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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산림 대법회 51강-3 (2014. 5. 12.)
大方廣佛華嚴經 卷第十七
初發心功德品(초발심공덕품) 第十七.
七. 法慧菩薩의 重頌
28. 時處平等
29. 修行助道法
30. 力과 無所畏
화엄경은 누가 공부해요? 大心중생이 공부한다. 마음 큰 중생이 공부한다.
그리고 화엄경공부하면 大心중생이 됩니다. 마음 큰 중생이 된다. 이 말입니다. 걸핏하면 불가설 불가설 불찰 미진수ㆍ무량ㆍ무수. 자꾸 이것이 우리를 세뇌를 시키고 있습니다. 우리의 눈과 귀가 끊임없이 그런 광대한 세계를, 그것이 우리 마음의 세계고, 실재 현상이기도 하고요. 그런 세계를 우리를 향해서 세뇌 시키고 있는데요. 거기에 우리가 세뇌가 안 되겠습니까?
우리 저절로 세뇌가 됩니다. 습이라는 것이 무서운 겁니다. 자꾸 익혀지는데요. 大人法이라는 것이 화엄경의 이치고, 그것은 말하자면 大心중생의 공부이고, 그렇습니다.
28. 時處平等
善知世間長短劫과 一月半月及晝夜와
國土各別性平等하야 常勤觀察不放逸이로다
善知世間長短劫(선지세간장단겁)과,
세간의 긴 세월 짧은 세월 一月半月及晝夜(일월반월급주야)와,
一月ㆍ半月ㆍ그리고 낮ㆍ밤, 그리고 시간의 문제이고, 그 다음에
國土各別性平等(국토각별성평등)하야,
국토가 각각 차별하지요. 별이 차별하고, 국토가 차별하고, 나라가 차별하고 5대양 6대주가 다 차별하고 또 나아가면 저~ 은하계 많고 많은 별들이 다 차별해요. 그런 차별하지만, 그런 차별 속에 평등한 도리. 평등성을 善知.
잘 안다. 잘 알아서, 평등성이 뭐라고요? 공성입니다. 空性.
아파트가 크다.ㆍ작다. 그것 다 空性에서 보면 똑 같습니다.
시간도 길다.ㆍ짧다. 나이가 많다.ㆍ적다. 하는 것도 공성의 입장에서 본래의 자리, 공성의 자리에서 보면 똑 같습니다. 똑 같이 평등하다고요. 공간도 평등하고 시간도 평등합니다. 그런 양면을 우리가 동시에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은 그것을 동시에 가지고 두 바퀴처럼 굴러가고 있는 것이 우리 인생살이입니다. 그것 평등한 면도 있고 차별적인 면도 있는데요. 왜 차별적인 면에만 집착해서 따지느냐고요. 평등한 면으로 눈을 돌릴 줄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승 속간의 문제도 평등하게 보면 ‘아, 똑 같은 사람이다ㆍ똑 같은 사람이다.’ 이렇게 보면 내 마음이 넓어지는 것이지요. 그것을 잘 알아서,
常勤觀察不放逸(상근관찰불방일)이로다.
항상 부지런히 관찰해서 방일하지 않도다. 그런 것을 우리가 평등성을 잘 관찰하면 시간도 공간도 온갖 차별성들을 평등하게 관찰하는 것. 그것 아주 중요합니다. 첫째 내 자신이 평화롭고, 그 다음에 여러분 사찰. 여러분 집안. 내 환경이 모두 편안해져요. 차별에 끄달려서 속이 상하고 기분이 언짢아 지면 평등 쪽으로 눈을 돌려버리세요. ‘그래 너는 지금 내 앞에서 잘못 했지만, 나는 네 안 볼 때 얼마나 잘못하고 살았는지 모른다.’ 이래버리세요.
그래버리면 그만 다 풀려버립니다. 상좌 안 볼 때 나는 얼마나 잘못하고 살았는지 모르잖아요. 그런데 상좌는 스님 앞에서 한 번 잘못 했다고, 그것만 가지고 물고 늘어지면, 속을 끓이고 있으면 그것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가 살면서 그런 상황 너무 많지요. 평등성. 좋은 법문입니다.
29. 修行助道法
普詣十方諸世界호대 而於方處無所取하며
嚴淨國土悉無餘호대 亦不曾生淨分別이로다
普詣十方諸世界(보예시방제세계)호대,
모두 시방 모든 세계에 普詣 = 널리 나아가되,
而於方處無所取(이어방처무소취)하며,
그 시방세계가 方處입니다. 그런 方處에서 취하는 바가 없으며,
그래요. 우리가 본래 共刹입니다. 4년마다 한 번씩 임기가 바뀌잖아요.
그럼 언제든지 내놓고 떠날 그런 생각을 딱 하고 살아야 되는데, 거기에 좀 공을 들이고 마음을 쓰고 거기에 아주 심혈을 기울여서 그 절을 잘 가꾸고, 여러 가지 신도 조직이라든지 여러 가지 잘하다 보면, 사실은 공은 공이지만, 그 새에 그것 때지요. 어떻게 보면 자기에겐 때입니다. 때가 묻어 버려요.
때가 묻으면 아~ 그것 떠나기 싫은 겁니다.
떠나기 싫어서 문제가 아주 많이 일어납니다. 이것은 비구ㆍ비구니 할 것 없이 항상 일어나는 문제입니다. 비구들 사이에 좀 더 많고, 비구니사이에서 일어나면 그것은 더 독합니다. 더 아주 지독한 문제가 생겨서...
지금 부산에도 큰 절이 하나 해결이 안 된 상태에서 늘 그 이야기만 나오면 아주 가슴이 아픈데, 그런 문제들. 참 얼마나 문제입니까?
無所取 = 취하는 바가 없어야 되는데 그것이 쉽지가 않은가 봐요.
아~ 어려운가 봐요. 제일 어려운가 봐요. 저기 어디 큰 절에도 그런 문제가 또 더러 생기고, 곳곳에 그런 역사가 그저 무수히 벌어지는 것이지요.
嚴淨國土悉無餘(엄정국토실무여)호대,
국토를 嚴淨히해서 남음이 없게 하되, 깨끗이 장엄한다. 청정하게 장엄한다.
亦不曾生淨分別(역불증생정분별)이로다.
또한 일찍이 嚴淨하게, 청정하게 장엄했다고 하는 분별을 내지 않는다.
자기가 공을 많이 들였어도 공을 들였다. 하는 생각을 안 낼 수만 있으면 오죽 좋겠습니까? 공이 진짜 얼마나 크겠습니까? 그런데 그것이 중생인 이상은 거기에 공이 들어가고 자기의 피땀이 들어가고 이렇게 하다보면 그것이 아주 참 어려운가 봐요.
그전에 큰 절 주지를 두 번하려고, 그 사람이 두 번했어요. 하는데
그런데 그것이 순리적으로 될 수가 없는 겁니다. “아이, 그것 뭐 골치 아픈데 내놓지,” 제가 이 소리 한 마디 했다가 혼났습니다.
“아이구, 무비스님이 절 내 놓으라 하더라.” 고, 그것 본래 공찰이고 역사가 1300년이나 된 절인데, 그것이 언제 지가 가지고 와서 지은 절도 아닌데,
‘그것 골치 아프게 왜 하느냐?’ 저는 이 말이지요. ‘지 좋으라.’ 고 ‘편안하게 살자.’ 이것인데, 그렇게 섭섭한가 봐요. 오뉴월 핫바지도 벗으려면 그렇게 섭섭하대요. 오뉴월 핫바지 그것 얼른 벗어야 될 건데, 그걸 벗으려면 그렇게 섭섭하대요. 그런데 하물며 다른 것이야, 공 들인 것이야 말할 것도 없지요. 그것도 또 우리가 이해해야 됩니다.
30. 力과 無所畏
衆生是處若非處와 及以諸業感報別이여
隨順思惟入佛力하야 於此一切悉了知로다
一切世間種種性과 種種所行住三有와
利根及與中下根이여 如是一切咸觀察이로다
淨與不淨種種解와 勝劣及中悉明見하며
一切衆生至處行과 三有相續皆能說이로다
禪定解脫諸三昧와 染淨因起各不同과
及以先世苦樂殊를 淨修佛力咸能見이로다
衆生業惑續諸趣와 斷此諸趣得寂滅과
種種漏法永不生과 幷其習種悉了知로다
如來煩惱皆除盡하사 大智光明照於世하시니
菩薩於佛十力中에 雖未證得亦無疑로다
力과 無所畏. 10력 이라고, 부처님을 표현하는데 10력이 아주 자주 등장한다고 제가 그 전에 말씀 드렸지요?
衆生是處와 若非處(중생시처약비처)와,
是處 = 도리, 앉을 자리 설 자리 도리에 맞는 것.
非處 = 도리에 안 맞는 것, 이것인데 이치에 맞다.ㆍ안 맞다. 이것 하나,
10력 가운데 그것이 1번인데, 是處와 非處. 그것이 1번인데, 야~ 이것이 앉을 자리인가? 설 자리인가? 떠나야 할 자리인가? 눌러 붙어야 할 자리인가?
이것 제대로 알면, 크~ 부처님은 그것 잘 아신다고 딱 여기다 첫 구절에 써 놨어요. 10력. 부처님은 着이 생기니까 한 나무 밑에 세 밤을 거듭 자지 말라. 그랬습니다. 두 밤만 자고 떠나라. 그랬습니다. 세 밤을 거듭 자면 벌써 거기 着이 생긴다는 것이지요. 부처님말씀 참 구구절절 옳은 말씀입니다.
정말 구구절절 이치에 맞고 옳은 말씀입니다. 중생의 심정을 속속들이 그렇게 꿰뚫고 계셨기 때문에...
及以諸業感報別(급이제업감보별)이여, 그랬습니다.
중생의 여러 가지 업들. 그리고 업에 의해서 보호를 받는 것.
感 = 감득한다. 내가 받는 것입니다. 보호를 받는 것이 각각 다른 것. 이런 것도 부처님은 환하게 아는 겁니다. 우리는 지가 지은 것도 모르고, 지가 지어서 받는 것도 몰라요. 그저 법문 할 때는 환하게 아는 것처럼 하면서 하하하하하하하 환하게 아는 것처럼 하면서 정작 자기 앞에 불똥이 떨어지면 하나도 몰라요. ‘내가 이렇게 해서 이러한 과보를 받는구나.’ 하는 것 캄캄해버려요. 남 원망하고, 다른 사람원망하고, 딴 것 원망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부처님은 두 번째 힘이 그러한 사실을 환하게 안다.
부처님도 뭐라고요? 定業難免이라. 결정된 업은 면하기 어렵다. 그런 표현을 하잖아요. 그런데 定業을 이겨내는 보살이 있습니다. 滅定業眞言.
결정된 업도 소멸하는 지장보살. 관세음보살은 滅業障眞言입니다.
그냥 滅業障眞言입니다. 그런데 지장보살은 滅定業眞言입니다.
야~~ 대단하지요. 그래서 지장기도는 여름에, 아주 뜨거운 여름에 땀 뻘뻘 흘리면서 막“지장보살”하고 불러대야 업장이 술술 잘 녹는 겁니다.
아 그것이 저는 딱 매칭이 되더라고요. 백중에 맞춰서 하다보니까 꼭 여름에 더울 때 지장기도를 하잖아요. 신도들도 그것을 또 좋아해요.
땀 흘리면서 한ㆍ두 시간 지장보살 부르고 나면 속이 시원한가 봐요. 업장이 어느 정도 소멸되니까 그렇지요. 그 다음에 또
隨順思惟入佛力(수순사유입불력)하야,
이것은 隨順해서, 그런 도리를 들으면 수순해서 사유해서 佛力에, 부처님의 힘에 들어간다. 是處와 非處. 도리와 도리 아닌 것. 이치와 이치가 아닌 것. 그 다음에 무슨 업을 지어서 무슨 과보를 받는다. 이것이 각각 다르다. 이 말입니다. 각각 달라요. 음식을 똑같이 먹었는데 소화하는 것도 다르고, 그 사람의 어떤 표현도 다르고, 소위 蛇飮水하면 成毒하고, 뱀이 물을 마시면 독을 이루고, 牛飮水하면 成乳라. 소가 물을 마시면 우유가 된다.
참 정말 기가 막힌 문장들이지요. 얼마나 이치에 똑 떨어집니까? 똑 같은 물인데 뱀이 물을 마시면 독이 되지만, 소가 물을 마시면 우유가 된다. 말입니다. 그러한 것들을 다 안다. 이런 뜻이지요. 그런 것이 부처님의 佛力.
부처님의 열 가지 힘 가운데 해당 됩니다.
於此一切悉了知(어차일체실요지)로다.
여기에서 = 보리심을 발한데서, 於此는 그겁니다. 지금 初發心功德品이니까요. 처음 보리심을 발한 여기에서 그 일체를 다 了知한다. 말입니다.
부처님이 아는 열 가지 힘을 다 了知한다.
一切世間種種性(일체세간종종성)과,
일체 세간의 가지가지 성품과, 그 다음에
種種所行住三有(종종소행주삼유)와,
가지가지 행한 바로써 三有에 머무는 것과, 三有 = 欲界ㆍ色界ㆍ無色界, 3계지요. 그리고 利根及與中下根(이근급여중하근)이여,
영리한 근기ㆍ중간근기ㆍ하 근기. 소질 따라서 다 근기 있습니다.
공부에는 하근기인데, 노는 데는 상근기가 있고, 하하하하하하 노는 데 하 근기인데, 공부에 상근기 있고요. 그것도 여러 가지지요. 또 다른 일하는데 밭일을 한다든지, 다른 사중 일을 한다든지, 봉사활동 한다든지 이런 데서, 거기도 또 상ㆍ중ㆍ하근기가 다 다르게 나타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어디에 한 가지 잘못한다고, ‘아 저 사람, 여기에서 잘못하는 것 보니까 다른 데는 아주 뛰어난 부분이 있구나.’ 이것 알아야 되는 것이지요.
우리가 요즘 자녀들 교육에도, 무엇이 자녀들에게 소질이 있는가?
평생을 해도 싫증안내고 잘 성공 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인가? 이것 제대로 알아서 착~ 찾아주는 것, 이것 중요한 겁니다.
그저 부모들 자기 못다한 한 푼다고 맞지도 않는 것, 피아노에 아무 소질도 없는 아이를 계속 피아노학원에 돈만 잔뜩 넣어놓고 피아노학원 보내서 결국 하나 피아노로 하나 성공도 못하고, 그림그리라고 막 보내 놨는데 돈만 잔뜩 넣어놓고 그림으로 성공도 못하고, 다른데 시간 다 보내버리고, 그러니까 그것을 잘 알아서... 요즘은 그런 데에 굉장히 관심을 많이 쓰지요?
如是一切咸觀察(여시일체함관찰)이로다.
이와 같은 일체를 다 관찰함이로다. 야~ 중요한 이야기들 아닙니까?
이런 것 가지고 여러분 사찰에서 법문하면, 이런 것 큼직하게 한 페이지 뽑아서, 그리고 거기다 설명 좀 하고해서하면 좋은 포교 소재가 되지요.
利根, 근기를 아는 것. 이것도 부처님의 열 가지 힘 가운데 들어가고요. 그 다음에
淨與不淨種種解(정여부정종종해)와,
청정한 것, 청정하지 못한 것, 중생들 업이 그것이 청정한 것인가? 청정하지 못한 것인가? 하는 그런 것과, 그리고 가지가지 이해와 그 다음에 그 이해 가운데 勝劣及中悉明見(승렬급중실명견)하며,
수승한 것, 하열한 것, 그리고 중간 간 것. 그렇습니다. 모든 사람들이요?
업을 짓는 것도 역시 그렇고, 또 분야ㆍ분야 따라서 수승한 면도 있고, 하열한 면도 있고, 중간 가는 사람도 있고요.
우리가 말을 3단계로 이렇게 이야기를 해서 그렇지, 利根ㆍ중근ㆍ하근.
여기서 勝ㆍ劣ㆍ中. 이것도 상ㆍ중ㆍ하인 셈이지요. 그런데 제대로 또 세분한 데는 9품이 있잖아요. 그것은
九品 = 하지 하ㆍ하지 중ㆍ하지 상.
중지 하ㆍ중지 중ㆍ중지 상.
상지 하ㆍ상지 중ㆍ상지 상. ←이렇게 九品으로 나누는 겁니다.
그것이 좀 세분화된 것이지요. 또 그것 가지고도 사실은 다 만족하게 나눠지는 것은 아닙니다만, 그러나 그 정도만으로도... 그런 것을 悉明見하며,
一切衆生至處行(일체중생지처행)과,
이것은 무슨 말인가 하니, ‘중생이 죽어서 어디 가서 태어나는가?’
이것이 이 이야기입니다. 우리 모르잖아요. 그것 알려고 공부하는 것인데요. 우리가 열심히 이렇게 공부하면 다음 생도, 내일의 내 인생도, 그 다음에 내년의 내 인생도, 그리고 내생의 내 인생도 어떻게요? 오늘, 그리고 금생에 열심히 지은대로 귀착이 된다. 그것 밖에 믿을 것이 없는 겁니다. 그것이 또 정법이고요. 그것이 정법인겁니다. 그것 믿고 우리가 사는 것 아닙니까?
欲知來生事인댄(산댄) 今生作者是라. 내생 일을 알고자 하는가?
금생에 짓는바가 바로 그것이니라. 우리가 그래도 전생에 이만한 인연이 있었기에 금생에 이렇게 와서 공부하잖아요. 전생에 인연 없으면 이렇게, 금생에 이런 공부 못합니다. 어림도 없어요. 이웃에 있어서 소문 많이 듣고 잘 알아도 공부하러 안 옵니다. 한두 번 왔다가 안 오는 사람도 있고요. 멀리서도 열심히 오시는 분들도 있고요. 그래서 오시는 분들에게 제가 늘 마음으로 얼마나 고마워하는지... 여러분 앞에 대놓고는 잘 안 해도 다른 자리에선 너무 제가 고맙게 생각을 합니다. 一切衆生至處行.
三有相續皆能說(삼유상속개능설)이로다.
欲界ㆍ色界ㆍ無色界, 三有가 여러 번 나오지요? 거기에 相續하는 것을 다 능히 설함이로다. 부처님의 힘 가운데 이것도 또 들어가지요. 그 다음에 또 부처님의 힘 가운데 禪定解脫諸三昧(선정해탈제삼매)와,
선정ㆍ해탈 그리고 삼매. 이것도 부처님의 열 가지 힘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이지요. 그 다음에 또 染淨因起各不同(염정인기각부동)과,
因으로 일어나는 것이 각각 不同하다. 그렇지요. 그것도 중생들 업입니다.
중생들의 업이 물든 업을 지었으면 그것이 하나의 씨앗이 돼서 물든 어떤 작용이 일어나고, 청정한 업을 지었으면 청정한 그것이 因이 돼서, 씨앗이 되어서 청정한 그런 현상을 일으킨다. 그것이 각각 不同한데, 부처님은 환히 꿰뚫고 있다. 우리는 그저 미루어 짐작하는 겁니다.
欲知來生事인댄 今生作者是라. 그러잖아요.
전생 일을 알고자 하는가? 모르지요. 今生受者是라.
금생에 우리가 받고 있는 것이, 지금하고 있는 것이 전생에 우리가 지은 것이지 다른 것 있나요? 딱 맞는 이치입니다. 그 누구도 변명할 여지가 없습니다. 이것은 부처님이 아셔서 우리에게 가르쳐줬지만, 부처님이 만든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모든 인생사가 그렇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부처님은 아실뿐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듣고 혼자 가만히 혼자 사유해보면 참 맞는 말씀이고요.
아주 맞는 말씀입니다. 그러한 사실도 부처님의 열 가지 힘 가운데 들어갑니다. 染의 因, 淨의 因으로 일어나는 것이 각각 不同하다.
及以先世苦樂殊(급이선세고락수)를,
이것도 10력 가운데 하나지요? 先世 = 먼저 세상에서 고통을 받고 살았는가? 樂을 받고 살았는가? 이것이 다른 것을
淨修佛力咸能見(정수불력함능견)이로다.
청정하게 부처님의 힘을, 佛力을 닦아서 다 능히 보는 도다. 그 다음에
衆生業惑續諸趣(중생업혹속제취)와,
이것도 10력 가운데 또 들어갑니다. 중생의 業惑으로,
업의 미혹으로써 諸趣에 계속되는 것과, 諸趣ㆍ諸有. 이것은 언제나 지옥ㆍ아귀ㆍ축생ㆍ인도ㆍ천도ㆍ아수라입니다. 이것은 죽어서 간다고 생각할 것 없습니다. 죽어서도 물론 가지만, 그 보다도 눈 뻔히 뜨고 바로 오늘 하루에도 마찬가지고, 금생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어떤 업을 짓느냐에 따라서 또 그 업이 계속 되기도 하고요. 그 다음에
斷此諸趣得寂滅(단차제취득적멸)과,
이것은 반대로 끊는 겁니다. 이 모든 갈래를 전부 끊어서 得寂滅과, 적멸을 얻는 것과 種種漏法永不生(종종루법영불생)과,
가지가지 새는 법. 번뇌의 법입니다. 가지가지번뇌의 법으로 영원히 生하지 않는 것과, 種種法과 永不生과, 두 가지로 봐야 되겠네요. 漏法은 생 법이고, 永不生은 생멸이 없는 법이고요.
幷其習種悉了知(병기습종실요지)로다. 그리고 아울러 그 習種悉了知로다. 습기와 종자. 우리가 익힌 습기. 그것이 종자가 돼서, 우리가 익힌 것이 종자가 됩니다.
종자가 되면 그 다음에 종자는 싹을 틔우잖아요.
그것이 현행입니다. 그 다음에 습기→ 종자→ 현행. 습기→ 종자→ 현행.
이것이 계속 뺑뺑이를 돕니다. 우리가 익힌 것이 종자가 되고, 종자는 다시 현행. 밖으로 나오고요. 우리가 농사를 지어보면 그것 훤히 알지요.
우리가 어떻게 가꾸었느냐? 그 종자가 실할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는 겁니다. 그럼 그 종자 따라서 현행이 달라집니다. 싹을 틔우는 것이 달라져요.
그래서 종자를 골라서 심잖아요. 동물도 種豚. 種馬. 種牛. 다 있잖아요.
소도 종자 소. 돼지도 종자 돼지. 말도 종자 말. 왜 그렇게 골라서 하겠습니까? 종자가 중요해서 그래요. 종자가 중요해서...
그 種馬. 種牛. 種豚을 만들려면 잘 키웁니다.
아주 잘 키워요. 그것이 習입니다. 그러면 좋은 새끼가 나오는 수밖에 없지요. 그것이 현행입니다. 습기→ 종자→ 현행. 습기→ 종자→ 현행.
이것이 끊임없이 반복이 되는 것이 우리 삶의 현상입니다. 우리가 열심히 공부하면 거기 따라서 공부한 만치 표현이 되는 것이지요.
그런 것을 悉了知한다. 이것도 부처님의 10력 가운데 하나입니다.
如來煩惱皆除盡(여래번뇌개제진)하사,
여래께서 번뇌를 다 제하여 다 하사,
大智光明照於世(대지광명조어세)하시니,
큰 지혜 광명이 세상을 환히 비추시니,
大智光明. 제가 참 좋아하는 말입니다. 大智光明. 초파일에 우리가 등을 밝혀서, 불을 켜는 것은 부처님의 지혜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부처님을 상징하는 것이고, 부처님의 깨달음을 상징하는 것이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상징하는 것이 빛이다. 말입니다. 어두운 세상을 비추는 빛이다. 그래서 오늘 날 전기불이 그렇게 발달했음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그 의미를 되살리려고 꾸역꾸역 등을 켜잖아요. 그렇습니다. 그 의미를 우리는 늘 되새겨서 거기에 맞게 해야 되겠지요.
菩薩於佛十力中(보살어불십력중)에,
보살이 부처님의 十力가운데, 앞에서 설명한 여러 가지 예 가운데,
雖未證得이나 亦無疑(수미증득역무의)로다.
보살은 초발심을 아무리 철저히 하더라도 그것을 100프로 자기 살림살이로 만들진 못했어요. 雖未證得입니다. 비록 증득하지는 못했다하더라도 또한 의심은 없어요. 거기에 대해서 의심은 없습니다. 우리도 공부하고 나니까 그런 이치에 대해서는 의심은 없잖아요. 환히 알 수 있잖아요.
이러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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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智光明...고맙습니다. _()()()_
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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滅定業眞言... 고맙습니다 _()()()_
하물며 어찌 의심이 있으리오._()()()_
大心중생의 화엄경... _()()()_
평등심이 空性이다 나무 관세음 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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善知 空性..고맙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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是處와 非處. 고맙습니다_()()()_
고맙습니다 _()_
나무 대방광불화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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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나무 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고맙습니다 나무대방광불화엄경
定業難免(결정된 업은 면하기 어렵다.)
' 欲知來生事인댄 今生作者時라
습기-종자-현행-습기-종자-현행의 반복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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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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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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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은 누가 공부해요? 大心중생이 공부한다. 마음 큰 중생이 공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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