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무근체人生無根체 인생은 뿌리도 꼭지도 없으니
표여맥상진飄如陌上塵 들길에 날리는 먼지와 같은 거라.
분산축분전分散逐風轉 흩어져 바람 따라 굴러다니니
차이비상신此已非常身 이것이 이미 불변의 몸뚱아리 아니지.
락지위형제落地爲兄弟 태어나면 모두가 형제가 되는 것
하필골육친何必骨肉親 어찌 꼭 한 핏줄 사이라야 하랴.
득환당작악得歡當作樂 즐거울 땐 응당 풍류 즐겨야 하니
두주취비린斗酒聚比隣 한 말 술로 이웃과 어울려 본다네.
성년불중래盛年不重來 한창 나이 다시 오는 거 아니고
일일난재신一日難再晨 하루에 두 새벽이 있기는 어려워.
급시당면려及時當勉勵 늦기전에 면려해야 마땅한 거야
세월불대인歲月不待人 세월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으니.
* 체(艸+帶)
이 시는 도연명의 '잡시 12수' 가운데 첫 번째 시입니다.
도연명 시집에는 물론 실려 있고, 또한 고문진보 전집에 실려 있습니다.
人生無根체, 인생은 뿌리도 꼭지도 없으니.
체(艸+帶)는 '대' '제' 등으로 읽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우리 나라에서
는 대개 '체'로 읽습니다. 체(艸+帝)와 뜻이 같은 글자입니다. 오이 또
는 과일 등에서 줄기나 가지와 연결된 부분을 뜻하는 글자입니다. 뿌리
가 땅 깊이 들어가면 그 나무는 힘있게 서 있을 수 있습니다. 오이가 꼭
지가 튼튼하게 줄기에 붙어 있으면 아무 탈 없이 잘 자랄 수가 있습니
다. 근체는 뿌리와 꼭지, 다시말해 무언가 의지할 수 있는 바탕 또는 근
거를 말합니다. 인생은 정처없는 나그네 같은 것입니다. 떠돌이 신세인
것이지요.
飄如陌上塵, 들길에 날리는 먼지와 같은 거라.
'표'는 바람에 날린다는 뜻입니다. '맥'은 들길입니다. 들판, 농경지 사
이에 나 있는 길입니다. 혹 일반도로, 도회지의 길거리 등의 뜻으로도
쓰입니다만, 도연명 시인이 전원시인이고 시 창작의 배경이 농촌일 거라
고 보면, 들길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맥상'은 그 들
길 위에, 진은 먼지 티끌 같은 것이니까, 맥상진은 들길에 풀풀 날리는
먼지를 말합니다. 이 구절에서 문제되는 글자는 '여'자입니다. 이 글자
는 '무엇무엇과 같다.'는 뜻입니다. '표'하는 것이 '맥상진'과 같다.
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표여'를 붙은 낱말로 보아
서, '표연(飄然)'의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보면, 표연
은 그냥 '풀풀'입니다. '풀풀 저 들길의 먼지라' 로 번역할 수 있습니
다. 어느 쪽이든 큰 뜻은 마찬가지입니다만, 문법적 구조는 약간 다릅니
다.
分散逐風轉, 흩어져 바람 따라 굴러다니니.
분산은 나뉘어 흩어진다는 뜻이고, 축풍은 바람을 따라 이고, 전은 굴
러 다니는 것입니다. 나뉘어 흩어져서 바람 따라 굴러다니는 먼지와 같
은 것이 인생입니다.
此已非常身, 이것이 이미 불변의 몸뚱아리 아니지.
이몸은 불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차는 이몸을 뜻하는 것같습니다. '상
신'은 항상 변치 않는 몸이라는 뜻이니, 비상신, 상신이 아니다 라는 것
은 언젠가는 죽을 존재임을 암시합니다. 인생의 무상함을 의미합니다.
落地爲兄弟, 세상에 태어나면 모두가 형제가 되는 것.
락지는 땅에 떨어지다 는 말인데,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을 의미합니
다.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면 너도나도 다들 형제같은 사이가 되는 것
이니,
何必骨肉親, 어찌 꼭 한 핏줄 사이라야 하랴.
하필, 어찌 반드시, 골육지친만을 따지겠느냐는 말입니다. 세상 사람들
이 다들 형제 같은 사이인데, 굳이 내 친형제만을 형제라고 할 것은 없
다는 뜻입니다. 도연명 자신이 형제가 없었거나 아니면 있다가 잃었거
나 아마 그런 일이 있었던 것같습니다. 아니면 그런 상황에 있는 친구에
게 지어준 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이 두 구절과 아래의 두 구절
은 형제 없음에 대한 서글픔 같은 것을 위안하는 내용으로 보입니다.
得歡當作樂, 즐거울 땐 응당 풍류 즐겨야 하니.
득환, 즐거운 일이 있습니다. 작악은 음악을 연주하는 것을 말하는 것같
습니다. 친형제가 없더라도 의기소침해서 지내지 말고, 즐거운 일이 있
으면 음악도 연주하며 즐겁게 지내야 한다는 것이겠지요.
斗酒聚比隣, 한 말 술로 이웃과 어울려 본다네.
두주, 한 말의 술입니다. 량이 그다지 많은 것은 아니지만, 술 한 말을
장만하여 이웃 벗들을 불러모읍니다. 비린은 이웃하고 사는 사람들이
고, 취는 모은다는 뜻이니까, 이웃의 벗들을 부르는 것입니다.
盛年不重來, 한창 나이 다시 오는 거 아니고.
성년은 한창 젊은 나이를 말합니다. 젊어 기력이 왕성하기 때문에 공부
에 전념해야 할 시기입니다. 한창 때는 다시 오지 않습니다. 중래는 거
듭 오다 이고, 불중래는 거듭 오지 않는다 는 것입니다. 때를 놓치지 않
고 공부해야 합니다.
一日難再晨, 하루에 두 새벽이 있기는 어려워.
하루에는 새벽은 한 번 밖에 없습니다. 그 새벽 시간은 한 번 가면 다
시 오지 않는 것이지요.
及時當勉勵, 늦기전에 면려해야 마땅한 거야.
급시, 때 미처 라는 뜻입니다. 때에 미친다함은 때가 늦기 전에 그 늦어
지지 아니한 때에 미쳐서 공부한다는 말입니다. 면려는 힘써 노력하는
것을 뜻합니다.
歲月不待人, 세월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으니.
세월은 사람을 위해서 기다려 주지 않고, 사람과는 아무 상관없이 일정
한 속도로 흘러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