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60편 강해 / 이레교회 새벽기도회 20111031 月曜日 정인준 목사]
사도신경 찬송가 479(290)장 ‘괴로운 인생길 가는 몸이 평안히 쉴 곳이 아주 없네…’
통성 기도(3분) 말씀 봉독(시편 60:1-12), 설교(15분),
◈ 시편 60편은 다윗이 에돔 사람들과 전쟁을 치른 이야기가 배경입니다.
사무엘하 8장과 역대상 18장에 기록되어 있듯이,
다윗의 군대가 북쪽에서 암몬 사람과 전쟁을 하고 있는 동안
남쪽에서 에돔 사람들이 쳐들어 왔던 바로 그 상황입니다.
표제에 보면,
“다윗이 교훈하기 위하여 지은 믹담. 인도자를 따라 수산에듯에 맞춘 노래.
다윗이 아람 나하라임과 아람소바와 싸우는 중에 요압이 돌아와 에돔을 소금 골짜기에서 쳐서 만 이천 명을 죽인 때에”
이 노래를 지어 불렀습니다.
‘수산에둣’은 ‘증거의 백합화’라는 뜻을 가진 가락의 제목이었습니다.
‘아람 나하라임’은 메소포타미아 지역과 민족을 가리키는 말이고,
‘아람소바’는 팔레스틴 근처 아람 사람들이 사는 지방 중의 하나입니다.
그리고 ‘소금 골짜기’는- 사해 남쪽 가장 낮은 지역인 ‘고르’를 가리킵니다.
◈ 다윗은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 ‘회복’을 간절히 구하고 있습니다.
1절을 봅니다.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버려 흩으셨고 분노하셨사오나 지금은 우리를 회복시키소서.”
이스라엘이 범죄로 인하여 잠시 전쟁에 패하는 고통을 당하였지만 다시 승리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것입니다.
2절에서는 패전의 고통, 실패의 아픔이 하나님의 징계에 의한 결과라는 사실을 알고,
갈라진 땅처럼 패하고 찢겨진 이스라엘을 다시 회복시켜 주시기를 구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땅을 진동시키사 갈라지게 하셨사오니 그 틈을 기우소서 땅이 흔들림이니이다.”
징계는 ‘훈련과 교정’의 의미가 있습니다. 징벌이 목적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5장 2절에서 징계의 목적을 이렇게 표현하셨습니다.
“무릇 내게 붙어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요한계시록 3장 19절에 보면,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잠언 3장 11-12절,
“내 아들아 여호와의 징계를 경히 여기지 말라 그 꾸지람을 싫어하지 말라.
대저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 같이 하시느니라.”
이 말씀을 인용한 히브리서 12장 5-11절에 보면,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예하게 하시느니라.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죄를 범했을 때 하나님의 징계를 받는다는 사실은,
다시 말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입고 있다는 분명한 증거입니다.
그래서 시편 94편 12절은
“여호와여 주로부터 징벌을 받으며 주의 법으로 교훈하심을 받는 자가 복이 있나니.”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 4절에서 하나님은 ‘진리를 위하여 달게 한 깃발(旗)’을 이스라엘에게 주십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깃발은 ‘여호와의 명예’를 나타내는 상징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 영광을 열방 중에 나타내기 위해 선택된 백성입니다.
그들이 열방 중에서 강성하며 승리할 때는 하나님 이름이 존귀해지지만
거룩한 삶을 살지 못하여 조롱거리가 되면 오히려 영광을 가리는 겁니다.
성도는 그 ‘삶 자체’가 바로 세상 사람들이 바라볼 수 있는 깃발입니다.
지금 저와 여러분의 깃발은 진리를 위해 힘차게 펄럭이고 있습니까?
아니면 짓밟히고 찢어져 있습니까?
마태복음 5장 16절을 다시 기억하십시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5장 16절’입니다.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혁명’이라고 부릅니다.
오늘도 우리의 삶이 ‘진리를 위하여 달게 한 깃발’임을 기억하고 사십시다.
◈ 8절에 “에돔에는 나의 신발을 던지리라”하셨습니다.
‘신발을 던진다’는 말씀은 ‘내가 멸시하고 비웃는다’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중동 지방에서 신발은 가장 더러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발’이란 말은 모욕적이고 수치스러운 말입니다.
모세도 출애굽기 3장 5절에서 하나님을 뵈었을 때 신발을 벗어야 했습니다.
지금도 근동지방에서는 문턱을 넘어서거나 사원에 들어갈 때는 반드시 신을 벗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원수를 향해서 신발을 던지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원수를 하나님이 멸시하고 비웃어주시는 줄 믿습니다.
◈ 다윗은 11절에서 사람들의 도움을 ‘헛된 것’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시편 146편 3-4절 말씀처럼, “도울 힘이 없는 인생”을 의지하는 것은 진정 헛된 일입니다.
인생은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고 마는 연약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사람의 도움’을 의지하지 말고, 우리 대적을 완전히 굴복시키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해야 할 것입니다.
12절 함께 읽고 기도하십시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용감하게 행하리니 그는 우리의 대적을 밟으실 이심이로다.”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