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선의 눈꽃
떠나라
떠나는 것이야말로
그대의 재생을 뛰어넘어
최초의 탄생이다
--- 고은, 「낯선 곳」에서
▶ 산행일시 : 2012년 3월 3일(토), 흐림, 간혹 분설(粉雪) 날림
▶ 산행인원 : 11명
▶ 산행시간 : 10시간 7분(휴식과 중식시간 포함)
▶ 산행거리 : 도상 11.3㎞
▶ 교 통 편 : 25인승 버스 대절
▶ 시간별 구간(표고는 국토지리정보원의 지형도에 따름)
00 : 30 - 동서울종합터미널 출발
04 : 05 ~ 05 : 23 - 삼척시 하장면 중봉리(中峰里) 중봉교, 산행시작
07 : 00 - 임도
07 : 49 - △1,197.2m봉
08 : 12 - 1,215m봉
09 : 15 - 1,123m봉
09 : 37 - 임도
10 : 13 - 칠곡메기
11 : 23 ~ 12 : 10 - 능선 진입, 중식
12 : 18 - 1,260m봉
12 : 45 - △1,246.9m봉
14 : 09 - △1,044.8m봉
14 : 24 - 임도
15 : 03 - 756m봉
15 : 30 - 정선군 임계면 용산2리(龍山2里), 버스정류장, 산행종료
15 : 45 ~ 17 : 45 - 임계, 목욕, 중식
20 : 45 - 상일동 도착
1. 우리와 함께 내려온 옆 능선
▶ △1,197.2m봉
04시 05분 산행들머리 골지천 중봉교 도착, 차안에서 히터 틀어놓고 계속 취침
04시 50분 기상
05시 23분 산행시작
중봉계곡 물소리는 한밤중에도 우렁차다. 춘신(春信)이다. 삼라만상(森羅萬象)에게 마침내 봄
이 도래하였음을 알리는 첨병의 외침이려니. 중봉교 건너고 외진 가로등 뒤의 산기슭으로 다
가간다. 능선 끄트머리 잡는다. 덤불 숲 잠깐 헤치자 능선이다. 인적은 있는 듯 없는 듯. 분설
내리는 등로는 미끄럽다. 그저 위로 향한다.
산행 시작할 때 진눈깨비 내려 잔뜩 껴입었던 윈드자켓과 우비를 벗는다. 그리 춥지 않다. 어
차피 안팎으로 젖는 것은 마찬가지다. 능선은 완만하다. 명산대찰 없는 삼척 중봉. 아무 이름
없는 한낱 산줄기를 헤드램프 밝혀 더듬는 우리의 행색은 어쩌지 못할 숙명(宿命)일까. 심중
의 갖은 시름 덮은 이 밤이 다행히 더디 샌다.
영세(永世)할 것만 같던 칠흑의 어둠은 여명으로 마지못해 물러가고, 그 어둠에 편승하여 달
겨들어 얼굴 마구 할퀴던 가시덤불은 은근히 자취 감추거나 획 돌아보면 부동자세로 가만히
있다. 괜히 섣부르게 스패츠를 맸나 싶게 남쪽 사면의 적설은 보잘 것이 없다. 표고 920m가
넉넉한 고지의 임도까지는 그렇다.
임도 절개지를 리지로 오르고 싸리나무 숲을 안전거리 유지하여 뚫어 능선 잡는다.
전혀 생각지 아녔던 새 세상이 펼쳐진다. 설국(雪國)이다. 상고대 눈꽃이 만발한 것이다. 이
첩첩한 산중에 우리 말고 누구 또 보아줄 이가 있을까? 그럼에도 일목일초(一木日草)마다 파
르라니 섬세한 단장은 개화(開花)의 숭고한 의식으로 실로 장엄하다. 걷다가 다가가 숨죽이고
들여다 본다.
설경은 점입가경(漸入佳境)이다. 고도 높일수록 경쟁이라도 하는 듯 난이도 높이는 경관을 다
투어 선보인다. 한줄기 바람이라도 불면 나뭇가지 서로 부딪혀 청량한 음률이 바로 사방에서
터져 나올 것만 같다. 자칫 나뭇가지 하마 건들면 이 차분한 고요함을 불협화음으로 깨뜨릴
것이어서 걸음걸음이 무척 조심스럽다.
△1,197.2m봉 정상. 삼각점을 발굴한다. 임계 309, 2005 복구. 눈이 깊다. 무릎을 넘는다. 능
선 커니스를 가로 지을 엄두를 내지 못한다. 그래도 이때는 신났다. 깊은 눈 속에서 짐작 없이
엎어지는 것도 즐거웠다. 1,215m봉 내리는 눈길은 더욱 그랬다. 빠질 듯 말 듯 딴딴한 설원
위를 살살 살펴 걷는 것은 불과 몇 걸음. 그만 푹 꺼지고 만다. 일어나 자세 잡기가 힘들다. 부
축 받아 일어난다.
겹겹이 쌓인 눈이 녹고 쌓이기를 반복하여 한 발 한 발 내딛기가 어렵다. 빠진 발을 얼른 꺼내
기가 쉽지 않아 앞으로 꼬꾸라져 눈 속에 처박히기 일쑤다. 칠곡메기로 내리는 북사면에서는
유년의 실력과 추억을 최대한 되살린다. 설원의 무릎을 넘는 눈이다. 몸무게를 눈 표면에 균
등히 하고자 엎드려 기어가다 아예 드러누워 미끄러져 내린다.
임도도 눈이 깊다. 신가이버 님과 가은 님의 러셀 걸음을 따르기가 벅차다. 가다말고 주저앉
아 사계 님이 준비했다는 홍어회 꺼내게 하여 탁주 곁들여 눈(眼) 안주로도 푸짐할 설경을 입
으로 감상한다. 칠곡메기. 임도의 삼거리다.
여기서 1진이 탈출한다. 버들 님과 자연 님이 주범. 메아리 님은 책임 빠따. 도자 님은 쇠고기
샤브샤브까지 짊어진 보급 담당. 아름다운 동행이다.
이렇게 애쓰느니 그만 내려가 동해안 삼척으로 가서 회나 먹자는 제안이 제법 귀에 솔깃하였
으나 오늘 산행에 결근한 대간거사 님이 나중에 이 사실을 알고 ‘느그덜 하는 산행이 그러면
그렇지’ 할 것 같은 즐거움을 주기가 싫어 산행을 강행하기로 한다. 왼쪽 사면을 겨냥한다. 겉
으로 보기보다 눈이 깊고 가팔라 접근조차 어렵다.
2. 임도 변의 소나무
3. △1,197.2m봉 가는 길
4. △1,197.2m봉 가는 길
5. △1,197.2m봉 가는 길
8. 1,123m봉 내리는 길
9. 등로
10. 등로
12. 등로
13. 등로
14. 등로
15. 칠곡메기로 가는 길
▶ △1,246.9m봉
남쪽 사면이라 눈이 얕지만 바짝 일어선 설벽이다. 여태 희희낙락하던 표정이 신중해진다. 불
과 800m인 거리를 1시간 10분이나 걸려 오른다. 가파름이 수그러들면 눈이 깊다. 교대로 러
셀한다. 수범(垂範)해야지 하고 마음먹어도 내 차례가 돌아오면 조금은 겁난다. 능선 진입. 일
보 전진이 어렵다.
설동이라도 만들 듯 눈 파내어 점심자리를 마련한다. 언제나 점심시간은 즐겁다. 버너 3개.
다 작동이 잘 된다. 이 시간을 즐기기 위해서 설원을 그렇게 누볐는지도 모를 일이다. 주변 경
치도 좋다. 분설은 분분히 난다. 커피도 끓여 마신다.
1,260m봉 오르기가 매우 되다. 이제 탈출할까? 취기일까? 더 간다.
상고대 핀 낙엽송 숲이 이리 아름다운 줄을 처음 안다. 몽중 같은 숲길을 간다.
가도 후회, 가지 않아도 후회. 어쩌지 못할 걸음이다. △1,246.9m봉. 댕기봉, 석이암산, 넓덕
동산이 가망 없다. 다 놓아준다. 넓덕동산까지만 해도 여기서 도상 2.2㎞. 아득하다. 탈출한
다. 포기하고 탈출하는 것이 계속 진행하는 것 못지않게 어렵다. 탈출도 용기다.
선두 한 사람의 발자국으로 여섯 사람이 간다. 신가이버 님의 발자국은 대뜸 알아 볼 수 있다.
보폭이 너무 길다. 장난이 짙게 배어있다. 자작나무 숲을 지난다. 자작나무 흰 수피가 겨울 산
의 흰 눈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흔히 조경사 시험문제로 출제된다. 그네들이 이런 아름다운 숲
을 보기라도 했을까? 나는 그 문제만큼은 틀리련다.
△1,044.8m봉. 그 아래는 규석채광작업장이다. 그리로 드나드는 임도로 떨어진다. 임도 넘어
능선을 붙든다. 고도 낮추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소나무 숲이 볼만하다. 고고한 적송이다. 설
마 저 앞 봉우리를 넘을까 해도 가서보면 넘어야 한다. 756m봉 오르는 것이 마지막 스퍼트.
엄청 가파르다.
솔숲 지나면 골지천(骨只川) 건너 문래봉 자후산의 연봉이 묵화로 보인다. 우리가 밟은 능선
과 내내 함께 달려 온 하동 건너 능선도 장려하다. 능선 끄트머리까지 착실히 밟는다. 용산2
리 버스정류장. 우리 차가 이미 와 있다. 전화가 불통이라 아무런 연락을 하지 않았는데 ….
눈 속 헤맨 10시간이 두메 님 손바닥이었다.
16. 칠곡메기로 가는 길
17. 칠곡메기로 가는 길
18. 칠곡메기로 가는 길
19. 1,260m봉 가는 길
20. 1,260m봉 가는 길
21. △1,246.9m봉 가는 길, 낙엽송 숲
22. △1,246.9m봉 가는 길
24. 건너편이 넓덕동산
25. 저 위가 넓덕동산 가기 전인 △1,285.6m봉
26. 자작나무 숲
27. 용산리 주변, 앞은 △887.8m봉
28. 안개에 가린 멀리는 문래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