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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와 그 반성
연정 김경식
며칠 전 저녁 무렵이었다. 고속뻐스에서 내려 그 수많은 사람의 숲 속을 헤쳐가고 있는데 현산 학형으로 부터 수기(手機)를 통한 음성이 들렸다. 참으로 반가웠다. 그런데 “연정! 왜 자네 글을 삭제했는가? 아침에 연정 글 보았는데 다 지워졌어?” “그래, 나, 아침에도 현산이 내 글에 능파각 사진까지 달았던데! 나, 카페들어 가는 것도 산 모퉁이 꼬불꼬불 돌듯 겨우 들어 가는데..., 삭제 안했네. 한 번 알아 볼께.” 그리고는 하도 답답해 강원도 900고지에 참선하고 하고 있는 학산 대사께 물었다. 그러나 학산의 말이 본인이 아니면 까페의 글은 삭제 할 수 없다는 답이었다. 그제사 내가 나도 모르게 저질은 과오였음을 알았다.
나야 말로 전뇌(電腦)는 겨우 타자나 하는 정도이지만 참으로 무지임을 현산의 지적을 통해서사 알았다. 현산! 참으로 고마운 학형이 아닐 수 없다. 나의 무지를 확인시켜 주었으니 내가 살아가는데 있어서 선생 같은 고마움이다. 어찌 그 뿐이겠는가? 학산은 학산대로 가르쳐 주었으니 어찌 고맙지 않겠는가? 내에게 있어서는 무지의 확인과 그 반성을 갖게 해 주는 것 같이 소중한 것이 없다. 무지를 확인해 주고 잘 못을 자각케 하주는 사람이 바로 선생아 아니겠는가? 이제는 전뇌 키 하나하나에도 주의해야겠다는 것을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현산, 학산 참으로 고마운 선생들이다.
나는 카페에 올린 글이 전부 날라 간 것을 확인하고 조금은 속상했다. 그 나간 글을 어떻게 할까 하고 고심하던 차에 북해도 어느 해변을 거닐면서 저 멀리 수평선 저 쪽에서 그 날라간 글들이 떠내려 오는 것을 발견했다. 그제사 떠 내려 오는 것 하나 둘 건져 꼭꼭 묶어두었다가 한 꾸러미로 만들어 다시 올리게 되었다. 다음의 글들이 그것이다.
............................
가을 밤
연정 김경식
오죽(烏竹) 스치는
바람소리
적막을 깨고
처마 끝
풍경소리
낙엽을 적시는데
밝은 달은
혼자서
연못 속에 쉬고 있네.
.....................................
가을이 오는 길목에서
. 연정 김경식
사랑(舍廊) 봉창에
우련히 속삭이는
초이레 달빛
어스름 달빛 줄에
또르르 구르는
귀뚜리소리에
머뭇머뭇
발걸음을 손질하는
가을
눈먼 세월 계절 따라
종종걸음 서두는데
머리 위 푸르러던
꿈 조각은
어느새 황토빛
잿물로 얼룩거리고
못다 우거진
조각 꿈들 몸부림은
아직도 봄꿈 속을
헤매는 구나
세월이여!
그대 발길 조금만
더디게 하면
어떨까?
도둑 같은
황혼 속에 훌쩍 자란
초련(初戀)의
그리움
화계석 틈새에 핀
상사화(想思花)
홍자색(紅紫色) 미소에
고이 기워
보내는데
낯익은
새벽 별 하나
짓궃은 수작에
모처럼
새벽꿈 속살이
해가 뜨도
시리네.
..................................................
객사(客思)의 별
연정 김경식
연변(延邊)의 밤하늘
반짝이는 별들,
누구의 별이라
저리도 총총히
빛나는가?
하늘자락 더듬어
별 두 개 찾는다.
나의 별!
수훈(守訓)의
별!
고소(古巢)의 전설
이어 간직하는
아기사슴 수훈(守訓)!
저 세상에서도
업어드려야 할
수훈(守訓)
그 별은
어디 메 어느 건가?
마음속으로만
품어 온
수훈(守訓)의
애환!
청실홍실,
애환이 깃든
우리의 별!
하늘자락
어느 골 어느 넝쿨에 숨어
보일 듯 말 듯
애를 태우는가?
기웃기웃
한밤을 밀어낸
먼동이 트는데,
떼꾼하게
내려 보는 새벽 별
하나가
사위어가는
눈시울을 조롱이나
하듯,
푸실푸실 비추이고
있고나!
..................................
백두(白頭)의 통한(痛恨)
연정 김경식
겨레의 영봉(靈峯)!
백두(白頭) 거악(巨嶽)이
음흉한 ‘뙤‘ 중공이
혹세이념(惑世理念)에 중독된
북한 독재자와 야합하여
있어서도 안 될
중조변계(中朝邊界)란
허울 좋은 비밀조약으로
뺏어간 백두산의 반이
장빠이산 (長白山)이
되었다.
짤려버린 것이 어디
백두(白頭)만이랴!
천지에서 동서로 구비치는
압록, 두만 물줄기 마져
둘로 갈라져 물비눌조차
어지롭다,
장빠이산(長白山)!
나는 서파(西坡)길로 백두산에 올라
그 장빠이의 한(恨) 어린
등성이를 밟고 북녘을 바라본다.
광활한 동북벌판으로
구비치는 송화강(松花江)의 지류
토문강(土門江)의 동쪽 벌판/
그 벌판 북간도(北間島)가 눈으로
든다.
북간도는 조(朝)·청(淸) 양국의
백두산정계비의 “西爲鴨綠, 東爲土門”에
의한 우리의 영토
경술국치(庚戌國恥)로 살길 찾아
고향을 떠난 류이민(流移民)의
애한(哀恨)이 끈적하게
절여 있는 땅!
새끼들 손잡고 북간도로!
등에 봇짐지고 북간도로!
북간도 황무지는
우리 선조들이
옥토로 일군
인고(忍苦)의 땅, 도전의 땅,
삶의 터전이었다.
,
그런데도
‘뙤’청(淸)과 '왜(倭)' 일제의
‘간도협약’이라는 황당한 야합으로
북간도는 그만
중국 ‘뙤’의 땅이 되었고,
오늘날에는
‘뙤’땅을 물려받은 중공의
‘연변조선족자치주’라는
얄궂은 통한의 꼬리표를
달고 있다,
지금도 그 자리엔
후손들이 삶을 엮어가며
우리의 말과 글이 창성하고
겨레의 문화전통 면면히
이어가고 보듬고 있지 않는가?
버젓한 우리의 땅이
중국 ‘뙤’의 땅으로 변하여
기록되는 일이
이 어찌 가슴 아픈 일이
아니겠는가?
아,
참으로 핏줄기가 거꾸로 치솟는
겨레의 한사(恨史)가 아니겠는가?
나는 도무지 넘어가지 않는
끈적한 울분을 억지로 삼키며/
등을 돌려 멀리 남녘 한반도의
갈라진 북쪽을 바라본다.
시시장철 안개가 덮힌듯
사람 그림자 드물고/
인민의 핏덩이가
초연(硝煙)이 되어 가는 곳마다
절절히 베어 있는 곳/
곡마단장 같은 김씨왕조
독재자의 회초리에
숨을 죽이며 살고 있구나!
북녘은
언제쯤이나 짙은 안개 겉이고
혹세무민(惑世誣民)에서 벗어나는
깊은 잠에서 깨어날까?
배달(倍達)의 우리 겨레,
언제쯤에나 하나 된 마음으로
백두 영봉에 태극기 휘날리고
천지(天池)찾아
머스마는 헤엄치며
아낙네는 머리 깜고
새끼들 물놀이를 즐겨볼꼬?
석양 비낀
겨레의 영봉(靈峯)
백두(白頭)의 통한에
늙은 가슴 한사코
적셔가며
발길에
걸리적거리는
장빠이(長白)의
등성이를 내린다
....................................
석양 노을 비낀 강변을 거닐며
연정 김경식
언제나 이맘때가 되면 걸어보는 강변길이지만, 오늘따라 놀 진 석양을 향하는 늙은이의 마음은 가볍지가 않다.
머얼리 서쪽을 바라보니 보일 수도 없지만, 할아버지를 따라 서해의 고도 상왕등도에서 잠시 생활하던 어린 시절 그 때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 간 내 인생의 숱한 뒤안길이 흘러가는 저 뜬 구름처럼 스쳐만 간다.
지금 필자의 머리를 떠나지 않는 것은, 오늘날의 우리의 가정과 사회, 그리고 국가의 모습에 대한 한없는 물음들이다. 그 중에서도 가정과 사회, 국가의 바람직한 모습을 유지시키는 공통된 요인은 무엇일까? 하는 원천적인 문제이다. 비단 오늘날의 우리의 상황만이 아니라, 동서고금을 통하여 그 공통된 요인을 꼽아본다는 것은 얼핏 보면 평범한 문제인식일 것 같지만, 기실 시의적절한 주요 현실적인 사회문제가 아닐 수 없다.
우리의 가정은 이미 핵가족이 된지 오래되어, 정(情)보다는 가족 간의 갈등이 도사리고, 사회 역시 통합보다는 온갖 갈등이 얽히고설켜 극심한 대립양상이 그 도를 넘고 있다, 위정자들 또한 작금의 국회인사청문회 그리고 박정희 대통령이 ‘현충사’라는 현판을 쓴 것까지 시비를 걸며 이른바 적폐청산을 들이대는 것과 같이 분열과 대결 구도가 갈수록 심화되고 있으니 이 일을 어쩔까?
이러한 현상에 대한 동서고금의 공통된 대책은 무엇이며, 또한 가정과 사회, 그리고 국가를 바람직하게 유지하는 그 요인은 도대체 무엇일까?
이런 문제를 쾌도난마로 해결할 수 있는 열쇠가 바로 “신뢰성(信賴性)과 직분(職分)”의 문제가 아닐까 싶다.
믿음(信)은 어떤 신앙상의 문제만이 아니다. 서로가 서로를 믿는 윤리적 규범에서의 믿음, 즉 신뢰성(信賴性)의 문제이다. 신뢰의 기초가 부실한 가정이나 사회, 나아가 국가는 우선 평온과 바람직한 관계를 기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가정에서는 가족구성원 상호간에 신뢰성이 있어야 화평이 올 수 있고, 사회나 국가 역시 신뢰성의 토대가 굳건해야 갈등과 분열을 잠재울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교육에 있어서는 학생과 교사는 신뢰성의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교육은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이고 더구나 혼(魂)과 혼(魂)과의 접촉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교육은 사람에 대한 신뢰성이 없이는 결코 성립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 교육계에서는 “학생인권조레”를 제정하여 학생의 인권을 위하는 척 하지만, 기실 결과적으로는 교사를 무력화시키고 학생과 교사 간을 대립적인 관계로 만들어 놓고 있으니 참으로 딱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학생의 인권 운운하지만, 미숙한 학생들은 사회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인권을 인식해가고 보호를 받는 것이지, 무슨 인권조례까지 제정하여 학생들의 인권을 보호할 사항이 아닌 것이다. 이왕 말이 나왔으니,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한다면 교사인권조례도 제정했어야 할 것이 아닌가? 조례까지 만들어 학생인권을 보호하기보다 더욱 급한 것은, 교육에서의 교사와 학생간의 “신뢰성의 확보문제”라 할 것이다. 그리하여 교사와 학생은 신뢰성의 바탕 위에서 혼과 혼의 접촉을 통하여 교학상장(敎學相長)하는 것 아니겠는가?
국가적인 측면에서 위정자의 신뢰성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신뢰성은 아마도 위정자의 첫 번째 덕목일 것이다. 위정자는 자기가 한 말에 책임을 져야 위정자와 국민 간에 신뢰성이 확립되고, 그런 바탕위에서 국가의 평온과 번영이 기약될 것이다. 위정자가 식언을 하거나 교묘하게 번복한다면 국민은 더 이상 위정자를 존경하지 않으며, 지탄의 대상이 되어 정치적 생명까지 위태롭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위정자들은 적어도 다음의 두 가지는 기필코 인식해야 할 것이다.
「논어」에서 공자(孔子)의 말이다.
“백성들이 믿지 않으면 나라가 존립할 수 없다.(顔淵篇: 民無信不立)”
“법으로 이끌고 형벌로 다지면 백성들이 빠져나가되, 염치를 안 느낀다. 그러나 덕으로 이끌고 예로써 다지면, 염치를 느끼고 또한 착하게 된다.
(爲政篇: 道之以政, 齊之以刑, 民免而無恥, 道之以政, 齊之以禮, 有恥且格)
우리 사회는 역할(役割)만 중시하고 강조하는 것 같다. 그러나 역할은 다만 기능적인 문제일 뿐이다. 역할만 주장하다 보면, 여자가 남자를 대신하여 할 수도 있고, 역으로 남자가 여자를 대신할 수도 있다. 이렇듯 역할이 만능일 것 같지만 기실 그 역할에는 또한 한계가 있다. 그러나 우리가 역할보다도 더 중시해야 할 것은, 동양에서 고래로 전승되는 가정과 사회를 지탱해온 “직분(職分)윤리”라 하겠다. 직분을 망각하니 위정자의 처신은 지탄을 받고, 사회는 제구실을 못하고 돈과 힘만이 존재하며, 가정은 가정대로 싸구려 합숙소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직분은 개인의 조직에 대한 관계도 아니고, 조직의 개인에 대한 관계도 아니다. 직분은 바로 조직 내에서 개인과 개인의 정 위치이다.
그러므로 직분은 넓게 볼 때는 일종의 권리적인 성격을 띤 것이요, 좁게 볼 때는 하나의 의무적인 성격을 띠는 것이다. 따라서 직분은 권리와 의무가 복합된 상태를 의미하며, 또한 그런 권리를 의무화 시키고, 그런 의무를 권리화 시키는 것도 뜻한다고 할 것이다. 직분을 가장 적절히 표현하고 중요시 한 것은 공자이다. 「논어」에서 공자가 말했다.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고, 어버이는 어버이다워야 하며,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顔淵篇(君君. 臣臣, 父父, 子子)”
이는 바로 공자의 정명사상(正名思想)의 표현이기도 하지만, 바로 필자가 거론하는 “직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각자의 직분을 망각한다면, 종국에는 엄청난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즉 임금이 임금답지 못하면 요즘 말로 표현한다면 쿠데타가 발생할 것이고, 신하가 신하답지 못하면 임금의 독재가 있을 것이고, 어버이가 어버이답지 못하면 자식은 고아원 신세로 버림받게 될 것이고, 자식이 자식답지 못하면 어버이는 양로원에서 처량한 노후를 보내게 될 것이라는 것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결국 각자의 직분이 바로 선 토대 위에서, 역할이 제대로 바람직하게 되어야 가정은 가정다운 가정이 될 것이고, 사회는 사회다운, 그리고 국가는 국가다운 국가가 될 것이다.
신뢰성이 충만하고 역할보다도 직분이 강조되는 가정 · 사회 · 국가는 언제쯤이나 볼 수 있을 것인가?
신뢰성과 직분을 말하다 보니, 학력이라고는 초등학교의 입학의 사실도, 졸업의 사실도 없는 것이 전부인 “월녀”라는 그 여인의 신뢰성이 넘치고 그 직분에 충실했던 모습이 불현 듯 떠오른다.
만약 월녀가 살아 있다면, 그는 월촌리라는 마을에서 줄 곧 살아왔으니 위장전입 같은 것도 없었을 것이고, 몸소 농사를 지었으니 농지법 위반은 더더욱 없었을 것이다. 또한 학력이 없으니 논문표절 같은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그야말로 자연 속에 묻혀 뿌린 대로 거두는 장하고 떳떳한 인생을 살고 있을 것이다. 짧은 인생의 여정 속에서 월녀는 신뢰와 직분에 충실했기에 그 녀가 떠나던 날 온 동네가 슬퍼했던 것 아닌가?
인생!
그것은 푸른 하늘에 흘러가는 한 조각 흰 구름 같은 것, 또한 유구한 영겁의 시공 속에서 보면 찰나에 불과한 존재가 아니겠는가?
그런데도 무엇이 더 갖고 싶어 과욕을 부리고, 무엇이 모자라 신뢰성을 저버리며, 무엇을 더 바라기에 직분까지 망각하는 것인가?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잡다한 사념들이 석양 비낀 강변길을 걷는 이 늙은이의 마음을 짓누르고 있다. ................................
十月이 오면
연정 김경식
언제나 그랬듯이 10월이 오면 개천절과 한글날을 맞이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그날을 실내 행사만으로 끝내버리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저 연례행사만으로 조용히 치러버리면서 미이클 잭슨의 내한 공연에는 신문보도 부터가 떠들썩한 것이 요즈음 우리들의 정신적 풍토이다.
오늘을 즐기고 몸에 와 닿는 실리만을 챙기는 감각문화에 적어버린 오늘을 사는 세대이고 보면 바삐 돌아가는 연륜 속에서 수천 년 전의 단군성조를 생각하는 것 자체가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어찌 보면 그럴만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라는 주체는 어디서 왔을까? 오늘에 있기 까지 삶의 궤적을 형성해 온 그 시발점은 어디서 구할 것인가? 한번쯤은 생각해 볼 일이다.
‘나’라고 하는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그 뿌리를 인식하지 않을 수 없고 나의 ‘오늘’의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어제’라는 삶의 연속을 외면할 수 없다.
어느 때 부터인지 모르지만 조상에 대한 관념이 희박해 지고 있다. 경박한 생각으로는 조상숭배를 하나의 미신으로 돌려버리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동양문화라는 풍토적 생활유형 속에서 조상숭배는 그 정식적 지주를 이루어 왔다. 이러한 정신적 배경 없이는 민족의 주체성을 생각할 수도 없다. 오늘날 ‘민족의 주체성’은 부르짓고 있으면서 개천절의 참된 의미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으니 참으로 알고도 모를 일이다.
필자는 십여 년 전 문화유적 답사 중 연산의 개태사에 들렸을 때 그 경내에 있는 단군성조의 사당에 참배한 일이 있다. 사당 내에 있는 단군성조의 영상은 일제하에서도 한 보살님이 40여 년 동안 모셔오며 10월 3일이면 제(祭를 올렸다는 것을 그 보살님의 신도비가 말해주고 있다.
지난 6월 중에 민족교육 자료 연구차 중국의 연변에 들렸을 때 그 곳의 전직 교장 출신이라는 분과 인터뷰한 일이 있었다. 그 분의 말에 의하면 자기가 어렸을 때 그의 어머니는 늦가을 제일 잘 익은 벼 이삭을 이 논, 저 논에서 골라 손으로 훑어 밥을 지어 그것으로 한 밤중에 단군에 제사하고 그 밥을 자식들에게 하나도 남김없이 먹여 주었던 ‘단군 제사’의 상황을 증언해 주었다. 이로 보면 일제 강점기하 어려웠던 시기에도 이국에서 한에 맺힌 서러운 삶 속에서도 단군성조에 대한 기리는 마음은 면면히 존속해 왔음을 알 수가 있다. 그 보살님, 그 재중 한민족 부인은 왜 그렇게 하였을까?
한글날도 개천절 기념행사와 같이 그저 연례행사로 스쳐버리지 않고 이젠 한글날의 의미를 되새기며 한글의 소중함을 인식하자. 이 지구상 문자를 가진 민족과 국가가 우리만은 아니다. 그러나 한글과 같이 과학적인 어법을 가진 경우는 없다고 세계의 언어학자들이 말해주고 있다. 한 나라의 문자와 말이 과학적이든 비과학적이든 간에 의사소통의의 수단이라는 점에 있어서는 가치의 우열이 없다. 그러나 한 나라의 문자를 통하여 그 나라의 문화는 전수되고 또 문자와 말을 사용함으로써 민족 특유의 정서가 형성되는 것 아닌가?. 그러기에 선진국일수록 국어교육을 중시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문자를 기초로 한 언어는 되도록 정확하게 사용해야 한다. 그러기에 교과서적인 면에서는 바르게 지도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오늘날 현실의 한 경우를 보면, 지적으로는 고등교육을 받았거나 받고 있는 나이에 사용하는 말은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에 사용하던 말을, 그것도 ‘유창하게(?)’ 사용하고 있는 것이 요즈음의 3,40대 이전의 세대이다. ‘아버지’, ‘어머니’라고 부를 나이에 그대로 ‘아빠’, ‘엄마’라고 하고 있으니 말이다. 사용하는 언어는 개인에 있어서는 성장에 따라 달라지며 그 사용하는 언어는 바로 개인적으로 품위와 인격과 정서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내년부터는 초등학교 3학년부터 영어가 정식 교육과정에 포함된다는 대목이다. 물론 이것은 ‘세계화’ 교육의 일환일 것이다. 세계화 교육을 시도한다면 영어만으로 한정할 필요도 없으며 다양한 언어 선택권을 학습자에게 주어야 할 것이다. 또한 그것이 창의적인 교육의 정신에도 합당할 것이다. 언어 ‘학습’은 되도록 어렸을 때부터 해야 효과적이라는 것은 교육이론에 있어서도 이미 상식에 속하는 말이다. 중요한 것은 언어(영어)‘교육’의 문제다. 언어교육은 의사소통이라는 기능적인 학습보다도 중요한 것이 언어(영어) 사용으로 인한 인간의 감정 내지 정서의 문제다. 어렸을 때부터 영어사용으로 인하여 오는 한국인의 정서 장애를 누가 보상할 것인가? 알알이 익어가는 만추의 계절에 모두들 한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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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추(初秋)의 수상(隨想)
연정 김경식
1
방장산 봉우리를 희롱하던 *방장산은 고창, 장성 분계를 이루는 산으로 600고지
조각구름
길손처럼 떠나가고
보도산 죽림에 *보도산은 필자의 고택 뒷동산
황혼이 내려앉자
산비둘기들 근심에 잠기네
오봉산 스친 가을바람 *고창휴계소 뒷편 동서로 놓인 산줄기
서늘하게 허리를 감아 부니
어디다 둘 데 없는
늙은이 마음속엔
적막만 쌓이네
2
못내 기다리는
그 사람은 영 올
생각을 않는 가
보도산 지친 그림자만
석양 놀에 빠져가고
강변 적신 가을비
발목 삔듯 가버리자
강물에 서려 피는 부산한
물안개는 수심 속에
짙어가네.
3
새삼
낡은 서가 가득 매운
고전(古典) 하나 탐독하니
아,
여태 주름진 세월들이
바로 참선(參禪)의
세월인 듯 하고나
마음속에 기상(奇想) 하나
불현듯 떠올라
그 모습 그리려는데
초추의 심연(心淵)엔
설익은 풍경(楓景)들만
잠투정을 하구나.
............................................
태안사(泰安寺)에서
연정 김경식 (연정교육문화연구소장)
동리산(桐裏山)자락에
적막이 스며들어
숲 속의 산새들도
나래쪽지 내려 접고
태안사 산문(山門)에
황혼이 저무네
결결이 원을 그리며
웅아하게 퍼지는 범종소리
맥놀이에 놀란
사미승(沙彌僧)들 발길이
소리 없이 바쁘고
주지스님 말동무들
다람쥐도 쫑긋쫑긋 저녁예불
분주하다
경인(庚寅)년
6.25 초연(硝煙)이
속절없이 미친 이 곳
꽃다이
산화한 젊은 혼령들이
자기들이 살아 있는 줄 알고
땀에 젖은 군복에 총 들고
능파각 쪽으로 뛰어가고 있고나
아물지 않은 상처가
덧나는 듯
아직도
겨레의 아픔은 갈수록
도져만 가니
전몰전경(戰歿戰警)
꽃다운 혼령들의
지울 수 없는 통한(痛恨)마저
부처님 법당을 울리려는 듯
제곡조에 부대끼는
저녁예불 독경(讀經)소리에
목탁소리도 가늘게 떠는고나
누구라
시절인연을 비켜서
갈꼬
얽히고설킨
자욱한 안개는
어느 나절에나 걷히어
청량(淸朗)한 풍경소리가
산 하나를 울리려나
부처님 미소에 흐르는
고요한 우수(憂愁)에
산사(山寺)를 찾아드는
나그네 발길마저
질정 없이 수수(愁愁)롭네
*태안사(泰安寺):
전남 곡성군 죽곡면 원달리 동리산(桐裏山)에 있는 신라시대 고찰(古刹)/
최초의 선종사찰로 신라말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8C 신라 혜철선사가 창건함/
*태안사는 6.25때 우리 전투경찰이 끝까지 사수(死守)한 격전지이다.
* 사미승(沙彌僧): 출가하여 십계를 받은 젊은 남자 승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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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팔순(八旬)의 그리움
연정 김경식 (연정교육문화연구소)
연상의 여인, 그 녀
어느 해 여름 밤새도록
개화도에서 뭍으로 나온
그 이야기만
밤하늘의 별들에
세기고 새겼었네.
이른 아침
지친듯한 눈빛으로 건네주는
백련차 한 잔, 그 짙은 향기
가슴을 적셨네.
그리고는
이따금씩 꿈속에서
다 헤져 남루한
그림자만 서로가
바꿔 볼 뿐.
얼마나 되었는지
환한 웃음소리마저
반딛고리 챙기듯
모질게 쓸어 담아 떠난 분녀,
저녘 연기 재잘대는
눈에 익은 마을길
꽃길 따라 오는데
별안간
돌개바람 흙탕물에
자막질로 허우대는
분녀
아,
아무리 소리쳐도
꽉 잠긴 목소리는
입속에서 맴돌구나.
어젯밤 꿈
꿈속의 꿈이었나,
새벽녘 동이 트는데
빛바랜 그리움 한 오라기가
저만치서
대롱거리며
팔순의 줄에 매달려
앙글거린다.
.
...................................
연정서실
연정 김경식
누백 년 고소(古巢)
창밖의 달빛
밝기도 한데
남풍마저 서늘하고
귀뜨라미 소리
정원에 그득하네.
서가의 책 넘기는 책장
깊은 밤에 졸건만
즐거움은 거기에 있네.
책 속에 찾는 님
어제도 오늘도
늘 다음 장에
있을 것만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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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의 강변길을 거르며
연정 김경식
며칠만의 강변길을 걷는지도 모르겠다. 저 편의 누런 벼도 더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것 같다. 내가 이 길을 산책해 온지도 벌써 10여년을 넘고 있으니 세월도 흐르고 있는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이 강변길을 걷는 시간은 나에겐 자신과의 조용한 대화시간이기도 하다. 이 길 위에서 나는 내 자신을 생각하기도 하지만 주로 연구해 오는 주제의 내용의 전개에 대한 것들이 재단되고 있으니 어쩜 이 시간만은 나에게 참으로 소중한 시간들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요즈음은 나 자신에 대한 반추의 시간들이 강변을 따라 흐른다, 오늘은 유독 며칠 전 고창지방 전고동창회가 생각된다. 지회장이라는 후배가 선배님들 꼭 참석하시어 좋은 말씀 주시라는 부탁도 있었으니 말이다. 그 또한 50을 넘은 나이지만 자기들 기수 위의 선배들을 먼저 생각하고 있으니 참으로 고마웠다. 고창지방 동문은 50여명을 넘고 34회부터 74회까지이다. 내 이름이 연락 명단의 제일 위에 있으니 늙어 감을 실감할 수밖에 없다.
지나온 내 삶의 그 세월을 생각하면 긴 것도 같고 짧은 것도 같은데 나는 그 과정에서 무엇을 해 왔을까? 그에 이르러서는 내가 세월을 비켜왔는가 세월이 나를 비켜 왔는가 그걸 모르겠다. 나는 그 과정에서 무엇을 했을까? 내가 해낸 일은 무엇일까? 하는 많은 사념들이 석양의 이 길을 걷는 나에게 조용히 자문자답케 하기만 한다.
요즈음 내 마음에 와 닿는 어느 스님의 말씀이 있다.
“내가 한 평생 이 벌레처럼 오그렸다 폈다 한 생이었구나.” 이 말은 설악산 신흥사 조실(祖室)로 있는 조오현 스님의 돈오송(頓悟頌)이다. 퍽 마음에 와 닿는 말씀이다.
오고 가고 만나고 헤어지는 것이 다 인연(因緣)이거늘, 오고 가는 그 사이에서 우리 인간은 벌레가 오무렸다 폈다하는 것처럼 인간의 삶의 몸부림이 있는 것 아닌가? 그리고 우리는 오무렸다 폈다하는 그 사이에서 만나고 헤어지는 것 아닌가“
한 평생 백년을 산다 해도 그건 유구한 영겁으로 보면 한 찰나에 불과 하지 않는가? 그런데도 더러는 마지막 인생을 위하여 노후를 준비한다거나 어떤 이는 한번 밖에 살지 않는 이 인생 즐겨보자는 그러한 인사들을 나는 주위에서 흔히 보고 있다, 그러나 그 보다는 주어진 인생, 열심히 살아간다는 그 자체가 보다 더 중요하지 않을 까?
우리 인간은 아무리 강하더라도 천명(天命)과 시운(時運)을 피할 수 있는 재간이 없다. 그저 우리는 영원한 시공 속에서 보면 산다는 것과 죽는다는 그것은 생(生)과 사(死)라는 숨바꼭질이며 손바닥 한번 뒤집는 것 같은 시공(時空) 속에서의 다만 자기의 위치 변동한 것으로 보여질 뿐이다, 따라서 필자는 그러한 의미에서 산자나 죽은 자는 생사일여(生死一如)의 관계 속에서 살아 있던 죽어 가던 영원한 시공 속에서 같이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본다. 그저 그 명칭이 산 사람, 죽은 사람일 뿐일 것이다. 그러기에 산자와 죽은 자는 영원한 시공 속에서 같이 존재하는 것 아닐까?
산다는 것은 무엇이며 죽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이와 같은 생사의 문제는 나에겐 별 의미가 없는 것이다. 다만 의미가 있는 것은 오늘의 주어진 일에 충실하며 선(善)해 지려고 노력하는 것 뿐 이다. 그러기에 필자는 정년 후 귀향하면서 하나의 황혼의 주제로 설정한 목표가 있다. “털고, 남기고, 떠나기” 그것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쁜 인연을 털어버리고 다음 세상으로 가자는 것이며. 이왕 이 세상 살아왔으니 그 흔적으로 글을 남기자는 것이며, 그리고는 갈 때가 되면 있는 그대로 저 세상으로 떠나가자는 것이다. 어차피 이승과 저승은 영원한 시공 속에 존재하는 것 아닌가?
석양 노을이 짙게 깔리는 이 강변 길, 저승으로 떠나는 그 길도 이 강변 길 같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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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뽀로 유감(遺憾)
연정 김경식 (연정교육문화연구소장)
삿뽀로 어느
산장가는 길
꼬부라진 산길
돌고 넘는 고갯길
산장 가는 길은
밤이 아닌데도
어둠이 뒤따르고
운상(雲上)에 발 딛고
수 천리 고향산천
그리움
켜켜이 꾸려
저 멀리 내 고향
하늘로 던졌더니
아,
대낮부터 졸고 있는
새악씨 눈섭 같은
낮달이
냉큼 받아 앙글거릴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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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해도 단상(斷想)
연정 김경식( 연정교육문화연구소장)
설국(雪國)의 땅
북해도 푸른 바다
지평선 저 멀리 하늘자락
바다보다 더 푸르네
곳곳에 펼쳐진 산등성이
하얀 묏부리들
맺지 못한 초련(初戀)의 애한(哀恨)을
두고두고 머금은 듯
어설한 우수(憂愁)의 그늘들이
눈시리게 흐르고
봉우리 밑 등성에는
자작나무 숲들이 보란듯이
누렇게 타고 있구나
추수 끝난 들녘엔
만추(晩秋)의 칼바람이 살을
에듯 뛰놀고
곳곳에 치솟는 온천장
유황내음은
세상에 누러붙은 티끌을
쓸어내 듯 현기증마저
일구나
석양(夕陽)의 관광에서 만난
사할린 동포
한달음 바다 건너 껑충뛰면
고향산천인데...
기약 없는 기다림에
백발만 성성하고
버릇없이 굴곡진 주름이
얼굴에 가득해도
차마 갈 수 없는 나의
고향!
아,
얼마나 더 피눈물을 쏟아야
내 고향 내 냄새에 묻혀
정든 산천 안아 볼꼬?
망향의 서러움조차
이제는
빛바랜 그리움 되어
저승길목 구석에서
어서 오라 손짓을
하는데
이국 땅 늙은 목숨
쇠심줄마냥 심장에
달라붙어
녹슨 세월 삼키지만
잘가시오!
악수하는 사할린 동포의
굴곡진 그 손아귀엔
워낙이나
서러웠던 민족의 아픔이
아직도 고스라니
살아 남아
팔순 나그네의 발목을
잡는구나.
첫댓글 연정, 이렇게 지러서 어뜨게 다 읽것냐?
다음에 시간 내서 읽어 보고 연락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