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에서 먼 모슬포까지 종횡무진의 여로[旅路]였다.
우리가 눈으로 보고 몸으로 느끼며 사유[思惟]하였던 장소는
즉흥적으로 마구잡이 찾아간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 취사선택은 오랜 경험과 답사를 통해 모든 사람들이,
넉넉하게 만족할 수 있는 장소를 헌팅하였던 셈이다.
그 장소를 일일이 열거하는 것만으로도 새삼 기억을 반추할 수 있으리라.
4월 16일 /문개항아리, 사라봉, 별도봉,
다원다희연[동굴까페], 선흘리 동백동산습지, 오봉
4월 17일/절물자연휴양림, 위미항[귤농장]
큰엉해안경승지, 삼다수숲길
4월 18일/교래자연휴양림, 큰지그리오름, 생태숲길
다랑쉬오름, 섭지코지, 광치기해변
4월 19일/어승생악, 어리목, 송악산, 월령선인장군락지,
금능석물원, 한담해안산책로.
이렇게 산문적으로 장소만 나열하면 무뚝뚝하게 보일 수도 있으리라.
이 각각의 장소마다 풍토가 다르고 정서 또한 독특한 스토리가 있는 것이다.
제주도에는 의외로 파충류가 상당히 다양하고, 나름의 문화도 있다.
방년의 딸이 시집을 가게 되면, 친정엄마는 항아리에 고향마을에 서식하는
뱀을 담아, 시댁으로 보내는 특이한 풍습이 있다.
인간의 혼례에 뱀도 또한 혼례의 한 상징으로 보내는 것이다.
이 선비가 풍찬노숙[風餐路宿]의 세월 속에는, 땅꾼으로 살았던 시절도 있었기에
동행한 벗님들에게 친절하게 설명을 하여 주었다.
사씨[蛇氏]를 우연히 만나게 되면 너무 호들갑스레 놀라거나 비명을 지르지 말고
한 쪽 발만 살그머니 들어주면 절대 안전하다고 알려주었다.
이 선비가 본디 페미니스트 경향이 있어, 굉장히 자상하고 친절한 편이다.
해우소[解憂所]는 보이지 않고 ‘쉬’가 급한 경우가 있기도 하여
“눈을 감고 볼일을 보면 된다.”고 현명하게 알려주기도 하였다.
눈을 뜨고 있으면 삼강오륜을 따지고 체면을 생각하지만, 눈을 감으면
무례하여도 양심에 그다지 치우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선비가 동서남북의 이목을 지키는 봉수대 역할을 몇 번 하기도 하였다.
애써 누구누구누구누구였는지는 공개하지 않기로 하였다.
허준이 쓴 동의보감에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온다.
형편이 아주 넉넉한 부르주아라 하여
날마다 인삼, 녹용 같은 귀한 약재를 먹기 보담은.......
제 철 음식을 다양하게 먹는 것이 귀한 약재보다 더 좋다.
제 철 음식을 매 끼니 먹는 것 보다 더 좋은 것은
날마다 걷는 것이 몸에 가장 좋은 것이다.
조선의 옛 사람들이 건강데이터를 따지고 비타민 함량을 따지지는 않았겠지만,
몸에 가장 유익한 것이 무엇인지는.....익히 알고 있었던 셈이다.
그러기에 이 아름다운 풍광을 느긋하게 감상하며
길을 걷는 일은 건강을 위해서도 그렇고 정신적으로도 금상첨화인 것이다.
동백동산, 절물, 교래, 생태숲을 걷는 길은
인위적인 고색창연한 구조물과 전혀 다른
천연 그대로의 원시림 속으로 들어가 자연과 합일일체가 되는
순수한 기쁨이 충만되는 경험을 얻는 것이다.
화사한 봄꽃과 푸른 녹색의 공간은, 삶이 만들어내는
비루하여진 심성을 맑고 투명하게 정화시키는 느낌이 강렬하였다.
불로소득처럼 달래도 캐고, 고사리도 꺾는 일은 덤으로 얻는 즐거움이었다.
함부로 무례해지는 불량한 소수의 무리들을, 최소한 보호하는 차원에서
오솔길 사이사이에 울타리를 만들어 자연을 지키고 있었다.
그 오솔길을 하염없이 걷기만 하여도, 지친 심신을 위로받는
넉넉한 여백과 호연지기를 느낄 수 있지 않던가.
문개항아리, 큰엉해안, 위미항, 섭지코지, 광치기, 월령, 한담
이 바닷길로 이어지는 올레길은
광대무변한 스카인라인이 자유로워 새삼 시선이 넓어지는 기분이었다.
수도권은 늘 스카이라인이 협소하게 막혀 있었는데,
이렇게 넓고 넓은 시선의 자유는 참으로 오랜만에 느끼는 자유분방이었다.
맑고 푸른 바닷가에서 고래를 만나는 특이한 체험도 하였다.
올레길은 억지로 편의주의만 취한 것이 아니라,
자연의 형태에 따라 소극적인 흔적으로 만들어 놓았기에
그 고유의 풍경은 고스란히 남아 있어, 고맙기도 하였다.
월령의 선인장군락지 곁을 지날 때는, 새삼 남북통일이 간절해지기도 하였다.
한라에서 백두까지 어울려 사노라면
우리나라의 다기다양한 풍경을 즐기는 것이 아닌가 여겨졌다.
남방의 풍부한 동식물군과 북방의 한랭지대에 서식하는
다양한 동식물군을 만끽하며 산다면......얼마나 좋겠는가?
이 선비가 외교적으로 늘 어눌한 편이라
많은 벗님들과 교류는 그다지 원활하지 않았다.
황수현 벗님의 어머님과 대화에서, 부군이 영화배우였기에
그 기억들을 회상하며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그 표정은 잊혀진 그 아름답고 즐거웠던 시절을 더듬고 계시었다.
전주에서 온 두 벗님은 늘 다정하게 손을 잡고 다니었고,
이 선비와 두루뭉술한 인터뷰도 하였다.
맑은 감성을 잃지 않았기에 대화는 늘 신선하고 재미있었다.
세월이 쌓이면 인생이 탁해진다고 하지만, 감성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양식조리사 자격증까지 완비한 겸손하고 너그러운 그 부부도
보기에 너무 좋았다. 쇼윈도 부부의 금슬이 아닌
애틋하게 서로를 위하는 그 자연스러움이 중년부부의 귀감이 아닌가 여겨졌다.
혜전마마의 소개로 참석한 세 벗님은 춘추가 가장 나지막하였고
스테미너가 가장 왕성하게 보이는 만큼, 힘차게 늘 앞장을 섰다.
요조숙녀[窈窕淑女]들이 대다수이기에, 군자님들은 오히려 고요하였다.
그나마 명도님이 세프의 깃발을 흔들며, 요리를 맡았기에
모든 군자님들이 나름의 미식을 즐길 수도 있었다.
헌칠한 장부 같은 구름산님도 적절한 힘이 필요하면, 내숭을 떨지 않고
분위기에 잘 어울리게 리딩도 하고, 술잔도 자주 기우렸다.
개개인의 프로필을 모르기에, 몇 마디 인터뷰라도 한 벗님은
그나마 기억회로에 남아 있지만, 한 마디도 말을 섞지 않았던
벗님들도 또한 많았기에 이렇게 주마간산으로 흘러가야 했다.
첫댓글 아 어느새 그렇에 안면을 많이 텃네요
하기사 무난한 성격이라 사람들이 좋아할 스타일이니까
그리도 잘 어울려 여행했다 싶습니다
후기글 올려주심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이동중이라 산만하여 숙독을 못하고 대충대충 넘어가서
댓글을 우선 담니다만 예리한
인물에 대한 캐릭터상에 우선
한표를 던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