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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4년 12월 6일 금요일
[(자) 대림 제1주간 금요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 전례
[백] 성 니콜라오 주교
말씀의 초대
이사야 예언자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구원의 날이 올 것이라고 한다(제1독서). 눈먼 두 사람이 예수님을 따라오면서 자비를 청한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눈을 뜨게 해 주신다(복음).
제1독서
<그날, 눈먼 이들의 눈도 보게 되리라.>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29,17-24
주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17 “정녕 이제 조금만 있으면 레바논은 과수원으로 변하고
과수원은 숲으로 여겨지리라.
18 그날에는 귀먹은 이들도 책에 적힌 말을 듣고
눈먼 이들의 눈도 어둠과 암흑을 벗어나 보게 되리라.
19 겸손한 이들은 주님 안에서 기쁨에 기쁨을 더하고
사람들 가운데 가장 가난한 이들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 안에서 즐거워하리니
20 포악한 자가 없어지고 빈정대는 자가 사라지며
죄지을 기회를 엿보는 자들이 모두 잘려 나가겠기 때문이다.
21 이들은 소송 때 남을 지게 만들고
성문에서 재판하는 사람에게 올가미를 씌우며
무죄한 이의 권리를 까닭 없이 왜곡하는 자들이다.
22 그러므로 아브라함을 구원하신
야곱 집안의 하느님이신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야곱은 더 이상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고
더 이상 얼굴이 창백해지는 일이 없으리라.
23 그들은 자기들 가운데에서 내 손의 작품인 자녀들을 보게 될 때
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리라.’
그들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을 거룩하게 하며
이스라엘의 하느님을 두려워하게 되리라.
24 그리고 정신이 혼미한 자들은 슬기를 얻고
불평하는 자들은 교훈을 배우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예수님을 믿는 눈먼 두 사람의 눈이 열렸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9,27-31
그때에 27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는데 눈먼 사람 둘이 따라오면서,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28 예수님께서 집 안으로 들어가시자 그 눈먼 이들이 그분께 다가왔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내가 그런 일을 할 수 있다고 너희는 믿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들이 “예, 주님!” 하고 대답하였다.
29 그때 예수님께서 그들의 눈에 손을 대시며 이르셨다.
“너희가 믿는 대로 되어라.”
30 그러자 그들의 눈이 열렸다.
예수님께서는 “아무도 이 일을 알지 못하게 조심하여라.” 하고 단단히 이르셨다.
31 그러나 그들은 나가서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를 그 지방에 두루 퍼뜨렸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복음에 나오는 눈먼 두 사람은 예수님께서 그들을 고쳐 주실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내가 그런 일을 할 수 있다고 너희는 믿느냐?” “예, 주님!”(마태 9,28) 이들은 그저 ‘가만히’ 있지만은 않았습니다. 복음은 눈먼 두 사람의 행동을 다음과 같이 묘사합니다.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는데 눈먼 사람 둘이 따라오면서,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외쳤다(직역: 울부짖었다).
예수님께서 집 안으로 들어가시자 그 눈먼 이들이 그분께 다가왔다”(9,27-28). 눈먼 두 사람은 ‘따라갔고’, ‘외쳤고’, ‘다가갔습니다.’ 참된 믿음은 예수님을 ‘따라가게’ 하고, 그분께 ‘울부짖게’ 하며, 그분 곁으로 가까이 ‘다가가게’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믿음에서 나오는 이런 행동을 보일 때, 다른 것이 아닌 바로 그 믿음의 힘으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은총을 나누어 주십니다. “너희가 믿는 대로 되어라”(9,29).
만일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기도하지 않고 있다면, 성체 앞에 다가가 예수님께 울부짖으며 은총을 청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꿈적도 하지 않고 있다면, 하느님께서 고해성사를 통하여 우리의 모든 죄를 없애 주신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고해소로 향하지 않고 있다면, 여러분은 ‘죽은 믿음’, ‘아무 힘도 드러내지 못하는 믿음’을 가진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답을 알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불행한 신앙인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복음에 나오는 눈먼 두 사람처럼 우리의 믿음이 예수님께 다가가 필요한 은총을 청하는 힘을 드러내면 좋겠습니다. “너희가 믿는 대로 되어라.” 아멘.(김재덕 베드로 신부)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포트워스 신부님, 안식년 중인 동창 신부님과 엘파소엘 다녀왔습니다. 10시 15분 비행기였는데 기상 악화로 2시간 지연되었습니다. 덕분에 공항에서 걸을 수 있었고, 음악회 프로그램에 들어갈 인사말을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때로는 늦는 것도 도움이 될 때가 있습니다. 후배 신부님은 엘파소의 명소인 ‘화이트 샌드’로 안내해 주었습니다. 2시간 늦었기에 화이트 샌드에서 석양을 볼 수 있었습니다. 때로는 늦는 것이 도움이 될 때가 있습니다. 사제관에 도착하니 교우분들이 맛있는 저녁을 준비해 주었습니다. 엘파소는 주일에 30명 정도 나오는 공동체입니다. 15가정 정도 된다고 합니다. 제가 있는 달라스는 주일에 800명 정도 나오는 본당입니다. 규모의 차이는 있지만 하느님의 축복과 하느님의 사랑은 같습니다. 하느님의 은총은 공동체의 크기에 비례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은총은 공동체의 믿음에 따라서 주어집니다. 공동체가 믿음으로 서로 이해하고, 사랑으로 서로 나누며, 희망으로 기쁘게 살아간다면 그곳이 바로 하느님 나라입니다. 2박3일 짧은 일정이었지만 형제들이 함께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예전에 ‘시골 쥐와 서울 쥐’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시골에서 평화롭게 살던 시골 쥐는 어느 날 친구인 서울 쥐를 초대합니다. 시골 쥐는 자신이 먹는 소박한 음식을 서울 쥐에게 대접합니다. 하지만 서울 쥐는 음식을 보며 비웃으며 말합니다. ‘이런 초라한 음식을 먹고 산다니, 내게 오면 훨씬 더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어!’ 서울 쥐는 시골 쥐를 도시로 초대합니다. 도시에는 화려하고 맛있는 음식들이 가득했지만, 문제는 위험이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려던 두 쥐는 고양이가 갑자기 나타나 도망쳐야 했고, 사람들에게도 쫓기기 일쑤였습니다. 결국 시골 쥐는 말합니다. ‘나는 이렇게 위험천만한 삶을 살면서 맛있는 음식을 먹기보다는, 안전하고 평화로운 내 삶으로 돌아가고 싶다.’ 남의 떡이 커 보인다는 말이 있습니다. 주어진 현실에 만족하면서 기쁘게 사는 것이 현명한 삶의 태도입니다. 물질적 풍요와 화려함은 겉보기에 매력적일 수 있지만, 그것이 안전과 평화를 희생한다면 그 가치는 줄어듭니다. 꼭 남의 삶을 부러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자신의 상황 속에서 행복을 찾는 것이 진정한 만족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나는 비천하게 살 줄도 알고 부유하게 살 줄도 압니다. 배부르거나 배고프거나, 넉넉하거나 궁핍하거나 그 어떤 경우에도 대처할 줄 아는 비결을 배웠습니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간다면 어느 곳에서도 위로와 평화를 찾을 수 있습니다. 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간다면 어느 곳에서도 불평과 불만이 넘쳐날 겁니다. 오늘 독서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날에는 귀먹은 이들도 책에 적힌 말을 듣고, 눈먼 이들의 눈도 어둠과 암흑을 벗어나 보게 되리라. 겸손한 이들은 주님 안에서 기쁨에 기쁨을 더하고, 사람들 가운데 가장 가난한 이들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 안에서 즐거워하리라.” 저는 그날이 시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기다리기도 했고, 그래서 떠나려고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날은 저의 마음이었습니다. 그날은 시간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날은 어떠한 처지에서도 감사하는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날은 언제나 기뻐하는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날은 늘 기도하는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불평하고, 지금 원망하고, 지금 비관하면 언제나 제가 머무르는 곳은 가시방석입니다. 그러나 지금 감사하고, 지금 기뻐하고, 지금 기도하면 제가 머무르는 곳은 언제나 꽃자리입니다. 넉넉한 마음과 진중한 마음으로 신자들과 함께하는 신부님들에게 그날은 늘 ‘꽃자리’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눈이 먼 소경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비록 앞을 볼 수 없었지만, 소경은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앞을 볼 수 없었지만, 소경은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시는 예수님의 소문을 들었습니다.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신다는 예수님의 소문입니다. 아픈 이를 치유해 주신다는 소문입니다. 죄인들을 따뜻하게 품어주신다는 소문입니다. 그래서 앞을 볼 수 없었지만, 소경은 주님께로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눈이 먼 것은 죄를 지었기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것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소경의 갈망을 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비록 눈이 멀었을지라도 하느님의 사랑을 보았던 소경의 마음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믿는 대로 되어라. 그러자 그들의 눈이 열렸다.” 감사할 수 있다면, 기뻐할 수 있다면, 기도할 수 있다면 주님께서는 우리의 영적인 마음을 환하게 열어 주실 것입니다.
<살림>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제대로
걸을 수 없는 이도
따를 수 있도록
느릿느릿
걷다
온갖 서러움 깃든
스치는 목소리마저
놓치지 않도록
정성스레
듣다
있는 듯 없는 듯
한줌의 희망조차
새로이 피어나도록
따뜻하게
말하다
가까이 더 가까이
죽은 껍질 벗겨내고
새 살 돋도록
부드럽게
손대다
그 믿는 대로
그 바라는 대로
그리 살아나도록
오롯이
품다
<“너희가 믿는 대로 되어라.”>
이용현 알베르토 신부님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눈먼 사람 둘을 치유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내가 그런 일을 할 수 있다고 너희는 믿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들이 “예, 주님!” 하고 대답하였고, 그때 예수님께서 그들의 눈에 손을 대시며 “너희가 믿는 대로 되어라.” 하시자 그들의 눈이 열렸습니다.
우리는 모두가 다 주님의 자비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곧 그분의 자비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살아 숨 쉴 수 있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예수님께서 소경들에게 물어보신 질문의 요지는 바로 당신이 바로 자비로우신 주님이시라는 것을 믿고 있는지를 물어보신 것입니다.
때로는 우리가 기도를 하면서도 단순히 자신의 부족한 어느 부분에 대해 초점을 맞추고 주님께서 그것을 채워주실 수 있는지를 바라며 기도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먼저 가져야 할 믿음은 우리의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내어주시는 자비로우신 주님이시라는 것에 대한 믿음입니다. 그분께 나의 모든 것을 맡겨드릴 때 주님께서는 그 무한하신 자비로 우리를 도와주시고 이끌어 주실 것을 믿습니다.
“너희가 믿는 대로 되어라.”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오늘의 성인
성 니콜라오(Nicholas)
신분 : 주교
활동지역 : 미라(Myra)
활동연도 : 270?-341년경
같은이름 : 니고나오, 니꼴라오, 니꼴라우스, 니콜라스, 니콜라우스
소아시아 리키아(Lycia)의 파타라(Patara)에서 태어난 성 니콜라우스(Nicolaus, 또는 니콜라오)는 집안이 매우 유복하였다. 그가 성덕과 신심 그리고 기적 등으로 유명하게 된 것은 미라의 주교 때였다고 한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동안에는 그 역시 신앙 때문에 투옥되었으나 다행히 석방되었고, 아리우스(Arius) 이단을 단죄한 니케아(Nicaea) 공의회에도 참석하였다.
그의 생애는 거의 알려진 것이 없지만, 그의 뛰어난 행적으로 인한 전설과 비공식 전기 등은 매우 아름답게 채색되어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는 파타라 출신인데 돈 많은 양친이 사망하면서부터 죄인들의 회개를 위하여 헌신함과 동시에 자신의 막대한 유산을 가난한 사람들과 자선활동을 위하여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그의 행적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는 어느 가난한 세 처녀에 관한 것이다.
그녀의 부친이 딸들의 지참금 문제에 얽혀 사랑스런 딸들을 매춘부로 넘겨야 할 곤경에 처했음을 알고, 니콜라우스는 세 번에 걸쳐 그 집에 금이 든 자루 세 개를 몰래 넣어 주었고, 마침내 이 세 자매는 정당하게 혼인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이교 신전을 부수었으며, 지방 관리인 에우스타시우스(Eustasius)를 몰아세워서 무죄한 죄수 3명을 사형 직전에 직접 구출했는가 하면, 콘스탄틴 황제의 꿈에 나타나서 무죄한 정부관리 3명의 무죄 사실을 알려 그들이 석방되게 했다는 등 수많은 전설이 전해온다.
이러한 행적으로 인해 그의 명성은 전 서방에 퍼져나갔고, 1087년에 그의 유해를 바리(Bari)로 이전하여 경당을 세우자 유럽 최대의 순례지가 되기도 하였다. 그래서 그는 흔히 바리의 성 니콜라우스로 불린다. 죄수들과 어린이들의 수호성인인 그는 또한 리키아 연안의 뱃사람들을 극적으로 구출했던 사실 때문에 폭풍우에 갇힌 뱃사람들의 수호성인으로서 공경을 받고 있다.
그리고 성탄절 때 어린이들에게 성 니콜라우스의 이름으로 선물을 주는 관습은 아주 오래전부터 시작되었다. 성 니콜라우스는 네덜란드에서는 '신터 클레스'(Sinter Claes), 영어권에서는 '산타 클로스'(Santa Claus)로 불려졌다. 그러나 주의할 사실은 산타 클로스의 모습은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아니라, 독일의 신인 토르(Thor)에 근거하는 것이다.
이 신은 겨울과 유울 로그(Yule Log, 성탄전야에 때는 큰 장작) 그리고 크랙커와 그나셜이라 부르는 염소들이 끄는 마차와 관련되는 토속적인 신인 것이다. 이것은 니콜라우스를 토착화시킨 형태라고 보는 것이다. 어쨌든 성 니콜라우스는 그리스, 시칠리아(Sicilia), 풀리아(Puglia), 로렌(Lorraine) 그리고 러시아의 수호성인이기도 하다.
성녀 마리아 카르멘 살례스 (Mary Carmen Salles)
활동년도 : 1848-1911년
신분 : 설립자, 수녀
지역 :
같은 이름 : 까르멘, 메리, 미리암, 바랑게라스, 살레스
성녀 마리아 카르멘 살례스 이 바랑게라스(Maria Carmen Salles y Barangueras)는 1848년 4월 9일 에스파냐 북부에 위치한 바르셀로나(Barcelona) 지방의 빅(Vic)이라는 마을의 신심 깊은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호세 살례스(Jose Salles)와 어머니 프란치스카 바랑게라스(Francisca Barangueras) 사이에서 10남매의 둘째도 태어난 그녀는 1854년 12월 8일 교황 비오 9세(Pius IX)에 의해 선포된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 교리와 그로부터 4년 뒤 프랑스의 루르드(Lourdes)에서 발현하신 성모님 이야기를 통해 원죄 없으신 마리아께 대한 특별한 신심을 지니게 되었다. 그녀는 1858년 가족과 함께 에스파냐 동북부 카탈루냐(Cataluna) 지방의 몬세라트(Montserrat)를 순례하였다. 이 작은 마을은 8세기 무어인의 침략과 12세기 나폴레옹의 침략에 맞서 가톨릭 신앙을 지켜낸 유명한 순례지였다. 이 여행 중에 성녀 카르멘 살례스는 첫영성체 후 하느님께 자신의 삶을 봉헌할 것을 결심하였다.
몇 년 뒤 성녀 카르멘 살례스는 교회 안에서 자신이 뜻했던 목표를 이루기 위한 여정을 시작하면서 약혼자와의 결혼을 포기하고 거룩한 성체회에 입회하였다가 곧 교육 수도회인 영보 도미니코 수녀회에 입회하여 20여 년 동안 봉사의 삶을 살았다. 당시 에스파냐는 산업혁명과 내란으로 인해 정치 · 사회 · 종교적으로 암울한 시기였고, 사람들은 전염병과 가난으로 인해 힘겨운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그녀는 교육, 특별히 여성들에 대한 교육을 통해 가정을 지키고 자라나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하느님의 사랑과 성모님의 사랑을 전해주고 싶은 강한 열망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열망은 1892년 부르고스(Burgos)에서 청소년들에게 학문과 그리스도교적 사랑을 가르치는 ‘원죄 없으신 마리아 교육 선교 수녀회’를 설립하여 교구 인가를 받음으로써 마침내 현실화되었다. 동시에 예방교육의 중요성을 실천하고자 가난한 가정의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위한 학교도 바로 시작하였다.
성녀 카르멘 살례스는 ‘교육은 사랑’이라는 정신에 따라 1911년 7월 25일 마드리드(Madrid)에서 선종할 때까지 전국에 학교 13곳을 설립하여 어린이와 청소년 교육에 헌신했다. 수녀회는 설립자가 선종한 후, 선교정신에 입각하여 수녀회 명칭을 ‘원죄 없으신 마리아 교육 선교 수녀회로’로 바꾸고 1912년 브라질에 7명의 수녀를 파견한 것을 시작으로 세계 곳곳에 진출하여 교육 선교의 사명을 수행하고 있다. 그녀는 선종한지 100년도 채 되지 않아 가경자로 선포됐으며, 1998년 3월 15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복되었다. 이어 2012년 10월 21일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교황 베네딕토 16세(Benedictus XVI)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성녀의 축일은 로마 순교록에는 선종일인 7월 25일로 기록되었지만 전례적으로는 12월 6일에 기념하고 있다.
성 베드로 파스카시오 (Peter Paschasius)
활동년도 : +1300년
신분 : 대주교, 순교자
지역 : 톨레도(Toledo)
같은 이름 : 베드로, 베드루스, 페드로, 페트루스, 피터
성 베드로 파스카시우스(Petrus Paschasius, 또는 베드로 파스카시오)는 어릴 때부터 프랑스 나르본(Narbonne)의 사제이며 파리(Paris)의 신학박사인 분을 가정교사로 모시고 교육을 받았다. 그 후 그는 그 가정교사와 함께 파리로 가서 학업을 마치고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그 후 에스파냐 발렌시아(Valencia)로 돌아와서 24세의 나이로 사제로 서품되었다. 그는 아라곤(Aragun)의 제임스 1세가 자기 아들 산초의 가정교사로 임명할 때까지 바르셀로나(Barcelona)에서 신학을 가르쳤고, 그 후 그는 톨레도(Toledo)의 대주교로 임명되었다.
그는 아직도 무어인들이 점령하고 있던 지역의 주교가 된 것이었다. 그러나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그는 포로들을 속량하고 겁에 질려 떠는 신자들을 격려했을 뿐만 아니라, 이교인과 배교자들을 상대로 복음을 선포하기도 하였다. 그즈음에 그는 무어인들에게 체포되어 그라나다(Granada)의 지하 감옥에 갇혔는데, 옥중에서도 쉬지 않고 이슬람을 반대하는 글을 썼다. 그는 기도하던 중에 살해되었는데, 이때 그의 나이는 73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