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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반대로 고진호씨는 그가 팔이 부러진 채 집에 돌아오건 타고
다니던 오토바이를 강물 속에 빠뜨리고 들어오건 힐끗 한번 보고 나면
그만이다. 즘체로 야단치지도, 그렇다고 칭찬하지도 않았다. 고영무는
그런 아버지를 두려워하면서 존경해 왔다. 그렇다고 어머니를 싫어하
는 것이 아니다. 지금은 군대에 들어간 세 살 터울의 동생인 고영철과
함께 그들은 어머니의 각별한 보호와 육성 아래 자라 왔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너는 잘할 것이다. "
문득 아버지가 입을 열었으므로 고영무는 머리를 들었다. 아버지가
그를 한히 바라보았다.
"내 아들이어서가 아니라 넌 어디에 던져 놓아도 일어설 놈이다. "
"세상일이 참하는 것하고 같아요? 어디?"
그러다가 어머니는 아버지의 눈총을 받고 입을 닫았다.
"나는 은행일 하나밖에 모르고 세상을 살았는데,그것이 이제 와서
생각하면 후회가 돼. 다른 기회도 많았는데."
어머니가 긴장한 얼굴로 아버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고영무로서도
이런 식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처음이었다.
"내 아들이라도 넓은 세상에 나가서 능력껏 뛰게 해보고 싶었는데,
잘됐다. "
아버지는 다시 신문을 펼쳐 들었으므로 상반신이 가리어 보이지 않
았다.
"저 양반이 갑자기."
혼잣소리처럼 신문을 향해 어머니가 중얼거렀다. 그러나 어머니는
더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아무리 난리를 쳐도 아버지의 한마디면 끝
이 나는 집안이었다.
침대에 누워 잡지를 뒤적거리고 있는데 어머니가들어셨다
"내일은 회사 출근할 수 있겠니?"
"음 "
이자영은 침대에서 몸을 일으쳤다.
"이젠 괜찰아?"
어머니가 이마 위에 손을 없었으므로 그녀는 머리를 틀었다.
"얘가,가만있어.아직도 열이 있는 것 같은데."
어머니는 이맛살을 찌푸렀다
"몸살이야.과로해서 그런가보다. 내가준 약 자기 전에 먹어라."
"알았어요, 엄마."
"조금 있다가응접실에 나가서 아버지한테 인사드리고.어젯밤 네가
늦게 들어와서 걱정 많이 하셨어."
이자영은 다시 책을 펼쳐 들었다.
"알았너?"
문고리를 잡으며 어머니가 다짐하듯 물었으므로 이자영은 머리를
끄덕였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 이자영은 책을 던지고는 침대에 몸을 던
지듯이 누웠다. 고영무의 얼굴이 다시 떠을랐고 자신도 모르게 아랫입
술을 깨문 이자영은 눈앞에 그가 있기라도 한 것처럼 머리를 돌렸다.
그에게 차 안에서 강간당한 것에 대한 분노는 아니었다. 소용돌이치고
있는 마음을 아직 분석할 계계는 아니었지만 그의 예기치 못한 반응에
속수무책이었던 자신이 우선 부끄러웠다. 흉악한 놈이었다. 말수도 적
은데다가 큰 몸집에 행동도 느려서 이쪽 딴에는 호의적으로 도와주려
는 마음도 있었던 것이다. 그놈은 결코 우둔한 놈도 아니었다. 그렇게
일을 저지르고 나도 이쪽에서 회사나 경찰에 고발하지 못하리라는 것
도 알고 있는 놈이었다.
저도 모르게 얼굴이 달아오른 이자영은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응접실로 나서자 장선일 박샤는 신문을 보고 있다가 머리를 들었다.
"어, 자영이 일어났구나. 어때? 몸은 괜찮니?"
"네, 이젠 괜찮아요, 아버지 "
"다행이다. 과로하지 말아라. 일도 좋지만 건강이 제일이다. "
"fl . "
이자영은 그의 앞자리에 않았다. 장선일은 그녀의 양아버지이지만
친아버지 이상 가는 정성으로 자신을 보살펴 주고 있다는 것을 이자영
은 잘 알고 있다.
의사였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것은 이자영이 세 살 때였다 역시
산부인과 의사인 어머니는 그녀가 다섯 살 때 병원의 원장이었던 장션
일을 만나 재혼했던 것이다. 장선일은 이혼남이었으므로 이자영은 배
다른 오빠 한명과 아버지가다른 여동생 한명이 있다.
"그런데 넌 부회장 비서실로 자리를 옮긴다면서? 영전 아니냐?"
장선일이 ·웃는 얼굴로 물었다. 머리는 백발이 반쯤 섞여 있었으나
얼굴은 윤기가 반들거리는 홍안이었다. 끊임없이 체력 관리를 해오고
있었으므로 오십 후반의 나이였으나 장선일은 십 년쯤은 젊어 보였다.
"네, 영전이에요."
비로소 이자영의 얼굴에 웃음기가 떠을랐다. 그것은 어줬건 기분 좋
은 일이었다. 어머니가 실내복 차림으로 다가와 아버지의 옆에 앉았다.
60평의 아파트에 살고 있는 것은 두 부부와 이자영, 장혜주, 그리고 일
하는 아줌마의 다섯 식구였다. 결혼한 오빠는 인천에 살고 있었다.
"쟤가 입사성적이 10위권 안에 들었거든요. 처음부터 비서실에 갈
수 있었는데 그땐 자리가 없었어요."
정민숙 여사가 자랑스럽 게 말했다.
"마침 얼마 후에는 쟤들 동기들이 개척요원으로 외국으로 나간대요
때맞추어 잘되었지 뭐예요?"
"개척요원이라니? 시장개척을 하는 것인가?"
커피잔을 들며 장선일이 물었다.
"그래요. 세계 각 지역에 신입사원들을 떨어뜨려 놓고 제품을 판매
시키는 것이래요. 뭐래나 시장정보도 얻고, 또‥‥‥‥
어머니가 이 자영을 바라보았다.
"자사 제품에 대한 소비자의 반응도 조사하고 적극적인 사고와 행동
을 주입시킨다는 의도예요. 그리고 더불어서 판매도 촉진시키고."
이자영의 말에 장선일이 빙그레 웃었다.
"훌릉하군. 자영이가 남자라면 내가 재촉해서 내보냈을텐데."
"제가 남자라고 해도 나가지 않을거예요,"
장선일과 정민숙이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다.
"그건 왜? 너도 모험심이 강한 줄 알고 있었는데?"
장선일이 묻자 이자영이 생글 웃었다.
"6개월이 될지 1년이 될지 개척요원의 외국생활은 경력에 도움이 되
지 않아요. 실적이 뛰어났던 사원도 귀국해서는 다시 똑같은 급수의
사원으로 되돌아가더군요. 인사고과의 별첨란에 조그마게 기록될 뿐이
고,본사에서 일하는 것이 훨면 기회가 많아요.더욱이 비서실 같은 경
영 진 측근에서 ."
"훌름하군, 우리 자영이."
장선일이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래, 네 꿈은 무어냐?무엇을 할 작정이야?아니,무엇이 되고 싶
어?"
웃는 얼굴로 이자영은 머리를 저었다. 찌뿌드드했던 가슴도 어느덧
가라앉았고 그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자어느덧 온몸에 기운이 났다.
"아직 모르겠어요. 하지만 기회가 올거예요. 틀림없이, 무엇이 건."
"이봐,회식에 참석 안할거야?왜 이렇게 꾸물거리고 있어?"
박정환이 다가와 어깨를 했으므로 고영무는 머리를 들었다.
"어? 별써 여덟시가 되 었구만."
"내 참,사람이 둔하기는‥‥‥ 이 친구야,시간 가는 줄도 몰랐단 말
이야?"
고영무는 자리에서 일어나 의자 위에 걸쳐 놓았던 저고리를 들었다.
"그럼 가지 뭐 ."
박정환은 아래증까지 내려갔다가 일부러 올라온 모양이었다. 혀를
몇 번 차더니 그와 함께 팅 비어 있는사무실을 빠져나왔다. 오늘은 과
의 전출자 송별연이 있는 것이다. 배송부로 전출되는 김찬일과 비서실
로 올라가는 이자영이 주빈이었다.
"빌어먹을, 이자영이 그년은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갔어, 우린 내일모
레 파견지가 할당되는데."
회사의 헌관을 빠져나오떤서 박정환이 투덜거렸다.
"잘되면 본전이고 잘못되면 거덜나는거야. 몸 버리고 두고두고 기록
에 따라다닐거야. 전과자 기록처럼."
고영무는 잠자코 그를 따라 걸었다.
"도쿄나 오사카, 그것이 안되면 흥콩이라도 좋겠는데
사람들을 헤쳐 가면서 박정환이 말했다.
"가까우니까 슬적 한국에 다녀갈 수도 있을 것 아냐?보고 싶은 사
람도 보고."
"애냐? 엄마 찾아오게?"
고영무가 팅긋 웃었다.
"까짓것, 알래스카에 떨어지면 어때? 앙골라에 떨어지면 또 어때
서?"
앙골라는 지금 내란이 일어나 정부군과 반란군 사이에 전쟁이 치열
하다고 했다.
"이봐, 말이 씨될라.재수없는 소리 그만해, 난 만일 그렇게 된다면
사표 낼거야. 젠장,이곳 아니면 밥먹을 데 없나?어느 놈이 목숨을 걸
고 다른 놈 위해서 일해?"
"다른 놈이라니? 큰일날 소리 ."
"젠장, 이 회사가 내 회사야그럼?말이야 바른 말로 일성그룹이 박
재룡 회장과 그 장남인 박주경 부회장의 재산이지. 우리는 고용원이고.
내가 죽으면 내 자리를 채울 놈이 수만 명이야."
박정환은 제 말에 열이 받쳤는지 두 눈을 부릅뜨고 고영무를 쳐아보
았다.
그들이 회식 장소인 갈비집의 널찍한 방으로 들어졌을 때에는 이미
술잔이 두어 차례 오간 후였다.
방안은 음음 소리와 이야기 소리로 시끌백적했고 고기를 굽는 냄새
가 코를 절렀다.
"이 사람들, 왜 이제야 오는거야?"
조정수가 눈을 치켜떠 보이다가 이내 앞쪽에 앉는 고영무에게 술잔
을 건네주었다.
"자, 잔 받아. 우리는 벌써 한잔씩 돌렸어. 마시고 잔 돌려."
고영무는 그가 건네준 술잔을 들고는 한모금에 삼켰다. 상석에 않은
과장의 좌우에 오늘의 주인공인 김찬일과 이자영이 맞아 있는 것이 보
였다. 십여 명의 직원들이 제각기 그럴 듯한 말로 김찬일을 격려하였
을 것이고 이자영은 말할 것도 없다. 그들의 식탁 앞에는 서너 잔씩의
술잔이 놓여 있었다.
"이봐, 거기 고영무씨. 이리 와. 내 술 한잔 받게."
이태규 과장이 소리쳐서 그를 불렀으므로 사람들이 일제히 머리를
그쪽으로 돌렸다. 빙글거리며 웃는 사람도 있고 물끄러미 건너다보는
시선도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고영무는 엉거주춤 상석으로 다가갔다.
"자네가 술을 잘한다는 소문 들었어. 나하고는 처음 마시던가?"
잔에 술을 채워 주면서 이태규가 물었다.
"아넘니다. 신입사원 환영식 때‥‥‥‥
엉거주춤 선 자세로 잔을 받으면서 고영무가 대답하자 이태규는 머
리를 끄덕였다.
"그렇군. 자, 어서 마시고 잔은 이쪽으로 돌려, 자네 입사동기한테."
그가 턱으로 가리킨 것은 이자영이었다. 이자영이 젓가락으로 고기
를 뒤적거리다가 그 말을 들었는지 이태규를 향해 웃음을 띄워 보였다.
"과장님, 잔이 적습니다. 조금 큰 걸로."
「그러자 주위 사람들이 그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모두 웃는 얼굴이
었다.
"뭐? 큰 걸로? 하하, 알았어 "
잔이 자신에게 돌아을 것이 아니므로 이태규는호탕하게 웃었다. 그
는 엽차잔을 들었다가 힐끗 고영무의 위아래를 바라보았다.
"자네 체격에 맞는 걸로 주지."
이태규는 동치미가 담긴 사기그릇을 들어 올리더니 동치미를 옆의
대접에 쏟아부었다.
"이봐, 술병 . "
그러자 누군가가 금방 뚜껑을 깐 소주병을 그의 손에 쥐어 주었다.
주위에서 킥킥거리며 웃는 소리가 들렀고 여직원 두어 명은 짧게 놀라
는 소리를 내었으나 만류하는 사람은 없었다 동치미 그릇에 소주 한
병이 다 담겼다
"자, 여기 큰 걸로."
이태규가 잔을 내밀며 말했다.
"괜찰겠나?"
잔을 받으려고 허리를 숙이자 그에게 이태규가 살짝 물었다. 고영무
는 여기서 포기하면 직원들은 물론이려니와 이태규도 자신을 실없는
놈으로 취급할 것이라는 것을 알핀 있었다. 마셔도 마찬가지이다.
'그자식 술이 세더라' 하고는 그만이지 인사고과에 주량에 대한 난
은 없다. 만일 내일 지각이라도 했다면 그때는 술을 못 마시는 사람보
다도 인기나 평가가 떨어진다.
직원들은 모두조용히 있었다. 최소한 고영무가 벌컥이며 한 대접의
소주를 깨끗이 비울 때까지 그들은 흥미있게 지켜봐 주었다. 잔을 입
에서 떼자 남자직원 서너 명이 손벽을 쳤다.
"허어, 대단하군. 끄떡없구만 그래."
이태규는 감탄한 얼굴이었다.
"잔을 돌릴까요, 과장넘?"
눈을 껌벅이며 고영무가 묻자 이태규는 커다람게 머리를 끄덕였다.
"그럼, 그래 야지, 잔을 돌려 ."
소주 서너 잔에 이태규의 얼굴은 붉게 물이 들어 있었다. 그는 모처
럼 흥이 난 것같이 보였다. 고영무는 동치미 그릇에·다시 소주를 가득
채웠다.
그가 서 있는 바로 옆 쪽에는 이자영이 앉아 있었는데 그녀의 상반
신이 긴장하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직원들은 다시 이야기를 주고받거나 웃는 소리를 내었으나 그들의
신경이 온통 이쪽으로 쓸려 있다는 것은 고영무가 술잔을 앞으로 내밀
자 갑자기 고요해진 것으로 증명이 되었다.
이자영의 상반신이 돌처럼 굳어졌다.
"저 과장넘, 이 거 안되겠는데요."
술잔을를 고영무가 갑자기 말했으므로 이태규가 대뜸 물었다.
"아니, 무엇이? 왜?"
"여자에게 이것을 마시게 할 수는 없습니다. 너무 무리입니다. "
이자영이 머리를 들어 고영무를 올려다보았다. 눈살을 찌푸린 냉랭
한 얼굴이었다.
"그래서 제가 이놈을 마저 마셔 버리면 어떻겠습니까?이자영씨 대
신."
"그래, 마저 마셔!"
그렇게 저쪽에서 대답한 것은 양기식 대리였다.
"과연 남자다, 고영무씨."
"무슨 소리, 이자영씨 의견을 들어 보지도 않고서는 웬."
반박해 나선 것은 조정수 대리이다.
직원들은 갑자기 두 무리로 나뉘어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대체적으
로 조정수 대리의 그룹은 이자영이 마시든지 어쩌든지 의사표현을 해
야 한다는주장이고 양기식 대리 그룹은 고영무가 제멋대로 동치미 그
릇의 술을 마셨으니 제가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만! "
이태규의 일갈에 좌중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눈을 부릅뜨고 좌중
을 출어보던 이태규의 눈길이 이자영한테서 범쳤다.
"이자영써, 마실거야?"
고요해진 방안에 그의 말소리가 울렸다.
"싫어요."
밝은 목소리로 그녀가 금방 대답했다. 고영무한테는 보이지 않았지
만 아마도 옷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럼 자네가 마셔."
이태규가 머리를 들고 엄숙하게 말하자 고영무가 머리를 끄덕였다.
"역시 여자한테는 무리라니깐요."
벌컥이며 한 대접의 술을 마신 고영무는 이태규에게 머리를 숙여 보
이고는 끝자리로 돌아왔다.
"이런 우둔한 친구."
조정수가 그를 향해 눈을 흘겼으나 얼굴은 웃고 있었다.
밤 열시가 조금 지났으나 택시 정류장은 한산했다. 부부로 보이는
중년의 남녀가 서 있을 뿐이었다. 이자영은 정류장에서 걸음을 멈추고
는 몸을 돌렸다.
"이봐, 나한테 할 이야기가 있어?"
목소리가 조금 켰던 모양으로 부부가 이쪽으로 머리를 돌렸다.
"저쪽서 10분만 이야기를 하자."
고영무가 인도 안쪽의 빌딩을 턱으로 가리켰다. 석터가 내려진 은행
의 입구가 보였다.
"난 너한테 들을 이야기도, 할 이야기도 없어. 돌아가."
고영무가 잠자코 그녀를 바라보았다.
중년 부부가 서로 얼굴을 마주보더니 제각기 머리를 돌렸다.
"그리고 마침 이런 기회가 와서 한마디만 해주겠는데‥‥‥‥
힐끗 중년 부부를 바라본 이자영의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
"그날밤의 일로 난 구애받지 않아,그러니까 그 일,염두에 둘 필요
가 없다는 이야기야."
"난 너 같은 쓰레기하고는 다른 사람이야. 네가 생각하는 것과는 차
원이 다른 사람이라니까."
빈 택시가 다가와'중년 부부를 실었다. 남자 쪽이 아쉬운 듯 이쪽을
바라보고는 차에 올랐고 이내 정류장엔 두 사람만 남게 되었다.
"야, 섹스가 너한테는 무기인 모양이더라. 애들이 물총을 쏘는 것처
럼."
이자영이 큰컵의 소주는 마시지 않았지만 시나브로 마신 술이 한병
은 넘었을 것이다. 그녀의 입에서 단내가 풍겨왔다.
"더러운 놈, 네 열등의식이 그짓으로 해소가 되든?"
"난 이제까지 한번도 남한테 무시당한 적이 없었어."
고영무의 차분한 말소리가 오히려 그녀를 더욱 자극시킨 것 같았다.
아랫입술을 깨문 이자영이 고영무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나도 한가지 너한테 알려줄 것이 있는데, 그건 내가 마음 먹
은 것은 꼭 이루었다는 것이다. "
이자영의 눈이 조금 가늘어졌는데 입술을 깨물고 있는 것과 함께 보
면 비웃는 표정이다.
"그리고 난 조금도 열등의식을 느끼고 있지 않아. 네가 착각한거
야. "
"미친 놈, 평가는 네가 하는 것이 아니야. 잘 알면서 그래 ,"
"난 너 같은 계집이 질색이야. 오만하고 분수를 모르는 너 같은
"난 너보다 나아. 개같이 아무데나 물총을 딘지도 않고."
이자영은 머리를 틀고는 다가오는 차량들을 바라보았다. 아직 빈 택
시는 보이지 않는다.
"내가 너한테 반말하는 것이 불쾌하다는 네 유치한 생각은 여자가
남자의 종속물이라는 사고방식이야. 지나가는 강아지가 웃겠다. "
그녀가 다시 말했다.
"난 너하고 독같은 문제를 풀고 회사에 들어왔어 성적도 너보다 월
등하게 높고. 그리고 조직생활에서도 너보다 더 인정을 받았지."
"넌 이것저것 딴말을 하지만네가내세울 것은 힘뿐이야.무식한 힘,
소나 돼지를 잡을 때 쓰는 힘 같은."
"그래, 그렇게 하고 나니까 성취감을 느됐어? 너 혼자 말이야."
하얀 이를 드러내며 이자영이 웃었다.
"기를 써도 안될거야, 너같은 놈은. 나는 이미 평가받았고 그리고 곧
너도 평가를 받겠지, 개척요원으로 발령받을 때."
머리를 끄덕이며 고영무가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난내 앞에 닥쳐온 일을 피해 본 적이 한번도 없어.네 말대로 무식
하게 부및쳐 나갔었다. "
이제 더이상 듣기도 싫다는 듯이 이자영이 목을 뽑아 차도를 바라보
았다.
"잔재주를 부리지 않았고, 그리고 한번도 누구를 이용하거나 배신해
본 적이 없었다. "
이자영이 어깨를 한번 움절 올렸다.
"난 네가 동료이기 이전에 여자로 보았던 잘못을 저질렀어. 이것이
문제의 시작이야."
"그래서 나중에는 억지로 네 여자를 확인한 것이었는데."
"망할 자식!"
이자영이 손을 휘둘러 고영무의 양을 때렸으나 고영무가 머리를 젖
히는 바람에 렷손질을 했다. 그러자 그녀는 발을 들어 고영무의 정강
이를 참다.
그러나 그것도 고영무가 다리를 옆으로 틀자 구두의 됫굽이 고영무
의 종아리에 걸려 벗겨져 버렸다.
"이 개새끼"
이자영이 악을 쓰자 노란불을 켠 택시가 다가와 멈추었다.
운전사가 목을 빼어 이쪽을 바라보았다. 고영무는 그녀의 수족에 신
경을 쓰면서 차도로 굴러 털어진 구두 한짝을 주워들었다.
"결국은 너도 폭력을 쓰는구만 그래. 비록 헛발질을 하였지만. "
발 한쪽을 맨발로 기우뚱하게 서 있는 그녀를 바라보며 고영무가 웃
었다.
이 시점에서 나을 것은 욕밖에 없었으므로 이자영이 이를 악물고 참
는 것이 보였다. 고영무는 택시의 문을 열고 들고 있던 구두 한짝을 안
으로 던쳐 넣었다. 그리고는 그녀를 향해 머리를 끄덕여 보이고는 몸
을 돌렀다.
오후 여섯시가 지나 있었으나 아직도 햇살의 잔영이 남아 있었다.
승용차에서 내린 유장수 사장은 잠깐 이맛살을 찌푸리고는 아파트의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는 아파트를 싫어하는 성격이었다.
차에서 따라 내린 운전사가 그의 눈치를 살피면서 서 있었다.
"열두시에 다시 와. "
운전사인 김시구는 머리를 끄덕이고 다시 차에 을랐다.
아파트의 현관으로 향하던 유장수는 문득 머리를 들었다. 6층의 베
란다에 서 있는 홍성희가 보였다. 횐색의 원피스를 입고 서 있었으므
로 금방 눈에 띈 것이다. 흰색은 그가 좋아하는 색깔이었다. 그가 온다
는 연락을 받고 옷을 갈아입었을 것이다.
현관에 들어서자 경비가 장군을 만난 위관급 장교처럼 경례를 올려
붙였다. 머리를 끄덕인 유장수는 엘리 베이터에 올랐다.
"CF 촬영하러 싱가폴에 가자고 하는데 가도 괜찰아요?"
홍성희가 주스잔을 그의 앞에 내려놓으며 물었다. 얼굴에는 화장기
가 보이지 않았으나 미끈하게 윤기가 흘렀다.
크고 눈꼬리가 약간 치켜올라간 듯한 눈과 도톰한 입술의 그녀는 지
금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모델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2년 전만
해도 홍성희는 청산 나이트에서 솔로춤을 추는 이름없는 삼류 무용수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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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항상 감사
감사. ^^
재미~~~~~~~
감사합니다
잘 보고갑니다
잘 보고갑니다
ㅈ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