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사나이가 크리스마스를 위한 음악을 작곡해주었으면 하고 부탁 받은 것은 아직 여름이 한창일 때의 일이었다. 양사나이도, 의뢰하러 온 남자도 여름용 양 의상을 입은 채로 땀을 흠뻑 흘리고 있었다. 한창 여름에 양사나이로 계속 존재한다는 것은 꽤나 고통스런 일이다. 특히나 에어컨조차 살 수 없을 만큼 가난한 양사나이로서는.
선풍기가 빙글빙글 돌면서 두 사람의 양(羊) 귀를 펄럭거리고 있었다. "우리들 양사나이협회에서는.." 하고 상대의 양사나이는 가슴의 지퍼를 조금 내려서 선풍기 바람을 가슴속으로 넣으며 말했다. "매년 음악적 재능을 타고난 양사나이님을 한 분 선정해서 그분으로 하여금 성양상인(聖羊上人)님을 위로하기 위한 음악을 작곡해서, 그 곡을 크리스마스날에 연주하시게 하고 있습니다만, 올해는 경사스럽게도 당신이 선정된 것입니다."
"아하, 저런." 하고 양사나이는 말했다.
"특별히 올해는 성양상인(聖羊上人) 님께서 작고하신 지 꼭 2500년째가 되는 기념할 수밖에 없는 해이고, 따라서 무엇보다 여기에 어울리는 훌륭한 양사나이 음악을 작곡해 주셨으면 하고 바라는 바입니다." 하고 남자는 말했다.
"과연, 그렇군요." 하고 양사나이는 귀를 긁으면서 말했다. 크리스마스까지는 아직 4개월 반이나 있다. 그 정도의 날짜라면 나도 멋진 양사나이 음악을 작곡할 수 있을 거야, 라고 양사나이는 생각했다.
"좋습니다. 제게 맡겨 주십시오." 라고 양사나이는 가슴을 펴고 말했다. "반드시 멋진 음악을 작곡해 보여드릴테니까요."
그러나 9월이 지나고, 10월이 지나고, 11월이 끝나도 양사나이는 양사나이 협회로부터 부탁 받은 음악을 작곡하는 것을 시작조차 할 수 없었다.
양사나이는 낮시간에는 근처의 도넛숍에서 일하고 있었기 때문에 작곡을 할 수 있는 시간은 정말 조금밖에 없었다. 그러나 양사나이가 낡아빠진 피아노를 치기 시작하면 반드시 1층에 살고 있는 집주인의 부인이 올라와서, 쾅쾅쾅 문을 두드리는 것이다.
"시끄러워요. 집어치워요! 텔레비젼 소리가 들리지 않잖아요"
"정말 죄송합니다만, 이것도 크리스마스까지만 하면 되니까 잠시동안만 참아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만..." 양사나이는 눈치를 보며 말했다.
"바보 같은 소리 말아요!" 라고 집주인의 부인은 소리를 질렀다. "싫으면 나가면 되잖아요. 댁같이 기묘한 꼬락서니를 하고 있는 사람을 살게 해주는 것만으로도 세간에 웃음거리가 되니까. 이 이상 귀찮은 일은 사양하겠어요!"
양사나이는 참담한 기분으로 달력을 들여다보았다. 크리스마스는 4일 앞으로 다가와 있는데 약속한 음악은 한 소절도 작곡되어 있지 않았다. 피아노를 칠 수 없기 때문이다.
양사나이가 침울한 얼굴로 점심시간에 공원에서 도넛을 먹고 있을 때 마침 양박사가 그곳을 지나갔다.
"무슨 일이지? 양사나이군." 하고 양박사는 물었다. "기운이 없어 보이는데? 크리스마스도 가까워지는데 그러면 안되지."
"제가 기운이 없는 건 그 크리스마스 때문입니다." 하고 양사나이는 말하며, 양박사에게 자초지종을 털어 놓았다.
"흐으음." 하고 양사나이는 콧수염을 쓰다듬었다. "그것이라면 내가 도와 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는걸."
"정말이세요?" 양사나이는 수상쩍다는 듯이 말했다. 왜냐하면 양박사는 양에 관한 것 밖에 연구하지 않는 학자로, 마을을 사람들 사이에서는 머리가 조금 이상하지 않을까 하는 소문이 가라앉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말이지." 하고 양박사는 말했다. "저녁 여섯시에 우리 집에 오게. 좋은 방법을 가르쳐 주겠네. 그런데, 이 시나몬 도넛 좀 맛봐도 될까?"
그러고는 양사나이가 "좋습니다." 라든가 "드세요." 라는 대답을 하기도 전에 도넛을 집어서는 우적우적 먹어버렸다.
그 날 저녁 양사나이는 시나몬 도넛 여섯 개를 선물로 들고 양박사의 집을 방문하였다. 양박사의 집은 아주 낡은 벽돌 건조 주택이었는데, 정원수는 전부 양 모양으로 깎아 다듬어져 있었다. 문의 초인종도, 문주(門柱)도, 입구에 깔린 돌도, 하나부터 열까지 양이었다. 이것 정말 대단한걸, 하고 양사나이는 생각했다.
양박사는 여섯 개의 도넛 중 네 개까지를 숨도 쉬지 않고 게걸스럽게 먹고 남은 두 개를 소중하다는 듯이 벽장 속에 넣었다. 그리고 손가락에 침을 묻혀서 테이블 위에 흩어진 찌꺼기를 주워 모아 할짝할짝 핥았다.
"이 사람은 정말로 도넛을 좋아하는가 보군." 하고 양사나이는 감탄했다.
손가락을 깨끗하게 핥고 나자, 양박사는 책장에서 두꺼운 책 한 권을 집어냈다. 책의 표지에는 <양사나이의 역사>라고 씌어 있었다.
"자아, 양사나이군." 하고 양박사는 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에는 양사나이에 관한 것이 전부 씌어 있다. 자네가 어째서 양사나이 음악을 작곡할 수 없는 것인가 하는 이유도 말일세."
"하지만 박사님, 그 이유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요. 그건 하숙집 부인께서 내가 피아노를 칠 수 있게 놓아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라고 양사나이는 말했다. "만일 피아노만 칠 수 있게 해 준다면..."
"아니야, 아니야." 라고 양박사는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그런 게 아니라네. 그 피아노를 칠 수 있다고 작곡을 할 수 있는 게 아냐. 거기에는 좀 더 심각한 이유가 있어."
"그렇게 말씀하시면?" 하고 양사나이가 물었다. "저주를 받은 거지." 양박사는 소리를 죽여 말했다. "저주를 받았다구요?"
"바로 그거야." 하고 양박사는 말하고 몇 번이나 끄덕거렸다. "바로 저주를 받았기 때문에 자네는 피아노도 칠 수 없고, 작곡도 할 수 없는 것이다."
"흐음." 하고 양사나이는 신음했다. "그럼, 어째서 저주 따위 받거나 하는 거죠? 아무 것도 나쁜 짓 한 것 없는데."
양박사는 책의 페이지를 펄럭펄럭 넘겼다. "자네는 어쩌다가 6월 15일에 달을 올려다보지 않았나?"
"아닙니다. 벌써 5년째 달 따위 쳐다보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면, 작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구멍 뚫린 걸 먹지 않았나?"
"도넛라면 매일 점심으로 먹고 있습죠. 크리스마스 이브에 먹은 게 어떤 도넛였는가는 생각나지 않지만. 그러니까... 어쨌든 도넛을 먹은 것은 틀림없습니다."
"구멍이 뚫린 도넛인가?"
"예, 그건 그렇죠. 도넛라는 건, 대개 모두가 구멍이 뚫려 있으니까요."
"그거야!" 하고 양박사는 말하며,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덕에 자네에게 저주가 걸려버린 것이야. 자네도 양사나이의 한 사람이라면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에 구멍이 뚫린 음식을 먹으면 안 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을 텐데."
"그런 이야기는 들은 적도 없습니다요." 양사나이는 깜짝 놀라 말했다. "도대체 무슨 말입니까? 그건."
"성양제일(聖羊祭日)을 모르다니. 이거 놀라운걸." 양박사는 더욱 놀라며 말했다. "요즘 젊은이는 아무 것도 모르고 있구만. 자네는 양사나이가 되었을 때 양사나이 학교에 다니며 여러 가지 것들을 배웠겠지?"
"예에, 뭐, 그건... 그렇지만 저는 학교 공부를 그다지 잘하는 편은 아니어서.. 그..." 양사나이는 머리를 벅벅 긁었다.
"헛, 참, 이봐. 자네가 부주의했기 때문에 이런 궁지에 빠지게 된거라구. 하는 수 없는 녀석이구만. 그러나 도넛을 얻어먹은 것도 있고 하니 여기서 내가 가르쳐 주도록 하지." 하고 양박사는 말했다.
"괜찮을까? 12월 24일은 크리스마스 이브인 동시에 성양제일(聖羊祭日) 이기도 하거든. 즉, 이날은 성양상인(聖羊上人)께서 밤중에 길을 걷고 계시다가 구멍 속으로 떨어져 돌아가셨다는 신성한 날이 아닌가. 따라서 그 날에 구멍이 뚫린 음식을 먹으면 안 된다는 것은 오랜 옛날부터 확실하게 정해져 있는 것 아닌가. 마카로니라든가, 구멍 뚫린 오뎅이라든가, 도넛라든가, 오징어 링이라든가, 둥글게 자른 양파라든가, 그렇게 생긴 것들."
"궁금한 게 있는데요, 어째서 성양상인(聖羊上人)님은 밤중에 길을 걷고 계셨으며, 어째서 길에 구멍같은게 뚫려 있었던 거죠?"
"그런 것 나는 모르네. 아무튼 2500년이나 옛날의 일이잖아. 그런 것 알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러나 어쨌든 그렇게 정해져 있는 거야. 그것이 "규정"이라는 것이야. 알고 있었든 모르고 있었든 규칙을 어기면 저주가 걸려. 저주에 걸리면 양사나이는 이제 더 이상 양사나이가 아니게 되어버리는 것이야. 자네가 양사나이 음악을 작곡 못하는 이유는 거기에 있는 것이야, 음..."
"곤란하게 됐는걸.." 하고 양사나이는 아주 난처해하며 말했다. "그 저주를 풀 방법은 없나요?"
"흐음." 양박사는 말했다. "저주를 풀 방법이 없는 건 아니야. 그러나 그건 간단한 일이 아니지. 그래도 괜찮겠는가?"
"상관없습니다.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가르쳐 주십시오."
"그 방법은 자네 자신도 구멍에 떨어지는 것이야."
"구멍?" 하고 양사나이는 말했다. "구멍에 떨어지다니, 어떤 구멍 말입니까? 구멍이기만 하면 아무 것이라도 괜찮습니까?"
"바보 같은 소리! 어떤 구멍이라도 괜찮을 리가 있나? 저주를 풀기 위한 구멍이라는 건 크기도 깊이도 정확히 정해져 있어. 잠시 기다리게. 지금 찾아 볼 테니까."
양박사는 <성양상인전(聖羊上人傳)>이라는 너덜너덜한 책을 꺼내서 또 펄럭펄럭 페이지를 넘겼다.
"그러니까... 음... 여기다! "성양상인(聖羊上人)은 직경 2m, 깊이 203m인 구멍에 빠져서 돌아가셨다" 라고 되어 있다. 그러니까 그것과 같은 구멍에 빠지면 되는 거야."
"그렇지만 말입니다. 깊이 203m의 구멍이라면 아무래도 저 혼자서는 팔 수도 없고, 무엇보다도 그런 구멍에 떨어지면 저주가 풀리기 전에 죽어버리지 않겠습니까?"
"기다려, 기다려. 아직 다음이 있어. "저주를 풀고 싶다고 생각하는 자는 구멍의 길이를 100분의 1로 생략해도 관계없다" 즉 2m 3cm라도 좋다는 말이로군."
"아, 다행이다. 그 정도라면 괜찮지. 파겠습니다!" 하고 양사나이는 가슴을 쓸어 내리며 말했다.
양사나이는 양박사에게서 책을 빌려 집에 돌아왔다. 그 책에 의하면 저주를 풀기 위한 구멍에는 실로 많은 규약이 있었는데, 양사나이는 그것을 하나하나 노트에 적어 내려가 보았다.
(1) 구멍은 토네리코 나무 손잡이의 삽으로 파지 않으면 안 된다 [성양상인 (聖羊上人) 이 토네리코 지팡이를 짚고 떨어지셨기 때문이다]
(2) 구멍에 떨어지는 것은 크리스마스 이브의 새벽 1시 16분이 아니면 안 된다 [성양상인 (聖羊上人) 이 그 시각에 구멍이 떨어졌기 때문]
(3) 구멍에 떨어질 때에는 구멍이 뚫려 있지 않은 음식을 도시락으로 가지고 있지 않으면 안된다.
(1)과 (2)는 접어 두더라도 기껏해야 2m 깊이의 구멍에 떨어지는데 어째서 도시락이 필요한 것일까, 양사나이는 잘 이해되지 않았다.
"뭐, 좋다. 그렇게 씌어 있으니 그대로 하면 되는 거지." 하고 양사나이는 생각했다.
크리스마스 이브는 앞으로 3일 후로 임박해 있다. 3일 안에 토네리코 손잡이의 삽을 만들어 직경 2m, 깊이 2m 3cm 의 구멍을 파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 참, 정말이지 이상한 일에 휘말려 버렸네, 하고 생각하며 양사나이는 한숨을 쉬었다.
토네리코 나무는 숲속에서 발견되었다. 양사나이는 적당한 굵기로 자란 토네리코 가지를 잘라, 하루 걸려 그것을 칼로 다듬어 삽의 자루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다음날 집 뒤 공터에 구멍을 파기 시작했다.
하숙집 부인이 다가와서 "당신, 구멍 따위 뭐하려고 파고 있는 거죠?" 하고 물었다. "쓰레기를 버릴 구멍을 파고 있습니다." 하고 양사나이는 대답했다. "그런 게 있으면 편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흠... 그래요? 이상한 짓 하기만 하면 경찰에 전화를 걸어버릴테야!" 하숙집 부인은 미워죽겠다는 듯이 말하고는 저쪽으로 가버렸다.
양사나이는 줄자로 정확히 길이를 재면서 직경 2m, 깊이 2m 3cm의 구멍을 파는데 성공했다.
"음, 이걸로 됐겠지." 양사나이는 말하며, 구멍에 나무 뚜껑을 덮었다.
바야흐로 크리스마스 이브 날이 돌아왔다. 양사나이는 도넛 가게에서 구멍이 뚫리지 않은 꽈배기 도넛을 한아름 가지고 와서 그것을 배낭에 채워 넣었다. 이 정도면 도시락이 되겠지. 그리고 양의상의 가슴 주머니에 지갑과 소형 회중전등을 넣고, 지퍼를 잠갔다.
오전 1시가 되자 주위의 집들의 불도 꺼지고 공터는 깜깜하게 되었다.
달도 없고, 별도 보이지 않는다. 자신의 손마저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어두워서야 성양상인(聖羊上人)님이라도 별 수 없이 구멍에 빠질 수밖에." 양사나이는 중얼거리면서 회중전등으로 구멍을 찾았다.
"미치겠네. 이제 슬슬 1시 16분이 가까워질 시간인데. 만약 구멍을 못 찾으면 내년 크리스마스 이브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아주 큰일이잖아." 라고 말하는 순간, 돌연 양사나이의 발 밑 지면이 푹 꺼졌다. 양사나이는 구멍에 빠진 것이었다.
"누군가가 낮 동안에 뚜껑을 치워 버렸나.." 구멍을 떨어지면서 양사나이는 생각했다. "결국.. 하숙집 부인이 그랬나보군. 하여간 그 사람은 내가 싫어하는 짓만 골라서 한다니까."
그러나, 양사나이는 그렇게 생각한 후에 아무래도 뭔가 이상하다는 것에 생각이 미쳤다. 나는 아직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다. 내가 판 구멍은 깊이 2m 3cm 밖에 안되기 때문에 바닥에 닿기까지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릴 리가 없다.
갑자기 콰당 소리가 나고, 양사나이는 구멍의 바닥에 부딪혔다. 굉장히 깊은 구멍이었는데도 이상하게 아프지는 않았다.
양사나이는 머리를 흔들고, 회중전등으로 주위를 비춰보려고 했지만, 회중전등은 없었다. 구멍에 떨어질 때 없어져버린 것이 분명하다.
"뭐야, 이 자식아." 라고 말하는 소리가 어둠 속에서 들렸다. "아직 1시 14분이잖아. 2분 빨랐어, 임마. 다시 한번 위로 올라가서 처음부터 다시 해!"
"죄송합니다. 어둡고 잘 안보여서 틀리게 떨어져 버렸습니다." 하고 양사나이는 말했다. "게다가, 이렇게 깊은 구멍을 다시 한번 위에 올라가는 건 아무래도 무리입니다요."
"하는 수 없는 자식이로구만. 조금 때문에 다 틀려 버릴 뻔했잖아. 이쪽에서는 1시 16분에 떨어져 올 걸 예상하고 있었으니까."
그러고 나서 성냥을 켜는 소리가 들리고, 양초의 불이 켜졌다. 촛불을 켠 것은 키가 큰 남자였다. 그러나 키가 크다고는 해도, 어깨까지의 높이는 양사나이와 거의 차이가 없었다. 다만 머리가 지독하게 길고, 그것이 꽈배기 도넛처럼 빙빙 꼬여 있었다.
"그건 그렇고, 너 임마. 도시락은 틀림없이 가지고 온 거겠지?" 라고 "꽈배기"가 말했다. "가져오지 않았다면 정말 잔인한 거지."
"가지고 왔습니다요, 틀림없이." 양사나이는 당황하며 대답했다.
"그럼, 꺼내봐, 임마. 이 몸은 지금 배가 고프거든."
양사나이는 배낭을 열고, 가져 온 꽈배기 도넛을 하나 꺼내, "꽈배기"에 게 건네주었다.
"뭐, 뭐야, 이게?" 라고 꽈배기는 그것을 보고 소리질렀다. "너, 내 얼굴모양을 비웃으려고 이따위 것 가지고 온 거지? 이 자식아!"
"아니, 그건 오해입니다." 하고 양사나이는 땀을 닦으면서 말했다. "저는 도넛가게에서 일하고 있고, 구멍이 뚫려 있지 않은 음식이라고는 그 꽈배기 도넛밖에 없어서요."
"그것봐. 너 지금 "꽈배기"라고 말했잖아, 임마." 하고 꽈배기는 말하고 땅바닥에 주저앉아 꼬여진 눈에서 눈물을 흘리며 훌쩍훌쩍 울기 시작했다. "나라고 좋아서 이런 얼굴을 하고, 이렇게 어두운 구멍의 밑바닥에서 문지기 노릇을 하고 있는 줄 알어?"
"아, 환장하겠네. 제가 말실수 한 거예요. "꼬인 도넛"라고 말할 생각이었는데."
"이미 늦었어, 임마" 꽈배기는 울면서 말했다.
하는 수 없이 양사나이는 꽈배기 도넛을 한 개 더 꺼내서 그 꼬인 부분을 풀어 똑바르게 늘인 다음 "꽈배기"에게 건넸다.
"이것 봐요, 아무것도 아니죠? 똑바르죠? 괜찮으니까 드세요. 맛있다구요."
꽈배기는 그것을 받아들고 우물우물 먹었지만, 그래도 울기는 그치지 않았다.
꽈배기가 울면서 도넛을 먹고 있는 동안 양사나이는 꽈배기의 양초를 빌려서 구멍의 바닥을 조사해 보았다. 구멍의 바닥은 휑뎅그렁하게 넓은 방으로 되어 있었다. 방에는 꽈배기를 위한 침대와 책상이 놓여 있었다.
"문지기라고 한 이상, 어딘가 분명히 문이 있을 거야." 하고 양사나이는 생각했다.
"문이 없으면 문지기 따위 필요 없는 것!"
양사나이가 생각한 대로 침대의 옆에 작은 횡혈이 뚫려 있었다. 양사나이는 양초를 가지고 횡혈로 기어 들어갔다.
구멍은 깜깜하고 구불텅구불텅 구부러져 있었다.
"세상에, 고작 작년 12월 24일에 도넛을 먹었다고 이런 꼴을 당하게 되다니."
하고 양사나이는 중얼중얼 혼잣말을 했다.
10분 정도 가니까, 주위가 차츰 밝아져 왔다. 그리고 구멍의 출구가 보였다. 구멍의 밖에는 밝은 햇살이 넘쳐나고 있었다.
"왠지 이상한걸. 구멍에 떨어진 게 밤 1시 조금 넘어서였으니까, 아직 날이 밝을 리가 없을 텐데." 하고 양사나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구멍에서 나오자 텅 빈 공터가 펼쳐져 있었다. 공터 주위는 양사나이가 이제까지 본 적이 없을 정도로 높은 나무로 둘러 싸여 있었다. 하늘에는 흰 구름이 떠 있고, 새소리도 들려 왔다.
"자, 이제부터 어떻게 하면 되는 걸까? 그 책에는 구멍에 떨어지기만 하면 그걸로 저주가 풀릴 거라.
고 씌어 있었는데, 왜 이렇게 되어버린 거지?" 하고 양사나이는 말했다.
양사나이는 약간 배가 고팠기 때문에, 우선 앉아서 도넛을 하나 먹기로 했다.
양사나이가 도넛을 먹고 있으려니, 뒤쪽에서 "안녕하세요? 양사나이님."
"안녕하세요?" 하는 소리가 들렸다. 양사나이가 뒤돌아보자 거기에는 쌍둥이 여자아이들이 서 있었다. 하나는 <208> 이라는 번호가 씌어진 셔츠를 입고, 또 하나는 <209> 라는 번호가 씌어진 셔츠를 입고 있었다.
그 번호를 제외한다면 두 여자아이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전히 똑같았다.
"어이, 얘들아." 하고 양사나이는 말했다. "이리 와서 같이 도넛 먹지 않을래?"
"우와, 멋져." 하고 208이 말했다. "정말 맛있겠다." 하고 209가 말했다.
"맛있지, 그럼. 내가 만든 거거든." 하고 양사나이가 말했다. 셋은 땅바닥에 나란히 앉아 냠냠 도넛을 먹었다.
"잘 먹었어요." 하고 209가 말했다.
"이렇게 맛있는 도넛 처음이야." 하고 208이 말했다.
"맛있었다니 다행이네." 하고 양사나이는 말했다. "그런데, 너희들. 내가 저주에 걸려 있는데, 그것을 풀 방법 모르니? 여기에 오면 풀 수 있다고 들었거든."
"가엾어라." 하고 208이 말했다.
"저주라니, 정말 큰일이네요." 하고 209가 말했다.
"끔찍하게 큰일이야." 하고 양사나이는 말하고 한숨을 쉬었다.
"그거라면 바다까마귀 부인께 물어보면 어떨까?" 하고 209가 208에게 말했다.
"맞아. 바다까마귀 부인이라면 알고 있을지도 몰라." 하고 208이 209에게 말했다.
"그 부인, 저주에 관한 거라면 아주 훤하잖아." 하고 209가 208에게 말했다.
"저기, 너희들. 나를 그 까마귀 부인이 있는 곳까지 데려가 주지 않겠니?" 하고 양사나이는 말했다.
"까마귀가 아니에요." 하고 208이 말했다.
"바다까마귀예요." 하고 209가 말했다.
"까마귀와 바다까마귀는 전혀 다르니까요." 하고 208이 말했다.
"맞아요." 하고 209가 말했다.
"미안, 미안." 하고 양사나이는 208과 209에게 사과했다. "그 바다까마귀 부인이 있는 곳에 데려가 줄 수 있겠니?"
"문제없어요." 하고 208이 말했다.
"모셔다 드릴까?" 하고 209가 말했다.
쌍둥이와 양사나이는 셋이서 숲 속 길을 걸었다. 쌍둥이는 걸으면서 노래를 불렀다.
만약 바람이 쌍둥이였다면
동과 서로 불 수 있었을 텐데
만약 바람이 쌍둥이였다면
오른쪽 왼쪽으로 불 수 있었을 텐데
10분인가 15분 걷자 숲은 끝나고 그 앞에는 끝없는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저기 언덕 위에 작은 오두막집이 보이죠? 저것이 바다까마귀 부인의 집이에요."
하고 209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우리는 숲 밖으로 나가면 안되거든요." 하고 208이 말했다.
"정말 고마워. 아주 큰 도움이 되었어." 하고 양사나이는 말했다. 그리고 가방에서 꽈배기를 꺼내서 쌍둥이에게 하나씩 주었다.
"고마워요, 양사나이님." 하고 208이 말했다.
"저주가 잘 풀렸으면 좋겠네요." 하고 209가 말했다.
바다까마귀 부인의 집으로 가는 길은 아주 험했다. 언덕은 울퉁불퉁 깎아지른 듯 솟아 있고, 길다운 길도 없었다. 더군다나 강한 바닷바람은 언덕에 매달린 양사나이를 금방이라도 불어 날려버릴 듯 했다.
"바다까마귀 부인은 하늘을 날 수 있기 때문에 별 상관없겠지만 걸어서 오르는 사람도 좀 생각해 줬으면 좋겠구만." 하고 양사나이는 투덜거렸다.
그렇지만 양사나이는 힘겹게 언덕을 꼭대기까지 기어올라 바다까마귀 부인의 집을 노크했다.
"누구지? 신문 수금인가?" 집안에서 덜렁대는 듯한 큰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뇨, 아닙니다. 양사나이라고 합니다만." 하고 양사나이는 말했다.
"그 따위 것, 알 바 없어." 하고 바다까마귀 부인인 듯한 소리가 딱 잘라 말했다.
"이상한 사람 아닙니다. 문 좀 열어 주세요."
"정말 신문 수금이 아니지?"
돌연 문이 덜컹 열리고, 바다까마귀 부인이 얼굴을 내밀었다. 부인은 매우 키가 크고, 부리 앞은 곡괭이처럼 뾰족했다.
"쌍둥이가 바다까마귀 부인이라면 저주에 관한 일은 정통하다고 가르쳐 줬습니다." 하고 양사나이는 바들바들 떨면서 말했다. 이런 부리로 머리를 쪼이게 된다면 눈 깜짝할 사이에 죽어 버릴 거야.
부인은 수상쩍다는 듯이 양사나이를 빤히 쳐다봤다. "우선 안으로 들어오시게. 이야기를 들어봐야지."
집 안은 지독하게 어질어져 있었다. 바닥은 먼지 투성이였고, 테이블에는 소스가 흠뻑 찌들어 있고, 쓰레기통은 마구 넘쳐나고 있었다.
양사나이는 지금까지 일어난 일을 하나하나 설명했다.
"것 참, 안됐구만." 하고 부인은 말했다. "당신, 잘못된 출구로 나와 버린 거야."
"그럼 다시 한 번 처음으로 돌아가야겠군요."
"그건 안 돼. 한번 들어와 버리면 처음으로는 돌아갈 수 없지." 하고 부인은 부리를 좌우로 흔들며 말했다. "단지 내가 당신을 등에 태우고 저주를 풀 수 있는 장소까지 데려다 줄 수는 있어." "그렇게 해 주신다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만." 하고 양사나이는 말했다.
"그렇지만, 자네... 무겁겠는걸." 하고 바다까마귀 부인은 주의 깊게 말했다.
"무겁지 않습니다. 42kg 밖에 안됩니다." 하고 양사나이는 3kg 줄여서 말했다.
"그럼, 이렇게 하지." 하고 바다까마귀 부인은 말했다. "자네가 이 방을 청소해 주면 나는 자네를 그 장소에 데려다 주지."
"좋구말구요"
그러나 바다까마귀 부인의 방을 청소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벌써 몇 달째 청소를 하지 않았음에 틀림없다. 양사나이는 때가 들러붙은 접시와 그릇을 씻고, 테이블을 닦고, 바닥에 청소기를 돌리고, 타월을 빨고, 쓰레기를 모아서 버렸다. 거기까지 끝나자 양사나이는 완전히 녹초가 되어버렸다.
"정말이지 저주 덕에 지독한 꼴을 다 당하는군." 하고 양사나이는 부인에게 들리지 않도록 투덜투덜 불평을 했다.
"어머나, 깨끗해졌네." 하고 바다까마귀 부인은 만족한 듯이 말했다. "집이라고 하면 자고로 이 정도 정리는 되어 있어야지."
"그럼, 그 장소에 데려다 주시겠어요?"
"좋아. 나는 약속은 지켜요. 자, 내 등에 타요."
양사나이가 등에 타자 바다까마귀 부인은 하늘로 훌쩍 날아 올랐다. 양사나이는 하늘을 나는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부인의 목에 꽉 잡고 매달렸다.
"좀좀.. 이봐요. 힘들어. 목을 꽉 조르면 어떡해. 숨을 쉴 수가 없잖아." 하고 바다까마귀 부인은 소리쳤다.
"대단히 죄송합니다." 하고 양사나이는 바다까마귀 부인에게 사과했다.
하늘에서는 바다랑 숲이랑 언덕이 한 눈에 보였다. 푸른 숲과 짙푸른 바다가 끝없이 계속되고 그 사이에 띠처럼 하얀 모래사장이 늘어져 있었다. 그것은 정말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아름답군요." 하고 양사나이는 말했다.
"그런 것, 당신도 매일 보고 있으면 싫증 나 버릴 거야." 하고 바다까마귀 부인은 재미없다는 듯이 대답했다.
바다까마귀 부인은 날개의 상태를 시험하듯이 양사나이를 태우고 집 위를 빙글빙글 몇 번인가 맴돌고 나더니, 100m도 떨어지지 않은 초원에 내려앉았다.
"왜 그러십니까, 부인. 어디 불편하신 데라도?" 하고 양사나이는 걱정이 되어 불었다.
"불편한 곳 없어, 전혀." 하고 바다까마귀 부인은 목을 좌우로 죽죽 돌리면서 말했다. "몸이 안 좋을 리가 없잖아? 내가 건강 그 자체라는 건, 이 근방에서는 유명한걸."
"아.. 이런 장소에 내리시길래."
"여기가 그 장소니까." 하고 부인은 말했다.
"여기는 당신 집에서 100m도 떨어져 있지 않잖아요?" 하고 양사나이는 어이없어 말했다. "이 정도라면 굳이 등에 태워주시지 않았어도 걸어서도 충분히 올 수 있었습니다요."
"그렇지만 당신, 그랬으면 내 방 청소 같은 거 안 해줬을걸?"
"그야, 뭐. 그렇겠지만."
"그리고 나는 멀다거나 하는 이야기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어. 그냥, 등에 태우고 가 줄 수 없는 건 아니라고 말한 것뿐인걸."
"음, 그야. 그렇지만." 하고 양사나이는 납득하지 못한 채 말했다.
바다까마귀 부인은 까악까악 웃으면서 하늘로 날아 올라 집의 방향으로 돌아갔다.
양사나이가 주위를 둘러보자, 초원의 한 가운데 커다란 나무가 한 그루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나무의 줄기에는 줄사다리가 걸려 있었다. 그 외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양사나이는 우선 그 사다리를 올라가 보기로 했다.
줄사다리는 심하게 흔들거려서 올라가기가 힘들었다. 양사나이가 땀을 흘리면서 맨 위까지, 30개나 40개 정도의 계단을 올라가자, 가지 사이에서 "어이, 자네, 뭐 볼 일 있나?" 하는 밝은 목소리가 들렸다.
"아, 실례합니다. 저주 때문에 왔습니다만. 뭔가 아시는 것이 없으신 지요?" 하고 양사나이는 그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을 향해서 말해 보았다.
"아, 저주로군, 하하하. 좋아, 이쪽으로 오시게." 하고 그 목소리는 말했다.
양사나이가 발을 미끄러트리지 않도록 주의하며 가지를 헤치면서 그 쪽으로 갔더니, 그 속에는 나무 굴을 이용한 조그마한 방이 있고, 그 방의 앞에서는 꽈배기가 앉아서 커다란 면도날로 턱수염을 깎고 있었다.
"얼랄라." 하고 양사나이는 놀라서 말했다. "당신은 굴의 밑바닥에 있지 않았습니까?"
"아냐 아냐, 그건 내가 아니야, 하하하하." 하고 그 꽈배기는 웃으면서 말했다. "그건 형님이지. 이것 봐, 나는 오른쪽으로 꼬여 있지. 형님은 왼쪽 방향으로 꼬여 있어. 형님은 금방 울기도 하고, 다른 사람에게 욕을 하기도 하고 그러지, 후후후."
오른 꽈배기는 눈을 오른쪽으로 향하고 턱을 왼쪽으로 향하고는 킬킬거리며 웃으면서 그릇에 수염을 깎고 있었다.
"같은 형제인데도 상당히 성격이 달라 보이는군요." 하고 양사나이는 놀라하며 말했다.
"그거야, 이 사람아, 오른쪽과 왼쪽인걸. 정반대잖아. 후후후후." 하고 오른 꽈배기는 귀 아래에 면도날을 갖다대면서 말했다. "후후후후후."
"그런데, 저주 말입니다만." 하고 양사나이는 말했다.
"아무 것도 안 가르쳐 줄 거야, 헤헤헤." 하고 오른 꽈배기는 말했다. "더 저주받아서, 실컷 고생해 보라구, 헤헤헤헤헤."
양사나이는 화를 내고 나무를 내려 왔다.
"정말이지 너무너무 싫은 곳이야, 여기는." 하고 양사나이는 말했다. "오른 꽈배기도, 왼 꽈배기도 비슷한 정도로 꼬여 있고, 바다까마귀 부인은 제멋 대로고."
양사나이는 이제 될 대로 돼버려라 하는 기분이 되어, 눈에 보이는 길을 따라 앞으로 걸어갔다. 한동안 걷자, 깨끗한 샘이 있어서 양사나이는 거기에서 물을 마시고 도넛을 또 하나 먹었다. 도넛을 먹어버리자 졸려와서, 양사나이는 풀 위에 누워 한 잠 자기로 했다.
양사나이가 눈을 떴을 때, 해는 벌써 저물어 하늘에는 별이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바람이 휘이잉 윙윙거리는 소리를 높이며 불고 있었고, 때때로 거기에 섞여서 늑대 소리도 들려왔다.
"하, 이거, 어떡한다. 이런 영문도 모르는 곳에서 길을 잃어버리다니. 아직 저주도 풀리지 않았는데 말이야." 하고 양사나이는 혼잣말을 했다.
"저, 말씀을 듣자하니... 저주 때문에 곤란하신 것 같은데..." 라고 돌연 어둠 속에서 조심스런 목소리가 들렸다.
"누구십니까? 도대체 어디에 있습니까?" 하고 양사나이는 깜짝 놀라며 말했다.
"저.. 이름도 없는 것입니다." 하고 그 목소리는 부끄러운 듯이 말했다.
양사나이는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저를 찾지 말아 주십시오." 하고 소리는 말했다. "그, 정말로, 아무 것도 아닌 것입니다. 보잘 것 없는 것입니다."
"나와서 함께 도넛 먹지 않겠습니까?" 하고 양사나이는 권해 보았다.
"혼자 있는 것도 외롭고 한데..."
"저... 도넛 씩이나 받을 만한 것도 못됩니다, 정말로." 하고 그 아무것도 아님은 말했다. "그렇게 말씀해 주시는 것도 과분합니다."
"괜찮아요. 도넛라면 얼마든지 있으니까. 부끄러워서 그러는 것이라면 돌아앉아 있을 테니까, 그 사이에 여기에 와서 먹어버리면 어때요?"
"죄송하네요." 하고 아무것도 아님은 말했다. "가장 작은 것의 그 반만 이면 충분합니다."
양사나이는 풀 위에 도넛을 하나 놓아두고 돌아앉았다. 이윽고, 살금살금 소리가 들리고 누군가가 다가와서, 꼼지락꼼지락 도넛을 먹었다.
"맛있다. 정말 맛있다." 하고 그 아무것도 아님은 말했다. "돌아앉으시면 안돼요."
"돌아앉거나 하지는 않습니다만, 그 저주 말입니다. 알고 계신다면 가르쳐 주지 않겠습니까?" 하고 양사나이는 물었다.
"저주 말씀이시군요, 예. 냠냠. 알고 있어요." 하고 아무것도 아님은 말했다. "맛있다, 냠냠."
"어디로 가면 저주가 풀릴까요?" 하고 양사나이는 물었다.
"그 샘으로 뛰어 들면 돼요, 냠냠. 간단하죠."하고 아무것도 아님은 말했다.
"하지만 나는 수영을 못해요."
"수영 못한다고 걱정 할 필요 없어요. 괜찮아요. 그건 그런데... 맛있다, 냠냠."
양사나이는 이제 뭐 아무러면 어떤가 하는 기분이 되어서 생가까지 가서, 그 속으로 머리부터 뛰어 들었다. 그러나 양사나이가 뛰어듦과 동시에 샘의 물은 말끔히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양사나이는 구멍의 바닥에 머리를 쿵 부딪히고 말았다.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저런, 미안하게 됐는걸." 하고 누군가가 말했다. "설마 머리부터 뛰어들거라 고는 생각을 못했었어."
양사나이가 눈을 뜨자, 거기에는 신장 140cm 정도의 몸집이 작은 노인이 있었다.
"아, 아파라." 하고 양사나이는 말했다. "당신은 도대체 누구십니까?"
"내가 성양상인(聖羊上人)입니다." 하고 그 노인은 생긋생긋 웃으며 상냥하게 말했다.
"그러면 당신이 나에게 저주를 걸었군요. 어째서 그런 잔인한 짓을 하셨나요? 아무 것도 나쁜 짓 한 적 없는데, 이런 지독한 꼴을 당하게 하다니, 정말 심하지 않아요? 몸은 완전히 녹초가 되었고, 이것 보세요, 머리에는 혹이 나고." 하고 말하며, 양사나이는 성양상인(聖羊上人)에게 그 혹을 보였다.
"이런, 미안 미안,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러나 여기에는 여러 가지 사정이 있어서..." 하고 성양상인(聖羊上人)은 말했다.
"반드시 듣고 싶군요." 하고 양사나이는 여전히 화가 난 채로 말했다.
"우선에는..." 하고 성양상인(聖羊上人)은 말했다. "그 전에 이쪽으로 오시게. 자네에게 보여 주고 싶은 것이 있으니까."
성양상인(聖羊上人)은 총총히 구멍 안쪽으로 걸어갔기 때문에 양사나이도 머리를 흔들면서 그 뒤를 쫓아갔다. 성양상인(聖羊上人)은 머지 않아 문 앞에 서서 문을 휙 열었다.
"메리 크리스마스!" 하고 모두가 외쳤다.
방안에는 모두가 있었다. 오른 꽈배기도, 왼 꽈배기도, 208도, 209도, 바다까마귀 부인도, 아무것도 아님도 있었다. 아무것도 아님은 입 주위에 도넛 가루를 묻히고 있었기 때문에 알 수 있었다. 양박사의 모습도 보였다.
방에는 커다란 크리스마스 트리가 장식되어 있고, 트리 아래에는 리본으로 묶은 선물 꾸러미가 쌓여 있었다. "도대체 이건 뭡니까? 어째서 모두가 여기에 있는 겁니까?" 하고 양사나이는 깜짝 놀라 말했다.
"모두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하고 208이 말했다.
"한참이나 기다렸어요." 하고 209가 말했다.
"이 늙은이가 크리스마스 파티에 자네를 초대한 것이지." 하고 성양상인 (聖羊上人)이 말했다.
"하지만, 저는... 저주에 걸려서, 그래서..." 하고 양사나이는 말했다.
"내가 저주를 걸고, 그래서 자네가 여기에 오도록 꾸민 걸세." 하고 성양상인(聖羊上人)이 말했다. "그 쪽이 스릴 있고, 모두가 즐길 수 있어."
"즐거웠어, 까악까악." 하고 바다까마귀 부인이 말했다.
"재미있었잖아, 임마." 하고 왼 꽈배기가 말했다.
"유쾌했지, 후후후후." 하고 오른 꽈배기가 말했다.
"맛있었어, 냠냠." 하고 아무것도 아님도 말했다.
양사나이는 속은 것에 몹시 화가 나 있었지만, 그러는 사이에 점점 즐거워졌다. 주위에 있는 모두의 얼굴이 매우 행복한 듯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괜찮습니다, 그런 거였다면..." 하고 양사나이는 수긍하는 듯이 끄덕이며 말했다.
"양사나이님, 피아노를 쳐주세요." 하고 208이 말했다.
"피아노를 멋지게 잘 치시죠?" 하고 209가 말했다.
"여기에 피아노가 있을까?" 하고 양사나이가 물었다.
"있어요, 있어요." 하고 성양상인(聖羊上人)은 말하고 커다란 천을 홱 걷었다. 천 아래에는 양의 모양을 한 새하얀 피아노가 있었다. "자네를 위해서 이걸 준비해 뒀네. 마음껏 치시게."
그 날 밤 양사나이는 매우 행복했다. 양피아노는 멋진 소리를 냈고, 머리에는 아름다운 멜로디랑 즐거운 멜로디가 끝없이 떠올랐다.
오른 꽈배기와 왼 꽈배기가 합창을 하고, 208과 209가 춤을 추고, 바다까마귀 부인은 "까아아아악." 소리내면서 방을 날아다니고, 성양상인 (聖羊上人) 과 양박사는 둘이서 맥주 마시기 내기를 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아님마저도 신이 난 듯이 마루 위를 데굴데굴 굴러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모두에게 나누어졌다.
"맛있다, 냠냠." 하면서 아무것도 아님 케이크 세조 각이나 먹었다.
"양사나이 세계가 언제까지나 평화롭고 행복하기를!" 하고 성양상인 (聖羊上人) 이 기원을 했다.
눈이 떠졌을 때, 양사나이는 자기 방의 자기 침대 안에 있었다. 모든 것이 꿈속에서 일어난 일 같이 생각되었지만, 그것이 꿈이 아니었다는 것을 양사나이는 잘 알 수 있었다. 머리에는 분명히 혹이 남아 있었고, 양의상의 엉덩이에는 기름이 묻어 있었고, 방의 낡아빠진 피아노는 사라지고 그 대신에 새하얀 양 피아노가 놓여 있었다. 모두 정말로 일어난 일이다.
창 밖에는 눈이 쌓여 있었다. 나뭇가지에도, 우편 합에도, 울타리에도 하얀 눈이 쌓여 있었다.
그 날 오후, 양사나이는 마을의 변두리에 있는 양박사의 집에 찾아가 보았지만, 거기에는 이미 양박사의 집은 없었다. 단지 공터가 있을 뿐이었다.
양의 모양을 한 정원수도 문주(門柱)도 입구에 깔린 돌도 모두 사라져 버렸다.
"나는 이제 두 번 다시 그 사람들과는 만날 수 없겠지." 하고 양사나이는 생각했다. "두 사람의 꽈배기와도, 208과 209 쌍둥이와도, 바다까마귀 부인과도, 아무것도 아님과도, 양박사와도, 성양상인(聖羊上人)과도."
그렇게 생각하자 양사나이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 내렸다. 양사나이는 모두를 마음 깊이 좋아하게 되었던 것이다.
하숙집에 돌아오자 양그림의 크리스마스 카드가 한 장 우편함에 들어 있었다.
거기에는 "양사나이 세계가 언제까지나 평화롭고 행복하기를!" 이라고 씌어 있었다.
첫댓글 하루키는 양을 좋아하는가 보다..
"맛있다, 냠냠." 하면서 아무것도 아님 케이크 세조 각이나 먹었다. 이부분이 특히 좋아요 ^ ^
진짜 양을 좋아하나봐요... 고양이도 되게 좋아하는 것 같고... 근데 개는 싫어하는 듯...
재미있어요.. 오랜만에 행복한 기분이 되었네요..^^
양사나이의 크리스마스가 어느책에 있나여? 단편집인가?넘 재밌어어여..ㅋㅋㅋ
나두 고양이 좋아하는데........ 글구 난 양띠~~~~ 예전에 읽었던 단편이네요.... 잼났었던 기억이.............
나도 서점에서 뒤적뒤적하며 읽은 단편인데...
양사나이.^^
이단편이 어디에있죠.아무리 찾아오 없던데..제발 가르쳐주세요..꼭!
이건 미야자키의 영화 같아 ... 하루키랑은 왠지 좀 먼듯한 ㅎㅎㅎㅎㅎㅎㅎㅎ
혼자 킥킥대며 웃었어요 ㅋ 귀엽네요..
재밌어요! 양사나이, 도넛, 구멍, 맥주, 208-209쌍둥이, 양박사, 문지기....
꼭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라는 느낌이 드내요~얼마전 1973년의 핀볼을 읽었는데 거기에 쌍둥이 여인이 나오는데 이 글에서 쓰인 208 209 티를 입었던 것 같은데~~ 암튼 정말 재미있내요~~이쁜 동화책 읽은 느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