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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8대 성씨의 오늘
Ⅰ.정사인 수서에 보면 백제에는 다음과 같은 "百濟有 大性八氏 沙氏 解氏 眞氏 木氏 國氏 燕氏 苗氏 協氏(백제유 대성팔씨 사씨 해씨 진씨 목씨 국씨 연씨 묘씨 협씨)" 8개의 大성씨가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상한 점은 현재 이들은 한반도에 없고 거의 중국에만 존재하고 있다는 점이다. 역사서에 등장하였던 백제의 8대 성씨 중 5성씨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 부여(夫餘 , 혹은 夫余) 씨
부여(夫餘 , 혹은 夫余)씨는 북사(北史)에 기록된 백제 8대성 중의 하나이며 왕족으로 알려져 있다. 동한(東漢) 때 쓰여진 <풍속통의(風俗通義)>에 처음으로 보이는데, 풍속통의에 의하면 춘추시대 말 오(吳)나라 태자 부개(夫槪)가 초국(楚國)으로 달아나고 여자(余子)가 오국에 남았는데 이에 부여씨가 되었다 한다. 또 사기 화식전(史記 貨殖傳)에 의하면 한나라 시기에 북쪽의 오환(烏桓), 부여(夫餘) 등이 그 족명을 성으로 삼았다 한다. 성씨고략(姓氏考略)에 의하면 부여씨는 오흥군(五興郡)에 나타나 보이는데 오흥군은 삼국시대 보정원년(266년)에 설치되었다. 오흥군은지금 중국의 절강성 임안(臨安)에서 강소성 의흥(宜興)일대이다. 이 지역은 오정(烏程)에서 다스렸는데 상해에서 가까운 지금의 절강성 오흥현(吳興縣) 남쪽이다. 왜 이 곳에 백제의 8대성 중의 하나이며 백제의 왕족인 부여씨가 많이 살고 있는지 의문이다. 이 곳이 지역상 과거 오(吳)에 해당하는 지역이고 고구려 백제 강성시 유, 연, 제, 노, 오. 월을 평정했다는 기록으로 볼 때 이 곳은 오랜 기간 백제의 땅이 분명하다고 볼 수있다.
2) 목(木)씨
<성씨고략>에 의하면 목(木)씨는 오흥군(吳興郡)에 분포되어 있다. 오흥군은 지금의 절강성 임안(臨安)에서 강소성 의흥(宜興)일대이다. 유명한 인물은 목간나(木幹那)가 있는데 목씨는 백제 왕성인 부여(扶餘, 夫餘, 夫余)씨와 분포지역이 같다. 백제의 왕족인 부여씨는 목(木)씨와 함께 절강성 오흥군(吳興郡)일대 외에 다른 지역에는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오흥군은 백제의 수도중의 하나가 아닐까 하고 조심스럽게 생각해 본다. 오흥군은 지금의 절강성 호주(湖州)일대의 지역으로서 차이나 5대 호수 중의 하나인 태호(太湖)의 남쪽에 해당된다. 따라서, 백제는 대륙의 태호의 남쪽 즉 호남(湖南)에 살았기 때문에 현재 우리나라로 이주해 온 혹은 세력을 넓힌 백제에 의해서 지금의 전라도 지역을 호남으로 부르는게 아닌가 생각이 된다. 백제의 역사가 근 700년에 이르니 충분히 가능한 일일 것이다.
3) 해(解)씨
'군망백가성'에 이르기를 해(解)씨는 평양군(平陽郡)에 분포되어 있다고 한다. 여기에서 평양군은 지금의 산서성(山西省) 임분현(臨汾縣) 서남이다. 백제의 유명한 인물은 해례곤(解禮昆) 이 있다. 그런데 백제의 진평이군(고평/진성)과 고구려 광개토대제의 신하였던 유주자사 진의 관할 하에 있던 산서성 태원태수, 대군래사를 감안할 경우 산서성에 대한 재평가도 이루어져야 한다. 백제의 장군 해례곤이 이 곳 출신이었다면 그 지역의 지배자에 대한 의문점이 생긴다.
4) 사(沙)씨
<군망백가성(郡望百家姓)>에 이르길 사(沙)씨는 여남군(汝南郡)에 나타난다. <성씨고략(姓氏考略)>에 동완(東莞), 여남(汝南)이라 했다. 여남군은 한나라 고제(高帝)때 설치했으며, 지금의 하남성(河南省) 중부의 상찰현(上察縣) 및 안휘성(安徽省) 회하(淮河)이북지역이다. 동완군은 진(晉)무제 태시(太始) 원년(265년)에 설치되었으며 지금의 산동성 기수(沂水), 영현(營縣)일대이며 한나라 양군(陽郡)의 구지(舊地)이다. 백제의 유명한 인물은 사법명(沙法名)이다.
5) 진(眞)씨
백제 8대성 중의 4번째 성씨로 신(愼)씨가 진(眞)씨로도 나타난다. 성씨고략에 의하면 진씨는 상곡군(上谷郡)에 보이는데 상곡군은 현 하북성 서북부. 회래현(懷來縣) 동남 일대이다. 상곡(중국 정사 사마천의 사기본기 원문상 탁록在 상곡) 탁록에 상곡이 있었다 그 유명한 치우천자와 제후 소전의 아들 헌원과의 “탁록전투”로 유명한 그 탁록에 상곡이 속하여 있었다는 것이다 북경대학교 교재상에도 상곡이 탁록지역에 표기되고 있어 윗 사실을 재삼 확인해 준다.
Ⅱ.다음은 1981년 11월26일 ~ 27일 열린 국회 "국사청문회"에서 고 명지대 교수인 임승국 교수가 발표한 내용(국회 속기록) 중 백제 성씨에 관한 발언 부분이다.
“백제 일곱장군의 성씨는 중국에 존재합니다. 백제 7장군의 성씨만 훑어봐도 사학을 아는 사람은 깜짝 놀랄 일이 있어요 백제에는 본래 8대 성씨가 있는데 중국 25사와 우리 삼국사기는 이렇게 적고 있어요. 백제유 대성팔씨 사씨 해씨 진씨 목씨 국씨 연씨 묘씨 협씨 百濟有 大性八氏 沙氏 解氏 眞氏 木氏 國氏 燕氏 苗氏 協氏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 백제 8대 성씨가 현재 남북한을 통틀어 단 한 가구도 남지 않았는데 남제서 백제전의 7장군 성씨들은 대부분 유서 깊은 8대 성씨들이라는 사실이예요 (중략)"
다음은 상기한 고 임승국 교수의 발언 내용을 뒷받침하는 (중국 정사인 25사 중)『남제서(南齊書)』권58 동남이전(東南夷傳) 동이 백제에 나오는 기록이다. 是歲 魏虜又發騎數十萬攻百濟 入其界 (시세 위로우발기수십만공백제 입기계) 牟大遣將 沙法名 贊首流 解禮昆 木干那 率衆襲擊虜軍 大破之(모대견장 사법명 찬수류 해례곤 목간나 솔중습격로군 대파지) 이 해에 (490년 동성왕 12년)위나라 오랑캐가 또다시 기마병 수십만을 동원하여 백제를 공격하여 그 국경에 들어가니, 모대(牟大)가(백제 24대 동성왕) 장군 사법명(沙法名)·찬수류(贊首流)·해례곤(解禮昆)·목간나(木干那)를 파견하여 무리를 거느리고 오랑캐군을 기습, 공격하여 그들을 크게 무찔렀다.
이 중 ' 이 해(是歲)'는 남제(南齊)영명 8년, 490년, 백제동성왕 12년을 나타내며, 모대는 백제 제24대 동성왕(東成王)(479-501)을 의미하며, 이 중 沙法名(사법명) 贊首流(찬수류) 解禮昆(해례곤) 木干那(목간나)은 백제 장군의 이름이다. 이 성씨들이 백제의 주류 성씨였다고 본다. 그런데 이러한 성씨는 중국대륙에 흔한 성씨들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찾아 볼 수 없다.
Ⅲ. 다음은 대만대 교수인 진첩선씨의 “백제 8대 성씨에 대해”라는 글의 일부이다.
한반도에는 백제 성씨가 없다 한국의 성씨 통계를 보면 이상한 점이 발견된다 신구당서나 삼국사기에는 백제의 경우 2백 여개의 성(城)과 76만호(戶)가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백제 8대성 중 국(國)씨와 진(眞)씨를 제외한 6대 성씨가 한반도에는 없다. 그나마 남아 있는 국(國)씨와 진(眞)씨 성도 극소수이다.
한국의 성씨 중 예(芮)씨는 1985년 조사에서 가구 수 2,574가구로 274성 중 제100위에 랭크 되어있다 그런데 백제의 8성 중 단 하나의 성씨도 100위 이내에 들어있지 못하다 8개성 중 겨우 진(眞)씨가 151위(1,511명), 국(國)씨가 159위(978명)로 두개가 남아 있다 산동성을 중심으로 집중적으로 남아있는 백제 8대성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백제의 8성이 한반도에는 거의 없는데 지금의 산동성을 중심으로 대만에 더 많은 성씨가 존재한다는 것은 백제의 강역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라고 지적하고 있다. 다음은 내용 일부이다. 사(沙)씨는 산동성과 하남성에 나온 2가지가 있다고 소개하고 있으며, 협(協)씨는 음이 려(黎)라고 한 것으로 보아 혹시 치우천자의 “구려(九黎)”와의 연관성이 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 해(解)씨는 산서성 지명을 성씨로 만든 것이라 한다, 진(眞)씨는 원래 신(愼)씨에서 바꾼 것이라 한다.
Ⅳ.다음은 백제 8성 중 한반도에 살고 있는 3성 현황이다.
1) 진씨(眞氏)
진씨(眞氏)는 중국(中國) 상곡(上谷)에서 계출(系出)된 성씨이며, 우리나라에서는 백제 8대 성의 하나로 알려졌다.「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백제(百濟)고 이왕(古爾王) 때 내두좌평(內頭佐平)을 지낸 진 가(眞 可)라는 사람과 동성왕(東城王) 때 병관좌평(兵官佐平) 에 오른 진 로(眞 老), 삼근왕(三斤王) 때의 좌평(佐平) 진 남(眞 男), 아신왕(阿莘王) 때의 병관좌평(兵官佐平)에 오른 진 무(眞 武), 근초고왕(近肖古王) 때 조정좌평(朝廷佐平) 을 역임한 진 정(眞 淨) 등이 기록되어 있으며, 신라(新羅) 때도 진 공(眞 功) 이 신문왕(神文王) 때 대아찬(大阿 )을 지냈고, 진 복(眞 福)은 상대등(上大等)을 지냈다고 한다. 고려 때 와서는 925년(태조 8) 견훤(甄萱)이 진 호(眞 號)를 고려에 볼모로 보낸 사실이 문헌(文獻)에 나타나 있다. 진씨(眞氏)의 본관(本貫)은 서산(西山) 단본(單本)이며,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남한(南韓)에 총 292 가구, 1,511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국씨(國氏)
국씨(國氏)의 본관은 담양(潭陽)·풍천(豊川)·현풍(玄風)·영양(英陽)·김해(金海)·대명(大明) 등이 문헌에 전해지고 있지만 시조와 연원에 대해서는 미상이다. 국씨는 본래 백제의 8대성(八大姓)인 사(沙)·연(燕)·예(예)·해(解)·진(眞)·국(國)·목(木)·백(백) 중의 하나이다. 역사상의 인물로는 백제의 대신으로 611년(무왕 12) 수(隋)나라에 들어가 공물을 바치고 고구려 정벌을 의논한 국지모(國智牟), 고려 태조 때 원외랑(員外郞)인 국현(國 ) 등이 있는데 오늘날의 국씨와의 관계는 확실하지 않다. 1930년 국세조사 당시 평남 강서군에 담양국씨(潭陽國氏) 4가구와 함남 영흥군에 풍천국씨(豊川國氏) 3가구, 함남 단천군에 전주국씨(全州國氏) 1가구가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978명이 있다.
3) 연씨(燕氏)
연씨(燕氏)는 원래 중국(中國) 범양(范陽)에서 계출(系出)된 성씨(姓氏)로서 주(周)나라 때 공자(孔子)의 제자(弟子)인 연 급(燕 伋)의 후손이 나라 이름을 성(姓)으로 삼은 것이 시초가 되었다. 우리 나라 연씨(燕氏)는 백제(百濟)의 8대성(姓)으로 손꼽혔으며「삼국사기(三國史記)」에 성왕(聖王) 때 병관좌평(兵官佐平)을 지낸 연 실(燕 實) 등 연씨(燕氏)가 나오지만 시조 및 연원(淵源)은 알 수 없다. 본관(本貫)은 정주(定州) 외에 영평(永平)·전주(全州)·평주(平州 : 평산의 별호)·곡산(谷山)·덕원(德原)·장곡(長谷) 등이 문헌에 나타나 있다. 1930년도 국세조사 당시 정평(定平)·영흥(永興)·이원(利原) 등 이북에 22가구가 있었고 남한에 3가구가 살고 있었으며,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남한(南韓)에 총 26가구, 104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Ⅴ. 200여개의 성터와 76만호의 인구중 대부분을 차지했던 백제의 8대 성씨에 대한 추적은 백제란 나라에 대한 의문점이 더욱더 깊어지게 되는 것 같다.
출처: http://blog.joins.com/media/folderListSlide.asp?uid=soapis&folder=1&list_id=5907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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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쥬신가(太朝鮮歌)
아이사타 사타려와
아이사타 사타려와
파나류 지산에 흑수 백산에
하라돋지 사타려와
하라돋지 사타려와
신단수 신시에 아사달 쥬신에
빛이 와
새 생명이 있는 신성한 곳,
신성한 지역에 새 생명이 있는 신성한 곳
신성한 지역에 파나류 근처 산과 흑수 백산에
태양이 뜨는 신성한 곳,
신성한 땅에 태양이 뜨는 신성한 곳,
신성한 땅에 신단수 신시에 아사달 조선에
빛이 와
어비이 지이야 하늘 이시여
이제는 우리를 어비이 지이야
다물내 나미홀 다물내 나미나
이제는 아리 쥬신 돌아와
어여삐 여기소서 하늘이시여
이제는 우리를 어여삐 여기소서
잃어버린 강과 바다와 성을 다 되찾고
잃어버린 강과 바다와 땅을 다 되찾게 하소서
이제는 거대한 쥬신이시여 돌아오소서
아이사타 사타려와
아이사타 사타려와
파나류 지산에 흑수 백산에
하라돋지 사타려와
하라돋지 사타려와
신단수 신시에 아사달 쥬신에
빛이 와
새 생명이 있는 신성한 곳,
신성한 지역에 새 생명이 있는 신성한 곳
신성한 지역에 파나류 근처 산과 흑수 백산에
태양이 뜨는 신성한 곳,
신성한 땅에 태양이 뜨는 신성한 곳,
신성한 땅에 신단수 신시에 아사달 조선에
빛이 와
어비이 지이야 하늘 이시여
이제는 우리를 어비이 지이야
다물내 나미홀 다물내 나미나
이제는 아리 쥬신 돌아와
어여삐 여기소서 하늘이시여
이제는 우리를 어여삐 여기소서
잃어버린 강과 바다와 성을 다 되찾고
잃어버린 강과 바다와 땅을 다 되찾게 하소서
이제는 거대한 쥬신이시여 돌아오소서
어비이 지이야 하늘 이시여
이제는 우리를 어비이 지이야
다물내 나미홀 다물내 나미나
이제는 아리 쥬신 돌아와
다물내 나미홀 다물내 나미나
이제는 아리 쥬신 돌아와
이제는 아리 쥬신 돌아와
어여삐 여기소서 하늘이시여
이제는 우리를 어여삐 여기소서
잃어버린 강과 바다와 성을 다 되찾고
잃어버린 강과 바다와 땅을 다 되찾게 하소서
이제는 거대한 쥬신이시여 돌아오소서
잃어버린 강과 바다와 땅을 다 되찾게 하소서
이제는 거대한 쥬신이시여 돌아오소서!
이제는 거대한 쥬신이시여 돌아오소서~!!
http://tvpot.daum.net/clip/ClipView.do?clipid=21959775
출처 페이스북 이강산님의 글중에
첫댓글 절강성 奉化 출신이었던 장개석이 자신의 조상들도 백제의 후손이라고 말한 적이 있지요.
예 그렇군요...그럼 같은 민족이라는게 맞나요? 중국의 주은래수상도 비슷한 얘길 한거 같은데요?
같은 민족이란 기준이 보는이의 기준에 따라 달라 지겠지만,한자를 쓰던 조선(동국=동방)내의 사람들은 맞겠지요.주은래도 천진에서 공부를 했지만 그집안의 시작과 중심 웅거지는 절강성 소흥(큰집이 소흥의 토호였음)이었지요.당연히 백제의 후손이라 말할수 있지요.강소성과 절강성은 역사 조선의 강동(고려의 강동6주 지역)이자 요동이기도 했습니다.그런데 역사의 백제란 뜻이 大國으로 唐이란 명칭과 병용되면서 절강과 강소 일대가 唐으로 불렸던 적이 있었습니다.최초의 천주교당이 세워졌다는 당진이 원래는 절강성의 당진이었는데 이 지명을 반도의 충남 당진으로 옮겨놓고 조선 최초의 천주교당이 세워진 곳이라고 억지를 쓰지요.
아 예 잘알겠읍니다. 아직까지는 포괄적인 의미로 알아듣겠습니다.저도 대륙조선에 관심이 많아서 여기저기 많이 사이트 통해서 배우고 있습니다. 많이 알려주세요!
아휴 당진이 당나라때 지명이었군요..감사합니다.
지금의 전당강 하구 지역을 당진이라구 했지요.당시 천주교를 전해 줬다는 주문모란 청나라 신부이자 주교는 북경인이 아니고 강소성 蘇州(곤산)사람이 이었습니다.소주와 항주,吳州와 소흥,양주 지역은 모두 後唐지역 이었지요.김대건 신부는 지금의 광동성 황포지역에서 예수회 교육을 받았고 서품은 상해에서 주문모로 부터 받지요.이들은 반도에 온적이 없습니다.정다산(약용)집안과 천주교도 모두도 강소성과 절강성 지역 사람들 입니다.주활동 무대가 지금의 강소성 江都지역(양주) 이었습니다.정다산이 유배되어 자신이 있던 뒷산의 산명인 茶山을 차용해 아호로 시용했다는 다산도 절강성 해염에 있지요.
1911년현재 산동의 위치가 현재의 난주부근의 황하를 중심으로 한 지역이었다는 외국인의 기록처럼.. 또한 1940년이전 홍콩의 위치가 현 베트남의 통킹만이었듯이...대륙의 지명은 그 이동경과를 정확히 파악하기 전에는 현재의 지명을 중심으로 역사를 파악하다보면 온통 잘못된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백제의 지명이 현 산동부근에 있다는것은 후세에 의해 인구가 옮겨지고 지명이 옮겨진 결과입니다..따라서 가장 중요한 산동이나,상해, 홍콩, 한양의 정확한 위치를 고증후 다시 짚어보면 역사의 오류가 명확히 나타나고 구한말 조선의 강역이 명확이 나타는것 같습니다.
또한 역사를 고증함에 역사서적에 의지해서는 답을 찾아가기가 보통 어려운일이 아닐것입니다. 외국인의 방대한기록과 회화들, 그리고 천문기록, 그리고 최근 서구인들에 의해 정교하게 밝혀지고 있는 세계경제사...이런것들을 총괄분석해서 명확한 답을 찾아야 할것입니다. 성종실록에 조선도성의 호수가 백만이고 조선의 인구가 萬萬 즉 1억이라는 기록과 당시 세계경제사의 인구현황및 증가비율을 분석해보면 이 말이 타당함을 유추할수가 있다는 엄청난 사실들에 우리의 이목을 돌려야 할 것입니다.
1971년 현중국은 통킹만과 남..서사 군도의 영유권을 주장하며 베트남의 국경을 침법합니다.. 세계3대육군명장의 한사람인 보구엔지압장군의 반격에 의해 중공군은 1만5천명의 사상자를 내고 퇴각하며 현 국경이 확정됩니다.. 통킹이 홍콩으로 아편전쟁이 일어난 남중국의 영토였기에 일어난 일들이었습니다. 상해또한 현재의 위치가 아니라 통킹만의 위쪽에 위치하고 있었던 지명입니다. 물론 이런한 기록은 대만의 사학자 사요정에 의해 1960년경 저술된 책에 나와있는 기록입니다.
역사는 선조의 강역을 찾아가는 여정이라고 합니다...너무 나무에만 집착하다 보면 거대한 숲을 잊게 마련일 것입니다.. 참으로 어려운 부분입니다.
한반도가 역사의 주 영역이 아니라는 것이죠 대륙에 삼국이 있음을 증명하는 증좌 입니다 ,,,,
댓글에 많은 정보를 얻게되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