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03월 15일 (수)
하나님의 뜻을 거스른 자들
오늘의 말씀 : 사사기 18:1-10 찬송가: 530장(구 320장)
1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고 단 지파는 그 때에 거주할 기업의 땅을 구하는 중이었으니 이는 그들이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그 때까지 기업을 분배 받지 못하였음이라
2 단 자손이 소라와 에스다올에서부터 그들의 가족 가운데 용맹스런 다섯 사람을 보내어 땅을 정탐하고 살피게 하며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가서 땅을 살펴보라 하매 그들이 에브라임 산지에 가서 미가의 집에 이르러 거기서 유숙하니라
3 그들이 미가의 집에 있을 때에 그 레위 청년의 음성을 알아듣고 그리로 돌아가서 그에게 이르되 누가 너를 이리로 인도하였으며 네가 여기서 무엇을 하며 여기서 무엇을 얻었느냐 하니
4 그가 그들에게 이르되 미가가 이러이러하게 나를 대접하고 나를 고용하여 나를 자기의 제사장으로 삼았느니라 하니라
5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께 물어 보아서 우리가 가는 길이 형통할는지 우리에게 알게 하라 하니
6 그 제사장이 그들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너희가 가는 길은 여호와 앞에 있느니라 하니라
7 이에 다섯 사람이 떠나 라이스에 이르러 거기 있는 백성을 본즉 염려 없이 거주하며 시돈 사람들이 사는 것처럼 평온하며 안전하니 그 땅에는 부족한 것이 없으며 부를 누리며 시돈 사람들과 거리가 멀고 어떤 사람과도 상종하지 아니함이라
8 그들이 소라와 에스다올에 돌아가서 그들의 형제들에게 이르매 형제들이 그들에게 묻되 너희가 보기에 어떠하더냐 하니
9 이르되 일어나 그들을 치러 올라가자 우리가 그 땅을 본즉 매우 좋더라 너희는 가만히 있느냐 나아가서 그 땅 얻기를 게을리 하지 말라
10 너희가 가면 평화로운 백성을 만날 것이요 그 땅은 넓고 그 곳에는 세상에 있는 것이 하나도 부족함이 없느니라 하나님이 그 땅을 너희 손에 넘겨 주셨느니라 하는지라
중심 단어
단 지파, 미가의 집, 레위 청년
주제별 목록 작성
단 지파
1절: 새로 거할 기업을 구하는 중이었다
2절: 다섯 사람의 용사를 선발하여 거할 만한 땅을 정탐하도록 파송하였다
3-6절: 미가의 제사장으로부터 자신들의 앞길이 형통할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7-10절: 라이스가 새로운 거처로 적합하며, 자신들이 그 땅을 반드시 취하게 될 줄로 확신하였다
도움말
1. 여호와 앞에 있느니라(6절): 여호와께서 모든 길을 예비하시며 인도하시고 지켜 주실 것이라는 뜻이다.
2. 평화로운 백성(10절): 물리치기에 염려가 없는, 즉 쉽게 상대할 수 있는 백성이라는 뜻이다.
말씀묵상
쉬운 길을 택하다
본문에 나오는 단 지파 역시 자기 뜻대로 행한 자들이었습니다(삿 17:6). 단 지파는 여호수아 당시 유다와 베냐민, 그리고 에브라임 지파와 접경한 가나안 중부 지역을 기업으로 얻었습니다(수 19:40-46). 그러나 그 땅에는 아모리 족속이 거주하고 있었기 때문에 단 지파가 그 땅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아모리인들을 쫓아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단 지파는 강력한 아모리인들과 피땀 흘리며 싸우는 수고와 희생을 감내하기 싫었습니다. 그래서 보다 손쉽게 정복할 수 있는 곳을 찾기 위해 도처에 정탐꾼들을 파송했고, 라이스를 발견하게 되자 그 땅을 강탈하기로 작정합니다(7-10절).
형식적인 신앙을 좇다
하나님은 단 지파가 자신의 기업에서 아모리인들을 쫓아내고 그 땅을 완전히 정복하길 원하셨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새로운 기업을 찾아 나섰습니다. 그리고 곧 미가의 제사장을 만나게 됩니다. 단 지파는 그에게 자신들의 앞길이 형통할지 하나님께 물어봐 달라고 청했고, 그에게서 형통하리라는 대답을 들었습니다(3-6절).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고도 복을 구한 백성과 그들에게 영합해 복 빌기를 주저하지 않은 거짓 종교인의 모습은 바로 하나님을 축복의 방편으로만 여기는 자들의 실상이었습니다.
도움질문
본문 관찰
1. 본문에서 단 지파에 대한 내용을 살펴보십시오(주제별 목록 작성 참조).
2. 라이스를 정탐하고 돌아온 자들은 단 자손에게 어떤 보고를 전달했습니까(9-10절)?
3. 본문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깊은 묵상
1. 여러분은 결정하기 어려운 문제를 만날 때, 가장 먼저 무엇에 의지합니까?
2. 여러분은 불리할 때도 진실된 말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지 살펴보십시오.
3. 오늘 여러분에게 주시는 특별한 말씀(깨달은 점, 느낀 점, 적용점 등)은 무엇입니까?
제공:프리셉트
<오늘의 묵상>
‘단’이란 이름은 ‘심판(자)’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모세는 단 지파를 ‘바산에서 뛰어나오는 사자의 새끼로다’라고 축복했었다.
삼손에게 여호와의 영이 강하게 임하자 사자를 염소 새끼를 찢는 것 같이 찢어버렸다. 삼손이 단 지파의 진면목을 보여준 것이 아닐까?
단 지파는 가나안을 정복하고 유다와 에브라임과 베냐민 사이의 지역을 기업으로 받았지만, 블레셋의 공격을 받아 영토의 일부를 빼앗기게 된다. 또한 아모리인을 정복하지 못해 해안 평지로부터 동쪽 산지로 쫓겨남으로 수치를 당하게 된다.
‘삿1:34 아모리 족속이 단 자손을 산지로 몰아넣고 골짜기에 내려오기를 용납하지 아니하였으며
35 결심하고 헤레스 산과 아얄론과 사알빔에 거주하였더니...’
사사기 17-18장은 단지파가 아직 라이스를 점령하지 못한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단 지파가 거주할 기업의 땅을 구하기 위해 소리와 에스다올에서부터 용맹스런 다섯 사람을 정탐꾼으로 보낸다.
그들이 미가 집에 이르렀을 때 미가에게 고용된 레위 제사장을 발견하고 그에게 길이 형통할지 하나님께 물어보라고 말한다.
‘5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께 물어 보아서 우리가 가는 길이 형통할는지 우리에게 알게 하라’
정탐꾼들이 제사장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묻는 모습이 아니라 마치 점쟁이가 자신의 운을 점 치는 모습처럼 보인다.
점괘가 좋으면 올라갈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다시 돌아가야겠다. 라는 태도처럼 보인다.
레위 제사장도 마찬가지다. “평안히 가라 너희가 가는 길은 여호와 앞에 있느니라”
마치 점쟁이가 점을 마주고 복채를 챙기는 모습처럼 보인다.
그들이 바라대로 하나님이 점령하기 쉬운 땅을 주실 것이라고 말한다. 과연 그것이 하나님의 뜻일까?
그것이 하나님의 축복일까? 하나님은 이미 이스라엘에게 약속하셨다.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모두 내가 너희에게 주었노니... 너희의 영토가 되리라’
만약 제사장이 “평안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했다면 그들은 어떻게 했을까?
그들은 아직도 약속의 말씀을 믿고 싸워서 차지하겠다는 믿음이 아니라 점령하기 쉬운 땅을 찾아서 쉽게 차지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다섯 정탐꾼이 라이스에 이르러 그곳을 정탐하기 시작한다.
‘염려 없이 거주하며 시돈 사람들이 사는 것처럼 평온하며 안전하니 그 땅에는 부족한 것이 없으며 부를 누리며 시돈 사람들과 거리가 멀고 어떤 사람과도 상종하지 아니함이라’
그들이 본 것은 평온함, 안전함, 풍부함, 부였다. 소라와 에스다올로 돌아가서 보고한다.
“일어나 그들을 치러 올라가자 우리가 그 땅을 본즉 매우 좋더라 너희는 가만히 있느냐 나아가서 그 땅 얻기를 게을리 하지 말라. 너희가 가면 평화로운 백성을 만날 것이요 그 땅은 넓고 그 곳에는 세상에 있는 것이 하나도 부족함이 없느니라 하나님이 그 땅을 너희 손에 넘겨 주셨느니라”
마치 아이성을 정탐하고 돌아온 자들의 보고와 비슷하다.
“백성을 다 올라가게 하지 말고 이삼천 명만 올라가서 아이를 치게 하소서 그들은 소수이니 모든 백성을 그리로 보내어 수고롭게 하지 마소서!”
‘그렇게 수고하지 않아도 차지할 수 있습니다! 빨리 올라가 차지합시다!’ 하지만 아이성에서 패배하고 도망치고 말았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형통한 길을 가르쳐 주셨다.
‘수1:7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특별히 용감한 자 다섯을 뽑아서 정탐꾼으로 보냈지만 용감한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비겁하고 나약한 모습만 보일 뿐이다.
나도 ‘형통한 길’이 좋다. ‘평안하고 풍족하고 어렵지 않아 보이는 길, 가볼 만한 길, 넓어서 가기에 만만하고 쉬운 길’
왜 싸움을 피하려고만 하는 것일까? 패배하는 것이 두려워서, 힘들게 싸우고 싶지 않아서, 그렇다면 과연 쉬운 길이 주님이 인도하시는 길인가? 그 길이 축복과 형통한 길인가?
왜 작은 영혼입니까? 왜 작은 교회입니까? 왜 두 가지 사역을 감당해야 합니까? ... ‘나도 남들처럼...’ 주님은 그런 생각이 결국 왕을 달라고 요구하면서 하나님을 버린 이스라엘의 모습임을 깨닫게 하신다.
사랑의 주님. 갈렙처럼 외치게 하옵소서.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보이는 것을 좇아가는 종이 아니라 말씀을 믿고 주님을 좇아가는 종이 되게 하옵소서.
좁고 협착한 길이라고 할지라도 주님과 함께 기쁨으로 걷는 형통한 길을 가게 하옵소서.
비교하지 않고 저에게 맡겨주신 길을 묵묵히 걸어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