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대지문학 여름호 신인상 심사평 (9인)
1. 김태인
시는 언어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시적인 것'의 발견으로부터 출발한다.
시는 생략함으로써 유혹한다. 시는 정보의 과소 공급을 통해서 오히려 많은 것을 이야기하는 언술이다.
민들레 홀씨처럼 좋은 글 많이 남겨
우리 문단에 지휘자로 우뚝 서기 바란다.
등단 축하드립니다.
2. 남기재
상상에 의한 의미의 확장은 기반이 '사실적 관찰'에서 출발된 것이어야 하지만
시는 "다 말하지 않음으로써 좁게는 작품차원에서, 넓게는 역사의 큰 맥락에서 전체성을 지향하고 완결성을 향해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이는 남기재 선생의 시 '상처'와 '하얀 고무신'에 대한 역설적인 이야기로 시인으로서의 새 출발에 카펫 깔아 드린다.
등단을 축하드립니다.
3. 박성령
시가 보편을 추구하면 일반적으로 추상이란 곳에 떨어진다. 추상은 시의 지옥이 될 수 있다. 간혹 시가 어떤 보편을 확고히 성취했다 하더라도 구체성과 특수성의 힘이 실리지 않으면 무기력한 추상을 벗지 못하게 된다.
역설적인 촌평으로 시인의 우수성과 가능성을 접어 둔다.
잘 쓴 글이다.
등단의 새 출발 축하드립니다.
4. 박정주
이미지 표현은 어떤 방법이든 구체적이어야 한다. 시의 한 방법으로서의 "애매성"은 몽롱하거나 모호한 표현을 말함이 아니고, 상황에 의한 의미 확장이 구체적으로 가능한 길이 열려 있음을 의미한다.
시'흑백의 기억'과 '엄마의 밥상'에서
시인의 출중한 역량을 엿본다.
등단을 축하드립니다.
5. 박정희
살아있는 시를 쓰기 위해서 시어은 추상적인 언어보다는 '구체적인 언어'를 사용해야 하며
보편적인 언어보다는 '특수한 언어'를 찾아서 써야 한다.
언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을 얘기하는가'보다는 '어떻게 얘기하는가'가 더 중요하다.
시는 공백의 언어로 독자를 유혹한다. 시는 정보의 과소 공급을 통해서 오히려 많은 것을 이야기하는 언술이다.
갈고닦아 대지문학과 우리 문단의 거목으로 우뚝 서길 바란다.
등단 축하드립니다.
6. 한종수
문학은 일차적으로 창조적 배반과 전복이라는 큰 에너지를 요구한다.
아무리 아름다운 노래라도 그 노래가 전에 불린 노래의 변조에 지나지 않는다면 문학의 의미를 잃게 된다.
시를 짓는 사람은 언제나 '개념과 감각의 파괴'를 모험하지 않으면 안 된다.
명시란 말하고 싶은 것을 다 말하지 않음으로써 말과 침묵 사이에서 균형 잡힌 어떤 탱탱한 긴장을 선사한다.
대지문학 신인상 수상과 등단을 축하드립니다.
7.임진영
시는 내면적으로는 엄청
나게 큰 소리이면서 외면적으로는 이슬처럼 맑은 울림이 있어야 한다. 참된 시는 날카로운 외침이 아
니라, 그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둥근 소리'이어야 한다.
한없이 길고 긴 공명의 여운을 남긴 소리가 시다.
추상적인 구호는 시인의 구체적인 언술적 주장 없이, 더 이상의 선택이 있을 수 없을 정도의 절체절명한 구체적인 이미지를 통해 전달되어야 한다.
장족의 발전을 기대합니다.
대지문학 신인상 수상과 등단을 축하드립니다.
8. 조문숙
시인은 언어에 도취되기 위하여 시를 쓰지 않고, 그 언어에 도취된 안일을 깨우기 위해 시를 쓴다. 그래서 시는 타락한 세계 그 자체에 대한 싸움이 아니라, 그 타락한 세계를 지탱하는 관념에 머무는 언어와의 싸움이다.
문제는 경험을 어떻게 사실에 부합되게 재현하는가가 아니라, 진실로 그 경험이 정확하게 무엇에 대한 시적 해명이며, 그 경험의 세계를 존재의 밝음 속으로 이끌어 와, 오롯한 생명력을 부여하는가에 있다.
등단은 새로운 출발이다.
노력한 만큼 문학은 당신을 인도하는 등불이 될 것이다.
등단을 축하드립니다.
9.홍미옥
자체적인 큰 고민 없이 어떤 객관적이거나, 추상적이 "느낌"만으로 시를 채우면, 그 시는 이미 자체적인 진정성 결여라는 무겁고 큰 난제를 지고 시의
바다에 뛰어든 것에 다름 아니다.
시는 체험 속에서 '말 그 너머에 진실'을 밝히는 일이다.
등단은 시인으로서의 첫 삽을
뜨는 일이다. 문전옥답에 씨 뿌리고 가꾸는 큰 머슴의 탄생 기대된다...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첨부
1).선정 심사표 1부
2).심사 글 원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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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글 원문
1.김태인
ㅡ.홀씨/ 김태인
한 꽃에서 자라
흰색 학사모 펄럭이며
각자 제 살길 찾으러
바람에 온몸을 의지한 채
희망을 싹트러 날아간다
홀씨는 모두 동창생
이 사회에 흩뿌려져 제 꽃을 피우러 간다
운 좋게 다 자라면 비로소 알게 되는 사실.
모두 같은 모습인 것.
인생은 하나의 홀씨
한 행성에서 자라 흩어져 살지만
분명히 통하는 한 가지 사실.
인생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는 것.
우리는 지구라는 민들레의
우여곡절 홀씨 동창생
ㅡ.지휘자/ 김태인
!
...
.
한 번의 몸짓에 지날지라도
요동치던 심장들이
고요함으로 가득 찬다
진동이 식어갈수록
그 순간을 그리워해야 하나
풍만한 침묵에 푹 안겨야 하나
그 부드러움에 녹아날수록
바람둥이같이 전율이 그리워
차츰 이성을 되찾을 때쯤
두 손
~~~~~~~~
2.남기재
ㅡ.하얀 고무신/ 남기재
반듯한 댓돌 위에 놓인
하얀 고무신 두 켤레
큰 고무신은
흰 수염 지긋한 할아버지 신발
한 뼘 남짓 작은 한 켤레는 손주 고무신
가지런히 놓인 고무신 자리
정돈된 가풍 콕콕 박혀있는
가정사를 보는 듯
할아버지 사랑방
마실 나설 때
작은 고무신 손주,
두루마리 깃 잡고 따라나섰을 텐데
하얀 고무신
두 켤레 나란히 있을 때
응석받이 손주 무릎 위에서
뭘 하는지 궁금하다
ㅡ.상처/ 남기재 ☆ ☆
가슴에 못이 박혔다
그것도 대못이 박혔다고…
말이나 되는 소린가
뼈가 부러져도 골절상이라고 부드럽게 말하고
깁스 둘러치고 몇 달 고생하는데
치명적인 가슴에 대못을 박고
하루라도 견딜 수가 있겠나
주먹이 아니라는 거겠지
말로 주는 상처
느낌으로
묵시적으로 주는 상처
더 무서워진다
가슴에 박힌 상처
~~~~~~
3.박성령
ㅡ.딸 가족사진/ 박성령
인형 같은 딸을 낳아
공주같이 키웠더니
신랑감을 데리고 와
하나가 둘이 되고
아들 낳고 딸 낳아
넷으로 늘어나네
출산을 앞두고
배 내밀고 증명사진
애를 낳았다고
우는 아이 증명사진
눈으로 남는 사진
마음속에 박힌 사진
힘듦은 어디 가고
예쁜 추억 쌓여갑니다
ㅡ.새싹/ 박성령
녹다 만 얼음 사이
쌀알 같은 풀잎이
좁은 블록 사이
옹기종기 모여서
햇살로 이불하고
물로 밥 먹고
땅 엄마 품에서
부쩍부쩍 자라네
~~~~~~
4.박정주
ㅡ.흑백의 기억/ 박정주
쌀독에 쌀이
채워지면 족했던 시절
흑백 사진 한 장
지금은 만날 수 없는
떠나버린 사람
세월 따라 흐릿하다
가끔 펴 본다
잊고 싶지 않아서
기억에 살고 있는 사람들
사진 속 잃어버린 웃음
찰칵 소리 놀란 표정들
함께 세월을 살아왔지만
같은 시간을 살아보지 못했다
사랑한다는 말
아끼며 살았고
고맙다는 말
속으로 삼켰다
빛바랜 사람들
흑백 사진 속에
그리운 삶 담겨 있다
또 아련한 기억이 내게로 온다
ㅡ.엄마의 밥상/ 박정주
친구랑 손잡고
냉이를 캐던 기억
아직 언 땅
쏘옥 올라온 냉이
한 줌 캐어 엄마 손으로 옮겨 놓으면 웃으신다
환하게 웃는 고운 얼굴
한 줌의 냉이 보글보글 끓여 내신다
냉이 향이 퍼진 밥상에서
엄마의 얼굴이 예뻐 보인다
잎과 줄기 뿌리
다 먹을 수 있는 냉이처럼
자신의 모든 것을 내주고도
더 주고 싶은 엄마도 냉이도
모성애가 넘친다
엄마의 냉이된장국 그립다
부족하지 않았던 사랑
~~~~~~
5.박정희
ㅡ.아이가 먼저 아는 자연/ 박정희
아이의 눈이 곧 자연이다
신록이 웃는 6월
땡볕더위가 기승을 부리지만
오늘은 구름이
햇살을 슬며시 막아선다
신록은
산들바람에 잎새를 흔들며
웃고 있다
우리는 덥다
그들은
인간처럼 자연을 흉내내지 않는다
자연의 일부로 숨 쉬고
움직임 자체가 자연이다
자연의 눈으로 보면,
나무도, 풀도,
동물도, 인간도,
모두 같은 미물이다.
길을 걷는 가족이 있다
엄마는 무언가 빠뜨린 듯
걱정이 가득하고
아빠는 무엇에도 관심 없어 보인다
그러나 아이는,
자연의 말을 잇는다
“여기는 햇빛이 많고
저기엔 나무가 많아”
“여기서 바람이 분다”
나이를 먹을수록
우리는 자연을 멀리한다
인간 속에서
자연을 찾으려 애쓴다
그래서 그 자연이
우리 안에서 갇혀버린다
아이의 눈엔
우리가 자연 안에 있다
그래서 자연은
늘 눈에서 마음에서 솟아난다
ㅡ.민들레 홀씨 여행사의 꿈/ 박정희
민들레 홀씨 대를 하나
살포시 들었다
하늘을 향해 바람을 보내니
하나 둘 홀씨들이 여행을 떠난다
바람개비를 단 듯
빙글빙글 돌며 하늘을 탄다
계단을 오르듯
저세상 너머로 하나 둘 올라간다
옆에 있던 홀씨들도
덩달아 날겠다고 부산하다
함께 떠나는 여행이라
왠지 더 재미있을 것 같다
모두 떠나고 나니
빈 홀씨 집만 조용히 남았다
결혼하고 떠난
아이들 생각이 문득 난다
귀여운 아이를 품고 돌아올
홀씨를 떠올리자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홀씨 대 하나를 또 집어 든다
그렇게 나는
민들레 홀씨 여행사가 된다
~~~~~~
6.한종수
ㅡ.창경궁 백송/ 한종수
새색시 꽃가마 타고궁중으로 시집가는 날분칠한 얼굴이 너무 예뻐부러움에 몸을 떠는 소나무자유도 여유도 없는구중궁궐 깊은 곳에서조선의 왕비는일생을 마친다백골이 진토 되어 떠나는 날슬픔에 젖은 소나무
몸을 너무 떨어껍데기는 벗겨지고온몸에 새하얗게 분칠하고헤어짐을 아쉬워하며가는 길을 전송한다
ㅡ.초봄/ 한종수
봄이 설익었나 보다아침부터 쌓이지도 않는 눈가루를 뿌린다떠나보내기 아쉬워서겨울을 덮어보지만아스팔트에게 거부당한다시샘하는 꽃들에게도겨울은 외면당한다겨울은 녹아버려서 아름다운 세상을 꽃피운다
누구에게는 겨울이 되고누구에게는 봄이 된다
~~~~~~~~
7.임진영
ㅡ.봄날의 각오/ 임진영
차가운 눈보라도
살을 에는 삭풍도
이겨낼 수 있었지
봄이여
네가 있었기에
풍요의 시절을 보내고
또다시 더욱 매서운 바람이
들이닥친
인고의 시간도
이겨낼 수 있었지
봄!
네가 있었기에
봄을 맞아 다시 뛰자
저 밝은 태양을 바라보면서
ㅡ.껍데기/ 임진영
매미가 나무 위로 올라가
껍데기를 벗고
몸뚱이가 밖으로 나와
날갯짓하고 몸을 말려
푸른 하늘로 날아오른다
껍데기만 남는다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빈 껍질만 남아 있다
나도
이 세상 떠날 때
빈 껍질만 남겨두고 간다
나 떠난 자리에
오물을 남기지 말고
은은한 향기가 나는
향수병 하나 두고 떠나야겠다
~~~~~~~~
8. 조문숙
ㅡ.너를 보는 순간/조문숙
기대와 설레는 아들 여친과의 첫만남
보는 순간 시어머니의 모습
떠오른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얼굴
내 남편의 어머니
준비 없는 가슴의 두근거림
내 나이 60에
내 아들의 여친
진한 연민에 찌릿하다
자주 뵙지 못했던 미안함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못한 후회스러움
오랫동안 알 수 없었던 그리움
반갑긴 하나 진한 가슴은 저려온다
이제는 가까이 있을 때
할 수 있을 때
반갑다고 사랑한다고
아주 많이 사랑한다고
이제는
내 사랑스러운 손자의 엄마가 된
그 여자에게서 나를 찾아본다
나는 지금 할머니가 되었다고
등을 쓰다듬으며
가슴으로 안는다
너를 만난다
가슴으로 너를 만나본다
너와 나에 이야기
너를 보는 그 순간
ㅡ.함께라면/ 조문숙
우리 모두 살다 보면
어느 날 문득
알 수 없는 그리움이
아련하게 일렁일 때
잊고 있었던
늘 함께 있어서 알지 못했던
늘 내 편이라 느껴왔던 그 손길
그리움이 내 온몸을 감싼다
따스함에 온몸이 발그레하다
라면 중에 가장 맛있는 라면 '함께라면`
따뜻한 국물에 김치도 넣어 시원하고 얼큰하고 구수하다
함께여서 더 맛있다
꼬불꼬불
서로 흔들며
함께
돌돌돌 말아 올려 먹을 수 있어
호로록 호로록 쪼옥
맘이 녹는다
서로 바라볼 수 있기에
함께 살아가는 세상
함께하니 더 좋은 세상
우리가 꿈꾸는 세상, 아니겠는가
~~~~
9.홍미옥
ㅡ.여름의 끝자락/ 홍미옥
해님은 끊임없이
땅을 두드렸고
한 줄기 햇살이 대지를 가르고
햇볕은 발끝까지 내려앉는다
저 끝에선 서늘한 바람이
떠날 준비 마치고
기다리고 있겠지
구름의 울음이 폭풍이 되어
대지에 물을 찰랑거리게 하네
그늘이 조금씩
길어지는 오후
여름이 떠나는 소리
적막에 가깝다.
거미줄마저
힘겹게 물방울 매달고
황금빛 고개들이
바람에 인사하듯 입맞춤한다.
ㅡ.산당화/ 홍미옥
뜨거운 가슴에
붉은 꽃잎이 흔들릴 때
내 마음도 따라 흔들렸지
잎보다 먼저 뛰쳐나온 작은 봉우리
산속 깊은 고요함 속
한 송이 꽃 속에서
노란 수술 가득 품고
섬세하게 피어난다
꽃잎을 하나씩 벗겨내면
세상의 아픔을 조심스레 열고
새로운 생명을 위해 타오르는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피어나는 산당화
산당화는 예쁘게는 피지만
오래는 머물지 않아서
그리움처럼 왔다가 덧없이 져버린 너 , 맺음 '