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매화꽃 속이 궁금하다 외 1편
이순주
벙그는 꽃잎 사이로
어머니의 그 옛날이 걸어 나오네요
인사동 입구를 들어갈 때였어요
전통 혼례가 마악 끝났는지
상모꾼들은 꽹과리를 치며 봄을 돋우었어요
어린신부 입에서 연지곤지 찍은 미소가
헤실헤실 새어나와요
사람들은 한데 어울려
혼례장을 여러 겹 둥그렇게 에워싸고요
상모꾼들은 긴 상모 끈으로 지구를 몇 바퀴나 돌리는지
나는 깨끔발로도 안이 잘 보이질 않아요
겹겹 매화꽃 속이 더욱 궁금해지고요
그러나 벌어지는 꽃잎 사이로
그 장면들을 놓치지 않아요
꽹과리소리에 얼어붙은 마음
쩍쩍 갈라지는 소리 들리네요
꽹과리소리는 길 건너 공원까지 날아가
노인들을 불러냅니다 온종일 심심한 노인들이
우르르 몰려나오고요
틀니마저 빠져버린 입들이 호물호물 웃어요
신명나는 소리에 매화 꽃잎 활짝 피어나면
어머니를 만나게 되는 걸까요
어깨춤을 추느라
봄이 슬쩍 댕겨가는지도 몰라요*
* 마경덕의 시 「시골집 마루」에서 빌림.
연필을 깎다
뱉아낸 말이 아프다
열망이 가느다란 촉수에 매달렸으니,
계곡물에도 떠내려가지 않는 그늘을 흰 종잇장 위에 풀어 놓는다 바람과 구름의 말을 풀어내느라 말발굽소리 채찍을 휘두르는 한 마리 야생마였다가 레일 위를 달려가는 기관차였다가 쓸쓸한 바닷가 서성이는 조가비였다가,
온산을 펼쳐 보이지만 물은 에돌고 새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다 지나온 문장이 모두 흑백의 풍광이다 행로 위에 딴지를 거는 말들을 귓전으로 흘려보내고 마음의 빗장을 열면 궁금해진 계절이 안부를 물으며 다녀간다
흰 눈이 다녀가고 봄비가 다녀가고 낙엽 지는 소리 다녀간다 똑바로 서서 지구의 기억을 수천만 장 종이 위에 세워두는 말은 내장이며 쓸개이며 간이었다 종이 위에 집 한 채 지으려고 잎새에 이는 바람소리 경(經)을 읊조린다 사각사각 신음을 뱉아낸다
차오른 달의 뒤꿈치가 자꾸만 이운다
이순주
강원도 평창 출생. 2001년 『미네르바』로 시, 200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동시 등단.
―『시에티카』 2010년 하반기 제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