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혁재
9시간 ·
2023.12.15 #손혁재_정치이야기 #선거 #22대총선
올드 보이의 귀환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재집권하면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할지 모른다고 미국 언론이 보도했습니다.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되 핵폭탄을 더 만들지 않도록 하고 그 대가로 재정적 인센티브 제공을 검토하고 있다는 겁니다. 트럼프는 “김정은과는 잘 지내고 있다”면서도 ‘가짜뉴스’라고 부인했습니다.
언론들은 김정은과 잘 지낸다고 밝힌 걸 재집권하면 북미대화를 재개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성과는 없었지만 트럼프는 현직 대통령으로선 유일하게 북한과 세 차례씩이나 정상회담을 했습니다. 2024년 미국 대선이 일 년 가까이 남았지만 이미 지난 해 11월 출마를 공식선언한 트럼프는 여론조사에서 앞서나가고 있습니다.
경선이 시작되는 아이오와 코커스가 한 달 앞으로 다가온 현재 트럼프는 60% 안팎의 높은 지지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77세로 미국 역대 최고령 대통령이 됩니다. 조 바이든 대통령도 77세에 당선됐지만 트럼프가 6개월 정도 더 많습니다. 바이든이 재선하면 81세로 당연히 최고령 대통령이 됩니다.
전세계적으로 70대의 지도자들도 많지만 고령의 바이든-트럼프 대결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습니다. 트럼프와 큰 격차로 공화당 대선주자 여론조사 2위를 달리고 있는 니키 헤일리는 75세가 넘는 고령 정치인은 정신능력 검증시험을 치르도록 하자는 제안까지 했습니다. 헤일리는 51세입니다. 헤일리의 제안에 대한 찬성률은 77%나 됐습니다.
트럼프나 바이든 보다 더 나이 많은 집권자도 있습니다. 마하티르 빈 모하맛 말레이시아 총리가 2018년 취임할 때 93세였습니다. 56세 때인 1981년부터 2003년까지 22년간 총리에 재임했던 마하티르는 물러난 지 15년 만에 다시 총리가 됐고, 2년 뒤 95세에 물러났습니다. 아직도 말레이시아에서 마하티르의 정치적 영향력은 크다고 합니다.
마하티르 총리보다 어리지만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브라질 대통령도 물러났다가 고령에 다시 집권했습니다. 58세 때인 2003년에 브라질 최초의 좌파 대통령으로 선출된 룰라는 2010년 물러난 지 12년 만인 지난해 대선에서 승리해 78세인 올해 1월 1일 취임했습니다. 룰라는 브라질 역사상 가장 인기 있는 정치인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를 떠났거나 언론과 시민의 관심 밖으로 밀려났던 중진 원로 정치인들이 정계 복귀를 노리고 있습니다. 이른바 ‘올드 보이의 귀환’입니다. 올드 보이의 기준은 뭘까요? 나이가 많아서 올드 보이가 아니라 이미 지나간 시대에서 머물러 있거나, 시대정신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면 올드 보이일 겁니다.
언론이나 정치권에서 나이나 선수(選數)를 기준으로 무조건 올드 보이라 불러도 시대정신에 충실하다면 올드 보이가 아닐 겁니다. 예비후보 등록을 한 81세의 박지원 전 국정원장(4선)은 자신은 올드 보이가 아니라 ‘스마트 보이’라 주장했습니다. 제15대 대선에 출마했던 75세의 이인제 전 의원(6선)도 예비후보 등록을 했습니다.
제17대 대선에 출마했던 정동영 전 의원(4선)이나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6선), 천정배 전 법무장관(6선)도 출마가 거론됩니다. 올드 보이는 총선에만 나오는 게 아닙니다. 이미 내각에도 올드 보이들이 있습니다. 노무현 정부 때의 한덕수 국무총리는 14년 만에,이명박 정부 때의 이주호 교육부장관은 9년 만에 다시 그 때 그 자리로 귀환했습니다.
탄핵이 추진되자 사퇴한 이동관 방통위원장도 이명박 정부 홍보수석을 그만둔 게 13년 전이었고, 유인촌 문화부장관도 12년 전에 그만 둔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으로 거론되는 김병준·김한길도 각각 17년 전 부총리, 15년 전 당 대표였습니다. 새 인물 새 정치를 바라는 시민들에게 이들은 올드 보이일까요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