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로마서 16장 3-4절 문안을 통한 교제
오늘은 로마서의 마지막 장입니다. 이제까지 여러분은 로마서를 통해 왜 구원자는 예수님 밖에 없는지를 들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신 은혜로 여러분들이 의롭다하심을 받았고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와 온전히 연합하여 하나 된 삶을 살게 되었음을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영원히 보장된 삶이며 하나님께 기쁨과 영광이 되는 삶입니다. 여러분들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로 인해 죄에서 구원받게 되었고 영원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로마서 16장을 보면 누구에게 문안하라는 말씀이 계속 반복되다가 나중에는 누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는 말씀이 또 반복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누구에게 문안하라는 말씀은 사도 바울과 함께 사역했던 사람들을 향해 문안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여기저기 교회들에 흩어져서 사도 바울이 맡겨주었던 사역들을 계속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들의 신앙은 대단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매우 헌신적입니다. 그래서 로마 교회 역시 그런 교회를 위해 헌신하는 동역자들을 알아주고 문안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왜 이 문안이 중요하냐면 모든 교회가 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이기에 서로 얼굴은 모를지라도 영적인 교제를 나누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문안을 통해 서로 배울 것이 있으며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눌 수가 있습니다. 문안은 서로 유익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같으면 작년에 남서울교회와 라파선교회와 대전 대흥교회에서 봉사를 위해 다녀가셨습니다. 사실 엄밀하게 따져서 그분들이 우리 교회에 와서 그렇게 땀 흘리며 봉사해야할 이유가 없습니다. 친척이 해달라고 해도 잘 안 해주고 가족들이 해달라고 해도 힘들면 안 해주는 세상입니다. 그런데도 그 더운날 땀을 흘려가며 시멘트를 섞어서 사택 뒤에 토방을 만들고 또 또랑을 치우고 여기 저기 정리하시고 가셨는데 교회에 장판과 도배를 할 수 있도록 대천교회 집사님에게 모든 것을 맡기시고 가셨습니다.
그 더운 날 공사가 가능했던 것은 바로 그들의 헌신적인 수고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보면 그 분들이 볼 때 우리 교회는 강도만난 자와 같은 지도 모릅니다. 자신들이 돕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해서 그 멀리부터 와서 그 더운날 모든 수고를 하였습니다. 심지어 물과 음료수까지 다 준비해 와서 우리교회에는 전혀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하였습니다. 그들이 왜 우리 교회에 그런 수고를 했을까요? 한 번 그렇게 하시고 가면 우리 교회를 향하여 고마워해달라고 하지도 않습니다. 무슨 대가를 바라고 하는 것도 아닙니다. 자기들의 행한 일을 누구에게 알리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하나님이 알아주시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우리 교회가 힘을 얻어 주님을 섬기고 이 지역을 살리시는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도록 용기를 주는 일을 한 것입니다. 이것 역시 문안의 한 종류입니다. 그러므로 문안은 아는 사람에게만 하는 것이 아니라 알지 못하는 성도나 목회자나 교회에도 가능한 것입니다. 여러분 역시 알지 못하는 교회, 알지 못하는 성도들을 향해 문안하는 열린 마음이 있기를 축복합니다.
이제 자신이 거쳐온 교회들 가운데 매우 신실하고 헌신적인 성도들, 하나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자기를 산제물로 드린 사도 바울의 동역자들을 위하여 문안하라고 하고 나서 사도 바울은 이제는 방향 전환을 합니다. 로마교회에 편지를 쓰고 있는 지금 함께 있는 동역자들이 로마교회에 안부를 묻고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로마교회를 사랑하며 로마교회가 가지고 있는 믿음을 기뻐하는 바울의 동역자들입니다. 여러분 역시도 예수님 안에서 다른 교회 성도들이나 목회자들과 교제를 할 때 이렇게 거짓없는 진실한 마음으로 교제를 나눌 수가 있습니다.
오늘날은 많은 교회들이 자기 교회중심으로, 또 자기 교단중심으로 일을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그들의 사귐은 교회를 뛰어 넘습니다. 물론 그때는 교단도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영역을 뛰어넘는 진실한 교제가 있었습니다.
마게도냐나 아가야에 있는 교회들 역시 예루살렘교회의 성도들 가운데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있다면 어떤 사도가 지금 교회를 섬기고 있다는 정도일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예루살렘 교회가 매우 어렵고 가난하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랫동안 모았던 연보로 드린 헌금을 아낌없이 내놓았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감사의 마음으로 충만했습니다. 다시 말해 돈을 받는 교회도 감사하겠지만 그들은 오히려 돈을 주면서도 감사했습니다. 예루살렘교회의 알지도 못하는 성도들을 향한 사랑이 그들로 하여금 그런 섬기는 일을 하게 한 것입니다. 이것이 문안의 한 부분입니다.
교회의 형제 사랑을 반드시 내 교회만으로 묶어 두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진정한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교회 안에서 성도 서로서로가 예수님의 사랑 안에서 친밀한 사랑의 교제를 나누듯이 교회와 교회 간에도 친밀한 사랑의 교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우리 교회가 지방회 안에 속해 있어 지방회의 행사에 참여하면서 더 큰 영역에서 사랑을 나누는 것과 같습니다. 또한 성도의 교제는 교단을 넘어서 온 세상의 교회들과도 친밀한 사랑의 교제를 나누는 것 역시 가능합니다.
이런 교제는 역시 받아들임과 용납이 서로 간에 필요합니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면 친밀한 사랑의 교제를 나눌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나 한사람의 신앙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고 우리 교회만 생존하고 부흥했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 안에 있는 모든 동일한 믿음을 고백하는 교회들이 서로 자기의 울타리와 담을 걷어내고 서로를 향해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서로 개방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서로에게 주님이 계신 것을 확인하면서 교제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반드시 조심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거짓의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복음을 듣고도 변화받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17-20절의 말씀에 나와 있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을 속입니다. 그들은 여러분들이 배운 교훈을 거슬러 분쟁을 일으키게 하고 걸려 넘어질 가르침을 여러분 앞에 펼쳐놓고 교회의 주인이신 그리스도는 섬기지 않으면서 자기 배만 위합니다. 그러면서 성도들을 향해 교활한 말과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그런 행동을 하는 이유는 사탄에게 속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에게 그들과 친하게 지내지 말고 그들에게서 단호하게 떠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들과 계속함께 있으면 미혹되어 그들과 함께 멸망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교제는 그런 이단에 속한 사람들을 제외해야 합니다. 그들이 교회에 은밀한 독소처럼 들어올 때 성도들은 자신들이 이제까지 듣고 배웠던 것과 다른 것을 가르치는 사람들을 신기하다거나 이제까지 그런 가르침은 듣지 못했다고 하면서 귀를 솔깃 세우고 듣다보면 원해 배웠던 말씀을 불신하는 데 빠지게 됩니다. 영혼이 미혹을 당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미혹은 무서운 것입니다. 그것은 표 안나게 천천히 여러분들의 마음을 정복해나갑니다.
진실한 복음을 듣고 믿고 배운 사람은 자기를 위해 일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마음은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을 증거하는 증인으로써 일하며 또 증인으로 일하는 목회자를 돕는데 최선을 다합니다. 그래서 1-16절까지를 보면 그런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마음에 새겨진 사람들이며 사도 바울의 마음에도 새겨진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어떤 삶을 살았기에 사도 바울은 그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기록하면서 문안하라고 할까요? 사도 바울은 그 이유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매 뵈뵈는 복음을 전하는 여러 사람들과 교회와 사도 바울의 보호자가 되었습니다. 보호자는 책임을 져주는 사람입니다. 여러분들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저의 책임을 기꺼이 져줄 사람이 누구일까요? 여러분들은 지금까지 저와 교회를 위해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인하여 또 복음이 여러분들 안에 역사하심으로 인하여 많은 섬기는 삶을 사셨습니다. 여러분들 가운데도 뵈뵈와 같은 사람처럼 예수님께 인정받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다음으로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는 사도 바울의 목숨을 대신하여 자기들의 목숨을 내줄정도로 사랑했습니다. 이로 인해 사도 바울에게 복음을 들은 모든 이방인들의 교회들이 하나같이 그들에게 감사하고 있습니다. 또 아시아에서 처음 익은 열매인 에베네도에게 문안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로마교회를 위하여 많이 수고한 마리아에게도 문안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리아 역시 로마교회에 누가 있는지도 모르면서 예수님 안에 있는 같은 믿음을 가진 형제 자매들이라는 그 한 가지 이유로 인하여 로마교회를 위해 무엇인가 많이 수고했을 것입니다.
다음으로 사도 바울의 친척이며 사도 바울이 감옥에 갇힐 때 함께 갇혀서 함께 고난에 참여하였던 사람들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주 안에서 사도 바울이 사랑하는 사람도 있고, 그리스도 안에서 사도 바울 일행의 동역자로 일한 사람도 있고, 그리스도 안에서 교회에게 인정을 받은 사람도 있고, 친척과 주 안에 있는 자들과 주 안에서 수고한 사람과 주 안에서 많이 수고하고 사랑하는 사람, 주 안에서 택하심을 받은 사람, 함께 있는 형제들과 그 외 몇 사람을 언급하면서 사랑으로 문안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 바울과 함께 있는 믿음의 동역자들이 지금 로마 교회를 향하여 문안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이름은 디모데, 사도 바울의 친척인 누기오와 야손과 소시바더, 그리고 사도 바울이 불러주는 대로 편지를 기록하는 더디오, 사도 바울과 온 교회를 돌보아주는 가이오, 그리고 이 성의 재무관인 에라스도와 그의 형제 구아도도 역시 문안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잘 있느냐는 물음과 보고 싶다는 마음이 함께 포함된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을 믿음으로 받고 새롭게 변화된 사람들이 전하는 안부입니다. 그들은 자기 배만 위하고 교회를 어지럽게 하며 분쟁을 일으키는 사람들과 구별된 복음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자기를 위하지 않고 예수님을 위하며 예수님의 몸인 교회를 위하는 마음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복음으로 견고해진 사람들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를 시작하면서 복음에 대한 말씀으로 시작했었습니다. 로마서 1장 1-4절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하고 있습니다.
이제 로마에 보내는 모든 편지를 끝마치면서 다시 복음을 언급합니다. 25-27절까지입니다. “나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은 영세 전부터 감추어졌다가 이제는 나타내신 바 되었으며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따라 선지자들의 글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이 믿어 순종하게 하시려고 알게 하신 바 그 신비의 계시를 따라 된 것이니 이 복음으로 너희를 능히 견고하게 하실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이 세세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
편지를 시작하면서 강조했던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 분은 감취었었지만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의 글에 미리 말씀하신 기록들이 있다는 것과 그 기록된 예수님을 알려면 성령께서 신비의 계시를 주셔야만 가능하다는 것과 이 복음을 믿는 사람은 능히 순종하게 되고 견고해지며 모든 영광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돌리게 된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서로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서로 안부를 묻게 되고 보고 싶어하고 만나면 사랑으로 섬길 수 있는 관계가 형성이 됩니다. 여러분은 믿음으로 예수님께 순종하고 견고한 신앙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행하며 여러분들을 부르셔서 하나님 나라의 일에 동참하게 하신 하나님께 영원토록 영광을 돌리게 될 것입니다.
구원의 복음은 오직 예수그리스도로 인해 시작되며 십자가와 부활로 인해 완성이 되었습니다. 여러분들의 인생도 복음으로 인해 새롭게 되셨습니다. 이제 여러분들로 인해 교회 성도들이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로 충만해지고 또한 교회 밖에도 복음을 전함으로 하나님의 사랑이 온 세상에 증거되고 그들이 자기들을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자신들의 주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로써 유일한 구원자라는 사실을 믿게 되는 놀라운 복이 그들에게 임하게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