퉁리 여행3 - 퉁리고진에서 퇴사원을 구경하고는 진주탑경원 정원에 가다!
2023년 10월 27일 쑤저우 (苏州) 에서 성문과 류위안 留园(유원) 을 구경하고 호텔에 돌아와
체크아웃을 하고는 쑤저우 동남쪽에 옛 수향 마을인 퉁리(同里 동리) 로 가기
위해 쑤저우역 지하로 내려가서 지하철 4호선 을 타고 한시간후 종점인 퉁리역에 도착합니다.
10번 출구로 나와 도로를 건너가 전철 을 타고 20분만에 퉁리 마을에 도착해 유객중심 에서 지도를
받고 입장권을 끊어 100미터쯤 걸어 운하가 나오기로 홍예교 다리 를 건너 광장을 지나
호텔을 찾아 체크인을 하고는 다시 광장으로 나와 골목에 자리한 퇴사원 (退思园) 으로 들어갑니다.
퉁리 고대 마을 (Tongli Ancient Town) 은 호수로 둘러싸인 매력적인 수로마을 이니 강남 수향마을
중에서 옛 모습이 가장 잘 보존된 곳으로 오래된 유서깊은 건축물들이 많은데, 복이 많이 들어
복의 땅 福地(복지) 라 불렸으나.... 당나라 초기에 퉁리(同里 동리) 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퉁리의 볼거리는 1월 2당 3교 라는 말이 있으니... 1원은 퇴사원(退思园) 이고 2당은 숭본당과 가맹당 이며
3교는 태평교, 길림교, 장경교 로 Y 자형 수로가 있으며 소교 유수인가 (小橋流水人家) 라는 말이 있습니다.
작은 다리, 흐르는 물에 주민가옥 이라는 뜻으로 주변이 5개 호수로 둘러쌓인 마을
에 명나라 건물로는 경락원(耕樂园), 삼사당, 오학문루, 승은당 등 10여곳
이고.... 청나라 때의 건축물은 퇴사원, 가음당, 숭본원 등 20여곳에 이른다고 합니다.
그 중에서도 우리가 첫 번째로 들른 투이쓰위안 退思园(퇴사원, Retreat and
Reflection Garden) 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으로 등재 되었다고 합니다.
여기 퉁리(동리) 마을의 투이쓰위안 退思园(퇴사원) 은..... 쑤저우 9대 고전원림 으로
2000년레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으로 지정되었는데, 청나라 관리 출신인
임란생 이 관직에서 물러난 뒤 화가인 원룡에게 설계를 부탁하여 만든 곳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임란생 은 다시 관직으로 돌아가길 희망하는 마음을 건물 구석구석에 심어
놓았으며, 소박하고 아담한 풍광 이 여행자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 주니
2000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될 만큼 문화 유산 으로 가치가 높은 명소입니다.
퇴사(退思) 라는 말의 유래는 춘추시대 역사서 좌전 퇴사보고서 에 나오는 진사진충
퇴사보과 (進士盡忠退思報果) 라는 말에서 따온 것이니 “관직에 나가서는
충성을 다하고, 물러나서는 그동안의 잘못을 고칠 것을 생각한다” 라는 뜻이랍니다.
임란생 은 청나라 광서제때인 1885년 모함을 받아 대리 안찰사 직에서 물러나 여기 고향
퉁리 로 돌아와서는...... 은화 10만냥 을 들여 3년 만에 원림을 완성했다고 합니다.
회랑에 올라 바람을 쐬며 달을 감상하다가 누창에 '청풍명월부수일전배'
라고 썼으니.... 달은 돈 한푼 안들이고 감상 할 수 있다는 뜻일러나?
쑤저우 시내 졸정원 보다 규모는 작지만 정자, 대, 다락, 각, 복도, 다리, 정사, 대청,
당, 방과 처마집 이 좁은 공간에 효율적으로 잘 배치 되어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어느 방에는 무슨 무늬 같은 것을 잔뜩 만들어 진열하고 있는데 주로 붉은 색 이 많으며.... 집 안의 장식
이나 가구, 그릇이나 옷 등에 활용하는 모양인데 "판다가 대나무잎을 먹는" 모습도 새겨져 있습니다.
판다 는 중국의 쓰촨성 일대에 서식하는 곰과 포유류로 관화로는 슝마오(熊猫) 혹은
마오슝(貓熊) 이라고 하니...... 두 용어 중에서 전자는 대륙에서 사용합니다.
그리고 후자인 마오슝(貓熊) 은 대만을 포함한 중국 대륙 외의 중화권 에서 사용한다고 하는데....
둘다 곰고양이 라는 뜻이며 판다곰 이라는 이름답게 곰과 판다속 대왕판다종 이라고 합니다.
원래는 곰과가 아니라 미국 너구리과라고 알려져 있었지만, 새로운 화석의 발견 과 유전자
연구 를 통해 곰의 일파 임이 밝혀졌는데, 대부분의 곰과는 달리 판다는 겨울철에도
서식지에 주식인 대나무 가 넘쳐나는 탓에 북극곰 처럼 동면을 하지 않는 특징이 있습니다.
판다 성체의 무게는 약 70kg~120kg 에 이르며 아주 거대한 개체는 160kg 까지 나간다고 하는데, 암컷은 수컷
보다 약 10~20% 정도 체구가 작다고 하니 곰과 동물 중에서는 그렇게 크지 않은 편으로, 중형에 속합니다.
다시한번 퇴사원 을 둘러보노라니 문득 성균관대 이준식 교수가 동아일보
‘이준식의 한시 한수’ 칼럼에 쓴 “시를 사랑한 도적” 이 떠오릅니다.
저물녘 부슬부슬 비 내리는 강마을,
이 밤 녹림호객(綠林豪客)이 내 이름 듣고 알은체한다.
다른 때라도 내 이름은 숨길 필요 없겠네.
지금은 세상 절반이 다 그대 같은 도적이려니.
(暮雨瀟瀟江上村, 綠林豪客夜知聞. 他時不用逃名姓, 世上如今半是君.)
―‘정란사 마을에서 묵다 만난 밤손님(정란사숙우야객·井欄砂宿遇夜客)’ 이섭(李涉·당 중엽)
야밤에 일단의 사내들이 시인이 탄 배를 에워싼다. 녹림호객, 뜻인즉 푸른 숲속에 근거지를 튼 영웅인데 이름
은 그럴싸해도 실은 도적떼를 일컫는 말 이다. 그 수령이 글깨나 읽었던지 재물 약탈하러 나타났다가
시인의 이름을 듣더니 당신의 시명(詩名) 을 익히 들었으니 재물은 필요 없고 시나 한 수 지어 달라 고 했다.
시인은 즉석에서 이 시를 써주었고 도적은 보답으로 음식까지 푸짐하게 선사했다고 한다. 도적이라고
시 좋아하지 말란 법은 없지만 잠시 직업적 본분(?)을 망각한 아이러니 를 부각한 시인의
발상이 재미롭다. 시제에는 ‘밤손님’ 이란 통상적인 표현을 그대로 쓰면서도 시에서는
‘녹림호객’ 이란 미칭(美稱)을 부여하였으니 시인의 순발력 있는 ‘예우’ 에 도적도 탄복해 마지않았을 터.
‘전당시(全唐詩)’ 와 여러 야사에 전해지는 이 일화를 내세우며 중국인들은 도적조차 시를
애호할 만큼 당대에는 시가 보편화 되었노라 자부한다. 정작 시인 자신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세상 절반이 지금은 다 그대 같은 도둑’ 이라며 암울한 사회 현실을 개탄한다.
혹여 다른 시기, 다른 곳에서 또 도둑을 만날지언정 굳이 이름을 숨길 필요 없다는 자조(自嘲) 를 통해 시인은
저들과 동료의식이라도 공유 하자며 웃픈 냉소 를 보내고 있다. 글깨나 읽었다는 자가 어쩌다 도적질에
가담하게 되었는가라는 핀잔 너머 주류 사회의 부패와 타락이 극에 달했다 는 풍자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그러고는 돌아서서 퇴사원 을 나오니 대로인 긴 광장에는 영구 무대를 만들어 둔 걸 보는데
아마도 여기서 가끔 노래나 악기 연주며 연극 등 공연이 이루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러고는 시내지도를 보고 진주탑 정원 으로 가기 위해 대로를 걸어서 작은 운하
를 지나는데 역시나 배를 타고 운하를 지나는 관광객 들이 많이 보입니다.
어느 가게 담벼락에 고양이 다섯 마리 를 각각 다르게 상징을 가해 그린 만화
같은 그림을 보는데...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고는 모두 다 웃음 을 짓습니다.
그러고는 골목길을 걸어서 드디어 珍珠搭景圓 (진주탑경원) 이라는
오래된 건물에 도착해서는 작은 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갑니다.
들어가자 말자 몇몇 여인들의 사진이 보이는데.... 아마도 여기
진주탑에서 영화를 찍은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