 뒤집힐 듯싶은 굉음이었다. 놀란 진영은 다시 리어카로 뛰어올라 인사불성인 석우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었다.
곧이어 평야를 직선으로 날아온 바람이 과수원 언덕에 부딪히며 회오리를 일으켰다. 지붕에 도달한 회오리는 방향을 바꾸면서 초가지붕의 볏짚조각들을 툇마루에까지 내동댕이쳤다. 원두막 지붕은 바람의 폭력을 이겨내지 못하고 분리되어 너덜거렸다. 날아간 지붕조각은 낙하지점을 찾지 못한 채 사과나무에 걸려버렸다. 정면으로 바람을 맞는 과수원은 물안개로 금방 자욱해졌다. 정라가 이런 곳에서 살고 싶다며 감탄하던 과수원이 스모그 속으로 침몰하고 있었다.
아버지의 밀명으로 받은 약간의 돈을 가슴속에 품고, 다시는 못 올지도 모르는 연못둥지과수원을 버리고 떠나왔다. 전세금조차 되지 않는 초라한 비자금으로 이모와 협의하여 이문동에 겨우 방 두 칸짜리 월세를 얻어놓았다. 일주일 후 도착한 가족들의 모양새는 거의 피난민 수준이었다. 꼭 필요한 짐만을 싣고 부모와 어린 조카만이 올라온 보잘것없는 탈출이었다. 석우와 진영은 합류하지 않았다. 석우는 놀음으로 털린 패거리를 만나 해결할 일이 남았다며 충주에 남았다고 어머니는 전했다. 나는 석우보다 상경에 합류하지 않은 진영이 무엇보다 궁금했다.
“형수는유?”
“말두 말어. 갸가 결국 일을 내구 말았구먼. 가엾어 못 보겠다!”
“일이라뉴? 무슨 말씀이세유?”
어머니가 전하는 이야기는 애달프고 구슬펐다. 비가 억수로 오던 날 밤, 그러니까 내가 돈을 가슴에 품고 도망치던 날 밤, 기어이 실성했다고 판단된 진영은 행방불명되었다. 조카를 끼고 잠시 잠들었던 어머니의 감시망을 피해 그녀가 사라졌던 것이다. 아버지가 집안 구석구석을 뒤졌으나 진영을 찾지는 못했다.
결국 진영을 포기하고 방 안으로 들어왔을 때 연못둥지 가장자리에 사는 반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반장집과 과수원은 다소 멀기는 해도 야산을 두고 서로 바라보게 되는 위치였다. 흥분한 반장의 말은 진수의 무덤가에서 해괴한 광경이 목격된다는 것이었다. 웬 여자가 무덤가에서 번개가 칠 때마다 손뼉을 치며 까르르 웃다가 울다가 덩실덩실 춤을 추는데 무서워 죽겠다는 겁먹은 전화였다. 아버지는 단번에 진영임을 확신했다.
우산도 쓸 경황조차 없는 맨몸으로 아버지가 무덤가로 달려갔다. 무덤가에서, 어둠 속에서, 진영의 행동은 실로 충격이었다. 번개가 터지며 밝아지는 찰나에 하늘을 향해 웃어 젖히는 행동이 아버지의 영혼을 빨아먹는 수준이었다. 번개와 천둥의 짧은 사이에는 손뼉을 치며 기괴한 목소리로 울어 젖혔다. 천둥이 지나간 다음에는 덩실덩실 춤까지 추었다. 제멋대로 헝클어져 흘러내린 물먹은 머리카락, 빗소리를 뚫고 퍼져 나가는 미친 듯이 웃는 목소리와 교차되는 기괴한 울음소리, 세찬 빗줄기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덩실거리는 몸짓, 아버지의 발목은 땅바닥 깊숙이에 박혀 조금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렇게 멍하니 한참을 지켜보던 아버지가 겨우 정신을 추스르고 무덤가로 접근했다. 진영의 시선은 아버지의 접근을 아는지 모르는지 파악할 수는 없었다. 마침내 가까이에 이르러 진영의 해괴한 행동을 저지하려 했을 때 그녀는 기습적으로 아버지의 가슴팍을 할퀴었다. 진영이 휘두르는 상상외의 강한 힘에 아버지의 상의가 찢겨졌다. 하물며 중심을 잃고 비틀거리기까지 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곧 진영을 제압하여 감아쥐는 데 성공했다. 진영을 어깨에 들쳐 업고 돌아온 아버지는 보호 차원에서 그녀를 사랑방에 가두고 자물쇠를 채웠다. 한낮부터 미쳐서 시달린 것을 감안한다면 지쳐 떨어질 법도 했지만, 진영은 밤새도록 울다가 웃기를 반복했다고 한다.
그리고 사흘 후, 진영은 탈출하여 어디론가 사라졌다. 사랑방 문을 잠근 열쇠는 그대로였으나 문짝 의 격자무늬 틀을 부러뜨리고 없어진 것이 확인되었다. 진영은 진수의 무덤가에도 없었다. 진영이 발견된 곳은 의외로 엉뚱한 파출소였다. 형사의 연락을 받고 뛰어갔을 때 진영은 먹은 내용물을 토하고는 바닥에 널브러져 곤히 자고 있었다. 형사의 말에 의하면 방화범으로 잡혀왔다는 설명이었다. 잡힌 곳은 연못둥지 성혜진이 있는 술집이었다. 술집에 불이 났고, 진화되었으나 쓸모없을 정도로 반파되었으며, 그곳에서 거세게 타오르는 불길을 보면서 웃다가 울다가 춤을 추던 진영을 피해자가 신고한 것이었다.
진영의 행색을 보고 난감한 형사는 해결점을 찾기 위해 연고자인 시아버지에게 구원을 요청한 사건이었다. 실제적인 방화범이 진영인지는 그저 심증일 뿐, 명확한 목격자가 없다는 것이 경찰이 파악한 내용이었다. 인명피해가 없다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아버지는 실제적인 목격자가 없는 것과, 진영을 실성하게 만든 원인 제공자가 혜진이었으므로, 더 큰 화를 입을 수 있다는 공포감을 술집 측에 관철시키려 애썼다. 거기에 아버지의 분노까지 덧붙인 끝에 가까스로 진영을 석방시키는 데 성공했다.
경찰서에서 집으로 끌려온 진영은 어린 조카와 격리당한 채 치료를 위한 명분으로 친정에 되돌려졌다. 반파된 술집은 이틀 후 철거되어 동네에서는 앓던 이가 빠졌다며 반겼고, 한복 언니들은 물론 화제 당시 현장에 없었던 혜진은 종적을 감추어 소식을 아는 이가 없었다.
혜진이 석우로부터 마음을 정리하여 스스로 사라진 것처럼 석우도 다행히 혜진에 대한 집착을 포기하는 행동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연못둥지과수원의 한바탕 회오리는 엄청난 상처를 안고 그렇게 수면 아래로 침몰했다.
“형수가 그렇게 되구 술집에 불이 났을 때, 형은 도대체 어디서 뭘 했대유?”
“그 요물 같은 년하구 어디 있었나 본데 당최 말을 안 하더구나!”
“이제……. 형수, 불쌍해서 어떡해유!”
내 동정에 어머니의 긴 한숨은 방바닥으로 꺼졌다. 멀리서, 그 모든 환영이 떠올라 숨이 막혔다. 술집의 방화범은 분명 진영일 터였다. 진수네 집의 방화범은 정호임이 농후했다. 그녀의 집이 정호의 방화였다는 심증과 술집이 진영의 방화였다는 사실이 우연이었을까, 어머니가 뇌까렸다.
“갸 팔자려니 해야지, 뭘 어쩌겠니. 빨리 나아서 아들이나 만나러 오기를 바래야지!”
직장 상사가 결혼식을 올린 덕분에 토요일이 휴일이 되었다. 결혼식은 끝났지만 그냥 집에 들어가기도 애매한 시간이어서 정라에게 공중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그녀는 아직 사무실에 남아 있었다. 넌지시 데이트 신청을 하자 뜻하지 않은 거절의 목소리가 수화기를 타고 건너왔다.
“나 오늘 시간 안 돼! 병원 가봐야 혀!”
“왜? 병원은 무슨 일루?”
나의 억양은 저절로 높아졌다. 반면에 그녀의 대답은 의외로 차분했다.
“오빠가 입원했어!”
“왜?”
“회사 동료하구 같이 넘어졌는데, 덩치 큰 사람 밑에 깔렸대. 뇌진탕이여! 입원한 지 이틀 됐어. 술 먹구 저지른 일이라 처음에는 집에 그냥 누워 있었는데, 자꾸 눈이 어지럽구 말두 어눌해져서 병원에 갔더니 뇌출혈이 진행되구 있었다구 하잖어!”
한바탕 회오리가 지나간 뒤였는지 정라의 설명은 오히려 덤덤했다.
“큰일 날 뻔했네. 정신은 있는 거여?”
“겉으로는 멀쩡혀!”
“그나마 다행이다. 그럼 나, 병원에 같이 문병 가두 돼?”
나는 정면으로 부딪혀 돌진해볼 작심으로 불쑥 모험을 감행했다.
“생뚱맞기는, 나는 괜찮지만 부모님이나 오빠가 어떨지 모르겠네.”
“우리, 만나서 같이 갈까?”
“아니, 난 오늘 줌 늦을 거니까 니가 알아서 와!”
그녀의 마음이 혹시 변하기라도 할까 싶어 서둘러 위치를 파악하고 병실을 물었다. 그녀는 병원의 명칭은 물론 버스노선까지 알뜰히 안내했고 되도록 늦게 오라는 말을 덧붙였다. 전화를 끊고 그녀가 통보한 늦은 시간까지 무엇을 할까를 고민했다. 명쾌한 답은 금방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다가 불쑥 생각난 것은 목욕과 이발이었다. 그녀의 가족에게 코흘리개 어린아이의 모습이 아니라 신뢰가 가는 청년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이발을 하고 목욕탕에서 한 꺼풀 벗긴 나는 온전히 거듭났다. 하물며 결혼식 참석을 계기로 비록 단벌이었지만 넥타이 차림의 신사복까지 차려입은 모양새가 제법 새신랑답게 거울에 반사되었다. 약속된 시간이 가까워오자 차분하던 마음이 갑자기 들뜨고 울렁이기 시작했다. 벌써부터 긴장하면 아니 될 터, 더구나 정호는 내가 병문안을 빌미로 가족 앞에 나서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할 일이지 않는가. 언젠가는 부닥칠 일이었지만 정호 앞에 나선다는 것이 이토록 옥죄는 것인지는 실감하지 못했었다.
병원 앞에서 복숭아 통조림과 드링크제를 준비했다. 소위 종합병원이란 타이틀을 내걸었지만 병실로 가는 복도는 음습하며 길고 어두웠다. 하물며 정호가 배정받은 병실은 영안실로 통하는 길목에 못 미쳐 있어 더욱 야릇한 공포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 음습한 복도에 옹색한 나무의자가 길게 놓여 있었고 정호와 어머니, 그리고 정라가 앉아 있는 것이 목격되었다.
발걸음을 옮기는 거리만큼 그들과의 간격이 좁혀지고 마침내 5미터 앞에 다다랐을 때 정라가 먼저 나를 알아보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내 등장으로 가족끼리 나누던 대화가 중단되었다. 나는 무작정 허리를 90도로 꺾어 ㄱ자 자세로 한참을 머물렀다. 그 어떤 말이라도 앞서 기다리기라도 한 듯.
“양우가, 여긴 어떻게 알구 온 겨?”
나를 알아본 어머니가 먼저 의문을 표시했다. 어스름에도 불구하고 지난겨울 맞닥뜨렸던 것이 금방 알아본 성과인 듯싶었다. 하지만 나를 빤히 올려다보고 있는 정호의 눈동자와 마주쳐 목소리가 끊어져 나왔다.
“입원했다구 해서…… 위문차 들렀습니…… 다!”
다행히도 정라가 나를 옹호하며 거들었다.
“오빠가 입원했다구 말하니까 문병 온다구 해서 그러라구 했어.”
“네, 제가 자청했습니다. 몸은 좀 어떠십니까?”
내 인사에 정호는 의외로 눈살을 생글거렸다. 그 눈빛은 분명 과거에 마주친 삼엄했던 살기 어린 눈동자가 아니었다. 줄무늬 환자복을 죄수처럼 입은 정호의 초라함, 나름 견딜 만한 품새로 다리를 꼬고 앉은 지극히 평범하고도 조금은 무기력해 보이기까지 한 몸짓, 더구나 농담 섞인 말투는 독기가 빠진 어깃장이었다.
“앞머리에 뇌출혈이 있었지. 뒤통수를 박았는대두 말이여! 왜 있잖어, 소주병을 밑에서 치면 위로 물이 튀어나오듯이 말이여! 히히힛…….”
정호는 오른손으로 소주병을 잡고는 왼손으로 병의 밑바닥을 치는 시늉을 보이며 말했다. 그런 낯선 행동에 나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농담도 아니고 진실도 아닌 말에 쓴웃음도 아니고 단 웃음도 아닌 모호한 표정이 그와 나 사이를 어색하게 오갔다. 정라가 정호를 마치 동생 나무라듯 뿌루퉁하게 힐책했다.
“오빠는 무슨 말을 그렇게 무섭게 혀. 그걸 지금 농담이라구 하는 겨. 가족들 놀란 것은 안중에두 없어, 정말!”
“야아, 사실이여! 소주병 밑에서 탁 쳐봐. 위로 물이 솟구치잖어!”
이번에는 물이 위로 치솟는 시늉까지 흉내 내는 정호의 설명에 정라는 어이없다는 듯 아예 말문을 닫았다. 그녀는 나의 위아래를 훑어보며 화제를 돌렸다.
“양우 니, 멋있어졌다! 꼭 새신랑 같은데…….”
나는 이유를 대답하지 못했다. 결혼식에 다녀왔다고 말하기도 전에 정호가 먼저 말문을 막고 끼어들었기 때문이었다.
“언제였더라……. 니 녀석을 본 게. 우이동에서인가?”
정호는 오래된 기억을 끄집어내려는 듯 어눌하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그가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다른 만남을 굳이 설명했다.
“아닙니다. 그 후로두 할무니 장례식에서 뵈었던 적이 있습니다!”
“어, 그래 맞어! 그때는 왜 내 기억에 없지.”
정호가 혼잣말로 끄덕거리는 사이 어머니가 정라와 나를 지칭해 한꺼번에 의문을 던졌다.
“그럼 너희들은 고등핵교 때부터 지금까지 만나왔던 거여?”
“엄마는 참, 그냥 서울에서 만날 수 있는 봉계 살던 친구여서 만나는 거라구 지난번에 말했잖어. 특별한 사이 아니여!”
정라가 정색을 하며 강력한 부정의 마침표를 찍었다. 어머니는 의문을 멈추지 않았다.
“어쨌든 처녀 총각들이 자주 만나다 보면 뭔 일 나는 법 아닌 겨?”
“엄마 맘대루 생각혀, 내가 아니면 그만이지 뭐! 괜히 병문안 온 사람 곤란하게 왜들 그려!”
정라의 볼멘 부정으로 나에 대한 성토가 겨우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하지만 나는 가족들과 나누는 대화의 정도에 그동안의 긴장이 용해되어 갔다. 어머니의 의문점이나 정호의 낯선 반응은 물론, 무엇보다 정라의 생각과 태도가 달라지고 있다는 사실에 고무될 일이었다. 그러나 정호는 손가락으로 나와 정라를 번갈아 지목하며 틈을 주지 않았다.
“정라 니는 여기 줌 있어라. 얘는 나하구 단둘이 할 말이 있어. 야아, 니는 날 따라와!”
“오빠, 무슨 얘길 하려구 그려. 양우하구 무슨 할 말이 있다구!”
“지집애, 넌 몰라두 돼. 남자들끼리 할 얘기여!”
정호가 의자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뒤따라오라는 일방적인 손짓을 보내며 영안실 쪽으로 등을 돌렸다. 정라에게 구원의 눈빛을 보냈지만 주뼛거리며 멈칫거릴 뿐 감히 정호의 명령을 거역하지는 못했다. 나는 앞서 걷는 정호에게 끌리듯 뒤따랐고, 벌써 심장은 요동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올 것이 왔다는, 늘 염두에 두었던 돌풍이 비로소 도래할 모양이었다. 어차피 뛰어넘고 가야 할 산맥, 전진기지의 정호를 뛰어넘지 못하고는 핵심부에 다다를 수 없는 연습을 수없이 해왔다. 차라리 잘된 일이라 인식하고 정호를 누그러뜨릴 기회가 왔다는 다짐을 곱씹으며 그에게 끌려갔다.
모퉁이를 돌자 영안실 앞에 서성이는 검은 양복들의 무리가 눈에 들어왔다. 왜 하필 영안실 인근인지, 정호의 마음을 읽기에 나의 추측은 멀기만 했다. 뒤돌아보아도 이미 정라는 보이지 않았다. 정호가 멈추어 섰다. 죄수복처럼 보이는 환자복이 어둠이어서 더욱 선명했다.
그가 선 채로 나에게 질문을 쏘았다.
“정라, 사랑하냐?”
다짜고짜의 질문에 확신하지 못하는 가느다란 음성으로 대답했다.
“예에…….”
“언제부터냐?”
“중학교 때부터, 장마가 있던 여름이었습니다!”
“더럽게 까졌군. 내가 군대 갈 때 우이동에서 봤으니까 근 십 년은 되었지? 니, 끈기 한번 맘에 든다. 오기두 있구. 정라는 뭐라구 그러더냐?”
“싫어하지는 않는 눈치인데, 항상 친구 사이라구만 못을 박습니다.”
“그려. 까탈스러워서 쉽지는 않을 게다. 그리구 니, 진수 소식 알지? 신진수!”
언젠가는 터질 일이라고 생각했던 질문이었다. 정호는 진수의 소식이 더 궁금했던 것이다. 정호와 진수의 비밀이 다를 리 없었고, 나와 진수의 비밀이 다를 리가 없는 궁금증.
“예에…….”
“도대체 그 눔은 왜 그렇게 무식혀?”
“비록, 무식하기는 해두 우직했습니다. 의리두 있었구.”
애달픈 진수를 떠올리며 옹호했다. 언제부터인가 창과 방패의 결투에서 스스로의 패배를 자처하여 해방을 얻고자 했던 것이 진수의 선택이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건 우직한 게 아니라 무식한 게지. 개울에서 같이 목욕하던 어릴 때는 그렇게 무식한 줄 몰랐어. 못난 눔!”
나는 진수를 회상하며 뇌까렸다.
“제 느낌에는 그냥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자살이었던 것 같어유!”
“자살하려구 했지. 바보처럼…….”
“군대에서가 아니구유. 달천강에 빠져 죽은 거 모르세유?”
“진수가 달천강에서 자살을 혀? 왜? 턱이 날아가 말을 못하는 정도가 아니었어?”
정호가 연거푸 물음표를 던졌다. 그는 진수가 죽은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진수가 죽은 걸 모르구 있었어유?”
“갸가 죽다니, 난 모르는 사실이여!”
“강에 빠져 죽었는데, 유서 같은 것은 없었습니다. 단순사고루 처리되었구유!”
“결국 지 손으루 죽구 말았군. 그런데, 니는 그 녀석이 자살했다구 어떻게 단정을 해?”
“저 혼자 생각입니다. 심증만으루는 단언할 수 없어 아무한테두 말하지 않은 것뿐입니다. 제가 군대에 있을 때, 팀스피리트 훈련장에서 우연히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진수한테 같은 부대에 있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구유.”
“팀스피리트 훈련?”
“예에, 우연히…….”
“기막히군. 그렇다면 니들은 벌써부터 알구 있었는데 나만 모르고 있었던 일이구먼. 내가 진수를 못살게 군다구 말하더냐?”
“예, 하지만 그냥, 푸념하는 정도루만 들었습니다. 그렇게 자해까지 할 줄은 몰랐어유!”
“그건 나도 마찬가지여. 사실 내가 진수를 갈구기는 했다. 녀석의 단순한 반응이 재미있어 그랬을 뿐 작심하고 그런 것은 아니었지. 삼청교육대가 신설되구, 교육이 살벌해지면서 녀석이 돌기 시작했어. 어느 날 폭동이 일어났구 진압과정에서 여럿이 죽었지. 지 눔만 미칠 지경이었나, 꽃병(화염병)을 던지며 학생운동을 한 나두 미칠 지경이었지. 염병할 눔, 나는 좋아서 명령한 줄 아나. 위에서 지지 누르니까 차마 내가 하지는 못하구 마지못해 명령했던 게지. 정말이지, 지 눔 머리에 스스로 총을 들이댈지 누가 감히 상상이나 했겠냐!”
삼청교육대의 폭동. 그래, 그날이었다. 정라가 처음으로 내게 면회 온 날, 부대 앞 구멍가게에 그녀를 맡기고 꼬박 비상근무를 섰던 날이었다. 낯선 땅에 발이 묶여 공포에 떨고 있을 정라를 걱정하며 밤새워 상황을 섰고, 뜬 눈으로 밤을 꼬박 밝혀 퀭해진 정라를 보내며 바지춤의 전동면도기를 하릴없이 만지작거렸던 그날이었다. 그날 진수는 자신의 목에 총을 쏜 것이다. 정호에게 확인했다.
“제가 군에 있을 때 삼청교육대 폭동 때문에 부대에 비상이 걸린 적이 있습니다. 진수가 그날 그런 건가유?”
“그려, 진압이 끝난 새벽에 녀석이 일을 저질렀다. 그런데 니가 삼청교육대 폭동을 어떻게 알어? 일급비밀이었는데!”
“같은 군단 소속이었나 봅니다. 작전상황병이었거든유.”
“악연들이군. 그렇다면 그 눔 덕분에 진급 못하구 내 소원대로 제대까지 했으니 난 덕을 본 셈이라구 해야 하나! 허허헛…….”
정호의 눈동자는 멀리 고향에 머물러 있는 듯했다. 그의 푸념에는 용서를 바라는 후회가 깊숙이 내재되어 흘렀다. 내 동생 네 형 구분할 것 없이 함께 무리지어 뛰어 놀던 유년의 무구함이 회한으로 다가오는 느낌, 하천에서의 정호는 늘 우두머리였다. 그러나 이제는 되돌릴 수 없는 슬픈 현실이 되었다.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 누가 시작했고 누가 끝내야 하는지, 여전히 알 수 없는 사슬이었다.
“말 나온 김에 한 가지 더 여쭐 게 있습니다. 진수 집에 불을 지른 적 있습니까?”
팀스피리트 훈련 중 만난 진수에게서 정라가 오빠에게 방화사건을 확인했을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을 언젠가는 확인하고 싶었다.
“그려, 이미 오래전 일이다. 그때는 어렸구 순전히 우발적이었다. 이제는 일러두 상관없어. 모두 잊구 싶은 일들이다.”
내친김에 더 확인하려 들었다.
“정라두 알구 있는 일인가유?”
“어느 날, 나한테 뜬금없이 묻더군. 아마두 서로의 집안에 대한 과거 이야기를 듣구 난 다음이었을 게여. 진수 집에 불이 났다는데 알구 있냐구? 그때는 모르는 일이라구 잡아뗐지. 오히려 니가 어떻게 아느냐구 몰아붙였어. 이발소 집 주홍이한테 들었다구 말하더군!”
정라가 오빠에게 무엇을 확인하려 했는지 나는 짐작할 수 있었다. 아직까지 철저히 함구하고 있는 것은, 그녀는 어쩌면 오빠의 부인을 진실 그대로 받아들였다는 의미와도 같았다. 더구나 방화사건을 나에게 들었다는 말조차 감쪽같이 감추고 주홍이를 팔았다. 정호의 방화는 어쩌면 영원히 함구해야 할 나의 목격 장면이 되었다.
“그날 두 명이 자전거를 타구 쏜살같이 방장골루 도망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떻게? 진수 집에 아무두 없었는데?”
“그때 무대뽀삼형제와 하천 둑에서 놀구 있었어유. 제가 제일 늦게 현장으루 달려가다가 멀리에서 봤구유. 정확하지는 않았지만 앞에 탄 사람은 사촌 같았어유!”
정호는 말문이 막혔는지 더는 대꾸하지 못했다. 아니, 변명할 말이 없었을 것이다. 내친김에, 그와 맞닥뜨릴 기회가 많지 않다는 조바심에, 나는 더욱 몰아붙였다.
“그날 미친 아저씨가 죽었어유. 해친 건가유?”
“아니다! 어떻게 감히 사람까지 해쳐. 그건 단순한 사고루 결론 났다. 나두 어떻게 된 사고였는지 아직두 궁금한 일이여! 미친 아저씨가 왜 좀처럼 타지두 않던 자전거를 타구 방장골루 내려오다가 둑 위에서부터 논바닥 벼랑으루 처박혔는지 짐작할 수가 없었어!”
“제 생각에는 아마두 담뱃불을 던지는 것을 목격하지 않았을까 추측돼유. 그래서 뭔가 말하려구 반장골루 내려가다가 밤길에 논바닥으루 처박힌 것이구유!”
“나두, 그 생각을 안 한 것은 아니다. 담뱃불을 던질 때는 근처에두 없던 사람이 언제 나를 보았는지는 모를 일이다. 훗날 조사과정에서 미친 아저씨가 횡설수설해 밝혀내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일단 의구심은 들었지. 하지만 이제는 십 년 가까이 지난 일이구, 오래전에 잊혀진 일이다. 과거의 사건일 뿐이여!”
그래, 이미 먼 시간 미궁 속으로 침몰한 사건이다. 정호의 확언이 진실일진대 미친 아저씨의 죽음에 대하여 더는 묻지 말아야 할 일이었다. 방화는 정호와 나만이 알고 있어도 될 묻어둘 아픔일 따름이었다. 단지 나는 나의 일이 더 중요한 기회, 정호의 진솔한 끝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진수네는 철저히 무너졌어유. 그럼, 저한테두 진수와 같은 감정이 있는 건가유?”
그가 대답했다. 긴장되었던 표정과 함께 목소리는 더욱 증폭되었다.
“니 형, 석우 있지. 그 눔이 중핵교 때 ‘밤안개’라는 불량서클의 똘마니였다는 건 아냐? 어느 날 그 눔이 패거리들을 몰구 와 날 빨갱이라구 하면서 한꺼번에 달려들었던 적이 있다. 혼자 뒈지게 터졌지!”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석우가 고등학교 때 껄렁껄렁한 친구들과 어울려 다녔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는 바였다. 그런데 중학교 때 이미 소위 ‘앵앵이줄’이라고 일컫는 자전거 체인을 책가방에 넣고 다닌다는 불량서클 밤안개였다니,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더구나 석우의 얇은 판단과 행동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터, 석우가 정호를 어떻게 대했을지 묻지 않아도 충분히 가늠되는 일이었다. 정호는 그때의 울분을 곱씹으며 연이어 목소리를 높였다.
“그날 아부지에게 빨갱이가 무슨 소리냐구 캐물었다. 공회당 사건의 내막을 알게 된 것도 그때였다. 그때부터 강해져야 한다구 생각했지. 석우한테 복수하려던 것이 진수한테 먼저 튀었던 것뿐이여. 어쩌면 니 아부지가 이장 나부랭이라두 하구 있었던 게 고작 복수를 비켜간 셈이다.”
또 다른 생각이 먼 기억으로부터 달려왔다. 분명 그날이었을 거다. 정라 아버지가 아버지를 찾아와 장남 입단속 시키라며 강력하게 주문했던 기억이, 초등학교 6학년 시절의 머릿속에 어렴풋이 남아 있었다. 양가 집안이 한바탕 실랑이를 벌이다가 술판으로 마무리되었던 사건, 나에게는 그저 그런 소소한 일상의 단편으로 흘러간 관심 밖의 사건이었다. 그래서 석우에게 공회당 사건에 대하여 함구를 지시했을 아버지, 나는 정호에게 대꾸할 의지조차 상실해 버렸고, 감히 고개를 들 수조차 없이 초라해졌다. 그가 다시 힘주어 뇌까렸다.
“할무니가 돌아가셨을 때 니가 놓고 간 돼지고기 덕에 우리 아부지와 니 아부지가 서루 목숨을 구해준 인연이라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지. 보국대에서는 우리 아부지가 너희 아부지를 구해주었구, 공회당에서는 반대루 너희 아부지가 우리 아부지와 할아부지를 구해주었다더군. 하지만 아직 석우하구 니 작은아부지는 영 못마땅하다. 증오가 영원히 사라진 건 아니여!”
이념이니, 투쟁이니 하는 거창한 포부나 삶 따위는 애초에 관심두지 않은 나였다. 작은 사랑일지라도 알차게 주고받으며 평범하게 살아가는 지극히 소박한 행복을 꿈꿔왔다. 어쩌면 평범한 삶이 투쟁의 삶보다도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을 문득문득 한 적도 있는 나였다. 나는 비로소 정호에 대한 그동안의 생각을 피력했다.
“석방되었다가 돌아가신 큰아부지두 전쟁 전에는 동네 사람들한테 못할 짓 많이 했다구 들었어유. 전 이념에는 관심없어유. 좌익이나 우익, 보수나 진보, 복수는 모두 부질없는 반목이라구 생각해유. 옛날 당파싸움 때부터 내려오던 악습이잖어유. 결국 해결되는 건 아무 것두 없을 거여유. 원칙두 없는 정치놀음에 분노는 분노만 낳을 뿐입니다. 대물림만 될 거여유. 사람들이 살아가는데는 반목보다는 화해가 빠른 해결점이라구 믿어유! 저는 평범한 삶이 가장 행복한 삶이라구 생각해유! ”
“자꾸 꼬투리 잡구 비약하지 마라. 나 화낸다! 내 생각과 니 생각이 다른 것을 설득시키려 하지 마라. 아무리 그래두 니 눔은 쌍눔의 피가 흐르구 나는 양반의 피가 흐른다는 건 변하지 않는다! 우라질, 거꾸로 돌아가는 이 더럽구 몹쓸 세상, 어차피 흘러가는 대루 대충 살면 그만이지. 산다는 게 뭐 대수인 줄 아냐!”
단호한 그의 언행과 어깃장, 양반 상놈을 구분하는 소리에 대꾸를 멈추었다. 더구나 상놈이라는 말에 피력하려던 말이 일시에 달아나 버렸다. 운명이라는 소용돌이에 진액까지 빨려 가죽만 남겨질 승자도 패자도 없는 싸움일 터였다. 정호가 끌어안고 있는 아픔과 내가 안고 있는 아픔이 다를 터였다. 증오는 응징해야 속이 풀리는 그의 품성, 수재의 두뇌를 가지고도 정치논리에 휩쓸려 어그러진 인생행로, 격동의 세월에 맞물려 몰락한 멸문과 복수심이 불러온 참담한 현실, 그 밀도 높은 블랙홀에 나는 대항하지 못했다.
정호가 패자처럼 무거운 등을 보이며 마침내 종지부를 찍었다.
“그리구 진수 갸 말이여. 정말이지 찌질이두 못났어, 지 목숨을 지가 끊어? 무식하기는 해두 순진해서 좋아했던 눔인데…….”
정호의 목소리 언저리에는 이미 진수를 충분히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그가 진수를 비하함으로써 위안 받고자 하는 상처가 무엇인지 가늠되었고, 등을 돌리는 것으로 보아 자괴의 마음을 감추려는 것이 역력히 엿보였다. 적어도 진수 문제만큼은, 좀 더 적극적으로 말리지 못한 나 또한 공범이나 다름없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나 역시 똑같이 무거운 등을 보이며 그의 발자국을 뒤따라 밟았을 다름이었다.
“무슨 얘기들이 그렇게 길어?”
기다리기를 고대한 정라가 보인 궁금증이었다. 돌이켜 보면 감히 상상할 수도 없었던 기회, 안개 속을 헤매는 것처럼 도무지 종착역을 알 수 없던 지난날들, 늘 엇갈리던 초라함과 무기력과 나약함이 한꺼번에 소멸되고 정리되는 기회였다. 하지만 그놈의 양반과 상놈, 그 낱말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정라 앞에서 자처했던 머슴이라는 낱말과 정호 입에서 듣는 상놈이라는 낱말의 차이가 무엇인지 가늠할 길은 더욱 모호했다.
정호가 그녀에게 통박을 놓았다.
“니는, 알 거 없어. 사내들끼리 얘기니까!”
정라는 피이, 향기로운 콧방귀를 뀌었다. 그녀는 내가 사온 드링크를 꺼내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갈증이 난 탓에 거의 동시에 드링크를 털어 넣었다. 어머니와 정라는 그런 정호와 나를 물끄러미 올려다보기만 할 뿐이었다. 돌아갈 때가 되었다는 반응이었다. 나는 갑자기 머쓱해진 마음으로 ㄱ자로 허리를 꺾으며 인사를 마무리했다. 쾌차하라는 말과 함께 어릴 때 하천에서 함께 뛰어놀며 정호를 호칭하던 ‘형’을 참으로 오랜만에 불러보았다. 그러나 그는 나를 정면으로 쳐다보지 못했고 대답은 침묵이었다.
정라가 배웅하려 졸졸 동행했다. 그녀를 홈홈한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한 뼘만큼 작게 어울리는 키, 비교적 마른 나에 비해 몽실한 몸짓, 졸졸 따르는 모습만은 분명 사랑하는 연인으로서의 모습이 틀림없었다. 결코 양반과 상놈의 관계가 아니었다.
점점 멀어지는 영안실 복도를 지나 도로가로 나오자 문명의 야경이 앞당겨왔다. 좀 더 밝은 빛을 발하려는 불빛마다의 암팡진 아귀다툼이 되레 처량함으로 젖어들었다. 마음은 가파르게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그녀와 나 사이에 석우의 가벼운 행동이 걸림돌로 급부상했다. 정호와의 새삼스러운 갈등이 몸집을 불리며 도시의 불빛 속으로 사위어갔다. 하지만 내 마음의 요동을 모르는 정라는 눈동자를 굴리며 기어이 궁금증을 해결하려 들었다.
“아까, 오빠하구 무슨 얘기했어?”
“그냥, 니 사랑하냐구 물었어!”
“그래서?”
“중핵교 때부터 사랑했다구 했지! 더럽게 까졌다구 하더군!”
“오빠두 참, 말 줌 곱게 쓰면 안 되나. 듣는 사람 상처받게…….”
정라가 투덜대고는 갑자기 옆구리로 폴짝 달려들어 팔짱을 끼었다. 오빠의 거친 표현과 푸대접에 미안함이라도 표현하려는 행동이었다. 하지만 옆구리로 전해지는 따듯한 온기가 불현듯 낯설어지고, 미립자처럼 흩어져가는 내 마음의 요사스러운 근원은 가늠할 수가 없었다. 끊어낼 수 없는 사슬의 고리가 더욱 견고해졌다는 불길한 예감, 마음은 회색빛으로 축축하게 젖어들었다. 그러나 나는 모든 것을 버리기로 스스로에게 철저하게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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