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중국의 성 인식

고대 중국에서는 성을 중요한 문화현상으로 인식하였으며, 현대인들보다 오히려 성에 대해 적극적인 자유를 누렸습니다. 성을 생리 현상이나 욕망일 뿐만 아니라 일종의 문화현상이라고 생각하였으므로 중국 고대의 성은 중시되었지 결코 비하되거나 신비화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시대적, 사회적 환경의 변화에 따라 일부일처제가 확립되었고 성도덕의 문란을 억제하기 위한 방편으로 전통적인 충효와 예절이 강조됨으로써 자유로웠던 성은 상당히 억제되었고 그러한 변화는 현재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중국인들의 모든 사고를 발전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도(道)이며 도의 개념을 중심으로 발달한 철학이 도교입니다. 그러므로 도교에서 성에 대한 인식을 살피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도교의 철학에서는 인간은 자연의 섭리에 따라야 한다고 하는데 그 인간의 길이 바로 도이며 올바른 인간의 길로 이끄는 힘은 스스로의 조절에 의존하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이 조절 가운데 중요한 것이 성입니다. 도교에서 남성과 여성은 각각 양과 음에 해당됩니다. 또한, 도교에서 성교란 인체에서 일어나는 음양의 조화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관계를 많이 하면 할수록 좋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성교 중 남성이 자신의 사정을 조절해야 하는 것입니다. 즉 자신은 사정하지 않고 여성으로 하여금 절정감에 이르도록 하는 것이 여성으로부터 많은 기운을 흡수하여 장수를 누릴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성행위는 단순히 기쁨을 추구하는 단계에 그치는 것이 아니고 더 나아가 생명을 보존하는 방편의 하나였습니다.
소녀경
중국의 도교 중심의 성(性)은, 사랑이 없는 단순한 성행위는 불건전하며 몸에 해가 된다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성은 도를 이루는 방편의 하나였기 때문에 자세하고 종합적인 성 교본인 <소녀경>이 도학자들에 의해서 만들어졌습니다. <소녀경>은 도교의 자연주의 사상과 고대 중국의학을 토대로 씌여진 성에 관한 최초의 철학서이면서, 성을 의학적 측면에서 기술한 성의학서입니다. <소녀경>에서는, 남녀의 결합이란 “하늘과 땅의 결합처럼 매우 신성한 것이며, 그 신성한 남녀 교접법도의 핵심에는 사정억지의 법도가 있으며, 이 법도를 잘 실행하게 되면 성행위를 통한 쾌락은 물론 장수와 건강도 함께 얻을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소녀경>의 궁극적 지향점은 쾌락과 동시에 건강과 장생의 추구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목표를 추구하기 위한 구체적 실천방법이 바로 <소녀경> 중 ‘방중술’이며 이러한 방중술은 중국의 신선사상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방중술의 본래 의미는 침술 또는 성교를 의미하는 것이었는데 이것이 발전하여 남녀 음양의 교접의 테크닉, 즉 음양교접의 비법이 된 것입니다.
신선사상이란 중국의 조물주로 여겨지는 황제를 신선의 조상으로 숭배하며 불로장수와 불로불사에 이르는 도를 얻는 것을 목표로 하는 방선도 사상에 장자의 무위자연적 사상이 보태짐으로써 만들어진 사상입니다. 이는 세속을 초탈하여 언제나 늙지도 죽지도 않는다는 사상이다. 어떻게 불로불사할 수 있을까? 그 연구 끝에 방중술을 이용한 것으로 <소녀경>은 방중술의 비법을 전하는 가장 오래된 서적입니다. 방중술을 기본으로 하여 남성을 위한 9가지 체위, 여성을 위한 8가지 체위, 몸이 안 좋을 때 하는 7가지 체위, 교접을 해서는 안 되는 금욕의 시기, 똑똑한 아이를 낳는 비법, 나이에 맞는 성교횟수 등을 기재하였습니다.
‘전족’과 중국의 여성
기원전 1500년 전부터 기원전 771년까지의 선사시대와 서주 시대에는 여성적인 요인이 남성적인 요인보다 우위에 있었다는 증거가 많습니다. 姓이란 한자어는 女(여자)와 生(태어나다)이 합쳐져 만들어진 것으로 자식이 모친의 이름을 따르는 고대 중국의 모계제 흔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더욱이 중국의 고서에서는 여성은 성의 신비를 지키는 수호자인 동시에 완벽한 성 지식을 지닌 존재이며, 여성은 성적인 문제에 대한 위대한 스승으로, 남성은 무지한 제자로서 표현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은 주나라 이후부터 엄격한 부계제도가 정착되면서 남녀의 입장이 뒤바뀌게 되었으며, 진나라, 삼국과 육조 시대, 수와 당을 거듭할수록 더욱 심해졌습니다.
황소의 난에 의해 당 왕조는 멸망하고, 908년부터 1279년까지 오대와 송왕조 시대가 시작되는데, 남당 왕조의 2대 통치자이며 유명한 연애 시인인 ‘이욱’은 여자들의 발을 묶는 ‘전족’ 풍습을 유행시켰으며, 이러한 풍습은 송과 원나라를 거치면서 확고부동한 관습으로 확립되었습니다. 전족은 여성의 발을 천으로 묶어 오그라뜨려 10cm가 채 안 되는 크기로 변형, 신체를 인위적으로 기형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자아이가 보통 4~5살이 될 때 전족을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엄지발가락을 제외한 나머지 발가락을 발바닥 쪽으로 향하게 해 퇴화시키고 반년 후에는 발등을 뒤꿈치 쪽으로 굽도록 만듭니다. 이 과정에서 뼈가 뒤틀어지고 발의 살은 고름으로 녹아 버립니다. “썩어 문드러지지 않으면 발이 작아지지 않는다.
문드러질수록 예쁜 발이 된다”는 말이 생겨나면서 이 같은 고통을 정당화하고 강요했습니다. 이렇게 2년이 지나면 동여맨 발은 퇴화되고 전체 발 모양이 작아지게 됩니다 이상적인 전족의 크기는 9cm, 성인 남자의 손바닥 절반 정도에 해당하는 크기로 이 크기가 앙증맞으면서도 애처로움을 동시에 불러일으킨다는 이유로 남성에게 관능적인 유혹을 부추기는 성적인 상징물로 되었습니다. 그러나 반면 여성들에게는 “두 쪽의 전족이란 한 단지의 눈물로 만드는 것”이란 말이 생겨났습니다. 이러한 전족은 여성에게 생리학적인 결함을 만들어 여성들이 남성에 의존하는 작용을 하게 했습니다. 중국의 이 같은 악습은 우리나라에 그대로 전해지지는 않았지만, 우리나라에도 ‘틀버선’이라 하여 여자아이가 일곱 살이 되면 작은 버선을 신겨 발의 성장을 억제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