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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무림맹으로
마대위와 쌍칼 등은 북궁가를 떠나 다시 호남성 무림맹으로 향했다.
그곳까지는 가까운 길은 아니었지만 곳곳에 산재한 마교의 비밀분타와 조력자들의 도움으로 여행은 다소 편했다.
동시에 천하의 정세에 대해 마교의 정보망을 이용하여 상세히 파악할 수 있었는데,
그야말로 옛날 제령에서 푸줏간을 하던 장씨가 지금 뭘 하고 있는지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가히 개방에 버금가는 대단한 정보력이라 아니할 수 없다.
마대위가 파악한 당금 천하의 정세는 이러했다.
우선 가장 놀라만한 소식은 천외패황궁에 의한 하북팽가의 멸문이었다.
패황 연무종의 둘째 아들인 구전공자 연호비의 죽음에 대한 분노가 가장 먼저 들이닥친 곳이 바로 그곳이었다.
당시 패황궁의 주력인 패천단은 하북팽가로 물밀 듯이 밀려들어가 부녀자들은 말할 것도 없이 개, 돼지 한 마리 남겨두지 않고 몰살시켰다고 한다.
당시의 싸움이 얼마나 참혹했던지, 천외패황궁의 패천단 오백 정예무사들 중 삼분지 이가 그곳에서 뼈를 묻었다고 한다.
패천단이라면 천외패황궁에서도 최고에 속하는 조직으로서, 소림이나 무당과 겨루어도 지지 않는다는 평판을 얻고 있다.
그런데 그들 중 삼분지 이가 죽었다는 사실은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마대위에게 소식을 전해준 마교의 제자는 이 점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이번 천외패황궁의 팽가 공략에는 다소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비록 구전서생 연호비의 죽음으로 그들의 분노가 컸다고는 하더라도
패천단이 무공도 할 줄 모르는 부녀자들까지 사그리 죽일 만큼 이성을 잃었다는 건 믿기 어려운 일입니다.
아마도 여기에는 몇 가지 예외적인 상황들이 개입되었으리라 생각되어집니다.”
마대위가 그 예외적인 상황이 뭔지에 대해 자세히 묻자 그가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사실 아무리 압도적인 힘의 우위에 있더라도 공성(攻城)에는 어느 정도의 희생이 따르는 법입니다.
따라서 그 희생을 최소화하기 위해 적절한 전략이 필요하고, 그에 따라 차근차근 성을 공략해 나가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번 패천단의 팽가 공략을 보면 모든 걸 무시하고 그냥 밀고 들어갔다는 게 맞을 겁니다.
분명히 단주가 그렇게 하라고 명령을 했으니 그런 것이겠지요. 하지만 패천단주라면 소림이나 무당의 장문인도 부럽지 않은 자리인데,
그런 자리에 앉아있는 사람이 전략의 기본도 모르는 병신이라는 건 더더욱 말이 되지 않습니다.
이 점이 아무래도 이해가 되지 않아 저희들은 총력을 다 해 당시의 상황을 파악했죠.
결국 중요한 정보원 둘을 잃은 후에야 그 연유를 알게 되었는데,
바로 장로원에 나온 노고수 한 명이 원인이었습니다. 그의 신분을 밝히지는 못했지만
그 노고수는 구전서생 연호비를 마치 친아들처럼 생각해 정이 무척 깊었답니다.
그래서 진천단주의 말을 묵살한 채 이성을 잃고 진격을 명했던 것이지요.
아마도 진천단주도 그의 명을 따를 수 없었던 점으로 미루어 신분이 무척 대단한 모양입니다.”
결국 이 일을 계기로 분노한 소림의 백팔나한들이 천외패황궁과 정면으로 충돌하였고, 상호 엄청난 희생이 발생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천외패황궁과 무림맹의 충돌뿐만 아니라 또 다른 싸움이 감숙성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바로 마대위도 익히 알고 있는 혈사방이 문제였던 것이다.
혈사방은 점차 세력을 넓혀나가 마침내 공동파와 정면으로 충돌하고 말았다.
공동파는 구파일방의 하나로 정파를 떠받치는 큰 기둥이니 만큼 그 힘도 막강하다.
따라서 대부분의 무림인들은 최근 갑자기 맹위를 떨치는 혈사방보다는 수백 년의 세월을 견디며
구파일방의 하나로 우뚝 서 있는 공동파가 다소 강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예상은 여지없이 빗나갔다. 공동산 아래 넓은 평원에서 대치한 두 문파는
처음 몇 차례의 비무로서 승패를 가름하기로 약속했지만 혈사방의 갑작스러운 도발로 전면전이 벌어졌던 것이다.
결국 대복마진이 깨어짐으로서 공동파는 일패도지(一敗塗地)하였고, 공동산으로 쫓기듯 도망치고 말았다.
다행히 혈사방은 공동산까지 오르지는 않았기에 더 이상의 참사는 발생하지 않았다.
공동파를 물리친 혈사방은 명실 공히 감숙성의 패권을 차지하게 되었지만,
더 이상 세력 확장은 하지 않고 거기서 멈추었기에 아직 정파의 연수 합공은 받지 않고 있는 상태였다.
아마도 혈사방이 더욱 적극적인 도발을 해오지 않는다면 정파는 천외패황궁과의 분쟁에 총력을 기울일 것이다.
따라서 혈사방을 몰아내는 일은 공동파가 힘을 키워 알아서 하던지, 아니면 천외패황궁과의 분쟁이 모두 종식된 이후로 미루어질 것이 분명했다.
마대위는 공동파가 크게 패했다는 말을 듣자 북궁웅비가 생각나 그에 대해서도 물어보았다.
그에 대해 마교의 제자는 자세한 것을 알지는 못했지만 무림맹에서 나온 것으로 보이는 청년 검수의 활약이 매우 컸다는 것과
그가 부상을 당하기는 했지만 무사히 공동파로 돌아갔다는 사실을 확인해 주었다.
마대위는 그가 분명히 북궁웅비라 생각했고, 공동파 내에 있는 한 무사하리라 생각했다.
어쨌든 마대위는 이처럼 무림정세에 대해 계속적으로 정보를 얻어가며 호남성 용원에 다다랐다.
무림맹의 고루전각들이 멀리서 보일 무렵, 십여 명의 무사들이 갑자기 나타나 마대위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들은 모두 무림맹의 무사들로 원래는 맹의 정문을 통과하려는 사람들에 한해 신분을 조사해왔지만,
천외패황궁과의 상황이 급박하니 용원에 들어선 사람들 모두를 철저히 살피고 있었던 것이다.
마대위는 그들에게 다짜고짜 맹주를 만나러 왔다고 하면 미친놈 소리를 듣기 십상인지라 우성 홍소미부터 찾았다.
하지만 홍소미의 신분도 범상치 않을뿐더러 마대위가 그녀와 친분이 있고,
중요한 일로 만나고자 한다는 말을 무림맹의 무사들이 제대로 믿을 리가 없었다.
더구나 쌍칼 등의 얼굴을 보면 결코 믿음이 가는 인상이 아니었다.
결국 무림맹 무사들은 마대위와 쌍칼등의 병장기를 회수한 후, 무림맹까지 동행하여 천비각의 확인을 받기로 했고,
마대위등도 이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병장기를 남에게 맡긴다는 게 좋을 리는 없었지만, 중
요한 일을 앞둔 상태에서 사소한 감정 때문에 망칠 수는 더더욱 없었던 것이다.
잠시 후, 일행들은 모두 무림맹의 정문 앞에 도착했고, 정문을 지키던 무사들이 마대위와 쌍칼등을 인계받았다.
그들은 마대위와 함께 왔던 무사들로부터 사정을 듣고는 즉시 천비각으로 사람을 보냈다.
그러자 곧이어 누군가 번개처럼 달려왔는데, 바로 홍소미였다.
“마소협!”
“아, 홍소저!”
이 모습을 본 무림맹 무사들은 마대위의 말이 사실임을 깨닫고 조용히 물러갔다.
홍소미는 마대위의 코앞까지 다가와 그를 이리저리 살펴보았는데,
남녀간인지라 다소 이상하게 보일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홍소미는 주위를 전혀 상관치 않은 채 마대위의 안위를 묻기에 바빴다.
“마소협! 도대체 그동안 어디에 계셨던 거예요? 몸은 어때요? 혹시 마교에 잡혀가 고문을 당하지는 않았나요?”
정신없이 쏟아지는 질문에 마대위는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아 얼떨떨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쌍칼 등은 홍소미의 얼굴만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을 따름이었다.
마대위가 갑자기 우수를 휘휘 내저으며 홍소미의 말을 끊었다.
“홍소저, 잠깐! 그보다 소림사의 그 스님은 무사하시오?”
“어머, 이런! 계속 질문만 했군요. 마소협 덕분에 공성대사와 특사단 일행들은 모두 무사해요. 하지만 정말 놀라운 일이었어요.
천하에 그 악명이 자자한 마교의 오흑마들의 도움을 받을 줄은…….”
“어쨌든 모두 무사하니 다행이오. 그건 그렇고 중요한 일이 있어서 이곳에 왔는데…….”
마대위가 말끝을 흐리자 홍소미는 아 하는 표정을 지었다.
“내 정신 좀 봐……. 마소협. 어서 이쪽으로 오세요.”
홍소미는 마대위와 쌍칼등을 데리고 즉시 무림맹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마대위는 길을 가면서 홍소미에게 쌍칼등을 하나하나 소개해 주었는데,
홍소미는 그들이 모두 자신을 누님이라 부르자 무척 당황스러워 했다.
하지만 홍소미는 친구의 동생은 동생이라는 간단한 건달들의 논리가 싫지만은 않은 듯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무림맹의 내부는 꽤 넓어서 마대위가 쌍칼 등 동생들을 거둔 경위와 그들의 출신내력까지도 간단히 설명해 주고서야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마대위와 쌍칼등은 창문 하나 제대로 나있지 않아 마치 감옥처럼 생긴 기괴한 건물의 모습에 그만 압도되고 말았다.
거대한 탑 모양의 이 건물은 천하 어디를 가더라도 볼 수 있는 모양이 아니었던 것이다.
마대위는 건물의 크기에 비해 지나치게 작아 보이는 문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아마도 여기가 천비각(天秘閣)인 모양이군. 그러고 보니 나도 한때 이곳 소속이었지.”
그가 무림맹의 특사단 일행이 되어 제령으로 찾아갈 당시 잠시나마 홍소미의 수하 노릇까지 했으니 그 이름이 전혀 낯설지만은 않았다.
홍소미는 마대위와 쌍칼등을 데리고 지체하지 않고 천비각 안으로 들어갔다.
천비각 안에는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복도나 방의 구조가 무척 복잡해 보였다.
각기 작은 칸막이로 막힌 작은 공간에서, 책상위에 쌓인 산더미 같은 서류들 앞에서 부지런히 일을 하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진지하기 이를 데 없었다.
좁은 복도를 따라 홍소미 뒤를 따라가던 마대위등은 건물 중앙부분을 관통하는 나선형의 계단 앞에서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 계단은 굵은 통나무를 축으로 빙글빙글 돌아가며 나 있었는데, 건물 꼭대기까지 뻗어 있는 듯 그 끝이 보이지 않았다.
이런 모양의 계단은 생전 처음 보는 것이라 마대위와 쌍칼등은 무척 신기해하며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홍소미는 마대위와 쌍칼등이 정신없이 주위를 둘러보는 모습을 보고는 미소를 지었다.
“마소협. 이쪽이에요.”
“아, 알겠소.”
홍소미는 손으로 입을 가리며 가볍게 웃은 후, 나선형의 계단을 따라 아래로 내려갔다. 마대위와 쌍칼 등도 즉시 그녀를 따라갔다.
‘음. 정말 깊은데!’
마대위는 한참을 내려와도 계속 땅 아래쪽으로 뻗어있는 계단의 깊이에 놀라움을 금하지 못했다.
적어도 삼층 높이 이상은 족히 내려온 것 같았지만 나선형의 계단은 여전히 끝나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오장 정도의 깊이를 더 내려오자 마침내 바닥이 보이는 곳까지 내려올 수 있었다.
쌍칼등은 지하에 펼쳐진 엄청난 광경에 입을 딱 벌렸다.
“아! 엄청나군!”
“혀, 형님. 이런 곳은 처음 봅니다.”
“정말 사람이 이걸 다 파서 만들었단 말입니까?”
그곳에는 엄청나게 넓은 지하광장이 있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칸막이로 나누어진 좁은 공간에서 무언가를 부지런히 읽거나 쓰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한쪽에는 넓은 대전이 있었는데 벽에는 중원 전체의 지도가 걸려있고, 그 앞에 사람들이 앉아 일을 보고 있었다.
마대위는 이곳이 아마도 천비각의 가장 핵심이 되는 곳이리라 생각했다.
때마침 홍소미가 마대위의 짐작이 맞음을 확인해 주었다.
“이곳이 바로 천비각의 핵심이죠. 위층에서 수집된 정보가 이곳에서 분석되어 맹의 수뇌부와 천하 각지로 흘러가는 거예요.”
“음. 과연 대단하군. 그나저나 홍소저, 대단한데! 이런 엄청난 곳의 부각주라니 말이요.”
홍소미가 빙긋 웃었다.
“호호, 뭐 제가 잘나서인가요? 제 뒤에 개방이 있기 때문이죠.”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개방이라는 배경 때문에 부각주가 되었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는
홍소미의 모습에서는 전혀 부끄러움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순간 마대위는 홍소미 또한 자신의, 혹은 개방의 필요에 의해서 무림맹에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좋게 말하자면 공생하는 것이요 나쁘게 보자면 서로 이용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무림맹과 개방 사이에는 알게 모르게 각자의 이익을 위해 얼마나 치열한 암투와 계략의 대결이 있겠는가.
생각이 여기까지 미친 마대위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웬만한 머리로는 이처럼 큰 조직에서 출세한다는 게 하늘에서 별을 따는 것보다 어려우리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결국 무공이 강하다는 것보다 빠른 출셋길은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자신만 보더라도 간신히 글을 깨우친 정도에다 머리 쓰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게다가 성격도 남부럽지 않게 더럽지만 엄연히 대마교의 잠마대주가 되지 않았는가.
‘역시 건달이라면 싸움을 잘해야 하고, 학자라면 학식이 깊어야 해. 그리고 무인은 무조건 무공이 강하고 볼 일이야.
머리 쓰는 거나 세력 모으는 거야 그쪽 방면에 재주 있는 놈에게 맡기면 될게 아닌가.’
그때 홍소미이 목소리가 들렸다.
“마소협. 이쪽으로 오세요.”
홍소미는 지하광장을 가로질러 가장자리로 갔는데 그곳에는 제법 큰 방이 하나 있었다.
호위무사 두 명이 문을 지키고 있는 것으로 보아 제법 중요한 인물이 머무는 곳인 듯 했다.
홍소미가 마대위와 쌍칼등에게 말했다.
“안에는 각주님이 계세요. 성함은 동방백, 그리고 별호는 소염옹(小鹽翁)이라고 해요.
본맹의 대내외적인 전략의 칠할은 그분의 머리에서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문앞의 호위무사들은 홍소미를 보자 깍듯이 인사를 했다.
홍소미가 고개를 살짝 끄덕인 후 말했다.
“각주님께서는 안에 계시나?”
“예, 부각주님.”
호위무사들은 홍소미 뒤에 있는 마대위와 쌍칼등을 스윽 둘러본 후 다시 홍소미에게 시선을 돌렸다.
“각주님을 뵙고 할 말이 있다.”
“알겠습니다.”
호위무사들이 한쪽으로 비켜서자, 홍소미는 지체 없이 문을 열고 들어갔다. 마대위아 쌍칼등도 그녀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각주님!”
홍소미가 깍듯이 고개를 숙여 인사를 올리는 방향에는 마치 막 밭에 김을 매다가 온 사람처럼 허름한 마의를 입은 중년인이 있었다.
게다가 방 안의 가구라고는 길죽한 책상하나와 줄지어 놓여있는 의자밖에 없으니
그가 왜 소염옹이라는 별호를 가지고 있는지 쉽게 알 수 있었다. 무림맹의 대군사라는 사람치고는 너무나도 소박한 모습이 아닌가.
홍소미가 소염옹 동방백에게 다가가 마대위와 일행들을 소개했다. 그녀는 우선 쌍칼부터 왕곰에 이르기까지 출신내역 등을
마대위에게 들은 그대로 상세하게 이야기했다. 사강룡이야 그렇다 쳐도 건달들의 별 볼일 없는 내력까지도 그녀는 상세하게 보고했는데
다소 긴 시간이 소요되었음에도 동방백은 꼼짝도 하지 않고 조용히 경청하고만 있었다.
마대위는 아우들의 내력 소개 따위는 차차 이야기를 해도 될 것인데 왜 굳이 처음부터 시간을 들여 그렇게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건 특정 사건이나 상황에 대한 정보를 보고할 때, 세심함을 생명으로 하는 천비각 조직의 특성 때문이었다.
잠시 후, 홍소미의 보고가 끝나자 동방백은 마대위 등에게 자리를 권했다.
“자, 모두들 앉으시게. 나는 천비각을 이끌고 있는 동방백이라 하네.”
그가 가볍게 포권을 하며 자신을 소개하자 마대위와 쌍칼등도 일제히 포권을 했다.
소염옹 동방백은 마대위를 향해 입을 열었다.
“자네에 대한 이야기는 익히 알고 있네. 그래 공성대사님을 비롯한 특사단 일행들을 모두 구해주었다니 정말 고맙네. 헌데…….”
그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뭔가 이해하기 어렵다는 듯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마교의 혈마존이 그 자리에 나타났다는 것도 놀랍지만, 어떻게 자네가 그의 마음을 움직여 오흑마로 하여금
특사단 일행들을 구하게 할 수 있었는지 알 수가 없군. 혹시 여기에 대해서 말해줄 수 있겠는가?”
그의 말에 홍소미도 깊은 관심이 있는지 마대위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하지만 마대위로서는 금마동 오마왕의 이야기까지 연결되는 부분이라 도저히 사실대로 밝힐 수가 없었다.
더구나 암중세력의 첩자들이 천하 각개문파에 깊숙이 숨어있는 상황에서 어찌 함부로 떠벌릴 수 있겠는가. 소염옹 동방백이 바로 간자일수도 있는 상황이니 말이다.
“우연히 익힌 무공이 하나 있는데 그걸 알아본 모양이오. 마침 그 무공의 주인과 개인적인 인연이 있어 날 구해주었던 게요.”
“마교의 마존과 인연이 닿아있는 무공이라…, 무척 공교로운 일이군.”
“뭐, 그렇다고 볼 수도 있겠지.”
마대위는 그냥 어깨를 한번 으쓱 하며 입을 다물었다. 더 이상 할말이 없다는 모습이다.
소염옹 동방백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뭔가 중요한 일이 있어서라고 들었는데, 지금 말한 그게 다인가?”
마대위가 홍소미와 동방백을 잠시 바라보더니 다소 겸연쩍어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솔직히 홍소저와 각주를 만나고자 한 건 맹주께 직접 할 말이 있어서요.”
“맹주님을 직접 뵙겠다고?”
“그렇소.”
동방백은 마대위의 두 눈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마치 마대위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려는 듯 하다.
그때 홍소미가 나섰다.
“각주님. 저와 개방이 보증을 하겠습니다. 마소협이 맹주님을 뵙도록 해 주세요.”
홍소미가 이렇게까지 이야기하니 동방백으로서도 마대위를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의심스러운 구석이 많은데. 어찌 부각주는 개방의 이름까지 걸고 보증을 하겠다는 건가.’
그가 홍소미에게 다소 책망 섞인 눈길을 보냈다. 하지만 그녀의 의지가 굳은 것을 보고는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좋네. 그럼 함께 가도록 하지. 하지만 이들은…….”
그가 쌍칼 등 마대위의 아우들을 바라보며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쌍칼 등이 안색을 굳히며 마대위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마대위는 그들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동방백에게 말했다.
“좋소. 나 혼자 가겠소.”
쌍칼이 소리쳤다.
“형님! 저희들도 같이 가겠습니다.”
“아니다. 너희들은 그냥 술이나 한잔 마시면서 기다리고 있어라. 그래도 명색이 무림맹주이신데 우르르 몰려가는 것도 예의가 아니다.”
마대위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동방백에게 다시 말했다.
“어서 갑시다.”
동방백은 수하 한명을 불러 쌍칼등이 쉴 수 있는 곳으로 안내하라고 명령했다. 그리고는 홍소미와 함께 마대위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 이들은 맹주전 앞에 도착했다.
마대위는 맹주전의 아름다움에 입을 딱 벌렸다. 평소 그림이나 건축물 등의 미적인 아름다움에는 아예 관심조차 없었을 뿐더러,
돈이 남아도는 부자 놈들이 헛짓을 한다고 성토했던 그였지만, 맹주전 만큼은 평소 이런 그의 생각을 깨끗이 사라지게 할 만큼 훌륭했던 것이다.
마대위가 감탄하며 중얼거렸다.
“정말 대단하구먼……. 완전히 선계의 신선들이 사는 궁도 이것보다는 못하겠어.”
소염옹 동방백은 마대위와 홍소미를 남겨둔 채 먼저 맹주전 안으로 들어갔다. 아마도 맹주에게 보고를 하고 허락을 얻기 위함이리라.
마대위가 홍소미를 슬쩍 보더니 어렵게 입을 열었다.
“홍소저.”
“네, 마소협.”
“홍소저를 믿지 못해 그런 건 아니오. 단지 무림맹주에게 직접 해야 할 말이라…….”
마대위가 다소 곤란한 모습을 보이자 홍소미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괜찮아요, 마소협. 저도 마소협을 믿어요. 그리고 때가 되면 저에게도 모든걸 말씀해 주시겠죠.”
“이해해줘서 고맙소.”
잠시의 침묵이 흐른 후 마대위가 아차 하는 표정으로 홍소미에게 물었다.
“아, 홍소저. 그런데 웅비 말이오.”
“네. 북궁소협은 지금 공동파에 있어요.”
“나도 소식은 들었소. 혈사방 놈들이랑 대판 싸우다가 다쳤다고 하던데…….”
홍소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하지만 크게 걱정할 정도는 아니에요. 지금 혈사방도들의 포위 속에 공동파 전체가 고립되어 있어 나올 수는 없는 형편이에요.”
마대위가 다소 걱정스럽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나도 혈사방도들과 싸워보긴 했지만 그 정도로 쎈놈들 같지는 않았는데……. 마음에 걸리는 게 하나 있다면 검은 안개같은 기운에
둘러싸인 놈과 싸웠을 때요. 무공의 고하를 떠나 지독한 마기를 느꼈거든. 웬만한 놈들 같으면 아예 기가 질려서 무공을 제대로 펼치지도 못했을 거요.”
홍소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공동파가 패한 것도 그 마공때문이에요. 혈사방도들은 당시 하나같이 무시무시한 마기를 흘렸는데 그 기운에 접하게 되면
저도 모르게 두려움이 일어 실력을 다 발휘할 수 없었다고 해요. 본각에서 총력을 다해 정보를 모아 보았지만 그 마공의 내역을
파악할 수가 없었어요. 마치 어둠 속에 숨어 있다가 불쑥 튀어나온 것 같아요.”
“분명히 뭔가가 있어. 뭔가가…….”
홍소미는 턱을 만지작거리며 중얼거리듯 말하는 마대위의 모습을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때, 먼저 안으로 들어갔던 소염옹 동방백이 다시 나왔다.
“들어가세. 맹주님께서 자넬 만나보시겠다는군.”
“알겠소.”
마대위는 즉시 동방백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홍소미는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동방백은 마대위를 이끌고 대전 안으로 들어갔는데, 바로 무림맹 최고의 수뇌부와 맹주가 업무를 보는 천룡전이다.
천룡전 안에는 이미 몇 명의 사내들이 앉아 있었는데 무림맹의 수뇌부들이 분명해 보였다.
소염옹 동방백이 가장 상석에 앉아있는 단아한 모습의 노인을 조심스럽게 가리키며 마대위에게 말했다.
“맹주시네. 인사 올리게.”
마대위가 포권을 하며 말했다.
“안녕하시오. 마대위요.”
순간 맹주 좌우에 앉아있던 장년인들의 안색이 일제히 굳어졌다. 천하제일인에 대한 예의로서는 너무도 무례한 말투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맹주인 무제 사도헌은 별로 개의치 않는 듯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도헌이라 하네. 부족하나마 맹주직을 맡도 있지.”
소염옹 동방백이 사도헌 주위에 앉아 있는 수뇌부들을 한명씩 가리키며 소개했다.
“여기계신 분은 청룡각주이신 검절신군 공화룡이네.”
마대위가 그를 향해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시오.”
검절신군 공화룡은 다소 언짢은 표정으로 고개만 미미하게 끄덕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동방백은 그 외에도 잠룡각주, 무영각주등, 수뇌부들을 소개해 주었다.
수뇌부들에 대한 소개가 대충 끝나자 마대위는 무제 사도헌의 맞은편에 앉았다.
사도헌이 먼저 입을 열었다.
“자네에 대해서는 많이 들었네. 우선 공성대사를 비롯한 특사단을 구해주어 무척 고맙게 생각하네.”
마대위가 고개를 살짝 가로저었다.
“솔직히 내가 구한 건 아니니, 그 인사는 마교의 혈마존에게 하는 게 맞을 듯 싶소.”
무림맹주더러 마교의 인물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라는 말은, 어떠한 경우라 할지라도 유쾌하게 들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무제 사도헌의 얼굴에 분노의 기색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허허허, 그 말이 옳을 듯 하이. 그럴 기회가 있기만 한다면 내 당장이라도 달려갈 용의가 있네.”
그의 말에 마대위가 이채를 띠며 물었다.
“정말이오? 정파의 최고봉께서 마교의 인물을 만나겠다는 거요?”
“왜, 자네가 다리라도 한번 놓아주려는가?”
마대위는 맹주의 말이 농담에 가깝다는 것은 알았지만 외부인인 자신이 있는 자리에서 한 말이니만큼 진의(眞意)가 전혀 없다고 볼 수는 없었다.
마대위가 짐짓 감탄이라도 했다는 탄성을 터뜨리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캬! 역시 맹주시오. 역시 배포가 보통사람들 하고는 비교할 수가 없구먼!”
그의 과장된 몸짓에 무제 사도헌은 내심 실소를 금치 못했다. 하지만 전혀 내색을 하지 않은 채, 다소 진지하게 표정을 바꾸었다.
“그래. 노부에게 할 말이 있다고 들었네만…?”
마대위도 안색을 진지하게 바꾸었다.
“그렇소.”
“할 말이 뭔가?”
“맹주께만 하겠소.”
마대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무림맹 수뇌들의 얼굴에 노기가 떠올랐다.
“도대체 그게 무슨 소리냐?”
“어디서 굴러먹던 지도 모르던 자가 감히 맹주께 독대를 청하다니!”
모두들 마대위를 향해 강한 거부감을 표시했고, 심지어 그를 여기까지 데려온 소염옹 동방백조차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마대위는 이들의 반응에 전혀 개의치 않고 무제 사도헌을 향해 슬쩍 전음을 날렸다.
[나는 마교 천마존의 전령이오.]
순간 사도헌의 얼굴에 흠칫하는 기색이 떠올랐으나 이는 나타날 때보다 더욱 빨리 사라졌다.
누군가 옆에 있었더라도 사도헌의 감정 변화를 눈치채지 못했을 정도였다.
무제 사도헌은 무표정한 얼굴로 마대위를 바라보았으나 내심은 그렇지 않았다.
사실 과거 무림 전체의 안위가 걸린 문제가 발생하면 마교와 무림맹의 수뇌부가 비밀리에 만나 밀담을 나눈 적이 있긴 했었다.
하지만 무림사를 통틀어 서너 차례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드물었고, 더구나 자신이 맹주가 된 이후에는 단 한번도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야사로서 기록조차 되어있지 않은 은밀한 일이 자신의 대에 일어나게 되었으니 어찌 흥분이 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사도헌이 마대위를 향해 은밀히 전음을 날렸다.
[노부가 자네를 믿어야 하는 이유는?]
[그러는 게 좋을 거요. 아니면 무림 전체가 고스란히 들어 먹힐지도 모르니까.]
잠시 마대위를 바라보던 무제 사도헌은 마침내 결심을 굳히고는 입을 열었다.
“모두들 잠시 나가있게.”
순간 무림맹 수뇌부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맹주님!”
“이런 자와 독대라니요! 그럴 가치가 없습니다.”
모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사도헌이 단호한 표정으로 명했다.
“모두 나가있으라!”
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잠시의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그러나 이내 안색을 굳히며 다소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은 채 자리에서 일어섰다.
마대위를 향해 매서운 눈길을 보낸 후, 즉시 대전을 나갔다.
무제 사도헌은 사람들이 모두 나가자 천천히 팔짱을 꼈다. 그리고는 마대위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그러나 마대위의 입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왜 말이 없는가?”
마대위는 다소 짜증 섞인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더니 말했다.
“아직 다 안나갔구먼! 숨어있는 애들도 내보내시오.”
그의 말에 사도헌이 흠칫했다. 그러나 이내 너털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허허허, 그래도 노부의 신분이 무림맹주일세. 최소한의 호위는 남겨둬야 하지 않겠나?”
마대위가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 여기 목숨 걸고 온 놈이요. 설사 맹주의 아들네미가 있다고 해도 믿지 못하니 무조건 내보내주시오.”
그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당장이라도 최전선에 뛰어들어 직접 칼춤이라도 춰야 할 긴박한 상황이지만,
마교에 어부지리를 내어줄까 두려워 전력을 다하지도 못하고 있어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런데 갑자기 마교에서 전령이 왔다 하니 혹시나 하는 마음에 독대까지 허락했는데,
수족이나 다름없는 수신호위까지 내보내라니 오만방자하기 이를 데 없지 않은가.
‘네놈이 무슨 말을 하는지 두고 보마.’
무제 사도헌이 ‘끙’하는 소리와 함께 입을 열었다.
“수신호위들은 모두 물러가라.”
순간 대전 곳곳에서 지독한 살기가 피어올랐다. 물론 그 기운은 모두 마대위를 향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내 희끗한 그림자들이 스치는 듯하더니 그 기운은 씻은 듯이 사라졌다.
사도헌이 마대위를 노려보았다.
“이제 되었는가?”
마대위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내공을 끌어올려 주위에 또 숨어있는 자가 없는지 살폈다.
‘모두 나갔군. 헌데 뭐가 이렇게 찝찝한 기분이 드는 거야?’
그로서도 아무 기척을 느낄 수 없었지만 꼭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은 왠지 알 수 없었다.
마대위가 갑자기 안색을 찌푸리며 주위를 살펴보자 사도헌은 내심 가슴이 철렁했다.
‘서, 설마 저놈이 묵비영(?秘影)의 존재까지 알아차렸단 말인가…?’
묵비영(?秘影). 비밀 수신호위로서 그의 존재는 맹주조차 모른다. 묵비영은 일인전승으로 비밀리에 내려오며,
맹주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을 경우에만 모습을 드러낸다고 한다. 그리고 천하제일의 은신술을 지니고 있어
사도헌조차 희미한 기척을 느낀 적이 두어 번 있었을 뿐, 확실한 위치는 알 수 없었다.
그런데 마대위가 그의 기척을 눈치 챈 듯하니 어찌 놀랍지 않겠는가.
‘설마 이 자의 무공이 반박귀진의 경지에 이르렀단 말인가. 그의 기척을 눈치 채다니…….’
무제 사도헌은 내심 무척 놀랐지만 짐짓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무슨 일인가? 지금 이곳에는 우리 둘밖에 없네.”
마대위가 머리를 긁적이며 중얼거렸다.
“거참, 어떤 놈이 꼭 숨어있는 것 같은데…….”
“아무도 없네. 속 시원히 말 해보게.”
“좋수다. 천마존의 전언(傳言)은 간단하오. 한번 만나서 대사를 논하자고 하셨소.”
사도헌이 흠칫하더니 되물었다.
“뭐라? 천마존이 친히 노부를 만나겠다고 했는가?”
“그렇소.”
“음!”
무거운 신음성과 함께 사도헌의 안색이 심각하게 굳었다.
‘마교주가 현 상황에서 나를 만나야 할 이유는 없을 텐데……. 그들로서야 정파무림이 천외패황궁과 싸우다가 공멸하기만 기다리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땡그렁!
그때였다. 탁자위에 작은 영패 하나가 떨어진 것은.
“이건 천마령!”
“천마존이 주더이다. 하지만 그것으로도 믿지 않을 테니 이것도 주라고 했소.”
마대위는 품속에서 손때가 묻어 반질반질한 윤이 나는 검은 색의 섭선 하나를 꺼내 내려놓았다.
무제 사도헌은 우선 천마령을 집었다. 그럴듯해 보이기는 하나 누구라도 마음만 먹는다면 영패쯤이야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니 전적으로 믿을 수는 없다.
영패를 다시 내려놓은 그는 이번에는 섭선을 집어 들었다. 잠시 섭선을 이리저리 살펴보던 그의 두 눈이 번쩍 뜨였다.
“이, 이건…….”
경악에 찬 그의 두 귀에 마대위의 목소리가 들렸다.
“흑죽선이오. 팔십 년 전인가…, 당시 사대천왕중 한명이었던 선왕 영호천의 독문병기라 하더이다.”
사도헌은 즉시 섭선에 내공을 주입한 후, 탁자를 향해 살짝 휘둘렀다. 순간 섭선에서 묵빛이 번뜩이더니 탁자의 한 귀퉁이가 깨끗이 잘려나갔다.
“오! 과연…….”
그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과거 선왕 영호천의 경이적인 활약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그로서는 섭선에서 번뜩인 빛이 바로 흑죽선에서만 발휘된다는 선강(扇剛)이 틀림없었던 것이.
과거 선왕 영호천은 사대천왕이라는 명호를 얻을 만큼 대단한 고수였는데, 마교의 검마존과 싸우다가 패하여 죽었다.
그의 병기였던 흑죽선은 검마가 수습해 마교로 가져갔는데, 이제야 마대위를 통해 다시 정파로 돌아온 것이다.
무제 사도헌이 섭선을 내려놓은 후 마대위를 바라보았다. 의문이 가득한 눈빛이었다.
“한 가지는 확실하군. 적어도 마존급 이상의 인물이 자네를 보냈어.”
“천마존이 보낸 거요.”
“좋네. 천마존이라 치세. 헌데 그 양반이 노부를 만나야 할 이유가 있는가?”
“물론이오.”
마대위는 무제 사도헌에게 얼마전 마교에서 있었던 일을 모두 이야기해주었다. 그러나 사도헌으로서는 쉽게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마교의 총사라는 최고위급 수뇌가 어찌 간자일 수 있겠는가. 차라리 그가 천마존의 자리에 욕심이 생겨 반역을 꾀했다고 한다면 믿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당금 천하의 혼란을 야기한 흉수들 중 한명이고, 또 그들의 세력이 천외패황궁과 무림맹에까지 뻗쳐 있다고 하니
이보다 더 황당한 이야기가 어디 있겠는가.
사도헌이 믿기 어렵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자 마대위는 내친김에 과거 대종사와 오마왕에 대한 이야기부터 다시 시작했다.
그래야만 모든 내용들의 아귀가 딱 들어맞아 사도헌을 납득시킬 수 있을 것이니 말이다.
근 한시진에 걸쳐 마대위는 제령에서의 일부터 얼마 전에 겪었던 마교에서의 위기상황까지, 지극히 개인적이고 무공에 관련된 부분만 빼고는 모두 이야기해 주었다.
무제 사도헌은 마대위의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 범인이라면 전 생애를 거쳐 단 한 가지도 일어나기
어려운 일을 마대위는 수차례나 한꺼번에 겪었지 않은가.
어찌 생각한다면 운이 지극히 좋은 사람에게 기연이 연속적으로 찾아와 오늘에 이르렀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 가운데 어려움이 왜 없었겠는가. 아마도 찾아온 운과 기연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한 피눈물 나는 노력과 인내가 있었으리라.
그렇게 본다면 자신은 위대한 인간승리의 산증인을 눈앞에서 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사도헌이 마대위를 바라보는 눈이 다소 달라졌다. 그의 말을 믿기에 앞서 다소의 조사가 필요하기는 하겠지만,
시골의 건달에 불과하던 자가 마교의 잠마대주가 되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마대위의 말이 끝나고 잠시의 침묵이 흐른 후, 무제 사도헌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본맹으로서도 당금 천하의 정세가 암중세력의 개입에 의한 것이 아닌지 의심해본 적이 있다네.
하지만 천외패황궁과 정파, 그리고 마교라는 막강한 세력을 모두 자신들의 뜻대로 조정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 생각하고 간과해 왔지.
헌데 오늘 자네의 말을 들어보니 이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군. 그리고 만약 자네의 말이 사실로 들어난다면…….”
잠시 말을 멈춘 사도헌이 다소 떨리는 목소리로 다시 입을 열었다.
“이는 정말 놀라운…, 아니 두렵다고 해야겠군. 그래. 치가 떨릴 만큼 두려운 일이야.”
마대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그래서 내가 굳이 맹주에게만 이야기하겠다고 한 거요. 세상에 마교의 총사라는 새끼가 암중세력의 흉수,
그것도 수십 년 전 대종사…, 아니 비천신룡을 암습하고 삼십육마군을 죽음으로 내몬 그 쳐 죽일 놈일 거라고 누가 예상이나 했겠소.
그러니 맹주도 조심하시오. 현재 맹주가 가장 신임하는 사람이 바로 흉수들 중 하나일 수 있으니 말이오.”
사도헌도 이제는 마대위의 말을 무시할 수 없는지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겠네. 헌데…….”
그는 잠시 이채로운 눈길로 마대위를 바라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자네는 마교의 잠마대주나 되면서도 천마존에 대한 존경심이나 마교에 대한 충성심은 전혀 없어 보이는군.”
마대위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훗! 솔직히 명예직이라 생각하고 받은 자리가 잠마대주요. 그리고 이번 일만 잘 해결되고 나면 나는 다시 제령으로 돌아가 조용히 살거요.”
“허허, 그것도 나쁘지 않은 생각이군. 노부도 진작에 은퇴를 한 후에 고향으로 돌아가 농사나 지었어야 했는데…….”
잠시 뭔가를 회상하는 듯 허공을 바라보던 사도헌이 마대위에게 다시 시선을 돌렸다.
“헌데 자네에게는 무당파와 풀어야 할 문제가 있지 않은가. 언젠가 한 번은 그들과 부딪치는 일이 있을 텐데…….
자네가 무슨 일로 금마동에 갇혔는지 모르지만 무당파는 결코 이를 좌시하지 않을 걸세.”
무당파의 이야기가 나오자 마대위는 이를 갈았다.
“말코 도사 놈의 새끼들…. 덤빌 테면 덤비라고 하시오. 모조리 아작을 내 버릴 테니.”
마대위는 자신이 금마동에 갇힌 사연을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단지 규율을 제대로 몰라 무슨 짓을 저질렀는데 알고 보니
대죄에 해당하는 지라 억울하게 갇혔다고만 했던 것이다.
사도헌은 무당파에 대한 마대위의 원한이 깊은 것을 보고는 다소 걱정이 되었다. 어찌되었든 마대위는 마교의 실세라 할 수 있는 잠마대주가 아닌가.
후에 마존이라도 되었을 때 원한을 갚겠다고 나선다면 그 파장이 실로 가볍지 않을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 확실히 못을 박아 두어야겠다고 생각한 무제 사도헌이 마대위에게 말했다.
“후에 자네와 무당파 간의 일이 어떻게 진행될지는 모르지만 그때 본맹으로서는 무당파를 도울 수밖에 없네. 이 점은 자네가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하네.”
“무당파에서 나를 건드리지만 않는다면 별 일은 없을 거요. 내 목숨을 구해주셨던 사부님도 무당파 사람이었소.
내가 아무리 건달출신이지만 은혜도 모르는 막돼먹은 놈은 아니오.”
무제 사도헌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니 다행일세. 그건 그렇고…, 일단 자네가 한 말에 대해 노부로서도 최소한의 조사와 확인은 해 보아야 하네.
그러니 노부의 입장은 그 후에 결정할 수 있네.”
“좋소. 하지만 시간을 오래 끌지는 마시오. 난 당장이라도 천외패황궁으로 떠나야 하니.”
“이틀 정도만 본맹에 머물도록 하게. 그 안에 노부의 의사를 자네에게 밝히도록 하지.”
“좋소.”
마대위는 가볍게 고개를 숙인 후, 대전을 나왔다.
무제 사도헌은 마대위의 모습이 사라지자 근심어린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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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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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감하고 갑니다.
캬~갈수록 힘들어 지는구나?
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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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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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즐감합니다~~~~~~~~
재미있게 읽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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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