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군사저널 2018년 3월호
박경석 군사논단
군 현역복무 18개월이 적당하다
프랑스어로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는 높은 신분에 따르는 도덕상의 의무를 뜻한다. 이는 지도층 인사의 솔선수범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가리키는 서구 선진국 사상의 기본이다. 정치와 경제가 안정된 서구 선진국가는 전쟁이 발발하면 전선으로 앞장서서 출전하고 생활에서도 자신의 지위에 알맞은 품격을 지키고자 노력하는 지도자를 많이 가지고 있다. 국민들은 이런 지도자의 결정을 존중하고 자신 또한 국가에 대한 봉사를 당연하게 생각한다.
까마득한 기원전 3세기 이야기지만 당시 로마인들은 신분이 높을수록 병역과 납세 등 국가적 의무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것을 가장 중요한 도덕률로 삼고 있었다. 한니발 전쟁이라고도 불리는 제2차 포에니 전쟁 때 로마는 카르타고의 한니발군이 이탈리아 반도에 침입하자 국정 최고 책임자인 집정관이 몸소 군대를 이끌고 출전하여 15년간 길고도 긴 항전 끝에 국난을 극복하였다. 이 과정에서 13명의 집정관이 전사한 것으로 로마의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우리나라 지도층과 대비되는 정황이라 할 수 있겠다.
최근 한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 고위 공직자와 국회의원의 경우 전체 대상자 333명 중 24%가 병역을 면제받은 것으로 나타났고, 이들의 자제 362명 가운데 23%가 군에 가지 않아 병역 면제 비율이 일반 국민들에 비해 2배 이상 높았다고 한다. 이렇듯 지도층 인사들의 왜곡된 처신으로 마침내 '신의 아들, 장군의 아들, 사람의 아들' 이라는 웃지 못할 자조어를 만들어냈다.
철책선 북방에 100만 대군이 도사리고 있고 통일이 안된 현 상황하에서는 국민개병주의(國民皆兵主義) 원칙에 의한 징병제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 할지라도 과연 현 제도를 개선 할 수 없을까 하는 의문이 대두된다. 필자는 현재의 제도 가운데 모병제의 발전적 접근과 함께 두 문제점을 지적하고 싶다. 첫째는 병역에 있어서 대체복무 제도의 남발로 생기는 불평등의 폐해가 그 하나이고, 둘째는 병역의무 복무기간이 너무 길어 많은 기피자를 양산하고 있다는 점이다.
병역을 대체하는 특례제도의 병폐는 오히려 병역면제의 경우보다 더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특례제도를 교묘하게 악용하고 있는 사례가 빈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병 복무기간의 단축을 제의하고자 한다. 당국에서는 현재의 복무기간 26개월(2002년 당시)을 더 이상 단축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필자의 생각은 좀 다르다. 단축이 불가능하다는 이유로는 남북 분단 상황과 병의 전기숙달 문제를 제시하고 있지만 그 주장에 동의할 수 없는 명백한 사유가 있다.
필자는 6.25전쟁 당일 우리나라 최초의 정규 육사생도로 전투에 투입된 이래 소총 소대장과 소총 중대장으로 전투의 최일선에 섰고 베트남전에서는 맹호사단 제1진 在求大隊長으로 참전, 청춘기의 대부분을 싸움터에서 보냈다. 그때 얻어낸 값진 전투경험 가운데 하나가 병의 전투능력과 전장 적응능력에 대한 분석자료다. 그 자료에 의하면 병이 가장 숙달된 전기를 발휘하고 용감하게 임무를 완수하는 시기가 입대 후 6개월부터 시작하여 16개월까지라는 사실이다. 입대 후 20개월이 넘으면 고참병의 꾀가 도지기 시작해서 임무수행시 뒤쳐지려는 경향이 현저하게 나타났다. 따라서 군의 전투력을 적절히 유지하고 병사들로 하여금 효과적으로 임무수행을 할 수 있게 하려면 현역병 복무기간을 18개월까지 단계적으로 단축해야 한다. 그러나 여기서 전제할 것은 전시에는 이 단축안을 다시 환원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평시에 있어서 18개월로 복무기간을 단축하면 병역기피자는 물론, 많은 병역 특례자와 병역 면제자의 폐해도 줄어들 것이므로 문자 그대로 일석이조가 아니겠는가.
위 글은 내가 쓴 '2002년 3월 19일자 조선일보 시론' 전문이다. 당시 조선일보사에서 군 현역복무 기간에 대해서 작가와 군사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는 나에게 의사타진이 있어 내 소회를 밝힌바 있다.
이 글이 나가자 많은 독자로부터 찬성과 반박의 전화로 한동안 시달려야 했다. 찬성하는 쪽은 비교적 진보 성향의 젊은 층과 전투경험이 있는 노병들이었고 반박은 당시 야당 보수층인 것 같았다.
마침내 이 여파는 청와대를 비롯해 국회로까지 미치면서 나는 찬성과 반박의 소용돌이 속에 빠져야 했다. KBS TV를 비롯한 지상파 방송의 심야토론에서도 논쟁이 이어졌다.
그 과정에서 나는 당당히 나의 확고한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그 바탕에는 6.25전쟁과 베트남전 전투지휘관 으로 실전 지휘에서 얻은 값진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반박의 핵심은 한결같이 병력자원의 한계와 병의 전기 숙달 정도로 귀결됐지만 그 해결책은 문제가 될 수 없는 것으로 나는 확신했다.
병력자원의 해결책은 병 모집요강을 조종하면 된다. 신체 등급조정, 학력 제한의 철폐로도 자원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군 편성상 비 전투원 소요가 무려 30%에 이른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고 학력이 전기의 우열이 되지 않음은 분명히 입증된바 있다.
전투 공적이 학력과 무관하다는 예를 들 때 흔히 인용하는 6.25전쟁 당시의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1950년 8월중순, 제8사단 21연대의 영천전투시 무학자 신병이 인민군 15사단 소속 전차를 노획하고 전차 승무원 4명을 포로로 한 사건이 있었다. 그 신병은 배가 고파 먹을 것을 찾아 나섰다가 인민군 전차를 만나자 겁없이 손을 들었다. 그러자 인민군 전차병은 전차를 세우고 해치를 열고 나와 손을 들고 포로가 됐다. 당시 영천전투에서 있었던 실화다. 인민군이 불리한 전세에서 손을 들고 있는 국군 병사를 보자 이미 국군 천하가 된 것으로 오판한 결과였다. 그 무학자 신병은 2계급 특진에 전쟁이 끝날 때까지 영웅 대접을 받았다.
병의 기본전기 완성은 6개월이면 충분하다. 병은 전기에 숙달한 부사관에 의해 리드되며 젊은 혈기와 사명감만으로도 전투시 충분히 임무수행이 가능하다. 학력이 높은 병일수록 위험에서 기피하려는 현상이 뚜렷하다는 사실은 실전 경험자의 상식에 속한다.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직종은 모병제에 의해 전문성을 고양해야 한다. 내 실전 경험으로는 전투의 숙달 리더는 부사관이었다. 그래서 나는 늘 우수한 부사관 확보가 말단 전투력의 주축이라고 생각했다.
부사관 획득 방안으로 일반 모병외에 18개월 현역복무를 마친 부사관 희망자 중에서 선발하면 우수 부사관 확보책의 하나가 될 수 있을것이다. 분대장이 아닌 의무병 책무의 범위는 지극히 단순하다. 가장 정의감이 용솟음 칠 무렵, 남아로서 지기 싫어하는 승부욕만으로도 병사는 훌륭히 자기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
참고 자료
원래 '군 현역복무 18개월안 채택'은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했다. 실행 과정에서 이명박 정권으로 바뀌자 18개월 안이 취소됐다. 병역 면제자인 이명박 대통령이 의무병의 생태를 알 까닭이 없다.
헌정 사상 병역의무를 필한 대통령은 노무현, 문재인 뿐이다. 그 두 대통령이 전투경험은 아니지만 병영생활과 각종 훈련과정 및 경계근무를 통해 병 현역복무 18개월 적합성을 인정한 것이다. 탁상공론의 결과가 아니고 병영생활에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결정이었다. 병역 18개월 안을 두고 더 이상 '왈가왈부' 하지 않기를 바란다.
국방부 "文정부 임기중 병 복무 단축 시행..임기내 완료 목표"
최현수 국방부 대변인은 3월 15일 정례브리핑에서 '군 복무 단축에 대한 국방부의 입장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이 사안은 공약 사항이기 때문에 명확히, 정확하게 저희가 실행해나갈 것"이라며 "(현 정부) 임기 중 병 복무 기간 단축은 시행될 것이며 가능한 한 임기 내에 완료하는 것을 목표로 적극적으로 다양한 방안들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슈 · 군복무 18개월 단축 추진
첫댓글 월간 군사저널에 [박경석 군사논단]을 매월 연재하기로 했다.
3월호에 게재 할 첫 작품으로 요즈음 민감한 이슈로 등장하고 있는 '군 현역복무' 문제를 택했다.
월간 군사저널 발행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내가 쓴 논단 중 붉은 글씨로 표시한 부분을 삭제 해달라는 것이다.
글을 읽을 장병들에게 좋지 않다는 이유라고 했다. 어디냐고 물었더니 국방부 정책실이라고 했다.
국방부에 500여부 납품돤다기에 나는 분을 참고 고치라고 승인했다.
작가가 가장 기분 나뿐 때는 바로 이런 경우다.
독재정권 시절에만 있는 일로 생각했는데 지금도 못된 버릇을 고치지 못하다니...
33개월 복무한 저도 군복무 18개월에 대한 우려가 있었는데
장군님의 글을 읽고보니 18개월복무가 이해가 갑니다.
사실 33개월 복무한 하마님 경우는 억울하겠지요. 이해가 갑니다.
그런데도 18개월 안이 이해가 된다면 '18개월 안' 제의한 본인으로서는 다행입니다.
나는 하마님처럼 장기 의무복무한 제대자의 진심을 듣고 싶었습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참고가 되는 좋은 의견입니다.
윗 본문을 우연히 읽고 바로 카페 가입한 새내기입니다.^^2002년에 쓰셨다니 놀랍습니다.
전 26개월을 사병으로 지낸 90년대 군번이니 30개월 이상 근무하신 분에 비견해서 짧은 군생활(?)이지만
입대하여 GOP 경계임무 끝나니 군생활 1년이 지나가버렸고 나머지 14개월 동안 훈련만 주야장천 뛰다가,
아니 걷다보니(보병) 예비군이 되어 있었습니다.딱 14개월이 군인으로서 배워야할 것들을 갖춘 듯 싶습니다.
앞으로 군복무기간이 더욱더 줄어들 수 있는 환경이 갖춰졌으면 합니다. 모병제 전까지는 한 12개월까지?
그 대신 예비군 전력 증강과 처우에 공을 들여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글을 접하고 기뻤습니다. 이런 장군님도 있었구나~~~
고맙습니다.
긴 병역을 필한 경험자의 값진 증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