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정예작가전 특별 인터뷰/ 9. 1/ 인사아트프라자갤러리
한글서예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정예작가들의 담론
한글서예로 중진의 반열에 오른 정예작가들이 생각하는 한글의 아름다움은 어디에 있을까. 한 자리에서 담론을 나눔으로써 현재 한글이 지닌 미학적 특징을 규명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한글서예에 대한 관심이 뜨거웠던 전시장에서 작가들을 만나보았다.
한글서예의 아름다움(특수성)은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김명희 : 한글은 우리의 말이기 때문에 우리의 정서를 바로 전달할 수 있다. 한글로 된 서예작품은 누구나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어서 전달의 효과가 크다.
서복희 : 문자에는 그 나라의 정신과 문화가 들어있고, 얼과 꼴이 담겨있다. 한글은 우리나라에서 창제되었고 우리의 정신이 반영되어 있어서 한자보다 더 특수하다.
변효숙 : 한글 판본체에는 독특한 아름다움이 있다. 한자서예에서 판본체에 준하는 글씨꼴이 서예로 다듬어지지 않았다는 점이 한글과 다른 점이다.
장용남 : 한글은 어려서부터 늘 보고 생활속에서 다듬어 왔고 작품을 할 때도 저절로 손이 움직여지는 장점이 있다. 궁체도 작은 변화지만 거기에 느낌이 들어있다. 우리의 정서에 가장 적합한 글씨이다.
문재평 : 삼재를 넣어서 만든 글자이기에 창제 당시의 정신과 철학이 배어있다. 내용을 알고 쓰기 때문에 희노애락을 작품에 담아낼 수 있다.
윤판기 : 한글은 쉽게 접할 수 있고 주변의 느낌을 담아낼 수 있다. 그런 점이 한문보다 비교우위에 있다고 생각한다.
김인순 : 요즘 한글서예도 문자의 조형성을 살리려고 한다. 한복이나 고무신의 코 등을 연상해서 작품으로 만들기도 하고 강약 등을 넣어서 점획의 변화를 모색한다. 한글이 한문에 비해 자유롭게 멋을 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류제옥 : 한글은 누구나 내용을 바로 알 수 있고, 읽고 쓰기에 편하면서 자유롭다. 문장의 뜻을 알고 있기 때문에 강조할 부분도 저절로 강조가 되는 점이 편하다.
신웅순 : 한글은 한문에 비해서 단순하다. 한글은 한문의 필법과 연관지어 생각할 수 있으나 훈민정음이나 월인천강지곡 등 고체가 만들어 진 뒤에 궁체가 나왔다. 판서체와 궁체는 각각의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특히 궁체의 아름다움은 주목할 만하다.
신미경 : 한글에는 철학이 들어가 있다. 처음 기필부분은 강하게 시작한다. 왼쪽은 가늘게 오른쪽은 두툼하게 해서 음양을 염두에 두고 작품으로 꾸며낼 수 있다.
한글서예가 더욱 활성화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김명희 : 젊은 세대에도 소통되는 글꼴연구가 필요하다. 서법에만 묶여있지 말고 손으로 쓴 글씨의 장점도 살려야 한다.
서복희 : 어르신들에게도 새로운 취미로서 각인되도록 확장성이 필요하다. 자식들과 손주들에게도 지도하고 공감을 얻을 필요가 있다.
변효숙 : 미래 세대에게 서예가 가까워지도록 할 필요 있다. 방과 후 강좌에도 점점 서예가 줄어든다. 우선 서예가 대중과 친근해질 필요가 있다.
신미경 : 한글은 이조 오백년 동안 한문에 눌려 있었고, 현재 영어에 눌려 있다. 주변인들에게 적극적으로 한글의 우수성을 작품으로 알려야 한다.
장용남 : 중국에 가보면 한자로 쓴 간판이 많다. 우리도 생활주변에서 가까운 간판부터 한글로 예술성을 담아내야 한다. 젊은이들도 호감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서 공유할 수 있도록 하고 일시적인 유행서풍이라도 연구하고 진작시켜야 한다. 세계 각 국에 한국인이 많이 나가 있는데 한글작품을 소개하는 역할을 맡겨서 세계인들이 가깝게 볼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문재평 : 현재 한글서예가들도 한문서예의 조형미감을 도입해서 변화를 주어야 한다. 외국의 영사관 안에서 서예지도를 하는데 한글서예자료가 부족한 것을 보았다. 나는 중국 연길지방과 14번의 교류전을 열고 있는데 한글의 장점을 소개하고 멋을 알려나가고 있다. 적극적인 해외교류의 필요성이 있다.
윤판기 : 한글의 세계화는 전문화, 대중화, 생활화라고 생각한다. 한글서예의 세계화는 디자인 분야에서 먼저 시작했다. 예컨대 패션디자이너 이상봉씨도 옷 물건 등에 한글서예를 소재로 해서 세계화를 했다 우리서예가들도 이렇게 다양한 분야에 적용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김인순 : 판본체를 쓸 때 정형화를 깨뜨려서 익숙하진 않지만 파격을 통해서 시도할 필요가 있다. 서법이 고정되지 않기에 젊은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류제옥 : 서예가들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알 수 있는 글과 사상을 담긴 글감만 선문하는데 그치지 말고 외국인도 알 수 있는 글을 휘호하는 것도 좋겠다.
신웅순 : 한글은 우리에게 익숙해진 글이기 때문에 표현에 있어서 실용적인 측면과 예술성을 겸비할 수 있다. 생활 속에서 한글서예가들이 담당할 부분이 많다.
이번 전시에서 주제나 표현기법상 특징이 있다면? 앞으로의 계획은?
김명희 : 전통적인 장법에서 일탈된 장법으로 구성해 보았고, 내용도 현대인이 공감할만한 것으로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작품을 준비했다. 앞으로 그림과 글씨가 더 어울리게 융합해 보고 나름의 서풍을 정리해볼 생각이다.
서복희 : 이번 출품작에서는 여러 체를 모두 답습해서 한 작품에 융합시켰다. 전시장에만 걸리는 작품이 아닌 생활 속에서 실용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작품도 제작했다. 가깝게는 눈길이 머무는 글씨를 쓰고 싶고, 멀게는 나만의 독특한 서화를 살려 정감있게 표현하고 싶다.
변효숙 : 궁체위주의 작품을 지양하고 다양한 서풍으로 작품을 제작했다. 현대인들의 시문을 글감으로 많이 채용해 친근감을 느끼게 했다. 금년에 인천에서 대규모 전시를 앞두고 있다.
신미경 : 이번 작품에서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김소월, 김춘수, 윤동주, 박목월, 신석정선생님 등의 시를 썼다. 평소 좋아하던 시인들의 시를 작품으로 꾸미면서 한글서체정립운동에 다가간다는 마음으로 다양한 서체로 휘호했다. 앞으로 다양한 서체로 서체정립운동에 매진할 생각이다.
장용남 : 작품준비를 하면서 지도자로서의 몫과 작가로서의 몫을 생각했다. 전통한글서법에 중점을 두었고, 문인화를 그리면서 한글화제에 변화를 주었다. 임서작품도 몇 점 넣어서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교훈적인 측면을 고려했다. 앞으로 한글서예의 미학을 널리 알려나가면서 고전과 낯설지 않은 변화를 지속적으로 추구해 나가려고 한다.
문재평 : 한문서예의 선질감을 한글에 담아내려고 했다. 다양한 종이에 작품을 했고, 내용도 일반인들이 알 수 있는 내용을 함축해서 조형감을 살렸다. 2~3년 후에 한글서예와 한문서예를 혼합한 전시를 계획하고 있다.
윤판기 : 이번 전시는 내가 개발한 물결체, 동심체, 낙동강체 등 폰트에 사용된 서체로 작품을 꾸몄다. 앞으로도 실용과 예술을 연계한 작업을 꾸준히 이어가고자 한다. 무릇 작품에는 동시대의 시대미감을 살려내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김인순 : 작품을 하면서 첫인상을 생각해 보았다. 처음 봤을 때 기운이 맑으면 다시 보게 되듯이 작품에 맑은 기운을 넣기 위해 종이도 삼지(삼베 만드는 종이)를 사용했다. 먹이 흡수가 잘 안되었지만 장봉을 이용해 붓의 유장한 맛을 살렸다. 따라서 주제는 “맑은 기운”으로 정했다. 앞으로 국문학과 문자의 조형성에 대해 더 연구하려고 한다
류제옥 : 나는 궁체만 본격적으로 연구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궁체를 위주로 하고 조금씩 변화를 주었다. 그 동안 연구한 궁체를 조금 더 풀어서 작품으로 제작하는 게 미래의 과제이다.
신웅순 : 나는 시와 문학과 서예를 같이 했다. 이번 작품전에서는 시조에 한글서예의 옷을 입힐 때 한글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증명해 주고 싶었다. 시나 시조의 문학성을 한글서예 창작을 통해 내 마음을 그림처럼 보여줄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했다. 나의 조형시각으로 휘호한 작품엔 ‘석여체’라고 이름붙여 보았다. 앞으로 소동파가 말한 ‘詩中有畵 畵中有詩’를 완성하기 위해 열심히 붓을 잡고자 한다. 정년 후 한글서예연구소를 개소하려고 한다. 서예의 대중화 세계화 전문화를 위해 매진하려고 한다.
사회 및 정리 : 정태수(월간 서예문화 편집주간, jts2003@hanmail.net
*이 글은 월간 서예문화 2012년 10월호에 실려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