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5일ㅡ화
어제 불던 바람은 밤사이 많이 잦아들었다. 그래 이틀간 굳은 날씨였으니 오늘 부터 며칠은 좋은 날씨일거다. 그게 날씨 주기 이니까. 적어도 최소한 오늘 하루만 좋은 날씨이면 된다.
오늘하루에 하강을 끝마치면 내일 좀 여유 있는 샌프란시스코행이 될 것이고, 하강이 내일까지 걸린다면 최소한 오전까지 끝마쳐져야 하며 샌프란시스코행이 고달픈 행군될 것이다.
아침 7시 기상, 텐트 걷고 짐을 꾸리니 홀백과 어택배낭이 가득 찬다.
텐트와 침낭, 침낭카바, 여벌 옷, 메트레스, 물 2리터, 젯보일, 자일 1동을 담은 홀백이 15kg정도이고 우의, 우모복, 클라이밍 후드티, 남은 식량 전부, 암벽화, 여분 암벽장비를 담은 어택배낭도 10kg가까이 나가는 것 같다.
8시 30분 하강시작
33피치, 32피치, 31피치, 30피치까진 이미 휙스가 되어 있는 구간이고
29피치와 28피치는 오버행이므로 캠 꼽으면서 싱글로프로 하강 한 뒤 쥬마링으로 다시 올라가 더블 로프로 홀 백 달고 하강한다. 특별한 문제는 없다. 다만 회수 로프 당길 때 무지 힘들다.
근데 어째 벽 상에 인간이 아무도 없다. 나만 등반하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하늘을 보니 잔뜩 찌푸렸다.
비소식인가?
비가 온다면 물론 방어 할 수는 있다.
비옷, 고어텍스 침낭카바 거기다 텐트플라이까지 있으니 얼어 죽지는 않겠지. . .
그러나 귀국날짜 때문에 최소 내일까지 등반은 마쳐져야하고 그렇다면 우중 하강을 감수 해야한다. 마음이 급해진다.
드디어 27피치 오버행(12c,페이스)과 26피치 인듀어 코너 후반부(12b,크랙) 25피치 인듀어 코너 전반부(11c,크랙) 세 피치를 캠 꼽으면서 한 번의 하강으로 완료
글구 등반!
위에서 여길 내려다보며 얼마나 군침을 흘렸던가
그리고 작년 등반 때, 새벽에 풀리지 않은 몸으로 고전했던 인듀어코너 후반부
우선 인듀어 코너 전반부부터 등반한다.
재미있어 보이는 핸드잼과 레이백 크랙이다. 그레이드 5.11c
몸풀이다. 우~근데 중간에 물이다.
그제 저녁 내린 비 때문이다.
근데 쥬마도 가져오질 않았다.
억지로 미끄러지면서 등반하자니 체력소모가 크다.
오늘 갈 길이 먼데ㅠ
25피치 마치고 거친 쉼을 몰아 쉰다.
오래 쉴 시간이 없다.
곧바로 26피치 등반
초반 넓은 크랙, 흐르는 홀드 잡고 레이백
사이사이 핸드 잼 한 번씩 먹여주고
중반 핑거 크랙, 잼 안 되고 레이백으로 뜯으니 뜯을 만하다.
후반 핸드 크랙, 레이백으로 갈 수도 있겠으나 핸드잼으로 올랐다 마지막 마무리는 레이백
그래 이정도가 5.12b인 게지...
우선 이정도를 자신있게 온사이트 할 수 있다면 세계 어느 벽에서도 멋진 등반을 펼칠 수 있으리라.
잠시 숨 좀 돌리고 27피치 오버행
초반에 발 믿고 트레버스
그리고 크럭스로 진입
오른손 언더클림프 잡고 하이스텝 일어서서 오버 두 개 넘어 서면 된다
중간에 발이 터져 슬립
다시 해보니 여긴 선운산 5.12c보다 쉽게 느껴진다.
됐다! 상황파악 끝!
서둘러 홀백 달고 하강
24피치 블록까지
사선이다
눈으로 보기엔 곧바로 더블로프 하강하여도 될 것 같은데...
만에 하나 홀백달고 더블로프로 내려갔다가 확보 지점에 도달하지 못 하면 치명적이다.
싱글 로프로 뛰어 내려간다(더블로 와도 됐겠다)
그리곤 곧바로 등반
5.10d피치 오히려 쥬마보다 빠르다ㅋ
그런데 블록에 자일이 휙스되어 있다
프리라이더 하는 친구들이 후버피치 까지 아예 두 동을 휙스 시켜 놓은 거다.
이게 왠 떡이냐~
쟈일 두동 사려서 옆에 차고
홀백 달고 배낭 매고 곧바로 하강
그런데 휙스 로프가 후버피치의 끝에 고정되어 있어야 할 텐데 후버피치 출발지점에 되어 있다. 무게 때문에 도저히 접근이 안 된다.
어쩔 수 없다. 후버피치는 생략.
내년에 부디쳐 보는 거지 뭐
계속 휙스 로프하강
21피치 더블로프로 엘켑 스파이어까지
그리고 또 20피치 하강하니
몬스터 오프위드다.
지금이 2시 예상대로 진행되고 있다
3시에 여기서 출발 할 수 있으면 렌턴 켜지 않고 하강 마칠 수 있다
그러면 따뜻한 물로 씯고 따뜻한 음식도 먹을 수 있겠지
마지막 남은 행동식 파워젤을 입에 털어 넣는다.
아예 18피치부터 시작이다.
오프위드!
2, 3미터 올라가다 이내 미끄러진다.
문제는 발에 있는데, 발목이 생살로 바위에 닿으니 적극적으로 발을 비빌 수가 없다.
발목아대를 하고 왔으면 좋았을 거고 최소한 테이핑이라도 했어야 하는데...
함 레이백으로 붙어본다.
괜찮다. 힘은 드는데 18피치는 가진다.
다시 내려와서 다시 한 번
몸을 비벼서 가는 것 보다 힘이 덜 드는 것 같다.
문제는 19피치일 텐데,
19피치도 할 만 하다
요령도 좀 생기는 것 같다
밑에 있는 발을 잼밍시키는 거다
선등시 캠을 꼽을 때에도
이 발 잼밍을 잘 써먹어야 할 것 같다
19피치 완등하고 나서 뻗는다
3시가 되려면 20분 정도 시간이 남았지만
더 이상 등반불가 상태
20분을 쉬고 다시 하강 시작
여기서부터 땅까지는 12번의 하강(왜냐면 사라테 11피치에서 다운클라이밍)이 남았다
그 중 6번은 휙스로프를 쓸 수 있다
두 번의 사선 피치가 있지만 이제 서두를 것이 없다
잔뜩 짙뿌렸던 하늘은 어느새 자취를 감추고
개인 하늘에 시에라네바다의 노을이 요세미테계곡으로 서서히 내려앉고 있다
이 평온한 하늘과 여유로운 바람은 엘캡의 작별인사인가
어두워져서야 하강 끝 저녁 7시 10분 전
처음으로
혼자했던 등반여행
외롭고 고달프고 때론 두렵고...
혼자 있으므로 나 자신을 더 정확하게 보게 되는
나라는 인간의 문제점
그 동안 내 등반의 문제점
하지만 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등반을 얼마나 좋아하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던 시간들...
벌써
시에라 네바다의 서연한 능선이 그리워진다.
그동안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
첫댓글 역시 영욱이다. 대단하다...
앨캡스파이어에 물을 두고 가던 그 곳 기억이 삼삼하다
네~등반 내내 작년의 추억을 더듬는 여정이었습니다.^^
홀로 거벽에서 등반 참...ㅎ
썬더스톰을 만나 바삐 하강하던 그날이 그려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