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화(/봉화)산성을 찾아서: (11-18번 연번 102회차) 산과 산성 답사 결과
황화(皇華)산성을 찾았습니다.
산성이름도 조금은 특이한데다가, 이름도 동네 이름인 등화동에 있는 산성이라 등화산성이라고도 하고, 봉화대가 있는 산성이라 봉화산성이라 불리워지는 산성이지만 안내판에는 황화산성으로 공식 명명되어있습니다.
이름이 많은 산성인 경우 대개는 예사로운 산성이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황화산성도 그렇습니다.
백제 의자왕이 노닐던 유연처(遊宴處)를 황화대가 있었다는 전설이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백제 계백장군의 군사가 주둔하면서 싸운 곳이기도 하고, 근대에 와서는 동학농민군이 기포했던 역사가 있는 곳이기도 하고,
6.25 전쟁시는 많은 경찰 희생자를 낸 곳이기도 하니 예로부터 요충지였슴을 중층적으로 증명해주고 있는 산성입니다.
한양에서 공주 논산을 거쳐 전주 광주로 이어지는 직선로를 지키는 곳에 있으니 비록 산은 낮은 야산이나 요충지에 자리하고 있기때문입니다. 곁으로는 1번 국도가 지나가고, 호남선이 지나가고, 금강줄기가 훤히 내려다 보이고, 강경이 외항처럼 있는 이곳이 호남으로 이어지는 중요 길목이었음을 원목다리가 옛모습 그대로 남아서 말해주고 있습니다.
불명산 쌍계사의 아름다운 대웅전 문살 무늬까지 보고서야 답사를 마칩니다.
< 천호산 줄기 : 대전을 떠나 논산 탑정저수지에서 북쪽으로 바라본다.
천호산 줄기가 바로 연산이요,
황산인 이 일대는 백제(계백)와 신라(김유신), 후백제(신검) 와 고려 왕건과의 대회전 장소>
<논산 대건중고등학교 정문앞의 표지판을 따라 간다.
대건학교는 김대건 신부 이름에서 나왔다. 인근 화산의 나바위 성당을 떠올린다.>
<보명사 입구가 황화산성의 동문지인 셈. 안내판이 서있다.>
<보명사 주지인 도일(道日) 스님에게서 자신감에 찬 많은 이야기를 듣는다.>
<절 입구에 있는 산성 안내 표지판:
뒤로 산성계단이 이어진다. 토성의 폭과 높이 내호 등을 확실하게 살펴 볼 수 있다.>
<동쪽 토성: 왼쪽이 안쪽 내회곽도, 오른쪽이 외벽 쪽이다.
토성위로는 참나무들이 가로수처럼 토성에 의지해서 자라고 있다.>
<북쪽의 황화산성 표지석 : 여기서 조금 더 가서 토성 밖으로 봉화대터로 알려진 곳으로 이어진다.>
<둥근 원형의 모습으로 높이 쌓아올린 봉화대 터로 전해지는 곳
: 도일스님은 개태사 철솥처럼 우묵하게 생겼다고 말해준 곳이다. >
<조선시대 때 봉화대 터 안이 우묵한 것이 백제산성의 정상에서 늘 발견되는 저장고 시설과 매우 흡사하다.>
( 근처 아래에서 탄화된 곡식이 나오는 군창터로 추정되는 곳도 있다고 한다. )
<부근 조망해보기: 논산시내, 노성산성, 연산의 황산성, 은진 관촉사의 반야산 등이 한 눈에 들어온다.>
<산성 밑으로 호남선 서울행 열차는 지나가고,
옛 국도 너머로 논산평야와 금강의 지류인 논산천과 멀리로는 금강 본류가 보인다.>
<등화동에서 200여 년을 살아온 토박이 유기문 옹의 산성과 관련된 여러 이야기를 듣는다.
<토성 서벽 너머에 있는 범바위
: 바위를 떼어내려고 쪼아놓은 흔적이 역력하다. 돌하나 풀한포기에도 사연과 역사가 있건만...>
<성지기가 수습한 와편과 그릇 조각>
<등화2통에서 바라본 황화산성 남서쪽 모습>
< 이정표 뒤로 황화산성이 있다. : 지명 속에 역사가 있는데>
<황화산성 남쪽 야산에는 6.25 전몰 경찰묘지가 있고, 철길과 도로가 겹쳐 지나간다.>
<중요한 길목이었음을 알려주는 원목다리>
<지금도 다리 아래로는 물이 흐르고 : 예전에는 금강유역의 진벌이 펼쳐진 광경을 상상해봐야 한다.>
<개건비 내용을 성지기가 살펴본다.>
<논산 쌍계사 대웅전:
지리산 쌍계사에 가려져 별로 알려지지 않은, 그러나 고졸한 대웅전의 멋스러움과 문살무늬의 아름다움,
닫집의 빼어남과 함께 산사의 그윽한 맛을 느낀다.>
< 부안 내소사의 문살과 함께 유명한 쌍계사의 문살 -바깥쪽>
<안쪽에서 바깥으로 내보이는 모습 : 은은한 반조명이 주는 한국적인 멋스러움을 느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