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구사(九思)와 구용(九容)은 단번에 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오랜 수양을 통해 익혀야 한다. 때문에 공자는 제자들에게 ‘ 배우고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하랴“ 즉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면 불역열호(不亦說乎)라고 했다. 또한 벗이 있어 멀리서 찾아온다면 또한 즐겁지 않으랴.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 내지 않으면 도한 군자가 아니랴고 설파하여 사람은 배우고 익히는 가운데서 팜되고 착하고 아름다워진다고 역설했다. 그래서 인격이 학문과 더불어 발전하는 과정을 일찍이 공자는 다음과 같이 밝혔으니 참고하고 노력해 보자. “15세에 학문에 뜻을 두고 30세에 몸을 세웠으며 40세에 의혹되지 않았으며 50세에 천명을 알았고 60세에 귀가 화순했으며 70세에 마음이 하고자 하는 바를 따라도 법도를 넘어 가지 아니 하였다"(논어(論語)) 이것은 인격이 성장 발달하는 진도가 대게 10년을 주기로 도약한다는 사실을 증언함과 동시에 자기 개?u의 노력은 평생 계속되어야 함을 강조한 낸용이다. 사람이 유아기와 어린시기를 보내고 15세의 소년 소녀가 되면 자기 자신의 인격을 수양하는데 뜻을 두고 생각과 행실을 닦아야지 계속 먹을 것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 곤란하다. 요즘은 20세가 되어도 먹을 것만 찾는 사람이 있긴 하지만... 옛사람들같이 15세가 되면 학문수양 즉 도학에 뜻을 두고 인격을 기르는데 전심전력해야 한다. 사람이 진실로 학문에 열중하면 먹는 것과 입는 것에는 관심이 없게 된다. 오로지 학문에만 정진하면 30세쯤에 입신(立身)을 할 수 있다. 입신이란 자기 자신의 독립 인격체를 확립하는 것이다. 정신적, 사상적, 경제적, 정치적인 모든 영역에서 나름대로 자기의 독립적 시각을 가지고 책임을 진다는 것이다. 이는 곧 자기의 인생관을 확립하는 것으로 뚜렷한 자기 인생의 목표가 있기 때문에 시류에 영합하거나 유행에 흔들리지 않고 자기의 일을 개척한다. 40세에 의혹되지 않는다는 말은 곧 불혹(不惑)인데 세상에 의심스러운 일이나 유혹당할 일이 없어 뚜렷하고 확실하게 분별할 수 있어서 공명정대하게 사업을 경영하고 성공하는 것이다. 50세에 천명을 알았다는 것은 곧 하늘이 나에게 준 사명을 알아서 힘차게 경영한다는 것이다. 하늘이 나를 이 세상에 보낼 때에는 반드시 해야 될 일이 있어서 보냈으므로 그 일을 완성해야만 자기의 사명을 완수했다고 하겠다. 깊이 생각해 보면 하늘이 이당에 보낸 이유를... 이 집안에서 태어난 것은 이 집에 효도하라는 뜻이고 이 나라에 태어 난 것은 이 세상에 이바지하라는 뜻이다. 그 사명을 모두 50대에 완성하라는 것이다. 60세에 귀가 화순하다는 이순(耳順)은 이미 늙어서 세대가 교체되는 은퇴기에 들어갔기 때문에 사회의 전면에 나서지 말고 듣기만 하는 후견인의 역할만 하라는 뜻이다. 늙은이가 잘 났다고 앞장서서 설치면 젊은이가 창의적인 능력개발을 못하게 된다. 그러면 역사가 정체하여 퇴보한다. 그러나 늙은이는 가급적 듣기만 하고 젊은이에게 위임하고 참견하지 말아야 한다. 예법에 70세면 벼슬을 버리고 은퇴하라고 하였으니 70세면 스스로 고상한 자기의 세계를 개척하여 세상 밖에서 놀아야 한다. 그 때에 사회로부터 소외되었다고 답답해하고 쓸쓸하게 살면 안 된다. 어차피 인생은 생로병사하게 마련이므로 초연히 살다가 고결하게 죽어야지 그것을 거부하면 천리를 거역하고 인간성을 헤쳐서 추악한 노인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공자는 나이가 들면 욕심과 이득을 경계하라고 하였다. 우리 동양사회에서는 공자의 이 말씀을 인격발달의 기준으로 삼아서 본받으려고 모두 노력했기 때문에 사람의 나이까지도 이 말씀으로 표현하고 있다. 즉 15세를 지학(志學) 30세를 이립(而立) 40세를 불혹(不惑) 50세를 지천명(知天命) 또는 지명(知命) 60세를 이순(耳順) 70세를 종심(從心)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