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3.29
복음학교 / 디모데후서 4장
☞ 이 시간 전도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1) 전도는 예수님의 명령입니다. 1절입니다.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바울은 엄히 명령한다고 했습니다. 복음을 전파하라는 명령은 바울의 명령이 아니라 예수님의 명령입니다. 예수님은 전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전도하지 않으면 가만 두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전도는 구원과 연결되어 있습니다.(현대교회=전도×) 여러분! 누가 전도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사람이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 뜻대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3장 35절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는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예수님을 만나고, 사랑하고, 뜻대로 살아야 전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죽으신 것은 사랑했기 때문이었습니다.(아가페적 사랑) 마태복음 5장 46절입니다.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요한복음 13장 34절입니다.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예수님은 우리를 너무 사랑하셔서 우셨습니다. 고민하셨습니다. 안타까워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알면 전도하게 되어있습니다. 울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자동입니다. 예수님은 동생을 전도했습니다. 제자들을 전도했습니다. 이웃을 전도했습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과 제사장도 전도했습니다. 지구를 전도하셨습니다. 전도하기 위해 매일 기도하셨습니다. 성령충만하셨습니다. 활기가 넘치셨습니다. 기쁨으로 충만하셨습니다. 찬송으로 충만하셨습니다. 2) 때와 장소를 가리지 말고 전도해야 합니다. 2절입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전도는 특별한 시간을 정해놓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적당한 때를 기다리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내일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지 모릅니다. 내일 갑자기 세상을 떠날 수 있습니다. 이게 인생입니다. 그래서 전도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해야 하는 것입니다. 전도도 습관이 되어야 합니다. 전도대상자를 놓고 매일 기도해야 합니다. 나의 구원이 아니라, 그의 구원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바울은 전도하는 일에 오래 참으라고 했습니다. 전도는 오래 참는 것입니다. 이른비와 늦은비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당장 열매가 없다고 포기하면 안 됩니다. 오래 오래 참아야 합니다. 그래서 제가 참고 있습니다. 끝까지 참으면 성령님께서 역사하십니다. 회개하고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반드시 좋은 날이 옵니다. 이번에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정지현 선수가 레슬링에서 금메달을 땄습니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60kg에서 금메달을 따고 10년 만에 금메달을 땄습니다.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참고 또 참고 훈련했더니 좋은 날이 왔다고 했습니다.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전도는 자아가 죽고 날마다 회개를 하고 성령충만한 사람이 하는 것입니다. 전도는 억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돈을 준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의 감격이 넘치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3) 전도에는 고난이 반드시 따릅니다. 5절입니다.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신중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자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전도자에게는 크든 작든 핍박이 따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6장 33절입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전도를 하면 환난을 당한다고 했습니다. 구약에 선지자들이 핍박을 받았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 엄청난 핍박을 받았습니다. 지금 핍박을 받고 있습니까? 예수님을 잘 믿으면 잘 믿지 않는 사람이나 아예 안 믿는 사람들에게 핍박을 받게 되어있습니다. 그게 진리입니다. 세상과 빛은 공존할 수 없습니다. 세상은 크리스천을 미워한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성경입니다. 요한복음 15장 19절입니다.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 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여러분! 믿음이 없는 형제와 친합니까? 믿음이 없는 남편과 친합니까? 아내와 친합니까? 이웃과 친합니까? 친하다면 세상을 사랑한다는 증거입니다. 미워한다면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나 핍박을 받는자가 복이 있는자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핍박을 받는 사람이 의의 면류관을 받는다고 했습니다.(8절) 구원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슬퍼하지 말고, 괴로워하지 말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했습니다.(마5:10-12) 아멘. 죽어가는 영혼을 전도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하나님께서는 바울사도가 사역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많은 헌신자들과 동역자들을 붙여주셨습니다. 바울사도는 동역자들과 어떻게 사역을 했을까요? 1) 함께 일을 했습니다. 9절입니다.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바울사도가 속히 오라고 한 사람은 디모데입니다. 바울사도는 독단적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항상 함께 하려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사역하셨습니다. 제자들을 부르신 이유가 함께 하기 위해서 부르셨습니다. 함께 먹었습니다. 함께 기도했습니다. 함께 예배드렸습니다. 함께 전도했습니다. 함께 봉사하고 구제했습니다. 함께 죽고자 했으나 제자들이 도망가 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려면 복음을 만난 사람들이 함께해야 합니다. 도마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요한복음 11장 16절입니다. “디두모라 하는 도마가 다른 제자들에게 말하되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 하니라.” 도마가 은혜를 엄청 받았습니다. 그래서 친구들에게 함께 죽으러 가자고 했습니다. 협력하면 엄청난 힘이 생깁니다. 성령이 역사하십니다. 그래서 함께 일해야 합니다. 2) 세상에 속한 사람은 주의해야 합니다. 10-11절입니다.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바울사도와 함께 사역했던 사람들의 이름이 나옵니다. 데마, 그레스게, 디도, 누가, 마가라는 사람의 이름이 나옵니다. 그들은 복음을 위해서 살았습니다. 정말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런데 복음을 위해 살지 않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는 것입니다. 복음을 위해 산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너무 고통스럽고 어렵습니다. 왜요? 예수님을 믿는 순간 세상이 미워하고 핍박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끝까지 견디지 못하고 인내하지 못하고 중간에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바울은 말하기를 해를 준 알렉산더같은 사람, 악성 종양같은 후메내오와 빌레도같은 사람이 많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그런 사람들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까? 15절을 보세요. “너도 그를 주의하라 그가 우리말을 심히 대적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에게 했던 말씀입니다. 바리새인의 누룩을 조심하라고 했습니다. 영어로 guard입니다. 군인이 경계하는 것입니다. 감시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 세상에 속한 사람을 철저히 경계하라고 했습니다. 가급적이면 멀리 멀리 도망가라고 했습니다. 가까이 하면 할수록 고통을 당한다고 했습니다. 이게 말씀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을 정말 조심하시기를 바랍니다. 3)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해야 합니다. 16절입니다. “내가 처음 변명할 때에 나와 함께 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 그들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 바울은 상처를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나 은혜로 상처를 극복했습니다. 상처에 갇혀 있으면 여러 부작용이 생깁니다. 이런 부작용이 생깁니다. 말씀이 은혜가 되지 않습니다. 의자에 앉아있지만 다른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마음이 괴롭습니다. 절대로 기쁘지 않습니다. 우울합니다. 증오와 분노가 있습니다. 신경이 곤두서있습니다. 그래서요. 조금 찌르는 말에도 엄청나게 상처를 받습니다. 이렇게 살다 보니까? 병이 있습니다. 그래서 상처 준 사람을 용납하고 용서해야 합니다. 용납이라는 것은 덮어주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보혈의 피로(속죄소,시온소) 덮어주는 것처럼 용납은 그냥 덮어주는 것입니다. 덮어준다고 죄가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상처가 없어진 것이 아닙니다. 있지만 덮어주면 힘을 쓰지 못합니다. 용서라는 것은 씻어주는 것을 말합니다. 탕감해주는 겁니다. 요셉이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형들에게 배신을 당해 웅덩이 빠졌습니다. 노예가 되었습니다. 감옥에도 갔습니다. 시간이 애굽의 총리가 된 다음 형들을 만나 이렇게 말했습니다. 창세기 45장 5절입니다.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요셉은 상처에 갇혀 살지 않았습니다. 상처가 있었지만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하나님께 울부짖었습니다. 그랬더니 상처가 치유가 되었고 쓰임을 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게 바로 믿음입니다. 17절을 보세요.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에게 힘을 주심은 나로 말미암아 선포된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모든 이방인이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짐을 받았느니라.” 아멘. 여러분! 말씀대로 사면 승리하는 것입니다.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