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카페 프로필 이미지
대조선사 연구회
 
 
 
카페 게시글
자유게시판 백제 8대 성씨의 오늘
신나 추천 0 조회 541 17.09.24 10:39 댓글 12
게시글 본문내용
 
다음검색
댓글
  • 17.09.24 10:46

    첫댓글 절강성 奉化 출신이었던 장개석이 자신의 조상들도 백제의 후손이라고 말한 적이 있지요.

  • 작성자 17.09.24 10:49

    예 그렇군요...그럼 같은 민족이라는게 맞나요? 중국의 주은래수상도 비슷한 얘길 한거 같은데요?

  • 17.09.24 11:08

    같은 민족이란 기준이 보는이의 기준에 따라 달라 지겠지만,한자를 쓰던 조선(동국=동방)내의 사람들은 맞겠지요.주은래도 천진에서 공부를 했지만 그집안의 시작과 중심 웅거지는 절강성 소흥(큰집이 소흥의 토호였음)이었지요.당연히 백제의 후손이라 말할수 있지요.강소성과 절강성은 역사 조선의 강동(고려의 강동6주 지역)이자 요동이기도 했습니다.그런데 역사의 백제란 뜻이 大國으로 唐이란 명칭과 병용되면서 절강과 강소 일대가 唐으로 불렸던 적이 있었습니다.최초의 천주교당이 세워졌다는 당진이 원래는 절강성의 당진이었는데 이 지명을 반도의 충남 당진으로 옮겨놓고 조선 최초의 천주교당이 세워진 곳이라고 억지를 쓰지요.

  • 작성자 17.09.24 11:02

    아 예 잘알겠읍니다. 아직까지는 포괄적인 의미로 알아듣겠습니다.저도 대륙조선에 관심이 많아서 여기저기 많이 사이트 통해서 배우고 있습니다. 많이 알려주세요!

  • 17.09.24 11:45

    아휴 당진이 당나라때 지명이었군요..감사합니다.

  • 17.09.25 10:18

    지금의 전당강 하구 지역을 당진이라구 했지요.당시 천주교를 전해 줬다는 주문모란 청나라 신부이자 주교는 북경인이 아니고 강소성 蘇州(곤산)사람이 이었습니다.소주와 항주,吳州와 소흥,양주 지역은 모두 後唐지역 이었지요.김대건 신부는 지금의 광동성 황포지역에서 예수회 교육을 받았고 서품은 상해에서 주문모로 부터 받지요.이들은 반도에 온적이 없습니다.정다산(약용)집안과 천주교도 모두도 강소성과 절강성 지역 사람들 입니다.주활동 무대가 지금의 강소성 江都지역(양주) 이었습니다.정다산이 유배되어 자신이 있던 뒷산의 산명인 茶山을 차용해 아호로 시용했다는 다산도 절강성 해염에 있지요.

  • 17.09.24 20:15

    1911년현재 산동의 위치가 현재의 난주부근의 황하를 중심으로 한 지역이었다는 외국인의 기록처럼.. 또한 1940년이전 홍콩의 위치가 현 베트남의 통킹만이었듯이...대륙의 지명은 그 이동경과를 정확히 파악하기 전에는 현재의 지명을 중심으로 역사를 파악하다보면 온통 잘못된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백제의 지명이 현 산동부근에 있다는것은 후세에 의해 인구가 옮겨지고 지명이 옮겨진 결과입니다..따라서 가장 중요한 산동이나,상해, 홍콩, 한양의 정확한 위치를 고증후 다시 짚어보면 역사의 오류가 명확히 나타나고 구한말 조선의 강역이 명확이 나타는것 같습니다.

  • 17.09.24 20:19

    또한 역사를 고증함에 역사서적에 의지해서는 답을 찾아가기가 보통 어려운일이 아닐것입니다. 외국인의 방대한기록과 회화들, 그리고 천문기록, 그리고 최근 서구인들에 의해 정교하게 밝혀지고 있는 세계경제사...이런것들을 총괄분석해서 명확한 답을 찾아야 할것입니다. 성종실록에 조선도성의 호수가 백만이고 조선의 인구가 萬萬 즉 1억이라는 기록과 당시 세계경제사의 인구현황및 증가비율을 분석해보면 이 말이 타당함을 유추할수가 있다는 엄청난 사실들에 우리의 이목을 돌려야 할 것입니다.

  • 17.09.24 20:47

    1971년 현중국은 통킹만과 남..서사 군도의 영유권을 주장하며 베트남의 국경을 침법합니다.. 세계3대육군명장의 한사람인 보구엔지압장군의 반격에 의해 중공군은 1만5천명의 사상자를 내고 퇴각하며 현 국경이 확정됩니다.. 통킹이 홍콩으로 아편전쟁이 일어난 남중국의 영토였기에 일어난 일들이었습니다. 상해또한 현재의 위치가 아니라 통킹만의 위쪽에 위치하고 있었던 지명입니다. 물론 이런한 기록은 대만의 사학자 사요정에 의해 1960년경 저술된 책에 나와있는 기록입니다.

  • 17.09.24 20:26

    역사는 선조의 강역을 찾아가는 여정이라고 합니다...너무 나무에만 집착하다 보면 거대한 숲을 잊게 마련일 것입니다.. 참으로 어려운 부분입니다.

  • 17.09.26 15:12

    한반도가 역사의 주 영역이 아니라는 것이죠 대륙에 삼국이 있음을 증명하는 증좌 입니다 ,,,,

  • 17.09.29 17:35

    댓글에 많은 정보를 얻게되네요~
    감사합니다.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