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리온의 노래 – 8
“라에르티아데스의 아들 오디세우스여! 그대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것이오,
내 왕자님이여? 이게 끝이란 말이오? 저들이 허둥지둥 배를 타고 고향으로 돌아
가려는 것이오. 프리암왕과 그 백성들이 거들먹거리게 내버려두고 말이오? 당신네
태생인 아르기브의 헬렌을 내버려두고 가려는 것이오? 그녀를 찾으려고 그리도
많은 병사들이 이 외국땅에 와서 죽고난 후에 말이오? 여기서 가만히 빈둥거리고
있지 마시고 어서! 병사들속으로 들어가서 그대의 친절한 말투로 병사들 각자에게
일일이 말하시오, 그리고 배들을 진수시키지 못하게 막으시오!”
오디세우스는 그 여신의 목소리를 알아들었더라: 그는 외투를 벗어던지고 달리더라.
이타카에서부터 동행해온 그의 부관인 유리바테스가 뒤따르더라. 오디세우스는 아
가멤논왕을 찾아가서 왕의 조상대대로 내려오다가 선친에게서 받은 왕홀을 그로부터
넘겨받고 이것을 들고 무리속으로 지나가더라.
오디세우스는 어떤 왕자를 만나던지, 중요한 인물을 만날 때마다, 그 옆에 멈춰서서
친절한 어투로 말하더라:
“이게 어찌된 일이오, 지체높은 어른께서? 귀하가 겁쟁이라 생각해본 적이 없소이
다. 허나 여기 차분히 앉아서 다른 사람들도 그리하게 해주시오. 우리 왕의 마음속
의도가 무엇인지 아직 당신들은 잘 모르시오. 왕은 단지 그걸 지금 시도해보려는데
불과하오 - 곧 그가 동지여러분들에게로 내려올 것이오. 회의장에서 그가 뭐라고
말했는지를 우리는 제대로 듣지도 못했지 않소? 왕이 분노에 들떠서 그리 결행한다
해도 나는 놀라지 않을 것이오. 고귀한 왕자는 거센 성미가 있기 마련이오! 그의
영예는 제우스신로부터 주어진 것이고, 전능하신 제우스가 그를 돌보고 있소이다.”
만약에 사람들사이에서 소리치고 잡음을 일으키는 사람을 만나면 등짝에다 그 홀을
내리치며 말하기를,
“이게 무슨 짓거리냐? 조용히 앉아서 너희보다는 나은 사람 말을 들어봐! 너희
부끄러운 전장의 도망자들이여! 완력으로든 언변으로든 너희는 아무것도 제대로
하는 게 없어! 우리 모두가 왕일 수는 없지. 왕들이 많으면 나라를 파탄내고 말것
이야! 내게는 한사람의 왕이면 충분해, 왜냐고? 그 왕이 올림푸스의 높은 곳에
있는 제우스신으로부터 권세를 받았으니까!”
그렇게 오디세우스는 돌아다니며 군사들 모두를 이끌어 나아가더라, 그러자 사람
들은 선단과 막사에서 무리지어 돌아와 회의 장소에 다시 집결하는데, 마치 파도
의 깊은 신음소리와 부딧쳐 부서지는 소리가 해변가에 천둥처럼 울리듯이 웅성거
리는 소리를 내더라.
이제 그들은 정연히 긴 줄을 지어 앉았으나, 오직 한사람만이 고함을 치며 여전히
욕을 하고 있었으니 그 사람은 다름아닌 데르시테스였더라. 이 사람은 지치지도
않는 홍수와 같은 말로 언제나 대꾸할 말을 꺼내어 예절도 없고 체면도 없이 왕족
들을 골치 아프게 하고 웃음거리를 만들더라: 이 자는 일리온에 원정나온 사람들
중에 전에는 한번도 본 적이 없는 가장 추하게 생긴 사람이었으니, 안짱다리에
한쪽발을 저는 절름발이였으며 두어깨가 가슴으로 굽어들은 곱사등이였더라;
원추형 머리는 쭈빗솟았고 그위에 머리털 서너개가 성글게 보풀이 일고 있더라.
아킬레스는 이 자를 엄청 싫어했고 오디세우스도 마찬가지였으니, 왜냐면 그자는
항상 귀족들을 성가시게 굴기 때문이더라: 그런데 이번에는 아가멤논왕을 택해
그에게 송곳처럼 찌르는 시끄런 소리를 내며 욕설을 해대더라. 모든 사람들이 그
에게 끔직히 화가 났고 그를 치욕스럽게 여기더라. 그러나 그는 큰소리로 외치며
아가멤논을 향해 욕을 해대더라.
“폐하시여! 무엇이 지금 잘못된 것이오. 지금 도대체 당신은 무엇을 원하시오?
당신의 막사는 넘쳐나는 보물로 가득하고, 수많은 여인들이 막사안에 가득하니
그들은 우리가 전장에서 이길 때마다 뺏어온 여자들중 가장 최상급으로 골라서
바친 여인들이오! 그런데도 아직 모자라 더 많은 황금을 원하시오? 일리오스의
어떤 양반이 그 아들의 몸값을 치르고 내가 잡아왔던지 다른 누가 잡아온 일리
오스사람을 급히 찾아가려고 황금을 가져오길 바라시오? 아니면 당신을 위해
몸바쳐 수청을 들 젊은 여인을 원하시오? 그렇지만 주군으로서 그 부하들을 곤
란에 빠뜨리는 것은 적절한 일이 아니오. - 여러분 동지들은 모두 멍청이 바보
망신든 사람들이요, 아카이아의 사나이라 할 수는 없는 계집들일 뿐이오! 어서
고향으로 항해해서 갑시다, 그리고 이분을 이곳에 남겨둬서 목구멍에 가득 그
포상금이나 처먹으라고 합시다. 그로 하여금 우리가 그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었는지 어땠었는지 알게 해줍시다. 그보다 훨씬 뛰어난 아킬레스를 어떻게
욕보였는지 보았지요: 아킬레스의 포상을 빼앗고 그여자를 취해버렸는데, 그
자신이 도둑처럼 훔친 것이오. 그러나 아킬레스는 아무런 분노도 드러내지
않고 신사적으로 참고 말았소; 만약 안 그랬다면, 폐하여! 그게 당신의 마지막
폭압이 되었을 것이오!”
이렇게 백성들의 왕인 아가멤논을 향하여 큰소리로 질책하는 연설을 퍼붓더라.
그때 오디세우스는 바로 그옆에 잠깐 있었더니 눈살을 찌뿌리며 사나운 말투로
그를 꾸짖으며 말하기를:
“대단한 웅변가이시군, 테르시테스, 그대가 아무말이나 맘대로 한다는 건
우리가 알고있소 – 허나 이제는 입을 닥치시오. 달랑 혼자서 여러 왕자들을
헐뜯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내가 단언하거니와 이곳 일리오스로 군대를 파견해
온 고귀한 장군들이 데려온 군사들중에 너는 가장 천박한 사람일 것이야. 그러
니 왕의 이름을 들먹일 때에 너는 제일 마지막에나 입을 열 사람이야, 그리고
왕에게 욕설을 퍼붓거나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더라도 제일 끝에나 할 수
있어! 우리는 아직 사태가 어떻게 변해갈지 명확히 모르는 판국이고, 고향으로
향하는 항해가 좋은 건지 잘못되는 건지 알지 못하고 있어. 그런데 너는 여기
앉아서 우리 전사들의 노획품에서 상당한 몫을 드렸다고 해서 우리의 주군 아
가멤논왕을 헐뜯고 상습적으로 조롱하는 연설을 한다니! 여러분들 내말을 들어
보시오! 그리고 그점에 대해 한치의 잘못도 저질러서는 안되오. 만약 앞으로
너의 그따위 천치같은 놀림을 다시 목격한다면, 네몸에서 옷을 벗겨낼거야,
겉옷과 알몸을 싸고있는 속옷까지 다 벗겨내고 상당한 매를 친후에 고통으로
울부짖는 너를 뱃전으로 쫓아내고야 말지, 만약 그렇게 못한다면 이 오디세우스의
머리는 그 어깨위에 붙어있지 않을 것이고, 텔레마코스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일도
더 이상 없을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서 오디세우스는 홀을 가져다가 그 자의 어깨를 사정없이 내려치더라.
그는 움츠러들었고, 그의 등을 가로질러 핏빛나는 붉은 채찍자국이 얼룩지자 그의
눈에서는 비오듯 눈물을 쏟아내더라. 그는 엄청난 아픔으로 겁에 질린듯 주저앉더
니 구제받지 못할 가여운 얼굴이 되어 눈물을 훔치더라. 그러자 모든 사람들은 그
들의 고충을 잊어버리고, 즐거운 웃음소리를 터뜨리며 서로에게 다음과 같이 하는
말이 들리더라.
“하, 하! 오늘 오디세우스가 대단히 훌륭한 일을 우리에게 해주었소 - 회의에서
도 잘 이끌어주었고, 전장에서도 잘 이끌어주었소. 그럼에도 오늘 이 일보다 더
좋은 일을 해줄 수는 없었을 것이오; 이제 그자는 장황하게 찌꺼리던 못된 주둥
아리 말놀림을 멈췄으니까, 그의 험한 혀끝으로 또다시 왕족들에게 욕을 해대는
용기를 내리라고는 생각지 않소!”
이런 말들이 오디세우스가 그 존귀한 홀을 들고 일어났을 때에 수군거리는 말소
리였더라; 그리고 오디세우스옆에서 아테나여신은 전령의 모습으로 변신하여 모
두들 조용히 하라고 일렀으니, 그리하여 모든 사람들이 앞에서부터 뒤에까지 오
디세우스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잘 알수 있게 하려 함이더라. 그러자, 오디세우
스는 일단의 유익한 충언을 설파하더라.
“내 주군 왕이시여!”그가 말하기를, “폐하가 보다시피, 이 군사들이 폐하를
인간중에 가장 경멸할만한 존재로 만들려고 작정했나 봅니다; 아르고스에서 처
음 출항할 때에 일리오스를 함락시키고 돌아가자고 했던 약속을 지키지도 않을
려나 봅니다. 이들은 수많은 어린애들이나 과부들처럼 울면서 고향으로 돌아가
기를 함께 한탄하고 있습니다. 물론 누구라도 여기서 넌더리날 지경으로 귀향하
고픈 마음이 있으리라는 난처함은 충분히 있소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그의 부인
을 떠나 외지에서 한달만 머물러도 참을 수가 없겠지요; 그의 배가 겨울폭풍과
울부짖는 바다에 갇혀 빠져나오지 못한다면 말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9년째 해가 바뀌어도 그냥 그대로 아직 머물고 있소이다. 그러니, 나는 사람들이
이를 참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들에게 문책할 점을 찾지는 못하겠소이다.”
“그런 반면에 이리 오래 머물고서도 빈손으로 돌아간다면 그건 수치스러운 일
이오. 참아냅시다, 동지들이여! 좀 더 머물러서 칼카스가 예언한 일이 진실인지
아닌지를 알아내 봅시다. 한가지 우리가 잘 기억하고 있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지워진 운명이 아직 실행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대해 여러분 모두가 증인이라는
것이오. 오로지 전날에 우리 아카이아사람들의 선단이 아울리스에 집결하였을
때에, 프리암왕과 그 백성들에게 공포를 가져다주려고, 우리는 신성한 제단옆의
우물에 둘러앉아서 불멸의 신에게 신성한 희생을 바쳤었지요. 그곳은 아름드리
플라타나스나무 아래로 뿌리근처에서 맑은 샘물이 흘러나오는 곳이었소. 그러자
굉장한 조짐이 나타났었소. 등껍질이 얼룩덜룩한 한 마리 구렁이였으니, 올림피
아의 제우스신 자신이 직접 세상으로 보낸 소름끼치는 동물이었소. 제단아래로
부터 머리를 내밀어 나오더니 그 나무위로 기어올라 갔었소. 그 나무에는 가장 높은
가지위 나뭇잎속 둥지안에 아주 어린 참새새끼들이 있었소; 새끼는 여덟마리였
는데, 어미와 합치면 모두 아홉마리였소. 그러자 그 구렁이는 가엽게도 소리치며
우짖는 새끼들을 삼켜버렸소; 어미새는 날개짓을 하며 주위에서 새끼들을 잃고
울부짖고 있었소. 구렁이는 둥굴게 구브려서 떨더니만 비명을 지르는 어미새의
날개쭉지를 잽싸게 잡아채었소. 구렁이가 새끼들과 어미새를 먹어 치우자마자,
그 구렁이를 출현시켰던 신은 그 뱀을 사라지게 만든 후에 바위로 변하게 만들었소:
우리 모두는 그 기적을 바라보며 놀래서 멍하니 거기 서있었소.”
“이 이상야릇한 조짐이 우리가 바친 희생에 의해 보여지자, 칼카스가 즉시
그 의미를 우리에게 말해주었소. 그가 말하기를, ‘왜 여러분은 묵묵히 서있는
게요, 아카이아 남자들이여? 우리는 방금 전지전능한 제우스신의 기적을 목격
했소이다. 이일은 늦게 나타나고 늦게 성취될 것이지만, 오래토록 수시로 이
기적은 일컬어질 것이오. 그 구렁이가 참새 새끼들 여덟마리와 어미새까지
아홉 마리를 삼켜버린 것처럼 그렇게 9년동안 우리는 그곳에서 전쟁을 할 것
이오, 그러나 10년째 되는 해에 우리는 그 거대한 성채를 차지하게 될 것이오.’
그것이 바로 그가 우리에게 한 말이오, 그리고 지금 모든 년수가 다 지났소.
자, 이리 오시오. 아카이아의 남자들이여, 여기 머물러서 모두가 한결같이
프리암왕의 견고한 성을 무너뜨릴 때까지 이곳에 있도록 합시다.”
모여있던 모든 대중이 이말에 큰소리로 환호하더니, 그들이 내지르는 메아리
소리가 선단이 있는 곳까지도 울려퍼지더라. 사람들은 오디세우스의 연설에
대단히 즐거워하더라. 그런중에 게레니아사람 네스토르가 또 무언가 한마디
거들더라.
-계속-
2019. 7. 4. 비전이재병 번역
(from Homer The Iliad translated by W.H.D. Rou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