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4년 제18회 일본 동경올림픽이 개최된 이후 아시아 주요국가인 한국, 중국도 20여년 마다 하계 올림픽을 개최하게 되었네요.
일본은 1964년 동경올림픽을 개최한 이후 본격적인 경제성장 가도를 달렸고 한국 역시 올림픽 개최 이후 1997년 12월에 비록 IMF 구제금융을 신청하게 되었지만 1988년 88 서울올림픽 이후 경제성장 가도를 달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2008년 북경올림픽 이후 중국 역시 세계 경제중심국가로 탄생될 것입니다.
얼마전 모 여론조사기관에서 미국인 40%가 향후 중국이 세계1위 경제대국이 될 것이라고 하는게 이런걸 말해주고 있네요.
2050년에는 인도가 세계 1위 인구 대국이 될 것이라고 하는데 2008년 북경올림픽 이후 20여년 뒤인 2028년에는 인도에서 올림픽이 개최되는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여기서 얘기가 약간 빗나갑니다만 2008년 북경올림픽 이후에는 중국 상해가 중국 최대 경제도시가 된다고 합니다.
지리적으로 상해는 동남아시아와 중동, 인도, 아프리카 등 과의 접근성도 좋고해서 향후 세계 경제 교두보 역할을 할 것입니다.
중국 정부도 향후 상해의 경제도시로의 부상을 염두에 두고 북경~상해를 잇는 고속철 공사 착공에 들어 갔는데 5년뒤 완공되면 북경과 상해를 5시간만에 연결하게 된다고 합니다.
또한 이러한 상해의 부상을 예상했는지 이건희 전 삼성회장의 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가 중국 상해에 상주하면서 중국, 인도, 러시아 등 신흥시장을 관장할 예정이라고 하네요.
향후 중국이 세계1위 경제대국이 되고 상해가 중국 최대의 경제도시가 된다면 개인적으로 볼때 향후 상해 부동산투자가 너무나 좋아 보입니다.
1964년 제18회 동경올림픽이 개최될 즈음 한국의 상황은 1961년 5.16 군사정변이 있은 후 막 경제성장 가도를 달릴때 입니다.
1962년에 제1차 경제개발5개년계획에 착수하였고 1965년에 월남파병과 한일 국교정상화로 경제개발의 재원을 확보한 한국은 이때부터 공업화의 기반을 구축하고 고도성장의 돌파구를 마련했습니다.
1960년대엔 청계천 복구공사가 활발히 진행되었고 청계고가도로는 1967년 8월 15일날 착공하여 1971년 8월 15일 완성되었습니다.
또한 1960년대엔 울산, 창원, 포항 중화학공업기지 건설이 있었습니다.
1968년 12월엔 경인고속도로가 준공되었고 1967년 5월 초에 경부고속도로건설계획이 발표된 후 1970년 7월엔 경부고속도로가 준공되었습니다.
1967년 그즈음에는 제3한강교 건설로 촉발된 강남 말죽거리(현 양재역 부근) 투기열풍으로 평당 200~400원이던 땅값이 평당 6000원까지 오르자 정부는 급기야 1967년 11월 29일날 부동산투기 억제에 관한 특별조치법을 발표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일본은 전후 미국의 주도로 경제가 복구되었는데 1950년 한국에서 6.25전쟁이 일어나자 이 전쟁에 참가한 미군에게 필요한 물자를 공급하는 것을 계기로 일본 경제는 급속히 발전하기 시작했습니다.
또, 1951년에는 연합국과 대일 강화조약을 맺었고 미국과는 미일 안보조약을 맺었습니다.
1964년 동경올림픽을 거쳐 1970년대까지 급속한 성장을 거듭한 일본은 결국 세계 경제대국으로 발전하였습니다.
1950년대 일본이 경제 성장한 그 배후에는 한국 6.25전쟁의 아픔이 있었다니 참 아이러니하네요.
1964년 동경올림픽이 개최된 그해 10월엔 한.월남, 월남지원을 위한 국군 파견에 관한 협정 체결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경제성장 이면에는 월남 전쟁이 있었다는걸 부인할 수는 없구요.
공교롭게도 일본과 한국은 세계적인 전쟁으로 인하여 경제성장의 가도를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네요.
1981년 서독(현 독일) 바덴바덴에서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1988 올림픽 개최지로 서울이 발표되었습니다.
그 당시 상황을 "건국 60년 도전 순간"에서 아래와 같이 인용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선더버드 작전을 극비리에 수행하라'
1981년 9월 서독의 자그마한 휴양도시 바덴바덴에서 '1988년 올림픽 개최지'를 선정하는 IOC총회가 열리기 열흘전.
청와대 경호실장과 대한체육회장을 지냈던 박종규씨에게 이같은 특명이 내려졌다.
내용은 개최지로 거의 굳어진 일본의 나고야를 제치고 서울이 선정되도록 하라는 것.
세울 꼬레아!"가 발표되며 '선더버드 작전'이 마무리됐다.
보수적이고 전통을 중시하는 IOC위원들이 예상을 뒤집고 한국의 손을 들어주며 '바덴바덴의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일본은 충격에 빠졌고 한국은 환호했다.
이는 지금도 올림픽 역사에서 '쿠테타'에 버금가는 사건으로 회자되고 있다. 그 열흘 동안 어떤 일이 있었을까.
서울올림픽은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의 재가를 받으면서 첫 걸음을 떼였다.
그 해 10월8일 내외신기자에게 공식 발표를 했으나 불과 18일 뒤에 일어난 10·26사태가 발생,유치계획은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1980년8월27일 전두환 대통령이 취임한 뒤 올림픽 유치 계획은 국가 대외 이미지 제고 차원에서 필요하다는 쪽과 경제적·재정적 여건을 감안할 때 부정적이라는 쪽이 맞섰다.
전 대통령은 '전임 대통령이 결심한 사항인데다 역사적인 사업을 추진하지도 않고 포기할 수 없다'며 유치쪽의 손을 들어줬다. >>
위 까지가 인용 내용입니다.
전두환정권 시절엔 전반적으로 물가가 안정되어 부동산 투기도 거의 없었던 편입니다.
1986년도 경엔 잠실 주공5층 아파트 13평형이 매매가 1300만원, 전세가 1200만원 정도 했는데 전세안고 100만원만 있으면 매수가 가능했던게 이런걸 말해주고 있네요.
그 당시엔 집값 상승이 워낙 없던 시기라 집을 사도 취,등록세만 들뿐 집값이 올라가지 않아 대부분의 사람들이 집 사기를 외면했습니다.
지금와서 생각해 보면 참 호랑이 담배 피울적의 얘기입니다.
1985년 하반기엔 때마침 3저 경기(저유가, 저금리, 저원화가치)가 불어닥쳐 전자제품, 자동차 등의 대미 수출이 호조를 보이고 수출이 잘되자 종전 국민들이 생소하게 여긴 주식시장도 대세 상승을 맞기 시작했습니다.
주식시장이 대세 상승을 맞으니 이번에는 그동안 잠자고 있던 부동산시장이 꿈틀되기 시작하는군요.
참고로 1988년 88올림픽 1년전인 1987년도는 사회적으로 무척 혼탁한 시기였는데 민주화 열망에 대한 학생들의 대대적인 데모가 있자 정부는 급기야 1987년 6월 29일날 6.29민주화선언을 발표하기에 이르렀습니다.
1987년은 또한 대선이 있은 해인데 1987년 하반기부터는 건설주 및 부동산경기가 대세 상승을 맞기 시작했습니다.
1987년 대선이 있은 해부터 시작된 경제(내수경기)대세 상황과는 달리 이명박정부 출범이후 현재까지는 건설주 및 부동산경기가 뒷걸음질 하고 있네요.
2008년 북경올림픽이 열리고 있는 이즈음 작금의 경제상황은 노태우정권이 출범한 다음 해이자 88 서울올림픽이 개최된 1988년도와 유사한 것이 아니고 1997년 김대중정부 출범 다음해인 1998년도와 비슷한 것 같습니다.
1998년 주요 건설 및 부동산대책으로 1998.5.22 주택경기활성화대책, 6.22 주택경기활성화 자금 지원 방안, 9.25 건설산업활성화 방안, 12.12 건설 및 부동산경기활성화 대책이 있었는데 이명박정부에서 곧 건설 및 부동산경기 활성화 대책을 내 놓는다고 하니 지금은 1998년 상황과 유사한 것 같습니다.
현재 특히 지방 건설 및 부동산시장은 제2의 IMF를 맞고 있습니다.
선(先)지방발전, 후(後)수도권 규제완화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구요.
지금으로 부터 20년전인 1988년도의 건설 및 부동산시장 호황과 달리 작금의 지방 건설 및 부동산시장은 IMF 이후 최악을 달리고 있습니다.
이번 가을부터 건설 및 부동산경기가 본격적으로 턴하지 않으면 지방경제가 고사될 뿐만 아니라 개인 가정도 파탄에 이를 정도로 심각합니다.
이러한 최악의 현 상황을 정부에서 익히 알아 곧 획기적인 건설 및 부동산경기 활성화 대책(내수경기 진작책)을 내 놓을 것으로 보이며 그러면 특히 그동안 소외된 지방 건설 및 부동산시장이 올 가을부터 대세상승에 접어들 것으로 예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